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난골족 : 백석 시전집 한국문학을 권하다 31
백석 지음, 김성대 추천 / 애플북스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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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 시전집이다. 시인 김성대가 쓴 서문을 제외하면 백석의 시만 실려 있다. 마지막에 실린 연보도 아주 간결하다. 백석을 잘 모르는 독자라면 이 시집만으로 그를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아쉽게도 나는 백석에 대한 이런 저런 이야기를 이미 많이 들었다. 그리고 몇 편의 시도 읽었다. 다행이라면 제대로 그의 시들을 읽은 적이 없다는 점이다. 읽기 전 들어서 알고 있던 그 느낌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몇 번이나 느꼈다. 왜 그들이 그런 평가를 내렸는지 알게 되었다. 또 왜 그의 남쪽 여행 속에 담긴 의미를 다시 한 번 더 찾아보게 되었다.

 

모두 5부로 구성되어 있다. 3부까지는 분단 이전의 시들이고, 4부와 5부는 북한에서 쓴 시들이다. 연보를 보면 첫 시집 <사슴>을 제외하면 출간된 시집은 없다. 북한에서 동화시집 <집게네 네 형제>를 내었다고 한다. 이번 시 전집을 읽으면서 솔직히 4부와 5부는 많은 거부감을 느꼈다. 이전 시들에 비해 훨씬 규격화되고 알기 쉬운 단어들이 나와 쉽게 읽을 수 있었지만 조국, , 수령에 대한 찬양이 너무 많이 들어가 그의 시로 다가오지 않았다. 시의 영혼이 사라진 느낌이랄까. 연대와 혁명을 노래한 80년대 한국 노동시에서 본 열정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당과 수령을 찬양하는 그의 시를 읽으면서 서정주가 떠오른 것은 왜일까?

 

소위 말하는 이북 사투리가 많은 시들이다. 사투리를 쓰는 동네에서 태어나고 자라 거부감이 조금 덜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낯선 단어들이 너무 많다. 처음 읽을 때는 이 낯선 단어들 때문에 외국어를 읽는 듯한 느낌이었다. 주석을 읽고 다시 읽으면 시들이 보여주는 풍경들이 머릿속에 들어온다. 표제작 <여우난골족>은 개인적으로 이 시대 가족들의 모임을 잘 보여주었다. 어릴 때 명절날 큰집에 갔을 때 기억이 났다. 더불어 맛있는 음식과 음식 냄새는 그 기억을 더욱 부채질한다. 이미 음식에 대한 시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인지 모르지만 많은 시들에서 이 음식과 냄새를 발견하고 느꼈다.

 

백석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 중 하나도 음식이다. 어떤 방송에서 냉면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그의 시를 말했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평양냉면의 원형에 대한 이야기였다. 뀡고기와 동치미와 메밀국수 이야기가 나오면 자연스레 냉면이 떠오른다. 거부감이 그렇게 많았던 4부의 시들에서 음식을 발견하면 아직도 그의 시가 살아 있구나, 하고 떠올리다가도 다음에 이어지는 찬양에 시들어버린다. 음식을 너무 부각시켰지만 일상을 담고 있는 시들은 그의 삶을, 추억을, 감정을 잘 느끼게 만든다. 시를 읽다 보면 만주로 간 그의 삶도, 그 당시의 기분도 느낄 수 있다.

 

그의 연애사를 다룬 시들이 꽤 있는데 그 중에서 <통영>이란 제목이 두 번 있다. <사슴>의 통영이 가벼운 감정을 내비취었다면 <함주시초>의 통영은 그 애모하는 감정이 그대로 드러난다. 천희라는 이름을 보고 검색하면 그와 관련된 이름이 나오고, 왜 그런 단어들을 사용했는지 알 수 있다. 우연히 알게 된 이 에피소드를 시로 접하니 괜히 반갑다. <마을은 맨천 구신이 돼서>는 처음에는 읽기 힘들었지만 주석을 본 후 다시 읽으니 아주 재밌다. 집안과 밖에 귀신이 가득하다는 말인데 움직임과 귀신의 어우러짐이 돋보인다.

