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포의 장사법 - 그들은 어떻게 세월을 이기고 살아 있는 전설이 되었나
박찬일 지음, 노중훈 사진 / 인플루엔셜(주)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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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를 이어 수십 년간 특유의 맛과 인심으로 고객에게 사랑받아온 가게를 노포(老鋪)라고 한다. 이 책은 이 노포들을 둘러보고 인터뷰한 내용을 담고 있다. 저자의 전작 <백년식당>과도 맥이 맞닿아 있다. 아직 <백년식당>은 읽지 못했다. 사실 노포라고 하면 각 군소 도시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그 모두를 다루는 것이 현실 상 불가능하다. 저자가 중간에 말한 것처럼 방송에서 이런 집들과 맛집을 엮어서 다룬 곳이 한둘이 아니다. 최근에는 <수요미식회>가 다루는 식당이 늘어나면서 가보고 싶은 식당과 가기를 포기해야 식당들이 늘어났다. 방송에서 말한 것처럼 방영된 후 몇 개월은 손님으로 미어터지는 상황이다.

 

이 책에서 다루는 스물여덟 곳 중에서 내가 가본 곳은 딱 2곳이다. 을지면옥과 한일관이다. 하동관은 본점을 가보질 못했고 분점만 다닌다. 다른 노포들도 한두 번 갔을 수 있는데 그 당시는 식당 이름에 둔했을 때다. 현재 사는 곳이 서울이다보니 다른 지역의 노포에 갈 일이 거의 없다. 서울도 지역이 한정되어 있다. 한창 맛집을 돌아다닐 시기에 이 책을 보았다면 꽤 많은 곳을 돌아보았을 것이다. 한때는 한끼를 위해 아주 먼길을 마다하지 않았으니까. 재작년 제주도에 갔을 때 이런 행동을 해서 마눌님에게 얼마나 타박을 받았던가. 다시 간다면 또 그럴 가능성이 없지 않지만 먼곳으로 가게 되면 이런 식당들은 언제나 나를 유혹한다.

 

기세, 일품, 지속 등의 3부로 나누었는데 읽으면서 그 차이를 분명하게 느끼지 못했다. 아직 내공이 부족한 탓이다. 최소한 노포가 되려면 한 가지는 분명하다. 지속이다. 최소 30년 이상 된 집들인데 한국의 성장기와 맞물려 있다. 그 내막을 하나씩 알려줄 때 미화된 부분이 사라지고 민낯이 드러나는 순간도 있다.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가장 훌륭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현재와 과거의 영화나 명성에만 초점을 맞추었다면 그 식당의 단순한 홍보 그 이상이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노포 속에는 그 시간의 흐름만큼 그 지역과 지역민의 삶이 녹아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오롯이 작가의 공이다. 물론 인터뷰이의 진심도.

 

책을 읽다 보면 작가의 노포에 대한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존경과 더 오래 영업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가득하다. 하나의 식당이 한 동네에서 오랫동안 영업하기 위해서는 운도 따라야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초심을 잃지 않는 것이다. 고도성장기에 특별한 철학이 없어 보이는 집들도 보이지만 그 시간을 지나면서 나름의 철학들이 만들어진 것 같다. 자부심도 마찬가지다. 이익이 높아 자식들에게 물려주는 식당도 있지만 그 일이 힘들고 고되어 자신의 대에서 끝내려는 식당도 적지 않다. 팔판정육점의 어머니 마음을 조금은 이해한다. 몇 곳은 지금 운영하시는 분들이 돌아가시면 사라질 것 같아 보인다. 대를 이을 정도로 화려한 명성이나 매출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노포에서 주목할 부분 중 하나는 오랫동안 일하는 직원들이다. 오랫동안 다닌 식당에서 늘 보게 되는 직원들은 반갑다. 오랫동안 가지 못하다가 가서 그분들을 볼 때면 왜 이 식당들이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지 알 수 있다. 매끄럽고 신속한 서비스는 뜨내기로 가득한 식당들에 비할 바가 아니다. 그리고 저자가 여러 번 강조한 것처럼 그 식당의 맛을 유지하는 가장 중요한 자산이다. 태조감자탕처럼 가족 식당으로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면 오래된 직원이 있다는 것은 아주 큰 차이가 있다. 자주 시켜먹던 중국집의 짜장면 맛이 바뀌었을 때 주방장이 바뀐 것을 알 수 있듯이.

