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노 사피엔스 - 스마트폰이 낳은 신인류
최재붕 지음 / 쌤앤파커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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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정말 빠르게 변한다. 공중전화 세대인 내가 휴대전화를 거쳐 스마트폰까지 사용하게 될 줄은 그 당시에는 생각조차 못했다. sf소설이나 영화 등에서 가능성을 살짝 엿보던 시절이었다. 한때 휴대전화 사용을 거부한 적도 있었지만 취업 등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이 어쩔 수 없이 사용한 것이 이제는 스마트폰으로 이어졌다. 이 스마트폰과 내가 함께 하는 시간을 계산하면 거의 하루 종일이다. 물론 이것을 두고 화장실을 가거나 집에서 잠시 제쳐두는 순간은 있지만 시간이 나면 다시 든다. 대화를 하다가 궁금한 것이 있으면 바로 검색하고, 뉴스를 검색하기 위해 스마트폰 앱을 연다. 나의 일상은 이제 이 스마트폰과 함께 하고 있다.

 

나만 그런가 하면 그렇지 않다. 아내도 아이도 마찬가지다. 카톡으로 친구들과 대화를 하고, 캡쳐된 정보를 서로 보낸다. 인스타그램에 자신이 먹은 음식이나 물건을 올린다. 아이는 자신이 원하는 방송을 유튜브에서 찾아본다. 외국어가 나와도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영상이니까. 송금은 당연히 앱에서 하고, 인터넷결제는 가능한 간편 결제 시스템을 이용한다. 중국 출장 갔을 때 중국 직원들이 현찰을 들고 다니지 않고, 위챗페이나 알리페이를 사용해서 결제하고 있었다. 솔직히 외국에서 현찰을 내고 음식이나 물건을 사면 잔돈이 남는데 이것이 불편하다. 그들이 현찰을 들고 다닐 필요가 없는 것은 너무 당연하다. 만약 자주 중국 출장을 갈 일이 있다면 아마 통장 개설하고 중국 페이들을 사용할 것 같다.

 

지혜가 있는 폰을 쓰는 인간, 스마트폰 없이 생활하는 것이 힘들어진 사람들을 포노 사피엔스라고 한다. 저자가 만든 포노 사피엔스 등급에 의하면 최소 5등급 정도는 된다. 필요한 앱을 찾아서 깔지만 생활이 단순해지면서 사용하는 앱만 사용하지 새로운 앱을 적극적으로 사용하지는 않는다. 코딩 능력이 없으니 프로그램을 짤 수도 없다. 필요하면 배우겠지만 그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못한다. 10등급은 멀고 먼 현실이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사용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원하는 앱을 찾지 못하면 포기하는 나와 달리 그들은 뛰어난 검색 능력과 이것을 활용하는 능력으로 기어코 찾아낸다. 나에게 놀랍기만 한 일이다.

 

이 책을 관통하는 주제는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고, 이들을 이용하는 사업에 적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손님은 왕’이라고 계속 말한다. 이때 말하는 왕의 의미는 갑질이 아니다. 고객이 원하는 상품 등을 제공해야 한다는 의미다. 실제로 주변을 둘러보면 조금 더 젊은 사람들은 대부분 스마트폰으로 물건을 산다. 잠시만 머물러 있어도 게임을 연다. 뉴스도 앱으로 본다. 출근길에 스마트폰으로 드라마 등을 보는 사람들을 자주 만난다. 중늙은이의 눈에는 불편해 보이지만 그들은 아니다. 게임이 종합문화란 이야기를 듣고, 영화와 비교하면서 긍정하게 되었는데 이 책도 아이들이 스마트폰을 들고 있는 것을 마냥 나쁘게만 보지 않게 만든다. 단 중독은 피해야 한다.

 

얼마 전 중국 왕홍에 대한 글을 블로그 글을 읽은 적 있다. 그게 가능해? 가 첫 질문이었다. 알리페이 등으로 거지가 구걸한다는 이야기를 몇 년 전에 들었고, 한국에 알리페이를 위한 QR코드가 나와도 무심코 봤는데 너무 한국 상황에 매몰되어 있었던 모양이다. 기술 혁신으로 기존의 제조업 강자들이 물러나고 새로운 업체들이 부상한 이야기는 시장의 변화를 잘 보여준다. 우버가 몰고 온 엄청난 변화는 각 지역별 다른 서비스명으로 바뀌었지만 본질은 동일하다. 이 앱을 사용해본 사람들은 기존 서비스의 불편함을 감수할 마음이 없다. 그 비용이 조금 더 비싸다고 해도 말이다.

