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체 3부 : 사신의 영생 (반양장) - 완결
류츠신 지음, 허유영 옮김 / 단숨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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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비밀 하나부터 말하고 시작하자. 처음 <삼체>가 나왔을 때 중국 SF라고 무시했다. 책을 살려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런데 2015년 휴고상을 수상했다. 먼저 놀랐고, 외국 평론가들이 중국 환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란 편견을 잠시 가졌다. <삼체>를 샀지만 크게 읽으려는 마음은 없었다. 그러다 <삼체 2부>를 먼저 읽었다. 충격이었다. 중국에서 이런 하드SF를 쓸 수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분량이 거의 700쪽인데도 큰 지루함이 없었고, 인류가 삼체의 감시에서 벗어날 방법이 궁금했다. 그리고 뤄지가 그 방법을 찾아내었을 때 그 법칙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2부를 읽을 때만 해도 1부를 바로 시작하고 싶었다. 늘 그렇듯이 지나간 책들에게는 왠지 쉽게 손이 나가지 않는다. 3부를 먼저 읽었다. 800쪽이 넘는 이 작품을 읽으면서 나의 물리학 수준이 얼마나 낮은지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작가가 끝없이 펼쳐내는 물리학은 이해의 한계를 넘었다. 그런 것이 있구나 하고 대부분 넘어갔다. 작가가 그려낸 우주와 지구의 모습은 상상을 초월한다. 하나의 행성이나 작은 우주가 아니라 우주의 끝까지 나아간다. 그 과정을 보면서 영화 <인터스텔라>가 떠오르기도 했다. 물론 시간과 중력이란 문제보다 훨씬 큰 주제를 다루면서 상상력의 한계를 돌아보게 한다.

 

이야기는 전편처럼 삼체가 지구를 지배하는 환경에서 시작한다. 인류는 이 위기를 벗어날 방법 중 하나로 UN가 새로운 과학을 연구한다. 이런 일보다 먼저 윈톈밍이란 인물의 연애사를 간략하게 다룬다. 그의 아이디어로 돈을 번 친구가 로얄티 형식으로 돈을 주고, 이 돈으로 UN이 자금 마련을 위해 판매하는 별(DX3906)을 자신이 사랑했던 여인 청신에게 선물한다. 이 시기는 안락사법이 있어 누구나 불치병에 걸리면 자신의 죽음을 선택할 수 있다. 그가 죽으려는 마지막 순간 청신이 나타난다. 이 법이 만들어진 이유가 나온다. 아주 잔혹한 이유다. 현재의 과학기술로는 광속의 10분의 1 속도를 내는 우주선에 실을 수 있는 무게가 겨우 뇌 정도이기 때문이다. 몇 명과 경쟁을 거친 후 그의 뇌는 우주 속으로 날아간다. 그의 뇌를 발견한 다른 우주인이 그를 통해 변화를 일으킬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이 시대의 특징 중 하나는 동면이다. 윈톈밍이 별을 선물했다는 사실과 그를 잔혹한 환경 속으로 밀어넣었다는 자각이 그녀를 동면하게 한다. 그 사이 뤄지가 암흑의 숲 전략으로 삼체의 진격을 막았다. 인류는 삼체와 교류하면서 과학을 발전시키고 있었다. 동면에서 깬 청신은 윈톈밍이 준 별 덕분에 엄청난 부자가 되었다. 면벽자 뤄지는 언제나 암흑의 숲에 삼체의 위치를 알릴 수 있는 자세를 한 채 수십 년을 산다. 검잡이라고 하는데 새로운 검잡이 선출이 예정되어 있다. 동면에서 깨어난 청신은 바뀐 환경을 보고, 갑자기 자신이 검잡이가 되기로 한다. 그녀는 뤄지와 간결하게 지위를 바꾼다. 그리고 삼체의 공격이 시작된다. 그녀가 단추를 누르면 삼체의 위치가 드러난다. 하지만 그녀는 누르지 않는다. 그녀의 첫 번째 실수다.

