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선인간
찬호께이 지음, 강초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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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최근 가장 핫한 중국 작가인 찬호께이의 연작단편집이다. 아직 그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13.67>을 읽지 않았지만 늘 관심에 두고 있다. 물론 책은 구입해서 모셔두고 있다. 이번 작품은 기존의 작품과 다르다고 하는데 실제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 다르다. 초능력을 가진 킬러가 등장한다. 비현실적 인물이 주인공이지만 핵심 전개 방식은 추리소설이다. 미스터리를 중심에 놓고, 초능력을 소재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그렇게 길지 않은 단편 속에 아주 재밌게 이야기를 구성하고 반전을 펼친다. 짧은 글이라 훨씬 집중하기 좋다. 거기에 얼마나 인간적이고 매력적인 주인공인가.

 

소심한 성격에 체력도 평균 이하인 주인공이 어느 날 갑자기 초능력을 가진다. 이것을 다룬 첫 단편이 이 연작소설집에는 없다. 작가의 말을 빌리면 그 작품이 외전 격이라고 하는데 언젠가 읽어보고 싶다. 물론 그 작품을 읽지 않았다고 해도 이 단편집을 이해하는데 큰 무리가 없다. 이 초능력은 정말 대단하다. 그가 사람에 접촉하고 프로그램된 명령어를 입력하면 그대로 실행된다. 즉 며칠 뒤 어떻게 죽는다라고 하면 그대로 죽는다. 다만 한 가지 약점이라면 신체에 접촉해야 한다는 점이다. 킬러라는 사실이 알려지지 않기 위해서는 살해 대상과의 접촉에 신중해야 한다. 무차별 살인도 가능하지만 하나의 행동 방식이 반복되면 그 정체가 드러날 수밖에 없다. 작가는 이 전제 조건을 아주 중요하게 다룬다.

 

<이런 귀찮은 일>은 이 직업이 가지는 문제점을 잘 보여준다. 신분을 숨기고 사람들의 시선에서 멀어져야 한다. 대상을 관찰하고 조사해서 최상의 접촉을 만들어야 한다. 대상의 생활방식을 조사해야 하는데 방해하는 아이가 있다. 풍선으로 햄스터를 만들어 달라는 아이다. 이 도입부에서 그의 능력과 이전 직업을 알려준다. 하지만 더 문제는 그의 외딴집 옆에 이사온 한 남자다. 괜히 신경 쓰인다. 그의 정체는 무엇일까? 어떤 일이 펼쳐질까? 이 이야기의 끝에 이 초능력의 또 하나 문제점이 드러난다. 그것은 한 번 입력한 명령어는 수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십면매복>의 화자는 초능력 킬러가 아니다. 형사다. 거대제약회사의 합병을 추진한 사장을 보호해야 하는 형사다. 살인은 통보되었고, 경호회사 사장은 이상한 모습으로 죽은 채 발견되었다. 어떻게 살인했는지 결코 알 수 없다. 이 단편에서 킬러의 별명이 풍선인간이라는 것이 알려진다. 죽은 시체의 모습들 때문이다. 형사의 경호는 단단하다. 신분이 확인되지 않으면 회의장에 들어올 수 없다. 총도 반입이 되지 않는다. 독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킬러는 이런 방식으로 살인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대상과 접촉해야 한다. 자신의 정체가 드러나지 않은 채로. 지키는 자의 입장에서 풀어가는 이야기는 예상하지 못한 반전으로 이어진다.

 

<사랑에 목숨을 걸다>는 기본 트릭이 쉽게 드러난다. 거대한 부를 가진 남편을 둔 전직 미인대회 우승자이자 영화배우인 궈 부인이 남편의 유일한 딸의 살인을 의뢰한다. 킬러는 다른 의뢰도 있다고 말한다. 작은 실수다. 궈 부인이 살인을 의뢰한 이유는 남편이 암에 걸렸는데 자신에게 말하지 않고 딸에게만 말했기 때문이다. 음! 사실일까? 킬러는 의뢰비로 왕년의 육체파 배우의 몸을 요구한다. 그리고 그녀가 어떻게 한 자리씩 올라가게 되었는지 알려준다. 몸 로비다. 이런 소소한 것도 재밌지만 진짜로 흥미로운 것은 예상된 이야기 다음이다. 마지막 문장은 새로운 사실을 섬뜩하게 알려준다.

