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크맨
C. J. 튜더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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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인상적인 도입부로 시작한다. 토막난 시체와 누군가가 잘린 머리를 들고 사라지는 장면이다. 그리고 1986년, 열두 살 소년들의 이야기로 넘어간다. 이것과 교차하는 현재 시간은 2016년이다. 이 30년의 시간을 더듬어 올라오면서 풀리는 이야기 방식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면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한 시기에 일어난 사건들이 현재의 삶을 뒤흔드는 구성이다. 앤더베리라는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1986년에 있었던 사건과 사고들이 시간 순으로 흘러나오고, 그 사건의 중심에 있던 소년 에디가 성인이 되어 그 시간을 되돌아본다. 이 사건들 옆에는 분필로 그린 그림이 있다.

 

표지의 그림을 보면 아이들 장난 같다. 핏자국이 없다면 더욱 그렇다. 실제로 작가는 분필로 그려진 그림에서 영감을 받아 이 소설을 집필했다고 한다. 초크맨이란 이름과 교차하는 두 시대는 자연스럽게 잔혹한 살인마를 떠올리게 만든다. 오랫동안 스릴러를 읽다 보면 이런 부작용이 가끔 생긴다. 실제 소설 속에서는 연쇄살인마가 등장해서 긴장감을 극도로 고조시키지 않는다. 30년이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주민들을 공포에 짓눌리게 만드는 살인마도 없다. 단지 과거의 사건들과 그 사건들의 숨겨진 비밀들이 놓여 있을 뿐이다. 이 비밀들이 하나씩 풀리면서 순간순간 섬뜩함을 느낀다.

 

십대의 나를 돌아보면 공부에 짓눌려 살았을 것 같지만 딴짓을 더 많이 했다. 혼자 잘난 척도 많이 했는데 돌아보면 멍청하고 유치했다. 잘 모르는 것을 아는 척하고, 욕을 입에 달고 살고, 허세로 가득했다. 나의 세상은 정말 좁아서 조금만 멀리 가면 다른 도시인 줄 알았다. 이런 십대 중 초반은 조금 더 순진했다. 열두 살 에디와 그 친구들의 행동을 보면서 내가 공감을 한 부분들은 바로 나의 경험과 조금은 일치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다른 시대와 나라라는 차이는 쉽게 좁혀지지 않지만 미숙한 소년들의 행동이 지닌 기본은 역시 변함이 없다. 가끔은 소심한 복수가 예상하지 못한 결과를 낳는 경우도 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예상 외의 사실들은 바로 여기서 비롯한 것들이다.

 

소설 속에서 가장 강한 인상을 남기는 사건은 당연히 프롤로그에 나오는 한 소녀의 죽음이다. 아름다운 외모를 가졌다가 놀이기구가 고장나면서 외모도 신체도 손상을 입은 일라이저가 바로 그녀다. 많이 다루는 방식 중 하나가 일라이저의 과거를 파헤치면서 진실에 다가가는 것인데 이 소설에서 일라이저의 삶은 지엽적인 사실 중 하나일 뿐이다. 오히려 분필로 그린 그림들이 더 강한 인상을 준다. 과거에 이 분필 그림은 친구들끼리의 장난이거나 암호문 같은 것이었는데 현재에는 하나의 암시처럼 다가온다. 이 분필 그림이 잊고 있던 30년 전 과거의 비밀문을 연다. 그 문 안에는 추악하고 섬뜩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뒤섞여 있다.

 

살인 사건과 죽음 몇 개를 빼면 한 소년의 성장 소설과도 같다. 킹의 소설 중 <스탠 바이 미>와 분위기가 비슷한 대목도 있다. 물론 다른 장면은 <샤이닝>을 떠올려주기도 한다. 이런 다양한 분위기를 담고 있지만 1986년의 에디가 겪는 일들은 결코 평범하지 않다. 그가 살아온 동안 그 마을에서 일어난 가장 자극적인 사건들이 그 한 해에 일어났다. 놀이 기구가 고장 나 한 소녀가 크게 다치고, 다시 그 소녀가 토막 살해당한다. 낙태를 반대하는 목사가 죽기 직전까지 폭행을 당한다. 한 소년은 자전거를 건지려고 하다가 물에 빠져 죽는다. 이 모든 사건들이 에디와 연결되어 있고, 이 죽음 이면의 진실이 30년의 시간이 흐른 후 하나씩 밝혀진다,

