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 에프 그래픽 컬렉션
엘린 브로쉬 맥켄나 지음, 라몬 K. 페레즈 그림, 심연희 옮김 / F(에프)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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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9세기 영국 고전 소설인 <제인 에어>를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한 그래픽노블이다. 아쉽게도 내가 <제인 에어>를 읽지 않았다. 혹시 읽었는데 기억하지 못하는가 하고 내용을 다시 떠올려보지만 제대로 생각나는 것이 없다. 아마 원작을 읽었고, 더 많은 기억하고 있었다면 이 책을 좀더 다른 시각에서 볼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처음 접하는 내용이다. 그런데 읽다 보면 아주 낯익은 설정과 전개들이 눈에 들어온다. 수많은 영화나 드라마 등에서 본 것들이다.

 

원작과 비교해서 이야기할 것이 없다. 읽은 책 내용만 가지고 이야기해야 한다. 작가는 제인이 바다에서 부모를 잃은 후 친척집에 사는 과정은 아주 간결하게 보여준다. 그 가족 누구와도 대화를 나누지도, 감정 교류도 없다. 가족들의 시선은 텔레비전으로 향해 있다. 제인은 이 집을 떠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한다. 배를 타고, 생선을 수선하는 일을 한다. 어느 정도 돈이 모이자 이 돈 모두를 인출해서 뉴욕으로 떠난다. 그녀는 보이는 것을 사실적으로 그리는 그림을 그린다. 대학교에 등록하지만 일자리를 구해야 한다는 조건이 있다. 급하게 찾는다. 조건 좋고 급여도 높은 일자리가 눈에 들어온다. 보모 일이다.

 

새로운 직업은 정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집에서 아델이라는 외로운 꼬마를 돌보는 일이다. 아이를 돌보는 일이 얼마나 힘들겠는가 생각하지만 보통 이 아이를 돌보는 일을 하는 사람들의 평균 재직 기간은 일주일을 넘지 못한다. 상당수의 사람들은 집주인이 금지한 곳으로 올라가려고 하다가 잘렸다. 그곳에 무슨 비밀이 있을까? 후반부에 가서 이 비밀이 펼쳐지는데 전혀 예상하지 못한 설정이다. 개인적으로 이 설정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없어 충분히 납득할 수 없었다. 스스로 이 일에 대한 설명을 만들어서 이해해야 한다.

 

다른 보모들이 자주 잘린 것을 보고 아델이 심술꾸러기인가 생각했다. 아니었다. 외로운 소녀일 뿐이다. 제인과 아델은 경호원을 옆에 두고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문제는 집주인 로체스터를 만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우연히 만났을 때는 당돌하게도 그가 딸을 위해 학교에 면담을 가야 한다고 말한다. 시간을 표시하고, 시간에 맞춰 학교를 방문하니 그가 교장과 면담을 한다. 거대 헤지펀드의 수장답게 아주 위협적인 말을 내뱉는다. 이 일을 통해 제인은 로체스터도 한 명의 아버지임을 알게 된다. 그리고 발레 공연에 그녀를 초대한다. 공연 후 파티는 서로의 마음을 알게 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둘만의 시간이 지난 후 로체스터는 갑자기 사라진다. 아시아로 날아갔다. 몇 개월 후 돌아온 그의 모습은 그날 밤의 그가 아니다. 질투란 감정이 표출된다. 그러다 내용의 흐름에 큰 변화가 일어난다. 도둑이 들어와 3층 금지구역으로 들어가려고 한다. 격투가 벌어지고, 금지구역의 비밀을 알게 된다. 이 때문에 이야기의 분위기가 급격하게 바뀐다. 로체스터는 아이와 함께 떠나고, 떠나면서 제인도 같이 가자고 한다. 자신의 삶을 살고 싶은 제인은 떠나지 않는다. 문제는 아델이 제인에게 연락을 했고, 제인이 그들을 만나러 간 것이다. 이후 벌어지는 장면들은 할리우드 공식이다. 아기자기하면서 자기주장 강한 제인의 매력이 액션으로 묻혀버렸다.