 

삼체의 지자는 말한다. 우주는 잔혹한 곳이라고. 그들은 청신이 검잡이가 되면 단추를 누르지 않을 것이란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위장된 평화가 깨어지고, 삼체는 인류를 호주로 모두 이주시키려고 한다. 당연히 청신은 최고의 죄인이다. 그녀가 내세운 사랑은 비정한 우주의 법칙에 맞지 않다. 그런데 이 삼체의 공격이 우주를 항해하던 우주선들에 영향을 미친다. 우주선이 중력파를 발사한다. 이것은 바로 삼체 행성의 멸망을 가져온다. 지구로 향하던 삼체 선단은 방향을 돌렸다. 왜 그랬을까 하는 이유는 그 다음에 나온다. 그 이유 때문에 일어나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청신의 다음 동면 이후에 펼쳐진다.

 

하나의 별을 없앤 무기는 광립이라고 한다. 삼체인들이 떠난 이유는 지구의 위치도 노출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재밌는 점은 윈톈밍이 언제 나올까 하는 것이다. 지자가 지구를 떠날 때 윈톈밍이 삼체인들과 함께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청신과 만나게 한다. 물론 직접 만나는 것은 아니다. 이 만남에서 만약 어떤 정보라도 흘리면 청신은 죽는다. 윈톈밍은 동화란 형식을 통해 인류에게 과학 정보를 전달한다. 그런데 이 동화가 아주 재밌다. 인류에게는 그 숨겨진 의미를 해석해야 하는 어려운 문제가 남아 있지만 말이다. 은유는 언제나 해석의 문제를 낳고, 이 해석은 오류를 낳을 수밖에 없다. 이 오류는 인류의 한계이기도 하다.

 

중반 이후 단위가 너무 거대해져 머릿속으로 상상하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이런 SF소설을 읽을 때 느끼는 나의 한계다. 광속과 곡률추진을 연결한 것은 이해 불가능한 영역이다. 광속으로 날아가면서 생기는 문제 등을 이야기할 때 비행기가 날면서 남기는 흔적이 우주에도 남는다는 것 정도 이해할 뿐이다. 광립 공격보다 더 대단한 것은 차원 공격인데 이 상상력이 정말 기발하다. 선진 과학기술을 가진 우주인들이 다른 적들을 공격하는 방식으로 우주법칙을 이용한다고 했을 때 과학의 무서움을 다시 느낀다. 3부작으로 이어지면서 너무 거대해진 규모는 나의 상상력을 초월해서 조금 아쉽다. 머릿속은 작가가 보여준 더 넓은 우주의 짧은 공간과 이론으로 복잡하게 뒤섞였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으로 긴 여운을 남긴다. 그리고 아직 내가 <삼체> 첫 이야기를 읽지 않았다는 사실이 기쁘다. 소우주와 5킬로그램이 머릿속에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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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죽인 남자가 돌아왔다
황세연 지음 / 마카롱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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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 없는 마을 중천리, 그 중에서 달랑 여섯 가구가 모여 사는 장자울에서 아주 이상한 사건이 일어난다. 그 첫 시작은 집에서 키우던 소를 팔고 돌아온 소팔희가 그 돈을 훔치려는 도둑인줄 알고 그 사람을 아주 강하게 여러 번 때린 일이다. 신고하고 넘어가면 되지만 조카 황은조가 눈에 밟힌다. 그녀가 잡혀가면 은조는 고아원으로 가야 한다. 이것을 옮기기 위해 리어카에 시체를 놓아두는데 이것이 사라진다. 나중에 다시 리어카만 돌아온다. 얼마 후 이장의 차가 누군가를 치었다. 아니 혼자 굴러가 사람을 치었다. 시체는 나무와 차 사이에 끼었다. 그런데 이 시체는 팔희가 죽였던 신한국이다. 뭐지? 어떻게 시체가 옮겨졌지? 누가 옮긴 것이지?

