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 인형 인형 시리즈
양국일.양국명 지음 / 북오션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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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형제 작가의 공포소설이다. 많은 장르 작가들이 있지만 공포 장르 쪽은 작가가 풍부하지 않다. 뭐 다른 장르도 마찬가지이기는 하지만 특히 공포 쪽은 그렇다. 좀비를 다루는 공포 소설들이 몇 권 나왔지만 나의 부정확한 기억에 의하면 꾸준히 책을 내놓는 작가는 흔치 않다. 김종일 비롯한 몇 명의 작가들이 한때 비교적 자주 책을 내었지만 어느 순간 나의 기억에서 조금씩 멀어졌다. 검색을 하면 생각보다 많지만 절대적인 숫자가 부족하다. 이런 현실 속에서 이 두 형제 작가는 나름 꾸준히 책을 내고 있다. 그것도 어느 정도 수준을 유지한 채 말이다.

 

모두 네 편의 단편을 실고 있다. 세 편은 인형을 소재로 했고, 나머지 한 편은 좀비를 다루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은 표제작 <지옥 인형>이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과 다루고 있는 소재가 아주 잘 어울린다. 이 소설을 가장 잘 드러내어주는 문장이 있다. “공포는 밖에서 오지 않는다. 안에서 떠오른다.” 인간 내면 깊숙한 곳에 숨겨져 있던 죄의식과 공포를 ‘지옥 인형’을 매개로 폭발한다. 하지만 이것은 지옥 인형을 보고 죽은 사람들이 경험한 것이다. 이것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이 인형은 그 자체로 공포의 대상이다. 물론 공포 소설가에게는 아주 훌륭한 소재일 수 있다. 소설가를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데 마지막에 숨겨둔 한 방이 멋있다.

 

<엄마의 방>은 한 남자의 죽음과 그 앞에 놓인 인형에서 이야기가 시작한다. 아내를 사랑하는 남편의 비뚤어진 욕망이 바탕에 깔려 있고, 그 속에는 공포에 짓눌린 아이가 있다. 아이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데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인형이 음산하고 스산한 분위기를 유지한다. 엄마의 방이란 공간과 엄마의 죽음이란 사실이 인형과 아버지의 욕망으로 뒤섞여 가면서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이 모든 공포의 설정을 풀어주는 장면에서 알려주는 사실들은 아주 비현실적이다. 그리고 첫 장면으로 돌아가는 반전이 펼쳐진다. 이 반전이 조금 과한 설정이 아닌가 하는 의문도 든다.

 

