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변의 피크닉 스트루가츠키 형제 걸작선
스트루가츠키 형제 지음, 이보석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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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SF는 잘 모른다. 근래 몇 권 정도 출간된 것 중 읽은 것도 거의 없다. 물론 사놓은 책은 몇 권 된다. 이 형제 작가들의 이력을 보다 낯익은 작품이 한 권 보인다. 바로 <세상이 끝날 때까지 아직 10억년>이다. 한참 책을 사 모을 때 출판사를 보고 집어넣었던 책이다. <종말전 10억년>과 같은 소설인데 그 당시는 약간 헷갈렸다. 인터넷으로 검색하면 출판사 열린책들의 초기 판본을 볼 수 있다. 이번 소설을 읽으면서 이전 작품에 대한 관심이 부쩍 생겼다. 이 작품이 주는 매력이 그만큼 강하다는 의미다.

 

외계와의 첫 접촉을 이렇게 풀어낼 수도 있다는 상상력에 먼저 놀란다. 외계인들이 다녀간 곳을 구역이라고 부르며, 그곳을 몰래 들어가는 인물들을 스토커라고 한다. 이 구역에 대한 설명은 현재의 과학으로 불가능하다. 이 불가능이 수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 모은다. 만약 이 도구를 현실에 적용만 할 수 있다면 엄청난 효과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더 많고 더 다양한 구역 내 물건을 가져오길 바라지만 이 구역을 관리하는 조직은 이것을 공식적으로 막는다. UN같은 조직의 역할이다. 하지만 높은 수익은 언제나 높은 위험을 감수하도록 만든다. 주인공 레드릭 슈하트도 그런 스토커 중 한 명이다.

 

하몬트란 지역의 한 곳을 외계인이 다녀갔다. 그들이 다녀간 후 그 구역은 아주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상식과 현실의 과학을 넘어선 일들이 일어난다. 어떤 물체는 닿기만 해도 고무처럼 변하게 만들고, 어떤 지역은 중력에 문제가 생긴다. 이 구역은 그냥 걸어 들어가서 나올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스토커는 이런 일을 몰래하는 사람들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그 스토커가 아니라 오히려 밀수꾼 혹은 도굴꾼에 더 가깝다. 그곳에서 챙겨나온 물건들은 높은 가격으로 암시장에서 거래된다. 구체적인 이름이 없는 그 물건들은 작가들의 의도에 따라 정확한 이름이 붙어 있지 않다. 이 때문에 나의 뇌는 그 이미지를 상상한다고 무척 바빴다.

 

레드릭의 시점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는 스토커가 그 구역에서 겪게 되는 수많은 모험을 보여준다. 그와 동시에 이 구역 안에서 발견된 혹은 가져 나온 물건들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도. 긴 세월을 지나면서 그가 겪게 되는 일들은 그렇게 넓지 않은 그 구역이 어떤 곳인지, 얼마나 위험한 곳인지, 상상도 할 수 없는 물건들로 가득한 공간임을 직접적으로 알려준다. 처음에는 왜 그가 조약돌을 던졌는지 그 이유를 몰랐지만 뒤에 가면 바로 알 수 있다. 그가 발견한 물건이 어떤 모습을 보여주는지는 현실의 과학과 별개의 문제다. 모험과 상상력이 한꺼번에 집약되어 있다.

 

누넌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장은 이 소설의 제목이 어떻게 나오게 되었는지 잘 보여준다. 그 구역이 의미하는 바도 같이 보여주는데 외계와의 첫 접촉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라 신선했다. 인류에게 커다란 재앙과 과학적 난제를 안겨준 그 구역이 실제 외계인들이 잠시 다녀간 피크닉 장소일 뿐이라는 가정은 인류가 안고 있는 수많은 의문과 철학을 뒤집어보게 한다. 사람들의 인식이 지닌 한계를 이런 식으로 뒤집을 수 있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우리가 알고 있는 과학이란 것이 얼마나 한계가 분명한지 잘 나온다. 그 한계를 뛰어넘었을 때 우리의 상상력도 그 한계와 맞닿아 있다.

