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잘 먹겠습니다 1~2 세트 - 전2권 여행, 잘 먹겠습니다
신예희 지음 / 이덴슬리벨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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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을 때는 몰랐는데 다른 분의 서평과 검색을 통해 <여행자의 밥>의 개정판이란 사실을 알았다. 보통의 여행기라면 그냥 ‘그랬구나’ 할 수도 있지만 음식 여행기이다 보니 조금 신경이 쓰인다. 초판이 나온 2014년과 지금의 차이가 결코 적지 않기 때문이다. 해외의 경우는 그렇게 큰 차이가 나지 않을지 모르지만 한국의 상황은 하루가 다르게 바뀌지 않는가. 그런 점에서 아주 반가웠던 국내편은 좀 더 많은 검색이 필요하다. 그곳들이 너무 많이 바뀌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지역들의 환경이 크게 바뀌지는 않았을 것이다. 최근 방송 음식 프로그램에서 많이 다루어진 것도 감안해야 할 부분이다.

 

해외편과 국내편으로 이루어진 이 두 권은 낯설음과 낯익음을 동시에 준다. 해외편에서 다룬 네 나라의 음식이 이제 그렇게 낯설지 않고, 국내편에서 다룬 지역들은 너무나도 많이 매체에서 다루었기 때문이다. 물론 해외 현지의 풍경과 삶은 아직도 낯설다. 얼마 전 다녀온 해외여행에서도 이 익숙함과 낯설음을 동시에 경험하지 않았던가. 어딘가에서 본 듯한 삶의 풍경은 다른 여행지에서 본 덕분일 것이다. 얼핏 지나가듯이 볼 수밖에 없는 단기여행은 각 도시와 국가의 차이를 깨닫기에 충분한 시간이 아니다. 걸어서 동네 한 바퀴를 돌면 다른 삶이 보이지만 이 또한 피상적인 감상일 뿐이다. 하지만 이 책처럼 음식만 열심히 쫓아다닌다면 어떨까?

 

불가리아에서 시작하여 벨리즈로 끝나는 해외편은 꽤 많은 기억을 들추었다. 이 네 나라 모두 가본 적이 없는데도 말이다. 불가리아는 요구르트, 신장 위구르는 양고기, 한때 영국령 온두라스였던 벨리즈는 하바네로 때문일 것이다. 말레이시아는 호커 센터 때문이다. 이 음식들이 한국에 들어오거나 그 근처 국가를 여행하면서 경험한 것이 기억속에 쌓여 있다가 책을 통해 하나씩 떠올랐다. 그리고 그 사이에 수많은 방송을 통해 이 나라와 비슷한 국가들의 음식과 문화를 봤지 않은가. 하지만 이런 기억들은 열심히 먹고 다닌 저자의 깊은 공력 앞에 쉽게 허물어졌다. 더불어 나의 식욕을 마구마구 부채질했다.

 

여행기를 읽으면서 불가리아는 한 번도 생각한 적이 없는 여행지다. 그런데 이 책을 읽은 후 먹기 위해 떠나고 싶었다. 얼마 전 읽은 책 속 소피아가 떠오르면서 이 욕구는 더 커졌다. 터키와 함께 여행한다면 더 좋을 듯한데 현실적으로 시간이 부족하다. 최근 방송에서 먹방으로 떠나는 신장위구르는 나의 상상력이 잘못되었음을 알려준다. 낭에 붙은 시멘트나 딱딱함의 정도가 보는 것 이상인 것 같다. 몽고나 신장 지역을 다룬 여행 방송에서 본 것들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가면서 나의 여행은 결코 이런 식으로 흘러가지 못할 것이란 아쉬움을 느꼈다. 마나님이 허락해줄 리가 없기 때문이다. 터키에서 양고기를 2주 정도 먹고 질렸다는 회사 동료의 이야기도 잠깐 스쳐갔다. 어린 양만 먹는 것이 아니라면 그럴지도.