 

가독성이 좋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비밀을 소재를 하나씩 엮어가면서 이야기를 잘 만들었다. 현재의 사건을 풀어가는 과정에서 에디는 실수를 몇 번 저지르지만 ‘예단’을 경고하면서 진실에 다가간다. 하나의 사실을 알기 위해서는 겉에 드러난 모습보다 더 깊이 들어가야 하는데 보통은 그 겉모습만 가지고 판단한다. 선입견과 편견이 사실을 파고들고 직시하는 것을 방해한다. 이것은 토막 살인 사건을 다루는 형사들도 마찬가지다. 그 진실이 드러나기까지 걸린 시간이 30년이다. 이것도 과거를 파헤쳐 돈을 벌려는 시도가 없었다면 결코 해결되지 않았다. 가끔 나쁜 의도가 좋은 결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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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 오거스트의 열다섯 번째 삶
클레어 노스 지음, 김선형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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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한 작품이다. 타임루프를 다룬 소설 중 최고의 작품 중 하나다. 개인적으로 타임루프를 다룬 영화 <시간의 블랙홀>을 좋아하는데 이 소설은 훨씬 광대하고 복잡하고 철학적인 문제를 다루면서도 재미를 놓치지 않고 있다. 반복되는 삶 속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이런 상상력으로 풀어내었다는 점에서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아이에게서 어른으로, 아이에게서 어른으로” 이 문장을 처음 볼 때는 그 의미를 잘 몰랐다. 하지만 이야기 속에 빠져서 이 반복되는 삶을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면 그 의미를 알게 된다.

 

해리 오거스트. 1919년 1월 1일 기차역 화장실에서 태어난다. 귀족인 힐러 가문의 아버지가 하녀를 강간한 결과로 탄생했다. 태어나자마자 어머니는 죽고 그 가문의 관리인 부부의 아들로 자란다. 첫 생애는 평범한 사람의 삶을 그대로 살았다. 우리가 평생 한 번은 겪는 그 삶이다. 하지만 다시 삶을 시작할 때 이전 생의 기억을 모두 갖고 있었다. 혼돈에 빠진다. 미래를 기억하다보니 제 정신이 아니다. 일곱 살에 정신병원에 보내지고 그곳에서 자살한다. 그리고 다시 삶이 반복된다. 이 반복되는 삶을 이해하기 위해 종교를, 의학을, 물리학을 공부한다. 왜 이런 삶을 사는지 이해하지 못하지만 자신과 같은 삶을 사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크로노스 클럽이다.

 

이런 반복되는 삶을 사는 사람들을 칼라차크라라고 한다. 이들 중 극히 일부는 완벽한 기억력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우로보란이라고 부른다. 해리는 우로보란이다. 그의 삶 중 하나는 제니라는 여성을 사랑하고 그녀에게 자신의 비밀을 말하는 것이다. 탁월한 외과의사인 그녀지만 남편을 이해할 수 없다. 결국 떠나는데 그녀를 찾아간 것 때문에 정신병원에 갇힌다. 그의 기억력 때문에 정부요원에게 정신병원에서 나오게 되지만 이것이 독이 된다. 미래를 정확하게 안다는 것은 엄청난 힘을 가진 것과 같다. 탈출을 시도하다 다시 잡힌 후 고문을 당하면서 미래를 술술 분다. 잠시 탈출한 후 지인의 도움으로 광고를 낸 것을 보고 칼라차크라가 찾아온다. 크로노스 클럽과 처음 만난다.

 

반복되는 삶을 살게 되면 우린 무엇을 할까? 소설 속 해리는 다양한 공부를 하고, 엄청난 부를 쌓는다. 하지만 이 크로노스 크럽에는 한 가지 금지사항이 있다. 인류의 역사에 인위적으로 개입하지 않는 것이다. 이 개입으로 인해 과거에도 인류의 멸망이 한 번 있었다. 아니 어쩌면 더 많을지도 모른다. 지구에서 인류가 사라지는 현상을 막기 위해 미래에서 과거로 메시지가 전달된다. 그 방법은 바로 아이에게서 어른으로, 아이에게서 어른으로 구두로 전달하는 것이다. 세계가 끝나고 있다는 메시지가 해리에게 전달될 때는 그가 병원에 입원해서 죽음을 기다리던 시기다. 이제 해리는 그 문제를 풀기 위해 그 원인을 찾아야 한다.

