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랑콜리 해피엔딩
강화길 외 지음 / 작가정신 / 2019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박완서 작가 콩트 오마주다, 한국 소설가 29명이 박완서 작가 8주기를 추모하기 위해 짧은 소설들을 모아 내었다. 이 콩트집을 읽기 전에는 박완서 작가가 콩트집을 내었다는 것을 몰랐다. 사놓고 묵혀두고 있는 책 중 한 권인 <나의 아름다운 이웃>이 작가의 유일한 콩트집이라고 한다. 유일한 콩트집도 1981년에 <이민 가는 맷돌>이란 제목으로 나왔다고 하는데 솔직히 이 책의 제목은 잘 모르겠다. 그러니까 <나의 아름다운 이웃>은 개정판이다. 후배 작가 29명이 낸 이 콩트집은 아주 낯익은 이름으로 가득하다. 물론 한 작품도 읽지 않았거나 낯선 작가도 몇 명 보인다.

 

29편을 일일이 나열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 콩트집을 한 번에 읽은 것이 아니라 앞의 작품들은 기억이 가물가물한다. 간단한 이야기라 나의 저질 기억력이 더 뒤섞인다. 한국 대표 작가들의 작품이라고 하지만 모든 작품이 취향에 맞는 것은 아니다. 이전부터 좋아했던 작가도 있고, 새롭게 관심을 두고 있는 작가들도 있다. 그것과 별개로 이 콩트를 재밌게 쓰는 작가는 또 따로 있다. 재미와 상관없이 추모를 다룬다는 점에서 함정임의 <그 겨울의 사흘 동안>은 강한 인상과 여운을 남긴다. 박완서의 담당 편집자였던 기억을 담고 있기에 더욱 그렇다.

 

가장 재밌게 읽은 한 편을 고른다면 조남주의 <어떤 전형>이다. 수시 합격을 위해 노력하는 학생과 학부모의 모습은 코믹하지만 씁쓸한 현실을 잘 보여준다. 이기호의 <다시 봄>은 아주 씁쓸했다. 장난감 하나가 이렇게 가슴을 아리게 하다니. 조경란의 <수부 이모>에서 본 이모의 삶은 우리의 근대 속에서 가끔 본 것 같은 인물이다. 읽으면서 이모들이 생각났다. 최수철의 <세상에서 가장 게으른 자의 죽음>은 이 게으름을 어떻게 볼 것인가 잠시 고민하게 만들었다. 최수철의 단편 중 가장 재밌게 읽었다면 조금 과장된 표현일까?

 

강화길의 <꿈엔들 잊힐 리야> 속에서 집 이야기를 읽고 나의 선택들이 떠올랐다.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의 재밌는 사연은 힘든 삶의 극히 일부다. 김종광의 <쌀 배달>은 봉사활동 이야기지만 선의가 아닌 현실을 담고 있다. 백민석의 <냉장고 멜랑콜리>는 냉장고 에피소드와 시대문제를 엮었다. 물론 무겁지 않다. 임현의 <분실물>은 남의 이야기 같지 않았다. 조해진의 <환멸하지 않기 위하여>는 대학 채용 문제를 다루는데 환명의 시간은 언제일까? 묻게 된다. 한창훈의 <고향>은 그의 산문집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그가 바닷가에서 어떻게 살았는지 말했던 그 글들 말이다.

 

