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대리인, 메슈바
권무언 지음 / 나무옆의자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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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을 읽을 때 PD수첩에 명성교회가 방영되었다. 대형교회와 세습과 800억 원이란 돈을 다루었다고 한다. PD수첩을 보지 않은 상태에서 이 키워드만 가지고 바로 이 소설 속 대성교회가 떠올랐다. 위치는 강동구와 송파구로 다르지만 장로 한 명의 자살과 다른 문제들이 우연치고는 너무 비슷했다. 명성교회를 좀더 파고든다면 그 차이가 어디에서 나는지 알 수 있겠지만 그 이상 파고들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너무나도 자주 본 대형교회의 모습들이기 때문이다. 작가가 아무리 우연의 일치라고 말해도 의심의 눈초리를 거둘 수 없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대성교회. 명수창 목사가 세운 교회다. 80년대 개척교회로 시작하여 대형교회로 발전했다. 그가 개척교회를 이끌 때 모습을 보면 정말 존경스럽다. 신도들을 찾아가고, 그들의 아픔을 보듬어주고, 악인에게조차 등을 돌리지 않는 모습은 왜 그가 성공할 수밖에 없었는지 잘 보여준다. 하지만 언제나 성공의 그늘 속에는 악마가 도사리고 있다. 교회가 커지고, 신도의 상황이 좋아지면서 돈이 많아진다. 이 많아진 돈이 문제다. SO(Special Offering)이라 부르는 비자금이 생긴다. 이미지를 쌓는데 이 돈을 많이 사용한다. 독재자를 만나고, 유력 정치인들을 만난 것처럼 보이는데 조금의 주저함이 없다. 이런 표면적 이미지는 언론이나 신도들에게 잘 먹힌다. 그의 영적 몰락은 점점 가속화된다.

 

비자금의 손실에서 이야기는 시작한다. 독실한 신자이자 수석장로였던 김일국이 투자 사기에 걸려 많은 돈을 잃었다. 목사와 김일국의 관계는 개척교회 초기로 올라갈 정도고, 장로는 자신의 모든 노력을 기울여 교회를 키웠다. 목사는 재무를 모두 맡길 정도로 김일국을 신뢰했지만 돈의 손실을 용서할 수는 없다. 이 돈들은 자신의 미래를 위한 자금이기도 하다. 목사의 질타와 투자 원금의 손실 등은 김일국의 영혼에 큰 상처를 준다. 횡령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그가 동생의 아파트에서 몸을 던질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이어진다. 대형교회의 힘으로 이 사건을 조용히 덮는다. 우연히 이 사건을 알게 된 우종건 기자가 취재를 시작한다.

 

명수창 목사를 가운데 놓고 우종건 기자와 이건호 교수가 이를 견제하는 역할을 맡는다. 하지만 돈과 권력과 조직은 모두 명수창 목사가 가지고 있다. 장로와 신도들은 교회를 앞세워 목사의 잘못과 비리를 덮고, 목사를 우상처럼 숭배한다. 김일국 장로가 “돈! 우리는 돈을 믿었고, 돈이 불어나는 것을 소망했고, 돈을 무척 사랑했다.”고 외친 것은 기독교가 늘 말하는 ‘믿음, 소망, 사랑’이 어떻게 변질되었는지 잘 보여준다. 이렇게 된 데는 수많은 원인이 있지만 목사와 장로와 신도들이 신앙보다 교회의 명예와 존속을 더 앞에 둔 탓이다. 덕분에 썩은 내가 진동할 때까지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이건호 교수가 외치는 작은 교회와 신도 한 명이 움직이는 성전이란 말은 허공에서 순식간에 흩어질 뿐이다.

 

사실 우종건 기자가 교회의 비리를 파헤치고, 이것이 교회의 추문과 목사의 몰락으로 이어질 것이란 예상을 했다. 하지만 작가는 여기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몰락의 과정은 보여주지만 그 과정에 그들이 지닌 힘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보여주면서 현재의 한국 교회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그리고 이렇게 된 이유 중 하나로 기독교의 신사참배라고 말한다. 불교의 부처를 보고 우상숭배라면서 불까지 지르는 이들이 신사참배를 했다니 놀랍지 않은가. 시대적 상황으로 치부한다고 해도 통렬한 반성이 있어야 하는데 적반하장의 반응을 보인다. “그래서, 뭐.”라는 반응은 해방 후 한국 기독교의 성장 속에 어쩔 수 없이 품고 있던 원죄다. 그것이 가장 잘 드러나는 것이 대형교회들의 세습과 부패들이다. 잘못에 대한 회개와 반성이 없다면, 처벌이 없다면 그 잘못은 반복된다. 당연하게 생각한다.

