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력 - 권기태 장편소설
권기태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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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인 <파라다이스 가든> 이후 첫 장편 소설이다. 희미한 기억 속에 상당히 재밌었다는 기억이 남아 있다. 무려 10년 이상이 지난 후 다음 작품이 나왔다. 이런 경우 흔하지 않은데 상당히 반갑다. 그런데 이번 작품은 우주인에 대한 이야기다. 중력이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인간은 지구라는 땅에 묶여 있다. 이 땅을 벗어나기 위한 인간의 노력은 비행 역사에 잘 나타난다. 그리고 그 노력의 결과 지구의 중력을 벗어났다. 달까지 갔다. 어릴 때 생각하면 지금쯤 달 여행이 상용화되어야 할 텐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작가는 이런 우주인에 대한 도전을 그려내고 있다.

 

한국 최초의 우주인은 이소연 박사다. 그녀가 우주인이 되기까지는 많은 도전자와 경쟁해야만 했다. 방송으로 나왔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나 자신이 별로 이런 홍보에 관심을 두지 않았고, 러시아 우주선을 빌려 타고 가는 일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이 당시 이 모습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사람 중 한 명이 이 소설의 작가다. 물론 작가는 이소연 박사를 주인공으로 내세우지 않았고, 소설에 필요한 질문을 그녀에게 바로 던지지도 않았다고 한다. 많은 부분이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 만들어진 이야기다. 하지만 이 기억은 작가의 무의식 속에 쌓여 적지 않은 부분에서 영향력을 행사했을 것이다.

 

30대 중반의 샐러리맨 연구원 이진우가 주인공이다. 한국 최초의 우주인을 꿈꾸며 이 선발 경쟁에 뛰어든 수많은 지원자들 중 한 명이다. 이 우주인 선발 과정은 방송으로 나왔고, 그가 최종 인원에 들어갔을 때는 이미 연예인에 버금가는 인지도를 얻는다. 실제 방송을 보지 않은 나도 이소연 박사를 기억하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다. 회사원이자 한 가정의 가장인 그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담고 있는데 단순히 그 혼자만 다루지 않고 함께 경쟁하는 사람들도 같이 보여준다. 작가는 다른 지원자의 생각을 나중에 공개된 인터뷰 내용을 인용하면서 보여준다. 아마도 가장 치열한 경쟁 상태에서 지원자들이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이 인터뷰가 보충해주기 때문이다.

 

하나의 단계를 넘어갈 때마다 우주인에 가까워진다. 고비도 여러 차례 있었다. 대표적인 것 중 하나가 신체검사다. 언제 어떤 검사를 했는지에 따라 실험에 영향을 미친다. 이 사실을 안 이진우가 강력하게 재검을 요청하는 모습은 흔하고 쉬운 일이 아니다. 강력한 경쟁자가 같이 탈락한 상태에서 이런 정보를 알려줄 때 그가 고민하는데 아주 현실적이다. 이 소설에서 자주 보게 되는 것 중 하나가 이런 갈등과 고민들이다. 경쟁이 치열해지고 목적지가 눈앞에 보일 때 이런 유혹은 더 강해진다. 이 소설을 읽는 재미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우주인이 되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모두가 될 수 없다. 최소 한 명, 많으면 두 명이 최선이다. 중반 이후 러시아에서 교육을 받을 때 최초라는 단어가 지닌 의미를 분명하게 예를 들면서 보여준다. 기록의 세계에서 두 번째는 큰 의미가 없다. 하지만 한국 최초의 우주인이 되고자 하는 이들에게 최초보다 중요한 것은 우주로 나간다는 것이다. 이 꿈에 도전에 수많은 사람들의 의지와 열정은 일일이 나열할 필요가 없다. 단지 몇 명만 예를 들어 보여주고, 이 경쟁을 마지막까지 펼치는 사람들의 모습만으로 충분하다. 그리고 단순히 경쟁 관계만 있는 것도 아니다. 정보를 교환하고,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주기도 한다. 가슴 훈훈하지만 아슬아슬한 장면들이다.

