철학카페에서 작가를 만나다 1 - 혁명.이데올로기 편 철학카페에서 작가를 만나다 1
김용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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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규의 책을 좋아한다. 이렇게 적고 보니 그의 책을 많이 읽은 것 같지만 몇 권 되지 않는다. 철학을 직접 다룬 책으로는 <생각의 시대>가 유일하다. 이 철학카페 시리즈도 처음 읽는다. 다른 책을 사 놓았는지는 모르겠다. 제목들이 너무 낯익어 산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이 책의 만족도를 생각하면 다른 책들도 읽고 싶다. 비록 쉬운 책은 아니지만 읽으면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고, 잊고 있던 개념을 떠올려주고, 새롭게 인식하게 만든다. 그리고 책 속에 나오는 몇몇 철학자들은 가능하다면 개인적으로 더 찾아 읽으면서 공부하고 싶다.

 

책의 구성은 간단하다. 공연, 강연, 대담으로 이루어져 있다. 공연에서는 한 문학작품을 편집해서 보여준다. 강연은 이 작품을 풀어서 말해주고, 대담은 작가와 그의 작품에 대해 묻고 답한다. 이 구성만 놓고 보면 길게 이야기할 것이 없을 것 같은데 철학자가 어딘 그런가. 그리고 개인적으로 낯선 두 작품은 언젠가 전체를 한 번 읽어보고 싶다. 실제 <안티고네>는 책 속에서 본 적은 많지만 한 번도 읽은 적이 없다. 내용도 이번에야 제대로 알았다. <한낮의 어둠>은 정말 낯설다. 검색해도 한 출판사 나온다. 공연 속 내용만 놓고 보면 결코 한 출판사에서 나올 책이 아니다. 물론 쉽게 읽히지도 않을 것 같다.

 

공연과 더불어 같이 등장하는 작가들이 있다. 한 명은 시인 김선우고, 다른 한 명은 김연수 작가다. 시인 김선우는 솔직히 잘 모른다. 이 책을 읽기 전 그의 시를 제대로 읽은 적이 있는지 모르겠다. 검색하니 시집이 상당히 많이 나와 있다. 소설도 두 권 썼다고 한다. <나의 무한한 혁명에서>를 놓고 철학자가 시인과 대담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 대담이 아니다. 공연과 강연이다. 대담은 어떻게 보면 시인을 더 알게 하고, 공연과 강연의 연장선으로 느끼게 만든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읽으면 시집 제목과 혁명이 맞닿아 있다. 물론 책 내용은 혁명에 대한 저자의 정리와 주장이다. 이것은 이데올로기에서도 이어진다.

 

혁명. 참으로 가슴 떨리는 단어다. 그러나 이제는 그 의미가 많이 퇴색했다. 혁명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개혁이란 단어를 더 좋아한다. 한때 이 두 단어의 차이가 사회주의자와 자본주의자로 나누는 경계처럼 사용된 적도 있다. 이 놀라운 단어를 지첵이 자본주의의 자기변신을 ‘혁명화’라는 용어로 이름 지었다. “자본주의는 그 내재적 모순과 구조적 불균형에서 오는 한계와 무능력이 드러날 때마다, 즉 점점 더 ‘썩을수록’자신의 모습을 스스로 바꾸는 혁명화 작업을 한다.” 라고 말한다. 이것을 단순히 자본주의에 한정할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로 확장하면 어떨까? 권력의 속성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종교는 어떨까?

 

혁명의 장에서 눈길을 줘야 하는 단어는 빼기다. 미켈란젤로 프로젝트란 용어도 빼기와 관련 있다. 미켈란젤로의 조각이 빼기를 통해 돌 속에 갇힌 이미지를 밖으로 드러내기 때문이다. 더불어 생각할 것으로 인공지능이 있다. 불안정성, 불확실성이 주는 위험에 대한 경고는 깊이 새겨 들을만 하다. 그리고 저항은 일회성이 아닌 지속성을 통해 완성된다. 지금은 실패지만 결국 성공한 사례를 말하는데 지속적으로 시도한 결과물이다. 현재 우리 사회도 이렇게 발전해 온 것이 아닌가. 지금도 광화문을 덮고 있는 촛불이 일회성이 아니었기에 변화를 만들지 않았는가.