 

칼라차크라, 이들은 영생자다. 천년을 직선적인 삶으로 살지 않고, 한 시기를 반복적으로 산다. 왜 이런 아이들이 태어나는지 모르지만 이 출생을 막는 방법이 한 가지 있다. 바로 태어나기 전에 죽이는 것이다. 임신한 태아를 죽이는 것을 말한다. 때문에 칼라차크라들은 자신들의 출생 비밀을 꼭 지킨다. 그들도 사람인지라 죽음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 생애에서 죽음을 경험했다고 해도 다음 생이 있기에 어떤 순간에는 자살이 하나의 선택이 되기도 한다. 이것과 다른 것으로 <망각>이 있다. 전생의 기억을 잃는 것이다. 이 시술을 받게 되면 처음 태어난 것으로 생각한다. 물론 그 다음 삶에서는 다시 반복적인 일이 생길 수 있다. 이 두 가지는 이 소설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같은 삶을 반복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새로운 경험으로 옮겨가기 위해서는 일정 시간을 거쳐야만 한다. 물론 시간을 단축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삶을 끊고 싶고, 내 존재의 의미를 알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단순히 자신의 죽음만을 원한다면 출생하기 전에 죽이면 된다. 그러나 존재의 의미는 어떨까? 이것을 알고자 하는 인물이 미래 세계를 끝내는 역할을 한다. 바로 해리의 제자이자 친구이자 숙적인 빈센트 랜키스다. 중반 이후는 빈센트의 정체를 밝히고, 그를 쫓는 과정과 출생의 비밀을 알아내기 위한 노력으로 이어진다. 이 시간들은 결코 짧지 않다. 100년이 훌쩍 넘는다.

 

단순히 소재만으로 이야기를 재밌게 끌고 나갈 수는 없다. 풍부한 이야기를 잘 짠 구성 속에 녹여내야 한다. 단순히 직선적으로 배치하는 것이 아니라 칼라차크라처럼 선형적으로 풀어내야 한다. 현재의 삶에 과거의 기억과 경험을 적재적소에 집어넣고, 과거의 사례를 통해 미래의 가능성을 생각하게 만든다. 미래의 정보가 과거로 거슬러 올라오지 않으면 과거는 오래 보존되는 메시지를 통해 자신들의 시대 정보를 남긴다. 다른 출생 연도에서 비롯한 나이 차이가 견고한 시간 고리를 만든다. 놀라운 상상력이다. 모두 읽은 지금 작가의 다른 작품을 찾아보지만 한국 출간작이 보이지 않는다. 시간과 역사를 조금 다른 시각에서 보고자 하는 독자에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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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내는 엄마에게 - 아이와 나 사이 자존감 찾기 부모되는 철학 시리즈 10
박현순 지음 / 씽크스마트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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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남자다. 아빠고, 남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 나오는 내용 중 많은 부분에 공감할 수밖에 없다. 육아에 지친 아내가 이 책 저자처럼 울고, 화내고, 자책하고, 웃고 하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고 있기 때문이다. 아내는 결혼 후 아이를 낳기 전 자신이 생각한 엄마의 모습과 현실의 괴리를 몸과 마음으로 처절하게 느끼고 있다. 하루라도 마음 편하게 쉴 수 있는 날을 찾아보지만 이것 또한 쉽지 않다. 아이의 행동과 자신의 행동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인터넷을 수시로 뒤지지만 명확한 답이 없다. 물론 이 책이 그 답을 내놓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누구나 처음 하는 육아의 어려움을 알려주고, 그 과정에 얼마나 많은 실수와 실패가 있는지 보여준다.

 

“제발 엄마 좀 살려주라. 나보고 어떡하라는 거니.” 이 문장을 읽고 어쩌면 이렇게 똑같은 말이 나올 수 있을까 하고 신기했다. 그리고 지금도 얼마나 많은 초보 엄마들이 울면서 이 말을 쏟아내고 있을까 생각했다. 이 말을 들을 때 가슴 한 곳이 쿵 하고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불안감이 고조되었다. 혹시 무슨 일 생기는 것 아니야 하는 걱정도 같이 왔다. 하지만 엄마는 강했고, 그 시간이 지나자 아이를 안고 일상으로 돌아왔다. 이 문장은 그 뒤로도 아주 힘들 때면 한두 번 반복된다. 엄마도 사람이다 보니 늘 좋은 몸 상태를 유지하는 것은 아니다. 이때 아이가 생각대로 따라주지 않으면 이 말이 자신도 모르게 나온다.

