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묘한 꽃다발 에놀라 홈즈 시리즈 3
낸시 스프링어 지음, 김진희 옮김 / 북레시피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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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놀라 홈즈 시리즈 3번째 이야기다. 전편에서 오빠 셜록 홈즈의 손에서 아슬아슬에서 벗어난 에놀라가 셜록을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셜록을 돕는다는 의미는 옆에서 조수나 동료가 되는 것이 아니다. 홈즈를 세계적인 탐정으로 끌어올린 친구 왓슨 박사의 실종을 해결한다는 의미다. 그녀의 가장 큰 강점은 실종된 사람을 찾는 것이다. 그녀가 연 연구소도 그것이 아니던가. 외모도 셜록을 닮았지만 가장 비슷한 것은 통찰력이다. 관찰하고 조사하고 단서를 쫓아가는 그녀의 모습을 보면 홈즈 시리즈가 조금씩 떠오른다. 다른 점이라면 홈즈 같은 자신만만함이 없는 것이라고나 할까.

 

한 정신병원에서 이야기는 시작한다. 그는 자신이 셜록 홈즈의 친구인 왓슨 박사라고 말한다. 정신병원에서 이 말은 너무 흔한 말이다. 이 말을 듣고 풀어줄 정신병원은 그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간호사는 그를 키퍼솔트라고 부르면서 그를 풀어줄 마음이 전혀 없다. 그런데 다음 장에서 자신의 가명이 들켰다고 생각한 에놀라가 새로운 이름을 짓는 고민을 하면서 신문에서 놀라운 소식을 접한다. 바로 홈즈 박사의 실종 사건이다. 이 신문을 보고 정신병원에서 자신이 왓슨 박사라고 말한 사람이 바로 그임을 알게 된다.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어졌다면 첫 장면에서 알 수 있는 부분이지만.

 

실종자가 어디 있는지 독자들에게 먼저 알려준다. 그럼 누가와 왜라는 의문을 추가로 달 수밖에 없다. 누가 그를 정신병원에 왜 넣었는지? 어떻게 정상인 그를 병원에 넣었는지는 나중에 나오는데 이것은 현실에서도 비교적 쉽게 일어났던 일들이다. 가족의 동의라는 이유로 정신병원에 갇힌 사람들 이야기는 생각보다 많은 곳에 나온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누가 그를 정신병원에 가두었는가 하는 것이다. 현대 경찰처럼 셜록은 환자 기록을 들고 가서 용의자를 찾는다. 반면에 에놀라는 왓슨 박사의 아내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그녀에게 전달된 꽃다발을 통해 용의자를 찾는다.

 

셜록에게 잡힐 수 있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힌 에놀라는 이것을 피할 방법을 셜록의 방에서 찾는다. 그것은 또 다른 사람으로 변장하는 것이다. 셜록의 수많은 변장을 도와준 듯한 가게에 가서 변장 도구를 산다. 몇 가지 도구의 힘을 빌린 그녀는 미녀로 변신한다. 이 미녀의 힘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보여주는 몇몇 장면들이 있다. 현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성형과 화장의 힘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단서를 찾아 선택한 방법은 고전적이고 지루한 기다리기다. 수상한 꽃다발이 다시 올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작은 단서를 따라가면서 새로운 단서를 만나고, 문제의 핵심에 도달한다. 조금 밋밋할 수 있는 이야기에 작고 긴장감 넘치는 액션을 넣어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책소개에 워낙 스포가 많다. 책을 읽으면서 단서에 점점 따라가야 하는데 범인을 노출해놓았다. 만약 이 소설이 범인이 초반에 나온다면 나쁘지 않지만 이 소설의 경우 후반부에 연결고리가 나오고, 누가 범인인지 알 수 있다. 안타깝다. 이것과 달리 에놀라가 내놓는 초보적인 암호 풀이는 옛 기억을 떠올린다. 이 시리즈를 읽으면서 가장 감탄하게 되는 것은 역시 19세기 후반 영국 런던을 묘사한 장면들이다. 현대적인 상하수도 설비가 갖추어지기 전 도로의 모습이 너무나도 생생하다. 하층민 아이들에게 기부하는 에놀라의 모습에서 가난한 동남아 지역의 아이들의 모습이 겹쳐진다. 그리고 가장 흥미로운 대화는 홈즈가 던진 에놀라에 대한 평가다. 그를 믿지 못한다는 아쉬움을 토로하는 장면은 시리즈 다음 이야기들에서 어떻게 작용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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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탑 공화국 - 욕망이 들끓는 한국 사회의 민낯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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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가장 열정적이면서 꾸준하게 책을 내놓은 저자가 강준만이다. 한때 그가 제기한 문제에 공감하면서 사회를 보는 시각을 바꾼 적도 있다. 지금도 꽤 많은 부분에서 그가 제기한 문제들에 공감한다. 다만 너무 자주 나와 그의 글들을 모두 읽을 수 없다는 문제점이 있다. 이 책을 읽고 검색을 하니 3월에 도 한 권의 책이 나온다. 대단하다. 사실 데이터를 이용해 이렇게 글 쓰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다.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일관성 있게 이야기를 풀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짧은 글이라면 간단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이런 분량이라면 어떨까? 서평을 쓰기도 전에 갑자기 든 단상이다.

