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목눈이의 사랑
이순원 지음 / 해냄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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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목눈이의 정확한 이름은 붉은머리오목눈이다. 우리가 흔히 부르는 말로는 뱁새다. 솔직히 말해 참새와 뱁새를 구분할 능력이 내게는 없다. 그냥 눈에 들어오는 새를 보면 참새, 비둘기, 까마귀, 까치, 제비 등으로 구분한다. 까마귀와 까치도 소리로나 구분이 가능하지 실물을 보면 가능할지 모르겠다. 바다로 가면 갈매기를 아는 정도다. 이 수준에서 이 우화 소설을 읽어도 전혀 문제가 없다. 작가가 보여주고 싶은 것은 새들의 생태가 아니라 뻐꾸기를 자기 자식처럼 키운 오목눈이의 모성이기 때문이다. 이 모성애는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오목눈이의 엄청난 여행으로 드러난다.

 

육분의 자리. 소설의 주인공 육분의의 어미새가 새기를 낳고 이름을 지을 때 분 하늘의 별자리다. 좋은 의도로 지은 이름이지만 발음이 꼬이면 육푼이로 들린다. 실제로 육분의란 이름보다 육분으로 더 불린다. 한 번 입에 익은 이름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하지만 엄마가 처음 의도했던 머릿속 육분의 자리와 방향성은 그대로 남아 있다. 실제 바닷가 전함에 가서 실제 육분의를 보고 오기도 한다. 어릴 때 이 작은 경험은 이후 그가 기른 뻐꾸기 아기새 앵두를 찾아갈 때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소설에서 반복해서 이야기는 속도보다 방향이란 주제와도 맞닿아 있다.

 

속도보다 방향이란 이야기가 이제는 너무 흔하다. 처음 들었을 때 ‘그렇지’하고 감탄했는데 너무 많이 나오다보니 반복으로 인해 식상해 보인다. 하지만 이 식상한 듯한 내용을 뱁새의 모성애와 함께 엮으면서 풀어낼 때 내 삶을 한 번 돌아보는 시간이 된다. 철새처럼 빠르게 멀리까지 날 수 없는 오목눈이가 아프리카 대륙까지 가기 위해서는 다른 길로 갈 수밖에 없다. 다른 길은 더 많은 시간이 걸리고, 더 많은 위험이 있고, 더 강인한 의지가 필요하다. 오랜 여행길 자체가 주는 좌절감도 문득 찾아온다. 이때 우주에 나 홀로 떨어져 있는 느낌을 준다. 이 모든 것을 이겨내어야만 가고자 하는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다. 그 여행이 길고 오랠수록 이것은 더 힘든 일이다.

 

오목눈이의 생태를 보여주는 이야기가 이어진다. 이 중에서 가장 알 수 없는 것은 바로 뻐꾸기의 알을 자기 새끼로 알고 품고 먹인다는 점이다. 육분이도 마찬가지다. 남편과 함께 더 큰 알에서 태어난 앵두가 다른 알을 밀어내고, 다른 새끼를 밀쳐도 홀린 듯이 먹이고 먹인다. 그리고 앵두는 뻐꾸기 어미새와 함께 떠난다. 이 상실감을 어떻게 말해야 할까? 세 번이나 뻐꾸기 알을 품고 키운 육분의를 멍청하다고 해야 할까? 다른 오목눈이들은 두 번째부터 알을 깨트린다고 하는데. 이런 본성과 관련된 의문을 던지면서 뱁새로 알고 키운 앵두를 찾아 먼 여행을 떠난다.

 