 

잘 정제되고 표준어로 쓴 시를 읽다가 이런 토속적이고, 자유분방하고, 뛰어난 묘사로 음식을 표현한 시를 읽으니 조금 어렵다. 시를 읽는 속도가 더디다. 이전에 멋모르고 읽었던 카프 시집이 떠올랐다. 물론 지금 기억도 나지 않는다. 한 번 읽고 그 느낌을 알 수 없어 다시 읽으면서 발견하고 느끼는 감성과 풍경들은 읽는 재미를 준다. 왜 한때 백석, 백석 했는지 이제는 조금 알겠다. 많은 시를 한 권에 고스란히 담은 것은 좋은데 시와 관련된 정보가 없는 것은 조금 아쉽다. 그의 시를 조금 더 이해하기 위해 백석 평전이나 다른 자료도 다음에는 한 번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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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 교수의 의학세계사 - 주술사부타 AI 의사까지, 세계사의 지형을 바꾼 의학의 결정적 장면들!
서민 지음 / 생각정원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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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 박사로 더 많이 알려진 서민이 의학사를 알기 쉽게 정리한 책이다. 신석기 시대에서 시작하여 현재까지 의학의 중요한 발견이나 발전 등을 다룬다. 보통의 역사 서적과 달리 1991년 알프스산에서 발견된 신석기인 외치를 주인공으로 이야기를 풀어냈다. 그가 앓았던 질병을 고치기 위해 시간 여행을 하고, 그 시간 여행 속에서 의학의 역사를 하나씩 풀어낸다. 덕분에 조금 딱딱할 수 있는 역사가 하나의 소설처럼 읽힌다. 읽으면서 <소피의 세계>가 많이 떠올랐다. 이전에 읽었던 의학 관련 책들도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외치의 병은 심장병이다. 정확한 병명은 현대로 넘어와서 밝혀진다. 이렇게 오기까지 과정은 세계의학사를 시기별로 요약해서 보여준다. 고대에서 중세와 르네상스를 거쳐 근대와 현대로 넘어온다. 흥미로운 점은 중국 화타를 넣었다는 점이다. 마취약을 사용한 외과의라고 표현했는데 전설을 하나의 가능성으로 풀어내었다. 문신을 신석기시대의 마지막 치료법이라고 한 것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단순하게 생각한 것들 속에 이런 의미가 담겨 있을 것이라곤 생각조차 못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의학 문서다. 이 책들이 없었다면 의학의 발전은 아주 더디었을 것이다.

 

역사에는 언제나 큰 변곡점이 있다. 흑사병은 중세 교회의 권위를 떨어트렸다. 억압된 문화 속에서 의학이 발전하기는 힘들다. 인체에 대한 이해가 없는 상황에서 사람을 치료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고대의 기록들에 의하면 외과 수술의 기록이 있지만 성공률 등은 표시되어 있지 않다. 이것은 현대로 넘어와서 수많은 장기이식의 실패를 통해 발전한 것과 대비되는 부분이다. 단순히 외과수술만 가지고 이런 인간의 기적이 일어난 것은 아니다. 인간의 과학을 집대성하여 이 수술의 부작용을 줄일 수 있는 약들이 개발되었기에 가능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이 수많은 의약물질과 의학기구들에 할애한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세계의학사를 이야기할 때 중세 아랍을 빼놓고는 이야기가 되지 않는다. 그 중 약학의 토대를 만든 아랍 학자 이븐 시나는 그리스, 로마의 약학을 그 시대에 맞게 저술했고, 이 책들은 이후 유럽의 의학 발전에 큰 기여를 한다. 신항로 개척시대는 전염병의 전파를 불러왔다. 서로 다른 두 세계의 만남 과정에 발생한 질병은 하나의 문화를 궤멸 직전까지 끌고 가기도 한다. 잉카 제국 몰락의 이유를 쉽게 이해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 전염병이다. 흑사병과 천연두도 마찬가지다. 말라리아 치료제가 이런 개척시대에 발견된 것도 흥미롭다.

 

깨끗한 환경을 당연시하는 요즘과 달리 이전에는 집 주변이 지저분했다. 중세와 근대 영국 런던을 묘사한 글들을 보면 병이 생기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 고대 로마의 상하수도를 생각할 때 오히려 인류의 퇴보로 느껴진다. 전염병을 막기 위한 노력은 근대로 넘어오면 상하수도의 발견으로 이어진다. 이때 함께 봐야할 것은 사람들이 대도시로 몰려 인구빈도가 높아진 것이다. 이 인구의 폭발적 증가가 의미하는 바를 다른 책에서 조금 봤기에 쉽게 이해되었다. 2차 세계대전의 진정한 승리자로 불리는 페니실린과 현대의학의 필수 과정 중 하나인 영상의학의 발견은 의학의 발전을 가속화시켰다. 다만 항생제 남용의 문제와 수퍼바이러스의 출현 등은 늘 머릿속에 담아둬야 한다.

