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왔구나
무레 요코 지음, 김영주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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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화는 누구도 막을 수 없다. SF에 나오는 것처럼 노화방지물질이 발명된다면 모를까 현재까지는 당연한 자연법칙이다. 이 자연법칙 중 가족을 괴롭히는 질병들이 있다. 개인적으로 치매가 최악이다. 중풍에 걸린 큰아버지들의 모습을 봤지만 제3자의 입장이다 보니 힘들겠구나 정도에 머물렀다. 중풍 환자를 돌보는 가족들의 힘겨움은 조금 피상적이었다. 그런데 치매 환자를 돌보는 가족들의 글이나 영상을 보면 혹시 나의 부모님도 이런 병에 걸리면 어떻게 하지 하는 걱정을 하게 된다. 충분한 여윳돈이 있다면 요양원에 모시고, 자주 찾아뵙는다는 답안을 가지고 있지만 어디 현실이 그런가.

 

이 작품집은 바로 치매에 걸린 가족을 갑자기 마주한 순간들을 그리고 있다. 역자의 말처럼 사회적인 문제이지만 개인에게 한정해서 생각해볼 필요도 있다. 국가에서 충분한 시설과 인원을 갖춘 후 이들을 돌본다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돈이 많으면 민간요양병원에 위탁할 수 있겠지만 대부분 고액이다 보니 일반 시민들은 힘들다. 이들을 돌봐줄 인력이 파견되지만 한정적이다. 결국 그 너머의 시간은 가족들이 돌봐야 한다. 가족이 돌볼 경우 누가 돌볼 것인지 하는 문제가 있다. 자식이 혼자면 어쩔 수 없지만 둘 이상이면 이것도 갈등의 원인이 된다. 이 단편집은 이런 갈등을 고조시키기보다 어쩔 수 없이 마주한 가족의 치매 문제를 다룬다.

 

부모의 치매를 알게 되었을 때 할 수 있는 말은 무엇일까? “아, 어떻게 하라는 거야!”란 문장이 이것을 가장 잘 대변해주지 않을까. 점점 커져가는 불안감은 조금씩 마음을 잠식한다. 자신의 일이 있고, 돌봐야 하는 다른 가족이 있다면 치매 환자를 돌봐야한다는 사실은 피하고 싶은 현실이다. 이것을 잘 보여주는 작품 중 하나가 <형, 뭐가 잘났는데?>다. 다섯 형제와 며느리들의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이기적이고 현실적인 반응들이 나온다. 이 이야기의 문제는 한 다리 건너서 이야기가 전달되면서 오해의 폭이 넓어졌다는 점이다. 치매 환자가 아니고, 노모가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해피엔딩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제 치매였다면 이 형제들의 행동은 어땠을까?

 

<엄마, 노래 불러요?>는 조금은 이상적인 대응을 보여준다. 남편이 홀몸이자 치매 환자인 엄마를 자신들의 집에 모시자고 한다. 학원 강사를 하면서 시간 여유가 있다보니 아내의 직장 생활을 도우면서 장모를 돌본다. 딸 하루카가 “서로 도와가며 앞으로 잘 지내겠노라”라고 마음먹는 것이 가능한 이유다. 이처럼 치매는 여러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다. 이 단편을 제외하면 치매 가족을 돌보는 인물들은 모두 딸이다. 며느리다. 딸 밖에 없는 집이 대부분이지만 아들은 전업주부인 아내에게 모조리 맡긴다. 같은 남자인 내가 봐도 심하다. 여기에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행동까지 덧붙여지면서 그 아내를 응원하게 된다. 이 강한 인내를 보면서 일본의 황혼이혼 이유가 더 가슴에 와 닿았다.

 

이 소설 속에서 치매 환자인지 판별받기 위한 노력과 함께 조금 낯선 용어들이 나온다. 개호인정 같은 단어가 대표적이다. 법은 어쩔 수 없이 환자의 정도에 따라 우선순위 등을 지정할 수밖에 없다. 등급이 낮으면 가족의 부담이 늘어난다. 공공요양원의 대기가 길다는 것과 함께 고려해야 하는 것이 평균 수명이 길어지는 것이다. 농담처럼 죽은 후에야 들어갈 수 있겠다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것이 아니다. 이런 노인들을 노리고 집안으로 들어와 사는 사람들도 있는 모양이다. 부유한 집안에서 자랐지만 홀로 독립해서 산 야오이가 오랜만에 집에 와서 본 풍경이 바로 이것이다. 제대로 돌보는 가족이 없는 치매 환자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을 잘 보여준다.