 

보통 이런 일이 일어나면 신고하고 끝내면 된다. 그런데 이 마을 사람들은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일이 있다. 범죄 없는 마을이란 타이틀과 가슴 한 곳에 숨겨둔 각자의 비밀들이다. 마을 사람들은 신한국의 시체 처리를 둘러싸고 고민을 한다. 시체를 어떻게 버릴까 고민한다. 자살바위 자살로 처리하기에는 가슴의 타이어 자국이 문제다. 과학수사의 공포가 끼어들면서 사람들은 더욱 고민한다. 나중에 결론난 것은 시체를 집과 함께 태우는 것이다. 마을 사람들의 공모는 자세한 내막을 알지 못하고, 오랫동안 머물면서 수사하지 않으면 쉽게 알 수 없다.

 

이 이야기를 이끌고 나가는 인물은 악연으로 이어진 최순석 형사와 조은비 기자다. 최 형사는 관할서를 바꾸려다가 시체 위치를 옮기는 한 장의 사진 때문에 한 계급 강등된 적이 있고, 조은비 기자는 이 사진한 장으로 정식 기자가 되었지만 최 형사가 보낸 가짜 기사를 편집장이 특종처럼 내보내면서 짤렸다. 이런 인물들이 장자울에 온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장자울은 비가 많이 오면 수문 개봉으로 마을이 고립된다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이 둘은 이 마을에 머물게 된다. 그리고 둘은 사건 현장을 둘러보고, 단서를 모으고, 진실에 한 발자국씩 다가간다.

 

소팔희나 이장의 차 사고만 놓고 봐도 이상한데 이번에는 특별한 정보가 조은비에게 전해진다. 그것은 자살한 시체의 정체가 신한국이란 점이다. 그럼 그 집에서 타버린 시체는 누구란 말인가? 그리고 신한국은 어떻게 그 자살 바위 밑에 있게 된 것일까? 이런 의문을 풀기 위해 고립된 상황에서 불편한 두 인연은 함께 수사를 한다. 그 첫 번째는 화재 현장에서 발견한 지포 라이터다. 싸구려가 아닌 비싼 정품이다. 이 물건의 주인이 누군가 조사하면서 이 사건의 연결 고리 중 하나를 발견한다. 하지만 이것은 시작일 뿐이다. 다른 용의자들이 또 드러난다. 이렇게 시작한 수사는 굴비처럼 많은 용의자를 엮어낸다.

 

순진한 마을 사람들을 겁주는 역할을 최 형사가 아주 잘 해낸다. 과학수사의 공포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백하게 만든다. 최 형사가 이 마을에 온 이유는 바로 사채업자의 요청 때문이다. 신한국이 빌린 원금과 이자 5천만 원을 받아내기 위해서다. 원금은 천만 원인데 이자가 4천만 원이다. 이자제한법이 사라지고, IMF이후 힘든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이 고리사채는 최악의 악몽이 된다. 이것을 벗어나는 방법은 한탕 밖에 없다. 복권 등이 유일한 탈출구다. 그러나 당첨자는 일주일에 한 명뿐이다. 하루에도 그 몇 십배의 사람들이 생활고에 시달리는데 말이다.

 

작가는 이 한정된 마을과 괴상한 시체 이동을 재밌게 엮어 아주 흥미롭게 풀어낸다. 각자의 사연을 풀어놓고, 왜 이런 상황이 발생하게 되었는지 이유를 들려주면서 이기심과 공동체의식을 같이 보여준다. 시체를 다른 곳으로 옮긴 것은 자신의 이기심 때문이고, 그 표면에는 범죄 없는 마을이란 타이틀 때문이다. 여기에 최 형사와 조 기자가 서로 꿍짝이 맞아 현장을 수사하고, 사진 찍고, 어르고 하는 행동들이 마을 사람들의 입을 열게 한다. 최 형사의 비밀도 나중에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렇게 좌충우돌하는 듯한 이야기는 한국형 마을 밀실 미스터리를 재밌게 만들었다. 그리고 신한국이란 이름이 그냥 지은 게 아닌 것 같다. 각 개인의 캐릭터를 살리면서 곳곳에 이벤트를 펼치고 예상하지 못한 상황들을 재밌게 만들었다. 관심을 가져야 할 작가 한 명이 또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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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펙트 마더
에이미 몰로이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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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펴고 몇 쪽을 읽자마자 어딘가에서 본 듯한 심리 묘사들이 나왔다. 첫 아이를 낳은 엄마들의 걱정과 불안과 욕망 등이 너무 낯익었기 때문이다. 미국이라면 조금 다르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들이 이 심리 묘사를 읽으면서 산산조각났다. 그 동안 수없이 읽었던 미국 소설에서 이렇게까지 초보 엄마들의 사실적인 심리 묘사를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적인 묘사들을 보면서 내 속에 자리잡은 선입견들을 떠올리게 되었다. 방송이나 영화 등에서 보여준 착한 엄마들의 이미지다. 현실은 몇몇 특별한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아등바등 힘들게 버티고 있을 뿐이다.

