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보다 오늘 더 사랑해 - 김민기가 생각하는 오래 사랑하는 법
김민기 지음 / 팩토리나인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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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기란 이름 낯설다. 하지만 그의 여자 친구 홍윤화는 낯익다. 이제 TV를 잘 보지 않으면서 몇몇 아주 유명하거나 가끔 보는 방송에 나오는 연예인을 빼면 잘 모른다. 개그맨 신인들은 더 낯설다. 사실 김민기는 신인도 아니다. 다만 홍윤화보다 인지도가 낮을 뿐이다. 아마 그의 이름이나 얼굴을 기억한다면 아주 가끔 본 <웃찾사> 때문일 것이다. 이런 개그 프로그램을 보지 않은지도 몇 년 되었다. 그래도 포털에 올라온 검색어 때문에 이 커플의 존재는 알았다. 당연히 이 인식은 그때뿐이었다. 그런데 김민기가 에세이를 내었다고? 큰 기대없이 읽기 시작했는데 예상외로 재미있었다.

 

홍윤화의 독려에 그는 밍키월드란 블로그를 운영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한 번 들어가 봤다. 그들의 연애사가 간단한 만화로 표현되어 있다. 이 책을 다 읽기 전에 책 속에 이 만화들이 나오는지 궁금했다. 그런데 없었다. 둘이 찍은 사진과 그들의 연애사를 풀어낸 글뿐이었다. 조금은 아쉽다. 김민기의 재능 중 하나를 묵혀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계속 읽어나가면서 이 아쉬움은 점점 사라졌다. 그가 풀어내는 그들의 연애사와 연애에 대한 그의 단상들이 재밌었기 때문이다. 그가 잘 한다는 기승전결에 작은 반전을 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이 글 곳곳에 묻어있었기 때문이다.

 

9년 연애. 주변에 보면 이런 커플들이 한둘은 꼭 있다. 잘 된 커플도, 깨진 커플도 꽤 많다. 시간과 사랑은 보통 교차해서 진행되기 때문이다. 어떤 커플은 꽈배기처럼 꼬인 연애를 하기도 한다. 나도 김민기 주변 사람들처럼 이 커플들에게 말한 적 있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처럼 대답한 적 없다. 아마 그런 대답을 들었다면 감탄과 함께 의문을 동시에 가졌을 것이다. 이들의 꽁냥꽁냥한 연애사를 그냥 읽기만 했다면 그냥 보통의 연애사와 다를 바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작가 김민기는 생각보다 흥미로운 글솜씨를 보여주었다. 덕분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

 

책 속에 실린 사진들을 보면서 이 김민기, 홍윤화 커플이 얼마나 행복한지 알 수 있었다. 그들의 웃음은 행복을 전달하는 힘이 있다. 개그맨 커플답게 평범한 컷들보다 연출한 사진이 더 많다. 그런데 보기 참 좋다.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한 글들은 개그맨의 편집을 거치면서 재밌게 바뀌었다. 처음 연애를 시작할 때 글을 읽으면 옛 추억이 소록소록 샘솟는다. 만남이 길어지면 다툼도 생긴다. 하지만 이들은 현명하게 자신들만의 화해방법을 발견했고 잘 이용한다. 멋지다. 오랜 연인의 내공이 힘을 발휘한다. 읽다보면 우리가 연애하면서 자주하는 단어들이 보인다. 역시 중요한 것은 적재적소에 잘 사용하는 것이다.

 

