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을 읽는 시간 - 죽음 안의 삶을 향한 과학적 시선
빈센트 디 마이오 외 지음, 윤정숙 옮김 / 소소의책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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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미국 드라마 CSI 시리즈를 미친 듯이 본 적이 있다. 죽음의 원인을 찾고, 과학적 증거를 발견하여 범인을 쫓는 그 드라마는 정말 대단했다. 비현실적이라는 것을 알지만 말이다. 물론 그 이전에 검시관이 주인공인 책도 읽었다. 대부분의 범죄소설에서 검시관이나 병리학자들은 조연이었다. 이런 기억들 가지고 실제 현장의 볍의병리학자이자 총상 전문가가 들려줄 이야기는 무엇일지 궁금했다. 이 호기심과 기대는 책을 읽어나가면서 많은 부분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고, 진실이 가진 무게와 그 이면들을 들여다보게 했다.

 

빈센트 디 마이오가 법의학자고, 론 프랜셀은 작가다. 이 책을 생각한 것보다 편하고 재밌게 읽게 된 것은 론 프랜셀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 책 속에 담긴 모든 이야기를 직접 현장에서 경험한 사람은 당연히 디 마이오다. 이 책의 한 장은 바로 디 마이오 자신과 가족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그가 어떤 환경에서 자랐고, 왜 병리학자가 되었는지 보여준다. 당연히 이 글들 속에는 그의 경력도 같이 다루어진다. 더불어 부족한 병리학자 문제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던 검시관 중에는 장의사도 있다는 사실에 놀란다. 죽음의 원인을 파악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얼마나 전문적인 일인지 알기에 더욱 그렇다.

 

미국의 살인 사건에서 인종 문제는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다. 첫 이야기도 바로 인종 문제로 발전한 사건을 다룬다. 서로 엇갈리는 증언은 이 문제를 더 키운다. 저자는 이 책 속에서 일관되게 하나를 주장하는데 그것은 자신을 진실을 말할 뿐이란 것이다. 이 진실은 죽음과 관련된 것이지, 유죄의 판단이나 정치적 문제는 고려의 대상의 아니다. 지머맨의 무죄를 돕는데 가장 큰 공헌을 한 그의 증언은 단지 하나의 사실만 알려줄 뿐이다. “무죄 선고가 항상 용서를 의미하는 건 아니다.” 란 문장은 그의 마음을 잘 대변해준다. 그가 왜 그 트레이본 마틴을 따라갔는지, 그들의 싸움은 어떻게 시작했는지 등은 증거자료를 보는 그에게 참고자료일 뿐이다.

 

많은 추리소설을 읽다보면 정말 다양한 트릭들과 특이한 이야기들이 나온다. 하나의 진실 너머의 또 다른 의도가 풀려나올 때가 있다. 그런 점에서 “법의학적 증거는 정의의 기반이다. 법의학은 사실을 왜곡하거나 기억을 변주하지 않는다.”라는 말은 분명한 한계를 가진다. 자신도 ‘인간성에 대한 더욱 거대한 질문을 해결한 데’ 좀 더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추리소설이 단순한 사고실험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사고의 확장을 도와주고, 그 이면을 들여다보게 한다. 법의학자가 밝힌 하나의 진실이 늘 그것을 담고 있는 전체를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이것을 생각하면 그의 진실 추구가 현실을 완전히 보여주지 못한다는 느낌을 준다.

