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서스
제시 볼 지음, 김선형 옮김 / 소소의책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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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이하고 난해하고 아름다운 소설이다. 특이한 것은 알파벳 A부터 시작하여 Z까지 이어지는 마을 여행을 풀어낸 것이고, 난해한 것은 그 속에 담긴 이야기들의 의미들이다. 아름다운 것은 문장과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는 아들과 동행하는 아버지의 마음이다. 읽으면서 일반적 소설에서 예상한 것과 다른 구조와 전개에 혼란을 겪었지만 조금만 집중하면 알파벳 동네 이야기에 빠져든다. 이 소설 속에는 우리가 알고 있던 사회의 모습이 보이지 않지만 그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닮아 있다. 은유와 상징으로 가득한 이야기는 아는 만큼 보인다. 아쉽게도 나의 역량이 그것을 모두 파악할 정도는 되지 않는다.

 

화자는 의사였다. 시한부 판정을 받고 인구조사원이 되어 다운증후군 아들과 마지막 여행을 떠난다. 여행을 떠나기 위해 인구조사원이 되었다. 그런데 이 인구조사원이 우리의 상식과 다른 모습을 보인다. 인구조사를 한 후 사람의 갈비뼈 위에 작은 문신을 남긴다. 처음에 이 이야기를 읽고 뭐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듣지도 보지도 못한 인구조사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이 이야기는 현실과 동떨어진 세상의 모습을 담고 있다. 밧줄 공장의 이야기도 얼마나 황당한가. 사실 이런 설정에 발목이 잡히면 나처럼 나무만 보고 숲은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하게 된다.

 

다운증후군 아들과 동행하는 마지막 여행이란 소개글을 보고 가장 먼저 생각한 것은 가슴을 쥐어짜는 이별과 아픔이었다. 그런데 작가는 이런 예상을 뛰어넘고 그 아픔을 밖으로 드러내기보다 안으로 삼킨다. 아들과의 교감을 무리하게 풀어내기보다 인구조사에 더 집중한다. 인구조사를 하면서 만난 사람들과 있었던 작은 에피소드를 통해 아들의 현재를 보여준다. 아내에 대한 기억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는 경우도 있다. 먼저 죽은 아내는 행위예술가였다. 그녀의 공연 기억이다. 작가는 아내의 삶과 만남을 뒤에 남겨둔 채 여행을 이어간다. 기억의 단편들은 예상하지 못한 사실을 보여준다.

 

가독성은 나쁘지 않지만 전체 모습을 떠올리면 파편적 이미지만 남는다. 덕분에 이 소설의 윤곽과 흐름을 풀어낼 수가 없다. 알파벳 순서대로 이어지는 인구조사, 이 조사의 의미, 죽음을 앞둔 아버지와 함께 하는 여행 등이 머릿속에서 뒤죽박죽이다. 아들과의 교감을 다룬 이야기가 없는 것도 아니지만 충분한 것도 아니다. 자신이 죽으면 아들을 기차에 태워 돌볼 사람에게 보낸다고 했지만 그 사람이 누군지도 분명하게 말하지 않는다. 이 불확실 속에서 유일하게 분명한 것은 그의 죽음이다. 이야기가 중반을 넘어가면 그가 심한 고통을 겪고 길 위에서, 다른 사람의 집에서 요양을 해야만 한다. 인구조사 대상과의 이야기가 줄어들거나 사라지고 과거의 기억들이 조금씩 튀어나온다.

 