<앙갚음>은 6.25를 배경으로 시작한다. 좌익과 우익의 이념 대립이 학살로 이어졌던 그 시절의 한 장면이다.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남쪽의 북한군은 고립되고 쫓길 수밖에 없다. 좌익의 공격이 이어졌던 순간이 지나고 우익의 공격이 시작된다. 이 과정에서 벌어지는 살육은 이성보다 감정에 더 중심을 둔다. 이 학살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복수란 형태로 나타난다. 인형의 형태를 가진 원귀들의 처참한 복수는 아주 잔혹하다. 단편의 특성 상 생략된 많은 이야기들이 개인적으로 더 관심이 생긴다. 좀더 분량을 키워 이야기를 풍부하게 만들었다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트렁크>는 개인적으로 아주 실망했다. 도입부는 전형적인 공포 장르를 따라가는데 중반 이후 조폭 같은 남자의 등장으로 공포 액션으로 바뀐다. 좀비처럼 변한 이유를 알려주지만 조금 황당하다. 좀비를 처리하는 방식도 조폭 식이다. 무엇보다 눈에 거슬리는 것은 여주인공 소영이다. 아무 것도 하는 것이 없고, 단지 그녀의 언니가 좀비로 변했다는 것과 이 모든 사건의 시작임을 듣는 존재로 한정된다. 또 조폭이 자신의 힘으로만 문제를 해결하려는 모습과 마지막 장면을 보면서 공포가 급속히 사그라들었다. 앞의 두 편에 비해 뒤의 두 편은 조금 많이 떨어진다. 그래도 한 여름의 무더위를 조금 식히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독자의 상상력이 뛰어나면 더욱 더 그 효과는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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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과 소설가 - 대충 쓴 척했지만 실은 정성껏 한 답
최민석 지음 / 비채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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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에게 미안한 말이지만 ‘최민석’이란 이름을 모른다. 최근에 나온 한국 작가에 대해 관심이 많지 않았기에 더욱 그렇다. 그러니 작가가 고민 상담하면서 곳곳에 풀어낸 작가의 작품들이 낯설기만 하다. 보통 어느 정도 책을 내고,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라면 한 권 정도는 읽을 법도 한데 최근 나의 독서가 한 곳에 편중되다보니 읽은 책이 한 권도 없다. 아니 이번에 한 권 생겼다. 바로 이 책이다. 소설가의 소설이 아니라 한 주간지에 상담한 것을 실은 책이란 점에서 살짝 미안함을 느낄 뻔했다. ‘뻔’이란 단어를 사용한 것은 에세이조차 읽지 못한 작가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고민 상담. 참 어렵다. 학창 시절, 직장 초기에 친구들 상담 많이 했다. 내가 이야기 잘 들어주고, 공감해주면서 상담을 잘 하는 줄 알았다. 착각이었다. 그냥 원론적인 말을 했을 뿐이다. 그리고 상담은 듣는 사람을 피곤하게 만든다. 그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더 그렇다. 실제로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은 부분 공감했는데 그것들 대부분은 원론적이다. 자신의 경험이 풀려나올 때 이야기는 길어진다. 이때 상담 내용은 설득보다는 이런 삶도 있다는 의미다. 작가보다 더 긴 세월을 살았고, 나름의 경험을 쌓은 나에게 이 내용은 별로 특별한 것이 없지만 2~30대의 청춘이라면 어떨까? 이 또한 개인에 따라 많이 갈릴 것이다.

 

주간지 <대학내일>에 연재한 것을 네 부분으로 나누었다. 시간 순이 아니라 그의 삶이 뒤섞여 있다. 자아, 사랑, 관계, 미래의 4장으로 나누었는데 질문들이 그렇게 기발한 것은 아니다. 일상에서 우리가 흔히 접하는 것들이다. 내가 겪었거나, 친구나 선후배 등이 겪은 것들이다. 내용이 조금 다르지만 질문의 기본은 비슷한 것들도 상당히 많은 것 같다. 뭐 기발한 고민을 질문으로 던진다고 해도 작가가 그 답변을 기발하게 받아줄 수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답변을 풀어내는 방식을 보통의 상담과 달리 재밌고,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했다면 어떨까? 이 뻔한 질문들을 지루하지 않게 읽은 것은 소위 작가의 ‘글빨’ 때문이다. 이 때문에 작가의 소설에 관심이 부쩍 생겼다. 당장 빌려 읽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작가가 글 속에서 왜 사지 않고 빌려 읽을까 하고 고민하지 않았는가.

 

고민 없는 삶이 있을까? 단언컨대 없다. 각자의 고민은 개인이 해결하거나 누군가의 도움을 얻거나 공감만으로 충분할 때도 있다. 이 상담들을 읽으면서 그 고민들이 결국 나와 관계로 이어짐을 발견하게 된다. 고민을 풀어가는 방식은 나의 경험에서 시작한다. 겪어보지 못한 것을 멋지게 잘 포장하는 소설가라고 해도 누군가를 진심으로 상당하려면 고민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 과정을 모두 드러낼 필요가 없지만 자신이 경험한 것은 하나의 사례로 활용하기 충분하다. 지면의 한계나 의도적인 생략들이 있는 경우도 있겠지만 이 경험이 고민 당사자에게는 작은 용기를 심어준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하나. 고민을 상담한 사람들의 선택과 결과는 모두 자신의 것이란 점이다. 소설가는 이 부분을 꾸준히 추신으로 덧붙인다.