 

“한국 교회는 ‘예수 믿으면 천국 간다’고만 주장했지, ‘천국에 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치지 않은 탓에 사회윤리와 공적 책임이 등한시되면서 이기적 신앙관이 형성되었다.”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만나는 기독교 교인들의 모습이다. 예수 천국, 불신 지옥. 아주 무서운 이야기도 있다. “한국 교회는 나치 시절 루터교회와 다를 바가 없었다.” 권위와 권력에 취하면 진실은 빛을 잃는다. 명수창이 자신의 이미지를 유지하고 강화하기 위해 보여준 행동들은 목사가 아니라 부패하고 노회한 정치인의 모습이다. 다윗의 타락이 왕이 된 후 있었다는 말처럼 대형교회로 성장하면서 목사들은 타락했다. 그 이전에 타락한 목사들도 있겠지만 이 소설 속 명수창 목사는 최소한 그랬다.

 

많은 교회 이야기가 나온다. 최근까지 일어난 소송들도 말하고 지나간다. 훌륭한 목사들이 선택한 후임 목사들의 변신은 인간이 지닌 탐욕이 얼마나 무서운지 잘 보여준다. 세습의 이유 중 하나로 자신의 비리라고 말할 때 그들이 가진 기득권에 대한 집착을 볼 수 있다. 성직자로 생각했던 목사들이 얼마나 이중적인지 잘 보여준다. 죄를 용서받으려고 할 때는 인간을 외치고, 돈을 걷을 때는 신앙을 외친다. 천국에 집착한 교인들에게 목사는 또 다른 우상이 된다. 속된 말로 예수가 재림하면 한국 교회의 모습을 보고 놀라고 이단으로 몰릴 것이란 말이 그냥 무심코 흘려들을 이야기가 아니다. “신앙은 교회에만 머물러 있으면 안된다. 신앙은 세상으로 흘러가야 하고, 세상에서 증명되어야 한다.”는 의미심장하다. 또 다른 해석으로 변질된 가능성도 있지만. 묵직한 이야기를 다양한 시선과 현실을 바탕으로 잘 보여준다. 교인들이 읽고 자신의 신앙을 돌아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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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폴의 하루
임재희 지음 / 작가정신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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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재희 작가는 장편 <비늘>로 처음 만났다. 등단과 작가에 대한 고민이 묻어 있는데 최근의 문단 경향을 아는데 조금은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직접 번역한 <블라인드 라이터>는 역자 이름 때문에 한 번 더 눈길을 주었고 운 좋게 읽게 된 작품이었다. 이런 일련의 기억들이 이번 단편으로 이어지게 만들었다. 한국 태생이지만 외국으로 이민 간 경험이 있는 작가란 부분도 무시할 수 없다. <작가의 말>에서 왜 한국 문단으로 등단하게 되었는지 알려주는데 많은 부분 공감한다. 하진이 다른 언어로 소설을 쓴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지 이미 보여줬기에 더욱 그렇다.

 

아홉 편의 단편들 대부분은 이민자의 삶이 녹아 있다. 아마도 <동국>을 제외하면 전부라고 해도 될 것이다. 소설의 배경이 한국인 작품도 있고, 미국인 작품도 있는데 이것은 거의 반반이다. 의도적인 것인지, 결과가 그렇게 나온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읽다 보면 첫 작품 <히어 앤 데어(Here and There)>의 연장선임을 자주 느낀다. 한국에 다시 돌아온 교포가 겪게 되는 일상을 보여주는 이 작품에서 우리가 무심코 던지는 질문들이 상대방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준다. 다시 돌아온 교포들이 보여주는 어눌한 행동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보일 때는 안타깝다.