가마우지 이야기가 계속 나오는데 솔직히 이것이 의미하는 바를 모르겠다. 가마우지 낚시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알지만 이 이야기가 담고 있은 의미를 현재로서는 모르겠다. 가마우지에 대한 오해, 이 동물에 대한 애정 가득한 글들이 담고 있는 바도. 작가가 형에 대한 기억을 담고 쓴 글이라고 하는데 현실적인 모습이 많이 보이지 않아 살짝 당황스럽다. 아니면 내가 이해를 못했거나. 병의 급속한 진행으로 뒤로 가면 알파벳 동네 몇 개를 그냥 지나간다. 그리고 아들을 기차에 태워 보내면서 미래를 말한다. 물론 그의 미래가 아니다. 아들의 미래다. 창의적이고 초현실적인 이야기는 아직 나에게 너무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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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온 Go On 1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조동섭 옮김 / 밝은세상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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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오랜만에 읽은 더글라스 케네디의 소설이다. 첫 번역 작품인 <빅 픽처>에 환호한 이후 많은 작품들이 나왔다. 그 중 읽은 작품은 몇 권 되지 않는다. 사 놓고 읽지 않은 책도 몇 권 있다. 가독성이 좋고, 지적인 부분이 있어 취향에 맞다. 두 권짜리는 <행복의 추구> 이후 처음이 아닌가 생각한다. 나의 기억이 정확하다면 이번 작품은 이전 작품과 조금 다르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나 다루고 있는 주제 등이 더 깊어진 느낌이다. 70년대와 80년대를 관통하는 이야기 속에 현대 자본주의의 변곡점 중 하나를 보여준다. 읽으면서 작가가 다루고 있는 이야기의 깊이와 넓이에 감탄했다.

 

작은 오빠의 면회 이야기로 시작한다. 이번 면회에서 그녀는 오빠와 아빠의 비밀 하나를 듣는다. 이 이야기를 듣는 순간 그녀는 공모자가 된다. 과연 이 이야기는 무얼까? 이 의문을 품고 달려간 시대는 1971년 9월이다. 뉴욕에 살던 앨리스 가족은 올드그리니치로 이사왔다. 엄마는 이 이사가 불만이다. 엄마는 히스테리를 수시로 부리고, 큰 오빠는 예일대에 입학하고 떠났다. 작은 오빠는 교통사고 후 하키를 포기했다. 앨리스의 친구 칼리는 동성애자라고 생각할 수 있는 옷차림을 하고 다니다가 학교 폭력의 희생양이 된다. 그러다 칼리는 사라지고, 이 여파는 가족과 그녀와 함께 한 상대방에까지 이어진다.

 

동성애자가 비교적 자유롭게 자신의 성 정체성을 밝힐 수 있게 된 것은 그렇게 오래된 일이 아니다. 7~80년대는 온갖 비난의 대상이었다. 앨리스의 친구 칼리가 의심스러운 복장으로 폭행에 시달렸다면 대학 동창 한 명은 성 정체성을 밝혔다가 큰 폭행을 당하고 학교를 옮긴다. 오해와 편견과 독설에 시달릴 수밖에 없던 시기다. 이것이 80년대로 넘어오면 AIDS문제로 이어지는데 이때의 공포를 동성애자 친구가 아주 잘 보여준다. 아직도 기억하는 한국에 전달된 AIDA의 공포는 한 미국 배우의 죽음으로부터인데 이 작품 속에서는 그 이름이 다루어지지 않는다. 이때도 많은 보수단체가 얼마나 많은 비난과 거짓말을 퍼트렸는지 모른다. 이 작품은 그런 문제까지 나아가지 않는다.

 

시간 순으로 진행되는 이야기 속에서 미 제국주의의 모습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잘 보여준다. 칠레 피노체트 쿠데타의 모습을 보면서 작은 오빠의 비밀을 계속 머릿속에 담고 있었다. 답을 먼저 말하면 아니다. 믿었고 존경했고 사랑했던 행콕 교수의 죽음으로 간 아일랜드 트리니티대학교의 생활은 그녀를 즐겁게 만들었다. 하지만 변수는 언제나 일어난다. 그 중에서 최악은 테러다. 이 비극의 대상이 타인이었을 때는 단순히 공감의 문제이지만 자신에게 일어났을 때는 삶의 파괴다. 아직 외상후스트레스란 단어가 없을 때이지만 그 충격과 공포는 이후 삶을 바꾸고 지배한다.