 

작가는 하몬트라는 지역을 결코 확장하지 않는다. 다른 지역에서 하몬트 출신이 살면서 일어나는 이상한 현상을 말하기는 하지만 항상 그 대상은 하몬트에 한정된다. 이 놀라운 구역의 발견물들이 현실의 과학 발전에 어떤 기여를 하는지도 말하지 않는다. 그 중 일부의 쓰임새가 나오기는 하지만 과학적 설명은 없다. 이런 불친절한 설명은 오히려 상상력을 키운다. 그리고 사람들의 행동과 심리에 더 집중한다. 이런 설정들이 어쩌면 검열관을 불편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명확하지 않으면 불안하니까. 마지막 레드릭의 모험은 여운을 남긴다. 처음 읽을 때 놓쳤던 문장들을 다시 읽으면서 새롭게 느꼈다. 인간의 의지는 어떻게 되는가 하고. 외계인의 피크닉은 인류에게 참으로 많은 것을 남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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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플란드의 밤
올리비에 트뤽 지음, 김도연 옮김 / 달콤한책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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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플란드란 지명이 아주 낯설다. 하지만 지도에서 찾아보면 낯익다. 이 낯섦과 낯익음의 차이는 이 지역에 대한 충분한 정보가 나에게 전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흔히 스칸디나비아 반도라는 불리는 그곳 속에 있다는 사실을 이번에 처음 알았다. 사미족이 살았던 이 땅은 노르웨이, 스웨덴, 필란드의 세 나라에 걸쳐 있는 광대한 영토다. 구글에서 라플란드를 검색하면 오로라, 북극, 필란드, 여행 등이 먼저 나타난다. 이 지역의 오로라에 관심이 많은 사람에게는 어떨지 모르지만 나 같이 문외한에게는 아주 생소한 이름이다. 이 소설은 바로 이곳에 사는 사람과 사건 등을 다룬다.

 

라플란드에 먼저 살았던 민족은 사미족이다. 순록을 치면서 산 이들에게 종교와 인종 문제가 엮이면서 큰 변화가 생긴다. 멀리는 기독교가 사미족 샤먼을 말살하고, 19세기는 사미족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이 이루어졌다. 현재 가장 선진적인 복지국가로 알려진 스칸디나비아 반도 국가의 이미지와 전혀 어울리지 않은 역사다. 하지만 역사적 사실은 인종 탄압과 함께 강한 동화 정책이 펼쳐졌고, 현재도 이 민족을 둘러싼 많은 문제가 이어지고 있다. 이름만 진보당인 극우 정당이 소설 속에서 내뱉는 말들은 우리가 북유럽에 가지고 있는 이미지와 많이 다르지만 현실이다. 자신들의 편의와 이익을 위해 극우정당들이 더 많은 득표를 한다는 지적은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북유럽 스릴러가 아주 인기 있지만 이 소설처럼 극지를 무대로 펼쳐지는 이야기는 흔치 않다. 주로 대도시를 배경으로 살인자를 좇는 이야기가 많다. 그런데 이 소설은 작은 마을이 배경이다. 순록치기들이 등장하고, 사미인들이 이야기의 중심이 된다. 스노우모빌을 타고 순록치기들을 관리하는 경찰이 등장하고, 사미인들은 라플란드 속 국경을 오고 간다. 이 국경이란 인위적 구분이 오래전에는 하나의 비극이었던 적도 있다. 하지만 현재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순록경찰도 이 국경을 넘어 다니고, 어떤 순간에는 라플란드에 있는 순록경찰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이런 모습들은 개인적으로 아주 낯설다.

 

순록경찰인 클레메트와 니나가 전체적인 이야기를 끌고 간다. 아버지가 사미인이고, 어머니가 스웨덴인 클레메트는 사미인 동화정책 때문에 아주 큰 고생을 했다. 이 이야기 속에 가끔 나오는 이 인종정책은 니나가 북유럽에 있었던 인종차별주의자들에 대한 무지와 이어진다. 과거의 역사는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현재의 모습만 밖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이런 역사의 한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이 프롤로그와 사미족 북의 도난으로 인한 시위에서 목사가 하는 말과 행동이다. 이 경건주의파가 어떻게 사미인들의 문화를 파괴했는지, 풍부한 자원이 사미인들을 죽음으로 몰아갔는지 등은 이 소설의 미스터리를 해결하는 중요한 열쇠다.