 

<동국>은 남편의 감전 사고 이후 불행한 삶을 산 작은 어머니의 일생을 조카의 시점에서 보여준다. 힘들게 사는 와중에도 부조를 100만 원이나 했는데 그 이름이 낯설다. 동국. 제대로 이름을 불러본 적이 없다 보니 작은 어머니인지도 의문스럽다. 이 가족에게 닥친 비극은 정말 처참하다. 이름에 담긴 아픔과 그녀가 내뱉는 외침이 가슴에 강한 여운을 남긴다. <라스트 북스토어>는 분명하지 않은 사건을 바닥에 깔아둔 채 이야기를 진행한다. 추측만 할 수 있는 이 사건이 동생 부부의 삶을 파괴했다. 헌책방에서 발견한 몇 가지 책과 cd는 답답한 일상에 작은 위로가 된다. 하지만 그 뿐이다.

 

<천천히 초록>은 이민에서 돌아온 후 자신이 태어난 곳을 돌아보면서 과거를 추억한다. 그 추억 속 이야기보다 망가진 아버지가 더 눈길을 끈다. <로사의 연못>은 이민자의 삶과 욕망이 잘 드러난다. 원하는 곳에 원하는 집을 지었지만 그 원함이 왜곡되었음을 보여준다. <분홍에 대하여>는 조화를 만드는 그녀의 추억이 아주 인상적이다. 살 때 몰랐다는 그 감정이 평범하지만 가슴 깊게 파고든다. 색에 대한 번역을 나이와 연결하는 마지막 장면은 강한 여운을 남긴다. <압시드(Abcd)> 무심코 제목을 봤다. 입양된 노인의 독백으로 이어지는데 처음에는 아랍계로 착각했다. 한국전쟁 당시 아는 알파벳을 모두 적은 것이 이름이 되었고, 당시 미군 흑인과 결혼한 여성과의 인연과 관계는 또 다른 삶을 잠시 들여다보게 한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인 단편이었다.

 

표제작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폴의 하루>는 오픈티켓으로 구매한 표의 좌석이 없으면서 겪게 되는 폴의 하루를 다루었다. 미국에 직장을 다니는 그가 한국에 온 이유는 엄마 때문이다. 이 작품에서 첫 단편의 그녀를 떠올린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문화적 충돌이 곳곳에 드러나고, 처음 경험한 지옥이 그래도 나을 것이란 말에 삶이 잠시 우울해졌다. <로드>는 댈러스에 있는 엄마의 집으로 자동차 여행을 가는 세 남매 이야기다. 긴 여행은 서로가 느끼고 가지고 있던 가족을 말하게 한다. 엄마라는 존재가 지닌 무게와 의미는 여전히 존재한다. 나이가 들어 뒤돌아본 부모의 삶에 눈길이 간다.

 

이 아홉 편의 단편을 읽으면서 이민자의 삶을 돌아봤다. 이민자들이 그들의 자식을 어떻게 보는지도.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이들이 느끼는 감정의 일부도 봤다. 하지만 어딘가에서 끊긴 듯한 느낌이 든다. 생략된 이야기에서 추론할 수밖에 없는 것은 아쉽다. 단서를 보여줬거나 알려줬는데 내가 알지 못했다면 내가 잘못 읽은 탓일 것이다. 늦은 등단인데 다른 작가들처럼 꾸준히 작품을 내주었으면 좋겠다. 우리가 흔히 보는 삶이 아닌 조금은 다르고 낯설게 본 삶을 말이다, 그 속에서 우리의 삶을 발견하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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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포스 1
돈 윈슬로 지음, 박산호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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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좋은 경찰이 되고 싶었던 데니 멀론의 몰락기다. 멀론은 뉴욕 맨해튼 북부 특수 수사팀의 책임자이자 자타가 공인하는 맨해튼 북부 지역의 왕이었다. 물론 왕이라고 해서 나쁜 짓을 저질러도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는 현재 기준으로 본다면 부패 경찰이다. 마피아에게 뒷돈을 받고, 마약상의 돈과 마약을 훔친다. 당연히 이 돈들을 혼자 꿀꺽 삼키지 않는다. 동료들과 나누고, 일부는 위로 상납한다. 이런 일들은 이 소설 속에서 일상처럼 벌어진다. 부패와의 전쟁으로 깨끗해졌다고 생각했던 뉴욕 경찰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여전히 뇌물은 받는다. 물론 받지 않는 경찰들이 더 많을 것이다. 하지만 뇌물을 주려는 사람들이 있고, 그 돈이 필요한 경찰이 있는 한 이것은 영원히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다 포스는 뉴욕 특별수사대다. 이 수사대는 여러 지역을 나누어 관리한다. 그 중에서도 최고는 멀론이다. 이 수사대가 만들어진 것은 그의 아이디어 덕분이다. 작가는 이 사실을 알려주기 전에 뉴욕 경찰의 부패를 다룬 간략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우리가 영화로 본 부패 경찰 이야기도 같이. 이런 노력은 경찰들에게 커피 한 잔, 샌드위치 하나도 뇌물로 여기게 만든다. 작은 불씨가 큰 화재로 번지는 것을 막으려는 시도다. 깨끗한 공무원을 바라는 것은 시민들이라면 누구나 바라는 바다. 하지만 이 소설을 읽으면 멀론과 그 동료들에 괜히 감정 이입하면서 그들의 부패를 용인하려는 마음이 생긴다.

