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경제사 - 돈과 욕망이 넘치는 자본주의의 역사
최우성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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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세 편의 소설 속에서 저자는 숨겨진 경제 이야기를 찾아낸다. 이 경제사가 과연 맞는가 하는 부분은 책을 모두 읽은 지금도 의문이다. ‘동화’라는 제목이 붙어 있지만 15편 모두에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걸리버 이야기>를 동화라고 한다면 할 말이 없다. 실제 어린 시절 세계 명작 동화라는 이름으로 나온 책들 속에 이 소설이 있었으니까. <허클베리 핀의 모험>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대부분의 작품은 동화란 이름으로 판매되고 있다. 내가 읽지 않았다고 해도 여기저기에서 본 것들이라 내용들이 낯설지도 않다.

 

이 책은 사실 완성도가 그렇게 높지 않다. 왜 이런 표현을 하느냐 하면, 확실한 증거 자료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쓴 논문이나 그 작가의 이력 등을 조사한 것을 참고해서 그 시대상과 더불어 풀어내었기 때문이다. 결국 작가가 분명하게 인정한 것은 하나도 없다. 물론 이것이 평론가의 역할이자 영역이기는 하다. 하지만 이것을 한 권의 책으로 묶어 내려면 좀더 정밀하고 분명한 분석과 자료가 있어야 한다. 저자가 글 중간에 다른 가능성을 열어놓으면서 하나의 추정일 뿐이라고 하는 대목을 볼 때는 조금 힘이 떨어진다.

 

어린 시절 동화를 좋아해서 아주 열심히 찾아 읽었다. 성인이 된 지금은 이전처럼 잘 읽지 않지만 가끔 동화를 읽는다. 한때 그림 동화의 원전이 유행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우리가 알고 있던 동화와 다른 버전을 몇 편 읽었다. 더 잔혹하고 다른 결말들이라 낯설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그 당시 경험을 조금 느꼈다. 아무 생각없이 그냥 행복하게 재밌게 읽었던 동화의 이면에 이런 이야기들이 숨겨져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론 한두 개의 이야기는 다른 책 등에서 봐서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이런 체계적인 책은 처음이다. 저자의 여는 말에 나온 것처럼 약간의 환상이 깨어진 부분도 아주 조금은 있다.

 

첫 이야기는 쥘 베른의 <80일간 세계 일주>인데 읽으면서 과연 이런 행운이 지속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자신이 계획한 운송매체를 계속해서 탈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는 이 시대에 벌어졌던 수많은 토목건축을 알려주고, 그 건설 현장에 있었던 무수한 이름 없는 인민을 보여준다. 이런 무명의 인민들을 동화 속 뒤쪽에서 찾아내어 앞에 나란히 놓아두는데 이것이 그 시대의 단면을 아주 잘 보여준다. <플랜더스의 개>나 <엄마 찾아 3만리> 같은 작품을 보여줄 때 그 아름다운 이야기 뒤에 이런 삶들이 있을 것이란 상상도 못했다. <찰리의 초콜릿 공장>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움파룸파의 열악한 노동 상황은 단 한 번도 생각조차 못했다. 영화의 이미지가 먼저 다가온 탓일까?

 