 

말레이시아는 한때 쿠알라룸푸르에 관심을 둔 적이 있다. 싱가포르와 함께 갔다오는 일정이었다. 싱가포르는 다녀왔지만 쿠알라룸푸르는 못 갔는데 이 책을 보면서 다시 한 번 더 관심이 불탔다. 그리고 락사에 대한 나쁜 기억이 있는데 얼마전 방송한 <짠내투어>를 보고 나의 입맛이 보통 사람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저자가 락사 맛이 두 가지 있다고 했는데 먹어보지 못한 다른 맛에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살짝 생겼다. 벨리즈의 음식은 그렇게 다양하지 않지만 그 고열량 음식에 한 번은 도전하고 싶다. 한때 이런 음식을 아주 좋아했던 적이 있기에 더욱 그렇다. 새로운 정보 하나를 더 얻었는데 그것은 메노나이트다. 한 신부(메노 시몬스)의 신념을 따르는 이들이 전 세계에 생각보다 많다는 사실에 놀란다.

 

해외편이 가보지 못한 나라들이라면 국내편은 늘 다녔던 곳과 한 번은 스쳐지나간 곳들이다. 물론 내가 한참 다닐 때는 그곳들은 아직 지금처럼 유명해지기 전이다. 개인적으로 방송을 보고 가장 가고 싶었던 곳은 가리봉동 연변 거리다. 지리적 위치 탓에 쉽게 가지 못한 곳인데 올해는 도전하고 싶다. 인천 차이나타운은 자주 가는 곳이고, 이태원은 다른 곳만 다녔다. 건대는 지금처럼 뜨기 전에 잠시 맛을 보았고, 광희동과 창신동은 이제 그냥 지나가는 곳이 되었다. 예전에 알았다면 혼자 열심히 돌아다녔을 텐데. 중국집하면 쉽게 인천 차이나타운을 떠올리는데 명동 중국대사관 근처를 잊고 있었다는 사실에 스스로 놀란다. 혜화동 필리핀 벼룩시장은 어딘가에서 본 듯하고, 주한 필리핀인들이 매주 모인다는 사실을 듣고도 잊고 있었다. 먹방 때문에 관심이 생긴 안산 다문화 거리와 시흥 정왕시장은 주말 나들이용으로 한 번 다녀오고 싶다. 현실적으로 해외편보다 국내편이 더 친숙하고 알기 쉬운 것은 지리적인 가까움과 언제든지 갈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 아닐까. 지금 이 기분과 음식 욕심이 조금 더 오래 간다면 몇 곳은 올해 중에 다녀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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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탈리아 인문 기행 나의 인문 기행
서경식 지음, 최재혁 옮김 / 반비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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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기억이 맞다면 두 번째로 만나는 서경식의 책이다. 물론 읽지 않고 소장하고 있는 책은 이보다 더 많다. 지난 번에 읽었던 책은 서양음악이었는데 그가 풀어낸 이야기는 문외한인 나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하루키나 다른 작가의 글 속에서 가끔 보았던 음악 이야기를 이렇게 멋지게 풀어낼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란 것이다. 그 후 하루키의 음악 이야기를 읽으면서 내가 알고 있던 세계의 다른 부분을 엿보았다. 이 경험이 아직 나를 서양음악으로 이끌지는 못했지만 하나의 시장, 문화,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과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금 느꼈다. 그리고 이번 책을 통해 내가 알고 있는 이탈리아 문학 등이 얼마나 얕은지 알게 되었다.

 

이탈리아와 서경식이란 단어를 연결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름은 프리모 레비다. 그가 쓴 책 <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 때문이다. 아직 읽지 않았는데 책장에 꽃힌 책을 볼 때마다 읽어야지 다짐을 하게 된다. 뭐 10년이나 된 결심이다. 이렇게 밀린 책들의 거대한 탑을 생각하면 신간엔 눈길도 주지 말아야 하는데 왠 책 욕심은. 이 책 때문에 이번 책에서 그가 다시 만나게 된 프리모 레비가 어떻게 다가올지 궁금했다. 읽지도 않아 비교가 불가능하다는 생각은 그 당시에 하지 못했다. 다만 내가 읽었던 단 한 권의 레비 책 <이것이 인간인가>와 비교할 뿐이다. 그 무거움과 작은 희망과 새로운 사실들은 아우슈비츠를 다른 시각에서 보게 했다.

