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탕에서 생긴 일 비채×마스다 미리 컬렉션 1
마스다 미리 지음, 홍은주 옮김 / 비채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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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어떤지 모르지만 한국의 공동 목욕탕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내가 어릴 때는 일주일에 한 번은 목욕탕에서 때를 밀곤 했다. 아파트가 늘어나고, 집에서 샤워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목욕탕으로 가는 발걸음이 점점 줄었다. 이제는 찜질방을 제외하면 동네 목욕탕이 어디 있는지 잘 모르는 경우도 있다. 목욕탕의 분위기가 바뀐 것이다. 그래도 시간적 여유가 생겨 목욕탕에 가면 그 냉탕, 온탕, 사우나실이 그렇게 좋을 수 없다. 어릴 때는 그렇게 가기 싫었던 공간이었는데 나이가 들면서 추억과 휴식의 공간이 된 것이다. 이런 바뀐 느낌들이 이 에세이에서 자주 보인다.

 

목욕을 마친 후 마시는 우유나 다른 음료수는 그 어떤 맛과도 비교할 수 없다. 실제로 마신 것은 몇 번 되지 않는다. 목욕비 이상을 받아서 오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아버지와 함께 온다면 가능할지 모르지만 그런 경우는 거의 없었다. 다른 아이들이 아버지가 사준 우유 등을 마시는 것을 보고 얼마나 갈망했던가. 이런 이야기를 지금 아이들에게 하면 그냥 사먹으면 되지 하고 쉽게 말할지 모르지만 그 시절에는 그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작가도 동생과 음료수 하나로 나눠 마시지 않았는가. 어떤 때는 엄마까지 가세하여 몫이 더 줄어든 경우도 있어 더 공감한다.

 

사실 남탕의 분위기는 알아도 여탕은 모른다. 한국 여탕도 모르는데 일본 여탕은 어떻게 알겠는가. 그런데 몇몇 이야기를 읽다보면 남녀의 성별과 상관없이 공감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벌거벗고 잡답하고, 물이 좋다고 전해주고, 다른 사람들이 무심코 선 위치가 나의 눈높이이거나 하는 일 등이 대표적이다. 자주 일정한 시간에 가다 보면 한 사람이 반복적인 행동을 하는 경우도 보게 된다. 왜? 라는 의문을 달 정도의 행동도 있는데 어느 순간 나도 나만의 방식으로 반복하는 일이 생긴다. 일상의 반복이 만들어내는 작은 습관 같은 것들이다.

 

일본 욕실 문화 중에서 가장 놀라운 것은 남탕과 여탕의 경계에 자리한 좌석이다. 나이 든 할머니가 옷을 벗고 젊은 청년과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이야기나 여탕에 사람이 있는데 목욕탕 아저씨가 들어와 인사를 하는 장면은 솔직히 문화 충격이다. 작가는 이런 여유를 부러워하지만 쉽게 납득하기는 어렵다. 예전에 혼탕이 있었다고 하지만 이제는 거의 사라졌다고 하지 않는가. 뭐 북유럽의 어떤 곳에 가면 남녀가 벌거벗고 사우나실에서 땀을 뺀다고 하니 그렇게 이상하게만 볼 부분은 아닌 것 같다. 음~ 그런데 남탕의 경우에 아저씨가 없으면 아줌마가 들어오나? 만약 그런다면 남자들의 반응은 어떨까? 남자 화장실을 생각하면 별거 없을 것 같은데.

 