 

<마지막 파티>는 선입견을 그대로 깨트리는 서술 트릭을 이용했다. 킬러가 살았던 동네에 남매가 할아버지 집에 놀러온다. 뉴스에서 박물관 살인 사건이 나온다. 하나의 암시다. 남동생 샤오바오는 탐정 놀이에 빠져 있다. 누나와 술래잡기를 한다. 누나가 한 집에 몰래 숨는다. 그러다 킬러로 추정되는 남자와 대리인의 대화를 듣는다. 그녀가 들었다는 것을 알면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른다. 동생과 함께[ 간 뒷동산에서는 이상하게 죽은 무수한 동물의 시체를 발견한다. 그리고 킬러가 이 남매가 자신의 정체를 알고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잘못하면 할아버지까지 죽을 수 있다. 반전은 바로 여기서부터다. 아주 멋진 서술트릭으로 나를 놀랜다. 풍선인간의 다음 이야기도 나온다고 하니 더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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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사랑을 잘못 배웠다
김해찬 지음 / 시드앤피드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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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발적인 제목이다. 사랑을 배워야 하는 시대에 감히 사랑을 잘못 배웠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그럼 그는 사랑을 제대로 했을까? 아니다. 이 에세이를 읽다 보면 ‘너’는 ‘나’가 된다. 그의 경험들이 글 속에 조용히 녹아 있다. 이 경험들은 한 번 이상 사랑을 경험한 사람들이라면 공감할 부분이 많다. 최소한 나는 그랬다. 이 글속에 나오는 사랑들은 현재 사랑보다 과거 사랑에 더 가깝다. 만남, 사랑, 헤어짐, 그리움, 추억 등으로 이어지는 과정들 속에 진한 경험담과 아쉬움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그 감정을 경험했기에 오히려 담담하게 읽을 수 있었다.

 

SNS를 거의 하지 않는 나에게 김해찬이란 작가는 낯설다. 이 낯섦이 가끔은 가벼움으로 다가오는 경우도 있다. 어딘가에서 본 듯한 글들이 범람하는 인터넷에서 자신의 마음과 생각을 잘 정리해서 풀어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도 사랑이라면. 세상에는 사랑을 참 쉽게 하고, 잘 헤어지는 사람도 많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세상이다. 이런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딴 세상 사람 같다. 나보다 훨씬 힘들게 사귀고 헤어지는 친구들을 보면 답답하다. 아마 전자의 친구들이 볼 때 내 모습이 그렇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절대적 시간은 동일하게 흐르지만 상대적 시간은 다르게 흐르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 속에서 자주 느끼는 감정 중 하나가 시간이다.

 