 

앨리스를 중심에 놓고, 그 가족과 친구들을 주변에 놓고 그녀가 산 시대의 모습을 시간 순으로 보여준다. 이 시간 순으로 벌어지는 이야기 속에 작가의 의도와 자전적 이야기가 담겨 있다. 작가의 의도는 ‘1971년부터 1984년까지 미국 중산층 가족의 모습을 그려 보인다면 매우 흥미로운 작업이 되리라는 생각’이었다. 이 생각은 트럼프가 백악관에 들어가게 된 이유, 서로를 경멸하는 두 미국이 존재하게 된 이유를 이해하려면 이 시기를 지나면서 완성된 ‘문화 전쟁’을 들여다봐야 한다고 말한다. 솔직히 말해 이 작가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하겠다. 아마도 미국의 정치와 문화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의도는 작품의 제목에서 드러난다. 번역 제목이 <고 온(GO ON)>이지만 원래 제목은 <The Great Wide Open>이다. 책 마지막에 그랜드캐넌에 가서 본 풍경을 이렇게 표현했다고 한다. “텅 빈 공간을 표현하는 말이기도 하고,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삶을 뜻하는 말이기도 해. 다른 말로는 ‘미래’라고 하지.” 이야기는 과거의 한 시점에서 끝나지만 이때까지 풀어낸 이야기들은 ‘미래’를 만들고 이해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물론 앞에서 말한대로 이해의 폭과 깊이는 나에게 달렸다. 읽으면서 솔직히 이런 점을 생각하지 못했는데 앞으로 많은 부분을 되돌려보면서 작가의 의도를 이해하려고 작은 노력들을 기울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읽으면서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주제 중 하나가 있다. 바로 가족이다. 가족 간의 갈등과 사랑을 아주 자극적으로 다룬다. 칼리의 실종, 큰 오빠의 충격적인 내부고발, 60년대 아버지들의 삶, 엄마의 히스테리, 공익보다 가족 우선 등의 현실적 문제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특히 후반부로 가면서 앨리스의 행동과 심리 속에는 가족이 우선이란 생각이 가득 담겨 있다. 이것이 한때 할리우드 영화의 가장 중요한 주제 중 하나였다. 의도적인 연출인지, 아니면 앨리스의 행동에 대한 작가의 공감인지는 좀 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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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디자인 1 지식을 만화로 만나다 1
김재훈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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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에 나온 <디자인 캐리커처 - 유쾌한 20세기 디자인 여행>의 개정증보판이다. 서문을 읽고 난 후에 이 사실을 알았다. 이때마다 내가 책소개 글을 꼼꼼하게 읽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이 사실을 알고 간단하게 구판과 개정판을 비교해보니 편집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개정판이 좀 더 잘 분류되어 있다. 구판이 단순한 나열이었던 것에 비하면 개정판은 브랜드, 패션, 디자이너, 건축, 가구, 빛, 자동차, 비행기 등으로 구분해 이해를 더 쉽게 만들었다. 이 분류와 함께 간단하게 풀어낸 디자인 만화는 가독성을 높여 빠르게 읽을 수 있었다. 물론 ‘P.S 디자인’에 오면 많은 글자들로 인해 속도가 급격히 떨어진다.

 

이 만화를 보면서 기존에 알고 있던 정보들이 너무 간단하게 나와 아쉬웠던 부분이 많다. 작가가 핵심만 뽑아서 간단한 그림으로 디자인에 대해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판이 단순한 나열로 소제목을 붙였다면 이번에는 제목에 간단한 설명을 곁들였다. 덕분에 작가가 표현하고자 한 바를 더 쉽게 이해하게 되었다. 편집의 힘이라고 한다면 너무 나간 것일까? 표지의 차이도 상당하다. 개인적으로 기괴한 모습의 구판보다 개정판이 더 좋다. 이런 편집도 디자인의 영역이다. 캘리그라피가 새로운 글자체 디자인에, 표지에, 광고 등에 어떻게 인용되고 있는지 보면 이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구판과 달리 개정판의 첫 이야기는 스티브 잡스와 애플 이야기로 시작한다. 더하기보다 빼기로 성공한 애플 디자인은 이제 모든 스마트폰 업체의 표준처럼 보인다. 이들의 빼기는 늘 무언가를 더 넣어서 가격만 부풀리려는 한국의 가전제품 디자인을 생각하면 더욱 돋보인다. 실제 집에 있는 가전제품 중 상당수가 필요 없는 기능이 너무 많아 제대로 사용하지도 못한다. 물론 스마트폰의 기능도 마찬가지다. 홈페이지를 보면 또 어떤가? 첫 화면에 너무 많은 것이 들어 있어 보기가 오히려 불편하다. 잡스의 생각을 디자인으로 만들어낸 그들을 보면서 감탄할 수밖에 없는 것은 나만이 아닐 것이다.

