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단처럼 검다 스노우화이트 트릴로지 3
살라 시무카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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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마지막 권이다. 3권의 시리즈를 읽으면서 각각 다른 방식의 이야기 전개로 약간 혼란스러웠다.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방식은 2권이다. 전작들도 그렇지만 이번 작품도 루미키의 활약은 한정적이다.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 것은 맞지만 그녀의 활약이 두드러지는 것은 아니다. 탁월한 추리력을 발휘하는 것도 아니고, 액션으로 상대를 완전히 제압하는 것도 아니다. 이런 부분 때문에 이 시리즈의 첫 권이 사실 그렇게 매력적으로 다가오지는 않았다. 2권을 읽으면서 이 생각이 바뀌었지만.

 

집단 자살 사건 이후 다시 학교로 돌아온 루미키의 이야기를 다룬다. 전작들이 큰 규모의 사건들이라면 이번에는 사건의 대상이 루미키 자신이다. 새로운 남자 친구 삼프사를 사귄다. 이 소설의 도입부는 관능적이다. 남자의 애무를 받고, 전 남친과 현 남친이 꿈과 현실 속에서 등장한다. 전작에서 그녀가 보여준 영웅적인 행동 때문에 언론과 친구들의 관심을 받지만 그녀는 이것이 불편하다. 인터뷰를 거절하고 평범한 고등학생의 삶을 산다. 하지만 전작들처럼 현실의 어둠은 그녀를 홀로 자유롭게 놓아두지 않는다.

 

전편에서도 루미키의 언니가 하나의 소재로 등장했다. 하지만 이번 작품은 아예 언니가 이야기의 핵심이다. 희미한 기억 속에 언니의 이미지가 남아 있는데 정확한 기억이 없다. 그녀의 그림자를 자청하는 한 명의 메시지가 들어와 그녀를 협박한다. 이 메시지에는 그녀의 숨겨진 과거가 그대로 나와 있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비밀을 포함해서. 그리고 그 협박에는 말대로 따르지 않으면 살인하겠다는 말이 들어있다. 이 때문에 새벽에 눈길을 열심히 달린다. 혹시 그녀의 행동 때문에 그들이 죽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녀의 숨겨진 삶을 파헤쳐 혼란과 공포 속으로 밀어넣는 존재가 있다면 현실에서는 전 남친과 현 남친이 그녀의 삶을 뒤흔든다. 전 남친 블레이크에 대한 사랑과 갈망이 너무 거대하여 순간적으로 그녀를 뒤흔들지만 삼프사의 존재가 경계선을 치게 만든다. 보통의 로맨스 소설이라면 이 갈등으로 상당한 분량을 뽑았겠지만 작가는 간략하면서도 분명하게 이 관계를 정리한다. 그리고 자신의 내면을 너무 잘 알기에 이 두 남자 친구를 한순간 범인으로 오해한다. 작가는 살짝 이 부분에서 독자로 하여금 오해할 수 있게 장면을 연출한다.

 

전작들처럼 백설공주나 다른 북유럽 동화가 하나의 장치로 이용되지만 직접적으로 표현되는 것은 역시 <백설공주> 한 편이다. 새롭게 각색된 백설공주 역할을 루미키가 맡는다. 이 연극에 그녀는 너무 심하게 몰입한다. 현실과 가상의 혼란 속에서 헤맨다. 이 연극이 자신의 과거와 겹쳐지면서 환상을 만든다. 책을 읽을 때 순간적으로 다른 장소로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받는데 이 또한 작가의 연출이다. 하지만 이 덕분에 루미키에게 순식간에 빠져든다. 기존에 알고 있던 동화와 너무 다른 동화에 한 번 더 놀란다. 새로운 해석은 이야기 속에서 또 하나의 단서가 된다.