 

라플란드의 자연환경을 알려주기 위해 각 장마다 일출과 일몰과 해가 떠있는 시간을 알려준다. 극야의 시기를 지나 조금씩 햇볕이 나오는 시간과 함께 이야기는 점점 더 확대된다. 사미족 북의 도난과 순록치기 사미인 마티스의 죽음까지 이어지는 사건은 노르웨이의 작은 사미 마을 카우토카이노에 많은 분노를 자아낸다. 그리고 곧 열릴 예정인 UN 컨퍼런스에서는 소수민족의 인권을 다룰 예정이다. 이런 상황이니 이 사건들이 재빨리 해결되길 바란다. 상부의 압력과 달리 아직 충분한 수사도 지원도 없는 상태다. 작가는 바로 이 지점에서 다양한 이해관계와 인물들을 등장시켜 이야기를 엮기 시작한다. 여기에 극지의 아주 열악한 자연 환경은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

 

솔직히 아주 복잡한 미스터리나 충격적인 반전이 나오는 작품은 아니다. 의외성은 살아있지만 감탄할 반전은 없다. 하지만 일반적인 추리를 따라가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인물들을 만나게 된다. 이런 모습들이 사미인들의 역사와 황량한 풍경과 극저온의 기온들과 엮이면서 읽는 동안 머릿속에 이미지를 쌓아간다. 이 쌓인 이미지와 사미인들의 역사와 자원개발 등이 섞인다. 언제나 비극은 인간의 탐욕에서 비롯한다. 이 작품도 바로 그 지점을 정확하게 그려낸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은 강한 인상과 함께 약간의 허무감을 던져준다. 뭔가 뒤끝이 남는 느낌이다. 좋게 말하면 여운이려나? 두툼하지만 이미지가 조금씩 쌓이면 생각보다 빠르게 읽을 수 있다. 이런 극지 스릴러라면 또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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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지키려는 고양이
나쓰카와 소스케 지음, 이선희 옮김 / arte(아르테)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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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귀본이 가득한 고서점과 책을 지키려는 고양이란 설정이 마음에 들었다. 여기에 기이한 모험까지 곁들여졌으니 내가 유혹에 넘어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물론 지금은 예전처럼 헌책방을 순례하듯이 돌아다니지 않는다. 아니 정확하게 말해 못한다. 많은 헌책방을 돌면서 사놓은 책들은 집에 가득하고, 새롭게 산 책과 받은 책들이 여기저기 놓여 있으니 헌책방에서 책을 사겠다는 말을 마눌님께 꺼낼 수가 없다. 다만 가끔 생기는 상품권과 적립금 등으로 책을 살 뿐이다. 그래도 적지 않은 책들이 쌓인다. 이런 상황이니 고서점과 책이란 설정만 나오면 눈길이 돌아간다. 대리만족이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읽기 시작한 이 소설은 순식간에 끝까지 달리게 만들었다.

 

고서점을 운영하던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남은 손자 나쓰키 린타로는 서점을 정리하고 고모와 함께 살 예정이다. 기간은 정해져 있다. 이때 한 얼룩 고양이가 나타나 말을 한다. 린타로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이 소설이 판타지인 이유는 바로 여기 있다. 얼룩이란 이름을 가진 고양이가 인간의 말을 하고, 고서점을 통해 다른 세계로 진입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네 개의 미궁을 방문하여 하나씩 문제를 해결한다. 이 과정이 목차에 나오는 가두고, 자르고, 팔아치우는 등의 행동이다. 이 행동은 책과 독서에 대한 현재 사회의 단면들이다. 너무 현실적인 행동인데 이 행동을 막는 답변이 그렇게 대단한 것이 아니다. 나의 경우에는 이미 많은 곳에서 만난 것이기에 특히 그렇다.