 

노포와 함께 관심을 끄는 것은 역시 산업이다. 식재료와 경제의 발전은 무심코 보고 지나갈 수 없다. 콩과 옥수수가 한국의 농축산업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아주 조금 알기에 그가 지적한 부분에 공감한다. 돼지와 닭이 우리의 식탁에 쉽게 올라오게 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시간의 흐름 속에 흔했던 음식 재료가 이제 귀해진 것은 어쩔 수 없는 시대의 변화다. 신일복집에서 그가 그 시절을 안타까워한 것에는 나도 공감한다. 지금 저렴하고 흔한 음식이 나중에는 또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다. 맛집을 생각하고 읽기 시작했지만 그 속에서 노포의 철학과 지난 시대를 살짝 엿본 것은 아주 큰 재미이자 소득이다. 이런 작업들이 좀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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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의 끝에서 개가 가르쳐 준 소중한 것
다키모리 고토 지음, 권남희 옮김 / 마리서사(마리書舍)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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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밑바닥에서 고양이가 가르쳐 준 소중한 것>의 속편 격이다. 속편이라고 하지 않은 것은 전편의 주인공 히로무가 등장하지만 그가 주인공이 아니라는 것과 작가 자신도 처음 의도한 것과 달리 이야기를 전개했기 때문이다. 전편을 읽지 않은 나이기에 사실 이 부분을 판단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작가의 말에서 작가가 쓴 내용이 없었다면 이런 사실도 몰랐을 것이다. 하지만 전편을 읽은 독자는 소년기의 히로무를 만나게 되어 반가울 것이고, 이 소설이 마음에 든 독자라면 전편에서 만나게 될 히로무의 삶을 기대할 것이다.

 

전체적으로 간결한 이야기에 눈시울을 적시는 내용들이 담겨 있다. 억지로 감동을 짜내는 과정이 없어 일단 읽기 편했다. 다만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모두 선량해서 약간은 비현실적으로 다가오는 부분도 있다. 분량도 많지 않아 천천히 읽어도 2~3시간이면 충분하다. 하지만 그 속에 담긴 훈훈한 이야기는 가슴을 따뜻하게 만든다. 세 편의 연작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모두 세 마리의 개가 등장하여 중요한 역할을 한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각 이야기에 나오는 사람들의 사연이다. 제목처럼 이 개들은 사람들에게 아주 소중한 것을 가르쳐준다.

 

<하늘을 모르는 개>는 좁은 집에 갇힌 개 이야기다. 첫 이야기니만큼 등장인물에 대한 기본적인 설명이 나온다. 이동도서관을 운영하는 미츠 씨에게 만화책을 빌리려고 찾아온 아이가 히로무다. 히로무의 행동과 말은 어른의 관점에서 보면 건방지고 무례하다. 하지만 그 속은 따뜻하다. 부모에게 버림받은 아이가 가진 어둠이 크게 부각되지 않는다. 이 둘이 제대로 돌봐지지 않는 개를 보러가는 도중에 하나의 사건이 생긴다. 교통사고다. 그런데 일어나 바로 달아난다. 8만 엔을 남겨두고. 이렇게 엮인 이야기는 한 마리의 개를 통해 관계가 이어진다. 소박하고 순수한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이야기는 그 자체로 가슴이 훈훈해진다.