세 부분으로 나눠 이야기가 진행된다. 앞의 두 부분은 사랑과 이별과 추억 등을 다룬다. 마지막 부분은 작고 사소하지만 그가 소중하게 생각했고 사랑했던 것들에 대한 이야기다. 당연히 앞의 두 이야기는 무겁다. 가슴을 아프게 하는 것도 있다. 지나간 추억을 떠올리는 일은 더 많다. 이제는 회색빛으로 가득한 그 시간을 잠시 컬러로 바꿔주기도 한다. 이런 사랑 이야기는 사랑과 실연을 경험했을 때 더 많이 공감한다. 아마도 젊은 청춘들에게 이 글은 현재의 감정을 대변해줄 것이다. SNS에서 ‘좋아요’가 많아지는 것도 그들의 현재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작가는 흔한 말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구속은 사랑이 아니다.’ 뻔한 말이다. 그런데 이 문장 밑으로 가면 “사랑은 더 넓은 세계를 보여주는 거다.”란 문장이 나온다. 이것을 “자신 안에 머무르길 바라는 것”이란 욕심으로 해석한다. 그럴까? 소유욕과 머무르길 바라는 것을 같이 놓을 수 있을까? 그리고 “우린 사랑을 잘못 배워도 한참 잘못 배웠다.”라고 말한다. 여기서 아마 책 제목이 나왔을 것이다. 사랑을 하게 되면 우리가 가지는 감정과 욕심을 구속이란 단어로 표현했으나 완전히 동의하지 못한다. 구속의 다른 의미가 머릿속에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사랑의 시간은 영원하지 않다. 결혼이 사랑의 완성이란 거짓말도 있지만 감정은 영원할 수 없다. 만나면 헤어지는 순간이 온다. 이때 우리의 본모습이 아주 잘 드러난다. 찌질한 성격이나 후회나 아쉬움이나 집착 등이 밖으로 드러난다. 물론 이것도 시간 속에 조금씩 희미해진다. 새로운 사랑을 위해서는 추억 속에 조용히 묻어둬야 한다. 잊는 것이 아니라 지우는 것이란 글에서 우리의 한계를 깨닫는다. 집에서 졸면서 봤던 <이터널 션샤인>의 내용을 설명해줄 때 결코 지울 수 없는 기억도 있다는 사실을 떠올린다. 행복했던 시절을 떠올릴 수 있다는 것도 얼마나 다행인가.

 

“매일이 괜찮은 척하는 날들의 연속. 그 척이 쌓여서 정말 괜찮은 날이 되기를 바라는 작은 바람.” 이것은 사랑에서도, 삶에서도, 일에서도 늘 있는 일이다. 삶은 견디고 견디고 견디는 일의 연속이다. 어떨 때는 거짓과 허세로, 어떤 순간은 후회와 안타까움으로, 진실된 마음을 숨긴다. 작가의 정제된 문장들은 자신의 감정을 그렇게 정리하고 있다. 자신을 감정의 늪 속에 빠트려 허우적거리지도 않는다. 짧은 문장이 더 긴 여운을 남기는 것은 바로 작가의 긴 풀이보다 자신의 감정을 돌아볼 시간을 더 주기 때문일 것이다. 이 절제된 감정의 문장들을 읽으면서 작가의 삶이 궁금해졌다. 나와 주변 친구들과 다른 점이 무엇일까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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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대로 혼자서 간다
와카타케 치사코 지음, 정수윤 옮김 / 토마토출판사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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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와쿠타가와상 수상작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작가의 나이다. 1954년생으로 64살이다. 55세부터 소설 강좌를 들으며 작가로 성장했다. 늦은 나이에 소설을 써 성공한 작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한 나라를 대표하는 문학상을 받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그것도 데뷔작으로. 최근 아쿠타가와상을 젊은 작가들이 많이 받은 것을 감안하면 이례적으로 다가온다. 이 이례적인 상황이 일본에서는 큰 흥행으로 이어지고 있는 모양이다. 개인적으로 노년의 내면을 다룬 소설을 그렇게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점점 나이가 들면서 공감하는 부분이 늘어난다. 당연히 새롭게 깨닫는 부분도.

 

소설 속 주인공은 혼자 사는 74살 모모코다. 4명이 살던 집에서 혼자 산다. 이 소설은 그녀의 내면을 아주 섬세하게 그려낸다. 딸은 결혼해서 떠났고, 아들의 행방은 묘연하다. 남편은 갑자기 뇌경색으로 죽었다. 홀로 사는 그녀에게 4명이 살던 집은 넓고 고요하다. 이 적막함을 채워주는 존재는 쥐들이다. 그들의 소음이 무섭기도 하지만 그 고요한 적막을 깨트려준다. 노년의 일상은 단순하다. 이 단순함을 바꾸려는 개인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모모코에게는 그것이 보이지 않는다. 활발한 활동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내면에 침잠된 채 가공의 인물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그것도 사투리로.