철학하는 오목눈이와의 대화는 긴 수명과 종의 번식이란 철학적 문제를 풀어낸다. 지구를 뒤덮고 있는 수많은 종들과 번식과 미래는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매에 대해 잘못 알려진 정보도 수정해주고, 오목눈이가 바다를 건너 날아갈 수 없다는 현실적 어려움도 보여준다, 어렵고 긴 여행이 무사히 끝난 후 앵두를 만났을 때, 앵두가 엄마라고 불렀을 때 갑자기 눈시울이 붉혀졌다. 육분이가 내뱉는 한 마디 한 마디가 기억을 건드렸기 때문이다. 앵두가 엄마를 태우고 가겠다고 했을 때 답변도 현실적이다. 비현실적인 상황에서 풀려나오는 현실적 이야기는 조용히 가슴 한곳에 자리잡는다. 다만 아쉬운 것은 속도와 방향에 대한 반복이 살짝 눈에 거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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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노란 기차
한돌 지음 / 열림원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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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려진 대중 가요의 원작자이자 가수인 한돌의 첫 에세이다. 1994년부터 2002년까지 그가 약 8년 여 간 다섯 번에 걸쳐 오갔던 백두산 여정에 대한 기록했다는 설명에 혹했다. 몇 문장을 읽은 후 마음에 들어 선택했다. 그런데 전체적인 내용은 내 예상과 조금 달랐다. 최대한 외래어를 배제한 문장들은 읽기 불편함이 없고, 가독성이 좋은 편이지만 그 속에 담긴 몇 가지 용어는 낯설었다. 특히 타래라는 단어는 오늘 작가를 검색한 후 알게 되었다. 포크를 그의 언어로 번역한 것이라고 한다. 읽을 때 찾아봤다거나 주석이 달렸다면 좋았을 텐데. 혹시 있었는데 놓쳤다면 나의 실수다.

 

1부를 읽을 때 일기처럼 기록되어 있어 전체 구성이 이렇게 흘러가겠구나 생각했다. 하지만 2부로 가면서 바뀌었다. 여러 차례 백두산을 방문한 그의 기록은 그의 원대한 욕심이 바닥에 깔려있다. 겨레를 아우르는 아리랑을 캐겠다는 욕심이다. 처음에는 원대한 포부로 시작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의 욕심이란 사실이 밝혀진다. 그가 노래를 만든 것이 아니라 산에서 캐었다고 했던 그 순수한 마음이 조금씩 욕심으로 바뀐 것이다. 그 욕심을 덜어내기 위해 40대에 국토를 종단하기도 했다. 이때 그를 돌봐준 학생의 순수함과 그의 의지는 읽는 내내 감탄을 자아내었다. 뭐 집에 돌아와 마신 시원한 맥주 한 캔에 금방 무너진 의지이기는 하지만.

 

그가 만주 벌판을 돌고, 백두산을 올라간 여정을 들여다보면 흔한 관광 일정과 다르다. 낡은 차를 타고 다른 동료와 함께 두만강을 돌던 장면은 이제는 아주 낯선, 혹은 무서운 장면이 되었다. 강 하나를 두고 인사를 건네고, 강을 건너 먹을 것을 구하던 북한 주민들의 모습이 아련하다. 어떤 중국 마을에서는 그가 찍은 사진이 문제되어 필름을 다 뺏기기도 했다. 도둑질을 했다고 총살당하고, 총알 값을 그 가족에게 청구하는 모습은 거대한 문화 차이를 겪게 만든다. 그것을 비록 이전에 어딘가에 얼핏 읽었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현재의 중국과 비교하면 작가가 여행하던 시절은 큰 차이가 있다. 중국의 발전 속도가 엄청나게 빠르기 때문이다. 내가 처음 상해를 방문했을 때와 작년에 방문했을 때는 10년도 되지 않는데 도로와 사람들의 모습에서 큰 차이가 있다. 이런 차이를 다룰 만큼의 시간 흐름이 없는 것은 조금 아쉬운 대목이다. 결코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다시 방문한 도시에서 큰 변화를 느낄 수 있었던 장면은 고개를 끄덕인다. 몇 년 전 다큐로 본 동북3성의 모습이 떠오른다. 화려하게 발달한 도시와 다른 한적함과 투박한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사실 이런 장면들은 이 에세이에서 지엽적인 것들이다.

 