 

자기의 삶을 살려는 여성이 결국 머물게 되는 곳이 엄청난 거부인 로체스터의 집이란 결말은 현대판 신데렐라 스토리에서 자주 본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그 일에서 성취감을 얻고, 꾸준히 그 일을 하려는 모습은 그녀 속에 있는 자립성을 잘 보여준다. 각색된 내용도 흥미롭지만 이것을 그림으로 표현해서 몰입도를 높인 것은 그린이의 능력이다. 흑백의 대비, 거칠고 굵지만 세밀한 묘사, 농도를 통한 표현, 상황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화면 구성 등은 이 그래픽노블을 단숨에 읽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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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진
에느 리일 지음, 이승재 옮김 / 은행나무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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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북유럽 스릴러에서 기대하는 액션이나 스릴러를 예상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다. 이 예상은 읽으면서 점점 더 깨어졌다. 강렬한 액션이 있는 것도 아니고, 스릴러도 일반적인 스릴러의 공식과는 동떨어져 있다. 아빠가 할머니를 살해했다는 첫 문장으로 시작해서 풀려나오는 이야기는 아주 잔혹한 살인마를 먼저 떠올리지만 실제는 다르다. 왜 아빠는 엄마를 죽일 수밖에 없는지 보여주는 이야기가 이어진다. 그렇게 하기 위해 이 가족사로 먼저 들어간다. 뛰어난 목공 실력을 가진 아버지 밑에서 두 형제가 자랐다는 것과 아버지가 번개를 맞고 죽었다는 사실 이외에는 특별한 이야기가 없다.

 

다시 생각하니 아니다. 번개 맞고 죽는 일이 흔한 일은 아니다. 또 아버지가 관을 만들고 누워 있는 장면도 특이하다. 이것이 둘째 아들 옌스 호더의 삶에 영향을 끼쳤다. 형은 아버지의 죽음 이후 섬을 떠났고, 옌스는 엄마와 함께 살아간다. 아버지에게서 배운 목공 실력으로 작은 생계를 유지하고, 크리스마스 트리로 겨울을 날 돈을 번다. 이런 삶에 변화가 온 것은 홀데트 섬에 일자리를 찾아온 마리아가 오면서부터다. 마리아는 정치인과 결혼을 강요하는 부모를 떠나왔다. 그리고 섬에서 가장 잘 생긴 옌스와 사랑에 빠진다. 이때는 아직 옌스가 사람과 교류를 제대로 하던 시기다.

 

마리아는 쌍둥이를 낳았다. 옌스가 아버지에게 말했듯이 딸은 리우, 아들은 카알이라고 이름을 붙인다. 어느날 이 쌍둥이 중 카알이 아기 침대 옆에 떨어져 죽은 채 발견된다. 누가 죽인 것일까? 시어머니는 며느리의 산후우울증을 의심하고, 며느리는 자신을 탐탁하지 않게 여긴 시어머니를 의심한다. 이 사건은 옌스가 엄마 엘세를 집밖으로 몰아내는 계기가 된다. 엘세는 여동생 집에서 몇 년을 살다가 말없이 집에 온다. 집은 엉망이다. 마리아는 엄청나게 비대해졌고, 리우는 학교를 보낼 생각조차 않는다. 그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리우에게 할머니를 아는 아줌마라고 소개한 것이다. 할머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할머니가 죽기 얼마 전이다.

 

집은 아버지의 수집으로 사람이 살 공간이 점점 줄어든다. 충분히 쓸 수 있는 물건을 버리는 사람을 옌스는 이해할 수 없다. 그는 점점 일을 멀리한다. 어느 순간 딸은 좀도둑이 되어 다른 집에서 물건과 먹을 것을 훔친다. 이 소설을 중반 이후 전직 학교 선생이자 현재 유일한 펍의 주인이 리우를 발견하기 전까지 그냥 기억의 착오 정도로 사람들은 생각했다. 이야기에 반전이 펼쳐지는 것은 이 주인이 리우의 흔적을 쫓아가면서부터다. 후반에 그의 방문이 만들어내는 긴장감은 이 가족들이 어떤 행동을 할지 모른다는 기대감에서 비롯한다. 앞에서 쌓아올린 이야기가 긴장감을 고조시킨 것이다.