 

인문 기행이란 단어가 들어간 제목처럼 한 편의 기행문이다. 그가 거쳐간 도시들과 그 도시 속 미술, 음악, 문학 등을 차분히 풀어내는데 현재뿐만 아니라 과거의 자신과도 대조, 비교한다. 첫 방문이 아니기에 그때 놓친 것을 다시 보거나 그 당시 본 것을 새롭게 인식하는 과정을 거친다. 긴 시간이 흐른 후 삶 속에서 배운 것들은 같은 작품이라도 다른 시각에서 보게 만들거나 더 깊은 곳까지 사유가 뻗어나간다. 이것은 같은 것을 보아도 그때의 감정이나 상황 등에 따라 바뀔 수 있다는 의미다. 여기에 또 하나 덧붙여야 할 것은 저자의 체력이다. 60이 훨씬 넘은 나이는 열정만으로 모든 것을 한 번에 둘러볼 수 없게 한다. 나이에 맞는 속도가 있다. 글 속에서 자주 보이는 대목이다.

 

프리모 레비가 가장 궁금했지만 이 기행은 인문이란 단어가 붙어 있는 것처럼 다양한 이탈리아 문화 등이 녹아 있다. 로마에서 카라바조의 미술을 설명할 때 예전에 본 그림과 해석이 떠오르면서 조금 다른 부분이 눈에 들어왔다. 미켈란젤로를 설명할 때 생략된 부분들이 궁금했고, 이 위대한 화가의 작품 중 일부만 그의 해설을 듣는다는 사실이 아쉬웠다. 아마 이 부분은 저자의 다른 책을 통해 채워야할 것 같다. 그리고 조금 낯선 이름들이 보이는데 언제나 이들이 나의 인식 세계를 확장시켜준다. 잔 에뷔테른, 조르조 모란디, 마리노 마리니 등이 대표적이다. 일본까지 확장하면 더욱 넓고 많아진다. 욕심만 자꾸 커지면서 제대로 배우지 못하는 것이 많아지는 것은 경계해야 할 부분이다.

 

흔히 잘 인식하지 못하는 역사의 사실 중 하나가 이탈리아 파르티잔들이다. 이 부분은 번역된 책의 양이나 질 등에서 프랑스 등에 비해 월등히 적은 것과 2차대전 당시 추축국이었던 사실 때문일 것이다. 길다란 이탈리아 남북의 문제를 2차 대전의 종결과 함께 풀어낸 간략한 문장은 제3의 입장에서는 명쾌하지만 당사자들은 논란의 여지가 있을 듯하다. 더 많은 자료와 함께 공부가 필요한 대목이다. 그리고 이 파르티잔들이 과거의 여행 속에서 현재를 어떻게 살고 있는지 보여줄 때 강한 울림을 전달해주었다. 거창한 구호나 반대급부를 바라지 않는 그들이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책 한 권이 궁금했는데 2년 전에 번역되었다. 나탈리아 긴츠부르그의 <가족어 사전>이다. 이유는 저자가 가장 재밌게 읽은 책 10권 한 권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위대한 이탈리아 문화를 이 책을 통해 만나면서 언젠가 가게 될 이탈리아 여행의 몇 가지 부분이 조금 바뀌었다. 단순히 동계 올림픽 개최지로 알던 토리노 등이 새롭게 인식되었다. 쇼핑만 생각했던 밀라노도 마찬가지다. 볼로냐는 또 어떤가. 몇 개의 관광지와 몇 개의 미술관 등으로만 인식했던 이탈리아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 것이다. 이것은 내가 이탈리아 작가와 문화를 더 공부하면 할수록 더 많아질 것이다. 저자가 미켈란젤로에게 선입견을 가진 것처럼 나도 이탈리아에 대해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다. 이 인문 기행과 같은 폭 넓고 깊이 있는 여행은 힘들겠지만 언젠가 다른 시선으로 이 나라를 돌아볼 날이 오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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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은 - 떠나올 때 우리가 원했던 것
정은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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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름카메라로 찍고, 만년필로 스케치하는 여행자의 글과 사진과 그림이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당연히 만년필로 그린 그림이고, 다음은 사진이다. 마지막으로 한 자 한 자 천천히 읽게 되는 글은 잘 정제되어 있다. 이 정제된 글은 차분하고 깊은 사유가 담겨 있다. 가끔 그 당시의 흥분이나 기분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아주 열정적으로 드러나지는 않는다. 만약 누군가가 이 책에서 여행안내서 같은 것을 기대했다면 크게 실망할 것이다. 하지만 그가 적은 간단한 단상과 몇 장의 사진과 그림은 여행안내서보다 훨씬 강한 인상을 남기면서 우리를 유혹한다.