자신의 능력으로 노래를 만든 것이 아니라고 하면서 요정처럼 자신 곁에 있던 타래가 떠남을 아쉬워하고 그리워하는 장면들은 소설처럼 그려진다. 타래의 시점으로 자신을 보는 장면들은 또 다른 욕심의 파편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월남한 아버지가 북에 남겨놓은 형제들을 그리워하고, 의도했던 것이 아니라고 했을 때 고개를 끄덕였다. 80년대 한국을 뒤흔든 이산가족 찾기가 떠올랐고, 이 모든 만남이 행복한 결말로 이어진 것은 아니라는 사실에 눈길이 가는 나의 못된 마음씨가 불편하다. 그가 백두산 여행에서 그 형제들을 그리워하고, 자신과 닮은 사진의 이력을 궁금해 했던 것을 생각하면 그 결과가 분명치 않아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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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 교토의 오래된 가게 이야기 - 세월을 이기고 수백 년간 사랑받는 노포의 비밀
무라야마 도시오 지음, 이자영 옮김 / 21세기북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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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교토하면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그 이미지는 만화나 영화나 소설 등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현대식 건물은 없고, 일본 전통 가옥만 가득한 풍경이다. 그 동안 읽거나 본 수많은 소설 등에서 주로 근대 이전을 다루었기에 이 이미지가 고착되었다. 여기에 유명한 사찰 등의 이미지도 이것을 더욱 굳게 만들었다. 가끔 현대물에서 교토가 나오는 경우가 있지만 이 문제 많은 머리는 아직 이 이미지를 쌓아둘 힘이 없는 모양이다. 그래서인지 이 책에 나오는 열 곳의 오래된 가게 이미지를 보았을 때 조금 낯설게 다가왔다. 어떤 부분에서는 익숙한 일본의 풍경이지만.

 

열 개의 가게. 많은 숫자가 아니다. 우리가 일본 노포라고 생각할 때 이 정도는 너무 적은 숫자다. 저자는 이 열 곳을 음식점만 다루지 않고, 목욕탕, 술도가, 게스트하우스, 카페, 도장 가게, 서점 등까지 포함한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도 조금씩 다르다. 현재까지의 가게 역사와 주인 인터뷰를 넣지만 업종 등에 따라 시작하는 방식이 다르다. 특히 도나미 츠메쇼의 경우는 혼간지가 불탄 역사를 중심으로 풀어내면서 그 집에 머문 사람들 이야기가 더 많다. 당연히 이 역사 속에서 일본 억불 정책의 한 모습을 보게 되고, 불자들의 노력도 같이 읽을 수 있다. 현재 게스트 하우스로 운영되는데 얇은 칸막이벽을 떠올리면 현대 삶의 방식과 좀 동떨어져 있는 듯한 느낌도 든다.

 

초밥과 소바를 좋아하는데 이즈우의 초밥과 혼케오와리야의 소바 맛이 궁금하다. 이즈우 초밥의 경우 문인들의 기록과 에피소드가 노포의 힘이 무엇인지 잘 보여준다. 현재 일본 스시의 원형일수도 있는 고등어 초밥과 이 맛을 지켜내려는 노력은 일본 장인 정신을 확인하는 기회다. 다른 식당에 보내 초기 훈련을 시키고, 일정 수준 이상 올라온 후 점포를 이어가는 모습은 한국도 배울 필요가 있지 않나 생각한다. 오너 가문의 일원이라고 낙하산처럼 내려와서 고속 승진하는 한국의 기업 문화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은혜 갚기라는 부분에서는 시각 차이도 분명 존재한다.

 

미국에서 사진작가로 활약하던 아줌마가 직원 300명을 거느린 소바집 주인이 되었다. 그녀의 삶을 잠시 보여주고, 이 노포를 이끌고 성장시킨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대단한 일인지 은연중에 보여준다. 전통에 따르데 새로운 메뉴 개발에 공을 들이고, 새롭게 온 주방장의 교육에 온힘을 다하고, 매일 육수의 맛을 보는 가장 기본적인 일들을 잘 보여준다. 오래 가는 식당들 이유를 간결한 설명 속에 녹여내었다. 마쓰이 주조가 보여준 모습과 어느 정도 일치하는 부분이 있어 새삼 일본의 저력을 생각하게 된다. 좋은 술과 소바에는 좋은 물이 필요한데 교토의 물맛이 좋다고 하니 언젠가 한 번 맛보고 싶다. 뭐 먹고 나면 그 깊이를 제대로 알 수 없어 실망할지 모르지만.

 

니시키유 목욕탕 내부 사진을 보고 어릴 때 다니던 동네 목욕탕이 떠올랐다. 며칠 전 읽은 마스다 미리의 <여탕에서 생긴 일>이란 목욕탕 에세이를 본 후라 그런지 눈길이 많이 갔다. 점점 줄어드는 목욕탕의 숫자를 보고 조금씩 공감한다. 노포를 살리기 위한 주인의 다양한 이벤트와 그 곳의 추억은 아련한 기억의 한자락을 들춘다. 전통 베이징요리를 만드는 토카사이칸의 주인은 화교다. 이제 일본에서 중국인의 숫자가 재일조선인의 숫자를 넘어섰다고 한다. 놀랍다. 한 중국집이 이렇게 오랫동안 유지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 음식을 맛보고 싶다. 괜히 음식 가격을 걱정해본다. 이 가게의 외관은 나의 잘못된 교코 이미지와 너무 달라 낯설게 다가온다.