 

팬덤의 중요성을 말한 부분은 공감한다. BTS의 성공담은 개인적으로 새로운 부분이 많다. 홍보 마케팅 등은 기존 유통망의 권위를 무너트린다. 솔직히 방탄소년단으로 나왔을 때 이들이 이렇게 성공할지는 몰랐다. 그들만큼 좋은 노래와 춤 실력 등을 가진 팀이 있었기 때문이다. 게임보다는 e-스포츠란 단어를 더 사용하는데 이것의 시장은 상상을 초월한다. 몇 년 전 롤에 대한 기사를 읽고 얼마나 놀랐던가. 하지만 아직도 게임은 기존 매체에서 많이 다루지 않는다. 기성 세대가 즐기는 게임에 더 많은 비중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가끔 내가 잘 모르는 업체들이 엄청난 금액으로 매각되는 것을 본다. 바뀐 문화가 이 기업의 가치를 평가한 것이다. 유튜브에서 어느 날 보게 된 수많은 무슨 무슨 tv 등은 이제 작은 기업이 되었다. 어른들은 먼저 부작용을 말한다고 말하면서 그 이면을 보라고 말한 저자에 동의하는 부분도 이런 현상을 직접 경험했기 때문이다. 중국이 왜 이렇게 빠르게 문화가 바뀌게 되었는지 말한 부분 중 공산당의 역할 부분은 공감한다. 한국도 개방 전에는 대기업들이 이렇게 성장했으니까. 미세한 차이의 예로 카카오뱅크 이야기를 했는데 귀여움이 국민에게 어필하는 과정은 다른 이야기에서 볼 수 있다. 바로 기업의 관료 문화다.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바뀌고 있는 현대 문명을 풀어내었는데 문화의 한 부분만을 다룰 뿐이다. 데이터 분석은 자신의 원하는 바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엮을 수밖에 없다. 목적을 정하고 그 목적에 맞는 데이터가 모이면서 현상이 더 거대하게 보인다. 물론 이 현상들이 거짓말이란 의미는 아니다. 그렇다고 당장 모든 것이 바뀌지 않으면 문제가 생긴다는 말도 아니다. 하지만 현재 포노 사피엔스가 등장했고, 이들이 새로운 문명을 만들고 있다는 사실은 인정하면서 우리의 인식을 바꿔야 한다는 부분에는 동의한다. 좀더 열린 시각으로 급속히 변하는 과학에 관심을 더 가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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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바통은 넘겨졌다
세오 마이코 지음, 권일영 옮김 / 스토리텔러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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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일본 서점대상 수상작이다. 언제부터인가 이 서점대상 수상작들이 나의 시선을 끈다. 일반 문학상의 딱딱함보다 독자들이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작품들이 선정되다보니 그런 모양이다. 그리고 이번 소설의 소개글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피가 섞이지 않는 부모 사이에서 네 번이나 성이 바뀐 한 소녀의 성장 이야기라니 대단하지 않은가. 성이 네 번 바뀌었다는 말에 엄마가 네 번 결혼했나 하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친엄마는 죽었고, 새엄마가 친아빠와 결혼하고, 이혼하고, 다른 사람과 결혼하고, 또 다른 사람과 결혼한 결과다. 좀 복잡한 듯하지만 소설을 읽다보면 점점 이 관계가 분명해진다.

 

소설은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나는 고등학교 3학년 여고생 유코가 지금까지 살았던 부모에 대한 기억을 현실의 시간 흐름 위에서 말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결혼을 결정하고 이 결혼을 승낙 받는 과정에서 성인이 된 자신과 과거의 부모들과의 관계를 새롭게 인식하는 과정이다. 이 과정들은 결코 무겁지 않다. 어떻게 보면 비현실적이다. 친아빠가 브라질 근무 때문에 떠나면서 새엄마 리카와 살게 되고, 힘들게 살던 중 피아노 때문에 새아빠 이즈미가하라 씨를 구해준다. 자신의 삶이 지루하다면서 이 남편을 떠난 후 동창 모리미야를 만나 결혼한다. 고등학생이 되어 세 번째 아빠가 생긴 것이다.