 

한국 최초 우주인이 현실에서 누구인지 안다. 하지만 소설은 끝까지 이 사실을 숨긴다. 중간에 탈락한 것 같은 장면은 보여주지만 앞에서 말한 재검 등을 통해 이진우는 부활한다. 연구소 직원인 그가 직장에서 겪게 되는 인사 문제는 공간이 바뀐 러시아에서도 마찬가지다. 노력과 열정과 의지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실제 훈련 과정을 보여주면서 이들이 경험하는 일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얼마나 힘든지 알 수 있다. 많은 부분 피상적이었던 훈련 테스트 등이 이 소설을 읽으면서 해소되었다. 현재 과학이 지닌 한계도 분명하게 보인다. 내가 어릴 때 꿈꾸었던 우주여행이 어려운 이유도 알 수 있다.

 

꿈은 현실에서 시작한다. 꿈이 이루어졌다고 현실이 사라지지 않는다. 중력을 벗어나 우주로 나갔다고 평생 그곳에 살 수 없다. 먼 미래에 중력이 없는 곳에서 태어나고 자란 아이가 있을지 모르지만 지금의 현실에서는 이 중력을 벗어날 수 없다. 이 소설은 바로 그 꿈을 이루고자 하는 사람들이 모인 현장을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우주로 나간다고 해서 자신의 삶에 당장 무언가가 변하는 것도 아니다. 다시 돌아와야 한다. 무중력에서 늘어난 몸은 중력의 힘에 의해 제자리를 찾고, 일상은 다시 시작된다. 선발 과정이 끝나고 누군가가 우주로 나갔지만 우주에 대한 새로운 꿈을 꾸는 누군가는 또 있다. 나 자신도 이 선발 과정과 우주선을 타고 나간 사람을 조금은 삐딱하게 봤는데 이 소설은 읽으면서 괜히 미안해진다. 그들의 열정과 노력과 의지에 박수를 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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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고양이 8 - 에이 설마~
네코마키 지음, 장선정 옮김 / 비채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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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게도 이 시리즈가 꾸준히 나오고 있다. 이 꾸준함에 비해 나의 기억력은 점점 퇴보하고 있다. 만화를 보면서 등장하는 동물들의 과거 이야기가 잘 생각나지 않아 그들이 내뱉는 말의 의미를 모르는 경우가 생긴다. 최근에 등장한 동물이라면 그래도 조금 낫다. 그리고 변함없는 콩고양이들과 두식이의 활약은 보는 사람을 즐겁게 한다. 이들이 협력해서 자신이 원하는 바를 성취할 때 그것은 더욱 뚜렷해진다. 개와 고양이의 협업은 높이와 힘과 목적이 결합한 결과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오~우~ 하고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전편에 등장한 폭군 같은 그레이가 왜 개들을 공격하게 되었는지 그 이유가 이번 이야기에 나온다. 고양이도 이런 마음가짐을 가질 수 있구나 하고 내심 놀란다. 그레이가 폭주할 때 몰래 뒤따라간 두식이는 섬세하고 용기 있는 행동을 한다. 이 사연이 나온 후 그레이가 보여준 행동은 그냥 상냥한 고양이 그 자체다. 그리고 이 시리즈에서 두식이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이것은 어쩌면 집밖의 활동 대부분을 두식이가 하기 때문일 것이다. 두식이를 돌보는 아빠가 비옷 등을 산 후 산책을 나가면서 일어나는 작고 소소한 에피소드는 입가에 미소를 짓게 한다. 내복씨의 모자를 쓴 후 모습은 이것을 아주 잘 보여준다.

 

이번 에피소드 중 하나가 다이어트다. 엄마와 두식이가 그 대상이다. 한때 고양이와 두식이에 대한 적대감을 가지고 있던 엄마도 이제는 완전히 적응한 것 같다. 아빠가 엄마와 두식이를 보면서 닮았다고 할 때 속으로 웃으면서 과연 이 둘의 다이어트가 성공할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결론을 살짝 말하면 당연히 실패다. 사랑받는 개가 귀여운 몸짓을 할 때 그것을 참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당연히 엄마가 먹는 것을 참는 것도. 두식이가 콩고양이들과 함께 간식을 찾아다닐 때 보여주는 행동은 또 다른 재미다. 이들의 협력이 일어나는 장면도 대부분 이때다.

