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인트 (반양장) - 제12회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창비청소년문학 89
이희영 지음 / 창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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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이 부모를 선택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고 했을 때 가장 먼저 SF소설이 떠올랐다. 국가에서 아이를 인공수정으로 태어나게 하고, 어느 정도 키운 후 부모를 선택하는 설정을 예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국가에서 설립한 NC센터에서 성장한 소년들은 부모에게 버림받은 아이들이다. 그렇지만 성장한 후 이 소년들이 자신의 부모가 될 사람을 인터뷰해서 선택한다. 이 선택에 문제가 있으면 다시 NC센터로 돌아올 수 있다. 흔히 알고 있는 고아원의 입양과는 시작부터 다르다. 놀라운 발상의 전환이자 가족의 의미를 다시 묻는다.

 

NC센터의 아이들은 태어난 달과 숫자 조합으로 이름이 붙는다. 이 소설의 주인공 제누 301은 1월 출생에 301번째란 의미다. 이렇게 이름이 지어진 아이들은 자신이 선택한 부모와 살 때 자신이 이름을 짓는다. 이름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전통적인 방식의 작명 방식과 다르다. 처음 부모가 키우기 원치 않았던 아이들을 받아들이면서 생긴 윤리문제는 출생률 감소라는 현실 앞에 힘을 잃고, 버려진 아이들을 돌보는 것은 국가란 인식이 늘었다. 이로 인한 이념적 충돌은 더 심해지고, 각자의 의견 대립은 팽팽해졌다. NC센터 출신이 벌인 사건으로 부정적 시각이 커졌지만 국가는 이곳 출신이란 자료를 지우면서 현실에 대처한다. 놀랍고 신선한 시각을 가진 설정을 간결하지만 밀도 있게 이야기 속에 녹여내었다.

 

소설의 제목 <페인트>는 부모 면접(parent’s interview)을 뜻하는 아이들의 은어다. 제누 301은 자신을 입양하려는 부모를 만난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들이 바라는 것은 아이를 입양한 후 얻게 될 경제적 이익이 목적이다. 센터장이 제누로 하여금 페인트하게 한 것도 이런 부모의 의도를 염두에 둔 것이다. 센터에 근무하는 직원들은 가드로 불린다. 이름은 알 수 없고 성만 알려준다. 센터장도 박이라고 부른다. 박은 센터 아이들을 아주 열정적으로 돌본다. 최라고 부리는 가디도 있다. 나중에 드러나는 사실에 의하면 이 둘은 학교 선후배 사이다. NC센터도 국가지원단체이다 보니 실적 압박에 시달린다. 하지만 박은 이 압박보다 아이들이 우선이다.

 

센터장 박이 제누에게 한 번 더 페인트를 요청한다. 그들의 요청 화면을 보면 진솔하지만 부모가 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그런데 이 솔직함이 제누의 마음을 움직인다. 제누와 함께 사는 아키는 노부부와 페인트를 한다. 이 노부부는 국가 지원이 필요한 것도, 자식이 없는 것도 아니다. 이들에게는 자신의 노년을 함께 할 아들이 필요하다. 서로의 필요가 맞아떨어진 것이다. 반면 제누가 만난 부부는 NC센터에 대한 호기심이 더 강했다. 이 부부의 삶 속에 기억된 부모의 모습이 아이를 갖지 못하게 만들었다. 이 경험과 기억이 이 부부의 것만은 아니다. 센터장 박도 마찬가지다. 그 또한 아버지에 대한 아프고 나쁜 기억을 가지고 있다.

 