 

5월맘. 엄마들의 커뮤니티다. 실제 한국도 지역맘 카페 같은 것들이 상당히 잘 되어 있다. 5월맘의 몇 명이 출산 후 아기들을 데리고 나와 모임에 참석한다. 출산 전부터 자신들의 경험과 정보를 교류하다가 오프라인 만남을 가진 것이다. 정기적으로 나오는 엄마들도 있고, 가끔 참석하는 엄마도 있다, 재밌는 것은 토큰이라고 불리는 아빠의 참석이다. 엄마들은 그가 게이일 것이라고 추측한다. 이 엄마들이 무더운 7월 어느 날 힘겨운 육아를 잠시 벗어나기 위해 동네 술집에서 한 잔 하기로 한다. 즐겁게 즐기는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엄마의 아기가 사라진다.

 

위니. 아기를 잃은 엄마다. 그녀는 20년 전 유명 TV 드라마의 주연 배우이자 하이틴 스타였다. 5월맘 엄마들은 이 사실을 몰랐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녀의 신상이 알려지면서 알게 된 사실이다. 그들이 모였던 그날 밤 엄마들은 그녀의 참석을 강하게 원했다. 거절을 거절한다는 표현이 나올 정도다. 이 이전만 해도 그녀가 얼마나 예쁜지 표현이 없었다. 이 사건 후 인물 묘사가 나온다. 엄마들의 출산 후 늘어난 살들에 대한 묘사가 주로 나와 현실적으로 고개를 끄덕였을 뿐이다. 사실 5월맘들에게 위니는 엄마라는 연대를 제외하면 아주 정보가 부족하다. 실제 이들은 개인 정보를 은밀하게 나누지는 않는다.

 

술집에서 잠시 엄마라는 현실을 내려놓은 장면이 나온다. 아기 없이 즐기는 시간이다. 아이 없이 나가서 친구를 만나길 얼마나 바라는지 잘 알기에 이 장면을 보면서 공감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불편한 장면이다. 위니는 앱으로 아이를 계속 들여다보지만 넬이 그녀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앱을 지운다. 나중에 이 사건이 커지면서 넬이 술집에서 노래하고 춤춘 장면이 사진으로 퍼진다. 보수적인 엄마 단체와 논란적인 가십을 다루는 방송인과 수많은 네티즌들이 이것을 물고 늘어진다. 엄마의 자격이란 부분이다. 이 소설의 제목처럼 완전한 엄마는 상상 속의 존재일 뿐이다. 엄마의 자격을 묻는 그들조차 실제 그렇게 행동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5월맘 중 이 사건에 집착하는 세 명이 있다. 대필작가인 콜레트, 다른 도시에서 온 프랜시, 영국 억양을 가지고 있고 출산 때문에 쉬고 있는 넬 등이다. 작가는 이 세 명의 엄마를 통해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초보 엄마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출산과 육아에 지친 이들이 위니의 아기가 사라진 사건 때문에 더 혼란을 겪는다. 아기가 살아있길 바라고, 방송과 인터넷으로 정보를 모은다. 현실의 삶은 또 그들을 오늘을 짓누른다. 할 일은 그대로 있고, 걱정과 불안은 늘어난다. 이들은 모여 정보를 주고받는다. 새로운 사실이 드러나고, 과거가 폭로된다. 사건은 더욱 진흙탕 속으로 빠진다.

