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X - 남자 없는 출생
앤젤라 채드윅 지음, 이수영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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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없는 출생이란 부제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이 소설의 제목인 <XX>는 여자 염색체를 의미한다. 남자 없이 아이를 가지는 기술이 개발되었다는 전제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여자의 난자와 난자를 결합해서 인공수정하는 기술이다. 여자에게 Y염색체가 없다보니 이 경우에 태어나는 아이들은 모두 여자다. 이런 몇 가지 과학적 설정을 해놓고, 이 실험에 참가한 한 커플을 중심에 둔다. 이 레즈비언 커플은 줄스와 로지다. 줄스는 지방신문 기자고, 로지는 서점에서 일한다. 물론 이 실험에 참여한 사람들이 그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의 신상이 공개되면서 세계 최초라는 타이틀을 얻게 된다. 동시에 수많은 사람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고, 그들의 사생활은 파괴된다.

 

레즈비언이 아이를 가지는 방법은 현재까지 하나밖에 없다. 남자의 정자를 받아 인공수정하는 것이다. 로지는 아기를 가지고 싶지만 줄스는 원하지 않는다. 그런데 크레타 여행 중 만난 한 가족을 보고 줄스의 마음이 바뀐다. 이것과 동시에 포츠머스 대학에서 여성들의 난자를 이용한 인공수정이 가능하다는 인터뷰가 나온다. 이 커플에게 이 소식은 하나의 계시와도 같다. 대학에서 임상실험 대상자를 모을 것이란 것을 알고 열심히 준비한다. 공지가 떴을 때 지원서를 열심히 작성한다. 1차 대상자가 되어 인터뷰에도 참석한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임상실험 대상 2커플 중 하나가 된다. 이때만 해도 이들은 아주 행복했다.

 

난자와 난자의 인공수정은 당연히 대중의 반감을 불러온다. 종교계와 보수 정치인들은 이것을 선두에서 반대한다. 반대 시위를 하고, 언론은 이 실험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고 싶어한다. 처음 줄스의 신상이 알려졌을 때 한 언론이 찾아와 고액을 제시하면서 독점을 원했던 것도 이 정보가 대중에게 먹힐 것을 알기 때문이다. 언론의 생리를 잘 안다고 생각한 줄스는 이것을 거절한다. 자신들과 태어날 아이의 사생활을 보호하고 싶고, 얼마 지나지 않아 관심이 사그라들 것이라고 생각한 때문이다. 반면 로지는 이것을 긍정적으로 해석한다. 하지만 이 정보가 뉴스화된 후 이들은 대중의 시선 아래 놓이게 된다. 집앞은 언제나 언론사가 머물고, 파파라치가 그들을 24시간 따라다닌다. 익명성이 사라진 삶이 시작된다.

 

누가 이들의 신상 정보를 언론에 알렸을까? 줄스는 로지의 남성 친구 앤서니를 가장 의심한다. 사실 이런 내용이 나올 때만 해도 이런 정보와 기술을 둘러싼 일반적인 스릴러 정도로 이 소설을 이해했다. 하지만 금방 그가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갈등이 다른 곳에서 생기면서 예상한 전개로 이어지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누군가가 거대한 비밀을 파헤치거나 공포를 자아내는 설정이 있거나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무언가가 등장하는 소설이 아니다. 새로운 인공수정 기술을 둘러싼 한 커플과 그 주변과 이를 제3자 입장에서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담고 있다. 내가 이것을 깨달은 것이 너무 늦어 줄스의 미묘한 심리 변화를 제대로 즐기지 못한 것은 조금 아쉽다.