 

적은 분량이다. 단숨에 읽었다. 전작들처럼 루미키의 활약은 특별하지 않다. 단지 사건의 중심에 있을 뿐이다. 스토커의 정체를 추측하는 재미가 있지만 길지 않은 분량이라 긴박감이나 긴장감이 특별히 고조되지는 않는다. 예상하지 못한 설정이라면 루미키의 언니 루사의 존재다. 전편부터 계속 언니의 존재를 암시했지만 이번처럼 확실하게 등장한 적은 없다. 그녀의 가족이 왜 그렇게 소원해졌는지 알려줄 때 한 가족의 비극이 가슴 속으로 파고들었다. 진실보다는 자신들이 믿고자하는 것을 믿으면서 생긴 비극이다. 3부작으로 끝났지만 늘 사건의 중심에 서 있던 루미키를 보면 또 어떤 사건을 만날지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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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 중간의 집 사건 3부작
가쿠타 미츠요 지음, 이정민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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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제목 뒤에 가려져 있는 이야기는 결코 평범하지 않다. 유아 살해와 관련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사건이 일어나게 된 배경을 하나씩 파고들게 되면 육아에 지친 엄마들의 평범한 삶이 드러난다. 아이를 둘러싼 수많은 사람들의 조그만 말 하나에 흔들리고, 눈물 흘리고, 짜증내고, 화를 내고, 웃는 우리 주변의 엄마들 말이다. 아이의 발육이 조금만 늦어도 자신이 잘못한 것 같고, 모유 수유를 끝까지 하지 못했다고 자신감이 떨어지는 무수한 엄마들 말이다. 그래서인지 작가는 유아를 살해한 엄마 미즈호의 재판에 보충재판원으로 선정된 세 살배기 딸을 둔 리사코를 주인공으로 등장시켰다.

 

미즈호는 여덟 달 된 딸을 익사시켰다. 고의적으로 한 행동은 아니지만 자신이 들고 있던 아기를 떨어트리고 넋 놓고 있었다. 남편이 들어와서 이 상황을 보고 구급차를 불렀지만 이미 늦고 말았다. 영유아 살해로 재판에 회부되었다. 리사코는 이 재판에 재판원 중 한 명으로 선택되었다. 세 살배기 딸 아야카를 돌봐야하는 현실을 감안해서 빠지기를 원했지만 정식 재판원이 아닌 보충재판원으로 선택되었다. 재판이 있는 동안 법정에 앉아 재판 진행사항을 보고, 이에 대한 의견을 내놓는 역할이다. 그냥 시간만 때우고 지나갈 수도 있지만 자신의 경험이 겹쳐지면서 상당히 어려운 일로 변한다.

 

재판기간 동안 아이는 시댁에서 돌봐주기로 한다. 매일 아침 아이를 시댁에 데려다 준 후 재판이 끝난 후 다시 데리고 오는 일정이다. 바로 옆집도 아니고 전철과 버스를 갈아타야하는 상당히 먼 길이다. 재판에서 감정의 소모가 심한 상태인데 아이는 할머니 등의 선의에 의해 버릇이 조금씩 나빠진다. 가끔 보는 사람과 매일 아이를 돌봐야 하는 사람과의 차이다. 하루는 아이가 시댁에서 자겠다고 한다. 시어머니도 그러라고 한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는 엄마를 찾으면서 계속 운다. 다시 돌아가서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간다. 이런 상황들이 점점 더 그녀의 삶과 육아의 경험을 미즈호와 겹쳐보이게 만든다.

 

미즈호의 재판이 한 여성의 삶을 하나씩 해부하는 과정이라면 보충재판원인 리사코에게는 잊고 있던 생각하는 삶을 돌려준 기회다. “생각하는 행위로부터 도망쳤다.”란 표현이 나오는데 결혼 후 그녀의 삶에 대한 정확한 요약이기도 하다. 남편과 시댁과 친정엄마의 말에 자신의 의견을 내지 못하고, 육아에 지친 삶을 살아갈 뿐이다.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지 못해 아이를 민다거나 놓치는 행동을 하기도 한다. 이런 상황들이 아주 특별한 상황이냐고 하면 그것은 아니다. 의도하지 않은 순간의 행동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잠시 동안 아이를 돌보는 사람이나 주변사람들에게는 어떻게 보일까? 그리고 이때 그들이 던지는 한 마디 말의 힘은 어떻게 작용할까?

 

리사코가 미즈호의 사고를 자신의 경험과 비추어 감정이입하면서 풀어냈다. 그렇다면 이미 아이를 다 키운 아줌마나 아직 아이를 낳지 않았거나 남자인 경우는 어떨까? 자극적인 언론은 또 어떨까? 검사들이 미즈호의 유죄를 입증하기 위해 과거를 뒤짚고 왜곡하는데 이것 또한 리사코의 감정을 뒤흔든다. 결혼하면서 잊고 있던 생각과 판단이 조용히 그녀를 찾아왔기 때문이다. 평소라면 남편의 한마디에 그렇게 큰 상처를 받지도, 감정의 혼란을 겪지도 않았겠지만 이 재판이 미즈호 속의 리사코를 찾게 만든다. 그리고 조용히 깨닫는다. 자신을 대하는 남편의 말과 행동 속에 어떤 의미가, 폭력이 조용히 스며있는지. 물론 이것이 자신의 착각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과연 그럴까?