 

사투리는 아주 중요한 소재 중 하나다. 도호쿠 지방 사투리를 번역자는 강원도 사투리로 풀어내었다. 나름의 방법으로 일본 사투리를 해석한 것이다. 교토 사투리를 경상도 사투리로 번역하는 것을 많이 봐서 일본 사투리하면 경상도 아니면 전라도 사투리로 번역한다고 생각했다. 나의 선입견이 깨어지는 순간이다. 지방에서 올라온 사람들의 사투리는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개인의 노력 정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고치기 힘든 발음도 있다. 작가는 발음이 아닌 하나의 단어에 관심을 둔다. 나라는 단어다. 와타시란 표준어를 사용하는 것이 왠지 부담스러웠다고 말한다. 이 단어를 말할 때 약간 뜸을 들이는데 이것을 알아챈 동료가 있다. 그리고 내면의 목소리는 모두 사투리다. 개인적으로 이 대목들을 읽는데 조금 힘들었다.

 

“자신보다 소중한 자식은 없다.” 이 말은 딸 나오미가 엄마에게 자식의 교육을 위해 돈을 빌려달라고 한 후 나온다. 노년의 모모코를 가끔이나마 돌보는 인물이 딸 나오미다. 그런데 모모코가 반응을 하기도 전에 오빠 쇼지와 비교하면서 전화를 끊는다. 이 비교 결코 낯설지 않다. 모모코는 보이스피싱에 속아 돈을 사기당한다. 이때 마음은 “쇼지에게 속죄하는 맘”이었다. 엄마로밖에 살 수 없으면서 자식의 인생에 너무 밀착한 나머지 자식의 삶을 뒤흔들었다.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보는 엄마의 모습이다. 딸 나오미에게 몇 번이고 거듭 들려주고 싶지만 내뱉지 못한다. 아마 이해하지도 못할지 모른다. 그때의 엄마는 그런 시기니까.

 

그렇게 두툼한 책이 아니다. 내면 이야기와 함께 남편과의 만남과 고향을 떠난 순간들을 간결하게 이야기한다. 특히 남편과의 만남과 결혼 이야기는 그녀의 삶을 강하게 고정시킨다. 남편의 죽음은 강한 충격이다. 늙은 몸을 이끌고 남편의 묘지를 찾아가는 과정은 아주 힘들다. 돌아가는 버스를 타면 되는데 걸어서 산을 넘어간다. 힘들고 포기하고 싶다.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이 의지가 “나의 생은 이제부터다.”로 이어진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웃는다. 가장 소중한 자신을 찾은 모습이다. 자신의 나이듦과 맞서 싸울 수 있다는 의지는 눈부시다. 늙는다는 것이 비탈을 굴러내려 오는 것과 같은 급속함이 아님을 말할 때 시간의 퇴적을 둘러싼 우리의 두려움이 살짝 드러난다. 나도 이런 노년을 맞이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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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도둑 가족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6
고레에다 히로카즈 지음, 장선정 옮김 / 비채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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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레에다 감독의 영화를 한 편도 본 적이 없다. 그의 이력을 생각하면 의외일 수도 있지만 최근 몇 년 동안 제대로 영화를 본 것이 몇 편 되지 않는다. 본 영화도 대부분 오락 영화였다. 2018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는 사실이 이전에는 반드시 봐야할 영화였던 적도 있다. 그런데 최근에는 이런 영화를 거의 보지 않는다. 아니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린다. 다른 것에 시간이 빼앗기면서 이런 영화를 볼 시간이 상대적으로 없다. 하지만 가끔 좋은 소설을 읽고 그것이 영화로 만들어졌다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소설도 마찬가지다.