 

이전의 두 아빠와 달리 모리미야는 열 몇 살 정도 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도쿄대학을 졸업하고 일류대학을 다닌다. 그런데 이 아빠가 아빠 노릇을 하겠다면서 고등학교 3학년 딸에게 특이한 행동을 한다, 뭐 대부분의 특이한 행동은 음식과 관련된 것이지만 말이다. 사실 이 소설 속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이 음식이다. 이 두 부녀는 정말 먹는 장면을 많이 보여준다. 나중에 결혼하는 아침까지 음식 이야기를 하니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유코가 전문대학에서 음식 관련 학과를 간 것도 어느 정도 영향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단순히 특이한 환경만 다루었다면 자극적이었을 테지만 이 환경은 유코와 모리미야를 돋보이는 역할을 할 뿐이다. 유코가 좋은 부모들은 계속 만나 잘 자랐다고 하지만 실제 몇몇 장면을 보면 신경을 많이 쓰는 대목이 나온다. 모리미야는 친자식도 아니고 갑자기 떠안은 딸을 사명감을 가지고 키운다. 이 둘이 일상에서 어느 정도 거리를 둔 채 최고의 부녀 관계를 보여주는데 현실의 부녀 관계는 유코 친구들의 말에서 솔직하게 표현된다. 젊다고 하지만 실제 자신들의 아버지보다 겨우 몇 살 많은 뿐이다. 크고 난 다음에 겨우 몇 년을 살았고, 그 이전에 다른 부모와 산 경험이 다른 사람들 눈에 좋게 보였을지도 모른다.

 

일본 소설을 읽다 보면 고등학교 3학년들의 학교생활이 상당히 여유롭다. 내가 주변에서 본 것이나 경험했던 고등학교 3년과는 너무나도 다르다. 빠르게 진학을 결정한 유코는 그 전문대학 입학이 그렇게 힘들지 않다. 그리고 중간에 친구와 오해가 생겨 약간 반 여학생들 사이에 왕따 분위기가 생겼을 때도 그녀는 무심하게 그 시간을 보낸다. 젊은 아빠와 산다는 것을 나쁘게 말하는 반친구에게 가족관계의 사실을 이야기하는 여유까지 보여준다. 반면에 잠깐 모리미야와 관계가 어긋났을 때 왕따 때보다 더 힘들어한다. 보통의 부녀라면 무심코 넘어갈 수도 있는데. 이 보통의 고등학교 3학년 시간 속에 그녀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그 부모들이 어떤 분들이었는지 조금씩 풀어낸다. 이 이야기 속에서 가장 빛을 발하는 인물은 바로 친아빠의 재혼 상대였던 리카다.

 

현실의 모리미야 씨와 과거의 리카는 결코 평범한 아빠와 엄마가 아니다. 리카가 한 세 번의 결혼이 유코를 모리미야 씨에게 인도했다면 모리미야는 아빠란 존재를 고민하게 만든다. 다 큰 상태의 딸을 키우고, 시집보내는 역할을 하는데 많은 부분에서 일반 상식과 어긋나는 모습을 보인다. 이 어긋남이 사실 이 소설의 재미이기는 하다. 유코의 성장 이야기는 주어진 환경 속에 조용히 스며드는 모습이다. 특별이 튀거나 나쁜 행동을 하지 않아 어떻게 보면 심심하다. 이 심심함을 채워주는 것이 작은 이벤트들인데 학창시절의 모습들이 대부분이다. 이 작은 이벤트 속에 유코의 심리 묘사가 잘 드러난다. 그리고 작가는 하나의 이야기에 깊이 파고들기보다 간결하고 빠르게 풀어내면서 군더더기를 없앴다. 재밌고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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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리 모라
토머스 해리스 지음, 박산호 옮김 / 나무의철학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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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토머스 해리스의 전 작품을 다 읽었다. 아마 본가와 지금 집을 뒤지면 이 책들이 다 나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사하는 도중에 사라지지 않았다면 말이다. 사실 이 작가가 한국에서 뜨게 된 것은 영화 <양들의 침묵> 때문이다. 그 이전에는 그렇게 강한 인상을 주지 못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헌책방에서 초기 작품들을 구해 읽었던 기억이 있다. 그 후 나온 <한니발>과 <한니발 라이징>은 잔혹했고, 한니발이 왜 그렇게 변하게 되었는지 알려주는 소설이었다. 하지만 오랫동안 신작이 없었다. 그런 후 1천만 불이란 엄청난 선인세를 받고 13년 만에 신작이 나왔다.