많지 않은 분량이지만 놀라운 설정과 함께 가족의 의미를 계속 묻는다. 어쩔 수 없이 태어나 가족이란 구성원으로 자란 사람들과 서로의 선택에 의해 가족을 이루는 것과의 차이를 고민하게 만든다. 센터의 아이들이 밖에서 본 다른 아이들의 모습도 자신들이 선택한 부모와의 관계보다 특별하지 않다. 가족이 꼭 혈연으로 묶일 필요도 없다. 아직 이 시대도 인식의 전환이 많이 필요하다. 마지막에 제누의 결심을 보고, 후속편이 나와 좀더 현실적인 문제를 파고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좀더 정치적인 이야기가 나오겠지만 긍정적 변화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다. 이 작품의 설정과 전개를 생각하면 SF소설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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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하늘 위에서 언제까지나 너를 기다리고 있어 - Novel Engine POP
코가라시 와온 지음, 나나카와 그림, 이지연 옮김 / 데이즈엔터(주)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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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회 전격소설대상 대상 수상작이다. 사실 이 상이 어떤 의미인지 잘 모른다. 가끔 읽는 라노벨 정도란 것만 알뿐이다. 무거운 책들을 읽다가 이런 라노벨을 읽으면 아주 진도가 잘 나간다. 머리를 식히고, 감성적이거나 조금 황당한 이야기를 읽고 싶을 때 좋은 선택이다. 그래서 한때는 쾌 많은 라노벨을 사놓은 적도 있다. 당연히 모두 읽지는 못했다. 그런데 최근 나오는 몇 권들은 짬짬이 읽는다. 읽으면서 독특한 정보를 다루고 있어 놀란 작품도 상당히 있다. 이 작품은 해당하지 않는다.

 

여름이 되면 가을과 겨울이 그립다. 여름은 최악이라고 외치는 미스즈는 반 친구 아즈마야가 숲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호기심에 따라 들어간다. 큰 공터에 잡동사니들이 산처럼 쌓여있다. 이 잡동사니 더미에서 아즈마야가 무언가를 찾는다. 그에게 말을 걸자 놀라 넘어진다. 이때만 해도 아즈마야의 이름조차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다. 그는 이 잡동사니로 우주비행선을 만들려고 한다. 어린 시절 자신이 만난 우주인의 기억이 그를 우주로 향하게 했다. 뭔가 이상하다. 허술하다. 우주인이 우주복을 입고, 일본어를 말한다고. 아주 발달한 외계인의 과학기술과도 맞지 않다. 하지만 이것은 아주 중요한 접촉이다.

 

아즈마야 토모히로. 이것이 이름 전체다. 미스즈는 잡동사니 더미의 기억 때문에 아즈마야를 학교에서 유심히 쳐다본다. 친구 코코아가 보기에는 누군가를 죽일 듯한 눈빛이다. 왠지 모르게 이 말도 되지 않는 계획이 불만이다. 잡동사니 숲으로 찾아가 아즈마야와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평범한 학교생활과 함께 그녀의 시선을 아즈마야를 향한다. 자신보다 덩치가 작은 아즈마야다. 어느 비오는 날 비를 맞고 작업할 그가 걱정되어 친구들과의 갑자기 헤어져 수건 등을 들고 그곳으로 간다. 수건을 건내고 대화를 나누는데 그가 쓰러진다. 응급차를 부른다. 다행히 몸에는 이상이 없지만 잡동사니 더미는 사라진다. 아즈마야의 체념은 어느새 긍정으로 바뀌어 있다.

 

10대 청춘들의 풋풋한 이야기가 가득하다. 아즈마야를 위해 학교 축제의 대상을 바꾸고, 친구들을 설득한다. 비뚤어진 자신의 시선을 돌아보는 시간이 되고, 청춘의 열정은 아즈마야의 관리 아래 멋진 작품을 만든다. 현실에서 가능할 것 같지 않지만 뭐 어떤가. 이런 열정은 보는 즐거움으로 가득하지 않는가. 평범한 듯한 이야기에, 자신의 관심에 대해, 뒤틀린 생각 속에 숨겨진 감정이 하나의 사실 때문에 폭발한다. 책 소개 글의 화려한 광고 문구는 마지막 이야기 속에서 만화처럼 펼쳐진다. 작은 비현실이 큰 도약을 통해 아름다운 결말을 만든다. 감동의 눈물까지는 아니더라도 살짝 눈시울이 붉혀지려고 한 것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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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랑을 배회하는 양떼와 그 포식자들
임성순 지음 / 은행나무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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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학상 수상작 <컨설턴트> 이후 처음으로 이 작가의 작품을 읽었다. 한국 문학을 많이 읽지 않다 보니 예전에 재밌게 읽었던 작가의 작품들을 놓치는 경우가 많다. 이때 나의 뇌세포는 가끔 오랜만에 책을 내었다는 착각을 한다. 이 작품을 읽기 전에도 그랬다. 인터넷 서점을 검색하니 낯익은 표지와 제목들이 눈에 들어온다. 이런 제목과 표지들이 작가의 이름과 연결되지 않고 단순한 이미지로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많은 책 정보를 볼 때면 더 심해진다. 하지만 이 단편집을 읽은 지금 작가의 이름은 머릿속에 강하게 각인되었다.