 

하나의 미궁 속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은 그렇게 특별하지 않지만 이 소년의 재능이 가장 돋보이는 것은 역시 고서점에서 책을 찾을 때다. 아무리 고서점을 운영하는 할아버지 옆에서 오랫동안 머물렀다고 해도 린타로가 보여주는 지식은 보통 사람을 능가한다. 그의 탁월함에 대한 감탄은 엄친아인 선배의 말에서도 잘 드러난다. 일반적인 베스트셀러가 아닌 고전을 말하고, 그 내용을 요약하는 모습은 단순히 많이 읽었다는 것만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지에 대한 답도 미궁에서 문제를 해결할 때 하나씩 알려준다.

 

다독, 줄거리 요약, 책 판매 이익 등만 내세우는 미궁의 주인들은 몇 개 부분에서 나의 독서와 닮은 부분이 있다. 천천히 내용을 음미하면서 읽는 습관이 아직 완전히 정착되지 않았고, 다독하면서 얻은 지식이 다른 책에 대한 욕심으로 이어진다. 물론 이 이야기 속 다독자에 비하면 새발의 피도 되지 않지만 말이다. 줄거리 요약해서 책 한 권을 한 줄로까지 줄인 인물의 이야기는 인간의 삶에 대해 ‘태어나서 살다 죽었다’라는 문장으로 요약한 이야기가 떠올랐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가 중 몇 명은 장광설인 것을 감안하면 나와 맞지 않는 듯하지만 이야기에 집착하는 성격을 보면 또 다르다. 가장 맞지 않는 것은 잘 팔리지 않는 책보다 잘 팔리는 책에 대한 것일 텐데 이 부분은 나의 마이너한 취향을 생각하면 이 미궁의 주인과 맞지 않다. 내가 출판사를 한다면 이처럼 될지도 모르지만.

 

이렇게 소설을 읽으면서 나의 독서와 비교하는 재미가 있다. 여기에 린타로와 반장의 아주 작은 연애 분위기도 재밌다. 본격적이지 않아 신선하고, 순수한 느낌인데 마지막 미궁에 이르면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서점이 무대이다 보니 반가운 작가와 작품들이 계속 나온다. 물론 이 작품들을 모두 읽은 것도 아니고, 읽었다 해도 나의 취향과 맞지 않거나 이해하지 못한 작품도 있다. 반대로 절판된 책이 우리집 책장 어딘가에 있다는 사실에 괜히 기분이 좋아지기도 했다. 없는 책도 꽤 있지만. 책에는 힘이 있다는 작가의 말에 동의한다. 그 힘을 찾아내고 이용하는 것은 당연히 독자 개인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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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살아남았지 - 베르톨트 브레히트 시선집 에프 클래식
베르톨트 브레히트 지음, 이옥용 옮김 / F(에프)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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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읽는 브레히트의 시집이다. 그의 시를 여러 곳에서 한두 편 정도 읽었을지 모르지만 하나의 시집으로 읽기는 처음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다섯 권의 시집에서 시를 뽑은 시선집이다. 역자 해설을 보면 이 다섯 권의 시집들이 지닌 특성이 잘 드러난다. 그리고 이 시들이 수록된 순서도 시집 발간 순서와 동일하다. 사실 브레히트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희곡이다. 그가 얼마나 대단한 극작가였는지, 그의 작품에 영향을 받은 수많은 연극 무대가 어떠했는지 알고 있기에 시인 이미지는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여기에 나의 점점 떨어지는 기억력이 더해지면서 시인 브레히트에 대한 의문이 들기도 했다.

 

시집을 펴고 읽으면서 처음 받은 느낌은 무서움이었다. <아펠뵈크 또는 들에 핀 백합>과 <영아 살해범 마리 파라에 대해>로 이어지는 시들은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만나는 시들과 완전히 다르다. 죽음과 그 죽음을 둘러싼 환경이 아주 직접적으로 표현되면서 그 무서움에 압도되었다. 어려운 비유 없이 돌직구를 날리는 시어들은 그 상황에 처한 인물들에 대한 감정을 극도로 배제한다. 반복되는 상황만이 눈에 들어온다. 이 상황들 속에 현실이 담겨 있다. 이웃의 무관심과 극도로 이기적인 사람들의 반응과 고된 노동 등의 현실이다. 사람들이 흔히 보는 것은 바로 이런 현실이 아닌 밖으로 드러난 죽음이다.