 

샤넬과 리바이스 디자인이 시대를 해방했다고 하는데 일부 맞는 말이다. 샤넬의 드레스와 핸드백이 모든 여성의 워너비가 되면서 이제는 구속물이 되었다. 심플한 디자인이나 필요 없는 것 같은 것들 넣은 디자인이 시대를 넘어 유행하는 것은 제품의 특성도 있지만 어느 순간 이것이 유행하면서 하나의 브랜드로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이것을 단순히 디자인 문제로만 한정하는 것은 상당히 무리가 있다. ‘I♥뉴욕’ 디자인이 비교적 최근에 나온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70년대에 나왔다는 사실에 놀란다. 이 디자인이 얼마나 많은 짝퉁을 만들어내었던가. ‘굿 디자인이 굿 비즈니스다.’라는 말 속에 담긴 의미를 풀어낸 부분은 이 만화의 가치를 더 높여준다.

 

디자이너 이야기를 하면서 안도 다다오를 넣은 것은 의외다. 건축물에 넣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기 때문이다. 안도 다다오의 건축물에 대한 극찬 등은 이미 다른 책에서 많이 접했던 것이라 별로 신선하지 않다. 바우하우스가 독일인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는 부분은 조금 의외다. 나처럼 디자인을 모르는 사람도 아주 자주 들은 이름인데 말이다. 이 디자이너 이야기 속에서 시대와 나라에 따라 호흡하는 디자인 정신을 조금 엿볼 수 있었다. 간결한 기능성 위주의 디자인 뿐만이 아니라 겉치레가 가득하거나 장식성을 입힌 디자인들이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기 때문이다. 실제 유명 디자이너의 작품을 보고 감탄하지만 기능성은 또 다른 문제인 경우가 많다.

 

지을 당시 많은 욕을 먹었지만 짓고 난 후 세계적인 유명세를 떨친 건축이 둘 있다. 하나는 에펠탑이고, 나머지 하나는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다. 한국의 동대문디자인플라자도 마찬가지다. 멋진 외형에 비해 효율성이 떨어져 많은 욕을 먹었는데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다. 낙수장 이야기에서 물소리에 잠을 제대로 잘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단 작은 컷 하나는 이 만화가 조금 비딱한 시선을 계속 유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런 컷들이 자주 나오면서 단순히 열광과 칭찬만으로 가득한 책이 아님을 잘 보여준다. 빛 이야기를 보면서 낯익은 조명기구가 누구의 작품인지. 왜 그것이 유행했는지. 그 후예들이 어떤 것인지 등으로 생각이 뻗쳐나갔다.

 

한 번도 콩코드가 에펠탑에 버금가는 프랑스의 상징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영국과 합작으로 만든 비행기이고,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처음 이 비행기를 보았을 때 감탄한 것은 기억난다. 2차 대전 당시 전투기에 대한 것은 사실 잘 모르겠다. 오히려 SF영화 속 우주선에 더 관심이 많다. 나의 취향이 그 쪽에 더 맞기 때문이다. 자동차 디자인은 너무 많은 이야기를 덤고 있다. 놀라운 사실 중 하나는 현대 포니의 디자이너가 조르제토 주지아로란 사실이다. 그때는 참 멋없는 디자인이라고 생각했는데 나의 안목이란 정말. 한때 열광했던 자동차들의 디자인에 대한 간단한 설명 등은 또 다른 재미다.