 

모두 여섯 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다양한 장르를 담고 있다. 작가의 말을 보면 간단한 작품 해설을 달아 놓았는데 단편만큼 재밌다. 여기에 소설집의 콘셉트가 나온다. “니가 뭘 좋아하는지 몰라서 닥치는 대로 준비했어.”라고 한다. 기본적으로 아이돌 그룹 구성 원리와 동일하다고 하는데 이 단편집을 다 읽은 지금 동의한다. 여섯 편이 모두 장르가 다르고, 개성 넘치고, 유머 있고, 기묘하고, 재밌다. 어떤 작품은 장편으로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작가의 말을 읽고 포기했다. 그의 의견에 동의하기 때문이다.

 

첫 작품 <몰:mall:沒>은 마지막 문장을 읽고 세월호가 떠올랐다. “망각했으므로 세월이 가도 무엇 하나 구하지 못했구나.”란 문장이다. 실제 작가의 말을 보면 세월호 관련 단편이다. 하지만 이 단편에서 다루고 있는 비극은 삼풍백화점 참사다. 아직도 기억한다. 2년 연속으로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이 붕괴했다. 우리의 망각이 만들어낸 비극이 세월호임을 작가의 이 간결한 문장 속에 녹여내었다. 1995년 6월의 참사에 이르기까지 과정을 군제대한 복학생의 일상으로 담담히 진행한다. 상상력은 나쁜 쪽으로 발전한다. 그리고 현장의 쓰레기와 함께 옮겨진 사체들로 이어진다. 서늘하고 가슴이 아프다.

 

<회랑을 배회하는 양떼와 그 포식자들>은 삼성가의 비자금과 맞물려 있다. 그 당시까지 세금의 사각지대에 있던 미술품이 언론의 조명을 받으면서 한동안 시장이 경직되었다. 작가는 이 시기에 몰락한 화상을 통해 그 당시 미술시장 현실을 보여준다. 설계된 전시와 비자금 조성을 위한 미술품 거래가 어떤 의미인지, 지금 거액으로 거래되는 미술거래의 이면에 또 의미가 있는지도. 후반부 전시회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기괴하고 역설적이다. 서서히 잠식하는 공포를 단숨에 바꾸는 단어 라이선스의 등장은 놀랍다. 이로써 전시회 <회랑을 배회하는 양떼와 그 포식자들> 서울전으로 이어진다.

 

<계절의 끝>은 장편 개작을 기대했던 작품이다. 인류의 종말을 다룬 간결한 작품인데 머릿속에 온갖 작품들이 오간다. 공룡 등이 멸종한 것처럼 인류도 멸종할 수 있다는 조건에서 시작해 황량한 현실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편지라는 아날로그 감성으로 이야기를 풀어가지만 이것이 인류의 멸종을 더 부각시킨다. 높은 건물에 올라 석양을 바라볼 때 본 풍경과 지하철의 많은 물들은 왠지 어울리지 않는다. 삶의 욕구가 만들어낸 식욕은 어린 생쥐를 날것으로 씹을 정도다. 다른 생존자들이 보이지 않고, 교류가 없는 것은 조금 아쉽다.

 

<사장님이 악마예요>는 오컬트 블랙코미디다. 젊은 부부가 아이를 가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이보다 잘 보여줄 수 있는 작품이 얼마나 될까? 실제 악마가 등장해서 현실의 삶을 설명해줄 때 절로 고개를 끄덕인다. 예전에 내가 농담처럼 했던 말들이 이 소설 속에서는 현실로 등장한다. 아이를 가지기 위해, 육아휴직을 사용하기 위해 직장인들이 얼마나 많은 고민과 걱정을 하는지도. 죄 지은 자가 많아 지옥의 과포화가 문제라는 악마의 걱정과 고민이 출산 반대로 이어질 때 이 역설이 재밌다. 지옥행을 막기 위해 착한 일을 해야 한다는 이 역설도 마찬가지다.