 

자신이 참여한 사건들을 다룬다. 이 사건들 중 몇 개는 가십 같은 것도 있다. 대표적인 것으로 JFK살인범 오스왈드가 가짜라는 주장과 조금은 놀라운 고흐의 자살설에 대한 반박 등이다. 이런 죽음에 대한 법의학자의 의견은 죽음 그 자체만 놓고 본다. 오스왈드는 재검시 결과 동일인으로 판명나고, 고흐는 그의 의견에 따르면 자살이 아니다. 특히 고흐 같은 경우는 미술계와 대중의 호기심이 결합한 결과다. 물론 이것이 사실인지 알기 위해서는 더 많은 조사가 필요하다. 개인적으로 이 두 장은 흥미로운 부분이 있지만 하나의 주석으로 처리해도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유명 음악 프로듀스인 필 스펙트의 살인 사건이나 웨스트멤피스 살인의 경우는 그의 검시 결과와 판결의 상관관계가 같지 않음을 잘 보여준다. 그의 의견에 따르면 무죄가 되어야 할 것 같은데 결과는 다르게 나왔다. 이처럼 그의 검시 결과와 판결은 그 당시의 상황만 알려줄 뿐이다. 범인은 다른 증거와 같이 다루어져야 한다. 이런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초동수사다. 아기들을 죽이는 여자 이야기는 초동수사로 그 정체를 밝힐 수 없지만 최소한 그 반복적인 행동을 제지하는데 도움을 준다. 이런 이야기들을 읽다 보면 밖으로 드러난 흉악범죄보다 숨긴 채 이루어지는 범죄들이 더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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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수의 레퀴엠 미코시바 레이지 변호사 시리즈 3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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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코시바 레이지 변호사 시리즈 3편이다. 이 시리즈 중 처음 읽는다. 변호사이지만 그가 조사하는 일들을 보면 유명 탐정 이상의 능력을 보여준다. 발로 뛰면서 직관적으로 통찰하는 능력은 정말 놀랍다. 시리즈 중 최근작이다 보니 그의 이력 등이 이야기 속에 조금씩 흘러나온다. 물론 전작을 읽지 않았다고 해서 작품을 이해하는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전작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그렇지만 이 소설의 도입부에 나온 사고는 그냥 무심코 보기 힘들다. 한국 여객선 블루오션호의 이미지에 세월호가 겹쳐지기 때문이다. 다른 작품에서도 작가는 일본의 위안부 기족 조작 사건을 말했다. 작품과 달리 그의 정치 성향이 궁금해진다.

 

한국 여객선 블루오션호의 침몰에서 이야기가 시작한다. 배에서 탈출해야 하는데 탈출용 보트도 구명조끼도 없다. 한국 선원들은 구조용 보트를 타고 떠났다. 배는 침몰하는 중이고, 구명조끼는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이때 한 여성이 바다로 뛰어내릴까 고민한다. 이것을 본 남자가 여자에게 폭력을 휘두른다. 자기가 살기 위해 여자의 구명조끼를 뺏은 것이다. 이 장면이 촬영되어 남자는 폭행죄로 기소되지만 형법의 ‘긴급피난’이 적용되면서 무죄로 풀려난다. 그리고 다른 법정으로 넘어간다. 미코시마가 변호한 폭력단 인물이 낮은 형량을 받는다. 성공이다. 폭력단 고문변호사가 되어주길 바란다. 약간 뜸을 들인다. 이때는 미코시마의 과거가 완전히 드러난 상태다. 십대에 소녀를 죽이고 토막낸 전력이다. 시체배달부란 별명도 이 때문에 생겼다.

 

그의 과거가 드러나면서 사건 의뢰도 끝어졌다. 악덕 변호사지만 승소율이 높아 인기가 많았는데 과거가 그의 발목을 잡았다. 그러다 의료소년원 시절 교관이었던 이나미가 살인혐의로 체포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가 아는 이나미는 결코 살인을 할 사람이 아니다. 이미 다른 국선 변호사가 선입되었지만 폭력단의 고문변호사를 승낙하고 그들의 도움으로 이나미의 변호사가 된다. 이 과정에서 그가 보여주는 모습은 정의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 자신이 바라는 바를 성취하기 위해서 법의 한도 안에서 할 수 있는 것을 모두 한다. 변호를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최대한 활용한다. 왜 악덕 변호사란 별명이 붙었는지 잘 보여준다.