 

난난수정으로 임신한 커플의 일상과 그 일상에 끼어든 사람들 혹은 언론의 모습을 담고 있다. 보수 정치인은 이것을 자연을 거스르는 행위라고 외치고, 일부 10대들은 레즈비언 커플을 공격한다. 원색적이 욕설이 난무하고, 경멸의 시선이 이들에게 와 닿는다. 만약 이 난난수정이 허락되면 남자 없는 사회가 될 것이란 주장이 제기되고, 여자들만의 세상이 되면 전쟁이 사라질 것이란 말도 나온다. 물론 이 두 주장 모두 사실이 아니다. 남자 없는 세상이란 말에 예전에 본 일본 애니에서 남자만 사는 행성과 여자만 사는 행성을 다룬 것이 생각났다. 제목은 기억나지 않는다. 이런 극단적인 설정도 가능하겠지만 동성애자 비율을 생각하면 현실성은 더 떨어진다.

 

하나의 과학기술이 등장했을 때 사회는 그것의 의미를 자신들의 이익에 맞춰 해석한다. 이제는 흔한 일이 된 인공수정도 예전에는 금기시 된 시술이었다. 사회의 인식이 이것을 따라오려면 시간이 걸린다. 일반적 인공수정과 달리 이 기술은 아직 유전적 문제의 가능성을 완전히 해결한 것은 아니다. 실제 현실화되기에는 넘어야할 산이 많다. 작가는 이런 과정을 사고 실험을 통해 하나씩 다루고 있다. 당사자와 그 주변 인물들의 반응은 사회 인식이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 잘 보여준다. 줄스의 심적 변화들은 아주 현실적이다. 자신에게 닥친 문제는 “아이를 무를 수 있다면, 그렇게 할 것이다.”란 생각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감성과 현실의 차이와 스트레스는 굳건한 커플의 삶을 뒤흔든다. 선택을 후회하고, 다른 사람 탓으로 돌린다. 시간이 지나면서 장애는 계속 생긴다. 이 커플의 신상 정보는 계속 유출되고, 다른 커플의 유산은 대중의 관심을 다시 그들로 끌고 온다. 파파라치 때문에 이사한 이웃과 충돌하고, 줄스는 직장 상사의 부당한 업무 지시를 견뎌야 한다. 이런 과정 속에 내 머릿속은 늘 반전을 예상한다. 앞에서도 말한 재미를 뺏는 생각이다.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고, 그 속에서 벌어지는 갈등과 심적 고민을 받아들이면 다른 재미가 열린다. 후반부에 이것을 알고 빠져들었다. 다만 일반 SF스릴러를 생각한 독자에게는 조금 밋밋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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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 때 펴보라던 편지 - 영혼을 깨우는 선승들의 일화 301
최성현 지음 / 불광출판사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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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선승들의 일화집이다. 농사짓고 책 읽고 번역하는 농부라는 작가가 20여 년 간 모은 선승들의 일화 모음집이다. 개인적으로 이런 이야기를 좋아한다. 보고 있으면 비현실적인 이야기들이 많이 등장하지만 놀랍고 기발하고 유쾌하고 감동적인 이야기들이 더 많다. 처음에 선승이란 단어를 보고 한국의 승려들이 등장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다. 일본 선승들이다. 속았다는 생각보다 일본 선승들의 일화가 이렇게 많은가 하고 먼저 놀랐다. 동시에 한국 선승들의 일화집에 대한 관심이 부쩍 생겼다. 시간 나면 한 번 검색해서 찾아봐야겠다.

 

작가가 서문에서 말했듯이 2000년에 출간된 <다섯 줌의 쌀>이란 일본 선승 일화집이 있었다. 새롭게 발굴한 일화가 대부분이지만 이 책에 실린 일화도 있다는 말에 다른 일화들도 궁금해진다. 표지를 보면서 어쩌면 한참 헌책방을 순회할 때 사놓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인연이 되고, 읽을 마음이 간절하다면 읽지 않을까. 이 선승들의 일화에서 자주 본 것처럼 말이다. 십우도를 인용한 것처럼 열장으로 구성되지는 않았다. 소를 잊고, 삶을 말하면서 끝난다. 일화들은 이웃과 나누고 싶은 좋은 구절과 이야기를 옮겨 적은 것들이다. 나의 머리가 따라가지 못해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일화들도 있다.