 

수많은 경찰 영화에서 최악은 언제나 밀고자다. 내사과를 다룬 영화 속에서 유능한 부패 경찰이 강하게 내뱉는 말들에 일정 부분 인정하면서도 그의 부패에 더 초점을 맞춘다. 그가 왜 나쁜지 공감한다. 그런데 이 소설을 읽으면서는 그의 부패와 나쁨보다 다른 것들이 더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를 밀고자로 만들어 부패를 소탕하려는 조직과 검사들의 배후와 목적 덕분이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경찰의 현실 때문이다. 가장 위험한 곳에 가장 먼저 달려가고, 결코 많지 않은 급여를 받으면서 그들은 최선의 노력을 한다. 물론 그들에게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강한 인종차별주의자들이고, 때로는 이 때문에 무고한 흑인을 죽이기도 한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아직도 강하게 남아 있는 인종차별에 깜짝 놀랐다고 하면 내가 너무 순진했던 것일까?

 

멀론의 아버지도 경찰이었다. 동생은 소방관이었다. 하지만 9.11 테러에 동생은 순직했다. 이제 십 수 년이 지나 우리에게 희미해진 이 사건이 아직도 뉴욕 등에서는 현재진행형이다. 멀론도 가끔 이 악몽을 꾼다. 쌍둥이 빌딩이 서 있던 곳을 지나면 텅 빈 그 공간에 아픔을 느낀다. 이런 일반적인 경찰인 그가 자신의 구역으로 넘어가면 왕과 다름없다. 마피아와 거래를 하고, 마약상들을 관리한다. 마약상들끼리 살인 사건이 발생하면 경찰이 시장의 총알받이가 된다. 이런 시장들은 경찰의 지지를 받을 수 없다. 하지만 뉴욕에는 경찰만 있는 것이 아니다. 다양한 소수 민족의 표가 어떨 때는 더 중요하다. 이것도 하나의 중요한 설정이다.

 

멀론 팀은 가족보다 더 끈끈한 관계다. 대부와 대자의 관계로 엮여 있고, 누군가 사고 나면 다른 사람들이 그 가족을 돌본다. 상납과 갈취로 얻는 돈은 똑같이 나누고, 일정 부분은 비자금으로 사용한다. 내사과를 비롯해 조직 곳곳에 그들의 돈을 받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언제나 사건은 작은 실수에서 비롯한다. 이 실수가 먼저 그를 삼키고, 주변 사람들을 하나씩 삼켜간다. 이럴 때 경찰들이 보여주는 반응 중 하나는 자살이다. 그럼 더 이상 수사가 진행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실 멀론에게도 그런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그는 사랑하고 돌봐야 하는 사람들이 먼저였다. 경찰을 파는 밀고자는 결코 되지 않겠다는 선을 그으면서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놓인다.