 

한국에서 상영한 영화의 제목은 <어느 가족>이다. 이 소설은 영화를 원작으로 감독이 썼다. 감독이 영화에서 미처 보여주지 못한 가족의 비밀과 결정적 순간의 디테일들을 담았다고 한다. 영화를 보지 않아 직접 비교하기 힘들지만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들이 많은 부분을 생략하지 않는가. 아마 영화를 보게 되면 더 많은 부분이 나의 머릿속으로 들어올 것 같다. 그리고 소설이 그려낸 섬세함과 다른 장면들에 또 영향을 받을 것이다. 이런 영상과 소설의 혼합 작용은 늘 있어왔다. 대부분 영화의 이미지가 더 강하게 남지만.

 

다섯 명이 한 집에 산다. 할머니 하쓰에. 아버지 오사무, 어머니 노부요, 어머니 이복동생 아키, 아들 쇼타 등이다. 이런 집에 유리가 들어온다. 여섯 명이 한 집에 살지만 실제 돈을 버는 사람은 노부요와 연금수령자 하쓰에 밖에 없다. 아키도 어느 정도 벌지만 생활비를 내놓지는 않는다. 이런 가족이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선택한 방법이 좀도둑질이다. 오사무와 쇼타가 한조가 되어 슈퍼마켓에서 물건을 훔친다. 적은 돈으로 고르케를 사서 가족들이 나눠먹는다. 이때 한 꼬마가 집밖에서 떨고 있다. 바로 유리다. 나중에 그녀의 이름은 린으로 바뀐다. 이 집안 사람들은 모두 본명을 사용하지 않는다. 각자 자기만의 사연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가족들은 그 누구도 혈연으로 이어져 있지 않다. 유리가 이 집에 들어온 것처럼 한 명씩 합류했다. 쇼타가 어떻게 이집에 들어오게 되었는지 알려주는 장면이나 아키의 집안 이야기 등은 조용히 하나의 이야기와 연결되면서 풀린다. 처음에는 하쓰에와 오사무가 진짜 엄마와 아들 사이인 줄 알았다. 오사무와 노부요도 진짜 부부로 알았다. 그런데 아니다. 이 가족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혈연으로 이어져 있지 않다. 오사무가 말한 것처럼 가슴으로 이어져 있다. 하지만 이들의 관계는 진짜 가족 그 이상이다. 법의 관점에서 본다면 불법과 유괴가 먼저 눈에 들어오겠지만.

 

11살 쇼타와 5살 유리에게 좀도둑질을 시킨다는 것은 비윤리적이다. 이 가족에게는 그런 윤리적 잣대를 갖다 대면 가족이 성립할 수 없다. 노부요도 세탁소에서 옷 속에 들어있는 작은 물건을 슬쩍 훔친다. 하쓰에도 파친코 구슬을 훔친다. 이 가족에게 작은 도둑질은 일상적이다. 이런 분위기는 쇼타가 아키가 바라는 샴푸를 가져오지 않았을 때, 다른 제품을 가져왔을 때도 그대로 드러난다. 하지만 집안의 분위기는 아주 좋다. 좋고 맛있는 것을 먹지 않지만 작은 배려가 곳곳에 드러난다. 유리가 학대받았다는 사실에 분노하고, 이 작은 아이의 가족이 되어준다. 친부모에게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이것은 쇼타도 마찬가지다.

 