 

작가도 말했듯이 고민을 하는 사람도, 상담을 하는 작가도 조금씩 변한다. 아니 변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살아가면서 주변 환경이 변하는데 나 자신만 옛것을 고집하는 것은 집착이고 아집이다. 유연한 사고와 행동이 왜 중요한지 소설가의 글속에도 몇 번 나온다. 그가 글로 풀어낸 청춘 예찬과 아쉬움은 나 또한 많이 느낀 것들이다. 지나간 세월의 아쉬움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는다. 고민만 하고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 것도 그 시간을 지나온 나에게는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고민은 사람의 삶에 깊이를 더하고, 또 다른 가능성의 문을 열어준다. 무거운 내용들이지만 결코 삶을 짓누르지 않고 유쾌함을 유지하는 에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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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면의 품격 - 맛의 원리로 안내하는 동시대 평양냉면 가이드
이용재 지음 / 반비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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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면의 기억은 상당히 오래 되었다. 처음 먹을 때는 맛도 모른 채 먹었다. 아버지를 따라 거래처 회사 근처에서 먹었다. 대학생의 입맛에는 이 맹숭맹숭한 면이 그렇게 맛있지 않았다. 내 입맛에는 오히려 시장통 양념 범벅 냉면이 더 맞았다. 그러다 집 근처에 있는, 아버지와 함께 간 그 냉면집을 혼자 가게 되었다. 그 당시 신문에 나오던 서울 4대 냉면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그 맛도 모르고 여름이면 몇 번 가게 되었다. 이 집 냉면을 먹은 다음부터 시장 냉면은 너무 자극적이라 반감이 생겼다. 친구들을 데리고 몇 번 갔지만 그들의 입맛에는 맞지 않았다. 그러다 다시 아주 자극적이고 싼 냉면을 좋아하게 되었다. 아버지와 함께 간 그 집은 장충동 평양면옥이고, 자극적인 그 냉면은 동아냉면이다.

 

한때 음식에 대해 먹고 안 죽으면 보약이란 생각을 했다. 자극적인 음식을 좋아했다. 물론 지금도 좋아한다. 그러다 언제부터인가 맛집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여름이면 늘 나오는 냉면집에 대한 정보를 얻고 유명하다는 식당을 한 곳씩 다녔다. 아버지가 올라와서 가게 된 을지면옥, 친구와 함께 간 을밀대, 비싼 불고기를 먹고 먹은 우래옥 등으로 발걸음이 옮겨갔다. 이보다 훨씬 전에 동국대 다니던 친구와 함께 간 필동면옥도 있다. 하지만 한결같이 나에게 냉면은 밍숭밍숭한 맛 그대로였다. 슴슴하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한 맛이라고 할까. 그러다 비오는 날 아내와 함께 간 논현동 평양면옥에서 강한 육수 맛을 느끼면서 냉면집들의 육수 맛을 구별하게 되었다.

 

그 후 다시 냉면집을 돌면서 맛을 비교하고, 취향에 맞는 맞을 찾아다녔다. 현재까지는 논현동이 가장 입맛에 맞다. 그리고 얼마 전 의정부 평양면옥이 분점을 낸 하남 스타필드에서 이야기만 듣던 그 맛을 보게 되었다. 을지면옥과 닮은 것 같지만 다른 그 맛. 생각했던 것 같은 환상적인 맛은 아니었다. 아마 시간이 되면 몇 번 더 먹어보고 나의 기억을 새롭게 하고 싶다. 이렇게 글을 지금도 여름만 되면 유명 인사들이 좋아하는 평양냉면 맛집들이 생각난다. 면과 육수를 비교하는 그들의 평가에서 개인의 취향을 발견한다. 이것을 기억하는 나에게 이 책의 저자가 매긴 점수는 왠지 개인의 호불호 혹은 취향을 나타낸 것과 같다. 분명 의미있는 작업인데 말이다. 같은 별점을 받은 업체들을 비교하면 너무 그 간격이 커진다. 나만의 생각일까?