 

젊었을 때 어땠는가 하는 것은 치매와 상관없다. 학교 선생이었던, 작은 회사 사장이었던, 홀로 딸들을 키웠던 것들과 관계없다. 정확한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으니 치매에 좋다는 놀이나 운동이 얼마나 효과적인지도 알 수 없다. 이 소설에서 다루는 치매 환자들은 대부분 초기다. 이 증상이 심해지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른다. 극단적으로 나아간 소설도 있다. 치매 환자를 돌보기 위해 집에 여러 가지 설치를 하지만 한 순간의 실수로 이것이 무력해지는 순간도 있다. 서로가 계속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무레 요코의 소설을 읽으면서 처음으로 막막하고 무거워진 마음을 느낀다. 나도 이제 조금씩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하나? 역자의 말처럼 아직 건강한 부모님이 다시금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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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수를 죽이고 - 환몽 컬렉션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80
오쓰이치 외 지음, 김선영 옮김, 아다치 히로타카 / 비채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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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몽 컬렉션이란 브랜드이름과 오츠 이치란 이름에 먼저 눈길이 간다. 오츠 이치의 소설을 오래 전에 읽고 최근에는 읽은 적이 없다. 하지만 집에 찾아보면 그의 읽지 않은 소설들이 상당히 많이 있다. 천재라는 그의 평가에 완전히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재밌게 읽은 기억들이 있다. 이런 기억들이 이 책에 관심을 가지게 만들었다. 목차를 보면 네 명의 작가 이름이 나온다. 각 단편 앞에 이 작가들에 대한 간단한 소개글도 있다. 그런데 이것은 하나의 트릭이다. 실제 이 모든 작가들이 한 명의 대필이다. 이 모든 작가는 당연히 오츠 이치다.

 

읽으면서 이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다. 다만 표제작 <메리 수 죽이기>에 반했을 뿐이다. 작가로 성장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글쓰기는 어떤 것인지 등을 이보다 잘 보여줄 수 없다. 물론 여기에는 오타쿠의 삶이 절절히 녹아 있다. 팬픽과 동인지에 대한 부분도 들어 있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사랑스러운 원숭이의 일기>가 계속 떠올랐다. 약에 절어 있던 한 학생이 책을 통해 앞으로 나아가는 삶을 살아간다는 이야기인데 이 비현실적인 설정에 조금씩 동의하게 된다. 내가 아는(개인적으로 아는 것이 아니다) 장르 작가 중 한 명도 이렇게 읽다가 습작을 한 후 유명 작가로 바뀌었지 않은가. 쓰고, 쓰고, 쓴 다음에 이 글들을 연결하면 한 편의 소설이 탄생한다.

 

<메리 수 죽이기>는 읽으면서 감정 이입과 절제의 중요성을 다시 깨닫는다. 마음가는대로 마음껏 쓴 소설이 재밌는 결과를 만들어내는 경우도 있지만 좋은 작품이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좋은 소설을 쓰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 이 노력의 결과가 소설 속에 어떻게 반영되는지 알 수 있다. 이것은 실제 작가의 경험을 담고 있다. <소년 무나카타와 만년필 사건>은 소년 탐정물이다. 가벼운 소품인데 매력적인 소년 캐릭터를 제외하면 그렇게 강한 재미를 느끼지는 못했다. 진범을 밝혀내기 위해 사용한 트릭도 다른 작품들에서 흔히 본 것이다. 냄새를 제외하면 왠지 긴다이치가 떠오른다. 나만의 착각일까? 개인적으로 이 소년 탐정을 더 보고 싶다.

 

<염소자리 친구>와 <트랜시버>는 내가 읽은 작가의 작품과 비슷하다. 학교 폭력을 폭력으로 대처하는 학생들의 선택은 공감하지 말아야 하지만 공감할 수밖에 없다. 이상적인 것은 잘 선도해서 이런 일이 생기지 않게 하는 것이지만 현실에서 이런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바람길을 따라 날아오는 신문 중 하나에 미래 신문 조각이 있으면서 일어나는 <염소자리 친구>는 중첩된 트릭이 있다. 이 트릭보다 마무리가 더 여운을 남긴다. 반면에 <트랜시버>는 동일본대지진 이후 무너진 삶을 다룬다. 우리에겐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더 알려진 이 사고 후 아내와 자식을 잃은 남편은 자학한다. 그러다 폭음을 한 후 트랜시버를 통해 죽은 아들과 대화를 한다. 환상일까? 하는 의문이 드는 순간 섬뜩한 공포를 전해주는 마무리로 끝난다. 흔한 마무리지만 그 아버지의 행동에 공감한다.