 

<세 발의 영웅>이란 제목을 보고 총을 먼저 떠올렸다. 그런데 세 발을 가진 것은 개다. 이 세 발로 잘도 다닌다. 이 감다라는 개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이어지는데 토사로 어머니 등을 잃은 하루토가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인간의 잔혹한 행위 때문에 다리 하나를 잃은 감다와 하루토의 교감은 이 이야기를 지탱하는 주요한 장치다. 여기에 하루토가 겪은 비극과 현재의 이야기가 엮이고 꼬이면서 눈시울을 붉히게 만든다. 서로가 상대방을 너무 배려하는 마음이 오해를 불러오고, 이 오해는 사실의 힘으로 풀린다. 그리고 다음 이야기를 시작하는 말로 끝난다.

 

마지막 이야기인 <나의 K-9>은 미츠 씨의 과거와 관계있다. 미츠 씨의 아들이 죽었는데 이 죽음과 관련하여 이웃의 친절한 수의사 부부가 연관되어 있다. 이 사건 때문에 미츠 씨는 형사를 그만 두고 이동도서관을 운영하면서 아이들을 만난다. 밤에 야간경비를 서면서 번 돈으로. 이번 이야기에서 또 한 명이 중요한 역할을 맡는다. 바로 곤노다. 심부름센터를 운영하는데 이 연작에서 모두 중요한 정보를 제공한다. 미츠 씨 아들의 죽음에 대해 밝혀진 새로운 사실에는 곤노도 끼워져 있다. 껄렁한 양아치를 닮은 외모와 달리 그는 착하고 순수한 내면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경찰견 발드로가 있다. 하나의 수수께끼가 풀리면서 나타나는 사실들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장면으로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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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 : 삶의 군더더기를 버리는 시간 배철현 인문에세이
배철현 지음 / 21세기북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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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철현 교수의 첫 에세이 <심연> 이후 두 번째 내 놓은 에세이다. 저자는 위대한 개인의 발견과 완성의 네 단계로 심연, 수련, 정적, 승화로 나누었다. 이 책은 그 두 번째 단계인 수련을 다루었고, 1년간의 수련을 적은 기록이자 고백이다. 수련 기록이라고 하지만 아주 실용적인 모양으로 표현되지 않는다. 4부로 나눈 직시, 유기, 추상, 패기란 단어에서 알 수 있듯이 학구적이다. 그리고 다시 각 부들은 지금, 도장 등에서 시작한 28개의 단어로 이루어져 있다. 이 단어들이 구체적인 방법들인데 결코 실용적이지 않다. 오히려 자신의 전공 분야와 연결되어 현학적으로 다가온다.

 

고전문헌학을 전공한 탓인지 그의 각 단어들은 어원을 풀어낸 부분이 대부분이다. 한자뿐만 아니라 수메르어, 히브리어 등도 같이 다루어진다. 라틴어 등에서 파생한 단어의 어원을 하나씩 풀어내는 글을 보면 그의 전공을 다시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작업은 언어가 문명을 건설하는데 어떤 역할을 했는지 알게 될 때 그 의미가 더욱 분명해진다. 내가 현학적이란 표현을 사용한 것도 이런 지적유희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방대한 지식을 이용해 하나의 단어와 자신의 수련을 엮어 풀어낸 것은 이보다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고자 하는 독자에게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다.

 

부제로 ‘삶의 군더더기를 버리는 시간’이 붙어있다. 2부에 가면 유기에 ‘삶의 군더더기를 버리는 연습’이란 부제목이 붙는다. 비겁, 단순, 욕심, 식탐, 자만, 분노, 시기 등인데 같이 붙어 있는 간단한 설명들이 가슴에 깊이 와 닿는다. 내가 살면서 가장 많이 경험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늘 단순함을 추구했지만 나의 말과 글에는 군더더기가 점점 더 많이 붙는다. 조금 안다고, 더 명확하게 설명할 수 없어 이런 현상이 계속 이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단순화된 것을 이해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도 같은 수준까지 올라와야 한다는 문제는 놓치지 않아야 한다.