 

냉면이라고 하면 보통 평양냉면을 말한다. 당연히 이 책에서 다루는 냉면도 평양냉면이다. 평양냉면하면 언제나 오고 가는 원형에 대한 논쟁은 깊이 다루지 않는다. 대신 한국 평양냉면의 뿌리와 그 가지를 구분하고, 후발주자들과 그 문법을 차용한 업체들을 다룬다. 서른한 곳의 냉면집 중에서 개인적으로 가본 곳은 열 곳도 되지 않는다. 저자의 분석 혹은 평가에 백퍼센트 동의하지 않는다고 해도 이런 작업들에는 언제나 관심 있다. 물론 음식점을 별점으로 평가한다는 것이 가능한가 하는 부분도 논의가 필요하다. 식당의 청결도나 서비스 등은 가능하겠지만 음식만 한정한다면 개인의 취향이 너무나도 다르다. “체계적인 이해에 바탕을 둔 분석과 정리 작업”이 필요하다는 데는 공감하지만 맛의 영역으로 넘어갔을 때는 어떨까? 개인적으로 이 책에 반감이 든 부분들은 바로 이 평가들이다. 어쩌면 나의 취향과 달라 괜히 트집을 잡는 것일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 냉면을 좋아하지만 자주 먹을 수 없다. 원하는 식당이 주변에 없고, 갈 경우 너무 유명해져 대기 줄이 너무 길다. 냉면에 대해 보고 들은 것들을 떠올리면서 나의 취향과 다른 사람의 취향을 비교한다. 이 책도 그런 연장선상에 있다. 단품으로 결코 저렴하지 않다는 평가는 동의한다. 수저통은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개선이 필요할 것 같다. 달걀 반 개를 냉면에 왜 올릴까? 하는 문제는 많은 답이 나왔지만 아직 정답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 여자들만 제복을 입고 있다는 지적 또한 개선이 필요하다. 이렇게 이 책은 평소 무심히 보고 지나간 것들을 제대로 지적한다. 면과 육수에 대한 평가는 식당마다 동의하지 않지만 참고할 부분이 많다. 책을 읽으면서 옛 추억에 잠기고, 시간 나고 기회가 닿으면 가보고 싶은 냉면집들을 다시 되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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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호실로 가다 - 도리스 레싱 단편선
도리스 레싱 지음, 김승욱 옮김 / 문예출판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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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랜만에 도리스 레싱의 소설을 읽었다. 아마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다섯 번째 아이> 이후 처음이다. 그때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했고, 한참 민음사에서 세계문학전집을 내놓기 시작한 때라 냉큼 들고 읽었다. 약간은 예상했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은 독서였다. 나의 내공이 많이 부족한 탓이었다. 그리고 책 욕심은 이것과 별개로 작가의 다른 책을 모으게 만들었다. 흔히 있는 일이다. 나중에는 이해하고 읽을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작용했고, 그 바탕에는 책 욕심이 강하게 자라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근거없는 자신감으로 다시 도전했다.

 

작가의 60년대 단편들을 모은 책 중 일부다. 나머지는 다른 제목으로 곧 나올 모양이다. 이 책에는 모두 열한 편의 단편이 실려 있는데 각각의 분량이 모두 다르다.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읽기가 그렇게 녹녹하지 않는 것 정도랄까. 물론 여유를 가지고 문장을 음미하고, 장면을 머릿속에 차분히 그려내고, 시대를 조금 더 이해한다면 내가 제대로 알지 못한 재미가 곳곳에서 나타날지 모른다. 하지만 나의 독서법은 그렇게 여유 있는 편이 아니다. 문장과 문장은 집중하지만 호흡이 조금만 흐트러지면 그 장면과 상황을 놓치는 경우가 많다. 이 단편집에서 쉽게 이미지가 그려지지 않아 호흡이 깨어졌다. 그 결과는 쉬운 책읽기가 아니란 것이다.

 

단편은 이야기를 압축적으로 그려내는 경우가 많다. 그 이야기 속에는 그 시대의 모습이 생략되어 있다. 사회와 문화의 변화, 과학과 기술의 발전은 현대에 들어오면서 급속하게 이루어졌다. 이것을 감안하고 읽어야 한다. 특히 1960년대를 다룬 소설이라면 감안해야 할 게 많다. 그 중 하나는 화폐의 가치고, 다른 하나는 성의 역할이다. 사실 화폐의 가치는 그 돈이 현재 얼마 정도일까 하는 수준에 머무는 작은 호기심이다. 반면에 성의 역할은 다르다. 이제 막 성의 자유가 대중적으로 퍼지던 순간이었다. 여성의 인권이 좀 더 신장되는 시간이었다. 작가는 이 시대를 날카롭고 생생하게 그려내었다.