실수하고, 실수하고, 고치려고 하고, 실수하는 현실 속에서 이들의 노력은 계속된다. 자신들이 한 발 물러서면서 상대에게 한 발 더 다가간다. 글을 읽다보면 이런 콩깍지도 없다. 나까지 홍윤화가 엄청 귀여워 보인다. 갑자기 든 생각 하나가 있다. 홍윤화의 입장에서 그들의 연애담을 쓰면 어떨까 하는 것이다. <냉정과 열정 사이>처럼 남녀 버전의 연애사 말이다. 어떤 다른 이야기가 나올지 궁금하다. 그리고 이들의 결혼 소식이 있다. 새로운 현실 세계로 들어왔다. 잘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진심으로 이들의 결혼을 축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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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남긴 증오
앤지 토머스 지음, 공민희 옮김 / 걷는나무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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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제목(The Hate U Give)은 인종차별을 노래한 투팍(2pac)의 말에서 가져왔다. 투팍은 사회에서 소외되고 상처받아 내몰린 사람들을 가리켜 ‘THUG LIFE(폭력배의 삶)’이라고 칭했다. THUG는 제목의 머리글자를 모은 것이다. 제목과 투팍에 대한 이야기로 이 글을 시작한 것은 이 소설이 지향하는 바를 아주 잘 함축해서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시 미국의 총기 규제 문제로 의식은 넘어간다. 기본적인 문제는 인종차별이지만 만약 총기류를 쉽게 구할 수 없다면 경찰들이 과연 그렇게까지 행동을 할까 하는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작가가 이 부분을 말하지 않고 넘어간 것은 조금 아쉽다.

 

증오는 주인공 스타가 혼자 만들지 않았다. 제목처럼 백인들이 준 것이다. 인종차별과 선입견과 공포로 무장한 경찰은 과잉진압의 가능성이 높을 수밖에 없다. 칼릴이 경찰의 총격에 죽게 된 것도 이런 현상의 연장선이다. 미등이 나갔다고 차를 세우고, 흑인이라고 더 강력하게 대처하고, 그의 작은 몸놀림에 총을 쏜다. 이것도 인상적인데 더 놀라운 것은 열두 살 딸에게 아버지가 경찰을 대하는 자세를 가르쳤다는 점이다. 오해를 살만한 작은 행동 하나가 죽음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현실을 잘 알기에 그랬다. 칼릴이 만약 그렇게 행동했다면 최소한 총에 맞지는 않았을 것이다. 솔직히 말해 이 말에는 자신이 없다.

 

스타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흘러간다. 그녀가 자란 동네와 다니는 학교는 다르다. 부모들은 아이들이 제대로 공부해서 이 지역을 벗어나길 바란다. 아빠는 이 지역 마약 두목의 아들이었고, 자신도 감옥에 들어 갔다왔다. 하지만 단호하게 갱에서 벗어났다. 자식들을 위해 그는 노력했고, 또 노력한다. 자신이 감옥에 들어가서 딸의 평범한 일상을 보지 못한 것이 큰 상처로 작용했다. 작은 동네 마트를 운영하면서 동네 사람들과 어울려 지낸다. 칼릴도, 딸도, 아들도 이 마트에서 잠시 일했고, 일한다. 그들의 생계를 책임지는 두 날개 중 하나다. 다른 하나는 간호사인 엄마다. 고정 수입의 힘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카를로스 외삼촌은 경찰이다. 처음 칼릴이 죽었을 때 삼촌은 스타가 경찰서에 와서 진술하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가 모른 것이 하나 있다. 그 경찰이 스타에게 총을 겨누었다는 사실이다. 그날 밤에 있었던 그 사건은 아이를 공포로 몰아넣었다. 누군가가 눈앞에서 죽는 것도 충격인데 첫사랑이자 친구가 죽었다. 열 살에 친구가 죽은 것까지 감안하면 두 번째다. 아무 잘못도 없었는데 죽었다. 그런데 부모들은 그녀가 곁에 있었다는 사실을 숨기려고 한다. 아이가 더 상처받길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삼촌과 아빠의 경찰 진술을 둘러싼 논쟁은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사립학교를 다니는 스타는 학교에 몇 없는 흑인이다. 친한 친구는 중국계 마야와 백인 헤일리다. 셋은 몰려다닌다. 그런데 어느 날 헤일 리가 스타를 언팔했다. 이유는 스타가 올린 사진들이 불편했기 때문이다. 이 소설에서 보통의 백인들이 그들의 사회를 어떻게 보는지 아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진실보다는 순간적인 마음의 평화가 더 중요하다. 아니 정확하게는 흑인들의 죽음에는 관심이 없다. 수많은 미국 소설에서 백인과 흑인의 죽음을 다르게 다루고 있지 않은가. 그래도 친구니까 넘어가다가 칼릴의 죽음으로 완전히 갈라진다. 헤일리는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쉽게 하면서 농담이라고 뭉뚱그린다. 자신의 실수를 깨닫지도 못한다. 백인들의 사고방식 중 일부가 잘 드러난다.