개별적으로 말하지 않은 작품들도 재밌게 읽은 작품들이 상당히 있다. 읽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면서 기억이 퇴색되었고, 제목과 몇 문장만으로 그것을 되살리기에는 나의 게으름이 한몫한다. 또 하나 솔직히 말하면 이 콩트집을 다 읽은 지도 한참 되었다. 퇴색한 기억력과 대충한 복기의 결과는 생각보다 훨씬 볼 품 없다. 그래도 잠시 이 글을 쓰면서 재밌게 읽었던 작품이나 기억을 떠올릴 수 있었다는 점은 좋다. 뭐 이렇게 글을 남기지 않은 책들이 자주 있는 현실을 감안한다면 더욱 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 여름, 그 섬에서
다이애나 마컴 지음, 김보람 옮김 / 흐름출판 / 2019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퓰리처상 수상자란 설명에 먼저 혹했다. 이런 작가의 자전적 에세이란 부분과 대서양 외딴 섬 아조레스란 곳에 나의 시선을 끌었다. 퓰리처상 수상자가 그 섬사람들을 만나서 듣고 경험한 일들을 기록했다니 무슨 이야기가 담겨 있을까 궁금했다. 이 에세이를 읽으면서 새로운 사실을 많이 알게 되었고, 이 섬사람들 이야기 속에서 우리나라의 모습도 잠시 발견했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생각한 것보다 취향을 많이 탓다. 생각한 것 같은 이야기가 없었던 탓일까? 아니면 바쁘고 기분 나쁜 일로 나의 집중력이 깨어진 탓일까? 모두 읽은 지금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 섬이 아주 매력적으로 다가왔다는 사실이다.

 

이 에세이는 한 순간 혹은 잠시 동안 방문한 경험을 담고 있지 않다. 신문 기자인 그녀가 캘리포니아에서 아조레스 출신을 만나고, 그들이 왜 여름이면 이 섬을 방문하는지 알고 싶어 간 첫 방문 이후 몇 년의 시간이 지난 후 재방문을 담고 있다. 이 재방문도 짧은 기간이 아니라 1년 정도의 긴 시간이다. 물론 이런 기간을 아조레스 섬에서 살게 된 것은 2015년도 특집기사 부분 퓰리처상을 수상한 덕분이다. 그리고 단순히 아조레스 섬과 섬사람들만 다루지 않고 그가 만나고 사랑하고 기자로 경험했던 일도 같이 풀어놓았다. 어떤 대목에서는 이 이야기가 나에게 더 다가오기도 했다.

 

아홉 개의 섬, 포르투칼어 사용, 화산폭발 이후 미국으로 대이주, 미군의 오랜 세월 주둔 등은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는 정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아조레스 섬이 궁금해 검색하니 수국으로 가득한 도로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이 책 속에서 수국 이야기는 짧게 몇 문장으로 표현될 뿐이다. 아직 제대로 항공노선은 검색하지 않았는데 캘리포니아에서는 직항이 있는 모양이다. 매년 한 달 정도 섬에 머물다 돌아가는 미국계 아조레스 사람들이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그리고 읽다보면 세월의 흐름에 따라 바뀐 몇 가지 모습들이 있다. 비행기에 실고 갔던 물건과 섬에서도 잘 터지는 와이파이 등이다.

 

이 섬에서 투우는 빼놓을 수 없는 축제다. 스페인에서도 이 투우가 점점 인기를 잃고 있다고 들은 것 같은데 이 섬의 투우는 역사적 기원이 조금 특이하다. 스페인 투우를 생각하고 아조레스 투우를 떠올리면 안 된다. 화려한 복장과 칼을 들고 소를 물리치는 그런 투우가 아니다. 투우란 이미지에서 떠올릴 수 있는 위험이 있지만 그보다 사람들의 축제 이미지가 더 강하게 다가온다. 섬의 남녀들이 이 축제에서 만나는 경우가 많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몇몇 이야기는 이 투우와 강하게 연결되어 있다. 영상을 본다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텐데 아쉽게도 아직 이 영상을 보지 못했다. 유튜브라면 아마 있을 것이다.

 

많은 이야기들이 섬을 떠났다가 돌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다. 굳이 우리말로 번역하면 깊은 그리움 정도가 비슷할 사우다지는 이 섬사람들에게 아주 중요한 감정이다. 살기 위해 떠났다가 매년 돌아오거나 아픈 기억 때문에 돌아오지 못하는 사람들의 감정을 표현하는데 자주 사용된다. 이 단어를 보고 우리의 한이나 화병 등이 떠올랐다. 세계 어디에나 그 문화에서만 이해할 수 있는, 번역이 충분하지 못한 감정이나 문화를 표현하는 단어들이 있다. 캘리포니아 등으로 떠나야 했던 이 섬사람들을 보면서 우리 이민1세대 선조들이 떠오른 것은 어쩌면 당연한 반응일지도 모른다.