 

바벨탑. 처음 이 탑을 만난 것은 일본 만화였다. 해적판으로 나온 것을 띄엄띄엄 읽었던 기억이 난다. 정식 발간본이 나온 후 봐야지 했지만 다른 이야기에 더 눈길이 가면서 멈춘 상태다. 그런데 이 바벨탑이 수많은 소설 속에서 소재로 활용되고 있다. 신에 대한 도전, 인간의 욕망, 언어의 분화 등이 대표적이다. 이 책에서 다루는 바벨탑은 한국 사회의 욕망을 표현한다. 수도권의 초과밀화가 만들어낸 현상과 초양극화 문제들을 10장으로 풀어낸다. 이 이야기들을 읽다 보면 미로 속을 해매는 느낌이다. 정보의 나열이 하나의 이론이나 문제의 해결로 바로 이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런 문제 제기가 나의 의식을 깨워준다. 덕분에 공부할 거리가 늘어났다.

 

한국 사화 전반의 문제 중 서울과 수도권 집중화는 아주 심각하다. 몇 년 전 누군가 부산대 들어갔다는 소식을 듣고 잘 갔다고 했는데 현실은 인서울 실패가 더 맞다. 내가 대학 다닐 때와 비교해서 인서울의 힘은 더욱 강해졌다. 주변을 둘러봐도 취업을 위해 서울로 향하는 사람들이 쉽게 보인다. 한국 인국의 절판 이상이 서울과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다. 그리고 알게 모르게 사람들의 인식 속에 서울에 대한 열망이 자리잡고 있다. 저자가 조선 후기 외국인의 글을 인용하지 않아도 권력과 금력은 서울을 향했다. 예전에 서울 개발사와 발전사를 다룬 책을 읽으면서 왜 이런 모양이 되었는지 조금 알게 되었는데 이 흐름이 바뀌려면 최소한 한 세대 이상의 시간이 흘러가야 한다. 그런데 과연 이것을 바꿀 의사가 우리에게 있을까?

 

서울 인구 1천만 명이 붕괴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왜 사람들이 서울을 떠날까? 실제로 이들이 서울을 떠난 것은 아니다. 일은 서울에서 한다. 다만 주거지를 수도권 신도시 등으로 할 뿐이다. 최근 몇 년 동안 결혼한 회사 직원들 중에 서울에 집을 산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어느 정도 부모의 뒷받침이 없다면 서울에서 아파트 전세나 집을 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서울 주변 도시들에 사람들이 몰려 사는 것이 어쩌면 당연하다. 이 현상과 일본의 주변 도시 붕괴 현상과 연결해서 풀어낸 부분은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지방 도시의 구도심이 무너지고 새로운 도심이 생기는 현상도 지적했는데 몇 년 전에 실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고, 내가 살았던 도시도 그런 현상이 있는지라 금방 이해되었다.