 

스타의 남자 친구는 백인이다. 둘은 사랑하지만 인종 차이가 엄연히 존재한다. 사랑이 이것을 인식하지 못하게 만들었지만 사건은 이것을 더욱 부각시킨다. 차별은 당하고 있는 사람과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의 차이는 아주 크다. 남친 크리스는 그래도 알려고 하지만 헤일리는 알고 싶어하지 않는다. 이 다른 피부색의 커플이 흔한 것 같으면서도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것이 현실이다. 흑인 예수를 믿고, 블랙팬서 등을 추종하는 아빠가 있다면 아주 심각해질 수 있다. 가족 모두가 이 사실을 숨긴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친구의 죽음은 공포와 두려움과 구토와 불신 등을 그녀에게 던져준다. 이것을 견디면서 사실을 진술한다.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이런 일이 있지만 소설은 그녀의 일상과 현실을 더 많이 보여준다. 사회구조적 문제를 다루고, 환경의 지배를 받는 흑인 소년들의 미래를 말한다. 칼릴도 그 중 한 명이다. 공권력은 언제 어디서나 스타를 겁줄 수 있다. 침묵을 강요한다. 흑인들은 폭동을 일으킨다. 시대 속에 쌓인 분노를 토해내는 하나의 방편이다. 하지만 흑인 가게는 건드리지 않는다. 소설 후반부에 가면 스타가 말한다. 이 증오는 당신들이 남긴 것이라고. 흑인 가족의 삶을 보여주면서 하나의 사건이 어떤 영향력을 발휘하는지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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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0호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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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의 소설을 오랜만에 읽었다. <장미의 이름>을 밤새워 읽고 그의 팬이 된 후 나오면 책을 샀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내가 생각한 에코가 아니었다. <푸코의 진자>를 읽을 때만 해도 잘 모르지만 재밌었는데 <전날의 섬>에 넘어오면서 취향을 벗어났다. <바우돌리노>는 읽었는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사는 것을 멈추지는 않았다. 왜 이렇게 차이가 날까 하는 의문이 들었지만 이유를 몰랐다. 그런데 이번에 역자의 후기를 읽으면서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다른 소재와 다른 문체 때문이다. 사실 많은 주변 사람들이 <장미의 이름>이 힘들다고 했다. 나는 재밌었는데 말이다. 이 차이를 인정하고, 이번 소설을 읽으니 에코의 다른 모습이 보였다.

 

발행되지 않을 신문의 이름이 제0호다. 발행인의 목적은 신문을 발행하는 것이 아니라 이 신문이란 매체를 가지고 다른 세계로 진입하는 것이 목적이다. 이런 목적을 알고 있는 주필 시메이는 화자에게 큰 뒷돈을 주고 그에게 대필 작가의 일을 맡긴다. 이 신문 발행을 둘러싼 내용을 소설로 쓰고, 나중에 이것을 책으로 낼 것이란 협박으로 돈을 벌 생각이다. 화자는 이 내용을 알고 시메이와 계약한다. 그리고 발행되지 않을 신문사는 기자들을 채용한다. 발행인이 가진 의도를 충실히 이행하려는 주필은 기자들의 새로운 아이디어를 적용할 마음이 없다. 그가 바라는 것은 평범한 기사와 무기로 이용할 수 있는 기사들이다.

 

이미 한국에서는 기레기란 이름으로 기자들의 작태들이 알려줘 있다. 가짜 뉴스가 범람하는 현실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나 자신도 알게 모르게 이 가짜 뉴스를 듣고 전달하는 역할을 했다. 진실을 파악하려는 의도보다 나의 성향에 맞는 기사가 나오면 그냥 덥석 물고 만다. 특히 정치인들의 말이 나오면 사실 여부보다 당파성을 우선시 하는 나쁜 버릇도 있다. “사람들은 정치인들의 말을 이해하지 못해요. 정치인들은 말을 제대로 하지도 않고 열정에 차서 확실하게 말하지도 않아요. 그저 요란하게 짖어댈 뿐이죠.” 한국 현실 정치에서도 그대로 맞아떨어지는 문장이다. 언론은 이것을 더욱 부채질한다.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정치를 이끌기 위해서라면 더욱 더 심하게.