 

현대 의학에서 가장 많이 다루는 것은 예방이다. 태어나면서 맞게 되는 예방 접중의 수만 생각해도 상당하다. 독감예방이나 자궁경부암 등을 예방하는 주사도 흔하다. 가짜 뉴스가 이런 예방주사를 거부하게 만드는 것을 강하게 지적한다. 면역을 더 좋게 하는 약물의 발견은 장기이식을 가능하게 만들었고, 이제는 유전자까지 분석했다. 외치가 히포크라테스를 비롯한 수많은 그 시대의 명의를 만났지만 치료하지 못한 병을 고치는 장소로 작가가 한국으로 정한 것은 한 국가의 의료 시스템과 연결된다. 바로 건강보험이다. 이것과 함께 의학의 윤리성을 다루면서 의학의 발전사를 보여준다. 신석기인 외치에게 감정을 불어넣고, 의외를 질문을 하게 만들면서 이야기를 친숙하게 만들었다. 의학사 입문서로 딱 맞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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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 항설백물어 - 상 - 항간에 떠도는 기묘한 이야기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8
쿄고쿠 나츠히코 지음, 심정명 옮김 / 비채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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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리즈가 정말 오랜만에 나왔다. <속 항설백물어>가 2011년에 나온 것을 감안하면 7년 만이다. 이 시간은 이 시리즈에 대한 기억을 많이 희석시켰다. 집 어딘가 둔 전작들을 찾아서 비교하면서 읽으면 좋겠지만 솔직히 어디에 놓아두었는지도 모르겠다. 읽으면서 반가운 이름을 만났는데 처음에는 분명하지 않았다. 바로 마타이치다. 이 작품에서도 마타이치는 계속 등장한다. 하지만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인물은 잇파쿠옹이다. 그의 이름은 모모스케다. 이전 작품과 구성에 차이가 있는 듯한데 저질 기억력은 이 차이를 바로 알아채지 못한다.

 

실제 한 권을 너무 두툼하다는 이유로 두 권으로 나누었다. 개인적으로 분권을 좋아하지 않지만 한 권의 분량이 750여 쪽이라면 들고 다니면서 읽기 쉽지 않다. 이 분권 과정에서 순서가 바뀌었을 수도 있다. 이런 사소한 것은 뒤로 하고 세 편의 이야기에 집중하자. 각각의 이야기는 메이지유신 이후 시대를 배경으로 벌어진 사건을 다룬다. 이 사건이 담고 있는 의혹이 너무 강해 작은 단서라도 얻고 싶어 찾아가는 인물이 잇파쿠옹이다. 이야기의 문을 여는 겐노신 등은 고서에 실린 고사를 인용하면서 갑론을박한다. 자신들의 경험이나 이성으로 판단할 때 너무나도 불가사의하다. 잇파쿠옹의 폭넓은 지식은 이 의혹을 다른 시각에서 보게 만든다.

 

첫 이야기 <붉은 가오리>는 에비스신의 얼굴이 붉어지면 섬이 멸망한다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장난으로 칠한 것이 섬의 몰락을 가져왔다는 이야기는 다양한 책에 등장한다. 갑론을박하면서 찾아간 잇파쿠옹은 이 논쟁을 들으면서 40년 전 자신의 경험을 말한다. 마타이치와 함께 다니던 시절의 모모스케로 돌아간다. 도적에게 납치되어 에비스지마 섬까지 가서 경험하는 이야기는 기괴하기 짝이 없다. 전설과 고립된 섬과 법도를 둘러싼 참혹한 이야기는 상상을 초월한다. 작가는 이 상상을 초월하는 이야기의 이면을 또 만들어 넣으면서 중첩적으로 구성한다. 사실 재미는 이 중첩적인 구성에서 발생한다. 비현실적 이야기 속에 숨겨진 진짜 이야기가 반전처럼 펼쳐진다.