 

내가 다른 사람들과 교육 이야기를 할 때 가장 싫어하는 말 중 하나가 변별력이다. 이 단어가 만들어내는 힘은 생각보다 거대하다. 하향편준화를 두려워한다고 하는데 실제 검증되지 않은 하나의 이미지다. 상상력이 점점 사라져가고 있는 현재의 중고생들을 보면 단순히 좀더 암기 잘 하고, 문제를 더 빨리 푼다는 것이 변별력과 상향화를 증명할 수 있을까? 교육이 학원 등의 사교육에 완전히 점령당한 현실에서, 인서울이 서울대라는 환상이 자리잡고 있는 현실에서, 사람들의 무력감은 학습되고 당연하게 여겨진다. 수십 년 전 서울대를 혜화동에서 관악으로 옮긴 것처럼 지방으로 옮긴다면 어떨까? 작은 하나의 방법은 되지 않을까?

 

서울과 지방의 격차는 점점 심해진다. 위에서 말한 인서울과 지방 국립대의 차이도 마찬가지다. 수도권 초집중은 지방 소멸론으로 이어진다. 지방분권 문제를 다루는데 아쉽게도 이 부분은 좀 더 이해하기가 어렵다. 예전에 지방에서 서울로 유학 보내는 일들을 칭찬했는데 이 글을 읽으면서 생각이 조금 수정되었다. 서울 아파트 가격이 미친 듯이 올랐을 때 욕을 하지만 내 집도 그처럼 오르길 바란 사람들이 대다수다. 이성과 욕망의 불일치는 우리를 휘어잡고 뒤흔든다. 같은 위치가 아니면 차별하고, 자신이 차별받으면 분노한다. 몇 년 전 강남의 아파트 대단지를 보고 나는 답답하다고 말했고, 다른 직원은 그 많은 집 중에 내 집이 없다고 말했다. 아직 내가 집을 사지 못한 것도 이런 시각 차이 때문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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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트기 힘든 긴 밤 추리의 왕
쯔진천 지음, 최정숙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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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기 전 인터넷 서점에서 쯔진천 이름으로 검색을 했다. 불행하게도 다른 번역 소설이 없다. 중국 3대 추리소설가란 이름을 생각하면 조금 의외다. 개인적으로 최근에 읽은 몇 권의 사회파 추리소설은 나의 취향을 저격했다. 그 중에서도 이번 소설은 중국 추리소설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데 큰 역할을 했다. 몇몇 중국 작가의 추리소설에 호불호가 심하게 갈리는 것을 봤기에 이 소설에 대한 엄청난 호평들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그런데 모두 읽은 지금은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독자들의 평가에 공감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잠시 우리 사회를 돌아보게 되었다.

 

한 인물이 지하철역에서 시체를 끌고 가다 도망친다. 잡힌 인물은 유명 형사 변호사 장차오다. 그는 순순히 혐의를 인정한다. 시체는 전직 검찰관 출신의 장양이다. 그의 기록만 보면 결코 착한 검찰관이 아니다. 감옥도 다녀오고, 도박도 하고, 뇌물까지 받은 나쁜 검찰관이다. 장차오와 장양이 싸운 것을 본 경찰의 기록도 있고, 장양의 손톱에는 장차오의 피부가 묻어 있다. 누가 봐도 이 사건은 장차오가 살인을 했다. 현장에서 잡혔고, 살인을 자백까지 했으니 이보다 더 분명한 사건은 없다. 그런데 재판이 벌어지면서 그는 이 모든 것을 부인한다. 알리바이도 완벽하다. 장양이 죽은 시점에 그는 북경에서 고객을 만나고 있었다. 이 시간 차이는 경찰을 미로 속으로 빠트린다.

