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먼저 죽인다
손선영 지음 / 해피북스투유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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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야 사는 남자>란 작품으로 나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 백용준 경감이 이번에도 나온다. 하지만 전편처럼 그는 전면에 등장하지 않는다. 이 작품에서 이야기를 끌고 가는 인물은 손창환이다. 그는 일반 고등학교 졸업 한 후 은행에 취직하고, 열심히 일하다, 동기이자 상사에게 이용당해 삶이 나락으로 떨어졌다. 감옥도 갔다 오고, 먹고 살기 위해 온갖 일을 다한 끝에 택시 운전수가 되었다. 그냥 무력한 일상을 살던 그에게 어느 날 그 동기이자 상사였던 박상준이 손님으로 탄다. 이 만남이 겨우 살아가던 그에게 희망을 던져준다. 그를 죽인다는 희망이다.

 

이야기는 손창환의 현재와 과거를 교차하면서 왜 그가 이런 살인을 희망하게 되었는지 보여준다. 그리고 살인을 의뢰하는 한 남자와 히트맨의 만남과 어떤 목적에 동원될 사람들의 간단한 목소리가 등장한다. 현재 속에서 손창환은 박상준을 완전범죄로 죽이는 것을 바라면서 그를 뒤좇는다. 본업이었던 택시 기사도 퇴직한 채로. 박상준의 발견은 그의 얼굴에 웃음과 활력을 가져다주었다. 그를 죽이기 위한 손창환의 조사는 꾸준하지만 아마추어라는 한계는 어쩔 수 없다. 그러던 어느 날 박상준의 딸이 그의 삶에 끼어든다. 자신을 납치하라고 말하면서. 이때부터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한다.

 

손창환과 박상준의 만남은 지방은행 동기연수다. 고졸과 대졸의 학력 및 나이 차이는 90년대 한국에서는 절대적인 벽이다. 여기에 손창환은 상고 출신도 아니라 그의 뒤를 봐줄 사람도 없다. 이 사실은 기회주의자이자 비열한 성격의 박상준이 손창환을 괴롭히는 이유 중 하나가 된다. 지방세를 계산하는데 탁월한 능력을 가졌고, 은행원으로써 부족함이 없었던 그이지만 상하 직급과 나이가 만든 권력은 그의 일상을 뒤흔든다. 이 소설에서 박상준이 보여준 권력 남용과 패악이 90년대 은행에서 가능한 것인지는 별도로 생각하고, 그 시절의 부패와 퇴락의 흔적들은 아주 노골적으로 잘 드러난다. 이 썩은 물에서 어떻게 노느냐에 따라 삶의 수준이 달라진다. 혼자 깨끗한 척하면 당연히 배척의 대상이 된다.

 

박상준의 딸이라고 말하는 민정 혹은 엠제이는 납치 자작극을 펼친다. 이유는 박상준이 화훼단지를 운영하는 엄마의 돈을 사기 쳐서 가져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그런데 왠지 모르게 그녀의 행동이 어색하다. 처음에는 손창환도 그녀의 바람대로 끌려다닌다. 50억이란 거금을 요구하는 납치 사건인데 허술한 구석이 곳곳에서 보인다. 손창환과 엠제이는 이 납치극을 성공하기 위한 장치를 몇 가지 설정한다. 그러다 이 계획 중 하나를 손창환이 뒤틀어버린다. 그것은 시간 변경이다. 시간을 앞으로 당기고, 도주에 대한 계획도 바꾼다. 이것이 또 다른 계획을 뒤튼다. 잘 짠 설계지만 변수는 언제 어떻게 생길지 알 수 없다.