 

프랑수아 찻집은 노포라고 하지만 연역이 그렇게 오래된 가게가 아니다. 토카사이칸도 마찬가지지만. 찻집의 역사보다 일본 근현대 공산주의 이야기가 솔직히 더 끌렸다. 부를 축적하는 것보다 다른 방식으로 이 부를 나눈 부분에서 이 오래된 찻집이 존경스럽다. 500년을 이어온 전설 속 사탕 가게라고 하는 미나토야 유레이코소다테아메는 이제 직접 사탕을 만들지 않는다. 다른 곳에서 만들어 와서 팔고 있는데 레시피는 그대로라고 한다. 하루에 하나도 팔지 못하는 날이 있다고 한다. 마쓰리가 있는 날이면 사탕이 동 난다고 하지만 결코 쉬운 경영이 아니다. 마루젠 서점이 문을 닫았다 새로 연 것처럼 어떤 변화가 있을지 모르겠다.

 

출판 불황일까? 전통 유통구조의 몰락일까? 마루젠 이야기를 읽다가 한국 도서 정가제가 떠올랐다. 확실히 주변을 둘러봐도 책보다 게임을 더 즐기는 사람들이 더 많다. 일부 장르의 경우는 완전히 전자책으로만 발간된다. 예전 종로서점을 기억하기에 마루젠이 문을 닫았을 때 있었던 감상들에 공감한다. 도장을 사용할 일이 거의 없다. 한국도 일본처럼 인감증명서가 필요한 경우가 있지만 사인으로 점점 대체되는 분위기다. 다마루인보텐의 도장들도 이제는 전통적인 도장과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컴퓨터로 도장을 파는 현실에서 손으로 도장을 파는 이곳이 계속 이 방식을 고수할지 궁금하다. 그나저나 다양한 칭찬 도장이나 동물 도장은 나도 하나 가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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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밍 레슨
클레어 풀러 지음, 정지현 옮김 / 잔(도서출판)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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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다 읽은 지금 결혼 생활을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방송에서 그렇게 화목해 보일 수 없던 연예인 부부가 어느 날 놀랍게도 이혼을 한다. 그들은 윈도우 부부였다. 이런 경우가 특별한 것은 아니다. 우리가 밖에서 보는 부부의 삶은 그들이 보여주길 바라는 삶일 뿐이다. 그래서 그 꺼풀을 한 겹 벗겨내면 놀라운 사실들이 드러난다. 이런 삶을 다룬 소설이나 영화가 우리 주변에는 가득하다. 이 소설도 그렇다. 유명 작가의 아내가 수영을 하러 갔다가 사라졌다. 시체가 발견되지 않았지만 죽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렇게 12년이란 시간이 흐른 후 남편이 죽은 아내를 보면서 이야기가 시작한다.

 

길 콜먼이 서점 2층에서 죽은 아내를 보고 따라가다 다친다. 이 사고 때문에 딸 낸과 플로라가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아버지를 돌보기 위해서다. 현재 시간 속에 콜먼 가족들의 삶이 펼쳐진다면 다른 한 편에서는 죽은 잉그리드가 새벽에 쓴 편지가 하나씩 드러난다. 번갈아가면서 등장하는 이야기 속에서 이 편지에는 숨겨진 가족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길과 잉그리드의 만남과 연애, 임신, 결혼, 출산, 육아, 유산 등으로 이어진다. 행복할 것 같아 보였던 가족의 이면이 드러날 때 하나의 물음이 생긴다. 왜 이혼하지 않았을까? 이것은 다시 이혼해도 이상할 것 없는 부부들의 삶으로 생각이 이어진다.