동화와 경제란 키워드에 덧붙여야 할 단어는 자본주의와 인종 문제다. 경제만 놓고 보면 자본주의의 발달과 더불어 생긴 수많은 모순과 실패와 욕망 등이 엮여 있지만 그 옆에 놓은 인종 문제 등도 결코 간과할 수 없다. <피노키오>와 <꿀벌 마야의 모험> 등이 파시즘과 연결되고, <아기 노루 밤비>가 유대인 문제, <허클베리 핀의 모험>이 흑인 노예 문제와 직접 연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일반 독자가 얼마나 되겠는가. 이렇게 풀어내는 이야기는 우리가 그냥 단순히 재밌게 읽은 소설 너머의 이야기를 아주 잘 보여준다.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이기도 하다. 또 아는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이런 경제사를 동화와 연결하기 위해서는 그 당시 논쟁이 되거나 기사화된 것들의 조사가 필요하다. 확실한 결론이 없다는 아쉬움이 완성도란 표현으로 나왔지만 한 편의 동화가 어떻게까지 해석될 수 있는지 엿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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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VS 옴진리교 - 일본 현대사의 전환점에 관한 기묘한 이야기
네티즌 나인 지음 / 박하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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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캐스트 XSFM <그것은 알기 싫다>에서 방송한 내용을 책으로 옮겼다. 이 방송에 출연할 때마다 저자의 이름은 바뀐다. 일본 만화 <드래곤볼>의 쉘 번호를 따서 그때마다 다르게 불렸다. 나의 희미한 기억력의 의하면 네티즌 나인은 처음 방송에 나왔을 때 불렸던 이름일 것이다. 아니면 그것과 비슷하거나. 그가 방송에서 말한 내용들은 항상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들었고, 조리 있고 흥미로운 부분을 아주 잘 찔렀다. 약간 중성적인 목소리로 우리가 잘 몰랐던 일본의 기묘한 이야기를 전달하는데 다른 출연자와 다른 모습으로 다른 시각을 잘 보여주었다. 그래서 그가 방송한 부분은 다른 방송보다 더 집중한다.

 

이 책의 순서는 대부분 방송과 비슷하지만 결론 부분만은 제일 앞으로 빼놓았다. 결국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이 우리의 세월호 사건이기 때문이다. 한 사회에 엄청난 충격을 던져준 두 사건을 둘러싼 처리방법도 두 나라는 달랐다. 일본의 옴진리교 사린 살포 사건은 1995년에 발생했지만 아직도 사후 처리가 진행중이다. 이것에 비해 한국은 어떤가? 마지막에 다른 사건에서도 나왔던 “자식 팔아서 돈 번다”라는 댓글과 언론 기사가 나오는 현실을 감안하면 정말 하늘과 땅 차이 이상이다. 물론 이 두 사건을 같은 위치에 놓고 동일하게 평가할 수는 없다. 사건 발생과 이것을 처리하는 과정도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저자는 옴진리교 사린 사건만을 다루지 않고, 옴진리교가 어떻게 발생하고 성장했는지를 먼저 보여준다. 이 신흥종교가 어떻게 성장했는지 알려주는 대목에서 그 당시 유행했던 몇 가지 사회 현상도 같이 보여준다. 마쓰모토 치즈오가 공중부양에 성공했다고 찍은 사진이 지금 기준에서 본다면 유치하기 그지없지만 그 시절은 지금처럼 인터넷이 없었다. 아니 디카조차 없던 시절이다. 나중에 옴진리교 신자를 탈퇴시킬 때 한 변호사가 똑같은 사진을 찍어서 설득했다는 대목은 아주 인상적이다. 그리고 이 신흥종교에 빠진 연령대가 20대란 부분은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실제 살인 행동에 직접 가담한 간부들의 나이도 20대였다. 오컬트 붐이나 마쓰모토 치즈오의 대외적인 활동(?)이 만든 이벤트 등만으로 이렇게 빠져들었다는 것은 조금 의외다. 하지만 언제나 종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부분까지 바꾼다.

 

사이비종교란 단어가 일본에 없다고 했을 때 조금 놀랐다. 이단이나 사이비종교란 단어가 넘쳐나는 한국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한때 이단이라고 불렸던 교회가 지금은 많은 목사가 원하는 교회가 되지 않았는가. 이것을 보면 이단과 사이비란 표현보다 일본의 신흥종교란 표현이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물론 옴진리교처럼 종교의 탈을 쓴 테러집단은 구분해야겠지만. 그리고 종교단체로 인정받기 위해 그들이 어떤 노력을 했는지, 또 테러 이후 이 단체를 해산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펼쳤는지도 함께 돌아봐야 한다. 문명국가에서 법이란 이름으로 모든 사안을 다루어야 한다는 분명한 전제 조건들이 있기 때문이다.