 

저자는 상담을 공부했고, 두 아이를 키운 엄마다. 그녀의 경험담을 읽다 보면 보통의 엄마 모습이 보인다. 자기 아이가 잘 되길 바라면서 책을 사고, 읽어주고, 미래를 설계하는 모습 등이 그렇다. 육아를 위해 많은 육아 서적을 읽고 현실에 그것을 적용하기 위해 노력도 많이 했다. 다름보다 차이가 먼저 눈에 들어오는 부모가 보여주는 행동들도 꽤 많이 했다. 자식을 위하는 마음에서 저지르는 누구나 겪는 실수다. 이 실수를 인정하고 고치는 노력이 필요한데 저자의 글에서는 이것이 많이 보인다. 모임을 만들어 자신들의 경험을 공유하고 자신의 내면을 탐구한다. 그 노력의 결실 중 일부가 이 책이다.

 

많은 이야기에 공감한다. 그리고 많은 이야기에서 배운다. “아이를 있는 그대로 보고, 기분을 알아주고, 생각을 들어주는 한 사람이 굳건히 있으면 아이가 스스로 건강한 성벽을 만들어간다.” 이 문장은 아이들을 쉽게 야단치고 망신 주는 일이 많다고 해도 이 한 사람으로 아이가 살아난다는 의미다. 얼마나 놀라운 치유와 재생인가. 옆집 엄마의 말에 휘둘리는 엄마들에게 비교는 자신과 아이를 힘들게 하는 요인 중 하나다. ‘행복은 나 스스로 감사함에 달린 것’이라고 할 때 이것은 더 분명해진다. 성공한 육아의 케이스만 따라 하다가는 엄마도 아이도 맞지 않는 옷을 입는 것과 같다고 지적하는데 동의한다. 모든 아이는 제각각 다름을 우리가 인정해야만 한다.

 

저자가 심리상담사이다 보니 몇몇 저서의 인용이 들어 있다. 자신의 상담에 인용하기 위한 것보다 자신의 육아에 도움을 받았다는 느낌이 먼저 든다. 엄마 자기치유 프로젝트에서 지지, 희망, 중용, 위로, 치유, 감사, 도움, 용기, 수용, 확신, 엄마로 이어지는 과정은 이 부분을 잘 보여준다. 각 장마다 들어있는 쉼표 그리는 시간은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 “우리 엄마는 가끔 악마로 변한다.”고 쓴 학교 숙제는 충격적이지만 많은 부분 공감할 수밖에 없다. 나 자신도 어릴 때 겪은 일이고, 곁에서 가끔 보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이 하나 있다. 아이의 성장과 더불어 엄마도 성장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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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섬광 - 김은주 미스터리 소설
김은주 지음 / artenoir(아르테누아르)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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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다섯 살 소년이 한 병원의 옥상에서 뛰어내렸다. 그 소년의 이름은 고윤이다. 그 소년이 병원에 오면 늘 만나고 가는 소녀가 한 명 있다. 코마 상태에 있는 그녀의 이름은 수인이다. 소년이 옥상에서 뛰어내린 후 수인은 깨어난다. 이 엇갈린 시간 속에 숨겨진 이야기들이 있다. 소년이 스스로 목숨을 던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와 그 이유를 알기 위해 노력하고 복수를 하고자 하는 소녀가 이야기의 중심에 선다. 그리고 이 소년과 소녀를 둘러싸고 어른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형사 무원과 간호사 희정과 정신과 의사 승렬 등이다. 이들의 삶과 의지 등이 현실의 무게와 엮이면서 아주 잔혹하고 추악한 과거가 밝혀진다.

 

전체적으로 이야기가 조금 무겁다. 병원이란 공간을 무대로 아픈 사람들과 그들을 돌보는 사람들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형사 무원도 마찬가지다. 열다섯 소년이 자살했는데 그 이유가 의문스럽다. 사라진 핸드폰은 또 어디에 있을까? 간호사의 힘든 일을 묵묵히 처리하는 희정에게 한 소년의 죽음과 한 소녀의 깨어남 사이에 자신이 놓여 있다는 사실을 안다. 이 둘의 연결고리로 그녀가 선택되었고, 윤이가 죽기 전 그녀에게 핸드폰을 보냈다. 정신과의사 승렬은 절친을 돕지 못했다는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다. 남극으로 가고 싶지만 신체검사 등에서 탈락했다. 욕구와 의지가 행동으로 이어지지 못한 결과다.