 

<하늘불>은 현실 사건에서 시작하여 과거 이야기로 넘어간 후 현재 사건 해결로 이어진다. 이 세 작품 중에서 이전에 본 소설과 가장 유사한 설정과 전개다. 색욕에 불타는 대관의 아내가 불법 높은 니콘보를 유혹하다 실패한다. 당연히 사실을 왜곡해서 남편에게 알리고, 니콘보는 살해당한다. 이때 저주를 남기고 이것이 실현된다. 이 과정을 모모스케는 지켜보면서 계속 의혹을 품는다. 마타이치가 죽다니 믿을 수 없다. 하지만 이 이야기도 반전에 반전을 담고 있다. 예상을 뛰어넘는 규모와 반전은 마타이치의 매력을 잘 보여준다. 주연으로 등장하지 않은 것이 아쉬울 정도다. 물론 이 이야기에서 단서를 얻은 일등순사 겐노신은 실제 사건을 해결한다. 이 또한 재밌다.

 

<상처입은 뱀>은 뱀의 수명과 전설을 둘러싼 이야기다. 물론 실제 이야기는 뒤에 숨겨져 있다. 뱀을 수호신으로 섬기는 쓰카모리 집안의 무덤 위 사당에서 가주가 뱀에 물려죽는다. 독살일까? 밀폐된 상자 속에서 뱀이 70년 동안 살 수 있을까? 쓰카모리 집안의 삼대가 뱀에 물려죽은 것은 지벌일까? 우연의 일치일까? 실제 이 사당을 지을 때 있었던 이야기를 전달하는 잇파쿠옹은 사건 해결의 단서를 제공한다. 하지만 진짜 이야기는 훨씬 어둡고 복잡하고 성실하다. 읽으면서 혹시나 하고 생각했던 것들이 하나도 맞아떨어지지 않았다. 이 단편에서도 마타이치의 정교한 계획은 그대로 적용된다. 뱀을 둘러싼 서늘한 이야기는 상상과 맞물려 기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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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계 일주로 돈을 보았다 - 회사를 박차고 나온 억대 연봉 애널리스트의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지하경제 추적기
코너 우드먼 지음, 홍선영 옮김 / 갤리온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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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저자의 세계 일주 시리즈를 처음 읽었다. 처음 제목을 보고 별로 관심이 없었다. 흔한 세계 일주를 다룬 글로 짐작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부제에서 위험한 지하경제 추적기란 설명을 보고 관심이 생겼다. 지하경제란 용어가 지닌 위험성과 긴장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목차를 보니 여덟 나라 여덟 도시가 나왔다. 몇몇 나라는 나도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지만 몇몇 나라는 의외였다. 과연 어떤 지하경제를 다룰까 하는 호기심이 고개를 들었고, 매력적인 첫 이야기를 읽기 시작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기대가 조금 높았다.

 

축제의 도시 뉴올리언스. 우리에겐 재즈와 허리케인으로 더 잘 알려진 도시다. 그런데 이 도시의 축제가 유명한 모양이다. 축제 기간 동안 관광객을 노린 수많은 사기와 도박이 벌어진다. 저자는 그중에서 레즐이란 도박을 파헤치고 싶다. 그가 선택한 방법은 사실 단순하다. 그 도시의 작은 사기판에 자신을 미끼로 던지고, 상대방을 자기를 물기를 기다린다. 그리고 이 과정에는 속된 말로 도시 전설 같은 위험이 기다리고 있다. 부에노스아이레스. 한 번 가보고 싶은 도시다. 여행 관련 방송에서 얼마나 매력적으로 보여줬던가. 그런데 이 도시에 위조지폐가 범람한다고 한다. 그냥 무심코 듣고 지나간 위조지폐가 어떤 식으로 다루어지는지 파고드는 그를 보면서 무모한 용기를 느낀다.

 

뭄바이의 택시 사기를 보면서 누군가가 터키에서 경험한 일이 떠올랐다. 출장자들이 호텔 택시를 불러가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이보다 저자가 관심을 두는 것은 발리우드 배우 사기다. 여행자의 붕 뜬 기분을 이용한 이 사기는 제3자가 보기엔 너무 분명하다. 하지만 당사자에게는 보이지 않는다. 뭄바이 사람들은 모두 배우를 꿈꾼다고 하는데 실제 그런 것 같다. 바르셀로나에 소매치기가 많은 이유를 알려준다. 나는 파리에서 당했다. 그들의 기발한 소매치기 수법은 이미 여행 방송들에서 들었고, 실제 당한 주변 사람도 있다. 저자와 함께 실제 그 현장을 보여주는 장면은 놀랍다. 이런 사람들이 늘어난 이면에 높은 실업률이 있다는 것은 생각해볼 문제다.