 

<어느 인쇄물의 행방>은 3D 프린터를 극한까지 몰고 간 작품이다. 이야기의 흐름 상 결말의 예상이 가능하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인쇄물과 다른 그것을 둘러싼 이야기는 화자의 상실과 연결되면서 공감의 폭을 넓힌다. <에바 마리 크로스>는 인체 악기를 둘러싼 이야기다. 지역이나 나라에 대한 정보는 전혀 담고 있지 않다. 화자가 연인 에바 마리 크로스에게서 지역 명사 제임스 번스타인의 유품에 대한 의혹을 듣는다. 번스타인의 아내가 남편 사후 자살한 이유가 여기 있다. 이 의혹을 조사하면서 만나게 되는 장면들은 비밀조직의 집회와 닮아있다. 앞에 그가 들은 음악이 겹치고, 새로운 공포가 겹쳐지는 장면은 일반적인 공포소설의 공식이다.

 

다양한 장르를 담고 있다 보니 취향을 타는 작품들이 나누어진다. 공포 쪽은 조금 힘이 약하고, 구성 등이 익숙하다. 반면 글쓰기 부분은 예상하지 못한 재미와 즐거움을 주었다. 시간과 공간을 넘어선 이야기들은 이전에 읽었던 그의 초기작이 떠올랐다. 그리고 이 작가들이 모두 한 명이란 사실을 알고 예전에 읽었던 작품의 서평을 다시 읽었다. 만족한 작품이었는데 오츠 이치란 생각은 전혀 못했다. 새롭게 관심을 가져야 할 작품들이 갑자기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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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만 모르는 엔딩 사계절 1318 문고 116
최영희 지음 / 사계절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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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편의 sf단편 소설이 실려 있다. 이 다섯 편의 주인공들은 대부분 중고등학생이다. 작가는 외계인을 끌고 와 이 시대의 중고딩들의 이야기를 풀어내었다. sf소설이란 형식으로 풀어낸 이야기들은 정밀한 과학지식을 바탕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지 않는다. 상상력으로 만들어낸 기술과 이름을 사용한다. 예전에 어른들이 황당무계한 이야기라고 불렀던 바로 그 방식이다. 실제 책을 읽다 보면 그 황당무계함에 놀란다. 요즘도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는가 하고. 하지만 이 황당함은 현실의 황당함과 이어지면서 현실성을 가진다. 재미는 바로 이 지점에서 생긴다.

 

<기록되지 않은 이야기>는 그 유명한 중2병을 소재로 한다. 미국 동부 명문대 탐방 패키지를 간 부모들이 내뱉은 한탄을 외계인이 듣고 오해한 것에서 시작한다. ‘핏발 선 눈, 유니폼, 힘없는 걸음걸이, 공격성, 심한 감정 기복, 자기중심적’이란 키워드로 중딩을 잡으려고 한다. 우기영은 좋아하던 여자애를 친구에서 선수를 당해 의기소침한 상태로 학교를 땡땡이 친다. 이런 그를 혼내는 노인이 있다. 외계인은 당연히 이 노인을 중2병으로 생각한다. 이 노인을 도와주려는 기영은 키워드와 맞지 않다. 이런 오해와 착각 속에서 해프닝은 이어진다. 그리고 작은 반전이 있다. 읽으면서 그 옛날 방위병들의 도시락을 둘러싼 농당이 생각났다.

 

<최후의 임설미>는 제목만 보고 다중우주를 먼저 떠올렸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다중우주는 소재가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슬리퍼다. 그것도 그 유명한 삼선 슬리퍼다. 이 슬리퍼가 중요한 것 이 삼선이 외계인 츠바인의 언어구조와 일치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임설미는 이 삼선 슬리퍼를 신지 않는다. 이 신발을 신기려는 학생과 이것을 막으려는 선생과 차해린이 있다. 물론 차해린은 자신도 모르게 이 대결에 끼어들었다. 학생부장의 부탁을 받고, 임설미를 관찰하고, 이 거대한 음모를 막는 일에 나선다. 역시 황당무계하다. 하지만 이 기발한 상상력은 우리사회의 획일화를 돌아보게 한다.