 

책의 많은 부분을 옴진리교의 살인과 생화학 무기 제조 등에 할애한다. 무수히 많은 살인 사건들과 실패한 살해 사건까지 다루는데 이런 지경에까지 이르도록 일본 경찰이 몰랐다는 점은 조금 의외다. 옴진리교가 언론을 이용해 교세를 확장했고, 옴진리교의 폐해를 지적한 변호사 등의 인적 사항을 그대로 보여준 사건 등은 다시 한 번 언론의 역할이나 한계를 생각하게 한다. 그리고 옴진리교가 핵무장까지 기획했다는 사실과 생화학 무기를 직접 제조했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다. 실제 이 생화학 무기를 살인과 테러에 이용하려고 했고, 그 결과 중 하나가 지하철 사린 살포 테러다. 이 사건까지 오는 과정 속에 벌어진 수많은 살인과 살해 등은 상식을 초월한다.

 

테러가 벌어진 후 사후 처리에서 결코 잊지 말아야 할 인물이 한 명 있다. 고(故) 아베 사부로 변호사다. 그가 보여준 놀라운 정치력은 피해자들에게 한 푼이라도 더 배상금이 돌아가게 만들었다. 흔히 우리가 정치 혐오에 빠져 놓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사후 처리 과정 속에 파산관재인이었던 아베 사부로 변호사와 일본 정부와 언론 등이 합작한 반격은 옴진리교를 끝까지 옭아매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이 과정 속에 우리가 생각해야 할 수많은 것들을 던져준다. 후속 단체의 활동이나 그 자산들에게까지 생각이 다다른 것은 우리가 배워야할 부분이다. “길고 지루하고 촘촘하고 세밀한, 그리고 결코 멈추지 않는 반격” 말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아무리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철저하게 진상을 밝혀내 책임을 지워야 할 개인과 단체에게는 무거운 법적 책임과 정치적인 책임, 사회적인 책임을 지게 해야 한다.”와 “사회 내부에서 갈등과 반목을 조장하고 방치한 자들에게 엄격한 책임을 지게 하는 것으로 이런 시도의 재발을 막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때 ‘이 문제’는 세월호 사건이지만 이것은 우리 사회에 팽배해 있는 안전 불감증과 후속 대처 방안 미비를 개선하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들이다. 친일부터 시작해서 과거를 파헤치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하는 이들에게 이런 철저한 조사와 책임 지우기는 한 사회의 발전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방송에 나왔지만 생략된 몇 가지 에피소드는 분량 탓인지, 이야기의 전개 상 핵심이 아닌 탓인지 모르겠지만 조금 아쉽다. 그리고 열심히 들었던 방송에서 내가 놓친 부분들이 곳곳에 보여 새롭게 인식하게 되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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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년 2 - 1916-1920 3·1혁명과 대한민국임시정부 (박시백의 일제강점기 역사만화) 35년 시리즈 2
박시백 글.그림 / 비아북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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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35년의 역사를 다룬 박시백 화백의 <35년> 2권이다. 1권을 읽지 않고 2권부터 읽었지만 이해하는데 큰 무리는 없었다.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을 다루고 있기에 많은 부분이 낯익었다. 하지만 풍부한 자료를 바탕으로 한 시대를 그려낸 이 만화는 낯익음을 넘어선 섬세함이 곳곳에 담겨 있다. 학창 시절 배운 단순한 역사를 넘어선 풍성한 사료는 내가 기존에 읽었던 역사서 등과 맞닿아 있으면서 더 확장되어 있다. 그래서 곳곳에서 낯선 이름과 낯선 활동 등이 눈에 들어온다. 물론 이 낯섦 대부분은 최근 역사의 흐름을 제대로 따라가지 못한 나의 무지가 큰 역할을 한다.

 