 

살인자였던 자신을 변호사로 성장할 수 있게 이끈 이가 이나미 교도관이다. 이나미가 하반신 불구가 된 것도 그의 탓이다. 요양원에 들어갈 때 몰래 돈을 지원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가 살인을 저지른 것이다. 자신이 살의를 가지고 살인했다고 주장하고,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미코시바에게 이것은 중요하지 않다. 이나미를 무죄로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 요양원을 먼저 방문한다. 경찰 조서만으로 상황을 이해하는데 부족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이곳에서 이질적이고 끈끈한 공포를 느낀다. 요양원 직원들이 노약자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나미가 죽인 도치노는 그 중에서도 대표적이다. 그런데 도치노의 전력이 하나 떠오른다. 바로 10년 전 긴급피난으로 무죄 석방되었다는 것이다.

 

이나미를 무죄로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미코시바, 이런 미코시바의 노력을 수포로 만들면서 속죄를 말하는 이나미. 이 둘의 대립 속에는 숨겨진 이야기들이 많이 있다. 미코시바의 통찰력이 돋보이는 부분도 바로 이 지점을 정확하게 찾아내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재판에 활용해 승소한다. 이런 과정들은 법정 스릴러라기 보다 탐정물에 더 가깝다. 그 과정에서 법률과 언론의 문제와 한계점을 지적한다. “왜 가해자에게 무르고 피해자와 유족들에게는 엄격하지?” 미코시바의 답은 상상력 부족이다. 자신이 당사자가 되리라고는 진심으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어느 부분 이 지적은 타당하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일까? 최근 일본 소설에서 자주 보게 되는 피해자의 시선이 이 속에 녹아 있다.

 

대단히 가독성이 좋아 금방 읽을 수 있다. 번쩍이는 아이디어와 통찰력과 조금의 주저함도 없는 실행력은 이 악덕 변호사가 어떻게 승소했는지 잘 보여준다. 도치노가 사용한 긴급피난을 이나미에게 적용해서 무죄를 주장한다. 과거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사실들이 떠오르고, 이나미가 왜 그곳에 갔는지, 왜 그를 죽이게 되었는지 하나씩 밝혀진다. 이 과정은 양파껍질을 벗기는 것과 비슷하다. 그리고 최종 판결이 내려진다. 진실을 알지만 그것만으로 범죄가 성립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법의 한계는 그 세계에서 살아가는 자의 한계”라는 말을 한다. 이 문장을 보면서 한국의 사법농단과 대기업 총수들의 범죄들이 떠올랐다. 은수의 레퀴엠에서 은수는 은혜와 복수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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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니의 퍼즐
최실 지음, 정수윤 옮김 / 은행나무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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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 한인 3세 소설가의 작품이다. 유명한 문학상도 3개나 수상했다. 이런 대외적인 정보보다 나의 시선을 끈 것은 조금 낯선 재일 한인 3세가 경험했던 일들이다. 시간의 흐름을 생각하면 한인 3세나 4세가 나왔어야 하는 시간이다. 그런데 언제나 읽었던 작품들의 작가가 2세까지였던 것 때문에 이 당연한 시간을 잊고 있었다. 그리고 나와 동시대에 있었고 그냥 하나의 사건 정도로 생각했던 일들이 조총련 계열 학교 학생들에게 어떤 일로 다가왔는지 보여줄 때 다른 환경 속에서 살아야 했던 재일 한인들의 또 다른 삶이 눈에 들어왔다.

 

<호밀밭의 파수꾼>을 연상케 한다는 평가는 관심을 끌기 충분했다. 비록 나 자신이 이 작품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고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해도 말이다. 재일 한인 3세 박지니가 미국에서 경험하는 일들이나, 왜 그녀가 그곳까지 가게 되었는지 보여줄 때 한 소녀의 방황을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그 이해의 폭은 깊지도 넓지도 않지만 작은 충격을 주기에 조금의 부족함도 없다. 이것은 다른 방송을 통해 알게 된 재일 한인의 삶과 일본에 있었던 북송사업 등과 엮이면서 좀더 깊어졌다. 정치라는 거대한 행동 속에 개인의 삶은 너무나도 무력하고 한계가 분명하다.