 

표제작 <너만 모르는 엔딩>은 소설 속에서 다중우주론을 말한다. 나의 선택과 가능성의 분기점을 통해 미래를 결정지을 수 있다는 설정이다. 호재가 보험처럼 미래를 설계하던 중 절대 원하지 않았던 여자 친구 이민아의 존재가 부각된다. 이 때문에 벌어지는 해프닝은 예상하지 못한 감정들을 보여준다. 인생에서 절대란 함부로 사용하는 단어가 아니다. 재밌는 것은 외계인이 길거리 기독교 선교에 빠져 예수를 믿는 것이다. 현실의 종교를 비판하면서도 그 믿음은 더 굳건해진다. 시간여행을 할 수 있는 외계인이란 점도 재밌다. 선택의 실패를 굳은 의지로 바로 잡을 수 있을까? 예측불가능한 성격의 이민아를 둘러싼 예측불가능한 호재의 미래가 재밌다.

 

<그날의 인간 병기>는 판타지 등에서 많이 쓴 방식이다. 어느 날 나에게 힘이 생긴다면 이란 설정이다. sf에서는 초능력보다 특수 전투복이다. 크롬소프트가 발명한 특수 전투복 T-998을 입고 경수는 이런 저런 일을 벌인다. 하지만 고딩 경수가 이 알바에 참여하게 된 데는 희대 일당의 괴롭힘이 큰 작용을 했다. 역시 황당한 설정과 전개로 이어지는데 이 속에는 현재 집단 괴롭힘이나 학교 폭력 등이 담겨 있다. 현실의 무거움을 깨트리는데 SF를 빌려와 풀어낸 점이 조금 씁쓸하지만 현실적으로 이것을 단숨에 깰 방법이 없다. 경수가 이 전투복을 입기까지 어른들이 보여주는 실수들이 현실과 연결된다.

 

<알파에게 가는 길>은 1회 한낙원과학소설상을 받은 <안녕, 베타>와 짝을 이루는 소설이라고 한다. 이 사실을 이 글을 쓰면서 알게 되었다. 한번 찾아서 읽어봐야겠다. 대체 인간이란 단어를 사용하여 로봇이 인간처럼 활동하는 미래를 그려내었다. 알파는 원래 모델이 되는 인간이고, 베타는 인간을 모델로 만들어진 대체 인간이다. 대체 인간 사냥꾼을 피해 대체 인간들이 사는 곳으로 가기 전 이야기를 다루는데 인간과 기억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이 단편집에서 가장 무겁다. 앞의 작품들이 중고등학생을 등장시켜 황당무계하지만 현실을 다룬 것과 다른 전개다. 이 작가의 작품들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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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홀릭 1 - 내가 제일 좋아하는것은 몬스터
에밀 페리스 지음, 최지원 옮김 / 사일런스북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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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책을 넘겨볼 때 그림이 상당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읽어나가면서 한 컷 한 컷을 보며 감탄했다. 일반적인 그래픽노블을 생각하고 접근했기 때문이다. 매끈하고 잘 정돈된 그림에 익숙하다보니 처음 약간 거부감이 들었다. 이 거부감을 지나면 생각보다 많은 글자들에 또 한 번 놀란다. 예상한 시간보다 읽는데 더 걸렸다. 그래도 이 시간이 지루하지 않았다. 아니 즐거웠다. 다만 몇몇 이야기를 내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 한 번 더 뒤적이면서 놓친 부분을 복기할 필요가 있다.

 

1968년 몬스터를 좋아하는 캐런 윗집의 앙카 실버버그가 죽었다. 밀실로 처리되어 자살로 결정났지만 몇 가지 의혹이 있다. 이것을 조사하는 탐정 역할을 캐런이 한다. 이 조사 과정에는 한 소녀의 삶과 가족과 역사가 뒤섞여 있다. 작가는 나중에 앙카의 삶을 액자구성으로 만들었다. 어떻게 엄마가 매춘부가 되었고, 자신도 매춘부로 팔렸는지. 어떤 일이 있어서 그곳을 떠났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는지. 유대인이란 이유로 홀로코스트의 대상이 되었다가 한 독일 거부의 도움을 풀려난다. 1차 대전 이후 독일의 모습과 2차 대전 전까지 다루면서 빠르게 바뀌는 역사 속에서 한 개인이 어떤 일을 겪는지 잘 보여준다. 역사와 개인의 비극이 같이 나아가는데 이것은 다시 캐런의 삶과 이어진다.