 

<독서하던 어떤 노동자의 의문점들>에서 시인이 가진 의문들은 바로 내가 어릴 때 가졌던 그 의문이다. 이 의문에 대한 답은 간단하다. 위인들의 이름 뒤에는, 높은 성곽의 아래에는 수없이 많은 죽음과 민중들이 있었다. 시인은 이 물음을 통해 우리의 생각을 환기시킨다. 어떤 때는 이런 물음과 의문이 더 많은 답을 주기도 한다. ‘“보다 강한 녀석들이 살아남는 거야.”/ 난 내가 싫었다.’<난, 살아남았지>란 시에서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살아남는 것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된다. 강해서 살아남은 것이 아니라 살아남은 자가 강한 것이란 일반적인 의미 너머를 말이다.

 

<어린이 십자군>을 읽으면서 전쟁과 고아들을 생각하게 되었다. 가장 약한 존재들인 아이들이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어떤 참상을 겪는지, 그것을 피하기 위한 아이들의 노력이 얼마나 무력한 것인지 등. <우리 형은 비행사였어>에서 그가 정복한 공간이 “길이는 1미터 80센티/ 깊이는 1미터 50센티”라고 말하면서 묘지 그 이상이 아님을 알려준다. “독일에선 시인과 철학자를/ 사형 집행인이 잡아가네.”<시인과 철학자>라고 말하면서 나치가 저지르는 폭압과 공포 정치의 현실을 간략하지만 강렬하게 보여준다.

 

<해결책>을 읽으면서 처음에는 그 의미가 잘 다가오지 않았다. 천천히 그 의미를 되새기면서 읽으면 정부와 인민의 입장 차이가 얼마나 다른지 눈에 바로 들어온다. “정부가 인민을 해산시키고/ 다른 인민을 선택하는 게/ 더 간단하지 않나?”라는 물음은 많은 생각으로 이어진다. <화원>을 읽다보면 그 풍경 이미지의 고요함에 과연 이 시가 브레히트의 것이 맞나? 하는 의문이 들 정도다. 어쩌면 그가 바라는 삶의 모습이 “나 역시 늘 이런저런 호감 가는 걸/ 보여 줄 수 있기를 소망하네.”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다만 현실을 외면할 수 없기에 희곡과 시들이 그렇게 나왔을 것이다.

 

<민주적인 판사>를 읽으면서 우리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판사가 아닐까 생각했다. 현재의 바뀐 미국 대통령을 생각하면 이런 판사가 설 자리가 없겠지만. <즐거움>이란 시는 그가 생각하는 즐거움을 나열한 것이다. 나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은 무엇일까? 사랑했다는 것을 <약점>이라고 말할 때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사랑과 왠지 맞지 않았다. 하지만 공감하는 것은 왜일까? <승객>에서 자신만을 위해 운전하던 그가 “난 승객을 생각한다.”고 했을 때 바뀌려는 노력과 의지와 실천이 느껴졌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어려운 것도 아니다. 이런 일들이 우리 일상에 얼마나 많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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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탐정 정약용
김재희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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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희 작가는 한국 장르 소설가 중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작가 중 한 명이다. 얼마 전에는 이상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시리즈를 내놓기도 했다. 그래서 이번 작품에 정약용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고 했을 때 속으로 이것도 시리즈로 나올 수 있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책을 끝까지 읽은 지금은 과연 시리즈로 나올까 하는 의구심이 먼저 생긴다. 정약용의 한 생애 중 중요한 한 사건을 다루었지만 너무 많은 시간들이 흘렀기 때문이다. 물론 이 시간의 흐름 속에 다른 사건을 다루는 시리즈는 가능하겠지만 말이다.