 

이 작품이 번역되기 전 카페에서 아마존 평점이 좋지 않다는 소식을 들었다. 실제로 들어가서 확인하니 별 셋이 되지 않았다. 이름에 비하면 그의 폭망 수준이다. 솔직히 말해 끝까지 읽은 지금 이 평점에 의아함이 있지만 조금은 공감한다. 기대치가 높았던 만큼 이야기의 완성도에 조금 아쉬운 대목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가독성이나 재미가 그 정도 점수를 받을 정도는 아니다. 이야기를 읽다가 카리 모라의 캐릭터 표현이 조금 약하다고 느꼈고, 어떤 부분에서는 뒤끝을 남기는 부분도 있어 다음 이야기가 나와 이 찜찜함을 풀어주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콜롬비아 마약왕 파블로 에스코바르가 미국 마이애미 자택에 남겨둔 금을 둘러싼 이야기다. 한스 피터라는 악당이 이 집에 있을지도 모르는 금을 찾으려고 한다. 이 모습을 본 다른 조직이 이 금을 빼앗으려고 한다. 이 사이에 낀 인물이 이 빈집을 그동안 돌보고 있던 카리 모라다. 이 금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 인물은 헤수스란 인물인데 한때 에스코바르에게 충성했고, 이 금을 옮긴 인물이다. 헤수스는 이 정보의 대가로 가족이 살 집과 그들을 위한 돈을 원한다. 그리고 이 정보를 두 사람에게 팔았다. 한스 피터와 갱단 텐 벨스의 두목 에르네스토다.

 

이 소설 속 최고 악당은 역시 한스 피터다. 그는 자신의 부모를 직접 죽였고, 변태들을 위해 신체를 훼손하거나 장기를 적출해서 판매한다. 돈이 되는 일이라면 조금도 주저하지 않는다. 그가 금을 발견하기 위해 이 집을 둘러보면서 카리 모라를 보면서 생각하는 장면은 그의 엽기성을 잘 표현해준다. 그것 외에도 시체를 액화 화장 장치에 넣고 천천히 감상하는 장면은 충격적이다. 이 대단한 악당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는 나오지만 이것을 직접 실천하는 장면은 보이지 않는다. 한니발 렉터와 비교하는데 솔직히 무게감이 많이 떨어진다.

 

이 소설의 주인공 카리 모라는 콜롬비아 무장혁명군 소년병 출신이다. 그녀의 과거가 나오지만 이것만 가지고 그녀가 보여주는 활약이 충분히 이해되지 않는다. 예상하지 못한 의외성 때문에 당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이 반복될 수는 없다. 그리고 그녀가 소년병을 그만 둔 후 상당한 시간이 흘렀다. 평범한 일상을 살아온 그녀가 과거의 훈련만으로 금방 전사가 되기는 힘들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다면 이해가 되지만 상대방도 날고 기는 실력을 가진 악당들이지 않는가. 이것을 충분히 이해시켜줄 이야기가 조금 약하지 않나 생각한다.

 