 

첫 이야기를 읽었을 때 나온 존이란 존재는 솔직히 이해하기 힘들다. 이후 펼쳐진 이야기들에 존은 등장하지 않는다. 왜 자신을 표현하기 전까지 사람들이 인식하지 못하는 존을 가장 먼저 내었을까? 지니를 비롯한 재일교포들의 삶을 대변하기 때문일까? 이 소설 속에서 가장 큰 충격을 주는 것은 1998년 북한이 대포동 미사일을 발사한 일이다. 이 사건은 전 일본을 긴장시켰다. 극우단체들의 폭력이 자행되던 시기다. 치마저고리로 대변되던 조총련계 학교 학생들이 체육복으로 등교해야 할 정도였다. 지니는 이 소식을 듣지 못해 폭행과 성추행을 당한다. 어린 소녀에게 이것은 씻을 수 없는 아픔과 공포로 기억된다.

 

오래전 한국도 교실에 박정희의 초상이 걸려 있었다. 그런데 1998년 일본 조총련계 학교에는 김일성과 김정일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다른 학생들은 이 초상화를 풍경의 일부라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지니에게는 깨트려야 할 대상이다. 독재국가이자 재인교포들에게 위험을 주는 이들은 타도의 대상이다. 자신이 만든 선언문을 뿌리고, 초상화를 교실 밖으로 내던진다. 이 행동 때문에 그녀는 일본에 거주할 수 없게 된다. 그리고 이 일이 벌어지기 전 북송사업 당시 떠난 외할아버지의 편지가 중간중간 나온다. 편지 내용들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신이 생각한 것과 다른 북한의 실상이 드러난다. 그 또한 정치 문제의 희생자였다.

 

미국에서도 지니는 아웃사이더다. 홈스테이 주인이자 동화작가인 스테퍼니는 이런 그녀를 품고 세상을 받아들이게 만든다. 하늘이 무너질 때라는 가정에 ‘하늘을 받아들일 거야’라고 외친다. “언젠가, 누군가 날 용서해줄 날을, 무너지는 하늘을, 그것이 어떤 하늘이라 해도 허락하고 받아들일 날을. 괜찮아, 그걸로 됐어, 하고 누군가 인정해줄 날을 죽 기다려왔던 건지도 모른다.” 이 장면들을 보면서 지니가 겪었던 아픔과 고통과 외로움과 공포 등이 가슴 속에서 흩어졌다. 정치문제가 개인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 정치문제에 휘둘린 사람들이 어떤 폭력을 행사하는지 등은 현실의 삶을 잘 보여준다. 한 편으로는 그 현실이 가슴을 답답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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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랑 - 김충선과 히데요시
이주호 지음 / 틀을깨는생각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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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랑(逆浪)은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역풍으로 인하여 거슬러 밀려오는 물결과 세상이 어지러움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작가가 이 단어를 제목으로 사용한 것은 중의적인 의미 때문일 것이다. 사야가란 인물이 겪은 일과 그 시대의 상황을 한 데 묶은 것이다. 사야가는 임진왜란 당시 항복한 왜군 출신이다. 이후 김충선이란 이름을 사사받았다. 작가는 실존 인물의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상상력을 덧붙여 이야기를 풀어냈다. 쉽게 생각하면 임진왜란 때 조선이 무대일 것 같지만 대부분의 이야기는 일본에서 펼쳐진다. 일본의 전국시대 마지막과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임진왜란까지의 시기다.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했지만 기본적으로 소설이다. 읽으면서 개인의 생각과 결이 다른 부분이 많이 나온다. 대표적으로 사야가의 능력이다. 당쟁 때문에 살기 위해 밀항을 하고, 뎃포 부대원으로 팔려가는 것까지는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열 살 소년이 천재적인 능력을 발휘해서 새로운 전술을 만들어낸다는 것이 가능할까? 오다 노부나가가 만든 것으로 알고 있는 3열 전술도 이 책에서는 사야가의 전술로 바뀌어 있다. 이 책 내용대로라면 사야가가 보여준 능력은 특정 부대에 한정한다고 해도 너무 천재적이다. 그리고 이 시대에 자유연애를 집어넣은 것은 시대를 초월한 설정이다. 일본 전국시대의 살벌함을 감안한다면 더욱 더.