 

표제작 <19호실로 가다>는 네 아이의 엄마인 수전이 자기만의 방을 찾고, 그 속에서 휴식하지만 결코 자신의 삶을 누리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처음에는 행복한 만남과 결혼과 출산이었지만 흐르는 시간 속에서 그녀의 삶은 힘을 잃어간다. 남편의 불륜이 있고, 집에 묶인 그녀의 삶은 점점 비루해지는 과정에서 결코 평온함을 찾지 못한다. 반복되는 일상은 그녀의 내면을 우울함으로 잠식한다. 남편의 황당한 제안을 보면서 이것이 그 시대에 그렇게 특별한 일이 아닌 것인지, 아니면 하나의 극단적 표현인지는 잘 모르겠다.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시간과 공간은 필요한 법이다. <영국 대 영국>의 엄마도 그렇지 않은가. 이 단편이 가장 강한 인상을 남긴다.

 

사실 첫 작품 <최종 후보명단에서 하나 빼기>를 읽을 때는 이제 좀 쉽게 읽을 수 있다고 자신만만했다. 착각이었다. 성공하지 못한 작가의 전업과 그의 욕망이 집착으로 변하는 과정은 아주 추했다. <옥상 위의 여자>는 남자의 시선에서 이야기를 그려낸다. 문제는 여자가 아닌데 보는 그들의 감정이 문제다. <내가 마침내 심장을 잃은 사연>은 실연의 아픔과 고통을 날카롭게 보여주고, <한 남자와 두 여자>는 출산 후 여성의 삶이 어떻게 변하는지와 미묘한 남녀 관계를 그려낸다. <방>은 환상과 현실이 교차하는데 나의 이해와 해석이 부족하다. 다시 한 번 더 정독한다면 다른 느낌일 것 같다.

 

<영국 대 영국>은 탄광노동자의 아들이 명문대학에 입학 한 후 집에 와서 겪는 일은 짧게 그려내었다. 계급과 계층문제가 가장 먼저 떠오르고, 먼 훗날 그들의 삶이 어떻게 급락할지 알기에 걱정되었다. <두 도공>은 꿈과 현실의 경계를 나누고 해석해야 하는데 쉽지 않다. 실제 토끼가 없는 영국이란 설정도 낯설다. <남자와 남자 사이> 속 두 여인은 연인과 아내의 경계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둘의 연대가 보기 좋지만 현실은 어떨까? <목격자>는 한 십대 여직원을 두고 벌어지는 두 늙은 남자의 반응이 노골적이다. <20년>은 사랑했던 두 연인 20년 만에 만나 서로의 만남이 엇갈린 이야기를 한다. 만약 그들의 사랑이 진짜였고, 그 갈망이 감정의 소모보다 노력으로 이어졌다면 어땠을까 하고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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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국적자
구소은 지음 / 바른북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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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이름보다 작가가 처음 쓴 소설 <검은 모래>로 먼저 각인되었다. 이 작품은 제1회 4.3평화문학상을 수상했다. 이 작품을 읽을 당시 크게 기대하지 않았는데 가독성과 재미와 역사성 등이 나를 사로잡았다. 그렇게 잊고 있던 작가가 새로운 작품으로 나타난 것이다. 소개글에서 <검은 모래>의 작가란 사실을 알고 반가웠고, 주인공이 프랑스 외인부대원이란 사실이 나를 유혹했다. 그렇게 읽기 시작한 이 작품은 한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이야기를 풀어내었다. 한 가족과 개인의 역사를 현대사의 흐름 속에 녹여내면서 말이다.