기본적으로 하나의 이야기가 짧게 풀려나오고, 다음 장에서 만화가 등장한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이 구성은 계속 반복된다. 실제 많은 분량이 아니다 보니 금방 읽을 수 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이 목욕탕의 감성을 최근 세대들은 잘 모를 것이다. 실제 이 책이 출간된 것도 2006년이다. 그 사이 일본 목욕탕도 어떻게 바뀌었는지 모른다. 이전 일본 만화나 영화 등을 보면 이런 옥욕탕 장면들이 꽤 나왔는데 이제는 귀해지고 있다. 집에 욕실이 들어가면서 점점 사라진다. 사라질 문화이기도 하다. 화려하거나 멋지거나 특별한 이야기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일상의 소소한 부분을 잘 관찰해 풀어낸 이야기라 공감할 부분이 많다. 아직도 존재하는 고향집 동네 목욕탕에 한 번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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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열대어 케이스릴러
김나영 지음 / 고즈넉이엔티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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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에 끌린 이유는 간단하다. 2년 만에 코마에서 깨어난 연쇄살인범의 아내란 설정 때문이다. 2년 간 잠들었는데 기억은 4년이 사라졌다. 정확하게 말하면 남편은 연쇄살인마로 추정될 뿐이다. 명확한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고, 이들 부부는 추락 사고로 혼수상태다. 프롤로그는 이들을 돌보는 간호사의 시선이다. 연쇄살인마라는 단어가 주는 공포가 서늘하게 다가올 즈음이면 시간 속에 일상으로 자리잡은 반복이 그 감각을 무디게 한다. 빠르게 진행되는 도입부가 지나면 이서린이 혼수상태에서 깨어난다. 그것도 2년 만에.

 

아내와 이혼한 형사 지성의 간단한 가정사가 등장한다. 지곡동 연쇄살인 사건의 담당 형사다. 수사 도중에 이들 부부가 추락 사고를 겪은 것이다. 3명이나 죽었고, 한태현은 용의자일 뿐이다. 형사의 활약을 쉽게 기대할 수 있는데 실제 이 소설에서 형사의 비중이 거의 없다. 형사의 끈기나 촉을 앞세운 활약도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한태현의 동생 정호가 나온다. 거짓말을 못하는 착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뭔가 있을 것 같다. 2년 동안 병실 생활로 근력이 떨어진 이서린의 간단한 재활 후 집으로 데리고 오는 인물이 그다. 그녀를 돌보기 위해 여친 희주를 데리고 온다. 그런데 이 희주란 여성이 묘한 분위기를 풍긴다.

 

작가는 여기에 한 명 더 등장시킨다. 강윤성이란 인물이다. 누군가가 SNS에 올린 글을 보고 이서린이 집에 왔다는 사실을 안다. 그의 형 준성은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고, 자해를 한다. 그리고 준성이 연쇄살인사건의 첫 피해자의 남자 친구라고 말한다. 뭐지? 이 형제의 정체가 궁금해진다. 특히 동생 윤성의 정체가. 이렇게 이 간단한 소품 속에 용의자들이 우글거리기 시작한다. 책을 읽으면서 세운 몇 가지 가능성들이 복잡하게 엮인다. 2년간 혼수상태였다가 그 앞 2년간 기억을 잊은 이서린의 기억이 얼마나 중요한 단서를 품고 있을까? 그런데 진행되면서 밝혀지는 사실들은 분명하지 않다.

 

가능성 있는 인물들의 등장은 기존 스릴러 방식으로 추리를 하던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한 인물을 깊이 파고들어 서늘함을 자아내기보다 다양한 인물의 사연에 관심을 가지게 한다. 그런데 이 사연들이 앞으로 나와 입체감을 구성하고, 다른 이야기와 유기적으로 엮이면서 실체를 가져야 하는데 왠지 뚝 끊어진 느낌이다. 이서린의 기억 상실이 만들어낸 기형적인 관계들은 또 다른 폭발력을 만들지 못한다. 많지 않은 분량 속에 다른 인물들의 비중이 너무 높다. 어떻게 보면 윤성의 존재가, 그의 실체가, 행동이 갑작스럽게 다가온다. 그 어설픔이 현실에서 가능하다고 해도 소설 속까지 그럴 필요가 있을까?