 

육아와 유아 살해라는 주제를 아주 멋지게 엮었다. 비슷하지만 다른 삶을 살고 있는 두 여자를 통해 너무 쉽게 판단하는 육아의 어려움을 꼼꼼하면서도 현실적으로 그려내었다. 망각의 힘에 의해 자신들의 어려웠던 순간을 잊은 여자들의 지적은 단순히 시대가 다르다는 말로 치부하기에는 너무 아프다. 여론은 과거의 한 순간을 부각시켜 미즈호를 나쁜 여자로 몰아간다. 그런데 작가는 이런 가치 판단을 유보하면서 현실을 최대한 그대로 보여주려고 한다. 가해자의 입장보다 피해자의 입장에 감정이입이 더 쉽고 더 많이 된 사람들은 그녀를 악녀로 규정한다. 작가가 최대한 현실을 그려내었다고 해도 실제 현실에 더 잔혹한 삶이 있는지 알 수 없다. 육아를 둘러싼 현실과 감정이입 덕분에 이 작가의 책 중에서 비교적 힘들게 읽었다. 아이를 곧 낳거나 낳을 예정인 예비 아빠들이 한 번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자신의 육아에 힘겨워하는 엄마들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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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 골라주는 남자 - 18년차 여행작가 노중훈의 여행의 맛
노중훈 지음 / 지식너머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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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개의 테마로 100곳의 식당을 다룬다. 내가 가본 곳을 세어본다. 4곳이다. 반면에 이름을 아는 식당은 상당히 많다. 이 차이는 방송으로 식당 이름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가본 곳들이 지역적으로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책들이 나오면 낯선 곳으로 떠나고 싶어진다. 여행과 맛있는 음식은 언제나 한쌍이지 않은가. 저자도 여행작가이지 않은가. 언제부터인지 가슴 한 곳에서 떠나고 싶다는 열망이 커진다. 일상의 무거움이 머리를 짓누를수록 이 열망은 더욱 자라난다.

 

맛집 책을 많이 읽었지만 겹치는 집은 많지 않다. 오히려 <수요미식회> 같은 방송에서 본 집이 더 많다. 요즘 먹방이 대세에 유행이다보니 맛집을 찾아다니는 프로그램이 많다. 물론 그 이전부터 이런 방송이나 책을 즐겨 들고 보았다. 한때는 방송이 나오지 않는 집이 더 귀했던 적이 있다. 자주 가는 식당들도 최소한 한두 번 이상은 방송에 나왔고, 벽에 방송 장면들이 출력되어 붙어있다. 맛집 방송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알게 되면서 무조건 방송에 나오는 집에 가는 발걸음이 뚝 거친 적도 있다. 방송에서도 차별을 두기 위해 몰래 가는 방식으로 바꾸기도 했다. 그러면 괜히 또 한 번 가보곤 한다.

 

이렇게 맛집은 계속해서 나를 유혹한다. 지난 여름 제주에 가서 경치를 보기보다는 방송에 나온 맛집 탐방에 더 열을 올렸다. 물론 이렇게 된 이유 중 하나는 계속 비가 온 것이다. 며칠 동안 식당을 돌면서 느낀 것은 나의 입맛과 방송의 괴리가 상당히 크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멈출 수 없다. 그 연장선에 있는 것이 바로 이런 책이다. 방송이다. 이전보다 열심히 찾아보지 않지만 맛집 방송이 나오면 자동적으로 눈길이 간다. 외식을 하려고 하면 맛집을 열심히 검색한다. 성공보다 실패가 더 많았지만 이 과정에서 나름 선별하는 방법도 개발했다. 물론 이것도 늘 맞는 것은 아니다.