 

영국 버밍엄이 나왔을 때 가장 의외였다. 저자의 가족이 사는 이 도시에서 재배되는 대마초와 이를 둘러싼 폭력배와 조직 이야기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휴대폰, 매춘, 마약 등으로 이어지는 관계들을 보면서 하나의 현상이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대마초를 기를 수밖에 없는 원인이 또 범죄의 대상이 된다는 사실은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멕시코시티의 악명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이런 도시에 어떻게 사나? 하는 일차원적인 물음이 생기지만 통계적으로 한국의 자살자보다 적은 숫자의 살인 사건이 있다고 한다. 신속 납치 방법을 보면서 기발함에 놀라고, 경찰을 믿을 수 없다는 믿음이 경찰 범죄를 만든다는 사실에 한 번 더 놀란다.

 

예루살렘 같이 고대의 유적이 있는 도시라면 유물 사기가 없을 수 없다. 골동품이 돈이 된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의 진짜는 이스라엘이 친 담장 너머 팔레스타인에서 들려준다. 테러조직 등이 유물을 어떻게 다루었고, 이것이 어떻게 이스라엘로 들어온 뒤 전세계로 팔려나갔는지 말할 때 약탈 잔혹사란 말에 공감할 수밖에 없다. 콜롬비아 보고타에서 그가 알고 싶어한 것은 스코프란 약물을 이용한 약탈이다. 이 약을 먹으면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모든 것을 말하게 된다고 한다. 술집에서 잠시 자리를 비우면 누군가 술에 이 약을 탄다. 그러면 며칠에 걸쳐 자신의 모든 자산을 약탈당한다. 병원에서 며칠을 보내야 한다.

 

이 여덟 도시의 지하경제는 실제 지하경제 규모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아주 낮다. 우리가 일상에서 접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은 범죄를 다룬다. 하지만 진짜 지하 경제의 무서움까지 깊숙이 파고들어 그 문제점을 폭로하지는 않는다. 물론 그렇게 하려면 책 한 권에 한 소재만 다루어도 엄청난 분량이 될 수 있다. 솔직히 처음에 내가 기대한 것은 이런 것이었다. 하지만 어떤 도시를 여행하려는 여행객이라면 이 책이 오히려 더 좋다. 그 도시에서 조심할 것을 저자의 경험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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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의 벚꽃
왕딩궈 지음, 허유영 옮김 / 박하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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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에서 가장 먼저 눈길을 끈 것은 띠지의 광고 문구다. 하루키를 말하며 ‘글을 무기로 싸울 수 있는’이란 표현을 썼다고 한다. 그 내용이 나오는 것이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라고 하는데 읽은 적이 있지만 이런 문장을 기억하지 못한다. 남는 시간이 있으면 다시 읽으면서 검증을 할 수 있겠지만 예전 같이 잉여롭지 않다. 아쉬운 대목이다. 다시 읽지 못한다는 것과 확인하지 못한다는 두 가지가 겹쳐진 아쉬움이다. 하지만 이 책을 다 읽은 지금 이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하루키의 표현을 빌리지 않아도 될 정도로 매력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의 이력이 이 소설 속에 녹아 있다. 그것은 화자가 택한 직업과 그가 경험한 것이 겹쳐 있기 때문이다. 한 나라 건설업의 부침을 간략하게 다루면서 그 속에 한 개인의 아픔을 녹여내는 과정은 빠르면서도 깊이가 있다. 빠른 것은 시간이고, 깊이는 그 시간 속에서 화자가 느끼는 감정이다. 그가 느끼는 감정은 우리의 그것과 조금 다르다. 평론가들이 고전적이라고 한 것과 닮아 있다. 상실의 아픔을 견디고, 그 아픔 속으로 깊숙이 파고드는 그의 삶은 처음에는 의문으로 시작했다. 그의 아내 추쯔와 뤄이밍은 어떤 관계였던 것일까 하는. 한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가지만 그 예상은 틀렸다.