 

희주의 과거가 풀려나오고, 또 다른 비극적 사건들이 나열되는 장면들은 우리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잘 보여준다. 법이란 것이 얼마나 가진 자의 편인지, 대중의 일시적 호기심이 만들어낸 몰카의 폭력이 얼마나 무서운지. 이 악의를 사회에 퍼트린 인물이 느끼는 희열과 중독성을 깊이 있게 파헤치고 들어갔다면 또 하나의 역작이 되었겠지만 살짝 만지는 선에 머문다. 어쩌면 너무 현실적인 행동이라 긴장감이 덜한지도 모르겠다. 문자를 그대로 믿고 너무 쉽게 낯선 곳으로 갔기에. 분량을 더 늘여 더 풍성한 이야기를 담아내었다면 각 등장인물들의 이야기에 더 쉽게 빠져들고, 공감하고, 서늘함을 더 느꼈을지 모른다. 하지만 나에게 다가온 느낌은 아쉬움과 부족함이 먼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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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드 인 강남
주원규 지음 / 네오픽션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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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치동 고층아파트에서 한 남자가 잠을 이루지 못한다. 그의 이름은 김민규, 직업은 변호사다. 진짜 직업은 설계자다. 설계자들은 하나의 사건이 터지면 그것을 유야무야로 만든다. 잠들지 못하는 밤을 보내던 그에게 한 통의 전화가 온다. 선배 변호사 우진이다. 그가 나서야 하는 사건이 생긴 것이다. 장면이 바뀌면서 사설 도박장에서 도박에 몰입하는 사람이 나온다. 조재명 형사다. 끝발을 바라지만 현실은 빚만 수억 진다. 이 도박장의 뒷배는 일개 형사가 어떻게 할 수 없다. 돈을 만들지 못하면 그의 장기들이 팔려나갈 것이다. 이때 전화 한 통이 온다. 그의 정보원이 놀라운 사건 이야기를 한다. 잘만하면 빚을 모두 갚고도 남을 것 같다.

 

삼성역 사거리에 위치한 신설 카르멘 호텔의 고층 펜트하우스에서 10명의 남녀가 죽은 채 발견된다. 남자들은 상위 0.1%이고, 비밀리에 조직한 멤버쉽 회원들이다. 여자들은 콜걸들이다. 만약 이것이 언론을 통해 대중들에게 알려지면 엄청난 파문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소문도 나지 않아야 한다. 보통의 부자들이라면 조금더 쉬울 텐데 그 중 한 명이 유명 아이돌 몽키다. 이런 일에 최적화된 인물이 바로 설계자 민규다. 국내 최대 로펌에서 일하지만 그의 일은 일반 변호사들과 다르다. 바로 이런 문제거리를 매끄럽게 해결하는 것이다. 열 개의 죽음을 각각 처리하고, 법적 문제가 생기지 않게 서류를 만들고, 관련자들의 입을 막는다.

 

재명은 정의감 넘치는 형사가 아니다. 불법 도박을 하고, 정보원을 통해 얻은 정보로 돈을 번다. 이런 대형 사건을 알고 그냥 넘어갈 생각이 없다. 현장에 도착했을 때 민규를 만나고, 우진을 통해 그의 요구 사항을 들어준다. 어마어마한 사건이 어떻게 조용히 처리되는지, 어둠속으로 묻히는지 민규를 따라가다보면 잘 드러난다. 그러다 콜걸들을 통해 한 여자를 알게 된다. 바로 정혜주다. 몽키가 유난히 좋아했다는 그녀. 그녀를 찾아간 곳에서 마약에 빠져 혼음 속을 헤매는 연예인을 비롯한 사람들을 본다. 혜주를 찾지만 그녀에게는 포주가 있다. 검은 개들의 왕이라고 불리는 엄철우다. 그런데 엄철우는 공식 서류 상으로 존재하지 않는 인물이다.

 

재명에게 한 통의 전화가 온다. 몽키의 실제 아버지인 강남 부동산 재벌 민경식이다. 그는 아들의 복수를 원한다. 재명이 도박을 한 하우스의 실제 주인이 그다. 빚 탕감을 약속하고 범인을 잡으라고 한다. 그가 가진 정보를 정보원에게 던져주고, 용의자를 찾는다. 그가 바로 검은 개들의 왕인 엄철우다. 이야기는 두 사람의 시각에서 시작하여 한 인물로 이어지고, 새로운 사실이 밝혀지면서 더럽고 비열하고 추악하고 잔인한 장면과 어둠 속에서 이 사건의 설계를 의뢰했던 사람의 그림자가 조금씩 비춰진다. 그 과정 속에서 드러나는 참혹한 액션이나 공포심은 상상을 초월한다. 인간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보여주는 듯하다. 물론 그속에서도 인간의 욕망은 결코 멈추지 않는다.