 

1960년대 미국에서는 유명한 암살 사건이 둘 있다. 하나는 JFK이고, 다른 하나는 마틴 루터 킹 목사다. 이 책에서는 킹 목사가 죽는다. 작가는 이 사건이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에게 어떤 영향력을 미쳤는지 보여준다. JFK가 암살당했을 때는 엄마가 술에 취했고, 킹 목사가 암살되었을 때는 오빠가 취한다. 어린 소년 캐런에게는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분명하지 않다. 단지 이 시대의 아픔과 비극을 관찰하는 역할을 할 뿐이다. 하지만 이 기억들은 성장했을 때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깨닫고, 시대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이 그래픽노블은 그 결과물이다.

 

몬스터를 가장 좋아하는 소녀가 평소에 하는 것은 몬스터 잡지를 그리는 것이다. 이 책에는 상당히 많은 손으로 그린 몬스터 잡지들 표지가 나온다. 내 눈에 익숙한 모습인데 아마 이 시대 영화 표지를 많이 봤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하지만 정작 놀라운 것은 그 섬세한 디테일이다. 이 그래픽노블 전체적으로 디테일이 살아 있다. 아는 것이 많고, 더 들여다보면 볼수록 더 많은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수많은 활자와 더불어 나의 독서 시간을 늘인 것도 바로 이 그림들이다. 몬스터 잡지를 먼저 말했지만 사람들 얼굴과 표정, 거리의 풍경 등도 결코 그냥 보고 지나갈 수 없다. 어디까지 시대의 재현인지 확인하고 싶은 부분이 많다.

 

몬스터홀릭 캐런의 이미지를 늑대소녀에서 빌려와 계속 표현했다. 실제 모습이 나오는 장면을 몇 번 되지 않는다. 그녀가 몬스터가 되고 싶은 것은 언데드의 특성 때문이다. 엄마가 암에 걸렸을 때는 이것이 더 절실해진다. 현실은 이 희망을 짓밟는다. 그리고 매력적인 오빠 디즈가 있다. 혼혈이지만 그의 매력에 빠진 여자들이 줄을 잇는다. 캐런 다음으로 출연 빈도가 높은 인물이 바로 오빠다. 그의 행동에는 섹스가 들어있다. 자신도 절제를 할 줄 모르지만 여자들도 그를 너무 유혹한다. 그의 무분별한 욕구 분출은 휘험도를 점점 높여간다.

 

앙카를 죽였을 가능성 있는 인물들 목록에 엄마와 오빠도 있다. 이 미스터리는 확실히 밝혀지지 않는다. 아니면 내가 놓쳤다. 그녀의 학교생활은 아웃사이드다. 함께 몬스터 영화를 보던 친구는 엄마의 등살에 멀어질 수밖에 없다. 새롭게 사귄 친구들도 하층민의 삶을 대변한다. 엄마를 힐빌리라고 부르는데 얼마 전에 읽은 책 때문에 이 단어의 의미를 안다. 현재의 삶과 문제들을 보여주는데 그치지 않고 이야기는 과거로 올라가 현재와 연결시킨다. 그 이야기의 중심에 오빠가 있지만 역시 나의 낮은 이해도는 이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다른 사람들의 서평이나 다시 들춰보면서 그 단서를 찾아야 할 것 같다. 6년에 걸친 작업이라고 하는데 읽고 난 후 공감했다. 노트 속 펜으로 그린 그림체는 어디까지 연출인지 모르지만 감탄을 자아낸다. 한국 인쇄와 한진해운 사태를 겪었다는 것에 왠지 더 정감이 간다. 한마디로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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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인도
박완서 외 지음 / 책읽는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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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명의 작가가 쓴 인도 여행 에세이다. 각각 다른 시간, 다른 공간을 여행한 후 쓴 글들을 편집한 책이다. 아홉 편의 에세이가 책 마지막에 출처가 나온 것을 보면 다른 글들은 이번에 쓴 것 같은데 정확하지 않다. 11명의 작가 중 대중적으로 유명한 사람은 몇 명되지 않는다. 고 박완서, 고 법정, 신경림, 강석경, 이해인 수녀 등을 제외하면 한두 번 이름을 들은 정도다. 물론 이것은 나의 한국 문학에 대한 관심이 많이 떨어진 최근의 지식 때문이다. 아니 좀더 정확하게 말하면 시인에 대한 정보 부족이다. 시집을 거의 읽지 않으니 오며가며 이름을 본 시인을 제외하면 모두 낯설다.