 

잘 인식하지 못하는 것 중 하나가 소설 속 중요 인물 네 명 중 두 사람이 이야기 속에만 등장한다는 것이다. 바로 추쯔와 뤄이밍이다. 이야기는 화자가 뤄이밍의 딸 뤄바이슈에게 대화 속에서 풀려나온다. 바이슈는 왜 그가 손님 없는 카페를 하는지 궁금해 하고, 그가 카페를 연 후 왜 아버지가 자살하려고 했는지 그 이유를 알고자 한다. 실제로 뤄이밍은 기부도 많이 한 유력 인사다. 마을 사람들은 이 때문에 화자에게 반감을 가지고 있다. 바이슈의 이야기에 따르면 엄마가 죽은 후 재혼도 하지 않고 홀로 살았고, 옷은 구김이 없을 정도로 꼿꼿하고 훌륭한 인물이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두 사람이 바람이 나는 것인데 이것만으로 추쯔의 실종이 설명되지 않는다.

 

외딴 바닷가 카페에서 화자는 아내가 오길 기다린다. 하지만 그 기다림은 기약 없고 가능성도 거의 없다. 바이슈와의 대화가 없다면 그의 삶과 슈쯔가 의미하는 바를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런 사랑은 요즘 거의 없다. 이들의 만남은 특별하지도 않다. 가난한 연인들은 열심히 살아갈 뿐이다. 그들의 삶에 큰 변화로 다가온 것은 대지진이다. 추쯔에게 이것은 이전 사고의 트라우마로 작용한다. 이런 아내를 돌보기 위한 그의 노력은 처절하다. 가난은 단숨에 벗어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돈이 생겼을 때 작은 것을 사는 행복은 또 다른 것을 사지 못하는 아쉬움과 겹쳐진다. 작은 행복이 또 다른 행운을 불러왔지만 실제로 이것은 불행의 시발점이다. 수동 카메라의 당첨이 뤄이밍으로 이어지는 시발점이기 때문이다.

 

훌륭한 인품을 가진 뤄이밍은 추쯔와 무슨 일을 저질렀을까? 이야기가 진행되는 과정 속에서 만나는 그는 화자의 바람을 들어주는 착한 인물이다. 하지만 불행의 연속선상에서 그가 보여준 행동은 악의로 가득하다. 화자만의 착각이라고 한다면 그의 자살 시도가 설명되지 않는다. 열심히 일하고 사랑하는 아내와의 행복한 미래를 꿈꾸는 젊은이에게 사회의 변화는 그렇게 녹녹하지 않다. 추쯔가 직장에서 짤렸을 때도, 화자가 회장의 심복으로 부동산 개발 프로젝트를 담당했을 때도 잘 드러난다. 그리고 가진 자들의 허세와 욕망은 회장의 행동으로 잘 표현된다. 가벼운 욕망의 배출로 매춘을 선택한 회장과 그를 어쩔 수 없이 따라가야 하는 화자의 대비는 삶의 부조리한 모습을 잘 보여준다. 동시에 절망에 빠진 그의 선택이 만들어내는 또 다른 아픔은 가슴 깊숙이 파고든다.

 

적의 벚꽃. 이 제목을 보고 처음에는 빨간 벚꽃을 떠올렸다. 그런데 아니다. 그 적은 원수를 의미한다. 이 벚꽃 이야기는 마지막에 가면 나온다. 그 벚꽃이 의미하는 바와 어떻게 되었는지. 그 이야기가 나오기 전까지 풀려나오는 이야기는 한 사람의 삶이자 한 시대의 풍경이다. 불행했던 어린 시절과 짧았던 행복한 시절의 기억은 바람에 흩날리는 벚꽃같다. 현실에 깊이 뿌리 내리지 않은 삶은 외부 바람에 너무 쉽게 흩어진다. 화자와 추쯔의 삶을 보면서 우리 시대의 청춘을 떠올린다. 그리고 화자의 열정과 다시 없을 사랑을 생각한다. 그가 뤄이밍의 벚꽃 이야기를 듣고 떠올린 미소를 생각한다. 그의 떠남이 의미하는 바는 분명하다. 하지만 그 기다림은 아직도 계속된다. 좋은 대만 작가 한 명을 또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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