 

작가는 강남이란 지역을 욕망의 용광로이자 매혹적인 장소로 설정했다. 얼마 전 오랜만에 강남 와서 좋다고 한 사람의 반응을 보면 늘 출근하는 나에게는 낯선 감정이다. 높은 고층 건물과 엄청난 집값이나 임대료는 나 같은 서민에게 해당되지 이들에게는 해당사항이 없다. 자신의 원초적인 욕망을 충족시켜줄 대상만 있다면 자신의 돈과 권력을 언제나 이용할 준비가 되어 있다. 실제 현실에서 버닝썬이나 김학의 사건으로 이런 문제의 일부가 알려지지 않았는가. 언론을 통해 알고 있는 사건들이 얼마나 단편적이고 한정적인지 알기에 결코 소설이 소설로 읽히지 않는다. 아니라고? 글쎄.

 

설계자와 형사라는 두 직업이 하나의 사건을 어떻게 접근하고 해결하는지 보여주는 과정 속에서 긴장감이 고조된다. 너무 비현실적이라 감각이 무뎌지는 순간도 있다. 이야기는 일반 스릴러에서 예상할 수 있는 방향과 다르게 흘러간다. 설계자를 고용한 사람(들)은 이 문제가 조용히 처리되길 원한다. 이 조용함을 넘어선 것은 용납할 수 없다. 하나의 죽음이 정치적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강남과 욕망을 극한으로 밀어붙였는데 어느 부분은 공감할 수 없다. 아마 내가 아는 강남과 너무 다른 모습이기 때문일 것이다. 천민자본주의란 용어가 나오는데 정말 그대로다. 돈이, 권력이 모든 것을 집어삼킨 곳이 강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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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마 탄두리
에르네스트 판 데르 크바스트 지음, 지명숙 옮김 / 비채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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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예상하지 못한 엄마가 등장한다. 어떤 부분에서는 우리의 엄마들 모습이 겹쳐보이는 부분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예상을 초월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엄마의 억척스러운 모습을 보면서 인도 엄마들은 모두 이런가 하는 착각에 빠질 때도 있다. 소설 중간에 아버지가 절대 인도 여자와 결혼하지 말라고 했을 때 고개를 끄덕인 것은 나만은 아닐 것이다. 엄마가 보여준 수많은 행동과 흥정과 구입 등은 아주 비현실적이다. 어떤 부분에서는 이런 억지가 있나 하는 의문이 생긴다. 하지만 이런 순간에도 왠지 모르게 웃게 된다. 슬며시 가슴 한 곳으로 공감할 부분이 파고들기 때문이다.

 

가방 두 개를 들고 그녀가 네덜란드에 왔다. 간호사란 직업이 그녀를 이곳에 오게 한 것이다. 이 장면을 보고 우리의 간호사들이 독일에 간 것이 떠올랐다. 이곳에서 그녀는 작가의 아버지를 만나고, 그의 청혼을 받아서 결혼하다. 그런데 이 결혼은 아버지의 예상을 완전히 벗어난다. 억척스럽고 너무나도 검소하고 쉴 새 없이 닦달하는 그녀 앞에서 너무 무력한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병리학자가 되어 집에 와 밥을 먹을 때 시체 냄새 때문에 옆구리에 팔을 붙이고 식사를 해야 하고, 집에서 필요한 논문을 읽을 수 없어 화장실에서 몰래 읽어야 한다. 그러다 들키면 논문이 갈가리 찢어진다. 화장실에 책 들고 들어갈 때마다 아내가 하는 말이 떠올라 순간 움찔했다.