 

아마도 이 작가 편에서 가장 익숙한 이름이 김연수일 것이다. 그의 장편과 단편을 몇 권 읽었고, 이제는 상당히 유명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의 과거를 보면 소설 쓰기가 생계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한 모양이다. 문학상 수상으로 인한 상금을 제외할 때 이야기다. 실제로 그의 이름이 나에게 알려진 것도 10년이 채 되지 않는다. 물론 내가 아는 것이 하나의 척도가 될 수는 없다. 그러나 책 관련 카페 등이나 인터넷서점 서평을 보면 그의 인지도 변화를 분명히 알 수 있다. 한때 절판되었던 책이 다시 나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가 번역한 책들이 가끔 보이는데 이 시절 생계를 위한 것이다. 이런 작가들이 한두 명이 아닌 것이 아쉬운 현실이다.

 

이데올로기. 정말 많이 사용되는 단어다. 사상과 허위의식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는 간단한 요약만으로 부족한 단어다. 실제 네 번째 행사 주제인데 책으로 나오면서 두 번째로 다루어졌다. 혁명과 맞물려 풀어내기 좋았던 것 같다. 우리가 그냥 무심코 사용하는 단어 중 하나지만 철학자가 파고 들어가니 수많은 정의와 의미가 흘러나온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용어 사용에서 정치적 이념 및 사상과 이데올로기를 구분하지 않고 혼용하게 된 것’이라고 지적할 때 뜨끔했다. 나도 별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데올로기를 “목적과 수단이 전도되어 본래의 목적을 왜곡하거나 해치는 이념 또는 사상”이라고 규정한다. 이것에 대한 좋은 교재가 바로 <한낮의 어둠>이다.

 

이성이란 단어를 좋아한다. 하지만 살다 보니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것보다 감정적, 감성적으로 움직이는 경우가 더 많다. <한낮의 어둠>에서 다루는 상황을 보면 심문관의 시점과 비슷한 적이 나도 있다. 목적을 위해 수단을 정당화하는 일은 우리 사회에서 빈번했고, 지금도 이것을 당연시 하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박근혜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박정희의 개발독재를 어쩔 수 없었던 일이라고 치부하는 것과 같다. <한낮의 어둠>에서 다루는 수단의 정당화는 수십 수천 명의 수준을 벗어났다. 이성과 과학이 절대적이라고 믿었던 시절이라면 나도 이와 비슷한 주장을 쉽게 했을지 모르겠다. 이렇게 이 책은 나의 서툰 믿음을 깨트리고, 이성을 새롭게 보게 한다. 공부할 거리도 잔뜩 안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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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남자 걷는 여자 로망 컬렉션 Roman Collection 9
정길연 지음 / 나무옆의자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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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잊으려고 한다고 잊혀지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시간은 이것을 가능하게 한다. 단 그 감정을 잊고, 그 사람의 이미지를 잊어야 가능하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잊었다고 생각한 옛사랑이 나타난다면 어떨까? 잊었다고 생각한 기억은 되살아나고, 그 당시의 아픔과 괴로움과 열정 등이 뒤섞이면서 살아난다. 이십 년이 넘었던 기간 동안 감정이 메말라 간 남자라면 이 상황이 불편하지만 오랜만 가슴 뛰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이 소설의 한 축은 바로 이런 남자가 담당한다.

 

자신의 아버지가 죽기 전 한 통의 메일로 출생의 비밀을 알려준다면 어떨까? 엄마로 알고 있던 사람이 친엄마가 아니고 자신이 불륜으로 태어났다는 것을 안다면? 먼 미국에서 미술을 공부하던 마린이 이런 경우다. 엄마의 누드 모델이었던 그녀가 자신의 친엄마였다니. 아빠의 죽음도 충격인데 이 사실은 더 심하다. 그래서 그녀가 선택한 것은 남자 친구를 떠나 한통의 엽서에 나온 주소로 떠나는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한 남자를 만난다. 엄마의 어릴 때 남동생 같았던 그 남자. 바로 은탁이다.

 

첫사랑이 너무 강렬했던 것일까? 아니면 자신이 좋아하는 삶이 너무 바빠 다른 여자를 만나지 못한 것일까? 은탁을 몇 년 동안 좋아했던 여자 후배도 있었다. 하지만 삶은 어느 순간 변화를 맞이한다. 멀고 긴 여행을 다니면서 사진을 찍고 취재를 하던 그가 짐을 정리한 채 고향 마을로 돌아온 것이다. 그리고 나무물고기란 게스트하우스를 열었다. 큰 성공도 실패도 없는 공간이지만 꾸준히 사람들이 찾아온다. 만약 이 게스트하우스가 없었다면 마린이 오지 못했을 것이다. 인연은 이렇게 예상하지 못한 공간과 시간 속에서 이어진다.