 

사람들의 시선을 많이 끈 사건이고, 공개 재판으로 벌어졌기에 장차오를 고문할 수도 없다. 완벽한 알리바이와 시체 유기는 의혹투성이다. 이때 사건을 재수사하게 된 형사 자오톄민과 탐정 역의 옌량이 장차오의 동기를 조사한다. 너무 뻔한 사건이라 놓친 부분으로 다시 돌아간 것이다. 옌량의 주장으로 다시 기본 수사를 시작하고, 한 사람의 이름이 드러난다. 그의 이름은 허우구이핑이다. 대학 졸업 전 시골로 와서 임시 교사를 했던 그의 이야기가 이때부터 흘러나온다. 과거 이야기와 현재가 교차하면서 진행되고, 진실의 흔적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한다.

 

허우구이핑. 그는 평범한 대학 졸업생에 정의감 불타는 청년 선생이다. 그가 머문 마을의 학생이 임신으로 학업을 그만 두고, 다른 학생이 집으로 가지 않으려고 하는 것을 삼촌의 등장으로 보냈다. 이 학생은 돌아와서 자살한다. 그때 보낸 것을 자책하는 그는 이 일을 파헤친다. 동네 깡패가 소녀를 성폭행했는지 조사했지만 조사 결과가 다르게 나온다. 다른 사람이 있다. 그는 이것을 계속해서 파고든다. 더 많은 아이들을 조사하고, 증거를 수집한다. 검찰원에 이 사건을 고발하지만 그들은 움직이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마을 과부의 유혹에 넘어가고, 얼마 후 시체로 발견된다. 마을 과부와 학생들을 성추행했다는 수사 결과도 나온다.

 

장양은 허우구이핑의 동기다. 검찰원이 되었을 때 허우구이핑의 여자 친구였던 리장이 찾아온다. 허우구이핑의 의문스러운 죽음을 조사해달고 하면서. 1년차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여자 친구의 독촉과 함께 협의지심이 움직여 허우구이핑의 죽음을 재수사하려고 한다. 이 과정에서 그는 검시관 천밍장과 정의로운 형사 주웨이를 만난다. 특히 주웨이와 그는 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자신들의 모든 것을 던진다. 이 과정 속에서 그들이 느끼는 절망감과 결코 굴복하지 않는 강한 정신력은 보는 내내 감동하게 만든다. 부패한 조직과 권력은 이들이 발견한 단서들을 조금씩 묵살하거나 없애면서 이들의 수사를 무력화시킨다.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다. 하지만 결코 굴복하지 않았다. 협박과 신분 추락 등이 발생했지만 그들의 굳센 의지는 좀처럼 멈추지 않는다. 처음 조직원으로 불안감을 가지고 있던 장양은 시간이 지나면서 강철처럼 단련된다. 그의 의지가 어떤 식으로 표출되었는지 보여줄 때 눈시울을 붉히지 않을 수 없었다. 장양과 주웨이가 공무원이었을 때 왜 이들을 직접 죽이지 못하는지 보여줄 때 침묵하는 다수의 숨겨진 힘을 느낄 수 있었다. 권력과 권위에 굴복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들의 의기는 결코 완전히 사그라든 것이 아니다. 비겁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그들은 어둠속에서 장양 등의 힘이 되어준다. 마지막 반격의 단서를 제공한 것도 바로 이들 중 한 명이다.

 