 

<불용>은 다양하게 읽을 수 있다. 관보다 작은 공간에서 열쇠를 깎고, 큰 책을 펼칠 수 없어 시집을 접어 읽는 그의 모습은 아주 비현실적이다. 뚫은 가슴에 열쇠를 꽂아 기억을 여는 모습은 아련하다. 자전적인 이야기가 담겨 있을 듯한데 잘 모르겠다. <인류 낚시 통신>은 <은어 낚시 통신>의 패러디다. 원작을 읽었는지는 지금 기억나지 않는다. 한때 윤대녕의 소설을 좋아해 열심히 읽은 적이 있기에 읽은 듯하지만 자신할 수 없다. 인터넷에서 자극적인 제목으로 낚시질 하던 그가 한 통의 초대장으로 과거를 떠올리는 장면은 현재 한국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준다. 비밀결사처럼 모여 그들이 내뱉는 말 속에서 정치와 경제 등의 기득권층이 가진 생각을 엿볼 수 있다. 암울한 내용이지만 재밌다. 다시 <은어 낚시 통신>을 읽고 이 단편을 떠올리면 어떤 느낌일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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깃털 도둑 - 아름다움과 집착, 그리고 세기의 자연사 도둑
커크 월리스 존슨 지음, 박선영 옮김 / 흐름출판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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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질이 만들어낸 도둑 이야기다. 세상에는 수많은 분야의 덕질이 있다. 그 중 하나가 플라이 타잉이다. 원래는 강에서 송어를 잡기 위해 인조 미끼를 제작하는 것인데 조지 켈슨의 <연어플라이>가 나온 후 이것이 하나의 예술 장르처럼 바뀌었다. 플라이 타잉을 멋지게 만드는 것 자체는 문제가 없다. 그런데 이 플라이 타잉을 위해 사용하는 재료가 문제다. 일반적인 새의 깃털 등을 염색해서 사용한다면 누가 시비를 걸 것인가. 하지만 몇 명의 플라이 타잉 기술자들은 희귀종이나 보호해야 하는 새들의 깃털을 재료로 사용한다. 당연히 불법이다.

 

명백한 불법이지만 이것을 피할 방법은 존재한다. 19세기에 유행했던 깃털 모자 등에서 뽑은 깃털을 사용하는 것이다. 모자와 박제된 새에게서 뽑아낸 깃털은 새의 종류와 상태에 따라 금액이 정해진다. 박제된 새 한 마리 가격이 몇 천 불이나 한다고 했을 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덕후의 세계에서 금액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덕질이다. 물론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자금이 필요하다. 이 책을 쓰게 만든 에드윈 리스트도 재료를 사기 위해 어린 시절 아르바이트를 했다. 하지만 집안의 사정이 나빠지고 나쁜 덕질의 세계에 매혹되면서 깃털을 훔칠 계획을 짠다. 그 대상은 영국 트링 자연사박물관이다.

 

작가는 이 이야기를 송어 낚시를 하면서 처음 들었다. 2009년 영국 자연사박물관에서 새가죽 299점을 훔치고 500여 일이 지난 후 범인이 잡힌 사건이다. 범인은 열아홉 살 플루트 연주자 에드윈 리스트다. 한때 그는 플라이 타잉의 미래라고 불릴 정도로 뛰어난 기술을 보여주었다. 이 뛰어난 기술은 더 좋은 재료에 대한 욕망을 불러왔다. 자연사박물관에 박제된 새들이 있다는 정보를 얻고, 그곳을 방문한 후 이 새들을 훔칠 계획을 짠다. 실행 당시 모습을 재현한 장면을 보면 허술하기 그지없다. 과학 발전과 연구에 중요한 새가죽 299점은 그렇게 초보 도둑에게 털렸다. 그는 이것을 인터넷을 통해 판매하고, 자신이 원하는 플루트를 사고, 생활비로 쓰고, 플라이 타잉 재료로 사용했다.