 

시메이가 하나의 사건을 두고 어떻게 물타기를 하는지 잘 설명해준다. “오늘날에는 누군가에게 고발을 당하거나 기소를 받게 되었을 때 그것에 응수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옳지 않다는 것을 증명할 필요가 없어요. 그저 그 고발인이나 기소인의 정당성을 떨어뜨릴 만한 것을 찾아내면 됩니다.” 이 문장을 읽고 삼성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가 떠올랐다. 새로운 프레임을 만들어 사건이 원래 의미하는 바로 왜곡하는 것이다. 한국만 이런 것이 아니고 이탈리아도 이런 일이 자주 있는 모양이다. 뭐 가짜 뉴스가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니까. 이렇게 이 소설은 이런 언론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가짜 신문 만들기라는 이야기 속에 무솔리니를 둘러싼 음모론이 또 하나의 큰 흐름이 이룬다. 무솔리니의 죽음이 가짜고, 다시 그가 나타나 정권을 잡으려고 한다는 주장이다. 작가는 이 작업에 상당한 공을 들인다. 그리고 이 이야기의 도입부에서 생기는 의혹과 두려움은 여기서 비롯했다. 실제로 1년 동안 유지하려고 한 신문사가 두 달 만에 문을 닫게 된 것도 이 음모론을 조사하던 기자가 살해된 탓이다. 발행인은 이 사건으로 발행 중단을 결정한다. 도입부의 걱정과 공포와 두려움은 이 때문이다. 이후 과거로 돌아가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알려주는 구성인데 언론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어떤 기사가 나오는지 잘 보여준다.

 

무솔리니를 둘러싼 음모와 관련된 가설에서 놀라운 점은 이미 많은 자료들이 파편적으로 드러나 있다는 점이다. 한 인물의 역사를 조사할 때 여기저기에서 나온 이야기를 모으면 하나의 흐름을 만들 수 있다. 요즘처럼 데이터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정치인 등이 내뱉은 말들은 나중에 자신을 공격하는 말로 변하기도 한다. 무솔리니를 조사한 브라가도초도 이렇게 드러난 자료를 하나로 묶었다. 조각난 사실들은 무서울 것이 없지만 뭉쳐지면 그 이미지나 사실이 위험해진다. 그리고 이 사실이 밖으로 세상으로 알려지면 폭로자는 아무 것도 아니다. 소설은 이런 지점을 꼭꼭 집고, 이 부분에 대응하는 방법까지 말해준다. 음모론과 언론을 멋지게 엮었다. 분량보다 이야기할 거리가 훨씬 많은 소설이다. 아직 읽지 않은 에코의 소설을 찾아봐야겠다. 움베르토 에코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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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트의 세계
듀나 지음 / 창비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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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랜만에 듀나의 장편소설을 읽었다. 한창 영화를 보던 시기에 그의 영화 평도 본 적이 많다. 최근에 와서 영화 볼 수 있는 시간이 나지 않으면서 그의 영화 평도 점점 멀어졌다. 이 책을 읽으면서 잠깐 그의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본 것이 전부다. 하지만 상당히 꾸준히 나오는 그의 책들은 늘 관심의 대상이다. 그의 소설이 자주 눈에 띄는 것도 하나의 이유다. 모두 읽지는 않았지만 집 책장을 뒤지면 몇 권은 더 나온다. 취향에 완전히 맞는 작가는 아니지만 꾸준히 한국 SF를 내놓고 있다는 점에서 관심의 대상이다. 그런데 이번에 내놓은 책은 상당히 취향과 잘 맞았다.