 

제목인 송진은 송진에 갇혀 오랜 세월 동안 원형을 유지한 곤충들 모습과 이집트의 미라 제조법과 관계 있다. 특히 미라 제조법은 이 소설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마리아가 두 번째 임신을 조산으로 사산아를 낳자 옌스는 이 아름다운 아이를 미라로 만든다. 이 과정을 리우는 옆에서 본다. 간략하게 보여주는 장면들이 섬뜩하고, 한 인간의 뒤틀린 마음과 죄책감을 그대로 보여준다. 여기에는 카알이 죽게 된 원인도 한몫한다. 작가는 이 원인을 끝에 한꺼번에 폭발시키지 않고, 중간에 알려주면서 옌스의 행동을 조금 더 이해하게 만든다. 그렇다고 동의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리우, 이 작은 소녀는 좀도둑이고, 훌륭한 사냥꾼이다. 이 소설의 화자이자 부모가 세상으로부터 격리시키고자 한 아이다. 옌스는 아이를 죽은 것처럼 위장하고, 아이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서 사라진다. 리우의 곁에는 언제나 죽은 쌍둥이 형제 카알이 보인다. 처음에는 카알이 죽었다는 사실을 몰랐다. 카알의 행동과 반응 등은 리우의 또 다른 의식세계를 보여준다. 이것을 잘 보여주는 장면이 죽은 아기를 미라로 만들 때다. 너무 비대해진 엄마가 편지로 자신의 생각과 바람을 여기저기 남긴 것을 곳곳에 삽입했는데 이것이 현상을 다른 시각에서 보게 한다. 마지막 장면으로 가면 이 글들은 더욱 간결해지고, 현실은 더욱 참혹해진다. 읽고 난 후 머릿속에 복잡해지고, 이 가족의 뒤틀리고 잔혹하고 비극적인 이야기가 강한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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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A
고바야시 히로키 지음, 김은모 옮김 / 현대문학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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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량만 놓고 보면 조금 긴 중편소설이다. 하지만 품고 있는 내용은 어느 장편 못지않다. 처음에 이 소설이 받은 상과 드라마 제작 등을 말할 때만 해도 보통의 흔한 범죄소설로 생각했다. <Q&A>란 제목을 보고 흔한 묻고 답하는 형식의 일기 정도로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일기도 맞고, 묻고 답하는 내용도 있지만 범인과 피해자의 비밀일기 같은 것이 아니다. 두 사람이라고 짐작했던 것은 Q와 &와 A라는 각각 다른 세 사람을 의미한다. 여기에서 또 한 번 반전이 일어난다. Q와 A가 범인과 피해자일 것이란 예상도 벗어난다.

 

형사가 일기를 가지고 범죄자를 쫓는 일반적인 설정을 예상했다. 그런데 이 소설에서 형사는 단순히 현장을 소개하고, 외국어로 작성된 일기를 번역하는 존재일 뿐이다. 실제 범인을 잡기 위한 어떤 액션을 취하지도 않는다. 일기를 더 읽기 위해 차를 더 움직일 뿐이다. 누가 범인인지 그 실체를 알려주지는 않지만 왜 이런 살인이 일어났는지는 이 일기가 알려준다. 그리고 처음 살인 현장에서 본 이상한 부조화의 원인도 해결된다. 그 부조화는 피해자의 표정에서 비롯한다. 일반적인 살인 피해자가 짓는 고통이나 놀람이 없다. 오히려 평온하고 행복하다. 이런 표정이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가 이 일기에 담겨 있다.

 

일기는 외국 어느 나라의 수도원에 버려졌던 아이 이야기로 시작한다. 아!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 Q와 A의 질문과 답변이 나온다. 이 설정 때문에 먼저 선입견이 생겼다. 수도원에 버려진 아이는 키 순서대로 숫자로 흔히 불린다. 9. 그의 별명이자 그가 불리길 원하는 이름이다. 열 명의 아이 중 두 번째로 작은 아이이자 아홉 번째로 큰 아이란 의미다. 성금이 없어 고아원은 제대로 관리되지 않는다. 겨울이 되면 춥고, 늘 배고프다. 이런 아이들이 어느 날 부모와 함께 행복한 표정을 지은 채 지나가는 한 아이를 본다. 분노한다. 뭔가를 저지르려고 한다.