 

책의 구성은 상당히 재밌다.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자연사발물관이 짓기까지가 하나고, 다른 하나는 이 이야기를 쓰게 만든 에드윈 리스트의 삶에 대한 기술이다. 마지막 하나는 이 소식을 들은 작가가 사라진 새가죽을 쫓는 과정이다. 첫 이야기가 모험물에 가깝다면 두 번째 이야기는 조금 허술한 범죄 이야기다. 마지막 이야기는 추적물이다. 약간 장르 복합적으로 펼쳐지지만 실제 내용은 트링 자연사박물관의 새가죽 도난을 둘러싼 댜큐멘터리다. 단순히 두 번째 이야기까지만 쓴다면 흥미로운 도둑 이야기에서 그쳤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가 더 깊은 곳으로 파고들면서 단순한 도둑질이 아님이 드러난다.

 

무분별한 깃털 사용을 처음으로 막을 때 깃털 관련 업계는 ‘깃털 사업을 막는 법안을 만들면 일자리가 사라지고 순식간에 경제 위기가 초래될 것이라고 의원들에게 경고’ 했다. 이 문장을 읽으면서 많은 경제 단체들이 현재도 똑같이 말하고 있는 것을 깨닫는다. 이것은 플라이 타잉 전문가들 중 일부가 염색한 깃털을 사용한 것과 실제 새들의 깃털을 사용하는 것의 차이를 강조한다. 이것은 보통 사람들에게는 별 의미가 없지만 덕후들에겐 다르게 다가간다. 현실에서 이와 비슷한 일들은 너무 많다. 초판본과 희귀본에 대한 책 수집가부터 그림, 벌레까지 다양하다 . 아니 내가 모르는 분야까지 합치면 셀 수조차 없다. 그리고 법의 경계를 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핑계를 만든다.

 

이 책에서 표본으로 가지고 있는 깃털의 중요성을 과학적으로 설명한다. 과학의 발전이 이 깃털에서 얼마나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는지 말한다. 이것을 무시하는 사람들은 그냥 보관만 하고, 제대로 관리도 되지 않고, 과학적으로 소용도 없다고 말한다. 틀린 말이다. 이 에세이의 가치 중 하나는 잘못된 정보를 바로 잡고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불법거래를 이베이나 플라이 타잉 사이트 등에서 알면서도 묵인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한 것이다. 처음 극락조 등을 구해 영국으로 온 앨프리드 러셀 월리스나 박물관을 만든 월터 로스차이들 같은 인물의 이야기를 처음에 배치한 것도 이런 사실을 명확하게 부각시키기 위해서다.

 

이 책은 생각보다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플라이 타잉 전문가의 단순한 도둑질이 아니라 인간의 탐욕이 어떤 일까지 벌일 수 있는지 보여준다. 아름다움에 대한 집착이 현실을 어떻게 왜곡하는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이익단체는 어떻게 움직이는지, 우리가 볼 때 평범한 도둑질이 다른 분야에서는 얼마나 큰 피해를 끼치는지,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은 새가죽의 진실은 어떻게 숨겨지고 있는지 등 다양하다. 사진으로 본 몇 개의 플라이 타잉 작품은 책으로 본 것보다 매력적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 매혹적인 것은 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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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의 돼지의 낙타
엄우흠 지음 / 자음과모음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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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첫 작품인 <감색 운동화 한 켤레>가 낯익어 선택했다. 아마 비슷한 제목의 다른 소설과 헷갈렸을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나의 부정확한 기억력은 언제부터인가 제목만 가지고는 읽었는지를 알 수 없게 만들었다. 아마 오랜 시간이 지나면 이 소설도 그렇게 될지 모르겠다. 읽을 때는 몰랐는데 2011년 겨울부터 계간지 <문예중앙>에 이 소설의 전반부를 연재했다고 한다. 이 소설의 4장까지가 아닐까 추측해본다. 그 후 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완성작으로 출간되었다. 연재 당시 제목은 <올드 타운>이었다. 개인적으로 올드 타운이란 제목보다 현재의 제목이 더 시선을 끈다.