 

첫 몇 편을 읽을 때 가장 걱정했던 것은 할아버지의 생존 여부였다. 현재까지 건강하게 살아 있는 듯한데 나이를 생각하면 너무 늙은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80세 생신을 기념하기 위해 가족 식사를 떠났다는 말에 조금 놀란다. 요즘 80살은 아직 정정할 나이이기 때문이다. 내복씨가 아파 병원에 입원했을 때 콩고양이들과 두식이가 이러저리 찾아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가슴이 뭉클했다. 다행히 돌아와서 많은 동물들과 함께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고양이 집사인 딸이 할아버지 없는 동안 할아버지가 어떻게 이들을 돌봤는지 보여줄 때 그 포용력에 다시 놀란다.

 

두식이가 개들이 노는 곳에 갔을 때 보여주는 반응은 예상외다. 친구들처럼 잘 놀 것 같은데 고양이와 다른 행동에 놀란다. 콩고양이들이 집사에게 애정 어린 손길을 받는 것을 보고 신발장 위에 올라간다. 흔히 예상할 수 있는 장면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나의 기억력을 의심하게 만드는 것은 역시 다양한 종의 동물들이다. 그들의 의인화된 표현들은 이 만화를 더욱 훈훈하게 만든다. 특히 할아버지 내복씨와 관련해서 이것이 아주 잘 나타난다. 복잡한 이야기도 아니고, 화려한 에피소드가 있는 것도 아니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이 가족의 행동과 마음에 잊고 있던 감성을 떠올린다. 계속 나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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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로 - 내 기억이 찾아가는 시간
하창수 지음 / 연금술사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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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독성은 좋은데 내용은 어렵다. 이런 장르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라면 더 어려울 수 있다. 작가가 인용한 문장들과 그가 설정한 과학 기술 등을 이해하려면 제목처럼 미로 속을 헤맬 수 있다. 가까운 미래인 2041년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뉴사이언스 소설이라고 하는데 세계의 변화가 너무 심하다. 물론 이런 급격한 변화가 가능하다. 이 가능성을 인정하고 넘어가는 데는 급속한 과학의 발전이 한몫했다. 중국의 몰락 이유를 사막화라고 하는데 과연 이것이 20년 만에 가능할까? 그리고 이 몰락을 중국이 그대로 받아들일까? 현재 중국을 생각하면 쉬운 일이 아니다.

 

미로. 이 이름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아름다운 길(美路)이란 의미와 미로 찾기에서 말하는 미로(迷路)다. 설정 속 미로는 천재형이다. 그의 아버지 윤승준 박사는 과학자보다 소설가로 더 유명하다. 필명은 닥터 클린워스다. 재밌는 설정 중 하나는 닥터 클린워스의 소설을 원전 삼아 쓴 혼성모방 소설이 더 인기가 있다는 것이다. 이 작가는 데일 볼룸이란 영국 작가다. 단순히 프로그램을 돌리는 수준을 넘어 새롭게 해석하고 이야기를 더 멋지게 만든다. 작가의 설명에 의하면 영국인들이 셰익스피어보다 더 귀중한 존재로 생각한다고 말한다. 생존 작가를 이렇게까지 평가하는 것이 가능할까 하는 의문이 든다.