 

민트의 세계. 제목만 놓고 보면 완전히 취향 바깥에 있다. 표지는 또 어떤가. 아마도 듀나라는 이름을 보지 못했다면 편견으로 이 소설을 놓쳤을 것이다. 책소개를 보니 6년만의 장편이라고 한다. 이 소설의 가장 기본이 되는 설정이 2013년 연작소설집 <아직은 신이 아니야>에서 나왔다고 한다. 그것은 초능력을 일깨우는 배터리라는 존재다. 처음에는 이 배터리의 존재를 크게 인식하지 못했지만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이 설정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가 배터리임을 알게 된다. 이들이 없다면 사람들은 초능력을 사용할 수 없다. 이들은 초능력 에너지 공급원이다.

 

에너지 공급원이 있다고 모두가 똑같은 능력을 발휘하는 것은 아니다. 개인에 따라 발현되는 능력이 다르다. 등급에서도 차이가 난다. 하지만 배터리가 없다면 그 능력에 제한이 걸린다. 여기에서 또 중요한 것이 하나 있다. 자신만의 배터리와 링크된다면 그 힘이 더 강해진다는 것이다. 작가는 이야기를 만들고 풀어가는 과정 속에 이런 설정들을 계속해서 알려준다. 이런 장르의 특성이다. 작가가 설정한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면 재미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SF나 판타지 같은 장르 소설이 한정된 독자를 가질 수밖에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솔직히 말해 나도 이 세계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아니다.

 

이야기는 두 시점으로 진행된다. 하나는 21층 천장에서 시체로 발견된 류수현을 쫓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민트 팩의 이야기다. 작가는 교묘하게 이 두 시점을 꼰다. 읽다 보면 다른 시간대를 다루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이 설정은 독자의 시선을 유도해서 다른 결말을 예상하게 만든다. 시체를 발견한 한상우 등의 류수현 죽음 원인 찾기는 과거 민트의 활약을 복기하는 역할을 맡는다. 동시에 민트는 적들과 싸우면서 그들의 팩이 가진 능력을 극대화시키고, 그들이 바라는 바를 이루기 위한 노력을 기울인다. 후반부로 가면서 이 두 시점은 하나로 합쳐진다.

 

이전에 듀나의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낯설게 느낀 것은 그 당시 실제 지명을 사용한 것과 한 여자 연예인의 실명을 등장시킨 것이었다. 그 때문인지 Twinkle이란 단어가 들어간 노래가 나왔을 때 태티서가 떠올랐다. 나만 이렇게 생각한 것일까? 그리고 지금부터 40년 뒤에 한국에서 지금과 같은 이름의 커피숍이 그대로 나오는 것을 보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지명은 그렇다고 하지만 커피숍까지 그럴까? 이런 이름들을 보면서 작가가 새로운 이름 지어내기 귀찮았던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좋게 포장해서 대기업이 아직도 힘을 발휘한다고 할 수도 있지만 이미 대기업이 거의 사라진 미래를 말하고 있다.

 

다양한 초능력자들이 등장하고, 이들이 힘을 합쳐 상대방을 공격한다. 이 장면을 읽으면서 머릿속에 떠오른 이미지는 아쉽게도 어벤져스의 영화 장면들이다. 나의 한계인지, 할리우드 영화의 대단함인지. 그리고 낯선 개념들은 읽는 속도를 생각보다 더디게 만들었다. 그 중 하나가 환영을 만들고, 거기에 인격을 부여하고, 그 인격에 중독된 사람들 이야기다. 이것은 뒤로 가면서 더 정밀해지고, 아주 다양한 방식으로 발전한다. 민트의 이야기는 바로 이 부분에 집중해 있다. 반면에 한상우의 시점은 한 편의 추리소설을 읽는 느낌을 주었다. 어떻게, 왜 이런 사건이 벌어졌는지, 그 이면에는 어떤 일이 있는지 등. 읽으면서 많은 SF영화나 소설들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중간중간 미래 이야기를 할 때는 또 다른 떡밥으로 다가왔고, 민트의 미래는 어떨지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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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히나타 식당
우오노메 산타 지음, 한나리 옮김 / 애니북스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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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시울을 붉게 만드는 만화다. 큰 기대 없이 늦은 밤 우연히 펼쳤다가 단숨에 다 읽었다. 그렇게 두툼하지 않은 분량 속에 너무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어 단순한 요리 만화 정도로 생각했었다. 그런데 각각의 메뉴 속에 하나의 짧은 에피소드를 정말 잘 녹여 내었다. 일본식 가정요리법까지 담고 있어 음식 만들기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한 번씩 따라해도 될 정도다. 물론 나처럼 먹기만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다만 일본에 여행가서 이런 음식점이 있다면 꼭 한 번 먹어보고 싶다. 맛의 추억과 감성이 달라 작품 속 인물들처럼 감동할 가능성은 낮겠지만 정성 가득한 음식이 주는 맛은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에피소드 하나에 메뉴 하나의 구성이다. 카레라이스, 오코노미야키, 샌드위치 등은 예외다. 카레라이스는 일본의 국민 가정식이다. 얼마나 많은 일본 드라마나 만화 등에서 카레라이스가 나왔던가. 이 만화 속에서도 카레라이스는 엄마의 요리다. 아버지와 딸의 추억이 겹치고, 엇갈리고, 합쳐지는 부분이다. 오코노미야키와 샌드위치의 경우는 히나타 식당의 주인 데루코 씨의 개인 가정사와 엮여 있다. 살던 오사카를 떠나 도쿄로 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와 그 이후 일어나는 몇 가지 문제들을 같이 다룬다. 부모의 마음, 엄마와 자식의 용기 등이 잘 녹아 있다. 잘못이 오해로 이어지는 과정과 그 잘못을 수용하는 모습은 예상한 것과 다른 모습이다. 가족이 함께 하는 식사의 소중함을 보여주는 장면은 뭉클하다.