 

소설은 크게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눌 수 있다. 전반부는 경수네 가족이 무동에 들어가게 된 이유와 그 속에서 살면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여준다. 후반부는 이제 다 자란 경수와 친구들의 삶이 나오고, 전반부에 깔아둔 설정 등이 하나씩 튀어나와 의혹 등을 풀어준다. 무심코 본 장면들이 뒤에 밝혀지는 사실로 인해 고개를 끄덕이게 되고, 황당한 이야기들은 더 황당한 이야기로 이어지면서 결코 재미와 유쾌함을 잃지 않는다. 꽤 두툼한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빠르게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캐릭터와 이야기는 하나의 세계 속에서 잘 엮여 있다.

 

중산층 자영업자의 몰락이 비닐하우스촌인 무동으로 경수네 가족을 이끌었다. 마지막 사기에는 경찰이었던 경력도 소용없다. 사채는 경수 아버지를 집에서 떠나게 만들고, 엄마는 식당에서 일하게 만들었다. 단순히 이런 이야기만 무겁게 펼치면 재미가 없을 텐데 로컨롤 고와 토마토 문이란 커플을 등장시켜 현실을 한 번 비튼다. 이들은 만남부터 비현실적인데 결혼 후 아들 열두 명을 낳는다. 아들들은 초등학교만 졸업하면 공장으로 가서 돈을 번다. 아버지는 이 동네에서 상위층에 해당하는 노가다다. 아들들이 돈을 벌어오니 생활에 여유가 생긴다. 돈이 계속 쌓이고, 이로 인해 토마토 문의 시대가 열린다. 이때도 비현실적인 상황이 펼쳐지고, 즐거운 이야기가 나온다.

 

떡볶이 가게를 한 경수네가 망한 것은 시대를 앞선 것도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경수가 벌인 한 번의 놀이 탓이다. 건물 화장실에 쓴 음란 낙서는 경수 아버지를 따라다니는 작은 장난이다. 물론 이런 장난이 커지면 문제가 심각해질 수 있다. 여자 아이를 좋아한다는 낙서는 업종 전환을 독촉하게 만들고, 이것이 결국 사업의 몰락과 사채 이용으로 이어진다. 무동으로 이사 온 날 엄마가 보여준 행동은 비참한 환경에 대한 자기방어다. 하지만 그곳도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웃을 만나고,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다. 당연히 어린 경수는 그곳에서 친구를 사귄다. 이 과정에서 또 황당한 이야기가 나오고, 이 황당한 이야기는 후반부에 재미난 인연으로 이어진다.

 

이야기는 경수네에만 머물지 않고, 무동 주민들로 확장되고, 그들로 한정된다. 이 때문에 각자의 사연을 들을 수 있고, 관계가 더 밀착된다. 인호네 수퍼가 어떻게 생겼고, 그들의 몰락이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보여줄 때 욕망의 하층부가 어떻게 무너지는지 보게 된다. 경수의 엄마도 한국의 부동산 욕망의 희생자 중 한 명이다. 가진 자의 여유와 권력이 없는 그들은 더 많은 변수에 휘둘릴 수밖에 없고, 그 피해는 그 가족들에게까지 전달된다. 경수와 인호와 유미 등이 그곳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그곳이 삶의 터전이기 때문이다. 좋든 나쁘든 기억과 추억이 머물고 있기에, 그곳을 벗어난다고 해도 특별한 삶의 기회가 생기는 것이 아니기에 머문다. 물론 떠날 기회가 생기면 떠날 것이다.

 

이 소설의 제목인 ‘마리의 돼지의 낙타’는 제목 그대로 마리의 돼지가 낳은 낙타다. 마리는 민구의 누나이자 공부방 살인사건의 당사자다. 돼지가 낙타를 낳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데 낙타가 무동에 나타나고, 민구는 걸어서 중동까지 간다. 작가는 이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집어넣으면서 현실이 꼭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사건들의 현실은 실제가 아닌 보여주고자 하는 시각을 통해 전달되지 않는가. 무동의 한자를 둘러싼 해프닝이나 서울의 위성도시 이름을 위성시라고 지은 것과 근교 농업지구와 재개발 철거민 등을 엮은 것에서 그가 쓴 소설들의 연장선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멋진 이야기꾼 한 명을 발견했다. 더 많은 소설을 내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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