 

이 미래의 한반도는 통일되었다. 세계는 크게 두 개의 권역으로 나뉜다. 미국과 유럽이다. 중국이 몰락하면 이렇게 권역이 나뉠 수밖에 없다. 통일 한국의 서울은 자유구역으로 바뀌고, 원산은 첨단산업도시가 된다. 다국적기업들이 원산에 모인다. 슈퍼퓨처사도 이곳에 회사를 둔다. 미로가 일하는 곳이다. 미로가 하는 일은 그의 아버지가 소설에서 주장한 스피릿 필드를 구현하려는 것이다. 우주선을 타고 우주에서 작은 스피릿 공명 위성에 필요한 데이터를 조금씩 입력한다. 조금씩이라고 하지만 그 데이터의 양은 결코 적지 않다. 이런 작업이 가능한 것은 슈퍼퓨처사의 회장이 아버지의 글에 감명 받은 것도 있지만 돈이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작가는 이 소설을 시간과 죽음에 대한 소설이라고 말한다. 14년 전 죽은 아버지로부터 온 메일, 아버지의 의문사, 그리워하는 죽은 친구 유리, 유령 같은 존재로 등장하는 이상한 존재 등이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든다. 여기에 죽은 사람의 혼령과 만날 수 있는 ADM이란 장치가 등장하여 더욱 미로 속을 헤매게 한다. 후반으로 가면서 이 장치의 존재가 더 큰 의미로 다가오고, 닥터 클린워스의 꿈이 다른 방식으로 해석된다. 작가는 작가인 닥터 클린워스의 소설을 인용하면서 이야기를 복잡하고 풍성하게 만든다.

 

작가는 인턴벤션이란 설정을 통해 작품에 강하게 개입한다. 이 설정을 위해 프롤로그에 “이 소설이 세상에 나온 건 2019년이다. 하지만 이 소설인 쓰인 것은 2041년이다.”라고 말한다. 출간 작가와 쓴 작가가 동일한 인물이 아닐 수도 있다고 말하면서 작은 장난을 친다. 인턴벤션의 과도한 개입은 미로의 존재를 희미하게 만들고, 작가의 주석들이 이야기 속에 난입한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작가가 설정한 세계를 더 잘 이해하게 만들어주지만 상상할 수 있는 공간을 제한한다. 이야기 사이마다 끼워드는 대신 가끔 짧은 한 장을 통해 한꺼번에 설명하는 방식을 선택했다면 어땠을까 생각한다. 다른 작가들이 보통 사용하는 방식으로.

 

많은 사람이 등장하지 않지만 개성 강한 캐릭터들이 이야기를 재밌게 만든다. 키가 큰 해커 큐릭과 유리의 동생 마리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을 통해 이 가까운 미래의 변화를 더 쉽게 받아들이게 되고, 미로에게 일어나는 현상들을 다른 시각에서 보게 만든다. 그리고 작가가 얼마나 과학 공부를 열심히 했는지도 보여준다. 인상적인 것 둘을 꼽으라면 달리는 기차에서 공중으로 던진 공이 떨어지는 이야기와 마리의 투명인간 프로젝트다. 진보와 발전을 정확하게 구분하고, 죽음을 다른 방식으로 해석하면서 과학과 철학을 이야기 속에 녹였다. 하지만 몇 가지 설정과 모호한 마무리 등이 여운보다 아쉬움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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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손잡이 숙녀 에놀라 홈즈 시리즈 2
낸시 스프링어 지음, 장여정 옮김 / 북레시피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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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놀라 홈즈 시리즈 두 번째 작품이다. 첫 권은 아직 읽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이 책에 끌린 이유는 간단하다. 지구상 가장 위대한 탐정을 넘었다는 도발적인 광고 문구 때문이다. 책 소개를 자세하게 읽었다면 이 소녀가 셜록 홈즈의 여동생이란 설정을 알았을 텐데 이 부분을 놓쳤다. 아마 책 선택 당시 읽었다고 해도 책을 받고는 잊어버렸을지도 모른다. 자주 있는 일이다. 많은 책 정보를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기억에 혼란이 생긴다. 약간 비겁한 변명인가. 이런 변명을 쓰는 이유는 소설의 앞부분에 셜록 형제가 나와서 에놀라를 걱정하는 이야기가 나오기 때문이다.