 

삼미자라고 불렸던 어린 시절의 에피소드로 시작한다. 처음 이 사건을 보았을 때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했다. 인체자연발화를 사건 속에 끌고 들어오면 논리의 비약이 많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이 <흠흠신서> 속 사건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는 말을 보고 고개를 조금은 끄덕였다. 이 사건에서 다른 요건도 중요한 사건 해결의 실마리이기 때문이다. 그런 다음 많은 시간이 흐른다. 이렇게 시간은 하나의 사건이 끝나면 빠르게 흘러가고, 정약용의 직위도 바뀐다. 이 변화 속에서 바뀌지 않은 것 하나가 있는데 이것이 이 소설의 중요한 사건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 사건이 조금 아쉽다. 너무 세부적인 상황들에서 비약이 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광고 글에 정약용과 함께 이가환도 같이 나와 이가환의 활약에 많은 기대를 했다. 다른 책에서 이가환이 조선의 천재 중 한 명이란 글을 읽었던 적이 있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가환의 존재는 충분히 그 빛을 발하지 못했다. 물론 이것이 나 개인만의 생각일 수도 있다. 처음에 동반자이자 조언자로 사건 해결에 좀더 번뜩이는 제안을 할 것이란 기대를 한 것도 있기 때문이다. 그의 탁월한 기억력을 다루는 부분이 나오지만 사건을 보는 시각이나 너무나도 유생다운 생각은 너무나도 정약용과 대비되면서 그 매력이 많이 반감되었다. 만약 시리즈가 나온다면 그의 활약을 더 많이 보여주었으면 한다.

 

긴 시간의 흐름 속에 가장 중요한 사건 하나가 놓여 있다. 바로 의문의 사내인 진의 정체와 그가 주장하는 한 사상이다. 평등교라는 종교 단체가 나오는데 이 진이란 사내가 너무나도 기이하다. 외모만 놓고 봐도 나이가 먹지 않는 것 같고, 그가 경험한 여행과 교육도 그 시대와 너무나도 동떨어져 있다. 개혁과 혁명으로 대변되는 두 인물의 대립도 약간 도식적인 모습이 보인다. 오히려 허균의 사상보다 못하다는 느낌이 들 때도 있다. 그리고 외과수술 장면이나 그가 갖춘 현미경 등은 그 시대와 잘 맞지 않는다. 진이 사용하는 뇌관식 격발장치를 한 권총의 등장 또한 고증이 필요하다. 이렇게 몇 가지 설정과 장치가 읽는 동안 머릿속에서 물음표를 던졌다.

 

팩션과 유랑탐정이란 설정이 가장 먼저 시선을 끌었는데 유랑탐정의 의미는 뒤로 가면서 많이 퇴색되었다. 실제 정약용이 유랑을 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목적지로 가능 도중에, 그 다음은 아버지 상 중에 여막 근처에 있던 살인사건이고, 마지막은 그가 어사 출도한 연천군에서 곳이다. 결국 조선 팔도를 이리저리 떠돌면서 하나의 큰 사건을 해결하는 방식이 아니다. 지역만 달리할 뿐 있었던 장소와 가던 곳에 머물었을 뿐이다. 너무 심한 평가일까? 팩션이란 장르의 특성은 정약용과 이가환의 행동과 상황으로 어느 정도 풀렸다. 앞에서 말했듯이 이 둘의 조합이 아직은 완전한 모습을 갖춘 것은 아닌 듯하다.

 

이런저런 불만을 토로하지만 한국형 팩션으로 미스터리를 엮어가는 작가의 노력에는 박수를 보낸다. <흠흠신서>를 인용한 것이나 <무원록>의 사실을 통해 조선시대로 과학수사를 했다는 것을 알린 것은 우리가 알던 비과학적인 조선과 다른 모습이다. 다산의 연애를 풀어낸 부분은 소설이 만들 수 있는 최고의 장면이다. 다만 그 깊이와 열정이 밖으로 강하게 드러나지 않은 것은 조금 아쉽다. 이런 아쉬움들이 강하게 다가온 것은 더 좋은 작품에 대한 갈망과 기대 때문일 것이다. 긴 시간과 진이란 인물에 대한 집착을 벗어던진다면 좀 더 긴박감 넘치고, 세부적인 상황이 살아 있는 소설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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