 

이런 몇 가지 거슬리는 부분을 제외하면 히데요시가 전국을 통일하고, 조선을 침공하는 과정을 아주 간결하면서도 흥미롭게 잘 다루었다. 이 사이에 사야가의 능력을 극대화시킨 부분은 액션과 스릴을 느끼게 만들었고, 이에야스의 비중을 적지 않게 다룬 것은 그 시대 정국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시대를 초월한 사랑 이야기는 이 둘의 결말이 어떻게 될까? 하는 호기심을 불러온다. 이미 결과를 알고 있는 역사가 재밌기 위해서는 간결하게 서술된 역사 속에 작가의 상상력을 극대화시킨 부분이 필요하다. 최소한 이 작품의 몇 가지 이야기는 이 부분을 아주 잘 표현했다. 방대한 참고자료를 감안한다면 오히려 이렇게 축소하는 것이 더 힘들었을 것 같다.

 

사야가가 행주산성에 와서 권율과 만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이순신의 추천이 있었다. 그리고 작가는 이 사야가란 인물의 역사를 시대순으로 풀어낸다. 사화에 휩쓸려 일본으로 밀항할 수밖에 없었고, 그 과정에 어머니는 죽고 아이는 뎃포 부대원으로 팔린다. 하지만 이 소년이 천재적인 재능을 발휘하면서 뎃포 부대에 도움을 준다. 조선인을 멸시하는 장면과 조직원 간의 작은 갈등이 나오지만 핵심은 소년의 천부적 재능과 아츠카와의 사랑이다. 특히 아츠카와 사랑은 둘을 굳건하게 묶어주고, 붉은 돌 뎃포 부대를 위험에 빠트린다. 그의 재능을 탐낸 전국시대 장군들 때문이다. 히데요시의 아츠카에 대한 구애와 사야가에 대한 욕망은 이후 중요한 이야기 거리다.

 

이 작품 속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는 사야가의 정체성과 아츠카와의 사랑이다. 두 연인의 사랑은 시대의 한계 안에서 조용히 이어지고, 파국의 씨앗을 품고 있다. 시대에 맞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이 둘의 사랑이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은 마지막까지 변함없었다. 그리고 조선인이란 정체성을 둘러싼 고민은 민족의식에 대한 과도한 표현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만약 이런 민족 정체성을 그가 가졌다면 그를 따른 뎃포 부대원들의 정체성은 어떻게 표현해야 할 것인가 하는 물음이 같이 오기 때문이다. 이렇게 이 소설은 나의 지식이나 상식들과 충돌하면서 읽혔고, 역사적 사실과 엮인 몇몇 장면들은 예전에 읽었던 역사서들을 떠올려주었다. 더불어 사야가가 보여준 활약은 긴장감을 불러왔다.

 

개인적으로 기대한 만큼의 재미와 완성도를 보여주지는 못했다. 어쩌면 나의 선입견 탓일 수도 있을 것이다. 너무 많은 역사적 사실들을 녹여내는 과정에서 캐릭터를 과도하게 포장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한 편의 역사 소설을 읽으면서 많은 것을 생각했고 더 깊이 있는 공부의 필요성을 느꼈다. 이 작가의 다른 작품은 어떨지 호기심이 조금은 더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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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 클락
기시 유스케 지음, 이선희 옮김 / 창해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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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에 읽었던 기시 유스케의 소설과는 다른 작품이다. 여기서 ‘다르다’라고 한 것은 트릭 등을 중심으로 다룬 작가의 소설을 처음 읽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 부분은 조금 낯설게 다가오기도 했다. 사놓고 아직 읽지 않은 <유리망치>라는 작품이 트릭을 다루었고, 에노모토 케이와 아오토 준코가 <유리망치>에도 등장했다 한다. 이번 작품들에서 준코가 보여준 황당한 추리 등이 과연 전작에서는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 이것과 별개로 이번 작품집은 밀실 트릭을 다룬다. 이 고전적인 소재를 시대에 맞게 풀어내는데 나의 지력이 따라가지 못하는 부분이 많다.