 

소설은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1부는 편지 형식을 통해 두 어머니의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그 사이를 현대사로 간략하게 채웠다. 작가의 관점이 담긴 이 1부는 60년대 이후 현대사를 압축적으로 요약하고, 그 시대 속에서 외화벌이를 위해 독일로 떠났던 두 직업군을 중심에 둔다. 간호사와 광부다. 말도 통하지 않은 먼 이국에서 이들은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면서 열심히 일했다. 주인공 기수의 아버지도 돈을 벌어 번듯한 집을 사고 자본을 모으기 위해 열심히 일했다. 서울대 출신이었던 외삼촌도 그곳에 갔다. 그리고 그 먼 이국에서도 한국의 남녀는 서로를 찾고 만났다. 숙희와 외삼촌도 그렇게 만났다. 하지만 장밋빛 미래를 위한 과한 노동이 문제가 된다. 외삼촌이 다리를 잃은 것이다. 기수가 고모의 아들이 된 이유다.

 

아들을 아들이라고 부르지 못하고,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현실 속에서 아이는 자란다. 두 어머니는 편지를 통해 서로의 안부를 묻고 소식을 전한다. 한국의 발전상과 개발독재의 폐해를 보여주고, 그 속에서도 열심히 살아가고 급속하게 변하는 민중의 모습을 그려낸다. 이 장면들을 읽으면서 내 어릴 때 기억들이 순간순간 겹쳐졌다. 나의 무식함도 같이 떠올랐다. 경제의 고속성장은 국민의 배고픔을 없앴지만 부의 불평등과 정치 민주화 욕구를 키워주었다. 아직 어린 기수와 일반 시민 가정에게는 큰 일이 아니다. 정작 큰 일은 큰돈에 대한 욕심과 친구에 대한 믿음으로 생긴다. 사기로 힘겹게 쌓아올린 가족의 재산이 사라진다. 이 일이 기수를 프랑스 외인부대로 가게 만드는 계기가 된다.

 

풍족하지는 않지만 부족함이 없이 자란 기수가 대학을 포기하고, 알바의 세계로 뛰어든 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집안의 몰락이 있은 후 결혼한 두 누나는 자신들의 몸만 쏙 빠져나갔다. 특전사를 제대한 후 조폭의 보디가드가 되지만 누명을 쓴 채 외국으로 달아난다. 그 사이에 불행이 또 하나 있다. 언제나 불행은 소리 없이 다가와 오랫동안 머물다 떠난다. 2부는 바로 기수가 박희준이란 이름으로 한국을 떠나 프랑스 외인부대원이 되고, 그가 경험한 일을 다룬다. 여기서는 한국의 정치 상황은 거의 다루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기수가 겪은 프랑스 자본주의의 민낯이 더 부각된다. 외인부대의 파병지들이 프랑스의 이익을 대변하는 곳들이기 때문이다.

 

이야기를 읽다보면 장신자의 모습에서 우리들의 어머니 모습을 발견한다. 자식들에 대한 사랑과 강한 생활력과 굳은 의지를 가지고 나아가는 모습 말이다. 그녀가 기수의 친모에게 보여주는 애정과 관심은 안타까움과 공감에서 비롯한 감정 때문이다. 잘만 되었다면 자신의 가족이 되었을 테다. 이 두 여인의 편지는 절제된 감정이 담겨 있다. 그 중심에 기수가 있다. 편지는 기수의 비밀을 알려주는 동시에 파독 간호사들의 삶이 어떠했는지 알려준다. 지금과 너무나도 다른 환경이라 그들이 겪었을 외로움과 그리움이 가슴 깊은 곳까지 와 닿지 않는다. 장신자의 마지막 편지는 지극히 현실적인 반응이고 배려이지만 기수에 대한 아픈 미련을 가진 그녀에게는 너무나도 매몰차다.

 

지수를 중심에 둔 이야기지만 이 소설 속에는 한국 현대를 살아온 우리의 부모님들이 있다. 지수가 외인부대를 제대한 후 파리 한인사회의 비리 등을 까발리는 것도 우리 삶의 한 단면이기 때문이다. 하나의 삶에 깊이 들어갔지만 하나의 사건을 중심에 놓기보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삶이 어떻게 흘러가고 변하는지 보여주는데 집중한다. 마지막 어머니의 편지는 순간 울컥하고 먹먹하게 만든다. 그 여백은 채워야 하는 것은 바로 우리의 상상력이다. 간결하게 그려진 기수의 삶을 보면서 긴 세월이 지난 나의 삶을 잠시 돌아본다. 추억 속으로 빠져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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