 

소설은 현재보다 과거에 더 비중을 둔다. 이 과거가 은탁과 마린의 현재를 대변해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둘의 첫 접점이 시작한 것도 과거다. 물론 그 인물은 은탁의 첫사랑이자 린의 엄마인 소정이다. 길지 않은 분량이다보니 간결하게 이야기를 펼친다. 군더더기가 없다. 세밀한 상황 묘사나 전개보다 그 당시 감정을 표현하는데 더 충실하다. 자신의 생모를 아는 남자를 만났다고 그 이야기에 빠져들지는 않는다. 작가는 무겁게 이 상황을 그려내지 않고 린을 통해 경쾌하고 가볍게 풀어낸다. 어떤 순간은 농담 같다. 하지만 그 속에 진심이 담겨 있다. 조금 낯설게 다가온다.

 

출생의 비밀과 그 과거와 관련된 남자의 등장과 만남이 어떻게 보면 구식이다. 신파적이 될 수 있지만 작가는 과감한 생략과 게스트하우스의 현실을 통해 조용히 풀어낸다. 재미난 것은 부령제과의 인기다. 아니 그보다는 부령반점의 역할과 이야기들이다. 작은 마을의 경우 그 마을 사람들의 기억을 먹고 산 존재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제는 기억 속에나 존재한다. 그 중국집 딸이 빵가게를 열었는데 인기를 얻은 것이다. 그리고 은탁과 마린을 사랑하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이 사랑은 짝사랑이다.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충격이 이 상황을 가속화시킨다.

 

첸의 린에 대한 사랑은 명확하다. 하지만 은탁에 대한 수연의 감정은 무얼까? 자신의 감정을 정리하기 위해 남자는 매일 달리고, 여자는 걸었다. 하루에 몇 번의 만남이 길 위에서 펼쳐졌지만 그냥 게스트하우스 사장과 손님이었다. 하지만 과거를 알고 인정하면서 이 감정은 변한다. 이 감정선을 잘 따라가지 못했다. 과거는 알지만 현재는 알아채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결말이 조금은 낯설다. 다른 방식으로 끝낼 수 있었을 텐데. 어쩌면 비어있던 시간들이 채워지면서 숨어 있던 감정들이 튀어나왔는지 모른다. 다른 속도로 걷고 뛰던 두 남녀는 이제 완주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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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울어진 세상
톰 프랭클린.베스 앤 퍼넬리 지음, 한정아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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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역사소설이자 연애소설이고 스릴러물이다. 처음 도입부를 읽을 때는 스릴러라는 생각을 했고, 중간 정도 읽었을 때는 미시시피 홍수를 다룬 역사소설로 다가왔다. 하지만 끝까지 다 읽은 지금은 사랑 이야기가 눈길을 확 끈다.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든 것은 역시 역사에 충실한 설명과 묘사가 바탕이 되었기 때문이다. 홍수에 잠긴 미시시피 주변 지역을 이렇게 멋지게 풀어낸 작품이 몇이나 있을지 모르겠다. 여기에 금주법 시대가 곁들여지면서 밀주 제조업자와 연방 밀주 단속원의 대결이 부각된다. 이 둘 사이를 멋지게 헤엄치는 것은 역시 불가능할 것 같은 두 남녀의 사랑이야기다.

 

1927년 미시시피 강은 홍수로 많은 도시들이 물에 잠길 위기에 처해있다. 소설의 무대가 되는 작은 마을 하브나브가 바로 그런 곳이다. 이 작은 마을이 중요한 것은 바로 최고의 밀주 위스키가 제작되기 때문이다. 금주법 시대와 어울리지 않는 술의 매매와 음주가 동시에 어우러지는 장면들은 법 집행이 무색하다. 이런 시절에 밀주 단속원들은 전국을 돌면서 밀주를 찾아내고, 제작자와 유통자를 법정에 세운다. 자신들이 언론에 노출될 것을 기대하고 딕시 클레이의 남편 제시를 잡은 단속원 둘이 등장한다. 하지만 딕시의 놀라운 사격 솜씨와 여러 명이 있다는 거짓말이 엮이면서 전세가 역전된다. 이 평범한 도입부가 앞으로 펼쳐질 놀라운 이야기의 핵심 요인이다.