 

플로라는 아버지 길을 좋아한다. 그녀는 자신이 길 콜먼의 딸이란 사실을 숨기고 남자들을 만난다. 서점 직원들이라면 더욱. 언니의 전화를 받았을 때도 서점 직원 리처드란 남자와 육체적 관계에 빠져 있었다. 그는 그녀의 성을 알기에 아버지 이름이 알려졌을 때 그 유명한 작가의 딸이란 사실을 바로 안다. 이 소설의 한 축은 바로 플로라가 옛집 스위밍 파빌리온에서 병든 아버지를 만나고, 기억을 더듬고, 현실의 모습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이 추억은 엄마가 남긴 편지와 너무나도 다른 현실 인식을 보여준다. 이 추억이 잉그리드가 남긴 편지의 무게를 더욱 무겁게 만든다.

 

교수와 학생 사이에 존재하는 윤리의 벽은 이 둘의 결합을 결코 축복해주지 않는다. 교수였던 길은 잘리고, 잉그리드는 불과 몇 주를 남긴 채 학위를 받지 못한다. 학교에 나쁜 소문이 나는 걸 막으려는 의도 때문이다. 길이 베스트셀러 작가였다면 생활에 문제가 없겠지만 현실은 장편 두 편을 낸 작가일 뿐이다. 그렇다고 강한 생활력을 가졌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만약 임신이 아니라면 결혼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길은 여섯 아이를 가지고 싶다고 말하지만 잉그리드는 임신 전에는 여성의 자립과 세계 여행을 꿈꾸었다. 출산과 육아는 이 꿈을 산산조각 내었다. 길은 단편을 팔면 그 돈으로 여행을 하고, 현실의 만족을 위해 살아간다. 단지 그것뿐이라면 문제가 덜하겠지만 집으로 여자를 불러 섹스를 탐닉한다. 외국 여행지에서 임신한 아내를 둔 채 다른 여자를 만난다.

 

잉그리드가 편지 끝에 남편 길이 어디 있는지 물었을 때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다. 작가란 핑계로 서재에 틀어박혀도, 런던으로 떠나 있어도 글쓰기 위한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드러난 진실은 다른 것이었다. 이 모든 것을 참으면서 살 가치가 있는 것일까? 1980년대 영국이 그 정도의 나라였을까? 의문이 생긴다. 그러다 또 아이가 생기고, 유산을 하고, 결국에는 낙태까지 한다. 그녀가 딸들을 볼 때 충만한 사랑을 담고 있지는 않다. 자신의 최소한 역할을 할 뿐이다. 아마 사회에서 만든 모성애와 의무감이 더 큰 동력이었을 것이다. 이혼이 해결책인 것처럼 먼저 떠오르지만 실제는 이 또한 많은 시선과 문제를 안고 있다.

 

플로라가 생각한 부모님의 모습은 현실과 다르다. 이것을 알려주는 역할을 언니 낸이 한다. 아버지가 어떤 생활을 했는지 말해줄 때 믿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녀가 엄마의 모습을 발견하고 달려갈 때, 아빠가 엄마의 환상을 이야기할 때 이것이 현실인지, 환상인지 혼란스러워진다. 아빠가 리처드에게 자신이 산 모든 헌책을 태워달라고 한 것에 불만을 토로할 때 그 책들 속에 숨겨진 편지들이 생각났다. 길은 자신이 헌책에서 발견한 메모나 낙서들처럼 아내의 편지가 발견되길 바라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의 책이 온전히 자신의 생각으로 쓴 것이 아니란 사실이 알려지길 두려워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소설은 의문과 추측과 여운으로 가득하다. 물론 명확한 사실들이 그 바탕에 깔려있다. 에필로그 장면은 이런 의혹을 더 부채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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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레스트 검프
윈스턴 그룸 지음, 정영목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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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에 영화로 만들어졌다. 그 당시 영화를 본 사람들은 아마 대부분 원작이 있다는 사실을 몰랐을 것이다. 나도 그런 사람 중 한 명이다. 영화의 성공은 원작 소설의 번역 출간으로 이어지는데 실제 이 소설도 그랬다. 지금 검색하면 그 당시 번역본 정보가 없는데 역자 후기를 보면 재출간된 정보가 나온다. 좋은 작품이 다시 나와서 좋은데 이 작품이 다시 출간될 이슈가 있는지는 솔직히 모르겠다. <창문을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의 엄청난 성공이 이런 종류의 소설을 발굴하고, 출간한 것 정도만 예상할 수 있다. 덕분에 영화의 이미지가 퇴색한 것과 맞물려 원작을 좀더 잘 즐길 수 있었다.