 

그림이 사라지고 글자만 가득한 ‘P.S 디자인’은 작가의 고찰이 담겨 있다. 재밌는 에세이도 있고, 자신의 지식을 뽐내는 글도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디자인을 시대와 함께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언젠가 시간이 된다면 이 부분을 다시 정독하고 앞의 만화를 보고 싶다. 2권이 나왔는데 솔직히 언제 읽을지 모르겠다. 밀린 책들이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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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체 옆에 피는 꽃 - 공민철 소설집 한국추리문학선 4
공민철 지음 / 책과나무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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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한국 추리작가의 단편집이란 이유로 선택했다. 최근 장르 문학이 조금 더 활성화되었다고 하지만 몇 명 익숙한 이름의 작가를 제외하면 크게 관심을 둔 적이 없다. 그런데 이 단순한 선택이 앞으로 주목해야 할, 아니 믿고 읽을 수 있는 작가 한 명을 만나게 만들었다. 아홉 편의 단편들이 예상하지 못한 재미를 전달해주었기 때문이다. 가끔 이런 작가들을 만날 때면 예전에 사놓은 오랫동안 묵혀둔 오늘의 추리소설들이 떠오른다. 혹시 그 작품들 속에도 내가 놓친 수많은 추리작가들이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한국추리작가협회 신인상, 한국추리작가협회 황금펜상 수상작들을 실고 있다. 황금펜상이 최우수 단편에게 수여한다는 것과 그것을 2년 연속으로 받았다는 사실은 이 작가의 글빨이 상당히 좋다는 의미다. 그런데 내가 주목한 소설들은 이 작품들이 아니다. 표제작 <시체 옆에 피는 꽃>과 <도둑맞은 도품>에 눈길이 더 간다. 표제작은 1인극과 관객 참여형 연극을 통해 오랜 세월 동안의 연쇄살인의 범인과 그 이면을 풀어나간다. 다섯 살 때까지 납치법의 손에 길러졌다는 소개와 제목 때문에 좀 잔인한 전개를 예상했는데 아니었다. 능수능란하게 이야기를 풀어가는 구성이 재밌고 호기심을 자극한다. 하지만 마을의 아이라는 설정은 조금 아쉽다.

 

<도둑맞은 도품>에 눈길이 간 것은 이유가 간단하다. 학생 탐정의 가능성을 보았기 때문이다. 이 캐릭터들을 잘만 다듬으면 연작으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한 아파트에서 일어난 사건을 두 학생이 추리하면서 진범에게 다가가는 과정이 예전에 학생 추리물을 읽을 때 재미를 떠올려주었다. 신인상을 받은 <엄마들>은 아파트와 집값을 엮어 풀어가다 반전을 불러온다. 한국 사회에서 아파트가 어떤 의미인지 알기에 이들의 욕망이 빚어낸 현상에 놀라지 않지만 반전과 엄마들의 모습에는 순간 섬뜩했다. 엄마들의 과거가 현재 아이들에게 투영되는 모습은 불편한 사실이기도 하다.

 

황금펜상을 수상한 작품들은 <낯선 아들>과 <유일한 범인>이다. <낯선 아들>은 화자의 시점을 통해 먼저 오해하게 만들고, 다른 이를 등장시켜 현실을 보게 만든다. 이 현실 속에는 악의가 넘실거리지만 그 속에는 외로움과 모성애가 가득하다. 사실들의 나열 속에 가려진 진실은 작가의 손을 떠나는 순간 독자들의 몫으로 남는다. <유일한 범인>은 고독사의 다른 이면을 파헤친다. 방송에까지 나온 할아버지의 죽음을 더 알기 위해 최초 발견자이자 할아버지의 술친구 역할을 한 수종을 만나 이 죽음의 이면을 파고든다. 진상의 발견이 씁쓸함으로 이어지는 마지막 장면은 가족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4월의 자살동맹>은 왕따 문제를 다른 시각에서 풀어간다. 자살하려는 왕따 대상 유성민을 막기 위해 김원종이 동맹을 맺는다. 이것이 자살동맹이다. 성민은 계속 학내 폭력에 시달리지만 이것을 기록하면서 자살 후에 증거로 남기려고 한다. 원종이 성민의 자살은 막은 이유는 씁쓸하고, 하나의 목적이 생기면서 그 폭력을 견디고 즐기는 성민이 낯설다. 편지 형식으로 진행하면서 마지막에 예상하지 못한 반전이 일어난다. 그런데 이 반전이 감탄보다 머릿속을 어지럽게 만든다. 성민의 여동생은 왜 이 편지를 보내야 했을까 하는 의문도 사그라들지 않는다.