 

보통 밀주 단속원이 나타나면 밀주 제작자들은 뇌물을 준다. 아주 큰돈이다. 대부분 부패한 이 돈을 받고 눈을 감아준다. 하지만 언제나 예외는 있다. 이런 유혹을 단호하게 뿌리치는 두 형사가 있다. 그들의 이런 실적이 큰 실적을 잡았다고 보고한 후 사라진 두 밀주 단속원을 좇게 만든다. 아니 정확하게는 그들이 보고한 실적을 찾아내라는 지시다. 이 지시는 나중에 대통령이 되는 후버가 내린 것이다. 처음 연방과 후버란 단어가 나왔을 때 그 유명한 FBI 설립자인 그 후버로 착각했다. 당연히 다른 인물이다. 대통령이 되려는 그는 이 실적으로 언론의 주목을 받고자 한다. 햄과 잉거솔 콤비가 이 작은 마을에 오게 된 이유다.

 

이야기는 두 사람을 축으로 진행된다. 한 명은 당연히 잉거솔이고, 다른 한 명은 딕시 클레이다. 잉거솔은 고아 출신에 1차 대전을 참가한 용사다. 그가 좋아하는 것은 재즈다. 음악에 대한 탁월한 재능을 가지고 있는데 그의 재능은 이것뿐만이 아니다. 명사수이자 멋진 연주자이기도 하다. 이야기가 진행되는 중간 중간에 그의 과거사가 흘러나오는데 왜 그가 임무를 수행하던 중 발견한 아이에게 집착하게 되었는지 단서를 제공한다. 만약 이 아이가 없었다면 이야기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을 것이다. 좀더 스릴러 쪽으로 말이다. 이성은 늘 감정에 휘둘리고 무너진다.

 

딕시 클레이는 한때 제이콥이란 아들을 가졌지만 병으로 잃었다. 이 죽음이 그녀에게서 생기를 뺏어갔다. 그녀가 만든 멋진 위스키는 금주법 시대에 누구나 원하는 술이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법이 무색하게 사람들은 공공연하게 술을 마신다. 제시와 딕시의 부가 더 많이 쌓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딕시가 원하는 것은 이런 성공이 아니다. 그녀가 원하는 것은 사랑과 삶의 의미를 부여해줄 수 있는 무언가다. 소설 속에서 그 무언가가 바로 잉거솔이 길에서 데리고 온 아기다. 딕시에 의해 윌리란 이름을 얻게 된다. 갑자기 그녀 삶에 생기가 돌기 시작한다. 잊고 있던 모성애가 발동한 것이다.

 

밀주 제작자와 밀주 단속원의 사랑 이야기로 변하는 것은 후반부다. 전반부는 세밀하게 이 시대의 풍경을 그려내고, 등장인물들 이야기를 펼치면서 그들의 과거를 하나씩 풀어낸다. 어떻게 보면 지루할 수 있는 부분들인데 작가들은 이것에 역사와 상상을 곁들여 긴장감을 높인다. 언제, 어떻게, 누가 터트릴지 모르는 제방을 둘러싼 긴장감은 또 하나의 재미다. 제방을 터트리려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도 놀랍다. 단순한 충동에 의한 것이 아니라 어떤 이익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이 밝혀질 때 고개를 끄덕인다. 잉거솔이 딕시가 밀주 제작자라는 사실을 발견했을 때 느낀 갈등과 고민은 또 하나의 갈림길이자 자신의 감정을 정리하는 순간이다.

 

부부의 협업으로 탄생한 작품이라고 하지만 그 어떤 어색함도 느끼지 못했다. 미시시피 강을 둘러싼 상황을 배경으로 과연 이 두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하고, 그 결과가 어떻게 끝날지 궁금했다. 각각의 인물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크게 지루함을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더 몰입했다. 읽으면서 작가의 다른 작품 <미시시피 미시시피>가 더 궁금해졌다. 조금 무겁고 지루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있었지만 단순한 기우였다. 영화로 만든다면 어떤 부분에 이야기를 맞출까? 읽으면서 생긴 몇 가지 이미지가 춤을 춘다. 오랜만에 느끼는 감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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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릿마리 여기 있다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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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되면 3연타석 홈런이다. 큰 기대 없이 읽은 <오베라는 남자>에서 시작하여 이번 작품까지 모두 만족스럽다. 물론 이 세 작품이 하나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주인공들이 모두 노인이고, 개성이 너무 강하고 특이한 성격이란 점이다. <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 달랬어요>에서 화자로 소녀가 등장한 것을 제외하면 조연으로 소녀들이 등장한다. 이 작품에서는 베가가 그렇다. 이것이 하나의 틀로 굳어지는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는 하나의 단계인지는 조금 더 두고 봐야할 것 같다.