 

백용준 경감이 등장하는 것은 중반부터다. 이 납치극이 뭔가 이상하다고 느끼고 수사를 더 깊이 진행하지만 정확하게 알 수 없다. 납치범을 잡고, 수사를 제대로 하기에는 시간도 정보도 부족하다. 어쩔 수 없는 조연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작가는 앞과 바뀐 설정과 계획으로 파편화된 이야기 조각을 하나씩 맞춰간다. 앞부분의 어색함이 잘 짠 구성과 설정으로 하나씩 메워진다. 이야기에 속도감이 붙고, 어떤 결말이 기다리고 있을지, 앞에 깔아둔 이야기의 등장인물들은 또 어떤 역할을 할지 궁금해진다. 등장한 분량만큼 역할을 하고 사라지는데 이 부분은 왠지 모르게 그 장면들이 하나의 설명을 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체적으로 잘 짠 구성과 설정이지만 손창환의 변신은 조금 급하고 어색한 느낌이다. 아마 이것은 나의 선입견일지도 모른다. 90년대 한국과 IMF 구제 금융 등으로 더욱 팍팍해진 우리의 삶을 그려준 장면들은 결코 낯설지 않다. 작가가 던진 완전범죄의 방법이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지만 완전히 낯선 것은 아니다. 가장 큰 아쉬움 중 하나는 손창환에 의해 그려진 박상준의 모습이다. 그의 속내나 의도를 직접 보여주지 않아 그가 저지른 범죄에 비해 그 매력이 조금 떨어진다. 손창환의 과거에 드러나는 모습만으로는 개인적으로 성에 차지 않는다. 또 하나. 에필로그는 조금 사족의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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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무사 - 조금씩, 다르게, 살아가기
요조 (Yozoh) 지음 / 북노마드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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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조라는 이름을 듣고 일본 뮤지션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내가 다른 일본 음악인과 혼동한 모양이다. 음악을 열심히 들은 적이 있지만 CDP나 TV에 자주 나오는 가수가 아니면 잘 몰랐던 시절이라 더 그랬을 것이다. 아마 그녀를 제대로 인식한 것이 홍대여신이란 이름으로 알려지면서였을 것이다. 한때 얼마나 많은 인디씬의 여가수가 이 이름으로 불렸던가. 이 이름을 가지고 메이저 방송에서 아주 성공한 가수도 있으니 꼭 나쁘다고 할 수만은 없을 것 같다. 덕분에 나도 아주 좋은 작가 한 명을 발견하지 않았는가.

 

사실 요조라는 이름이 아니었다면 이 책은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놓고 밀린 책이 많은 지금 우선순위는 늘 바뀐다. 그런데 유명하지도 않고, 좋아하는 장르의 소설이 아닌 경우라면 더욱 뒤로 밀릴 수밖에 없다. 실제로 이 책도 다른 책에게 우선순위를 빼앗겼다. 300 여 쪽에 달하는 분량이지만 금방 읽을 수 있을 것이란 기대 때문이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이 기대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짧은 글과 단상들이지만 숨을 고르고 차분히 음미해야 할 부분들이 생각보다 훨씬 많았기 때문이다. 책방 무사를 운영하면서 만난 사람과 일과 자신의 삶을 풀어내는 방식도 가슴 한켠에 조용히 다가왔다.

 

이 책은 다양한 직업을 가진 요조가 책방 무사를 운영하면서 경험했던 일과 만난 사람과 일상을 적은 글이다. 작은 동네서점을 찾아 간 적이 거의 없어 분위기를 잘 모르지만 아마도 내가 그 서점을 찾아갔다면 그것은 요조를 보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나의 속물성이 작용한다는 의미다. 그리고 그가 서점을 찾아온 사람들을 이야기한 나쁜 모습 중 한 명이 되었을지도 모른다고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최근 동네서점에 대한 많은 글이 올라오는데 가보고 싶은 곳들도 늘어났다. 예전에 헌책방을 열심히 돌던 때가 생각나면서 옛 추억도 떠올랐다. 그 헌책방들이 지금은 문을 닫아 아쉬움이 큰데 이런 작은 서점들이 또 다른 위안을 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해본다.

 

무사 일기는 책방 기록이기도 하지만 요조의 일기이기도 하다. 가장 놀랍고 재밌는 부분은 손님과 함께 하는 모습들이다. 선물을 사오고, 선물을 주고, 이야기를 나누고, 이웃과 함께 하는 모습들. 화려한 글이나 진부한 감상을 주절주절 늘어놓지 않아 담담하게 읽을 수 있고, 책방 운영하면서 느낀 감상과 일상이 잘 어우러져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 같은 순간도 있다. ‘쇼난에 가다’에서 그녀가 느낀 감정이 나의 감성 어딘가를 살짝 건드리고 지나갔고, ‘상실의 시대’는 집에 있는 책이 몇 판인지 궁금해졌다. 그녀가 ‘울었다’고 한 책을 내가 울었던가 하는 기억을 더듬었고, ‘취미는 독서’란 너무나도 흔한 취미가 정말 나의 취미란 사실에 놀란다.