이제는 일제강점기와 35년이란 단어를 사용하지만 한때는 다른 단어를 사용했었다. 일제 36년이란 용어였다. 35년이냐, 36년이냐 하는 것도 한때 문제가 된 적이 있는데 이제 이런 용어들이 정리된 모양이다. 일제강점기란 단어도 낯익어진 것도 황교익이 방송에서 자주 말했기 때문이다. 이런 것을 보면 내가 상당히 연식이 되기는 된 모양이다. 동시에 최근 역사 용어에 대한 무식이 그대로 드러난 것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알고 있던 단어가 머릿속에서 나도 모르는 사이 낯선 단어로 다가온 것인지도. 한국 근현대사에 대한 독서가 최근에 거의 없었던 것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1916년부터 1920년까지 시대를 다루지만 가장 중요한 사안은 두 가지다. 하나는 3.1혁명이고, 다른 하나는 대한민국임시정부다. 이제는 3.1혁명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모양인데 이전에는 3.1운동이었다. 만세운동의 성격만 부각시킨 교과서를 배웠던 세대라 혁명이란 단어가 낯설다. 이 3.1운동을 아주 중요하게 다루었지만 어느 부분에서는 너무 과장되게 표현했는데 이 책에서는 그 시대의 상황과 함께 아주 냉정하게 그려내었다. 물론 과장된 부분은 이 3.1만세운동에 대한 세계 각국의 반응이었다. 그 시대가 아직 식민지 시대였음을 감안하면 제국 열강들에게 이 운동은 우리가 세계 뉴스에서 본 작은 독립운동 정도에도 미치지 못한다.

 

윌슨의 민족자결주의에 대한 의도를 이전에 다른 책에서 읽었다. 하지만 그 시대 조선의 지식인들은 아직 완전히 그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던 시절이었다. 그래도 이것은 하나의 좋은 시발점이었다. 만세운동이 혁명으로, 해외로 번져가는 과정을 보여준 장면들은 기존의 인식을 깨트리기에 충분했다. 한계가 분명한 운동이 다른 활동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물 중 하나가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출범이었다. 최근 임시정부를 두고 벌어지는 몇 가지 논쟁은 아직 다루고 있지 않은데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다시 한 번 돌아보고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

 

임시정부를 세우고, 기존의 세력을 통합하려는 노력 등에는 아주 많은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 이 이해관계를 작가는 간결하면서도 세부적인 부분을 놓치지 않고 만화 속에 풀어낸다. 안창호의 퇴진을 둘러싼 평가 속에서 작은 말 하나로 현실 인식을 보여주는 부분은 이 시대의 사료들을 제대로 읽고 소화하지 못하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나의 흐름 속에서 꼭 필요한 사건들과 인물만 뽑아서 풀어내고, 작은 것도 놓치지 않으려는 시도는 이 책 한 권이 다른 공부의 작은 시작임을 알려준다. 연해주 지역과 조선공산당을 본격적으로 다룬 것은 다른 통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참고문헌을 간단하게 읽으면서 내가 읽었던 책이 거의 없는 것을 보고 작은 열의를 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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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문장
에도가와 란포 지음, 주자덕 옮김 / 아프로스미디어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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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케치 코고로 시리즈다. 장편인데 그렇게 분량에 많은 편은 아니다. 대부분 란포의 소설은 단편으로 읽었다. 예전에 읽었던 것들 대부분이 그렇다. 물론 동서에서 나온 <외딴섬 악마>는 별도다. 사실 이 작가의 작품을 체계적으로 읽은 적이 없다 보니 기존 출간물 중 중복해서 읽은 단편도 꽤 많다. 이번 소설을 읽으면서도 잠시 읽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생각은 책을 끝까지 읽은 다음에도 유지되었다. 왜냐고? 그것은 이 소설에서 사용된 트릭을 생각보다 빨리 파악했고, 낯익은 설정이기 때문이다. 추리소설을 자주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기존 추리소설의 트릭 등과 비교하게 된다. 내가 자주 트릭을 금방 간파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법의학계의 권위자 겸 명탐정인 무나카타 류이치로 박사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의 조수가 힘겹게 도착한 후 하나의 지문을 남긴 후 죽는다. 독살이다. 그런데 이 지문이 상당히 특이하다. 3중 소용돌이 지문으로 악마의 모습과 닮았다. 이 지문이 소설 속에서는 살인자의 도장처럼 사용된다. 사건 현장에 항상 그 지문이 찍혀 있다. 현재 한국이라면 이 지문만으로 범인을 잡을 수 있겠지만 일본은 한국처럼 지문 등록 제도가 없다. 이 소설이 나왔을 당시는 한국도 물론 없었다. 이 괴이한 지문은 어느 순간 불길함의 표시이자 공포의 대상이 된다. 그리고 나중에는 하나의 중요한 단서가 된다.