 

열네 살 소녀인 에놀라가 전편에서 어떤 활약을 펼쳤는지 모르지만 나이와 신분을 속인 책 런던에서 살아간다. 라고스틴 박사의 사무소에서 비서 역할을 하면서 방문객을 만난다. 그런데 이번에 찾아온 의뢰자는 그 유명한 왓슨 박사다. 홈즈의 동료인 그가 맞다. 그는 홈즈의 여동생을 찾아달라고 말한다. 홈즈 형제가 걱정하고 있다고. 이 에피소드는 셜록 홈즈와 주인공을 연결시키는 동시에 그녀가 어디에서 변장술 등을 배웠는지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 실제 열네 살 소녀가 성인들 사이에서 활약하기 위해서는 이런 변장이 필수다. 물론 자신의 나이가 드러나 다른 사람의 공감을 얻는 경우도 있다.

 

빅토리아 시대의 런던과 그 당시 복장과 문화를 기반으로 쓴 소설이다. 이 당시 대기 오염과 빈민 문제와 여성들의 낮은 지위 등이 아주 잘 나온다. 실제로 에놀라가 집을 떠난 것도 이런 문화 때문이다. 자립심 강하게 엄마에게 키워진 그녀를 기숙학교에 보내 보기만 좋은 상류 사회 여성들처럼 보이게 만들려는 시도가 원인이다. 실제 이 당시 여성들은 경제권이 없어 남편 등에 귀속될 수밖에 없었다. 이런 문제는 당연히 가정 폭력과 여성 하대 등의 문제로 이어진다. 에놀라의 엄마가 집을 떠난 것도 바로 여성 참정권 등을 주장하고 실천하기 위해서다. 다만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지내는지 잘 모를 뿐이다.

 

에놀라가 엄마와 연락을 주고받는 방법은 고전적인 암호 통신이다. 같은 책을 가지고 있으면서 암호문을 신문에 광고하는 방식이다. 이 암호 방식은 암호 책자가 없으면 풀 수 없다. 많은 스파이 소설에서 이런 방식을 이용한 암호 교환이 실제 이루어졌다. 에놀라가 잃은 책을 통해 셜록이 에놀라를 찾기 위한 전문을 보낼 때 중요한 실수 하나가 있었는데 이것은 모녀 사이가 아니면 알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작은 에피소드와 장면들이 비교적 간결할 수 있는 왼손잡이 숙녀 실종 사건을 좀 더 풍성하게 만든다. 동시에 다음 사건과 연결시키는 역할을 한다.

 

이번 이야기에서 가장 큰 사건은 레이디 세실리 실종이다. 그녀는 방에서 자다가 사라졌다. 납치된 것이면 돈 등을 요구할 텐데 그 어떤 사후 행동이 없다. 한 남자와의 만남이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함께 도망쳤을 텐데 그 남자 주변 어디에도 없다. 장문에 놓인 사다리를 통해 내려갔을 텐데 조력자가 누군지도 모른다. 에놀라는 세실리의 엄마를 만나서 세실리의 방을 조사하고 예상하지 못한 정보를 얻는다. 그리고 작가는 이것을 그 당시 문학과 심리학 등과 연결해서 이야기를 만든다. 현대에도 자주 사용하는 설정이지만 개인적으로 조금 아쉬운 부분이다.

 

이야기는 복잡하지 않고, 트릭이 엄청나지도 않다. 가볍게 읽으면서 19세기 영국 자본주의와 사회문제 등을 훑어볼 수 있다. 카메오로 등장하는 셜록 홈즈 시리즈의 등장인물들은 반갑고, 다음 이야기에서는 어떤 역할들을 맡을지 궁금하다. 그리고 혹시 다음 이야기에서 왓슨 박사처럼 좋은 조력자가 생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영화로 제작될 것이란 소식에 가장 먼저 든 생각은 과연 현대판 셜록이 카메오로 등장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이런 저런 재밌는 상상을 할 수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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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람살라에서 보낸 한 철 도시산책 2
임 바유다스 지음 / 도서출판 아시아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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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가에서 한 번 이상 들은 적이 있는 땅 이름이다. 여행 관련 방송이나 에세이, 혹은 달라이 라마와 관련해서 들었을지도 모르겠다. 인도라는 거대한 땅 덩어리를 생각하면 불쑥 튀어나오는 땅 이름들은 언제나 낯설게 들린다. 너무 유명한 몇 곳을 제외하면 특히 그렇다. 그 중 한 곳이 다람살라다. 티베트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곳이기도 하다. 달라이 라마가 머물고, 티베트 임시 정부가 있는 곳이니. 이런 부가적인 정보들은 이 지역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지만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각양각색이다. 달라이 라마가 머물면서 서양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는 곳이기도 하지만 인도인들도 적지 않게 찾아오는 여행지다. 이로인한 문제가 이 책 속에서 다루어진다.