 

<가장의 자격>은 아들의 살인과 외톨이 삶을 퇴직자 아버지가 다시 알아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아들에게 무관심했던 그가 아들의 자살과 재혼한 아내의 시한부 인생을 앞두고 한 가족의 가장이 되려고 한다. 조금 뻔한 설정에서 아버지의 선택과 할아버지란 존재가 충돌하는데 이 부분이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든다. 일반적인 할아버지가 아니기 때문일까? <사랑의 안식처>는 안식처를 지키기 위한 마지막 선택이 짠하다. 그것으로 끝날까 하는 의문이 먼저 생기는데 누구에게는 미래보다 오늘과 내일이 더 중요하다. 자기 딸이 성폭행당해 죽었고, 이것과 관계없는 사건이 하나 있다. 연관성은 없지만 죄책감은 사라지지 않는다. 성범죄자에 대한 통지문 하나가 그 피해 가족에게 어떤 연쇄작용을 일으키는지, 이 관리방식의 문제가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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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단어를 찾습니다 - 4천만 부가 팔린 사전을 만든 사람들
사사키 겐이치 지음, 송태욱 옮김 / 뮤진트리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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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국어사전 두 편찬자에 대한 이야기다. 일본의 국민적 베스트셀러인 <산세이도 국어사전>과 <신메이카이 국어사전>을 만든 겐보 히데토시와 야마다 다다오가 두 주인공이다. 이 둘은 대학 동기이고, 각자 거의 혼자 사전 한 권을 엮은이들이다. 단순히 두 사전의 편찬 이야기만 담고 있지 않고, ‘말’의 본질을 풀어낸다. 동시에 처음 같은 사전을 편찬했던 두 인물이 왜 갈등을 일으켰고, 두 종류의 사전이 나오게 된 이유를 파헤치는 지적 미스터리를 다룬다. 물론 이 둘이 처음 만든 사전이 지닌 의미도 같이 다루면서 사전에 대한 우리의 일반적인 상식을 깨트린다.

 

원래 방송 프로그램으로 만들어진 것을 책으로 출간했다. 방송 당시 제목은 <겐보 선생과 야마다 선생 - 사전에 인생을 바친 두 남자>였다. 하지만 방송은 한정된 시간 안에 압축적이고 강렬한 편집으로 내용을 담아야 하는 문제가 있다. 이 책은 방송에서 누락된 부분을 더 채워낸 것이라고 한다. 물론 방송 특성 상 연출에 의한 재미가 더 있을 수 있다. 화려한 연출과 배우들의 연기가 곁들여진다면 일본 쇼와시대 사전 역사 최대의 수수께끼를 푸는 재미를 더 쉽게 누릴 수 있을지 모른다. 실제 이 프로그램은 제30회 ATP상 최우수상, 제40회 방송문화기금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책은 제62회 일본 에세이스트클럽상을 수상했다고 한다.

 

책은 지적 미스터리를 파헤치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앞부분에 서로 다른 두 사전의 대표적인 단어 해석을 풀어놓고, 그 단어의 의미 속에 숨겨져 있던 두 편찬자의 역사 속으로 들어간다. 이 과정 속에서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인물은 겐보 선생이다. 처음 그에게 새로운 사전 의뢰가 온 것에서 시작해 어떻게 판본이 발전했고, 이 둘의 갈등이 어떤 사전으로 나누어졌는지 보여줄 때 일반적으로 우리가 가지고 있던 사전의 의미가 바뀐다. 겐보 선생이 현대어를 반영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면, 야마다 선생은 사전의 역할은 문명 비평이라고 생각했다. 이 생각의 차이가 단어의 뜻풀이에서 완전히 다르게 나타난다.