 

솔직히 일화의 숫자를 세어보지 않았다. 너무 많다. 그러다 표지에서 301이란 숫자를 봤다. 이전까지 무심코 본 숫자다. 일화의 개수다. 이렇게 우리는 무심코 보면서 넘기는 것들이 많다. 쉽게 해결할 수 있는 것도 다른 생각에 빠져, 다른 곳을 본다고 놓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선승들이 문제를 들고 온 수많은 사람들을 일깨우는 방식 중 하나가 바로 이런 제대로 보기다. 가까운 곳에 답이 있는데 다른 곳에 답을 구하고, 고민하는 모습을 간단한 일화 한 편으로 잘 녹여서 보여준다. 물론 이 선승의 행동이나 말을 듣고 금방 깨달은 사람도 상당한 내공이 뒷받침되어 있다.

 

힘들 때 열어보라는 편지의 내용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던 일화와 다른 결과를 보여준다. 기발한 해결책이 등장하기 보다는 삶의 일상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무상(無常)의 의미를 알게 된 이후 더 많은 부분을 이해한 나에게는 고개를 끄덕일 일화다. 선문답을 다룬 일화의 몇 가지는 아직 내공이 부족해 잘 모르겠다. 이것과 별개로 일본 선승들의 이야기는 재밌다. 어떻게 보면 기행이고, 어떤 모습은 괴팍해 보이지만 그들의 행동은 모두 부처와 민중을 향해 있다. 좌선을 하고, 평생의 화두를 잡고 수행하는 그들의 모습은 너무 쉽게 무너지는 나의 나약함을 돌아보게 만들고, 자세를 바로 잡게 한다.

 

어디선가 들어본 이야기들이 상당히 많이 등장한다. 지금까지 읽었던 수많은 책들이나 방송 등을 통해 알게 된 것들이다. 이런 이야기의 기원이라고 할 수 있는 일화의 주인공을 작가는 적어 보여준다. 소중한 자료다. 이런 자료를 작가는 인터넷과 유튜브를 통해 많이 얻었다고 한다. 현재의 공부 흐름이 바뀌는 모습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꾸준하고 열정적인 의지다. 20여 년의 세월이란 결코 짧지 않기 때문이다. 이 일화 속 선승들이 얼마나 꾸준하고 열정적이고 헌신적이었는지 봤기에 더욱 그렇다.

 

선을 수행하는 스님들의 삶의 모습은 모두 제각각이다. 어떤 스님은 큰 사찰의 주지가 싫어 뛰쳐나갔고, 어떤 스님은 그 속에서 수많은 제자를 길렀다. 무술을 수련한 스님이 상대방을 무찌르는 장면도 있고, 도적의 칼날에 자신을 내던져 제자를 얻은 일화도 있다. 저자 거리의 차를 팔면서 자신의 절이 여기라고 말하고, 수행에 수행을 더하면서 깨달음을 얻은 스님도 있다. 하나의 깨달음 뒤에 또 다른 깨달음이 있다는 이야기는 이전이라면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작은 깨달음으로 모든 것을 다 알 수 없고, 그 너머의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수행이 필요하다. 이것을 잘 알려주는 문장이 “거의 모든 병은 스승이 하나뿐인 데서 온다.”라고 말한 라잔 겐마의 말이다. 하나의 깨달음에 묶인 순간 삶은 정체되고 썩기 시작한다. 너무 많은 일화를 읽어 모두 기억할 수 없지만 읽는 내내 재미있었고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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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화이트 - Novel Engine POP
기바야시 신 지음, 엔타 시호 그림, 김봄 옮김 / 데이즈엔터(주)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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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여러 필명 중 눈에 익은 것은 하나밖에 없다. 아기 타다시다. 워낙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머리를 가지고 있지만 이쪽 장르를 많이 보지 않았기에 더욱 그렇다. 하지만 이 책을 선택하게 된 데는 필명 중 하나인 아기 타다시 때문이다. 그 유명한 <신의 물방울>을 제대로 본 적이 없지만 책 표지를 너무 자주 보았고, 이 이름으로 낸 한 편의 소설을 구입해놓아 익숙한 이름이다. 여기에 판타지 같은 설정의 진단의가 등장하는 소설을 썼다고 하니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미스터리한 등장과 더불어 어떤 능력을 보여줄지 궁금했다.