 

여행작가란 직업 때문인지 아니면 먹는 것을 좋아하는 탓인지 전국곳곳의 식당이 나온다. 이전 같으면 제주도 식당이라는 이유로 놀랐을 수도 있지만 요즘은 너무 많이 나왔다. 이 책의 특이한 부분 중 하나로 꼽는다면 섬의 민박집 밥을 목록에 올려놓은 것이다. 단순히 차별화를 위한 것인지, 아니면 진짜 그 집이 맛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잊고 있던 기억의 한 자락을 불러왔다. 민박의 추억이다. 하지만 민박집 밥을 먹은 기억은 거의 없다. 대부분 밥을 해먹거나 아니면 나가 사먹었다. 뭐 대부분 민박의 경우 단체로 갔으니 그렇기도 하다.

 

해장으로 시작하여 고를 필요 없는 식당으로 끝난다. 속풀이 테마에서 우래옥을 넣은 것은 이해한다. 하지만 평양냉면계의 넘사벽이란 표현은 수많은 평양냉면 마니아의 반발을 살 수 있다. 실제 다른 방송에서 평양냉면을 다루었을 때 얼마나 많은 논쟁이 있었고, 개인 취향이 나왔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국수집을 보면서 갈 곳이 많다고 느꼈다. 개인적으로 신성각 짜장면이 어떤 맛일까 궁금하다. 팥을 좋아하는 나에게 진주의 수복빵집은 왜 몰랐을까? 하는 아쉬움을 준다. 몇 번이나 진주를 다녀왔기에 생긴 아쉬움이다. 어쩌면 먹고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저질 기억력과 너무 오래전 방문한 했기에.

 

맛집을 다니다가 늘 생각하게 되는 것이 이 식당이 회사 근처에 있으면, 집 근처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다. 애성회관의 경우 지난 번에 갔다가 내부공사중으로 문을 닫아 그냥 돌아왔다. 차를 가지고 가면 늘 주차 문제가 생기는 곳이라 그때의 아쉬움이란. 류지의 솥밥은 늘 먹기보다는 가끔 둘러보고 싶다는 느낌이다. 김진환제과점 식빵은 이번에 꼭 사 먹고 싶다. 자신만의 맛을 찾아가는 식당들은 언제나 호불호가 갈린다. 박찬일 주방장의 로칸다 몽로는 한번쯤 가서 맛보고 싶다. 노부부의 치킨집 중동구판장도 마찬가지다.

 

한 잔 술이 당기는 날 좋은 친구들과 함께 가보고 싶은 식당들이 보인다. 늘 먹는 삼겹살에 소주가 아니라. 한동안 혼자 밥을 자주 먹었다. 하지만 청진옥은 아니었다. 노포임을 감안하면 다른 테마로 가야하지 않을까? 이천냥의 김밥은 이 김밥을 사기 위해 그곳으로 가고 싶게 만든다. 뭐야 할 가능성이 더 높지만. 부부청대문이 목록에 올라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 이 식당에 대해 자세히 들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가장 불편한 식당이란 표현이 딱 맞는 곳이다. 예전에 이 근처에 살았을 때 알았다면 한두 번 정도 시도했을 텐데. 광주식당의 밥 이야기에서 인사동 골목길에 있던 식당이 떠올랐다. 반찬보다 밥으로 더 유명했던 집이다. 이렇게 이 책에 나오는 식당들은 추억도 같이 불러온다. 연말연초에 최소 한 곳 이상 가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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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터너티
알리스 페르네 지음, 김수진 옮김 / 을유문화사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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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목은 <우아한 과부들>이라고 한다.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터너티>란 프랑스 영화의 제목을 책 제목으로 정했다. 표지에 나오는 세 명의 여인이 소설 속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여인들일 것이다. 그런데 누가 누군지 쉽게 짐작되지 않는다. 인터넷으로 영화를 검색하면 쉽게 찾을 수 있겠지만 소설을 읽으면서 누릴 재미를 위해 찾지 않았다. 실제로 발랑틴, 마틸드, 가브리엘 역을 할 배우가 누굴지 계속 상상했다. 몇 가지 추측은 가능하지만 정확하게는 누군지 모른다. 혹시 나중에 영화로 본다면 이것이 또 하나의 재미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영원성이란 제목을 정한 것은 “결코 시간은 우리가 원하는 만큼 주어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피와 살은 우리를 영원히 연결한다. 사람의 생김새와 성격을 결정짓는 암호는 그 암호가 어디에서 생겨나서 어디로 가는지, 그리고 삶의 그림자와 냉정함, 붕괴의 비밀을 드러낸다. 이런 삶의 과정은 끝없이 반복된다.”라는 문장과 맞닿아 있다. 흔히 인간의 불멸은 그 유전자를 남김으로 이어진다고 말한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모계를 통할 때만 가능하다. 예전에 읽은 책에 의하면 실제 유전적 아버지와 키우는 아버지가 다른 경우가 적지 않다는 해외 통계가 있었다.