 

연애란 단어를 풀어낸 두 사전에서 아주 충격적인 단어를 발견한다. <신메이카이 국어사전>에서 ‘가능하다면 합체하고 싶은 생각’이란 글이다. 반면에 <산세이도 국어사전>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그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런데 재밌는 점은 <산세이도 국어사전>에 실려 있는 에이(A)에 실린 의미들이다. 키스, 페팅(B), 성교(C), 임신(D), 중절(I)로 이어진다고 하는 7~80년대의 은어를 실고 있다. 은어로 ABC라고 말했는데 이것을 실었다고 한다. 현재는 사용되지 않아 사전에서 빠졌다고 하는데 이 부분이 겐보 선생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야마다 선생의 뜻풀이에는 백도를 ‘과즙이 많고 맛있다’고, 붉돔을 ‘얼굴은 붉은 도깨비 같지만 맛있다’고 풀어놓았다. 이런 사전 솔직히 낯설다. 그런데 이 <신메이카이 국어사전>의 판매 수량이 2천만 부가 넘는다고 한다. 만약 한국 국어사전에 이런 뜻풀이를 담았다면 어떨까? 국어사전에 실린 백도는 “복숭아 품종의 하나.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재배되는 품종으로, 모양이 둥글며 살은 희고 무르다. ‘흰 복숭아’로 순화.”라고 되어 있다. <산세이도 국어사전>과 비슷하다. 눈에 띄는 표현은 ‘순화’정도랄까? 한자를 우리말로 풀어낸 것은 사전에서 자주 보는 것이다.

 

이렇게 하나의 단어를 다르게 풀어낸 사전들이 공존하고, 이 두 사전이 모두 잘 팔렸고, 팔리고 있다는 사실은 놀랍고 재밌고 신기하다. 저자는 이렇게 개성이 강한 두 사전의 편찬자의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시간을 따라가면서 왜 이 둘이 갈등을 일으키게 되었는지 파헤친다. 물론 겐보 선생이 처음 새로운 사전 편찬자가 되어 대단한 베스트셀러가 된 <메이카이 국어사전>의 작업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부터 시작한다. 대학원생이었던 그가 홀로 편집을 담당했고, 그의 조수 역할(이것은 야마다 선생의 표현이다)을 한 과정을 보여주면서 왜 이런 일들이 생기게 되었는지 파고든다. 저자는 이 과정은 미스터리처럼 풀어간다.

 

저자의 놀라운 추리 능력은 두 사전에 실린 단어 속에서 단서를 찾아낸 것이다. 단서는 수많은 사람들의 인터뷰와 기록을 통해 두 거장의 갈등과 결별과 용서 등을 조금씩 보여준다. 그리고 겐보 선생의 용례 수집과 그 결과가 얼마나 대단한지,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려준다. 용례 카드 145만 장이란 숫자는 쉽게 다가오지 않는다. 물론 이 과정 속에서 가족의 삶이 어떠했는지 보여줄 때 조금 씁쓸했다. 반면에 야마다 선생의 가족사에 대한 부분은 거의 다루어지지 않는다. 사전에 모든 것을 바친 겐보 선생이었기에 더 부각되었는지 모르겠다.

 

둘의 갈등은 <신메이카이 국어사전>의 서문에서 시작했다. 몰래 만든 것처럼 느껴졌던 설정은 다음에 밝혀지는 내용으로 인해 다르게 다가온다. 어쩌면 단어 하나가 둘의 갈등에 불을 지피고, 출판사의 입장이 불을 키웠는지도 모르겠다. 이 갈등이 해소되면서 뜻풀이와 용례도 바뀌는데 이 장면들이 아주 흥미롭고 재밌다. 인문 에세이가 이런 재미를 줄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못했다. 그리고 겐보 선생의 말은 소리 없이 변한다고 한 것과 야마다 선생이 말은 부자유스러운 전달 수단이라고 한 것에 동의한다. 시대와 상황에 따라 얼마나 많은 단어가 다른 의미로 사용되었는가. 실제 내가 한 말이 어떻게 상대방에게 왜곡되었던가. 사전에 조금이라고 관심이 있다면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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