흔히 생각하는 수준에서 범인이, 배후가 나오지 않는다. 반전처럼 이어지는 몇 가지 이야기는 마지막 한 문장에서 방점을 찍는다. 그것을 작가는 현실의 사건과 연결시킨 것 같다. 하지만 그 수사의 신호탄은 바로 장양 같은 굳세고 정의로운 검찰관이다. 마지막 장을 덮고 난 후 그들의 희생정신과 의지 등에 가슴이 먹먹했다. 아니 울컥했다. 그리고 장차오가 만든 이벤트를 재빠르게 눈치 챈 두 명이 나오는데 그 중 한 명이 옌량이다. 전면에 등장해서 이야기를 이끌고 가지 않지만 수사의 방향을 결정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번 작품은 옌량이 등장하는 시리즈 마지막이라고 하는데 이전 작품에 관심을 그칠 수 없다. 개인적으로 이 작가의 다른 작품도 읽어보고 싶다. 예상하지 못한 사회파 추리소설의 구성과 전개인데 다른 작품은 어떨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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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리적 의심
도진기 지음 / 비채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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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이 소설이 추리소설이 아니라고 말한다. 좁은 의미로 말한다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추리소설이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법정소설에 한 개인의 심리적 변화를 이보다 잘 표현한 작가의 다른 작품이 있는지 궁금하다. 아니 다른 작가라고 해도 흔하지 않다. 읽으면서 예상하지 못한 장면들을 만나면서 몇 번이나 놀랐고, 무심코 넘긴 뒤쪽에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그 과정에 도달하는 과정은 또 다른 놀람의 연속이었다. 마지막을 덮는 순간에 이르게 되면 작가 최고의 작품이란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우리는 현재 사법 농단의 시대에 살고 있다. 덕분에 법원에 대해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소식을 듣는다. 전직 판사들이 법원을 나와 변호사가 되었을 때 하는 말 중 하나가 사회 경험이다. 처음 판사가 되었던 사회 초년생 시절을 돌아보면 많은 아쉬움을 남긴다는 것이다. 더 많은 사회 경험을 쌓은 뒤 판사가 되었다면 더 좋은 판결을 남겼을 텐데 하고. 이런 점에서 이 소설의 주인공인 부장판사 현민우와 배석판사 민지욱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현민우는 민지욱에게서 과거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더 많은 경험이 쌓이면 자신처럼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합리적 의심. 살인 사건 재판에서 증거가 불충분할 때 판사들이 이 용어를 사용한다. 증거법정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현실에서 확실한 증인이나 증거가 없다면 단순히 논리만 가지고 판결을 내려야 한다. 요즘 나오는 판결의 몇 가지는 이런 증거보다 논리의 일관성 등에 의한 것이 상당히 있는 것 같다. 특히 성폭행 등과 관련해서는 시간이 너무 흘러 그 직접적인 증거를 제시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민 판사가 말했듯이 범인 한 명을 더 잡는 것보다 선한 한 사람의 피해가 없는 쪽으로 가야 할 텐데 현실에서는 반대의 경우가 더 많다. 민 판사가 현 부장판사에게 논리적으로 달려들 때 내놓은 것도 바로 이것이다. 감성과 이성의 충돌은 때로는 감성이 이성의 옷을 입었을 때 본질이 흐려지기도 한다.

 

젤리 살인사건은 연인 사이의 남녀가 모텔에 들어간 후 남자가 젤리를 먹고 질식한 사건이다. 바로 죽었다면 더 많은 조사가 이루어졌겠지만 병원으로 옮겨진 후 며칠 후 죽었다. 이후 연상의 여자는 3억 원의 보험료를 수령했고, 이것을 이상하게 생각한 가족의 의뢰로 수사가 더 이루어져 살인사건 재판이 벌어졌다. 이 재판은 현 판사의 첫 번째 형사재판이다.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 법원 시스템 중 일부를 설명해준다. 그리고 우리가 드라마나 영화 등에서 보는 판사 세 명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도 잘 설명해준다. 물론 현 판사가 과거 경험했던 황당한 판사의 경우라면 판사 세 명이 왜 필요한지 의문이 들지만.

 

김유선. 젤리 살인사건의 피고다. 그녀와 남친이었던 피해자 이준호의 관계를 누나가 설명해줄 때, 그녀가 보험에 가입한 이유 등을 설명할 때, 다급하게 모텔 프론트를 찾아갔을 때, 그녀의 증언이 몇 번이나 바뀌고 발전했다고 말할 때 의심의 씨앗은 점점 자란다. 하지만 피해자는 화장해서 시체가 사라졌다. 남친 이준호가 죽은 이유가 질식이 분명하지만 충분한 검시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문제가 생긴 것은 이 부분이다. 질식사의 경우 흔적이 남는데 이것을 증명할 방법이 없다. 전문가들이 나와서 이야기하지만 충분하지 않다. 합리적으로 그녀가 법인이라고 생각하지만 법적으로 그것을 증명할 방법이 없다. 판사의 고충이 생기는 부분이다. 그런데 현 판사의 판결을 보는 순간 놀라게 된다. 예상하지 못한 판결이기 때문이다.