 

초보 엄마들에 대한 탁월한 심리 묘사와 더불어 육아 휴직 문제도 같이 다루어진다. 유명 정치인의 자서전 대필이나 대권주자의 권력을 이용한 성추행, 어린 시절 일어난 성폭력과 낙태 등 수많은 이야기를 작품 속에 풀어놓았다. 그리고 정체를 명확하게 드러내지 않은 한 엄마의 수기까지 나오면서 풍성한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당연히 가독성이 좋다. 독자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려 풀어내는 이야기와 반전은 또 다른 재미다. 아이가 사라진 순간 엄마들의 공포가 시작되지만 독자들이 서늘함을 느끼는 부분은 이 엄마들이 불안하게 움직이고, 추측하고, 흔들리는 순간들이다. 아이에 대한 걱정은 결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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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 사계절 네 도시에서 누리는 고독의 즐거움
스테파니 로젠블룸 지음, 김미란 옮김 / 미래의창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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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혼일 때, 노총각으로 살 때 어쩔 수 없이 혼자 여행을 했다. 어떤 날은 혼자 차를 몰고 나가 하루 종일 운전하고, 차 안에서 자고,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해외로 나가서는 대충 짜놓은 일정과 여행 카페의 글들을 참고한 혼자만의 놀이였다. 그 당시를 회상하면 좋았던 것들이 더 많이 떠오르지만 그 시간들 속에는 혼자 온 여행의 외로움에 몸부림치는 나의 모습도 있다. 이때마다 누군가와 함께 오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그러다 아침이 되면, 또 다른 도시로 이동하면 그 편함과 자유로움에 나를 맡긴다. 이 다른 감정들 속에 나의 삶을 돌아보는 시간을 던져주는 것은 역시 홀로 여행하던 시간들이다.

 

내가 이 책에 끌렸던 것도 바로 네 도시와 고독의 즐거움을 소개한 글 때문이다. 네 도시 중 가본 곳은 파리 한 곳 밖에 없지만 다른 도시들도 책이나 영화나 드라마 등으로 얼마나 자주 본 곳이던가. 또 그 도시들은 나의 여행 리스트에 항상 올라가 있는 곳들이다. 혹시 여행의 정보를 얻을까 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이 책은 여행가이드북이 아니다. 며칠 동안 혼자 도시를 여행하는 즐거움을 다룬 책이다. 혼자 다니게 되면서 여행에 더 집중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여준다. 누군가와 함께 가면 그 누군가를 신경 쓸 수밖에 없고 기억은 동반자와 함께 한 것들이 더 기억에 남는다. 실제 나의 경험도 그랬던 적이 더 많다.

 

낯선 도시 세 곳과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도시 한 곳을 돌아본다. 파리, 이스탄불, 피렌체 등이 여행지라면 뉴욕을 살고 있는 곳이다. 파리 출장에서 시작된 이 기획은 다시 파리 방문으로 시작한다. 혼자 여행하면서 음식에 더 집중하는 모습을 아주 잘 보여준다. 혼밥 이야기를 하면서 한국을 인용한 부분은 흥미로웠고, 언제부터 잊고 있던 음미란 행위를 다시 떠올리게 되었다. 박물관에 갔을 때 감상보다는 훑어보기가 된 관람을 떠올려주었고, 파리란 공간 속을 살고 거쳐간 수많은 문인과 학자와 예술가들의 흔적이 오래 전 파리 방문의 기억을 되살려주었다. 천천히 더 오랫동안 머물면서 도시를 느껴보고 싶었던 그 감상 말이다. 발로 도시 여기저기를 걸었던 그 시간들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간다.

 

이스탄불. 언제부터인가 나의 시선을 끌었다. 동양과 서양의 문화가 교차하는 곳이고, 기독교의 흔적 위에 이슬람의 문화가 쌓인 곳. 하맘에 대한 글은 괜히 한국 찜질방을 떠올려주었고, 보스포루스 해협은 다른 여행 작가의 글과 말들을 생각나게 한다. 이스탄불과 파묵은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다. 아직 읽지 못한 <순수박물관>을 재현한 곳이 나의 시선을 끌고, 저자가 떠날 때 일어난 테러가 마음을 아프게 한다. 얼마 전 읽은 세계여행 작가의 글에서 이스탄불 대신 다른 지역이 나온 것을 보고 아쉬웠는데 이것을 조금 해소했다.