 

흥미로운 단어와 해석이 많은데 1부 ‘직시’에서 기도가 특히 그랬다. 기도를 날카로운 도끼를 자기 앞에 겨누는 훈련이라고 할 때 기도가 새로운 의미로 다가왔다. 자신에게 몰입하지 못하는 병으로 시기를 말할 때는 순간 뜨끔했다. 나의 분노 중 일부는 이 시기에서 비롯한 것들이 때문이다. 순간을 가치 있게 만들어주는 마술로 문법을 이야기할 때 현재 우리가 얼마나 이 문법을 무시하고 사는지 되돌아보았다. 그리고 종교나 자기계발서에 가장 많이 다루는 단어 중 하나인 시련을 유일한 지름길이라고 할 때 사유가 좀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피상적인 시련이라면 흔한 표현일 뿐일 수 있기 때문이다.

 

꿈의 실현을 가능하게 하는 내공으로 패기를 든다. 이 단어는 수많은 소설과 만화 등에서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어 순간 헷갈렸다. 특히 <원피스>나 무협 등에서 사용된 패기 때문에 더 했다. 하지만 이것을 꿈과 연결시켜 말한 예전의 글들을 떠올리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더 나은 자신을 위한 모험으로 떠나는 노력이 없다면 이 패기는 사실 큰 의미가 없다. 나에게 유일한 것을 찾아 사랑에 빠지는 자유를 처음으로 다룬 것도 이것과 관계있다. 모두 읽은 현재 다시 주목하는 단어는 ‘지금’이다. ‘다음’이나 ‘나중에’라는 말로 우리가 미룬 혹은 그만 둔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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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어퍼 이스트사이드
티에리 코엔 지음, 박아르마 옮김 / 희담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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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극적인 문장으로 시작한다. “이 소설의 끝에서 나는 죽을 것이다.” 죽음을 암시하는 이 문장은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를 어느 정도 예상하게 만든다. 성공한 작가가 퇴폐적으로 변신하면서 삶의 극단으로 치닫는 장면들이 먼저 떠올랐다. 하지만 이 추측은 완전히 잘못되었다. 자기 파멸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맞지만 그 원인과 과정이 달랐다. 그리고 그 결말은 전혀 상상하지 못한 장면들로 이어진다. 어느 부분에서는 수긍할 수 있지만 어떤 대목에서는 다른 작품과 이미지가 겹쳐졌다. 어떻게 보면 심한 비약일 수도 있는데 작가는 시간을 끌고 들어와서 이 문제를 조금씩 해결하려고 한다.

 

사무엘 샌더슨. 첫 작품이 성공하면서 문단에 화려하게 데뷔한다. 매년 한 권씩 책을 내기로 계약하고 성공가도를 달린다. 첫 작품에 비해 그 다음 작품들은 그의 마음에 썩 들지 않지만 이미 잘 팔리는 작가가 된 그이기에 비슷한 설정의 작품들을 계속 낸다. 부와 명성이 쌓이고 욕망이 충족되면서 더 많은 욕망에 휩싸인다. 가난한 작가일 때 보여준 남편과 아버지의 모습은 성공에 도취되는 순간 사라진다. 아내와 딸이 바라는 것을 해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해줄 수 있는 것에 집중한다. 그 결과는 이혼이다. 이 이혼이 그의 삶을 완전히 파괴하지는 않는다. 이혼 전 불륜의 금제가 깨졌다. SNS 통해 그는 늘 새로운 여자를 사냥한다.