 

처음 책을 펼치면서 요조의 이미지를 알 수 없어 검색했다. 홍대여신이라고 불린 미모의 귀여운 여성이 나왔다. 글을 읽어 나가면서 그녀의 나이를 보고 놀랐고, 그녀 곁에 있는 남자 친구 이종수를 보면서 10년 연애 끝에 결혼한 직원이 떠올랐다. 돈에 대한 솔직한 감상이 좋았고, 에필로그에 나온 사람에 대한 글도 공감했다. 사람에게 상처 받은 것 사람으로 치유한다는 뻔한 문장이 그녀에게는 사실인 모양이었다. 언제부터인가 잘 가지 않는 ‘서울국제도서전’이 괜히 그리움으로 다가왔다. 이번 전시회 이전에 이 책을 읽었다면 잠시라도 다녀왔을 텐데. 이렇게 이 책은 나에게 다양한 감상을, 감성을 던져주었다.

 

서울에서 제주로 옮긴 책방 무사. 아마 아이를 데리고 가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서울 무사와 제주 무사의 사진들은 널널하지만 여유와 세심함이 엿보인다. 책방 주인 요조가 선택한 책들이 조용히 진열된 그곳은 요조의 말처럼 그녀의 현재와 과거의 관심사들이 놓여 있을 것이다. 이 선택이 다른 사람의 선택으로 이어져야만 책방은 계속 유지된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괜히 가서 한 권 정도 사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부록 요조의 서가에 나온 책들은 대부분 낯선 책들인데 아주 흥미롭다. 산다고 해도 금방 읽을 것 같은 책은 아니다. 하지만 나의 인식을 넓혀줄 것은 분명하다. 언젠가 다시 책을 펼쳐 읽는다면 또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다. 그녀의 음악도 한 번 들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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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는 안는 것
오야마 준코 지음, 정경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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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나의 저질 기억력과 오독이 예상하지 못한 즐거움을 줄 때가 있다. 이번이 그런 경우다. 처음 읽는다고 생각했는데 이 작가의 <하루 100엔 보관가계>를 읽었었다. 그것도 상당히 재미있게.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감독이 이 소설을 원작으로 영화를 만들었다고 했는데 그 소설의 작가라고 잘못 읽었다. 급한 성격과 인터넷 서점의 책소개를 대충 읽는 버릇이 만든 실수들이다. 자주 하는 실수다. 이런 실수들이 있었지만 소설은 잘 읽히고 잔잔한 감동과 여운을 남긴다. 그리고 머릿속에서는 얼마 전에 읽었던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고양이>와 비교하고 있었다.

 

첫 이야기를 읽을 때는 고양이의 시선으로 전체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줄 알았다. 자신이 인간인 줄 아는 고양이 요시오가 주인공으로 말이다. 그런데 바로 사오리 이야기가 나오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이야기는 옴니버스 식으로 꾸며져 있고, 독립적이면서도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시간의 흐름 순으로 이야기가 진행되지 않아 잠시 혼란이 있기도 했지만 부드럽게 이어지는 이야기라 큰 불편함이나 거북함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각각의 사연을 조용히 들여다볼 수 있어 재미있었다. 대표적으로 사오리가 왜 고양이에게 요시오란 이름을 붙였는지, 그 연모의 대상이었던 요시오를 보고 오해했던 장면의 진짜 모습을 보여주는 등 세심하게 이야기를 짜놓았다. 이것은 우리가 얼마나 쉽게 상황을 판단하고 오해하는지 잘 보여준다.