 

자신들이 버려졌다는 사실과 부모와 함께 행복하고 살고 아이가 비교되는 순간 증오의 감정이 폭발한다. 이 폭발은 전부의 동의 아래 작고 위험한 계획으로 변한다. 그들은 아이를 납치해 나무에 매달고, 때린다. 아이의 행복이 질투했기에 벌어진 행동이다. 하지만 아이의 울음과 애타게 부모를 찾는 모습을 보면서 그들은 세상의 이치 중 하나를 깨닫는다. 세상은 잔혹하고 부조리하다는 현실 인식이다. 신부가 아이들을 이용해 설교를 잘 하면서 수도원은 부유해진다. 성장한 아이들은 각각 자신의 길을 간다. 아이들을 이용해 돈을 벌던 신부는 불안해한다. 이 아이들은 남을 사람을 뽑는다. 9가 선택되었다. 문제는 반복되는 설교에 지친 신도들이 떨어져 나가는 것을 아이에게 화를 푸는 신부다. 세상이 잔혹하다는 것을 아는 아이는 신부의 학대를 그냥 견딘다. 그러다 신부의 실수로 학대 사실이 드러난다.

 

기절한 9를 입양하는 사람이 나타나고, 세상이 잔혹하다는 사실을 깨닫은 소년은 무감각해진다. 하지만 그는 아이가 세상을 더 알길 바란다. 이 소설에서 유일하게 본명이 나오는 인물이다. 입양되어 새로운 세상을 알고 배운다. 학교에서는 친구도 만나지만 이 만남이 불러오는 후폭풍은 급속하고 비현실적이고 3류 소설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예상했지만 아니길 바란 설정으로 나아갈 때 아쉬움은 커졌다. 이 뒤틀린 상황은 부조리하고 잔혹한 현실을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이 극단적인 모습이 나는 불만스럽다. 좀더 세밀하고 현실적인 모습을 담으면서 잔혹한 부조리를 드러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다.

 

드라마로 제작되었다고 하니 어떻게 각색되었는지 궁금하다. 원작 속에서 9와 Q를 같이 놓은 것은 일어 발음 때문인데 외국임을 감안하면 약간 억지스럽다. Q에 대한 재밌는 해석은 한 번도 생각하지 못한 것이라 신선했다. 작가가 의도적으로 이름을 부여하지 않고, 시체의 나이도 말하지 않은 것은 일기에 더 무게를 두기 위해서 일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중편 분량을 장편으로 늘려서 더 많은 이야기를 담고, A의 이야기도 넣었으면 좋겠다. 그럼 아주 멋진 소설 한 편이 탄생할 수 있을 것이다. 뭐 이 자체로도 많은 의미를 담고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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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께끼 변주곡
안드레 애치먼 지음, 정지현 옮김 / 잔(도서출판)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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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대한 다섯 이야기를 담고 있다. 처음에는 다섯 단편을 실고 있는 줄 알았다. 읽으면서 왠지 같은 인물들이 계속 등장해 조금 의아했다. 열두 살 소년의 첫사랑부터 노중년의 사랑 이야기까지 이어지는데 그 대상이 자꾸 바뀐다. 장소는 이탈리아 남부의 한 섬에서 벌어진 첫사랑 이야기를 빼면 모두 미국 뉴욕 근처다. 특별히 작가는 시대를 정확하게 알려주지 않는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도 다르다. 화려한 상황이나 사건이 벌어지지 않지만 내밀하고 섬세한 심리 묘사와 감정 표현으로 이야기에 빠져들게 만든다.


<첫사랑>은 대학생 폴이 어린 시절 휴가 때 방문했던 이탈리아 남부 섬을 찾아가면서 느낀 감상을 다룬다. 불 탄 가족의 집을 방문하는 것이 외면상 이유라면 실제는 열두 살 당시 첫사랑의 감정을 느꼈던 난니의 흔적을 되짚는 것이다. 자신의 감정을 최대한 숨긴다고 하지만 소년의 행동 속에 그 감정은 그대로 드러난다. 난니는 목수고, 어머니는 책상과 액자 등의 수리를 난니에게 맡긴다. 폴은 난니의 집에서 함께 수선 작업을 한다. 부모님에게 이 사실을 숨기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들은 이미 알고 있다. 소년이 난니에게 느끼는 감정은 아주 열정적이다. 몇몇 표현들은 외설적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집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그 섬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려주고, 섬 사람들의 욕심이 밖으로 드러난다. 하지만 첫사랑 뒤에 숨겨진 진짜 이야기는 표지의 그림에 담겨 있다. 이 단편에 나온 작은 에피소드 하나가 다른 단편에서 그대로 나온다.