 

읽으면서 낯익은 이름과 행동이 눈에 들어왔는데 역자의 글을 읽으니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 달랬어요>에 브릿마리와 켄트 부부가 나왔다고 한다. 그 당시 상당히 밥맛이었던 기억이 난다. 물론 나중에는 이 감정이 살짝 변했지만. 물론 이런 사실을 몰라도 이 책의 재미가 반감되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더 편견 없이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내 경우도 정확한 정보를 몰라 브릿마리의 행동에 더 집중하고, 그녀가 어느 방향으로 튈지 궁금해졌다. 어느 정도는 예상한 방향으로 나아갔지만 그 속내까지 완전히 맞춘 것은 아니다.

 

평생을 남편과 가족을 위해 헌신한 인물이 브릿마리다. 그녀의 삶에서 남편 켄트를 빼면 남는 것이 없다. 청소와 정리에 강박증이 있는데 이것이 그녀를 사회와 멀어지게 한다. 그녀의 불행했던 과거가 나오는데 왜 이런 삶을 살게 되었는지 알 수 있다. 강박증과 깐깐한 성격이라 아주 강한 내면을 지닌 것 같지만 상당히 여리다. 눈물을 자주 흘린다. 하지만 수건에 대고 흐느껴 운다. 왜냐고? 눈물이 바닥에 떨어져 자국이 남는 것을 용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그녀가 세상을 향해 밖으로 나온다. 이유는 불쌍하다. 언론에서 홀로 살다 죽은 사람이 냄새 때문에 시체로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죽은 후 이런 일이 벌어지기 원치 않기에 일을 찾는다.

 

결혼 후 단 한 번도 다른 일을 한 적이 없다. 그녀의 눈에는 취업센터 직원의 행동이 하나씩 거슬린다. 플라스틱 컵도, 컵받침이 없는 것도. 일상에 지친 직원의 눈에는 브릿마리가 진상이다. 읽으면서 나도 그랬다. 다음 날 약속을 잡는다. 그냥 한 말이지만 브릿마리에게는 다르다. 메모하고 다음날 찾아온다. 끈질기게 직원을 괴롭힌다. 세상의 흐름과 동떨어져 산 그녀이기에 남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다. 이렇게 행동한 끝에 하나의 일자리를 얻는다. 보르그 지역의 레크리에이션 센터 관리인이다. 즐거운 마음으로 오지만 온 날부터 말썽이다. 차는 폭발하고, 그녀는 어딘가에서 날아온 축구공을 맞고 기절한다. 인연이 시작되었다.

 

보르그는 경제 위기 후 몰락한 마을이다. 주민들은 집을 팔려고 내놓았다. 당연히 사려는 사람도 없다. 기절한 그녀를 데리고 온 아이가 베가고, 베가가 일하는 가게 주인은 미지의 인물이라 불리는 여자다. 이 가게는 참 많은 역할을 한다. 경제 위기 여파로 우체국과 자동차 정비소와 피자가게와 작은 점포까지 모두 같이 한다. 쉽게 공간의 크기가 가늠되지 않지만 결코 넓은 공간을 아닐 것이다. 이곳에서 브릿마리는 보르그에 대한 기초 정보를 조금씩 얻는다. 그리고 축구를 사랑하는 아이들을 만난다. 특히 리버풀을.

 