 

우아한 과부들이란 윈제목처럼 이 소설을 이끌고 나가는 것은 여자들이다. 과부들이라고 말하지 않은 것은 마틸드의 경우 남편보다 먼저 죽었기 때문이다. 유전적으로 따지면 가브리엘은 발랑틴의 가족과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다. 나중에 다시 두 집안이 이어지는 일이 벌어지지만. 이 소설 속 여인들은 정말 많은 아이들을 낳는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말도 되지 않는 숫자다. 유산이나 사산 등을 제외하고 마틸드가 낳은 아이가 열 명이다. 이십대 초반에 결혼하여 죽는 순간까지 아이를 낳은 것이다. 작가는 그녀가 임신한 순간을 아주 빛나는 순간으로 표현했다. 하지만 삶이 점점 사그라지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다.

 

20세 초반 유럽은 전쟁으로 큰 피해를 입었다. 남자들은 전쟁터로 나가 죽고, 그 죽음을 살아남은 아내와 엄마들이 그 아픔과 고통을 껴안아야 했다. 이 소설 속에서 발랑틴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녀는 전쟁과 병으로 아이들을 잃었다. 이 때문에 그녀는 신을 믿지 못하게 되었다. 이런 아픔을 본 아들 앙리가 빨리 결혼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선택인지 모른다. 마틸드를 선택하여 결혼한 그의 삶은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피임을 하지 않은 대가는 아내의 죽음이었다. 비록 열 명의 아이를 얻었다고 해도. 이 소설의 대부분은 이런 앙리와 마틸드와 마틸드의 친척인 가브리엘에 대한 이야기다. 그들의 삶과 관계와 부부의 유대 등이 간결하면서도 길게 나온다.

 

실제 소설의 분량은 200쪽이 채 되지 않는다. 한 쪽의 분량도 많지 않다. 그런데 다루고 있는 시간은 근 100년에 달한다. 등장하는 이름도 결코 적지 않다. 아이들만 해도 수십 명이다. 많을 때는 십수 명의 아이들이 한 아파트에서 살기도 한다. 작가는 앙리의 직업을 간단하게 말하지만 충분한 설명이 없다. 어떻게 이렇게 큰 집에 살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하지만 작가가 풀어놓은 이야기의 핵심은 이것이 아니다. 여자와 영원이다. 사랑이다. 마지막 장에서 발랑틴의 증손녀가 사랑을 만나는 장면을 보여준다. 한 명의 아내가 되고, 어머니가 될 것이란 말로 끝을 맺는다. 이런 유전적인 영원성이 지엽적인 이야기를 빼고 간결하면서 유장하게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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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카페에서 작가를 만나다 2 - 시간.언어 편 철학카페에서 작가를 만나다 2
김용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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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책에서는 시간과 언어를 다룬다. 한때 시간은 나의 화두 중 하나였다. 후배가 툭 던진 ‘시간의 공간성’이란 단어가 나를 괴롭혔다. 지금처럼 인터넷이 없던 그 시절, 도서관을 뒤져 이 단어를 찾아봤지만 이에 딱 맞는 의미를 알아내지 못했다. 몇 년이 지난 후 그 후배에게 이 단어를 물으니 자신이 그런 말을 했다는 것도 모른다. 그때의 허망함이란! 덕분에 시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고, 나름의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하지만 이 책 속에서 다루는 시간은 좀 더 포괄적이고 철학적이다.