 

네 편의 밀실 트릭을 다룬다. 순수하게 트릭을 풀어내는 것에 집중했다. 덕분에 법인이 누군지는 금방 알 수 있다. 이번 작품들에서 중요한 것은 범인이 누구인가? 가 아니고 어떻게 밀실을 만들었는가 하는 것이다. 이미 밀실 트릭의 시대는 끝났다고 하는데 작가는 이 부분을 아주 현대적이고 극단적으로 풀어낸다. 아직 밀실 트릭이 유효하다는 사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고전 작품과 비견될 수 있는 것은 개인적으로 표제작인 <미스터리 클락>과 <완만한 자살>이다. 첫 작품 <완만한 자살>의 경우는 이전의 밀실과 닳은 부분이 꽤 많다. 야쿠자의 집 문을 열기 위해 등장한 케이가 이렇게 밀실 전문가인지는 이때만 해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밀실은 독자에게 다양한 가능성을 생각하게 한다. 상식의 틀에 갇히면 밀실은 도저히 풀 수 없다. 당연히 편법을 이용하는 것은 안 된다. 과학으로 중무장한 밀실의 경우 전문 지식을 이해하지 못하면 밀실에서 헤맬 수밖에 없다. 두 번째 단편 <거울나라의 살인>은 광학에 대한 지식이 없다면 풀 수 없다. CCTV라는 명확한 증거가 있는 상황에서 이것을 깨트리려면 범인이 만든 밀실의 허점을 파악해야 한다. 이 단편을 읽으면서 준코를 처음 만났고, 그녀의 상상력이 나와 별 차이가 없다는 사실에 위안을 얻는다. 하지만 케이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그렇구나’ 이상을 결코 넘어가지 못했다. 내가 밀실 트릭을 다룬 소설을 좋아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이 부분 때문이다.

 

<미스터리 클락>은 흥미로운 구성을 가지고 있다. 살인이 일어나고, 자살로 단정 지은 후 다시 그때 사람들이 모여 상황을 재현하고 케이가 밀실 트릭을 깨트린다. 이 작품에서 중요한 것은 시간인데 몇 가지 재미있는 사실이 나온다. 그리고 섬세하게 조작된 트릭이 나온다. 이 트릭을 머릿속에서 이해하는 것은 나에게 불가능하다. 그림으로 설명해주지만 역시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것을 풀어가는 과정에 나타나는 일반적 이해와 기발한 발상 등은 아주 재밌었다. 특히 준코는 첫 작품을 제외하고 모두 등장해서 서툰 탐정 역할을 아주 잘 한다. 이때 케이가 보여주는 반응도 아주 현실적이다.

 

마지막 단편 <콜로서스의 갈고리발톱>은 바다를 무대로 한 밀실 트릭이다. 살인자는 바닷속 300미터에 있었다. 그가 살인하기 위해서는 감압을 거쳐야만 한다. 현실적으로 살인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 트릭을 깨트리는 것은 작가가 다른 살인에 이용된 도구를 설명하면서 생긴다. 우리의 상식을 뒤엎는 과학기술이 등장하는 것이다. 이 기술을 안다고 모든 트릭이 풀리지는 않는다. 마구 트릭을 풀었다고 외치는 준코의 아이디어 하나가 케이에게 빛을 던져준다. 마지막에 법인이 왜 이런 살인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보여줄 때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이렇게 작가는 아주 다양한 밀실을 만들고, 새로운 지식을 그 속에 녹여낸다. 밀실 트릭 마니아라면 좋아할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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