 

팟캐스트에서 그림이 여행을 좀더 세밀하게 보는 역할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디지털카메라가 사진을 남발하면서 휙휙 스쳐지나가게 한다면 필름카메라는 셔트를 누르는데 좀더 신중할 수밖에 없다. 그림은 그 풍경을 좀더 오랫동안 들여다보게 한다. 자신만의 그림으로 그린다고 해도 그 풍경을 세밀하게 들여다볼 수밖에 없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감탄했던 부분도 바로 이런 디테일이다. 선 하나 하나와 전화번호까지 그려진 그 그림은 정말 강한 인상을 남긴다. 아니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여행의 속도와 함께 관점도 이제 우리가 한 번 생각해봐야 할 부분이다.

 

한 장씩 넘기면서 가장 먼저 느낀 감정은 부러움이었다. 사진과 글과 그림은 재능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가 다닌 수많은 나라와 도시들은 열정과 노력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언제나 여행의 갈증을 지닌 나에게 ‘나는 언제나 가려나?’와 ‘가고 싶다’는 감정을 불러왔다. 이런 감정들은 언제나 여행 에세이를 읽을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이번에는 유럽과 미대륙과 아시아 등지를 돌아다닌 기록들이 한꺼번에 와 닿으면서 조금 더 늘었다. 특히 가까운 일본을 이렇게 디테일하게 들여다보았다는 것에서 이전에 읽은 에세이들과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동시에 가까운 일본이라도 한 번 더 가보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가 여행지에서 느낀 단상들은 정제된 문장으로 하나씩 풀려나온다. 화려하고 바쁘고 예쁘고 멋진 것만 추구하지 않고 느리고 게으른 것을 조용히 들여다보는 여유가 있다. 자신이 여행자임을 인식하고, 그것을 즐길 때 그 여행은 좀더 여유가 생긴다. 여행자는 생활자와 다른 행동과 시선을 가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생활자의 옷을 입기 위해서는 그들의 삶속으로 들어가 시선과 속도를 맞춰야 한다. 이것은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인지 그가 찍고 그린 일본의 풍경은 낯설면서 동시에 낯익다. 낯선 것은 높이와 시야이고, 낯익은 것은 방송 등을 통해 본 그 장면이다.

 

책을 다 읽고 다시 대충 넘겨보면서 그 단상들에 고개를 끄덕인다. 이미 다른 책에서 읽은 것도 보이고, 다른 사람을 통해 들은 말도 있지만 그가 느낀 여행은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각 지역에 얽힌 간단한 에피소드도 나오고, 그가 발견한 소소한 장면들도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함께 나온 서울의 모습은 반갑고 낯익었다. 그의 작업실 풍경은 한때 나도 저런 공간을 가지고 싶어 했었던 모습이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사진과 그림과 글이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가 잘못 이해한 것이 아니라면. 방송 출연을 둘러싼 에피소드는 웃음이 나오지만 방송작가들의 고된 일들이 더 눈에 들어왔다. 아마 주변에 이 일을 한 사람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곁에 있는 동반자의 존재는 읽는 내내 이 커플을 부러워하게 만들었다. 같은 감정과 느낌을 공유한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 알기 때문이다. 그 길고 많은 여행을 함께 했다는 사실에 또 한 번 부러웠다. 그리고 해외여행만 다루고 있지 않아서 반가웠다. 아니 우리 주변을 둘러보고, 그곳을 기록할 때 내 삶이 여행의 한 부분임을 다시 깨닫는다. 정제된 문장 속에 담긴 수많은 사유와 이야기들은 한 번에 다 읽은 후 다시 넘겨보면 새롭게 다가오는 문장들이 꽤 많다. 결론을 말하면 글을 잘 쓴다. 그림도 잘 그린다. 여행도 많이 다녔다. 부럽다. 그래도 나의 삶은 또 다른 곳을 여행하는 중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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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꺾어 집으로 돌아오다
한승원 지음, 김선두 그림 / 불광출판사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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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원의 글을 오랜만에 읽는다. 한국문학의 거목이라고 하지만 개인적으로 그의 글과 나의 독서 취향은 잘 맞지 않았다. 한창 한국문학을 읽을 때도 우선순위에서 항상 뒤로 밀렸다. 그가 한창 활동할 시기에 나의 시선은 다른 작가로 향해 있었다. 가장 최근이라고 하면 동학농민혁명의 수장 전봉준을 다룬 <겨울잠, 봄꿈>이다. 이 작품도 작가 이름으로 검색하고 나서야 깨달았다. 언제나 말하는 나의 저질 기억력 탓이다. 그리고 그 이후로도 매년 작품이 나온 것을 본다. 이 산문집에서 말한 것처럼 왕성한 집필활동을 한 것이다.