 

임 바유다스. 낯설다. 본 이름은 임헌갑이라고 소개되어 있다. 역시 낯설다. 이 책이 나오게 된 데는 출판사의 도시산책 시리즈의 연장선 때문이다. 단순히 경유한 여행지이거나 한 달 살기 같은 잠시 머문 여행자의 글이었다면 많은 부분에서 차이가 있을 텐데 작가는 꽤 오랜 세월 동안 다람살라를 방문하고 머물고 친구를 사귀었다. 낯익은 현지인과 여행객들과 만남을 다루는 장면들을 보면서 마음속으로 부러웠다. 갈 때마다 누군가를 만나고, 그들에게 반가운 환대를 받고, 그들의 삶을 눈으로 볼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한 여행인가.

 

현지인들에게 작가는 임지로 불린다. (Ji)라는 단어에 선생이란 의미가 있어 성과 합쳐진 것이다. 매년 오다시피 하는 도시이고, 머물면 상당한 시간 동안 있다보니 친구들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 중 한 명이 밀랍이다. 4형제 중 한 명인데 임지는 이 네 명 모두와 친하다. 이들이 친구를 대하는 마음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 중 하나가 도입부에 나오는 비싼 호텔방을 공짜로 내주겠다는 것이다. 한가한 산중 마을이라도 쉽지 않은데. 작가가 이들 형제들과 만나 술을 마시고, 트레킹을 하고, 축제에 참가하여 보여주는 장면들은 끈끈한 친구 관계를 아주 잘 보여준다. 잊고 있던 외국에 있는 친구가 생각난다.

 

기본적으로 힌두교가 이들의 삶에 박혀 있다. 아니 힌두교와 삻의 구분이 쉽지 않을 정도다. 이 글들을 보면서 대도시를 여행한 수많은 여행객들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원래 이 지역 사람들의 성향이 그런 것인지, 대도시란 공간이 이 사람들을 그렇게 만든 것인지 구분이 잘 되지 않는다. 뉴델리나 뭄바이에서 택시를 탄 여행객들의 황당한 경험들을 떠올리면 더욱 그렇다. 물론 작가가 친숙한 사람들을 만나고, 좋은 현지인들만 더 부각시킨 부분도 있을 것이다. 아니면 자신이 현지와 많이 동화되어 거의 차이를 깨닫지 못했을 수도 있다.

 

요기에 대한 이야기를 읽을 때면 괜히 부럽다. 버리고 수행을 위해 떠날 수 있다는 부분 때문이다. 현재 내가 가진 것과 인연의 사슬로 묶인 것들을 생각하면 이런 행동 자체가 대단한 일이다. 국유지에 요기들이 머무는 것을 인정해준다고 할 때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물론 요기가 아니라면 쫓겨난다. 새롭게 낯익은 곳을 찾아오면 낯선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이 만남은 또 다른 시각에서 그 도시를 보게 하고, 인식의 폭을 넓혀준다. 작가들과 요기들의 만남에서 이것이 잘 드러난다. 불합리한 현실에 도전한 사람, 그 도전을 통해 더 성장한 사람들 이야기는 사회가 어떤 식으로 조금씩 변화하는지 보여준다. 그리고 무엇보다 읽으면서 긴 여운을 가지게 되는 것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혹시 내가 다람살라를 찾아간다면 이 책을 꼭 손에 들고 가고 싶다. 임지의 친구들을 만날지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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