 

피렌체 이야기 속에서 잘 몰랐던 몇 가지 사실들이 있다. 대홍수가 대표적이다. 이 도시를 이야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가문 하나가 있는데 저자는 다루지 않는다. 수많은 예술가와 예술작품만으로 충분한 곳이기 때문일 것이다. 르네상스 예술품을 감상하기 가장 좋은 곳 중 하나이자 우리가 알고 있는 유럽 중세 예술가 이름 대부분이 이곳에서 다시 발견된다. 미켈란젤로의 이름이 나오는 것에 반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이름이 없는 것은 또 아쉽다. 너무 많은 볼 거리가 정신을 어지럽힌다는 스탕달의 표현은 루브르 박물관의 수많은 예술품을 생각하면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뉴욕, 많은 여자들이 가보고 싶어 하는 도시다. 와이프가 신혼여행지 두 곳을 말했을 때 들어간 곳이다. 인종과 문화의 용광로인 곳이다. 하지만 저자는 이곳에 살고 있다. 그녀의 글은 자신의 도시 다시 보기다. 세계적인 관광지 중 한 곳인 서울에 살면서 서울을 낯설게 보지 못하는 나의 모습을 떠올려본다. 리포터의 눈과 습관으로 일상을 보는 자세란 표현에서 나의 도시와 동네를 다시 생각해본다. 한 도시에 오래 살아도 가보지 못한 곳이 얼마나 많고, 모르는 곳이 또 얼마나 많은가. 내가 혼자 살 때도 서울을 천천히 돌아본 적이 거의 없다. 목적지로 그냥 걸어갔을 뿐이다. 그러다 가끔 예상하지 못한 발견을 한다. 그녀의 글들은 나를 이런 생각으로 이끌고, 도시 여행을 조금 다른 모습으로 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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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현대문학 가가 형사 시리즈 개정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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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가 형사 시리즈를 처음 읽었다. 현대문학에서 가가 형사 시리즈라고 처음 내었을 때 시리즈 첫 권부터 보자고 마음먹고 사놓은 구판들을 생각하면 참 늦은 시작이다. 이번 개정판 이전에는 가가 형사 시리즈가 하나의 시리즈로 묶여 나오지 못했다. <악의>와 <붉은 손가락>이 별도로 나왔었다. 사실 이 두 작품을 읽으려고 하다가 가가 형사 시리즈란 사실을 알고 살짝 멈춘 것도 있다. 그러다 우연히 이 <악의>부터 읽게 되었다. 첫 권부터 읽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조금은 있지만 왜 이 책을 지금에야 읽었을까 하는 마음이 더 강하다. 개인적으로 구성이나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 나의 취향에 잘 맞기 때문이다.

 

집에 그냥 묵혀두고 있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들이 많다. 한때 좋아해서 산 책도 있고, 워낙 인지도가 높아 사놓은 책들도 있다. 그러다 습관처럼 그의 책을 사고, 읽으면서 상당히 많은 실망을 했다. 가독성이 좋아 잘 읽히는 장점은 있지만 완성도 측면에서 많은 아쉬움을 주기 때문이다. 처음 그의 작품을 읽고 아주 깔끔한 이야기 전개에 만족했고, 단편들에 더 잘 어울리는 작가가 아닌가 생각했었다. 작품들의 편차도 상당해 쉽게 추천할 수 있는 작품들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물론 그의 작품이 나오면 바로 사는 주변 사람들도 있다. 너무 많은 책들이 나와 솔직히 복불복 성향이 있다.