 

코마에서 깨어난 수인은 코마 상태에서 주변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고윤이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구체적으로 하나 하나 열거하지 않지만 그 아이가 자살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알고 있다. 정확한 증거를 원한다. 희정에게 전달된 핸드폰 속에 담겨 있지만 그녀는 선뜻 전달하지 못한다. 힘든 간호사 업무를 수행하지만 현재까지 잘 해내고 있다. 갑자기 수간호사 미영이 이달의 미소 간호사로 꼽을 정도다. 이런 그녀지만 초보 시절에는 실수도 있었다. 그 시기를 거친 후 자신의 몫을 묵묵히 잘 처리하고 있다. 그런데 한 소년의 자살과 한 소녀의 깨어남은 또 다른 문제다. 수인의 행동과 반응이 그녀에게 낯설다.

 

메디컬 스릴러에서 형사 무원은 진실을 파헤치려는 유일한 어른이다. 납득할 수 없는 소년의 죽음과 그 소년의 과거를 하나씩 따라간다. 하지만 5년 전 소아중환자실에 있던 여섯 아이들의 집단 죽음에서 멈출 수밖에 없다. 자료도 정보도 부족하다. 당시 생존자가 두 명 있었는데 이들이 바로 고윤과 수인이다. 고윤은 매주 병원을 방문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코마 상태인 수인에게 한다. 이 기억을 가지고 있던 수인이 깨어났을 때 고윤은 죽었다. 그녀가 고윤의 시체를 보기 위해 간 것은 자신들만의 기억과 아픔을 잊지 않기 위한 하나의 의식과 같다. 수인은 정보를 찾고 얻기 위해 조금씩 나아간다.

 

병원에 가면 우리가 항상 만나는 인물들은 바로 간호사다. 입원하면 가장 가까운 인물도 간호사다. 크게 빛나지 않지만 그들이 없다면 병원 생활은 더 힘들 것이다. 그리고 가장 많은 비밀을 아는 것도 역시 그들이다. 희정에게 고윤의 핸드폰이 전달된 것은 바로 그녀가 평소 보여준 행동 때문이다. 누구도 믿을 수 없는 현실에서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어른이었다. 이 어른들의 현실을 작가는 조금 무겁게 그려낸다. 생략된 수많은 이야기들이 빠르게 소설을 읽게 하지만 풍성한 이야기를 만드는 데는 실패했다. 그렇다고 간결하고 빠른 진행도 아니다. 단단한 문장과 진행에 비해 구성이 조금 허술한 느낌이다.

 

사실 중반도 가기 전에 이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미스터리를 알게 되었다. 물론 이것을 안다고 해도 상황과 전개를 통해 긴장감을 고조시킬 수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은 그런 긴장감이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감정적으로 공감하는 상황이 많지만 미영이 찾아간 간호사가 보여준 행동과 그 이면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설명이 부족하다. 그 잔혹한 행동까지 할 정도였을까 하는 것도. 아쉬운 부분들을 가려줄 한 방도 이 소설에는 보이지 않는다. 잘 짠 구성의 힘으로 이야기를 엮은 것도 아니라 문장이 지닌 힘이 오히려 묻힌다. 아쉽다. 그렇게 잔혹하고 대담한 범죄를 저지른 인물들이 그렇게 허술하게 상황을 만들고 이어간다는 사실을 개인적으로 납득하지 못하기에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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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를 떠나보내며 - 상자에 갇힌 책들에게 바치는 비가
알베르토 망겔 지음, 이종인 옮김 / 더난출판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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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알베르토 망겔의 책을 읽었다. 이렇게 적으면 그의 책을 많이 읽은 것 같지만 두 번째다. 첫 번째 책은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 이펙트>이다. 서구 문화의 근원을 파헤친 이 책을 아주 힘들게 읽었는데 잠시 그 기억을 잃고 다시 선택했다. 서재를 떠나보낸다는 말에 혹했기 때문이다. 알베르토 망겔에 대해 잘 몰랐을 때 그의 책을 반값으로 살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놓쳤다. 그 아쉬움이 아직도 남아 있다. 그리고 겨우 240 여 쪽에 이르는 이 책을 천천히 힘들게 읽었다. 흥미롭고 재밌는 대목들도 많았지만 압축적으로 쓴 내용들을 따라가기에는 나의 지식이 많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소개글에 3만5천여 권의 책을 70여 개의 박스에 포장한다는 글을 읽고 두 번 놀랐다. 첫 번째는 당연히 3만5천 여 권의 책 때문이고, 그 다음은 겨우 70여 개의 박스에 그 책을 모두 담을 수 있나 하는 의문 때문이다. 그리고 나의 머릿속은 그의 서재를 떠올리느라고 바빴다. 일반적인 도서관과 다른 배열과 서가의 모습을 상상하는 즐거움을 누렸다. 이와 더불어 서재를 정리하는 그의 마음 중 일부를 이해하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그와 비교할 수 없이 적은 책을 가지고 있지만 순간적으로 책장을 어떻게 정리해야 이사 갈 때 큰 부담이 없을까 하는 고민을 늘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제목과 목차만 놓고 보면 가볍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는 알베르토 망겔이다. 독서의 폭과 깊이에서 이미 어느 단계를 넘어섰다. 가벼운 일상을 풀어내면서도 서양 고전을 인용하고 엮으면서 이야기의 깊이를 더하고, 그와 비슷한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주석을 참고할 수밖에 없다. 이 주석도 서양 철학이나 문학을 잘 모른다면 천천히 숙독해야 한다. 숙독했다고 단번에 그 의미를 파악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너무 유명해서 내용은 알지만 읽지 않은 작품들을 말할 때는 그 두껍고 어려운 책을 다시 도전해야 하는 마음까지 생긴다.