 

판결이 내려진 것으로 이야기가 끝났다면 사실 이 소설은 다른 법정소설과 별다른 차이가 없었을 것이다. 작가는 자신이 가장 잘 아는 이야기를 소설 속에 녹여내면서 판사들 생활과 생각과 문제점 등을 하나씩 풀어놓는다. 자신처럼 승진에 뜻이 없는 사람과 대비되는 사람들을 보여주면서 은근히 사법부를 비판한다. 한국 재판부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인 판례를 따른다는 것에 가끔 일침을 가한다. 실제 주변에서 1980년대 초 판결에 나온 배상금액을 2000년대 초반에도 그 한도액으로 정하는 것을 보고 그들이 얼마나 고지식하고 사회 변화에 무감각한지 놀랐다. 징벌적배상이 왜 필요한지는 요즘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죽음을 생각하면 더 분명해진다. 더 싼 값이니 그들이 굳이 더 많은 비용을 쓸 필요가 없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곳곳에서 생각이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전반부가 젤리 살인사건을 다루면서 법정소설에 충실했다면 후반부는 판사 한 사람의 삶을 심도 있게 따라간다. 자신의 판결 때문에 배석판사의 눈치를 보고, 자신이 예전에 내린 판결에 고마워하는 사람과 그 시대의 문제점 등도 같이 보여준다. 그와 갈등을 일으키는 판사 동료도 보여주면서 법원이 하나의 직장이자 사회임을 나타낸다. 판사의 고민과 작은 실수가 빚어낸 일이 누군가의 악의에 의해 얼마나 큰 위협으로 다가오는지 심리적으로 파고들 때 그 긴장감은 더 고조된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은 왜 현 판사의 아내를 그런 악녀로 표현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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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24
김유철 지음 / 네오픽션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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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고생이 자살을 했다. 그녀가 죽은 이유를 검찰은 성폭행 때문이라고 한다. 가해자를 범인으로 지목하고, 살인죄로 처벌하려고 한다. 그런데 진실은 다른 곳에 있다. 여고생 해나가 근무했던 콜센터에 문제가 있다. 흔히 감정노동자라고 말하는 콜센터 직원이었던 해나가 왜 자살까지 갈 수밖에 없었는지 작가는 김 변호사를 통해 차근차근 보여준다. 이 과정을 보면서 혹시 내가 이전에 불만을 토로했던 콜센터 직원들에게 괜히 미안해졌다. 나의 감정과 그들의 업무가 충돌할 때 나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조절했는지 의문이다. 그리고 왜 이런 어린 여고생을 이런 힘든 일에 투입하게 되었는지 설명할 때 우리 사회의 밑바닥 중 하나를 본 느낌이다.

 

김 변호사는 후배 조 변호사의 의뢰로 한 살인사건을 맡는다. 위에서 말한 사건이다. 재석을 만나 해나가 죽기 전 있었던 이야기를 듣고, 유방암 수술을 받은 조 변호사의 자료를 통해 해나가 어떤 일을 했는지 알게 된다. 콜센터에서 고등학교 졸업예정자들을 뽑아 힘든 일에 투입한 이유도 알게 된다. 그들을 소모품으로 사용하려는 의도다. 학교는 언제나 취업률 100% 달성이란 목표에 목을 맨다. 언제나 만나게 되는 학생의 인권은 여기서도 전혀 지켜지지 않는다. 자신의 안위가 우선이다. 너무나도 힘들어서 그만두고 싶다는 학생의 바람을 학교는 짓밟는다. 출구가 막힌 학생이 선택할 수 있는 최악이 자살이다. 저수지를 보면서 해나가 던진 한 마디는 지금도 진한 여운으로 남는다.