 

소설을 읽으면서 하나의 사건이 지나갈수록 머릿속에서는 미드 한 편이 떠올랐다. 한때 재밌게 봤던 <하우스>다. 이 미드를 보면서 진단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그 이전 친구 어머니의 병명을 수많은 검사를 거친 후 노환이란 것으로 결론 내렸던 일이나 얼마 전 동료 직원 아이의 맹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대형병원 소아과 전문의가 연속적으로 떠오른다. 보통 일상에서 우리는 이 진단의 중요성을 잘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정확한 진단은 정확한 치료의 시작이라는 간단한 사실을 수많은 의료사를 다룬 책을 통해 알 수 있다. 실제 병원에 있는 많은 검사기기들이 왜 있겠는가.

 

과학의 발달로 검사기기는 더 좋아졌다. 엑스레이가 나왔을 때 의사들이 환호했다는 자료를 보고 그들에게 이런 기계가 얼마나 중요한지, 어떤 의미인지 조금은 알게 되었다. 하지만 이 기계가 모든 병의 원인을 다 알려주는 것은 아니다. 의사라는 전문직이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전문분야 공부를 하고, 경험을 쌓아서 더 빠르고 정확하게 진단하고 치료하기 위해서다. 물론 가끔 혹은 아주 자주 오진으로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오진의 경우는 이미 주변에서 자주 본 것이라 그렇게 낯설지 않다. 이 소설의 무대가 되는 다카모리 종합병원도 오진으로 그 명성이 하락했다. 이런 시점에 갑자기 등장한 바쿠야의 존재는 병원을 살릴 좋은 기회다.

 

안개 자욱한 이른 아침 조깅을 하던 마시키가 알몸에 백의를 걸친 한 여자 아이를 발견한다. 친구가 운영하는 병원에 데리고 간다. 이 병원이 다카모리 종합병원이다. 혹시 성폭행 등을 당한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은 검사 결과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이 소녀가 마사키의 병명을 진단한다. 우리에게 너무 익숙한 이름인 헬리코박터 균 감염이다. 마시키의 행동과 냄새만 가지고 진단한 것이다. 그의 친구이자 병원장의 딸인 마리아는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오늘 검사 결과를 통해 이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소녀는 자신의 이름을 바쿠야(白夜)라고 말한다.

 

바쿠야는 보통 사람들이 가지는 인간관계나 감정이 보이지 않는다. 처음 판타지로 상상력이 펼쳐질 때 아주 멋지게 만들어진 사이보그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아니다. 마사키와 살면서 예절과 인간의 감정 등을 배운다. 그녀가 입고 있던 옷 속에서 발견한 단서를 통해 누가 그녀를 그 공원에 그녀를 데리고 왔는지, 이 사실이 다른 이야기를 열어주는 서막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생겼다. 마지막 장의 제목이 ‘에필로그=프롤로그’인 것은 이것을 아주 잘 보여준다. 미드 <하우스> 시리즈처럼 다음 이야기가 예고되었다고 생각해도 될 것 같다.