 

많은 작가와 작품이 글 속에 나오지만 머릿속에 가장 강하게 남는 작품은 두 편이다. 하나는 단테의 <신곡>이고, 다른 하나는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다. <신곡>은 대학 때 도전했다가 몇 쪽 읽지 않고 포기했고, <돈키호테>는 책만 사놓고 도전조차 하지 않았다. 이런 나이니 다른 작가들의 글에서 얻은 간접 정보 밖에 없다. 이런 때 얻는 정보는 피상적일 수밖에 없다. 플라톤 식으로 말하면 실체는 보지 못하고 그림자만, 그 중에서도 일부만 본 것이다. <돈키호테>를 읽은 독자 백 명이 각각 다른 돈키호테를 만들었다는 글을 보면서 나에게는 해당되지 않음을 느꼈다. 영화나 연극이나 다른 글들을 보고 나만의 돈키호테를 그려내었다고 주장할 수도 있겠지만.

 

책과 도서관에 대한 깊은 통찰이 압축적으로 담긴 책이다. 그러다 보니 주석을 보지 않으면 놓치는 부분이 더 늘어난다. 언어와 이야기, 재현을 둘러싼 신과 인간의 관계, 꿈과 현실, 읽기와 쓰기, 책과 도서관의 관계 등으로 분류하는데 늘 그렇듯이 나의 지식이 부족해서 많은 부분을 놓쳤다. 앞에 몇 자 적은 것들은 나의 몇 가지 경험과 연결된다. 이것마저 없었다면 나의 독서는 아주 편협한 시선 아래 놓여 있었을 것이다. 뭐 지금도 독서의 편중 현상은 줄어들 기미가 없다. 망겔의 깊고 넓은 독서는 그의 글을 읽을수록 부러움의 대상이다. 현대의 고전이라고 불리는 책들조차 읽지 않은 나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독서나 서재에 관한 책을 읽다보면 사고 싶은 책이 늘어난다. 그런데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책들은 책장을 잘 찾아보면 이미 있는 책들이 많다. 다만 아직 읽지 않은 책들이다. 그렇다고 금방 읽을 수 있거나 읽을 책들이란 의미는 아니다. 단지 나의 허영을 채워줄 수 있다는 의미다. 어느 순간 읽는 것보다 소장에 더 정성을 들이다 보니 권수가 점점 늘어났다. 그래서 <서재를 떠나보내며>란 제목에 더 혹했다. 읽은 책들이야 떠나보내면 되지만 언젠가 읽겠지 하고 샀다가 그 언제에도 읽을 가능성이 없는 책들을 보면서 다시 한 번 책장 정리의 필요성을 느낀다. 망겔이 발터 벤야민에 느낀 감정의 일부이지만 나도 망겔의 서재 정리를 보면서 느끼는 바가 적지 않다. 읽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어렵다였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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