이 가족의 파국은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 펼쳐진다. 통상의 관점에서 유괴가 이 가족에게는 보호가 된다. 아동 학대를 당하는 아이를 오히려 밝게 만든 것도 이 가족이다. 유리가 다시 가족으로 돌아간 후 보여주는 몇 장면은 아주 상징적이다. 진심과 거짓이 공존하는 이 가족은 우리에게 가족의 의미를 묻는다. 가족을 이루는 것은 무엇인가 하고. 이것에 대한 답을 작가는 내놓지 않는다. 각 개인의 몫이다. 이 좀도둑 가족도 아주 멋진 바다 여행을 한다. 아름다운 추억이다. 아마 영화에서 하이라이트 장면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이 가족을 떠난 두 아이들의 현재 모습은 진한 여운과 불안감을 던져준다. 씁쓸하고 눈시울을 붉히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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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우화
류시화 지음, 블라디미르 루바로프 그림 / 연금술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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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가 실수해서 한 마을에 바보들이 모여 살게 되었다. 그 마을은 폴란드 남동부의 작은 마을 헤움이다. 실제 지명은 존재하지만 이야기 속 마을은 가상의 마을이다. 이 바보들만 모여 사는 마을을 떠올리면서 악마와 바보들의 마을을 소재로 한 단편이 떠올랐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그것과 다르다. 읽다 보면 이 마을 사람들이 정말 바보란 것을 알게 된다. 처음 몇 편의 이야기를 읽을 때는 답답했다. 이성이 예상하지 못한 결말에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가끔 현명한 해결책이 나올 때도 있지만 아주 일부다. 그러다 문득 몇몇 이야기에서 우리 삶의 모습이 보였다.

 

17세기부터 동유럽에서 구전되어 내려오는 짧은 이야기들에서 소재를 빌려 작가가 새롭게 재창작한 우화들과 그 이야기들에 영감을 받아 작가가 창작한 우화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 이야기들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는 작가의 말에 잘 나와 있다. 그리고 작가의 말을 읽다 보면 내가 이해한 것과 비슷한 이야기들이 나온다. 우리 삶을 그 속에 대입해서 이해해도 큰 무리가 없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는 헤움 사람들처럼 바보가 아니라고 말하지만 실제 행동에서는 그것과 비슷한 경우가 너무 많다. 그래서 읽으면서 ‘저런 바보가 있나.’하고 말하다가도 움찔 놀라게 된다.

 

마흔다섯 편의 우화는 생각보다 빨리 읽히지 않았다. 자신들이 세상에서 가장 지혜롭다고 믿는 헤움 사람들의 행동을 마냥 웃으면서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우화와 우리의 삶을 비교하는 시간을 자신도 모르게 가진다. <하늘에서 내리는 나무>를 읽으면서 정치판에서 벌어지는 말장난들이 떠올랐고, <바보들의 인생 수업>에서 4대강을 둘러싼 수많은 이야기들이 연상되었다.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말과 행동을 왜곡하는 것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가 생길 것이 분명한데 단순히 잠깐 동안 눈을 가리기 위한 행동을 펼치는 것과 너무나도 닮았다. 물론 이런 행동에 동의하는 바보들이 늘 있다.

 

읽으면서 나는 바보가 아니구나 생각했지만 다 읽은 지금 자신할 수 없다. 나의 삶을 돌아보면 헤움 사람들처럼 수많은 바보짓을 한 것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 당시는 현명한 선택이었다거나 최선이었다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바보 같은 행동을 적지 않았다. 내 욕심에 눈이 가려져 앞을 생각하지 못하는 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나름 지혜로운 대처였다고 생각한 것도 숨을 한 번 고르고 다시 보면 다른 좋은 방법들이 많이 있었다. 가끔 바보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데 실제 행동은 이익 우선이다. 이런 나를 돌아보면 정말로 지혜로운 사람들은 바로 헤움 사람들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헤움 사람들의 행동을 보면서 하나 배우고 싶은 것도 있다. 하나의 사안에 대해 답을 도출하는 과정이다. 물론 이들의 해결책은 황당하고 바보 같지만 그 과정에서 보여주는 진심과 열의는 진짜다. 어렵고 힘든 사람을 돕기 위한 마음이나 현재의 문제를 풀기 위해 힘든 일도 마다하지 않는 행동 등이다. 그냥 보기에도 간단한 문제의 답을 구하기 위해 며칠을 토론하는 모습은 논쟁을 피하고 자기주장만 내세우는 우리의 삶과 대비된다. 이것 또한 읽으면서 바보 같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렇게 이 우화들은 읽은 이후 더 많은 것을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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