 

저자의 이야기는 어떤 특별한 이벤트를 다루지 않는다. 그 섬의 일상과 작은 일들을 보여줄 뿐이다. 그래서 조금 밋밋한 부분도 있다. 낯선 포르투칼어가 많이 나와 집중력을 깨트린 부분도 있다. 그녀의 연애사를 다루는 부분과 다른 사람들의 연애 이야기는 소소한 재미가 있다. 고장 많은 미국 차를 산 후 겪게 된 일이나 애완견 머피의 식욕은 또 다른 재미를 준다. 제목 중에서 ‘무를 위하여’를 중간에 외쳤다가 ‘모든 것을 위하여’로 바뀐 부분은 삶의 한 모습을 잘 보여준다. 즉각적인 재미를 많이 누리지는 못했지만 시간이 흘러가면 이 책 속 이야기나 풍경들이 가끔 머릿속에 떠오를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법에도 심장이 있다면 - 법정에서 내가 깨달은 것들
박영화 지음 / 행성B(행성비) / 2019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6년을 판사로, 16년을 변호사로 살아온 법조인의 에세이다. 법정에서 만난 사람과 사건을 중심으로 진정한 법과 정의가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하는 책인데 읽다보면 저자의 자랑이 은근히 곳곳에서 나온다. 그런데 이 자랑이 그렇게 거부감을 들게 하지는 않는다. 그의 생각이나 노력들이 글로만 읽었을 때 많은 부분 공감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사법농단으로 판사에 대한 신뢰가 많은 부분 훼손되었다고 해도 법정신에 충실한 판결을 내리는 판사들이 아직 많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판사의 자리에서 자의반 타의반 물러난 판사들의 이야기를 통해 알고 있던 몇 가지 사실들을 이 책으로 다시 확인하게 되었다.

 

여섯 꼭지로 나누었지만 이 글들이 판사와 변호사로 나누어진 것은 아니다. 판사 시절 경험이 많은 부분 차지하지만 변호사를 하면서 만난 고객들 이야기도 상당히 있다. 변호사 일 중에서 자극적인 것은 역시 돈으로 법망을 피하려고 한 피고인이다. 저자는 이 피고의 의뢰가 불가능하다고 말하고 거절했지만 현실에서 과연 어떤 판결이 나왔는지는 알려주지 않는다. 자신도 책 중에 썼듯이 정치권의 대사면으로 인한 법정신의 훼손이 심각했지 않은가. 저자의 훌륭한 법조인 자세는 알 수 있지만 실제 법집행에 대한 정보가 없는 부분은 조금 아쉽다. 어쩌면 이 부분이 사법부에 대한 나의 불신 탓일지도 모른다.

 

최근에 판사란 직업이 얼마나 힘든지 다시 깨닫게 되었다. 얼마 전 있었던 과로사를 뺀다고 해도 판사의 보따리 사연에서 알 수 있듯이 야근이 많은 직업이다. 소송을 한 번이라고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변호사들은 자료를 최대한 많이 제출해달라고 요구한다. 이런 재판을 적지 않게 해야 하는 판사들이 이 서류를 모두 정독하지는 않겠지만 사안에 따라서는 전후 사정을 알기 위해 메모를 하면서 읽어야 하는 재판도 많다. 여기에 판결문도 직접 써야하니 얼마나 바쁘겠는가. 판결문 문장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는데 아주 공감한다. 뭐가 이렇게 쉼표가 많은지. 하나의 문장을 읽다가 앞의 의미를 놓치는 경우도 상당히 많다.

 

법이 국민을 위해 있고, 소송보다 화해가 낫다는 말에 동의한다. 민사의 많은 부분에서 개인의 감정에서 비롯했다는 지적은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아버지와 아들들이 돈 때문에 소송을 건 사건은 적나라하게 우리사회의 민낯을 보여준다. 화해가 되었다는 부분에서는 아직 남아 있는 인정을 엿볼 수 있다. 적극적으로 화해를 유도하는 그의 글들은 소송이 얼마나 피곤한 일인지, 감정의 소모가 심한 일인지 알려준다. 그리고 판사의 판결이 정확한 입증 자료가 없을 경우 국민의 편이란 원칙은 모든 판사가 지켜야할 기본자세다. 몇몇 언론 기사에서 본 판결은 과연 그랬는지 의문이 든다.

