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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베의 태양
돌로레스 레돈도 지음, 엄지영 옮김 / 열린책들 / 2019년 8월
평점 :
<보이지 않는 수호자>의 작가다. 이 소설을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있다. 다시 그때의 서평을 찾아보니 이번 소설의 느낌이 그 속에도 담겨 있다. 갈등을 억지로 만들지 않고, 조금 느슨한 느낌이 있다는 글이다. 이번 작품도 속도감 있게 이야기가 진행되지는 않는다. 자극적인 연쇄살인이 벌어져 긴장감을 높이지도 않는다. 새로운 과학수사기법을 이용해 시선을 끌지도 않는다. 다만 갈리시아 지역의 귀족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숨겨져 있던 과거의 죽음과 비극을 파헤치고 사건의 진실에 한발씩 다가간다.
처음 이 책을 받았을 때 크기와 한 쪽의 분량에 깜짝 놀랐다. 이전에 나왔던 열린책들의 하드커브 책들을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름과 지명과 문장들에 익숙해지기 전까지 조금 더딘 속도로 진도가 나아갔다. 물론 후반부는 수사의 결과가 조금씩 나오고, 숨겨져 있던 과거의 비밀이 하나씩 드러나면서 속도가 올라갔다. 그 과정 속에서 처음에 예상했던 범인은 사라지고, 새로운 용의자가 드러났다. 하지만 이런 부분보다 한 귀족 가문이 그들의 온갖 비리와 명예를 지키기 위해 저지른 행위들에 더 시선이 갔다. 비극은 언제나 과거에 집착하면서 생기기 때문이다.
소설가 마누엘이 <테베의 태양>이란 소설을 집필하던 중 과르디아 시빌 대원 두 명이 방문한다. 그들은 마누엘의 배우자인 알바로 무니스 데 다빌라의 집인지 묻는다. 그가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말한다. 지역은 루고 주 몬포르테 지역이다. 지역을 듣고 알바로가 아니라고 부인한다. 그가 바르셀로나로 출장을 갔다고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전화 연락이 되지 않는다. 믿을 수 없다. 아니 믿고 싶지 않다. 왜 그가 자신에게 다른 말을 했을까? 알바로의 비서에게 연락을 한다. 거기에서 들은 소식은 배우자의 신뢰를 깨트리는 말을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동성 배우자의 죽음과 함께 그가 자신을 속이고 다른 곳으로 갔다는 사실은 충격이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실이다. 급히 달려간 곳에서 알바로의 시신을 확인하는데 현지 과르디아 시빌 요원 중 중위 한 명이 교통사고가 아닐 수 있다고 말한다. 배우자의 비밀스러운 이중생활에 이런 말들은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공증인이 재산을 그에게 남겼다고 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배우자 죽음이 주는 상실감과 배신감이 온몸을 집어삼킨다. 알바로가 남긴 재산을 그의 어머니와 동생 등에게 모두 넘기기로 한다. 바로 넘기고 싶지만 알바로가 3개월이란 시간 장치를 해놓았다. 장례식을 마친 후 이제 떠나려고 한다.
떠나는 그를 사고가 아니라고 말한 과르디아 시빌 요원이 찾아온다. 바로 노게이라다. 그는 이제 퇴직했다. 후작 가문이 이 지역에 어떤 존재인지 말하고, 알바로의 몸에 난 상처와 차에 남은 흔적의 의혹을 말한다. 아직 분노 때문에 이성을 충분히 회복하지 못하고 있지만 떠나는 시간을 늦춘다. 그리고 무니스 데 다빌라 후작의 집을 찾아간다. 처음 그를 봤을 때 사람들이 보여준 시선이 재산 포기선언으로 많이 누그러졌다. 아름다운 후작 가문의 정원을 돌아보지만 그의 감정이 제대로 추스러진 것은 아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새로운 소식을 듣게 된다.
한 지역의 귀족 가문에서 동성애자가 나왔다는 사실은 공식적으로 알려지지만 않는다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알바로는 집을 떠났고, 동성 결혼까지 했다. 이 동안 부자의 인연은 거의 끊어지다시피 했다. 아버지가 죽으면서 동생들 중 한 명에게 귀족 지위를 물려줄 수도 있는데 그 작위를 알바로에게 상속했다. 알바로가 파악한 내용만 보면 집안이 망하기 직전이다. 그의 노력으로 빚은 모두 청산되었다. 사업도 성공적이다. 가문을 위한 아버지의 냉철한 판단이 가문의 몰락을 막은 것이다. 하지만 이 가문의 비극은 아버지가 죽은 다음부터 계속 이어진다. 그 첫 번째는 아버지 장례 얼마 후 막내 동생이 마약 남용으로 죽은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알바로의 죽음이다.
노게이라는 마누엘에게서 받은 전화정보 등을 기반으로 여러 가지를 수사한다. 알바로의 친구였던 신부 루카스를 통해 알바로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듣는다. 알바로 막내 동생의 죽음도 노게이라는 의문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마누엘은 그 당시 상황을 루카스 등에게 듣는다. 알바로인 것 같은 사람이 그를 마지막으로 방문한 것을 본 듯하다고. 이렇게 하나씩 파고들면서 나오는 사실들은 수도원의 비리 은폐와 후작 가문의 숨겨진 비밀들이다. 이때부터 이야기는 더욱 긴장감이 넘치고, 한 사람의 비극에 서로 눈물을 흘린다. 한 사람의 죽음 뒤에 숨겨진 장대한 이야기가 사람들의 삶 속에서 우뚝 솟아난다. 그리고 내비게이션의 주소 하나는 눈시울을 붉히게 만들고, 긴 여운을 남긴다. <바스탄 3부작> 중 나머지 2편은 언제 나오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