 

사실 포레스트 검프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면은 검프가 오랫동안 달리는 장면이다. 이 책의 표지가 영화의 이미지에서 빌린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원작을 읽으면서 퇴색한 기억 속에서 꾸준히 떠오른 것은 역시 달리기였다. 그의 달리기에 의미를 부여한 수많은 사람들과 언론들이 먼저 떠오른다. 하지만 이 원작 소설에서는 그런 장면이 없다. 백치로 불리지만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서 그는 버스 등을 타고 움직인다. 원작 그대로 만들 이유는 없지만 모두 읽은 지금은 조금 아쉽다. 너무 강렬한 이미지로 남아 있었기에 당연히 원작에도 있을 것이란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원작과 영화가 맞지 않는 부분을 찾는 것은 사실 의미가 없다. 기억이 퇴색한 현재 나에게는 불가능한 일이다. 다시 영화를 보고 하나씩 되짚어보면 재미는 있을지 모르지만 어느 순간 이 둘은 분리된다. 아마 영화를 다시 보면 원작의 내용을 내가 제대로 떠올리지 못할지도 모른다. 나의 저질 기억력을 생각하면 이것은 확실하다. 확실한 것은 원작보다 영화가 훨씬 극적으로 만들어졌고, 현실적인 부분을 많이 삭제했다는 것이다. 원작과 다른 마무리란 점도. 어떤 부분에서는 영화가 너무 순화하면서 원작의 독특한 맛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드는 장면도 있다. 아마 이것은 개인의 취향 탓일 것이다.

 

포레스트 검프의 키는 198센티미터이고, 몸무게는 110킬로그램이다. 이런 몸을 보고 미식 축구부 코치가 그냥 넘어갈 이유가 없다. 그런데 문제는 포레스트가 작전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매우 빠른 발을 가지고 있는 장점을 충분히 살리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다. 백치이다 보니 학업 성적이 좋지 않다. 그래서 대학 진학에 문제가 있다. 하지만 그의 재능을 눈여겨 본 코치가 그를 그의 팀에 넣는다. 큰 덩치와 빠른 발은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만 우승으로까지 이끌지는 못한다. 낮은 학업 성적은 그를 대학에서 떠나게 만든다. 비록 수학에서 아주 좋은 성적을 얻었다고 해도.

 

백치라 징병되지 않았던 그가 군대에 가고, 월남전에 참여하고, 군 탁구대회 우승으로 중국까지 간다. 그곳에서 마오 주석의 목숨을 구하는데 이때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 재밌다. 우주선을 타고 지구 밖으로 나가는 과정도 황당하지만 추락한 이후 그가 경험한 아프리카 생활은 더 황당하다. 작가의 시각이 너무 편협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다시 돌아온 미국에서 그가 바라는 것은 하나다. 그 필생의 여인인 제니를 만나는 것이다. 사실 그의 삶에서 제니는 여성의 원형이자 이상향이다. 많은 남자에게 실망한 제니가 포레스트의 연인이 되었지만 마약과 그를 탐하는 여자 때문에 헤어진다. 이것은 다시 재회했을 때 또 다른 탐욕 때문에 문제가 생긴다. 백치라고 말하는 그는 순수하지만 주변 사람들의 욕망과 욕심이 그를 뒤흔든 것이다.

 

포레스트의 삶은 바르다. 하지만 그의 주변은 현실의 욕망으로 휘몰아친다. 그의 이름이 높아지면 그를 이용하려는 사람들만 있다. 미식 축구부도, 베트남 전쟁도, 아프리카 귀환도, 레슬링도, 성공한 사업도 마찬가지다. 성공한 후 그가 아는 사람들을 불러 모아 그들에게 일자리를 주는 모습은 순수함으로 가득하다. 백치라고 무시한 사람들이 보여준 행동을 생각하면 더 대단하다. 좌충우돌하고, 황당한 사건들로 가득하지만 그 가운데 우뚝 선 포레스트 검프는 읽는 내내 나를 돌아보고 부러움을 느끼게 한다. 내가 가지지 못한 능력과 순수함을 가지고 있고, 엄청난 모험을 했기 때문이다. 원작을 다 읽은 지금 영화가 다시 보고 싶고, 영화와 다른 이미지가 머릿속에 강하게 자리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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