 

저자의 글 속에 계속해서 등장하는 것은 인간이다. 법에 따르데 사람을 살피는 것을 중단하지 않는다. 최근 문제되고 있는 소년범죄에 대해서는 시대가 맞지 않거나 상황이 다른 것들이 있어 유념하고 봐야 한다. 유괴 사건 이면을 드라마와 함께 풀어낸 이야기는 가슴 아픈 현실을 담고 있다. 자신이 화해시킨 부부를 찾아가거나 판결을 내린 사람들을 만난 이야기는 지금만이 아닌 다음도 생각하는 그의 판결을 상상할 수 있다. 이런 판사들로만 가득한 사법부였다면 결코 사법농단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생긴다. 그럼에도 사람이란 문장은은 최근에 강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판사란 직업은 한 곳에만 머물 수 없다. 지방 근무도 반드시 해야 한다. 이때 민원인들을 위해 그가 펼친 몇 가지 시도는 아주 훌륭하다. 그가 많은 것을 선배 부장판사에게 배우는 장면들은 경험 이전에 기본 자세에 대한 것들이다. 물론 경험도 무시할 수 없다. 많은 판사 출신 변호사들이 하는 말이 있다. 사회 경험을 더 많이 하고 판결을 내렸더라면 좀더 현명한 판결을 내릴 수 있었을 텐데 하고 말이다. 그리고 그가 힘든 판사를 다시 하려고 하는 글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동시에 한국 사법제도의 개선이 아주 절실히 필요하다고 느꼈다. 만약 이런 판사들이 더 늘어난다면 억울하게, 돈과 권력에 억눌리는 희생자들은 더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문득 <검사내전>이란 책이 떠올랐는데 어떤 내용이 있을지 궁금해졌다. 누군가의 책처럼 검사 시절 자랑질로 가득하지는 않겠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공포의 천사 에드거 월리스 미스터리 걸작선 4
에드거 월리스 지음, 양원정 옮김 / 양파(도서출판) / 2019년 8월
평점 :
품절


에드거 월리스 미스터리 걸작선 4번째 작품이다. 처음 이 시리즈를 읽었을 때 불만이 많았다. 현대의 고급 미스터리에 익숙한 나에게 허술한 설정과 전개 등이 먼저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작가가 실제 활약했던 시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미스터리 태동기의 작품이란 것도 무시했다. 하지만 이 작가의 작품을 한 권씩 읽어가면서 조금씩 생각이 바뀌었다. 한 시대를 대표할 작품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나름의 재미가 있다는 점이다. 특히 이번 작품의 경우 악녀 진 브리거랜드의 모습은 아주 매력적이다. 거기에 미스터리한 인물 재그스는 또 다른 재미를 준다.

 

진 브리거랜드는 아주 뛰어난 미녀다. 그녀의 증언에 의해 약혼자 제임스 메레디스는 살인죄를 뒤집어쓰고 사형을 선고받는다. 처음 책소개에서 이 설정을 보았을 때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차분히 내용을 읽어가니 이 위증이 의미하는 바를 바로 이해하게 되었다. 제임스가 사형으로 죽으면 그의 60만 파운드의 막대한 유산이 진에게 상속된다. 위증의 목적은 단순하다. 너무나도 아름다운 진의 위증은 법정에서 충분히 위력을 발휘한다. 제임스의 변호사 잭 글로버는 진의 진면목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만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 그래서 이 상속자를 바꿀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리디아는 아버지의 빚을 떠안으면서 곤궁한 삶을 살아간다. 그녀의 적은 돈벌이로 이 빚을 다 갚으려면 죽을 때까지 시간이 필요하다. 이런 조건 때문에 잭이 그녀를 선택했다. 상속자를 바뀌기 위한 제임스의 아내로 말이다. 잭 등의 변호사는 그녀를 만나 이 결혼을 통해 빚을 청산할 수 있다고 알려주려고 한다. 그런데 어떤 택시가 그녀의 이름을 부르고 태우고 떠난다. 낯선 곳으로 가는데 이 택시를 막고 그녀를 구해주려고 잭이 나타난다. 이 상황를 설명한다. 다음 날 8시에 탈옥한 제임스와 리디아가 결혼한다. 이 결혼 직후 제임스는 오른손에 총을 들고 왼쪽 머리에 총은 쏜 상태로 발견된다. 진도 나타난다. 그녀는 9시 결혼으로 알고 있었다. 잭이 작은 트릭을 사용했다.