 

돈 못 벌어온다고 늘 구박받는 아버지를 인도의 직업군과 비교해서 말한다. 처음에는 두 나라의 경제 수준이 얼마나 차이 나는데 하면서 말도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민 그 수준을 네덜란드로 옮기면 달라진다. 엄마 억척스러운 노력과 열정은 집을 살 때, 이사할 때 흥정으로 잘 드러난다. 지적 장애가 있는 형과 함께 다닐 때 그녀가 보여준 억지는 황당하기까지 하다. 아들이 공짜인 것은 이해하지만 동행자인 자신까지 요구하는 것은 순 억지다. 그런데 이것이 통한다. 물론 이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는 가족은 그 모든 시선을 견뎌야 한다. 이런 상황에 함께 있지 않았다고 다행이라고 말하는 작가에 동의할 수밖에 없다.

 

엄마의 출생과 첫 사랑 이야기는 그녀도 한때 여자였음을 잘 보여준다. 그녀가 엄마임을 가장 보여주는 것은 큰 아들이 장애를 안고 태어난 것이다. 아들의 장애를 치료하기 위해 그녀가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 조그마한 가능성에 얼마나 큰 희망을 걸었는지 보여줄 때 아주 잘 드러난다. 기적을 바라고 효험이 있다고 알려진 곳으로 형과 함께 간다. 물론 이때도 그녀의 흥정과 억지는 결코 줄지 않는다. 호텔에 머물 때 사환이나 기차역 경찰 등도 그녀의 황당한 요구에 굴복하고 만다. 읽으면서 과연 이런 일이 가능할까 의문이 들 정도다. 뭐 덕분에 아주 유쾌하게 읽게 되지만.

 

엄마가 할인에 약한 모습을 보여줄 때 또 움찔했다. 내가 싸다고 산 수많은 책들(헌책 포함)과 아내의 쇼핑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무료를 좋아하는 모습에 공감하고, 그 무료를 위해 감독관까지 된 그 순수한 욕망에 놀란다. 뭐 이 소설을 읽으면서 엄마의 엄청난 행동력에 놀란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캐나다에 가서도 이런 행동력은, 어떻게 보면 갑질(?)은 멈추지 않는다. 경비원을 자신의 종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모습은 인도인이었기에 가능한 것일까? 작가가 인도의 이모집에 갔을 때 본 장면들을 생각하면 약간은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단순히 엄마와 자식의 관계만 다루는 것이 아니다. 왕할머니나 삼촌 이야기도 있다. 인도에서 만난 이모들은 또 어떤가. 장애가 있는 첫째 형 이야기도 큰 재미를 준다. 이렇게 다양한 가족들이 한 장씩 차지하면서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든다. 아쉬운 점은 둘째 형 이야기가 너무 없다는 것이다. 이슬람 여성과 결혼했다는 것과 몇 가지 가족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것을 제외하면 존재감이 희미하다. 다음 작품이 나온다면 이 둘째 형의 활약(?)도 보고 싶다. 물론 엄마의 밀방망이가 휘둘러지는 모습은 당연히 기다려진다. 그리고 저자의 어머니가 명백한 허구라고 한 말에 동의한다. 사람들은 늘 자산의 참 모습을 잘 보지 못하는 경우가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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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개 장발
황선미 지음 / 이마주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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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황선미 작가의 소설을 읽었다. 이렇게 적으면 작가의 책을 많이 읽은 것 같지만 딱 한 권 읽었다. 그 유명한 <마당을 나온 암탉>이다. 그때는 이 동화가 그렇게 유명하지 않았다. 내가 읽은 후 몇 년이 지나자 아주 유명해졌고, 애니메이션까지 만들어졌다. 솔직히 그 당시 얼마나 재밌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 책을 아내에게 권해서 읽게 했더니 아주 재밌다고 했던 것만 기억난다. 아마 그때는 지금보다 더 한정된 책에 빠져있을 때라 가볍고 빠르게 휙~하고 읽었을 가능성이 높다. 뭐 지금도 가끔 그렇게 책을 읽는 날이 많지만. 하지만 황선미란 이름은 나에게 각인되었고, 이 신간에 눈길이 갔다.