 

기본적으로 고양이가 각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한 마리가 아니라 여러 마리가 주인공이다. 그리고 이 고양이와 연결된 사람들의 이야기가 같이 어우러진다. 요시오와 사오리나 키이로와 고흐나 르누아르 같은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소설의 제목인 ‘고양이를 안는 것’은 키이로와 고흐의 이야기에서 나온다. “고양이는 그리는 것이 아니라 안는 것”이라는 고흐의 말이다. 미완성된 그림만 그리던 고흐가 하나의 그림을 완성했지만 예상하지 비극을 맞이하는 장면은 삶의 아이러니를 그대로 보여준다. 이 이야기 또한 뒷이야기에서 새로운 상황 설명이 덧붙여진다. 깔끔한 정리다. 그래도 각자의 감정에 남겨진 여운은 그대로다.

 

도쿄 변두리 아오메 강의 네코스테 다리는 고양이들이 모이는 곳이다. 네코스테란 단어는 고양이를 버린다는 뜻이다. 이것은 강가의 창고가 신식으로 바뀌면서 쥐가 쉽게 구멍을 내지 못하면서 고양이가 필요 없어졌고, 부가 쌓였다는 의미다. 시대의 변화와 발전이 만들어낸 풍경과 현상이다. 이후 고양이들은 이 네코스테 다리 근처에 모여 살아간다. 이 다리의 좋은 점 중 하나는 바로 세 명의 남녀가 고양이들에게 물과 사료를 준다는 것이다. 최소한 이곳에 오면 굶주릴 필요는 없다. 그리고 이 고양이들은 자신들의 의견을 자유롭게 말한다. 재밌는 것은 각 고양이의 기억이 달라 작은 에피소드를 만든다는 것 정도랄까.

 

고양이를 중심에 두고 다양한 인물들이 나와 짧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들을 한꺼번에 다룬 이야기가 크리스마스인데 따뜻함과 안타까움이 조용히 뒤섞인다. 하지만 그 바탕에는 희망이 깔려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자신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파악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누군가와 함께 한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도 알려준다. 그리고 고양이의 이름을 둘러싼 이야기에서 순간 울컥했다. 아이가 서투르게 발음한 이름에 부모가 숨을 죽이는 대목이다. 단순히 이 부분만 읽었다면 그냥 그랬겠지만 앞에서 쌓여온 감정이 이때 폭발한 것이다. 여기에 한 아이의 아버지라는 현실도 덧붙여졌다. 화려하지도 감정 깊은 곳까지 파고들어 감성을 건드리지 않지만 책을 덮은 뒤 충분히 그 여운과 감동을 누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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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이는 언제나 거기에 있어
존 그린 지음, 노진선 옮김 / 북폴리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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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유명한 작가의 이름에 비해 그의 책은 공저인 < 윌 그레이슨, 윌 그레이슨>을 제외하면 읽은 적이 없다. 공저의 특성 상 한 작가의 힘이 그대로 드러나기 힘들었다. 그의 대표작을 구매해 놓았지만 언제나처럼 묵혀두고 있다. 늘 있는 일이라 새롭지도 않다. 이번 작품이 나의 시선을 끈 것은 당연히 작가 이름이 먼저고, 그 다음은 작가 자신이 어린 시절부터 겪었던 심리적 고통을 주인공인 에이자 홈스라는 소녀의 입을 통해 들려주었다는 것이다. 작가의 자전적 요소는 그 작가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뭐 아직 이 작가를 깊이 파고들지 않았는데도 이런 생각부터 하다니 나도 참...

 

인디애나폴리스에 사는 열여섯 소녀 에이자는 극도의 불안감과 강박적인 생각의 소용돌이 속에 살고 있다. 우리도 불안감과 강박증을 안고 살고 있지만 에이자 정도는 아니다. 그녀는 정도가 심하다. 심리 치료를 받고 약을 먹지만 좋아지지 않는다. 물론 약은 제때 제대로 먹지 않는다. 클로스트리움 디피실레라는 병이 있다. 극단적으로 가면 죽기도 하는 모양이다. 소설 속에서 에이자는 이 병의 불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보통은 잘 일어나지 않는데 그의 불안과 강박증은 한 번 이 병을 생각하면 나선형으로 빠져들어 헤어나지 못한다. 참 피곤하고 힘들고 무서운 삶이다.