 

예전에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아주 지루하게 읽은 적이 있다.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부조리극이란 이름만 겨우 아는 정도였다. 그런데 이 작가의 다른 작품 <크라프의 마지막 테이프>를 공연에 올렸다. 테이프에 자신의 감상을 녹음하고, 이것을 십 년 이상 지난 다시 듣는 내용이다. 현대 과학이 만들어낸 또 하나의 작품인 테이프는 육성으로 자신의 말을 녹음할 수 있다. 그 이전까지는 글이 유일한 수단이었다. 미래에 듣기 위해 녹음한 것이라면 진실을 이야기할 것 같지만 거짓말이 우선이다. 왜일까? 녹음된 것과 기억은 서로 다른 것을 알려준다. 당사자는 진실을 알겠지만 다른 사람이라면 어떨까? 이것과 연결되는 작품이 윤성희의 <부메랑>이다. 거짓 기록과 기억과 시간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찰나를 살아간다. 이 글을 적는 지금도 이미 과거가 되었다. 최근 몇 년 동안 과거, 현재, 미래의 삼생을 본다는 것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가끔 한다. 그리고 수많은 철학자들이 시간에 대해 이야기했다. 벤야민의 ‘지금시간’이 가슴에 조용히 와 닿는다. 단순히 흘러가는 시간으로 다루지 않고 역사와 결부해서 풀어낸 것은 이 책의 주제와도 맞닿아 있다. 벤야민은 지금시간을 “경과하는 시간이 아니라 그 속에서 시간이 멈춰서 정지해버린 현재”라고 표현했다. 시간적인 것이 아니라 이미지적인 것이라고 했을 때 시간과 기억이 맞물리기 시작했다.

 

윤성희 작가의 소설을 거의 읽지 않은 것처럼 심보선 시인의 시도 읽은 적이 없다. 공연작인 <벨락의 아폴로>도 처음 듣는 작품이다. 이번 부분을 읽을 때 이전에 읽었던 <생각의 시대>와 연결되는 몇몇 언어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다. 한때 말에는 힘이 있다는 말이 있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더 공감하게 되었다. 언어가 우리의 삶에 어떤 작용을 하는지 말해 줄 때 고개를 끄덕였다. 언어가 정신을 만든다는 말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요즘 세대가 제대로 된 언어를 구사하지 않으면서 생기는 문제를 지적했을 때 또 한 번 고개를 끄덕였다.

 

개인적으로 조승희에 대한 부분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들었다. 한 미친 놈이 저지른 총기 살인 사건이 아닌 현대의 우리가 만든 소외의 결과라는 지적 때문이다. “‘저리 가!’ ‘넌 필요 없어!’ ‘내 눈앞에서 사라져!’처럼 상대를 거부하거나 소외하는 언어행위에 담긴 폭력성과 파괴성은 그 자체가 지닌 의미를 훨씬 뛰어넘는다.”면서 예수의 산상수훈을 같이 놓았다. 여기서 언어행위란 “우리가 상대에게 어떤 의사를 전할 대 발설하는 말뿐 아니라 행동(시선, 표정, 손짓, 몸짓)까지 포함”한다고 말한다. 이것의 돌아온 탕자를 포옹한 아버지의 이야기로 가면 더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황당할 수도 있는 이야기가 <벨락의 아폴로>에 나온다. 아폴로가 취직하려는 아그네스에게 남자를 유혹하는 절대적인 비법을 전수한다. 그것은 간단하다. “참 잘생기셨어요!”라는 말이다. 이 말에 남자들은 그녀에게 반하고 자신들을 변화시킨다. 비현실적인 설정이지만 이 말이 지닌 힘은 무시무시하다. 작가는 이 설정을 아주 자세하게 분석하는데 언어가 지닌 힘을 절로 느끼게 한다. 실제로 누군가가 나에게 그런 말을 해준다면 처음에는 장난처럼 받아들이겠지만 거울 앞에서 조용히 나의 외모를 감상할지도 모르겠다.

 

철학자는 두 권의 책 속에 혁명, 이데올로기, 시간, 언어를 풀어내었다. 결코 가벼운 내용은 아니지만 어딘가에서 한 번쯤 들은 작가의 작품 해석과 함께 인식을 넓혀주었다. 그리고 그 작가들의 작품에 관심이 생겼다. 물론 김연수는 예외다. 시인들과의 대담은 다시금 시에 대한 도전 욕구를 불러왔고, 아직 읽지 않은 시집을 기대해본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나의 즐겁게 한 것은 철학적으로 풀어낸 작품들과 철학적인 의미들이다. 반도 채 소화하지 못했지만 집중해서 읽은 부분은 어느날 문득 머릿속에 떠올라 새로운 의미로 다가올 것이다. 내년에는 어떤 책들을 더 집중해서 읽어야할지 조금 더 고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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