 

부패 경찰 멀론은 말한다. “난 경찰을 사랑했어. 정말 사랑했지. 난 이 빌어먹을 도시도 사랑했어. 하지만 이젠 틀렸어. 당신들이 다 말아먹은 거야.” 앞에서 말한 것은 사실이다. 뒤에서 말한 것도 사실이다. 경찰로써 멀론은 지켜야 할 선을 나름대로 지켰다. 노약자와 여성들과 아이들을 특히 보호하려고 했다. 갱들의 전쟁에 가족들을 배제하려고 했다. 하지만 전쟁에 아이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잔혹만이 위력을 발휘한다. 멀론의 영혼 일부를 잃어버린 것도 바로 이 순간들 때문이다. 당연한 듯한 일들이 반복되고 지속되면서, 자신의 힘에 도취되면서 그 틈은 벌어진다. 그 좁은 틈은 이제 그와 관련된 모두를 삼켜버릴 만큼 거대해진다. 영웅이라고 불렸던 인물은 거대한 물결에 휩쓸려 자신의 삶을 잃어간다.

 

한 영웅의 몰락만 다루었다면 그냥 보통의 경찰 부패를 다룬 소설로 그쳤을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경찰의 현실을 보여주고, 뒤에서 이들을 이용해 정치하는 인물들과 이들보다 더 큰 부패의 원흉을 알려준다. 시장이 부패 경찰을 척결한다고 할 때 자신을 빼놓고, 대기업 총수가 엄청난 횡령을 하지만 직원들의 사소한 횡령을 용납하지 못하는 것처럼. 멀론을 앞으로 부각시켜 거대한 부패의 고리를 엮고 풀어가는 과정은 그에게 감정이입할수록 아프다. 괴롭다. 그가 원하는 거라곤 좋은 경찰이 되는 것뿐이었는데, 그 사실을 알고 있기에, 하지만 그 정도가 심했기에, 그 선을 넘었기에 나는 이 사이에 혼란을 느낀다. 지금은 이성보다 감정이 더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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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희의 기담 - 이상야릇하고 재미있는 옛이야기
오정희 지음, 이보름 그림 / 책읽는섬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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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 아이, 남녀노소가 두루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생각한 작가의 결과물이다. 그 바탕이 되는 것은 <강원도 설화집>이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어린 시절, 할머니나 주변 어른들로부터 들었던 옛날이야기, 또래 동무들끼리 지어내어 나누던 이상하고 으스스하고 괴기스러운 이야기들을 나름의 상상력으로 재구성”하고 싶었단다. 실제 이 기담집에 나오는 이야기 중 몇 편은 아주 낯익다. 설화나 민간전설 등에 나온 이야기의 변형이 보이기 때문이다. 강원도라는 지역을 빼면 한국 어디에서나 만날 법한 이야기들이다. 이런 이야기들이 작가 오정희의 손을 통해 재구성되었다.

 

결코 많은 이야기가 아니다. 겨우 여덟 편이다. 편당 분량도 많지 않다. 마음먹고 읽으면 한두 시간이면 다 읽을 수 있다. 기담을 다루다 보니 작가 오정희의 특징을 잘 파악할 수도 없다. 이것은 <강원도 설화집>에 나오는 이야기 원형을 모르다보니 더 그런 생각이 든다. 작가가 설화에 어떤 첨삭을 했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다만 가독성이 좋고, 군더더기 없는 이야기라 더 쉽게 빠져든다. 말로 전해지는 것과 달리 글로 변했을 때는 아무래도 작가의 필력이 작용할 것이다. 내가 알아채지 못해서 문제지만. 이런 생각들은 적은 수의 기담이 주는 아쉬움에서 더욱 더 커진다.

 

이 기담집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한 명이 있다. 바로 이보름 화가다. 작품 속에 그려진 몇 편의 그림은 간결한 선과 여백으로 이야기를 더 돋보이게 만든다. 그림을 잘 몰라 자세하게 말할 수 없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그리고 감안해야 할 부분도 있다. 시대다. 대부분 조선 시대를 다루다 보니 전근대적 사상이 곳곳에 드러난다. 작가가 이 부분을 조금 손 본듯하지만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사람에 따라 조금 불편할 수도 있을 것이다. 기담이란 설정에서 알 수 있듯이 비현실적인 이야기들이 대부분이다. 내려놓고 보면 이 황당한 이야기가 아주 재밌게 다가온다.