 

베스트셀러 작가란 명성과 좋은 글빨은 그에게 관심 있는 여성을 낚는데 아주 좋은 아이템이 된다. 자꾸 하다보면 그쪽으로 민감해진다. 술과 마약과 섹스에 취한 그는 자신의 소설에 회의가 들 때도 있지만 에이전트는 계속 독려하고 독촉할 뿐이다. 예쁘고 어린 애인이 옆에 있고, 수시로 만날 새로운 여인들이 있다. 이런 일상 속에 작은 파국이 생긴다. 기자 한 명을 때리고, 순간적으로 정신을 잃는다. 그리고 자신의 엄마가 겪었던 정신병이 떠오른다. 페이스북에 술은 먹은 후 자신과 팬을 기만하는 글을 올려 문제가 되기도 한다. 이때 자신과 같은 이름을 가진 누군가가 접속한다. 20년 후의 자신아라고 하면서.

 

20년 후의 그가 알려준 정보는 자극적이다. 현재의 삶에 불만이 있는 그를 흔들기는 충분하다. 딸이 마약상들이 다니는 곳에 있다는 사실도 알려준다. 이런 몇 가지 장면만 놓고 보면 SF로 간주해도 될 정도다. 과연 그는 20년 후의 자신일까? 이런 의문은 장르 소설을 좋아하는 나에게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리고 발견되는 친구의 죽음은 또 다른 장르로 이끈다. 이렇게 소설은 몇 가지 설정을 뒤섞어 놓은 채 빠르게 전개된다. 성공한 작가의 자기 회의가 들어가고, 그를 질투하는 사람이 나오고, 화려한 성공이 주는 달콤한 열매도 빠지지 않는다.

 

출판계의 이면을 잠시 보여주고, 마케팅이 신작 판매에 얼마나 중요한지 알려준다. 이 부분을 더 깊이 파고들지 않은 것은 조금 아쉽다. 결국 이 소설의 마지막까지 도달하면 욕망과 질투의 심연을 들여다보게 된다. 좋은 글을 쓴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매년 소설을 내는 이유가 무엇인지, 비슷한 설정을 계속 이용할 수밖에 없는 이유도 알 수 있다. 삶과 그 이면을 들여다보는 이야기가 아니라 감상적인 면을 자극하는 소설은 멋진 문장으로 회자될지 모르지만 그 생명력이 결코 길지 않다. 좋은 문체가 있다고 해서 좋은 소설이 되는 것이 아니다. 이런 이야기들이 소설 속에 녹아 있고, 죽음으로 이어지는 과정 속에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하는 기대와 긴장감이 이어진다. 그리고 첫 문장에서 예상한 것과 전혀 다른 장면들을 보면서 생각에 잠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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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함대 1 - 미중전쟁 가상 시나리오
피터 W. 싱어.오거스트 콜 지음, 원은주 옮김 / 살림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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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전쟁 가상 시나리오라는 부제가 달려 있다. 부제처럼 이 소설은 미국과 중국의 전쟁을 다룬다. 가상의 미래를 배경으로 이 두 국가가 싸우는데 가상의 최첨단 무기와 해킹 등이 총 동원된다. 작가들의 풍부한 지식은 읽으면서 감탄하게 되지만 그 이미지가 머릿속에 쉽게 떠오르지 않는 대목도 조금 많이 있다. 아마도 내가 그 기술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거나 현실과의 괴리 때문일 것이다. SF장르로 구분하는 것도 가능할 듯한데 보통 이런 소설은 그렇게 분류는 하지 않는다. 온갖 무기와 새로운 기술 등은 다가올 미래를 섬뜩하게 만들기도 한다.

 

모두 읽은 지금 머릿속에 한 작가가 떠올랐다. 테크노 스릴러의 창시자라고도 불렸던 톰 클랜시다. 개인적으로 평가한다면 톰 클랜시의 작품에 미치지 못한다. 무서울 정도로 현실을 그린 소설이라고 하지만 미래의 가상세계를 설정하고 있다. 몇 가지 기술들은 가까운 미래에 가능할 것 같지만 몇 가지는 시대를 더 많이 앞선 듯하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 나의 지식 부족일 수도 있지만 과학을 다루는 부분에서 드러나는 지식은 나를 완전히 압도한다. 다만 많은 인물들을 등장시켜 풀어내는 방식이 집중력을 중간중간 흐트려 놓는다는 단점이 있다. 하지만 후반부에 실제 해상 전투가 벌어지는 장면은 내가 상상할 수 있는 한도 안에서 볼 때 최고의 전투 장면이다.