 

무나카타 박사는 아케치 코고로와 함께 명탐정으로 불린다. 기업가 가와테 쇼타로의 의뢰를 받은 것도 그 때문이다. 물론 이 당시에는 아케치 코고로가 한국으로 사건 조사하러 간 상태였다. 한국이란 지명은 번역하는 도중에 바뀐 듯한데 아마 원문에는 조선일 것이다. 출간된 것이 해방 전이란 것을 감안하면 말이다. 이 한국이란 단어가 묘하게 시대상을 왜곡한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다. 그리고 이 무나카타 박사의 활약은 언제나 한 발 늦다. 우리의 김전일도 그렇듯이. 여기에 이 사건 전체를 기이하고 묘하게 만드는 역할도 담당한다. 언제 넣었는지 모르는 편지나, 언제 찍었는지 모르는 지문 등과 함께 범인의 정체를 더욱 모호하게 만든다. 물론 이 때문에 내가 범인을 파악할 수 있었지만.

 

이 소설을 읽으면서 살인에 대해서 ‘혹시’라고 생각했던 것들은 금방 사라진다. 일말의 주저함도 없다. 가와테 쇼타로의 두 딸이 죽게 되는 과정은 나오지 않지만 그들의 시체가 대중에게 알려지는 장면들은 순간의 망설임도 허용하지 않는다. 무나카타 박사가 단서를 좇아가는 그곳에서 최악의 모습으로 발견된다. 이 잔혹한 장면을 보면서 처음에는 약간 적응이 되지 않았다. 최근에 이런 납치 살인을 다룬 소설에서 조금의 가능성을 남겨둔 것을 읽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란포는 빠르게 이 시체를 보여주면서 다른 가능성도 같이 없애버린다. 이 두 딸의 자작극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 같은 것 말이다. 그리고 신출귀몰한 범인을 등장시켜 일반적인 과학 수사의 한계를 뛰어넘어버린다.

 

추리소설의 특성 상 과학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없다. 과학을 뛰어넘은 마법이 펼쳐진다고 해도 그 한계는 설정해놓아야 말이 된다. 이런 관점으로 본다면 무나카타 박사가 만난 기이하고 괴이한 수법들은 과학의 범주를 벗어난 것 같다. 아니면 그 뒤에 또 다른 트릭이 숨어있거나. 읽으면서 가능성을 지워나갔고, 간결했던 살인에 비해 조금 긴 범인의 설명은 사건을 다른 시각에서 돌아보게 만들었다. 아케치 코고로가 이 사건을 해결한 방식도 제3자의 시각에서 봤기 때문일 것이다. 당사자가 아니고, 시간이 지난 후 기록을 통해 다른 시각에서 본다는 것은 아주 큰 장점이다. 그리고 마지막 하나의 장치까지 곁들여진다면 사건 해결이다. 하지만 아쉬움도 있다. 그것을 말하면 스포일러이니까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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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렌의 참회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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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이력을 제대로 보지 않다가 반가운 소설 한 권을 발견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본문에서 알려준 것이다. 오래전에 읽었던 <살인마 잭의 고백>이다. 최근작들을 보니 아는 제목들이 꽤 있다. 역자 후기를 보니 엄청난 다작을 내놓고 있는데 어느 수준 이상을 유지하고 있는 모양이다. 다작하면 일본 작가 몇 명이 먼저 머릿속을 스쳐지나가는데 결코 좋은 평가만 내릴 수 없다. 아마 이 작가의 작품이 더 많이 팔리고, 더 많이 번역된다면 개인적 평가도 바뀔 것이다. 하지만 지금만 놓고 보면 좋은 작품들이 더 눈에 들어온다.

 

다른 작품들을 거의 읽지 않아 작가의 작품 속 세계가 연결되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살인마 잭의 고백>은 전편에 해당한다. 후속작이라고 하기에는 그렇지만 하나의 중요한 등장 요소 중 하나였던 방송국 프로그램과 그 속에 소속된 보도기자가 주인공이다. 데이토 TV의 간판 보도 프로그램 [애프터 JAPAN]은 <살인마 잭의 고백>의 방송 때문에 방송윤리위원회의 권고를 받은 상태다. 이 권고 사항을 알려주는 이야기로 시작하여 보도 기자 다카미와 사토야의 활약이 펼쳐진다. 특종에 목매는 기자와 방송국의 이면을 보여주면서 언론 보도의 명암을 하나씩 파고든다.