 

갑자기 막대한 부를 상속받은 리디아는 위험 속에 놓인다. 만약 그녀가 죽으면 다음 상속자가 진이 되기 때문이다. 진과 아버지는 리디아를 죽이기 위해 음모를 여러 차례 꾸민다. 이런 부녀의 살인을 막기 위해 재그스란 인물을 리디아 집에 거주하게 만든다. 재그스는 여러 번 살인 위기에서 그녀를 구한다. 차로 칠려는 시도와 정신병을 가진 살인자를 무찌르는 일 등이 대표적이다. 물론 이 살인 기도들은 브리거랜드 부녀의 계획이다. 잭은 여러 번 리디아에게 진의 위험성을 말했지만 그의 말을 믿지 않는다. 이 소설에서 발암을 유발하는 가장 평면적이자 순진한 캐릭터다. 법과 재그스의 보호가 없었다면 금방 죽었을 것이다.

 

리디아를 죽이기 위한 진 부녀의 시도는 이후에도 계속된다. 리디아는 잭의 경고를 진심으로 듣지 않는다. 죽을 위험을 몇 번이나 넘겨도, 재그스의 보호로 겨우 살아남아도 이 마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남자라면 그녀의 아름다움에 매혹되어 넘어가겠지만 리디아는 왜 그런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녀의 착은 마음에서 비롯한 행동들이 그녀를 더 위험하게 만들 뿐이다. 덕분에 이 소설에서 진의 매력은 입체적으로 살아 움직인다. 자신이 원하는 바를 얻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곳곳에 음모와 계략을 깔아놓기 때문이다. 아마 진이 없었다면 이 소설은 아주 밋밋했을 것이다.

 

진과 함께 호기심을 자극하는 인물이 바로 재그스다. 나중에 그의 정체가 드러났을 때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사실에 놀랐다. 어슬렁거리면서 리디아를 보호하는 그는 어둠속에서 조용히 움직인다. 그의 놀라운 경호 능력은 그의 과거를 상상하게 만든다. 어떻게 보면 이 소설은 재그스와 진 부녀의 대결이다. 죽이려는 창과 살인을 막으려는 방패의 대결이다. 방패의 노력은 그 대상의 부주의함으로 더욱 힘들어진다. 창의 공격은 다양한 방식으로 이어진다. 이 공격에는 진의 매력에 이끌린 남자들이 함께 한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은 약간 뜬금없지만 악녀 진의 여운을 강하게 남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소호의 죄 - 범죄적 예술과 살인의 동기들
리처드 바인 지음, 박지선 옮김 / 서울셀렉션 / 2019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미술 매거진 편집장과 많은 전시의 큐레이팅을 했다는 작가 정보가 나의 시선을 끌었다. 일평생 예술계를 누비며 경험하고 느낀 것들을 펄프픽션의 형식으로 승화시킨 작품이란 점과 데뷔작이란 사실도 흥미로웠다. 이런 이력이라면 예술계의 이면을 아주 잘 파헤쳐서 예술계의 민낯을 보여줄 것이란 기대를 갖게 했다. 하지만 이 소설은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하나의 살인 사건과 그 사건의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과 그 과정 속에서 마주하는 몇 가지 예술계 이면을 조금 보여줄 뿐이다. 아쉬운 것은 왠지 모르게 이 소설에 쉽게 집중을 하지 못하는 나의 모습이다.