 

고향 장흥으로 내려가 토굴을 짓고 살면서 글을 쓰고 있다. 토굴이란 단어 때문에 진짜 토굴을 떠올렸는데 자신이 지은 집을 토굴이라고 부를 뿐이다. 집에 대한 설명을 보면 그렇게 화려한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이 장흥 생활이 그에게 많은 준 것은 분명한 것 같다. 그가 쓴 글 속에서 이 토굴은 빠짐없이 나온다. 그 앞바다와 하늘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고 광오하게 외치고, 자신과의 대결에 온 힘을 기울인다. 그 결과가 매년 내는 소설과 시와 수많은 독서다. 재밌는 것은 시력이 나빠지면서 이제 글을 쓸 때 글자 크기를 15로 한다는 것이다. 책도 1시간을 연속해서 읽지 못할 정도다. 그럼에도 글쓰기와 독서를 멈추지 않고 있다. 대단한 열정과 의지다.

 

그의 이력을 보면 굵직한 문학상을 여러 차례 수상했다. 하지만 대표작은 영화 때문에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아제 아제 바라아제>를 제외하면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작품 목록을 살펴보면 낯익은 제목들이 눈에 들어오지만 크게 성공한 작품은 드물다. 이것은 그의 딸 한강이 맨부커상을 수상하면서 더 유명해진 것과도 닮아 보인다. 개인적으로 나의 취향은 한강이다. 한강의 초기 장편은 한국문학에 질려 있던 나에게 다시 한국문학을 기대하게 만든 작품들 중 하나다. 그 후에 나온 장편들도 모두 좋았다. 맨부커상을 받은 <채식주의자>는 사 놓은지 오래 되었는데도 왠지 손이 가질 않는다. 언제 이 두 사람의 단편을 비교해서 읽어도 재밌을 것 같다.

 

원효, 초의, 추사 등은 모두 작가가 소설로 쓴 인물들이다. 그가 이 산문집에서 가장 많이 호명하는 이름들도 바로 이들이다. 유마 거사도 빼놓을 수 없다. 이들이 말한 것과 행동은 책 속에서 반복해서 나온다. 특히 유마 거사의 불가사의 해탈과 불이론은 아주 강조되고 있다. 추사의 <불이선란>과 같은 의미로 해석할 때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의문이 생기기도 했다. 그리고 성철 스님의 고사를 이야기할 때 예전에 읽었던 에피소드가 똑같이 나오는 것을 보고 스님의 행적이 어떠했는지 떠올릴 수 있었다. 법정 스님과 김수환 추기경을 존경하는 마음은 나에게도 깊이 전해졌다.

 

한 명의 소설가이자 시인이 자신의 삶을, 문학의 발자취를 기록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대충 지나가듯 쓴다면 가능할 수 있지만 지속적으로 쓴다는 것은 열정과 의지가 동반되어야 한다. 책을 읽고, 자연을 관찰하고, 자신과 세계를 들여다보는 행위 그 자체가 지속적인 노력을 요구한다. 이것을 그는 노년에도 꾸준히 하고 있다. 그리고 가끔 그가 한 명의 남자임을 보여주는 문장을 보면서 몸은 늙어도 마음은 아직 노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이 산문집은 그의 삶을 조금씩 녹여내었다. 과거와 현재를 차분하게 담고 있다. 개인적으로 한강 이야기가 나왔으면 했는데 어릴 때 가족 사진 한 장을 제외하면 그녀가 했다는 말 이외는 찾아보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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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따르지 말고 마음의 주인이 되어라 - 법정의 산중 편지
법정 지음, 박성직 엮음 / 책읽는섬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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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스님이 사촌동생 박성직에게 보낸 편지를 엮어서 내놓은 책이다. 기간은 1955년부터 1970년까지이고, 편지는 50여 통에 이른다. 출가하면서 보낸 편지와 출가 중에 쓴 편지들이라 법정 스님의 초기 모습이 아주 잘 드러난다. <무소유>란 희대의 작품을 낸 법정 스님이 초기에 얼마나 많은 독서에 욕심을 내었는지 알 수 있고, 속세의 인연을 단숨에 끊어내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그의 편지 속에서 절절히 느낄 수 있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박성직이 쓴 답장이 있었다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것이다.