 

바쿠야의 진단 능력은 정말 대단하다. 과학에 대한 엄청난 지식과 뛰어난 관찰력과 통찰력은 결코 현실적이지 않다. 하우스 박사가 얼마나 많은 검사와 실패를 통해 성공했는지 봤기에 더욱 그렇다. 실제 이 소설을 읽으면서 후반부로 가면서 <하우스>의 이미지가 더 강해졌다. 물론 병원 경영상 문제로 인한 갈등과 진단대결이란 설정은 다른 곳에 빌려왔지만 말이다. 하지만 단순히 그녀의 진단 능력만 부각시키지 않는다. 그녀를 둘러싼 미스터리와 함께 병원 내부의 알력과 의사 개인의 문제 등도 같이 다루면서 조금은 입체적인 병원의 모습을 보여준다. 다음 이야기에서는 또 어떤 병명이 나오고, 바쿠야의 출신을 둘러싼 미스터리가 조금은 풀릴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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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나 읽을걸 - 고전 속에 박제된 그녀들과 너무나 주관적인 수다를 떠는 시간
유즈키 아사코 지음, 박제이 옮김 / 21세기북스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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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의 일본과 서양 고전 소설 독서 에세이다. 목록을 보면 읽은 책도 보이지만 읽지 않은 책이 더 많다. 서양 고전들은 모두 번역되어 나왔다. 일본 고전으로 넘어가면 실제 한국에 번역되어 나온 책이 오히려 드물다. 잘 찾아보면 인터넷 검색에 걸리지 않은 작품도 있을 테지만 이런 작품을 찾아서 읽기는 결코 쉽지 않다.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한 에세이가 끝날 때 번역된 작품의 역자와 출판사 이름이 같이 나오기 때문이다. 이때 나오는 기록들 대부분은 2000년대 번역 출간된 작품이다. 하나의 원작이 다양한 번역자에 의해 번역된 것은 좋은데 어떤 출판사를 선택해야 하는가는 개인의 선호에 따라 나뉠 것이다.

 

작품들은 네 나라로 나누어져 있다. 프랑스, 일본, 영국, 미국 소설들이다. 프랑스 소설들 중에 읽은 작품은 그렇게 많지 않다. 아니 어렸을 때 읽은 작품이 대부분이라 그 재미를 몰랐다. 에밀 졸라의 작품을 몇 년 전에 읽고 감탄한 것을 생각하면 다시 읽고 싶은 작품들이다.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보바리 부인>은 읽은 듯한데 수많은 사람들이 감탄한 재미보다 지루했다는 기억이 더 강하다. 몇 년 전 영화로 나와 관심을 둔 쇼데를로 드 라클로의 <위험한 관계>는 편지 소설이란 점에 놀랐던 기억이 있다. 영화는 한국과 미국 버전 둘 다 봤지만 소설은 아직 시작도 못했다. 고전의 힘을 가끔 느끼기에 이 목록의 몇 권은 언젠가 도전할 예정이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일본 고전은 잘 모른다. 최근에 번역된 <악녀에 대하여>는 관심만 두고 있었는데 작가의 엄청난 평을 보고 꼭 봐야할 작품으로 바뀌었다. 네 나라 중 가장 많은 작품을 다루는데 아쉽게도 가장 본 책이 없고, 낯선 작가들 이름이다. 어쩌면 예전에 나온 책들 중 한두 권 정도는 어딘가에 있을지 모르지만 가능성은 낮다. 그 유명한 미우라 아야코의 <빙점>은 읽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는데 이 글을 읽으면서 관심이 생겼다. 각 에세이의 제목을 보면 여자란 단어들이 유난히 많이 들어가 있다. 작가가 관심을 두고 있는 부분을 가장 잘 나타내주는 대목이 아닐까 생각한다. 엔치 후미코의 <온나자카>의 내용을 보면서 남편보다 하루 더 오래 살려는 마음을 오해했음을 깨닫는다.

 

영국 문학은 생각보다 많이 읽었다고 생각하고 읽은 책을 세었는데 4권 밖에 되지 않는다. 너무 낯익은 제목과 영화로 본 것 때문에 일어난 착각이다. 읽으면서 영화의 이미지와 조금 다르게 풀어낸 작품이 가즈오 이시구로의 <남아 있는 나날>이었다. 영화를 예상보다 너무 재밌게 봤기에 그 이미지가 아직도 강하게 남아 있다. 그런데 기억과 설명이 조금 엇나가는 부분이 있다. 원작을 읽어야 할 모양이다. 헨리 제임스의 <나사의 회전>은 큰 관심을 둔 작품이 아닌데 이 글을 보고 읽고 싶어졌다. 찰스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은 두툼해서 쉽게 손이 나가지 않지만 이 작가처럼 언젠가 도전할 예정이다. 그러고 보면 디킨스의 소설 중 읽은 것이 거의 없다.