 

전쟁이란 설정 때문에 하나나 몇 장면만 등장하고 사라지는 인물들이 많다. 반면에 끝까지 등장해서 그 존재감을 빛내는 인물도 있다. 특히 시먼스와 그의 아버지 마이크는 부자 갈등과 인간적인 모습을 많이 보여주면서 진짜 주인공이란 느낌을 준다. 여기에 애인이 죽은 후 냉혹한 살인자로 변신한 캐리나 하와이에서 게릴라 활동을 하는 해병대 도일과 푸시킨의 시를 사랑하는 러시아 장교 마르코프 등은 상황을 입체적으로 만드는데 일등 공신들이다. 이들이 있어 전쟁이 벌어질 때 일어날 수 있는 다양한 가능성 중 몇 가지를 들여다볼 수 있다.

 

흥미로운 도입부에서 미국은 중국의 전격적인 공격에 의해 패배한다. 하와이를 빼앗기고, 인공위성들은 파괴된다. 여기에 인터넷도 해킹되어 힘의 추가 중국으로 넘어갔다. 기본 부품들을 중국에 의존하는 가까운 미래에 일어날 수도 있는 가능성을 다루는데 어느 정도 공감한다. 너무나도 무력하게 미국이 무너졌다고 생각하는 와중에 빼앗긴 주도권을 되찾기 위한 미국의 노력은 계속 되었다. 단지 작가가 이 부분을 자세하게 그려내지도 강조하지도 않았다. 이 부분까지 자세하게 그려내었다면 분량은 지금보다 훨씬 늘어났을 것이다.

 

우주정거장을 통해 지구를 관찰하고 감시하는 상황에서 미국이 실제 할 수 있는 일이 그렇게 많지 않다. 폐쇄적인 사이버 공간들을 어떻게 해킹하는지 보여주는 장면은 아주 기발하다. 개인의 통신기기를 매개로 삼았다는 설정에 깜짝 놀랐다. 이 기발함은 사이버 전쟁으로 한두 번 정도 이어질 것 같은데 어느 순간 무게 중심이 다른 곳으로 너무 넘어갔다. 중국에서 만들어진 부품들 때문에 완전히 무력화되어 있다. 기존의 테블릿 등에서 전자부품을 빼서 전자기기를 만들어야 하는 상황까지 왔다. 인터넷으로 연결되면 중국의 해커가 들여다볼지 알 수 없다. 여기에 또 하나 중요한 전략무기로 드론이 사용된다. 원격 조정으로 원거리 타격을 하고, 비행기와도 전투를 치르는 장면은 새로운 전쟁의 한 단면을 잘 보여준다.

 

이 가상 전쟁 시나리오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역시 미국의 반격이다. 중국의 기습 공격 이후 세계를 손에 넣은 중국의 공격은 어떻게 보면 너무 안일하다. 전선이 하와이 쪽에서 멈춘 것은 완벽한 승리를 거둘 기회를 놓친 것이나 마찬가지다. 너무 자만했던 것일까? 이 때문에 게릴라와 정규군의 반격이 가능하게 되었다. 하지만 전면전이 아니다. 국지전이라는 사실이 조금은 아쉽다. 만약 전면전이었다면 훨씬 많은 분량이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기습전으로 승리한 중국의 사후 모습은 그 시간에 비해 너무나도 무력해보인다. 마르코프가 보여준 통찰력을 보여주는 중국군이 없다는 것은, 혹은 다른 지역에만 있다는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현실적인 전투 장면이 나오지만 엄청난 긴장감을 주지 못하는 것은 이런 설정 탓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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