 

답을 쉽게 알 수 있는 사회파 추리소설에서 솔직히 긴박감을 느끼기는 쉽지 않다. 이 소설 속에서도 쫓고 쫓기는 긴장감이나 치열한 법정 싸움이 펼쳐지지 않는다. 양파 껍질을 벗기듯이 한 꺼풀씩 해나가 마주한 진실을 밝혀낼 뿐이다. 하지만 이 과정은 우리 사회의 어두운 민낯을 한 꺼풀씩 벗겨내는 것과 같다. 읽으면서 내가 잘 몰랐던 사회의 한 모습을 들여다보고, 알려고 하지 않았던 사람들의 삶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단순히 이런 정보만 제공한다면 소설일 필요가 없다. 원래 작가가 논문으로 발표하려고 했다고 한 것처럼 논문이 더 맞을지도 모른다. 소설은 이런 문제를 극적으로 구성해서 사람의 감정을 뒤흔들 수 있다. 최소한 나는 그랬다.

 

한국에서 인터넷을 해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수많은 비법들이 인터넷에 난무한다. 내가 아는 가장 쉬운 방법은 다른 인터넷 회사에 가입해서 그쪽에서 처리하게 하는 것이다. 이 소설에서 문제의 회사인 콜센터 해지방어팀은 직접 해지하려는 고객을 대응하기 위한 팀이다. 해지를 하려면 얼마나 힘든지 아는 사람이라면 왜 고객들이 그런 반응을 하는지 아주 조금은 이해할 것이다. 물론 정도가 심한 사람이 많다. 눈앞에 사람이 없다는 사실과 고객이 왕이란 잘못된 인식이 만들어낸 막말과 욕설과 비하 등은 결코 기분 좋은 경험이 아니다. 나 자신도 실제 이것과 다르지만 비슷한 전화를 받은 적이 있다. 이때의 스트레스는 지금도 기분이 나쁘다. 그런데 만약 이런 일이 매일 여러 번 반복된다면 어떨까?

 

살인과 변호사를 전면에 내세우고, 법정도 나오지만 이 소설에서 다루는 것은 한 콜센터 여직원의 죽음이 중요한 내용이다. 그런데 이 죽음의 원인이 법 앞에 올려진 것은 아니다. 그녀가 믿고 의지했던 선배가 살인죄를 적용받는지를 대상으로 한다. 하지만 그녀의 자살 원인이 중요한 안건이다. 이 원인이 알려지면 그 비난의 화살이 대기업 본사로 향할 수 있다. 실제 이런 일이 일어났을 때 우리는 그들이 어떻게 대응하는지 잘 안다. 최근에도 얼마나 많은 외주 직원들이 업무 도중에 삶을 마감했던가. 그리고 왜 이들이 그렇게 스트레스 강하고 힘든 직장을 떠날 수 없는지 조금만 생각하면 알 수 있다. 사회 인식이나 통계 등은 이런 이면을 비춰줄 생각이 없다.

 

하나의 진실을 밝혀내는 데는 한 사람만의 열정과 노력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이 일이 힘들어 떠난 콜센터 직원들은 이때 좋은 지원군이 된다. 실제 이들의 도움이 이 사건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반면에 조직은 자신의 안위를 위해 해나에게 주홍글씨를 새기고, 거짓된 소문을 퍼트린다. 내부고발자가 되었다는 사실이 한국에서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해나의 사실 중 진실로 밝혀졌을 때 가장 가슴 아픈 것은 죽은 팀장을 위해 한 행동이다. 가장 열불 나는 장면은 해나의 담임이 보여준 반응이다. 그런데 이 담임을 보면서 우리의 선배들이 떠올랐다. 아니 나도 포함하자. 실제 많지 않은 분량이라 조금만 시간을 내면 금방 읽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속에 담긴 이야기는 많은 생각거리와 여운을 남긴다. 이 작가의 다른 책으로 달려가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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