 

<어느 봄날에>에서 윤호는 누나 윤옥의 말을 듣지 않아 죽는다. 누나는 계교로 복수를 하고, 죽은 동생을 살릴 생각을 한다. 어느 부잣집 일꾼으로 들어가 사위가 된 후 그 집에 숨겨진 보물을 훔친다. 이후 벌어지는 이야기는 누군가의 노력보다 자신의 욕망이 더 큰 힘을 발휘한다는 평범하지만 기이한 이야기로 마무리한다. <그리운 내 낭군은 어디서 저 달을 보고 계신고>는 낯익은 이야기다. 남편을 믿지 않은 아내의 고생담을 다룬다. 언니들의 간교한 욕심과 질투도 한몫한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있다.

 

<앵두야, 앵두같이 예쁜 내 딸아>는 계모의 간교한 술책에 너무 쉽게 넘어간 아비의 모습을 보면서 부모의 역할을 생각하게 된다. 아비의 후회와 오빠들의 복수는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용화산>은 처음 생각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결과만 놓고 보면 어딘가에서 본 듯한 이야기다. 두 괴물의 말 중 어느 쪽이 맞을까 궁금하다. <누가 제일 빠른가>는 황당함 그 자체다. 반 나절만에 누에를 키워 옷을 만든다. 이 놀라운 처녀의 결혼 상대가 되기 위해서는 그만한 능력이 있어야 한다. 빠르기만 해서는 안된다. 실수도 없어야 한다. 처녀를 구해주는 인물의 능력도 정말 황당하다. 그렇지만 재밌다. 이야기의 힘이다.

 

<주인장, 걱정 마시오>는 김응하 장군 이야기다. 역시 낯익다. 하지만 김응하가 일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것은 조금 아쉽다. 역사와 가장 밀접한 이야기다. <짚방망이로 짚북을 친 총각>은 유럽의 동화와 같은 느낌이다. 오빠보다 훨씬 현명한 여동생의 존재는 은연중에 빛난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유언과 마지막 장면이 연결되는 부분은 잘 이어져 있다. 작가의 구성이 작용한 것일까? <고씨네>는 한 여성의 불행한 삶을 보여준다. 아내의 노동으로 공부만 하는 남편. 과거 시험을 위해 떠난 후 연락조차 없던 남편. 그리고 새로운 남편과 그의 죽음. 금의환향한 전남편이 내뱉은 한 마디는 아주 잔혹하다. 조선 시대 열녀에 대한 비판으로도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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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의 기억
줄리언 반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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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문학의 제왕 줄리언 반스가 쓴 단 하나의 연애소설.’ 이 얼마나 멋진 광고인가. 반스의 소설을 읽는데 늘 힘겨워하는 나도 이 문구에 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실제 반스는 개인적으로 잘 읽히는 작가가 아니지만 나오면 늘 관심을 두고, 여력이 되면 구입하는 작가들 중 한 명이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다. 재밌고 잘 읽히지만 왠지 쉽게 손이 나가지 않는 작가 말이다. 이런 반스의 신작에 눈빛이 반짝인 것은 당연히 연애소설이란 단어 때문이었다. 그리고 첫 문장의 강렬함도 한몫 했다. 그 중심에는 쉼표가 있었다.

 

문장에서 늘 그 중요성에 비해 홀대받는다고 말하는 것이 쉼표다. 나 자신도 문장을 쓸 때 쉼표를 잘 이용하지 않는다. 쉼표가 만들어내는 호흡을 잘 다루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소설에서 이 쉼표들은 아주 멋진 역할을 한다. 쉼표는 잠시만 한눈을 팔면 그 의미를 잃어버리고 다른 문장으로 이해된다. 쉼표 원래의 역할도 무시할 수 없다. 그 짧은 멈춤이 앞의 문장을 빠르게 복기하게 만들고, 강조하고, 뒤에 어떤 말이 나올지 궁금하게 만든다. 그 용도를 알지만 잘 사용하지 않고, 잊고 있던 쉼표가 소설 내용보다 먼저 눈에 들어왔다.