 

<악의>는 가가 형사 시리즈 세 번째다. 개정판과 구판의 차이를 알지 못하니 이 부분은 그냥 넘어가자. 이전부터 이 작품은 좋은 평가를 받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실제 읽어보니 좋은 평가를 받는 것이 당연하다. 실제로 목차만 보고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짐작하기 쉽지 않았다. 노노구치 오사무의 수기와 가가 형사의 기록이 교차하면서 한 살인자를 찾아내고, 왜 그가 피해자를 죽였는가 하는 동기를 파헤치는 작품이다. 범인을 초반에 잡으면서 사건이 쉽게 해결되었고, 수기를 통해 동기도 밝혀졌지만 가가 형사는 이 동기가 수상하다. 그의 수사는 더 이어지고, 새로운 과거가 드러나면서 반전으로 이어진다.

 

가가 형사 시리즈를 처음 읽었지만 그 작품들에 대한 간단한 정보들은 이미 많이 알고 있다. 그가 학교 선생을 하다가 형사로 전업했다는 것도 알았다. 하지만 왜 학교 선생을 그만 두게 되었는지 하는 이유가 이번 소설에서 나온다. 이것은 살인 동기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단서가 된다. 노노구치 오사무의 수기가 보여주는 상황들은 지극히 자신의 입장에서 쓴 글들이지만 읽을 때 독자들은 이것을 그렇게 크게 의심하지 않는다. 그가 범인으로 잡혀 자백한 것을 그대로 믿게 된 이유도 수기란 개인 기록 때문이다. 여기에 몇 가지 증거가 곁들여지면 이 믿음은 더욱 견고해진다. 작가가 수기와 기록이란 다른 용어를 사용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노노구치는 가가 형사가 한때 선생으로 일했던 학교의 국어교사였다. 친구 히다카의 추천으로 아동문학을 시작했다. 첫 수기를 읽다보면 그의 행동에 의심스러운 부분을 발견하게 되고, 형사들은 그를 조사해 범인으로 잡는다. 이때의 트릭을 보면 아련한 과거의 모습이 떠오른다. 아직 컴퓨터가 대중적으로 사용되던 시절이 아니기 때문이다. 히다카는 베스트셀러 작가이고, 몇 년 전 아내가 교통사고로 죽은 적이 있다. 이 아내의 물품 몇 가지가 노노구치의 방에서 발견되면서 그를 범인으로 잡게 된다. 그의 자백이 수기란 점과 형사들의 생각이 유령작가란 부분에 맞추어져 있었기에 빠르게 해결된다. 그런데 작가는 이 이후에 가가 형사의 기록을 통해 이 수기를 다시 조사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이 소설 속에서 히다카의 소설 중 한 편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수렵 금지구역>이란 소설이다. 너무 사실적으로 기록해 그 가족들의 반발을 산다. 학교 폭력과 그 가해자가 이후 한 창녀에게 죽게 된 이유를 파헤친 소설이라고 하지만 너무나도 사실적인 부분이라 문제를 삼은 것이다. 작가는 다루고 있지 않지만 그 당시 피해자가 자신의 경험을 사실대로 기록한 것을 문제 삼을 수 있을까? 그 가족들이 그것 때문에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지만 실제 피해 당사자들의 그 당시 피해는 그들이 어떻게 보상할 것인가. 소년원에 다녀왔다고 모두 해결될까? 어떻게 보면 두 피해자의 갈등인데 이 부분을 다룬 소설들이 최근에 많이 나오고 있다.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다.

 

처음 노노구치의 수기와 가가 형사의 기록을 읽으면서 지금까지 내가 읽었던 작가의 작품과 다른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역자의 노력이 중간에 있었을 테지만 두 사람의 문체가 달라 순식간에 매혹되었다. 어떻게 보면 평범한 살인 사건인데 그 이면을 파헤치고, 또 파헤치면서 거대한 트릭을 발견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작품의 완성도는 바로 이 과정 속에서 나온다. 다른 작품처럼 군더더기 없는 전개지만 무엇보다 곳곳에 깔아놓은 장치들의 이용이 탁월했다. 소설이나 소품의 이용과 무엇보다 수기란 설정이 거대한 트릭을 만들었다. 이 시리즈에 더 관심이 간다. 개인적으로 작가의 최고 작품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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