<봄날의 열병>은 읽으면서 혼란을 느꼈다. 화자가 누군지 몰랐기에 더욱 그랬다. 자신의 연인이 다른 사람과 사랑에 빠졌다고 생각하고, 저녁에 작은 파티에 참석한다. 이 작품에 나오는 몇몇 이름과 상황들은 다음 단편에서도 이어진다. 내가 이 책을 단편집이라고 생각하게 된 결정적이 이유도 이 작품에서 시작되었다. 자신의 연인이 새로운 연인을 만나는 것을 보면서 느끼는 질투라고 생각했는데 이야기 마지막에 가면 반전이 펼쳐진다. <만프레드>는 짝사랑의 감정을 절절하게 녹여내었다. <봄날의 열병>에서 이 이름을 보지 않았다면 연작의 의심도 없었을 것이다. 누군가를 몰래 사랑한다는 것이 어떤 감정인지 아주 잘 표현했다. 욕망과 현실, 감정과 행동의 섬세하고 응축적인 묘사는 열정적인 짝사랑의 감정을 다시 느끼게 만든다.


<별의 사랑>은 폴의 학창시절 여자 동창 이야기다. 파티에서 다시 만나 섹스를 하지만 며칠뿐이다. 하지만 기억 속에서, 삶 속에서 이 둘은 묶여 있다. 그 시절, 그 감정, 그 욕망들은 결코 멈춰 있지 않다. 여자는 다른 남자와 결혼해서 아이도 낳았지만 폴에 대한 감정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둘은 학교를 찾아가서 자신들의 기억을 되살리고, 그때 왜 하나가 되지 못했는지 말한다. 이 이야기 속에 <첫사랑>에서 짧게 다룬 에피소드가 다시 나온다. 진짜 이야기는 끝나지 않을 사랑이란 말에, 별의 사랑, 내 사랑이란 표현에 함축되어 있다.


<애빙턴광장>은 하나의 표현이 강하게 부각된다. ‘가장 친애하는 당신’이란 관용적 표현이다. 자신이 거절하고 첨삭해준 여자 작가를 만나 자신의 욕망을 되돌아본다. 작은 인연과 반복된 만남과 솔직한 욕망과 표현하지 못한 감정이 잘 드러난다. 반가운 이름이 다시 나오고, 시간의 흐름을 느낄 수 있다. 앞의 이야기를 읽지 않았다면 평범한 노년의 이성애자가 느낀 욕망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한 인물의 삶을, 사랑을, 욕망을 되짚고 있다. 마지막 문장을 읽고는 크게 놀랐다. 예상하지 못한 상황과 이름이 나왔기 때문이다. 작가는 이렇게 작고 놀라운 반전을 이야기 속에 잘 녹여낸다.


읽으면서 젊은 작가란 착각을 했다. 작가의 출생연도를 보면 1951년 생이다. 그가 살아온 길이 얼마나 이 소설 속에 녹아 있을까? 그의 성 정체성은 무엇일까? 모두 읽고 난 후 가장 먼저 든 생각이다. 응축된 감정을 섬세하고 내밀한 묘사로 풀어내는 문장은 상황에 따라 바뀌면서 그 열정과 격정을 잘 표현한다. 다섯 편의 수수께끼 같은 이야기들이 머릿속에서 춤춘다. 사랑은 자신이 어떻게 조절할 수 있는 감정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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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중 톰의 정원에서
필리파 피어스 지음, 에디트 그림, 김경희 옮김 / 길벗어린이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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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 카네기상을 수상한 작품을 원작으로 그래픽노블로 만들었다. 사실 원작 동화를 읽지 않아서 아무런 선입견 없이 읽었는데 아주 재밌었다. 이야기의 설정과 풀어가는 방식이 어느 시간여행 소설에 뒤지지 않았다. 어린이들이 읽어도 좋겠지만 어른이 읽는다 해도 전혀 부족함이 없다. 원작 소설을 읽는 것보다 그래픽노블로 읽는 것이 더 쉽고 빠르게 읽을 수 있으니 많은 글자에 부담을 느끼는 아이들에게 좋은 선택이 될 것 같다. 나처럼 그래픽노블에서 시작한 독자는 원작 소설로 돌아가 이 둘을 비교하는 재미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톰이 이모집에 가게 된 이유는 동생의 홍역 때문이다. 걸렸다면 다른 사람에게 옮기면 안 되고, 걸리지 않았다면 동생에게 옮으면 안 된다. 이모집은 다세대 주택이고, 1층에 큰 괘종시계가 걸려 있다. 집주인이 시계태엽을 감아주는데 시간을 잘 맞지만 종소리는 시간과 맞지 않다. 도시의 삭막한 풍경과 집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매일을 견뎌낼 뿐이다. 이모가 맛있는 것을 해줘 잘 먹지만 남은 시간은 힘들게 버텨야 한다. 이런 톰에게 변화가 생기는 것은 시계에서 열세 번째 종이 울렸을 때다. 최대 열두 번이 정상인데 말이다. 톰은 이때 몰래 1층으로 내려가 뒷문을 연다.