 

다른 사람과의 접촉은 에이자에게 아주 어려운 일이다. 이런 그녀지만 친구가 있다. 데이지다. 스타워즈 마니아이자 팬픽을 쓰는 작가다. 아주 활발하고 사랑보다 우정이 먼저라고 주장한다. 만약 데이지가 없었다면 에이자의 삶은 더욱 힘들었을 것이다. 이 둘의 우정은 데이지가 곁에 있어주었기에 가능하다. 그녀의 쉴 새 없는 수다를 참아줄 사람이 많지 않는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될지 모르지만 아주 좋은 친구다. 이야기는 데이지가 하나의 제안을 하면서 시작한다. 그것은 데이비스의 아버지 피킷을 찾아서 현상금 10만 불을 받자는 것이다. 이 시도가 에이자를 다시 데이비스와 만나게 만든다. 사랑은 가끔 예상하지 못한 상황과 시간에 찾아온다.

 

데이비스는 부정부패로 달아났고, 전 재산마저도 파충류에게 물려준 아버지를 두었다. 동생은 아버지를 찾지만 어디에도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예민한 10대인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없다. 이때 찾아온 에이자와 데이지는 작은 휴식과도 같다. 어릴 때 캠프에 한 번 같이 간 것이 인연의 전부였던 이 둘은 서로의 아픔을 인정하고 그대로 놓아두기에 가까워진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첫 키스의 달콤함도 세균에 대한 강박증에 빠지는 순간 불안해진다. 감정은 불안을 품은 강박에 의해 산산조각난다. 더 가까이 가고 싶고, 그에게 키스하고 싶지만 강박의 소용돌이는 이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에이자는 불안감을 지우기 위해 손톱 밑에 상처를 낸다. 손톱으로 상처를 내고, 치료하고, 다시 내는 일이 반복된다. 세균에 대한 불안감은 손 세정제를 먹는 수준까지 나아간다. 약을 먹으면서 치료하면 될 텐데 이 약이 자신이 자신 아닌 것처럼 만들 것이란 불안감을 준다. 자신을 지키고자 하는 노력이 오히려 독이 된다. 아니 불안과 강박증이 상황을 거꾸로 만든다. 읽는 내내 답답함을 느낀다. 이성적으로는 공감하지만 감성적으로 공감하지 못하면서 생기는 괴리다. 작가는 이 상황을 멋진 문장과 인용과 구성으로 잘 이끈다. 흡입력이 좋다.

 

첫 포문을 연 10만 불의 상금은 데이비스가 집에서 찾은 10만 불로 간단히 끝난다. 아버지 찾기 대신에 준 돈이다. 결코 적지 않은 돈인데 대학에 가기에는 부족하다. 데이지와 에이자의 선택은 차이가 있다. 이 차이는 나중에 둘 사이에 잠시 갈등을 일으키는 요소가 된다. 그리고 피킷 씨의 실종과 그가 남긴 메모는 하나의 수수께끼 풀이가 된다. 데이비스의 어머니 죽음과 아버지 실종이 아주 큰 상실이듯이 에이자에게는 아버지의 죽음이 그렇다. 아버지의 구형 핸드폰에 집착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렇게 상실은 각자의 삶에 큰 상처를 남긴다. 사랑으로 이것을 치유할 수 있을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게 쉽지 않다. 에이자는 ‘나’로 살아가고자 하지만 늘 주변의 영향을 받는다. 이 소설은 바로 ‘나’에 대한 이야기다. 마지막 문장은 나의 지나간 시간을 돌아보게 한다. “우리는 정말로 다시 보고 싶은 사람에게만 작별 인사를 하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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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의 도시 가이드
제프 마노 지음, 김주양 옮김 / 열림원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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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와 건물을 새로운 시선으로 본 책이다. 건물 속에 사는 사람의 시선이 아닌 도둑의 시선이다. 제목에서 알려주듯이 도둑들이 어떻게 도시의 공간을 넘나들었는지 보여준다. 저자는 ‘침입절도와 건축은 여전히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고, 더 나아가 ‘모든 도시가 언젠가는 발생할 범죄의 씨앗을 품고 있다’고까지 말한다. 처음에는 공감하지 않았지만 책을 모두 읽은 지금은 동의한다. 건축물 안에서 살고 있는 우리가 모르는 건축물을 이용해 범죄를 저지르는 그들을 보면서 어릴 때 기억 몇 가지가 떠올랐다. 전혀 생각하지 못한 곳으로 그들은 집안으로 들어왔었다.