 

히나타 식당은 하루 하나의 정식 메뉴만 판매한다. 매일 바뀌는 듯한데 처음 며칠은 손님이 없었다. 아들 간타가 첫 손님처럼 먹는다. 하지만 이 식당에 한 번 찾아온 손님들은 조금씩 단골이 된다. 아이를 데리고 왔다가 그 맛과 정성에 반해 단골이 된 엄마도 있다. 같은 반 친구 엄마와 함께 온 에피소드에서는 맛보다 칼로리와 영양소에 집중한 엄마가 아이가 맛있는 음식을 먹었을 때 표정을 처음 발견한다. 영양도 중요하지만 맛있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지 못한 것이다. 반면에 당근 같은 야채를 먹이기 위한 작은 에피소드도 있다. 맛있는 빵과 함께.

 

이야기 속에 기본적으로 깔린 감성은 엄마가 만든 가정 음식이다. 요리에 자신 없는 한 엄마는 데루코 씨에게 맛있는 된장국 만드는 법을 배운다. 그런데 딸은 엄마의 된장국이 아니라고 운다. 맛 그 너머 있는 추억과 사랑이 더 우선이다. 사실 각 가정은 그 집만의 요리 방법이 있다. 그런데 최근 쿡방이 유행하면서 이것이 사라지는 느낌이다. 만능소스가 간편하게 음식을 만드는데 도움을 줄지 모르지만 그 집만의 특색을 사라지게 한다. 물론 이것은 단순히 쿡방만의 문제는 아니다. 공장에서 생산된 된장, 고추장, 간장, 조미료 등을 사서 요리하면서 맛이 비슷해진다. 하지만 이런 재료를 가지고도 맛있는 음식을 만들 수 있다. 히나타 식당을 보면 그것이 보인다.

 

이 만화에서 가장 자주 보게 되는 장면 중 하나가 맛있다는 감탄을 표현하는 것이다. 그 이유 중 하나가 늦은 밤 정성을 다해 다음날 정식에 사용할 재료를 손질하고 요리하는 데루코 씨다. 이런 그녀의 모습을 보고 처음 이 식당에 온 남자 손님이 매일 오고 싶다고 했을 때 데루코 씨는 미안하다고 말한다. 아들 간타가 성인 남자를 두려워한다는 이유다. 이것은 데루코 씨가 어린 아들과 딸을 데리고 도쿄로 도망친 원인인 가정 폭력 때문이다. 이때 말하는 법도 잊었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간타는 조금씩 말을 하게 된다. 이 장면들 또한 눈시울을 붉히게 만든다. 그리고 스카이트리가 보이는 동네를 보면서 혹시 몇 년 전 스카이트리까지 걸었던 그 길에 있는 식당이 아닐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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