깐깐한 할머니 브릿마리와 천방지축 같은 아이들의 만남이 만들어내는 이야기는 흥미진진하다. 각각의 사연을 하나씩 풀어내고, 축구에 대한 열정을 브릿마리에게 주입한다. 브릿마리에게 관심을 두는 스벤이라는 경찰이 등장한다. 그와 잘 되려는 순간 남편 켄트가 나타난다. 이 둘 사이에서 갈등하는 그녀의 모습은 또 다른 재미다. 그리고 이 마을의 전설 같은 축구 코치 뱅크의 딸이 조용히 이야기 사이에 들어온다. 정체된 듯한 마을이지만 사람들의 마음까지 완전히 정체된 마을은 아니다. 이곳에서 브릿마리는 자신의 만능 세제인 과탄산소다를 뿌리며 청소한다. 이 청소가 사람들 사이에 낀 때를 지우는 것 같다. 동시에 읽는 속도를 더 높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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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유언
안드레이 마킨 지음, 이재형 옮김 / 무소의뿔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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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러시아 출신이지만 프랑스어로 글을 쓴다. 이렇게 모국을 떠나 다른 나라의 언어로 소설 등을 쓰는 작가가 상당히 있다. 자전적 요소가 많다고 하는데 그 경계를 쉽게 가늠하기 어렵다. 하지만 꽤 많은 부분에서 그의 경험이 녹아 있을 것이고 생각한다. 그가 그려낸 곳과 프랑스에 대한 환상과 프랑스어에 대한 설명을 읽다 보면 경험한 자의 여유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소설은 나에게 쉽지 않았다. 더디게 읽혔고, 가계도가 충분히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았다. 묘사가 많은 부분도 하나의 이유다.

 

한 장의 사진과 프랑스어와 할머니가 이 소설의 핵심이다. 할머니 샤를로트가 없었다면 이 소설은 쓰여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는 프랑스 출신이고, 러시아에서 험난했던 20세기 초반을 보냈다. 소설 속에 그녀가 경험했던 일들을 하나씩 보여주는데 그 참혹함은 엄청나다. 물론 그것이 당시 그곳만의 특별한 것은 아니다. 현재도 전쟁이 일어나는 곳에서는 일상적으로 일어지고 있거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살인과 강간과 폭행과 부상병들까지. 사지 중 일부가 절단된 병사들을 사모바르라고 부르는 부분에서는 깜짝 놀랐다. 잠시 다시 생각하면 우리도 이런 경험을 한 적이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한국전쟁 이후를 다룬 영화나 소설에서 말이다.

 

책속에서 프루스트가 나왔을 때 작가가 풀어내었던 이야기들이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직선적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 아니다보니 순간적인 이미지를 모아야했다. 이 이미지들은 어느 순간 엮이면서 하나의 이야기로 묶인다. 개인적으로 편하게 읽힌 것은 역시 3부였다. 현재가 아닌 과거를 다룰 경우 타인의 경험보다는 자신의 것이 더 생생하기 때문이다. 십대의 열정과 충동은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섹스 후에 대한 그의 감정은 쉽게 공감할 수 없었다. 그의 경험과 할머니의 경험을 같이 놓고 해석했을 때 이것이 남자 일반적인 감정이라는 의미인지, 아니면 러시아만의 특징인지 쉽게 분간이 되지 않았다.

 

기억과 사실이 교차한다. 프랑스어는 프랑스 출신 할머니 샤를로트를 통해 배운다. 러시아어가 모국어인 그에게 프랑스어는 쉽게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하지만 열심히 두드리고, 새로운 것을 배우고 경험하다 보니 문을 조금씩 열어준다. 후반부에 이 경험을 들려줄 때 낯설었다.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일이기 때문이다. 소문으로 들었던 것이 사실로 확인되는 순간도 이때다. 샤를로트가 자신이 당한 강간 이야기를 해줄 때 이런 이야기를 한다는 자체에 놀란다. 이 부분이 바로 앞에서 말한 섹스 후 남자의 감정을 표현한 대목이기도 하다. 이 이외에 할머니는 자신이 겪은 삶의 다양한 부분을 말해준다. 물론 그가 프랑스에 대한 환상을 키운 것은 할머니의 가방 속 신문과 그 기사와 할머니의 이야기들 덕분이다.

 

전체적인 이미지는 솔직히 다 읽은 지금도 떠오르지 않는다. 더 넓은 시베리아의 풍경도 마찬가지다. 전제주의 국가의 풍경을 세밀하게 묘사하지 않고, 자신들의 삶을 담담하게 그려내었다. 역자도 지적했듯이 베리아를 제외하면 할머니의 신분증을 둘러싼 에피소드 외에 몇 개 없다. 빈곤과 궁핍함과 허기 등이 가득한 시절이지만 흐르는 시간 속에 빠르게 씻겨 간다. 현실과 삶의 놀라운 회복력 덕분이다. 작가가 섬세하게 표현한 장면들이 나에게 깊이 와 닿지 않아 힘들었지만 차분하게 음미한다면 또 다른 느낌이 들 것 같다. 마지막 장에서 프랑스 유언이 던져준 반전은 다시 첫 이야기를 돌아보게 만들고,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감정들의 정체에 의문을 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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