 

도둑들의 의지와 열정은 우리가 상상하지 못한 곳을 침입한다. 사람들이 도둑들이 훔쳐간 물건에 관심을 가질 때 ‘도둑들은 공간을 탐험’한다. 이 공간 탐험에 대한 이야기를 저자는 아주 다양한 사례를 통해 보여준다. 그 중에서 가장 먼저 다룬 조지 레오니다스 레슬리 이야기는 도둑들이 도시와 건물을 어떻게 보고 연구하는지 아주 잘 보여준다. 원하는 돈과 귀금속 등을 훔치기 위한 그들의 노력과 열정은 나의 학창 시절을 훨씬 능가한다. 아니 처음부터 비교조차 할 수 없다. 영화에서 보여주는 몇 장면만 가지고도 놀라는데 실제는 더 대단하다. 물론 어설픈 도둑들이 없는 것도 아니다.

 

도둑과 경찰 혹은 보안업체와의 대결은 아주 긴 세월 동안 이어져왔다. 앞으로도 이어질 예정이다. 그 중 하나가 빈집털이인데 경찰은 함정을 파기도 한다. 하지만 이 빈집털이가 언제, 어디서, 어떤 조건에서 발생하는지 일반 법칙이 없다. 이런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쌓은 방벽이 가장 기이한 범죄를 불러들이는 조건이 된다고 할 때 이 싸움의 현재와 미래를 살짝 엿볼 수 있다. 물론 이것은 영화나 범죄소설 등을 통해 얻은 정보를 기반으로 한다. 실제로 어렵다고 해서 도둑들의 기발한 발상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일에서 가능성을 찾아내는 도둑들은 늘 있어 왔다.

 

다양한 이야기 중에서 한국 송도 이야기는 조금 놀랐다. 송도의 기반 시설 정보 데이터를 은행 한 곳에 보관한다고 하는데 이것이 도둑들에게는 엄청난 자산이 된다. 이것의 구식 버전으로 도시의 마스터 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실제 이베이에서 이런 열쇠가 거래된다고 한다. 이 사실만으로도 나의 상상력은 춤을 춘다. 어디에 어떻게 들어갈까 하고. 그리고 지금 앉아 있는 사무실을 둘러보면서 도둑들이 침입하기 쉬운 공간임을 깨닫는다. 다른 시각으로 기존의 건축물을 본다는 것은 또 다른 재미다. 실제 그것을 행동으로 옮긴다면 다른 문제가 되고, 결코 쉽지 않을 테지만.

 

훔친다고 모든 것이 끝나지 않는다, 잘 달아나야 한다. “우리에게 알려진 도둑들이 도둑 일반을 대표하지 않는다.”고 말하는데 맞은 말이다, 성공한 침입절도의 흔적을 거의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훔치는 것을 완벽하게 막을 수 없다면 달아나는 것이라도 잘 막아야 한다. 하지만 역시 여기에도 정답이 없다. 막고 뚫으려는 두 조직의 대결은 계속 될 것이니까. 전직 해커나 도둑들이 보안업체에서 일하는 것은 이들의 경험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물론 더 창의적인 도둑들이 나타난다면 이 방법도 별로 쓸모가 없을 것이다. 이 방법이 그 다음에는 잘 방비가 되겠지만.

 

훔치려는 자의 노력은 다양하게 나타난다. 페이스북 정보나 매장의 규칙 등을 이용하는 것도 가능하다. 우리가 알게 모르게 흘리는 정보들이 도둑들에게는 아주 좋은 자산이 된다. 영화 등에 나오는 내부 공모자가 없다고 해도 그들은 빈틈을 파고들고 문제를 해결한다. 하지만 아무리 완벽한 계획이라고 해도 변수를 모두 막을 수는 없다. 몇 가지 실패 사례는 이 때문에 생겼다. 도둑과 건물과의 관계를 멋지게 말하는 마지막 문장이 있다. “도둑들은 그들이 침입하려 하는 건물을, 건축을 구성하는 한 부분이다.” 이보다 현실적이고 정확한 표현은 없을 것이다. 인정해야 할 사실이고, 우리는 그 다음을 준비해야 한다. 막거나 도망가지 못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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