 

현재 시청률이 가장 우선인 방송국의 현실은 보도 기자들이 충분한 시간을 두고 사건을 쫓을 기회를 박탈한다. 정확한 보도보다 선정적이라도 시청률이 더 좋은 방송이 우선이다. 2년차 여기자 다카미가 베테랑 사토야와 함께 경찰청에서 납치 사건을 취재하는 과정은 이런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처음에는 보도 협정으로 문제가 불거지고, 다음은 시청률이란 거미줄에 걸린 PD의 방송으로 인한 대오보로 이어진다. 이 과장 속에 이전에 있었던 문제들이 다시 반복되는데 특종과 과시욕이 이것을 더 부채질한다. 이 과정 속에서 가장 냉정한 판단을 하는 인물이 사토야지만 월급쟁이 한계를 그는 결코 벗어나려고 하지 않는다.

 

한 여고생이 납치되었고, 결국 시체로 발견된다. 유력한 용의자라고 방송한 아이들 중 한 명은 자살을 시도하고, 취재의 열기는 더 높아진다. 이 과정에서 보여주는 언론의 모습은 최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알 권리라는 말 속에 담긴 진짜 속내는 특종과 시청률 등으로 대표되는 욕망들이다. 이런 욕망의 발전 과정을 보여주는 인물이 다카미다. 여동생이 자살한 후 제대로 된 언론이 되어 진실을 파헤치겠다고 하지만 어느 순간 자신도 그들과 다를 바 없는 한 명의 기성인이 되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가 “세상에서 제일 잔인하고 악독한 게 TV와 신문, 주간지라고요.”라고 말하는 것과 그녀를 처음 보자마자 기자란 사실을 알았다는 것에서 이것이 드러난다. “언론 일이라는 게 그렇게 대단해요?”라고 물을 때는 우리가 미화하고 과장해온 언론의 본질을 다시금 되돌아보게 된다.

 

여고생의 죽음을 다루다 보니 학교 문제와 청소년 범죄를 간단하게 말하지 않고 지나갈 수 없다. “희생된 학생과 유족의 비탄에는 일절 귀 기울이지 않고 끊임없이 자기 자신과 학교의 보신만을 위해 내달리는 모습은, 교육자라기보다 상사의 지시에 따라 사고를 진화하기에만 급급한 회사원으로 보였다.”와 “소년 범죄는 잔혹성을 차지하고 발생 건수 자체로 보면 전후로 거의 변동이 없다.”란 말들은 우리 사회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교육계의 문제는 이미 다른 책에서 잘 다루었으니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고, 소년 범죄의 경우는 그 잔혹성에 초점을 맞추면서 전체를 호도하는 분위기다. 교묘하게 건수가 아주 많이 늘어난 것처럼 보도하고 있다.

 

언론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언론 환경을 그대로 보여주는데 결론은 아직은 언론인이 필요하다는 쪽이다. 경찰과 언론의 공통점과 다른 점을 말하면서 그 지위를 어느 정도 올려놓았지만 탐사 보도의 영역이 아닌 경우라면 그 필요성을 그렇게 느끼지 못한다. 자신들이 저지른 실수와 오보에 대해 진정성 있는 방송 한 번 내보지 않고 있는 현실과 그 오보로 인한 피해자들이 겪는 아픔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는 법조계의 모습이 겹쳐진다. 언제부터 알 권리가 인권보다 우선하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치열한 취재 경쟁과 그 속에 담긴 비열한 욕망은 국민의 알 권리를 이용한 것 이상으로 보기 힘들다. 기레기란 단어가 나오게 된 것도 이 연장선일 것이다. 마지막 반전을 보여주지만 사실 이 반전이 그렇게 강렬하게 와 닿지 않는다. 그보다 힘겨운 일상 속 삶에서 비롯한 작은 실수와 악의가 더 눈에 들어온다. 부모이기에 할 수 있는 말들이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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