 

미국 문학도 영국 문학처럼 모두 낯익은데 실제 읽은 책은 몇 권 되지 않는다. 두툼하지만 학창시절 재밌게 읽은 허먼 멜빌의 <모비 딕>과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를 다시 보니 반갑다. <모비 딕>을 지금 읽으라고 하면 그 두께 때문에 많이 주저할 것 같다. 존 스타인벡의 소설들은 언제나 나의 취향을 저격하고 비교적 한 권 분량의 책들을 읽으면 된다. 실제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는 유명해서 한 번 읽고, 하루키 때문에 또 한 번 더 읽었지만 그 매력을 잘 모르겠다. <호밀밭의 파수꾼>처럼. 얼마 전 읽은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캐롤>은 좀 지루하게 읽었는데 내가 잘못 읽은 듯한 느낌이다. 언젠가 도전하려고 한 마거릿 미첼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번역된 마지막 문장을 원문과 비교하고 감탄한 기억이 난다. 물론 너무 두툼해 언제 도전할지 모르겠다. 작가의 친구들처럼 왜 빨리 읽지 않았는가 하고 후회할지 모르지만 실제로 이런 책이 책장에 너무 많다.

 

독서 에세이들은 작가의 일상과 결합해서 풀려나온다. 살짝 그 일상을 엿보는 재미가 있지만 다른 문화와 환경이다 보니 공감하지 못하는 부분도 많다. 많은 에피소드들 중 가족과 미국 여행을 가서 먹은 음식 이야기는 작가와 가족의 반응이 쉽게 공감되었다. <위대한 개츠비>를 패러디한 퍼펙트 휴먼 뮤직 비디오는 관심이 생긴다. 작가의 글빨과 나의 정보나 지식이 묘하게 공감하는 부분들이 생기는 대목 중 하나가 이런 일상이다. 늘 그렇듯이 이런 책을 읽으면 읽어야할 도서 목록만 늘어난다. 물론 언제나처럼 언제 읽을지는 기약 없다. 하나 덧붙이자면 서양 고전 소설에 대한 작가의 취향이 등장인물의 ‘지나침’이라고 하는데 나의 경우는 이 때문에 멈춘 경우도 많다. 이것은 한국 문학에서도 이전에 작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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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경 3미터의 카오스
가마타미와 지음, 장선정 옮김 / 비채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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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다룬 만화다. 그런데 이 이야기들은 작가의 블로그에 연재한 것들이다. 상당히 유명한 블로그라고 한다. 자기 주변에 재밌는 사람을 유난히 많이 만난 사연이 있어 이것을 간단한 이야기로 엮은 것이다. 실제 작가는 18년 동안 일기를 꾸준히 썼다. 이 기록들이 바탕이 되었으니 현장감은 충분하다. 읽다보면 ‘뭐 이런 사람들이 있나?’ 하는 놀람을 느끼기도 하지만 ‘나도 이런 비슷한 사람 만난 적이 있지’ 하고 느낀 적도 꽤 많다. 다만 나의 기억은 부정확하고, 휘발성이라 금방 사라진 것들이 대부분이지만.

 

11개 장으로 나누었는데 시간 순서와는 상관이 없다. 자신이 경험한 부분 별로 편집했다. 그 중에서 여행 편은 그곳에 가서 만나고 경험한 일을 주로 다루었다. 어린아이 편을 보면서 작가는 재밌다고 했지만 실제 아이들의 시각은 상당히 창조적이다. 현실을 보이는 그대로 표현하는데 실제 현실은 아이의 인식 너머에 있다. 대표적인 것인 펭귄이 생선을 먹는 장면이다. 일상에서 아이들을 자주 만나다 보면 이런 표현법에 상당히 놀란다. 어쩌면 굉장히 사소한 것 같은 것들을 작가는 일기에 기록했고, 이 기록들이 독자에게 즐거움을 준다.