 

이 작은 일이 톰에게 환상적인 일이 된다. 문을 열자 아주 멋진 정원이 펼쳐져 있는 것이다. 예상하지 못한 풍경에 톰은 아주 즐거워한다. 그런데 이 정원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 톰이 이모에게 말했지만 이 정원이 없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며칠 동안 이 정원을 돌아본 톰에게는 이 말이 오히려 믿을 수 없다. 그러다 우연히 열린 문을 열고 나가니 도시의 삭막한 작은 공간만이 있을 뿐이다. 그가 매일 방문했던 정원은 그럼 어디지? 이 현실 속에서도 톰이 정원으로 나가는 행동은 멈추지 않는다. 그리고 그곳에서 한 소녀를 만난다. 그녀의 이름은 해티다.

 

뒷문 정원 속 세계에서 톰은 유령처럼 움직인다. 사람들은 그가 옆에 있어도 알아채지 못하고, 그는 닫힌 문을 통과할 수 있다. 이런 그를 알아챈 인물이 해티다. 재밌는 것은 해티는 톰을 유령이라고 생각하고, 톰은 해티를 유령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둘은 이 넓은 정원 속 공간을 돌아다니면서 우정을 쌓고 재미있는 모험도 한다. 톰은 이 재밌는 모험을 동생에게 편지로 써서 보낸다. 톰은 이 정원 때문에 집에 돌아가고 싶은 마음도 사라진다. 요즘 같으면 인터넷으로 이 집에 대한 정보 등을 검색해서 할 수 있을 테지만 이때는 그런 정보를 얻기 쉽지 않다. 해티의 옷을 말해서 시대를 아는 정도가 최선이다.

 

분명 두 세계는 각자의 시간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해티의 시간이 훨씬 빠르게 지나간다. 정원에서 오랫동안 놀고 와도 겨우 몇 분이 지나갔을 뿐이다. 톰의 시간이 하루 지나갔지만 해티의 시간은 몇 개월이 지나간 경우도 있다. 톰의 성장이 그대로인 반면에 해티는 소녀에서 숙녀로까지 자란다. 그래도 둘의 우정은 변함이 없다. 해티가 남자친구가 분명한 남자와 함께 움직일 때는 소년과 숙녀의 차이가 분명히 드러난다. 또 중간에 해티가 나무에서 떨어졌을 때 톰의 존재를 알아챈 다른 인물이 나타난다. 예상하지 못한 장면이다.

 

이 책의 출간연도가 중요한 것은 시간 여행의 설정도 있지만 마지막 만남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존재하지 않는 시간과 시간의 비대칭성 등은 시간 여행 소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설정이 아니다. 해티가 남긴 스케이트를 톰이 신고 같이 달리는 것은 sf작가라면 다른 문제를 만들 수 있지만 이 소설 속에서는 자연스럽다. 소설에서는 많은 설정들을 묘사하고 설명해야 하겠지만 그래픽노블에서는 그림으로 간결하게 표현된다. 그래서 더 빨리 읽을 수 있고, 더 강하게 몰입하게 된다. 당연히 원작에 대한 관심이 더 생긴다. 이 작품을 그래픽노블로 그린 에디트란 작가도 관심이 생긴다. 이 책은 초등학교 고학년 아이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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