 

정확하게 말하면 완전 신작은 아니다. 이미 두 차례나 나온 적이 있다. 인터넷 서점 검색을 하니 그 책들에는 그림까지 실려 있다. 재밌는 것은 같은 출판사인데 그림을 그린 이가 다르다는 점이다. 출판사가 바뀌면서 그림이 빠졌는데 어떤 이유가 있는지 조금 궁금하다. 이 소설의 화자이자 주인공인 장발이 삽살개인 것을 감안하면 어느 정도의 그림이 작품 이해에 도움이 될 것 같은데 말이다. 물론 이런 그림들이 독자들의 상상력을 제약하는 경우도 있다. 어쩌면 이전에 헌책방 순례 당시 작가의 이름을 보고 산 책들 중 한 권에 포함되어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본다.

 

시대를 정확하게 알 수 없고, 장소도 분명하지 않은 시골 마을이 무대다. 마지막 작가의 말을 보면 작가가 살았던 평택집이 무대인 것 같은데 이런 공간은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 탈바꿈하는 경우가 많다.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장발은 고물상을 하는 할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이다. 장발은 그 할아버지를 목청 씨라고 부른다. 장발은 같은 어미에게서 태어난 다른 강아지들과 달리 검은 색을 가지고 태어났다. 이런 다름이 목청 씨가 이름을 붙어줬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힘이 약하고, 다른 형제에게 치여 어미젖을 제대로 먹지 못한다. 할아버지의 도움으로 젖을 먹지만 형제들과 그렇게 친하게 지내지는 못한다.

 

이야기는 한 암컷 개가 태어나서 자라고, 강아지를 낳고, 죽을 때까지 과정을 다룬다. 이 과정 속에서 장발을 놀리는 늙은 고양이도 나오고, 장발과 애증의 관계를 유지하는 목청 씨가 있다. 장발의 일생을 통해 우린 아주 현실적인 시골개의 모습을 본다. 강아지가 태어나면 그 새끼를 팔고, 씨어미가 될 개만 남겨두는 평범한 과정이다. 물론 복날에 일어날 수 있는 장면은 이 소설 속에서는 빠져있다. 개장수가 집주인 몰래 약을 탄 고기로 던져주고 개들을 실고 달아나는 장면은 장발의 활약 덕분에 긴장감과 박진감이 넘친다. 마지막에 장발이 물고 온 신발 한 짝은 하나의 복선이 된다.

 

강아지들이 이빨이 간지러워 목청 씨 손자의 새 신발을 물어뜯는 것이나 약친 먹이를 먹고 죽는 것 등은 이전에는 그렇게 낯선 모습이 아니다. 집밖으로 나가 마을을 돌아다니고, 동네 개와 싸우고, 새끼를 밴 후 이 새끼들이 팔려나간다. 새끼들이 팔려갈 때마다 장발은 구슬프게 운다. 시골 마을에서 이 개들은 우리가 요즘 말하는 반려견이니 애완견이니 하는 것과 달리 하나의 자산이다. 태풍에 지붕이 날아갔을 때 목청 씨가 내뱉은 말에 이것이 아주 잘 드러난다. 물론 오랫동안 같이 살다보면 자산 이상의 감정이 쌓이지만 현실은 그 이상으로 넘어가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평범한 강아지 한 마리의 일생이지만 그 속에서 만나는 감정들은 그 이상이다. 가까이 다가가 그들이 사람들의 말을 알아듣고, 자신들의 삶을 받아들이고, 거칠게 저항하는 모습들은 우리의 삶과 닮아 있다. 우리 또한 운명이니 하면서 이렇게 그 상황을 받아들이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장발의 대단한 모험을 다루지도, 목청 씨와의 진한 관계를 파고들지 않지만 그 일상과 현실이 어느 순간 쌓이고 쌓여 마지막 장으로 오게 되면 눈시울을 붉히게 한다. 오래된 친구라는 단어가 이보다 더 큰 울림으로 울리는 순간이 얼마나 될까. 진한 여운이 상당히 오랫동안 계속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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