 

솔직히 여행 편은 관심이 많이 갔지만 재미는 조금 떨어졌다. 타이완 여행 편에서 한자를 안다고 생각하고 갔다가 무슨 음식인지 몰랐다고 한 부분에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한자를 안다고 음식을 아는 것은 아니니까. 지우펀을 사진으로 보면서 최근에 바뀐 풍경이 떠올랐다. 사람들이 떠밀려 다니는 장면이다. 예전에 대만 갔을 때 이곳을 갔어야 했는데 하는 아쉬움이 이곳을 보면 늘 따라다닌다. <테르마이 로마이>를 보다가 중단했는데 이 책을 읽고 검색하니 완결되었다고 한다. 반갑다. 사실 이 만화를 보면서 온천에 대한 환상이 조금 생겼었다. 결국 가까운 온천도 가지 못했지만.

 

공감대를 가장 형성하는 장은 역시 체육관 편이다. 어딘가 노인들이 많은 곳에 가면 괜히 친한 척을 하면서 말을 붙이는 노인들이 있다. 그들의 선의는 어느 순간 반복되고, 그들이 던지는 소소한 정보는 생각보다 솔솔하다. 그들의 시선이 나에게 머물 때 약간 불편하지만 떠났을 때 아쉬움을 표현한 장면은 절로 고개를 끄덕인다. 개인적으로 가장 이상한 사람들이 나온 것은 역시 쇼핑 편이다. 일반적이지 않은 사람들인지 아니면 그 당시만 일반적이지 않은 것인지 구분이 잘 가지 않지만 놀랍고 신기하고 재밌다. 패밀리 세일에서 일어난 반전은 예상을 뛰어넘고, 그 후일담에 대한 상상은 그럴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일상 편에서도 예상을 뛰어넘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심야 케이크가게가 열린 이유를 보면서 왠지 씁쓸했지만 왠지 이해가 되는 것을 왜일까? 주정을 부리는 아저씨가 보여주는 반전 매력은 또 어떤가? 말실수를 다루는 장면들이 몇 있는데 나 자신도 이런 경우가 많다. 성희롱하는 아저씨를 볼 때 따끔하게 혼내지 못한 작가에게 작은 위로를. 핀셋으로 귀파기라니 혼자 이것이 가능한지 의문이 먼저 생긴다. 뭐 병원에 가면 실제 핀셋으로 귀지를 파주지만. 가끔 어떤 지역을 가면 왠지 알 수 없는 일이 우연히 벌어지는 경우가 있다. 길가 편은 그런 일들을 잘 보여준다. 그런데 유카타를 입을 때 팬티를 입지 않는다는 말은 사실일까? 노인의 자전거 뒤편에 숙녀 포즈를 양복을 입고 탄 이들의 정체는 또 뭘까? 이렇게 이 짧은 만화는 더 많은 상상을 하게 만든다.

 

이 만화의 그림체는 사실 나의 취향과 조금 멀다. 어릴 때는 이런 그림체가 좋았는데 이제는 너무 예쁘게 그린 것이라 왠지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떨어진다. 실제 이 만화 속 젊은이들은 모두 예쁘고 잘 생긴 반면 아저씨 아줌마 이후는 일사에 더 가까워진다. 최대한 비슷하게 그렸다고 하지만 그런 절세 미남 미녀가 주변에 많지는 않을 것이다. 어쩌면 나의 질투 탓인지도 모르겠다. 그림체가 취향에 맞지 않다고 내용마저 그런 것은 아니다. 이전에는 그림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지금은 조금 자세히 보면서 반한 작품들이 얼마나 많은가. 처음 책 제목과 간단한 내용을 보고 가족과 친구들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는 그녀가 일상에서, 여행에서 잠시 만난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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