 

19세 청년과 48세 부인의 연애는 어떤 모습일까? 이 소설 속에서도 말했듯이 능숙한 부인이 초보를 잘 인도하는 모습일까? 쉽게 생각할 때, 다른 영화 속 장면들을 생각할 때 우리가 기대하는 모습들이다. 하지만 이 소설 속 수전은 그렇게 능숙하지 않다. 남편으로부터 차갑다는 말을 듣는다. 두 서툰 남녀의 사랑은 우리가 예상을 뒤엎는 장면들로 가득하다. 혹시 뭔가 농밀하고 에로틱한 장면을 기대했다면 책을 덮는 것이 좋다. 실제로 자극적인 묘사가 나오지 않는다. 원 제목처럼 하나의 이야기(The only story)만 다룰 뿐이다. 거기에 열아홉 살 소년 폴과 마흔여덟 살 수전이 있었다.

 

십대를 돌아보면 세상을 냉소적으로 쳐다보고 비아냥거리기 바빴다. 아직 섹스혁명이 일어나기 전 영국 한 시골 마을에서 열아홉 살 대학생이 어른들의 사교모임인 테니스클럽에 가입했을 때 느낀 것도 이것과 별로 다를 것이 없다. 혼합 복식으로 경기를 할 때 보여준 몇 가지 예의는 십대에게 답답할 뿐이다. 그러다 만난 수전은 자기와 키가 똑같고, 마음이 조금 통했다. 아마 처음부터 이 둘이 사귈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작은 마을에 작은 소문거리를 만들어내는 것 정도를 생각했는데 감정과 상황이 이 둘을 하나로 묶었다. 사랑에 서툰 두 남녀로 말이다. 재밌는 것은 수전이 둘의 관계 횟수를 세고 있었다는 것이다. 왜일까?

 

기억은 늘 혼란스럽게 찾아온다. 시간은 과거의 기억 속에서 순서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상황과 장면들이 나오고, 그보다 앞에 있었던 일들도 나온다. 이런 기억들 속에 둘은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에 빠진다. 대학생이었던 폴은 학교로 가서 수업을 받아야 하는 순간도 있었다. 밀회를 위해 짧은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남편을 속이고, 부모를 속이는 이런 행동이 지속될수록 알려질 확률이 높아진다. 결국 둘은 테니스클럽에서 제명당한다. 이 소문이 마을을 흔들고 다녀야 하지만 조용히 처리된다. 이때 이 둘은 헤어질 수도 있었다. 수전이 남편에게 맞는다는 사실을 몰랐고, 아직 사랑이란 것에 집착하는 십대가 아니었다면.

 

둘이 런던에 집을 구해 같이 살게 되었을 때는 그 사랑의 열정이 빠르게 식는 중이었다. 이제 이십대가 된 청년과 중년 부인의 관계는 누가 봐도 이상하다. 폴도 그녀의 대자라고 말한다. 실제 관계가 불러올 오해와 문제를 피하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그 바탕에는 현실의 무거움이 자리잡고 있다. 수전의 남편 고든이 술을 많이 마셨는데 어느 순간 수전도 술을 많이 마신다. 이 문제도 그들을 파국으로 이끈다. 폴이 주장한대로 둘이 결혼했다면 더 오랫동안 관계가 유지되었을까? 둘의 나이 차이와 다른 상황은 또 다른 문제를 불러왔을 것이다. 폴이 말하는 하나의 가정처럼 그녀가 능숙했고, 사랑 기술을 발전시킨 그가 떠났다면 한 편의 영화 같았을지 모른다.

 

역자의 글을 읽기 전에 생각하지 못한 것 하나가 있다. 수전의 이야기가 없다는 것이다. 사랑을 한다는 것은 둘이란 의미다. 홀로 몰래 한 사랑이 아니라면. 폴의 기억 속에서 흘러나온 이야기는 그의 이야기다. 그의 감정이고, 사랑이고, 추억이다. 이것은 우리가 누군가를 추억할 때, 지나간 사랑을 되짚어볼 때 늘 있는 일이다. 그래서인지 마지막 장면은 아주 인상적이다. 영화처럼 그의 말 한 마디에 수전이 보인 반응은 없고 현실적인 짧은 고민만 있을 뿐이다. 언제나 그렇지만 기억 속 사랑은 있었던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우리의 기억 속에서 윤색된다. 작가도 몇 번 이렇게 말했지 않은가. 이번 소설로 반스에게 한 발짝 다가간 것 같다. 나만의 착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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