 

각각의 작가들이 자신의 여행 경험을 다루고 있는데 인지도와 책의 재미는 별개다. 짧은 에피소드가 담긴 박완서의 <잃어버린 여행 가방>은 분량도 적고 이야기가 진행되다 만 듯한 느낌이다. 짧은 경험담은 좋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인도라는 지역의 여행과 동떨어져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해인 수녀의 <소중한 만남>은 故 마더 테레사와의 만남을 보여준다. 우리가 인도하면 떠오르는 수많은 이미지 혹은 키워드 중 하나였던 분이다. 다른 위치에서 인도를 본다는 것은 우리가 그 나라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그분을 아는 사람에게는 짧은 추억을 전달해주는 시간이었다.

 

인도 여행이 한때는 로망이었다. 하지만 실제 여행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 로망은 조금씩 사그라들었다. 긴 시간을 빼서 여행한다면 김선우의 말처럼 ‘어딘가 아파지는 일’을 겪은 후 즐길 수 있을지 모르지만 내가 현실적으로 뺄 수 있는 시간은 일주일 내외다. 넘쳐나는 삐끼와 혼란과 비위생적인 상황은 긴장감을 계속 유지하게 만든다. 여행을 ‘고행’으로 만들 이유가 내겐 아직 없다. 이 작가들 중 인도를 홀로 오랫동안 여행한 사람은 잘 보이지 않는다. 처음 갔다온 사람의 감상에서 진짜 힘겨움이 많이 빠져 있는데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잘 모르겠다. 아파하고 힘겨움을 지났다는 의미인지, 아니면 그런 경험 자체가 없었다는 것인지.

 

바라나시는 우리가 흔히 인도하면 떠올리는 갠지스강의 이미지를 그대로 담고 있다. 당연히 많은 글들에서 이곳이 무대로 등장한다. 시체 타는 냄새에 익숙해진다는 동명의 글은 조금은 충격이다. 얼마나 많은 시체 타는 냄새를 맡았기에 이런 표현을 쓰는 것일까? 개인적으로 가장 취향에 맞는 에세이는 동명과 나희덕의 글이었다. 여행하면 떠올리는 이미지가 이 글들 속에서 보였기 때문이다. 나를 태운다는 것과 인도의 속도에 대한 글은 짧은 글 속에서 나의 삶을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다. 다름을 이렇게 접근한다면, 인식하는 방법도 다르다.

 

북부 지방을 다룬 글들 중 레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어느 글이나 방송에서 이 지역을 다룬 것을 본 것 같기에 그렇게 낯설지 않다. 갔을 때 느낀 감정과 가는 과정에 느낀 감정이 사뭇 다른 곳이다. 사실 몇 시간 차를 타는 것이 지겨운 나에게 인도 여행은 하나의 무모한 도전일 수 있다. 라다크를 다룰 때 <오래된 미래>가 등장하는데 사놓고 묵혀둔 것이 몇 년인가. 이곳도 시간의 흐름 속에 변했다는 말이 있는데 내가 갈 때까지라도 변화가 조금 더 더디었으면 좋겠다. 물론 이것은 나만의 욕심이다. 가보지 않는 나라에 대한 환상일 수도 있지만 지금은 그렇다.

 

타지마할에 대한 감상은 여러 번 바뀌었다. 그곳을 감탄한 사람들의 이야기도 들었고, 생각보다 별로라는 상사의 말도 들었다. 사진으로 본 이미지는 솔직히 내 취향이 아니다. 하지만 현실에서 본다면 어떨까? 며칠 전 뉴스에서 입장료를 올렸다는 내용에 클릭하고 들어가니 내국인 입장료다. 유적에 큰 관심이 없지만 실제 본다면 어떨지 알 수 없다. 이 책에서 가장 다루어지지 않는 분야가 음식이다. 법정 스님의 글에서 남부 지역의 음식이 입맛에 맞다는 것을 보고 떠오른 생각이다. 인도 출장 가면 음식 때문에 고생한다는 동료의 말은 그냥 듣고 넘어갈 수 없다. 음식은 여행의 재미 중 하나니까. 예전 해외여행에서 입맛에 맞지 않는 음식 때문에 고생한 적이 있기에. 그리고 이 책을 선택하는데 결정적이었던 사진들이 글쓴이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조금 아쉽다. 글과 이어질 때 그 사진이 조금 서툴러도 크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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