 

필립 올리버는 아내 어맨다 올리버가 총에 맞아 죽은 것을 보고 자신이 죽였다고 자수한다. 그런데 아내가 죽었던 시간에 아주 먼 곳에 있었다. 더구나 그는 울프심 증후군이라는 치매성 뇌질환을 앓고 있다. 재계의 거물이고, 수많은 여성들과 성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현재의 애인은 예술가인 클라우디아다. 첫 번째 아내와 이혼하게 된 이유는 바로 어맨다이다. 그녀와 결혼하기 위해 딸을 가진 앤젤라와 이혼했다. 클라우디아가 그에게 두 번째 이혼을 요구한다. 어맨다는 이것을 승낙하지 않는다. 다른 곳에 있어 알리바이가 완벽한 남편의 자수와 어맨다의 죽음으로 이익을 볼 사람들에 대한 수사로 이야기는 시작한다.

 

이 책의 화자는 필립의 친구인 잭이다. 그는 앤젤라, 어맨다 등과 친하고, 필립의 딸 멜리사의 대부다. 이 사건을 수사하는 탐정은 어릴 때 친구인 호건이다. 자수한 필립의 무죄를 증명하고, 범인을 찾기 위한 조사에 들어간다. 이 과정에서 이들의 치부가 하나씩 드러난다. 무분별한 성관계와 돈에 대한 욕망과 예술의 상업적 모습도 같이 드러난다. 여기에 새롭게 등장한 인물이 있는데 비디오 예술가라고 말하는 폴이다. 그는 아주 매력적이다. 여자들이 감히 그의 매력에 넘어갈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런데 그는 계속해서 멜리사에게 관심을 두고 찝쩍거린다.

 

살인사건의 수사는 현재를 조사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조사하는 것이다. 이 과정 속에 필립과 잭의 과거가 흘러나오고, 90년대 소호가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보여준다. 수집가에게 예술작품은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상품이자 욕망의 대상일 뿐이다. 미술 갤러리 주인들은 신인을 발굴하고 이들을 키워 거대한 부를 일군다.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라 특별한 내용은 없었다. 예술의 경계에 대한 질문이 나오는데 사실 이 부분은 조금 난해하다. 행위예술에서 사람들이 피를 흘리는데 이 피보다 미식축구에서 흘리는 피가 더 많다고 한 부분은 아주 인상적이다.

 

어맨다 살인사건을 수사하면서 관계인들의 알리바이를 계속 파고든다. 이 과정에서 대녀인 멜리사가 노골적으로 잭에게 대시한다. 어느 순간 그 아이에게 흔들리는 잭의 모습을 보고 로리타 콤플렉스가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비디오 아티스트라고 말하는 폴이 멜리사를 유혹하려고 하고 그녀는 이를 적절하게 거절한다. 잭은 폴이 범인이라고 생각하고 그의 작품 이면을 파고든다. 미성년자들에게 마약을 먹이고 성폭행을 가하는 비디오를 찍은 후 이것을 전 세계에 유포한다. 폴은 멜리사를 이 작업에 참여하고 싶어한다. 이를 수락하는 잭의 모습은 의아하다. 몰론 다른 반전들이 이후에 펼쳐진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에 깊게 몰입하지 못했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과 캐릭터들이 밀착한 것 같은 느낌이 아니다. 예술계 이면을 기대한 부분은 아주 부족했고, 알리바이들을 수사하는 과정은 일반 미스터리에 비교해서 약간 느슨하다. 현재일 것이란 나의 예상은 폴의 사업에서 엇나갔다. 부분적으로 재밌게 본 장면들이 있지만 그 시대와 장소에 대한 이해 부족이 이야기에 집중을 방해했다. 그리고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이 긴장감을 한 번에 터트리는 방식이 조금 약하고, 이야기 곳곳에 풀어놓은 모호함이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예상하지 못한 마지막 반전들과 여운들은 이 부분들을 조금씩 씻어내었지만 모두를 없앨 정도는 아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