 

법정 스님이 돌아가실 때 자신의 저작들을 더 이상 출간하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그의 말과 글과 영향은 그의 곁에 있던 사람들을 통해 한 권씩 책으로 묶여 나오고 있다. 아니면 이 책처럼 편지 모음과 그의 글 인용 등으로 사용된다. 개인적으로 이런 편법을 좋아하지 않지만 그가 우리 시대에 남긴 영향력을 감안하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아마 이 말도 다른 책에서 한 번은 쓴 적이 있다. 한때 그의 유언에 따라 절판될 것이란 이유 때문에 정가보다 훨씬 비싸게 거래되었던 과거를 생각하면 계속 나오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 시간이 지나 저작권이 소멸되면 또 누군가가 출간할 것이 분명하기에 더욱 그렇다.

 

이전에는 잘 몰랐는데 이번 편지를 읽으면서 글들이 상당히 문학적이라고 느꼈다. 비유와 은유 등으로 표현된 문장들은 어떻게 그가 그렇게 뛰어난 수필들을 쓰게 되었는지 알 수 있었다. 학문과 문학 등에 대한 열정과 탐구열은 그가 요청한 책들에서 잘 드러난다. 사촌동생에게 열심히 공부할 것을 당부하면서 이런저런 책을 추천하는데 낯선 제목도 많이 보인다. 1950년대란 시대를 감안해야 하겠지만 관심이 생기는 책도 적지 않다. 그리고 가장 반가운 것은 스님의 인간적인 모습이다. 도반들에게 먹일 김을 잘 골라 보내달라는 요청이나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끊임없이 요청하는 모습은 보통의 인간과 다를 바 없다. 바로 거기에서 시작했기에 그의 글과 인품이 우리의 가슴으로 파고들었을 것이다.

 

사실 이 책에서 가장 끌렸던 문장은 책 제목이다. “마음에 따르지 말고 마음의 주인이 되어라.” 흔히 마음에 따라가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이 문장은 그 보다 한 발 더 나아간다. 내가 중심이 되지 않으면 마음은 이리저리 흔들거린다. 우리가 흔히 내 마음을 모르겠다고 할 때가 바로 이런 경우다. 이 이외에도 좋은 문장이 눈에 많이 들어온다. 우리가 그냥 무심코 보내는 시간 속에, 행동 속에 담긴 일상의 위대함을 보라고 말한다. 물론 그 시대의 상황이나 한계가 조금씩 엿보이는 부분도 있다. 하지만 잘 정제된 문장과 절제된 감정으로 이루어진 편지는 그 시대를 뛰어넘어 우리에게 다가온다.

 

법정 스님의 글을 많이 읽지 않았다. 아니 그분이 생존해 계실 때 그 유명한 <무소유>를 들고 다니다 술 먹은 날 택시에 놓고 내렸다. 그 이후 몇 권의 산문집을 사고 얻었지만 쉽게 손이 나가질 않았다. 그 당시는 이런 글을 좋아하지 않았던 시절이었기도 했다. 그러다 사후 원문이 아닌 이처럼 과거의 흔적들을 다룬 책들을 읽고 있는데 그때와 사뭇 다른 느낌이다. 법정이란 법명보다 박재철이란 청년의 모습이 더 많이 드러나는 이 책은 한 명의 불자로 다시 태어나는 과정이 얼마나 어려운지 잘 보여준다. 무소유란 단어를 보고 들을 때면 언제나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이 된 법정 스님이다. 동시에 너무 탐욕스러운 나의 삶들을 돌아보게 된다. 갑자기 예전에 쓴 편지들이 궁금해진다. 얼마나 조악했을지, 얼마나 솔직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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