2천4백만 불의 금을 둘러싼 경쟁과 전투가 그렇게 긴장감 있게 그려지지는 않는다. 경찰의 눈치를 봐야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일까? 순간적으로 살인을 저지르지만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정도는 아니다. 그리고 중간에 시체가 발견된 후 개입한 형사 테리의 활약이 너무 미미하다. 처음 등장할 때만 해도 그가 큰 역할을 할 것 같았는데 그냥 얼굴만 내비치는 수준으로 떨어진다. 다음 작품이 있다면 달라질까? 역시 주인공이 카리 모라의 활약이 아주 인상적이지 못하다. 소년병 시절 경험이 마지막에 힘을 발휘하지만 그 묘사에서 긴장감이 조금 떨어진다. 출연빈도에 비해 강한 인상을 가장 크게 남긴 것은 오히려 한스에게 장기를 사간 인물이다. 그가 다음 이야기가 있다면 어떻게 활약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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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적 : 나를 변화시키는 조용한 기적 배철현 인문에세이
배철현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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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문헌학자인 저자가 쓴 위대한 개인이 획득해야 할 4가지 가치 중 세 번째 작품이다. 이전 에세이는 <심연>과 <수련>이었다. 어떻게 하다보니 이 시리즈를 계속 읽게 되었다. 고독의 가치와 삶의 군더더기를 버리는 훈련을 강조했다고 하는데 솔직히 잘 기억나지 않는다. 내가 이 저자의 책을 계속 읽는 것은 이런 훈련을 실천하기 보다는 고전문헌학자가 풀어내는 지식 때문이다. 그리고 가독성이 좋아 단숨에 읽을 수 있다. 이전이라면 이 책의 제목인 정적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지만 삶이 바빠질수록 이 정적이 나의 삶에 필수 요소가 되어간다. 마음의 평정심이 최근 많이 깨어진 상태이기에 더욱 필요하다.

 

모두 4부로 구성되어 있다. 평정, 부동, 포부, 개벽 등이다. 각 부는 7개의 단어를 담고 있고, 이 단어의 숨겨진 의미를 저자가 전문지식으로 풀어낸다. 이 단어들 속에서 무언가를 찾아내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나의 경우만 본다면 살면서 깨닫게 된 것들이 몇 개 있다. 대표적으로 간격, 중심, 무위, 눈물, 절제 등이다. 나머지들도 삶에 영향을 끼쳤지만 이 다섯 가지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 중에서 눈물은 최근에야 인정하게 된 것이다. 울음을 억제한 삶을 살다가 호르몬 탓인지, 내 삶을 다른 면에서 보게 된 탓인지 이 감정의 표현을 수용하게 되었다.

 

살면서 가장 먼저 버리게 된 것 중 하나가 뭔가를 머릿속에서 상상하는 일이다. 이것을 버린 후 내 머릿속을 채운 것은 걱정과 분노와 현실적인 문제들이었다. 단전호흡 흉내를 내면서 내면으로 파고들던 시절도 있었지만 시간이 부족해지면서, 정확하게는 내 욕심이 늘어나면서 사라졌다. 잠들기 전 생각하던 것도 스마트폰을 보게 되면서 끊어졌다. 다행이라면 새벽에 일어나 책을 읽는 시간이 늘어난 것이다. 그때의 고요는 저자처럼 명상을 위한 시간이 아니라 읽어야 할 책들이나 들어야한다고 생각한 방송에 매몰되어 있다. 아는 세계가 늘어나면서 욕심만 늘어났지 아직 그 욕심을 절제할 능력이 부족하다.

 

“사소, 신은 디테일 안에 있다”고 했을 때 ‘신’이란 단어 대신 ‘악마’가 떠올랐다. 현실에서 많은 문제가 생기는 원인 중 하나가 바로 이 디테일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놓친 디테일이 상대방에 의해 악용되는 경우가 아주 많다. ‘인과’의 문제는 과연 자연법칙 속에서 그대로 적용되는지 의문이다. 도덕적으로 종교적으로 인과를 말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현실에서 나쁜 짓을 한 사람들이 법을 피해 얼마나 잘 사는지 보지 않는가. 이렇게 마음속에서 저자가 말하는 내용에 반발이 생기는 대목들도 나온다. 이 과정 속에서 나의 의식은 조금씩 깨어난다.

 

마음의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은 아주 힘든 일이다. 나이가 들고 더 넓은 세상을 보면서 나의 세계가 얼마나 불완전한지 깨닫고, 나와의 싸움에 승복할 줄 알게 되면서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감정의 폭주를 제어하기 위해 노력하는 나 자신을 돌아본다. 완벽이 완벽에 더 가까이 다가가는 노력임을 알게 되는 순간 그 노력을 이해한다. 상상하는 시간이 사라진 자리를 채우고 있는 것은 지금처럼 글을 쓰는 시간이다. 읽은 책을 복기하는 순간도 있지만 이 과정 속에서 나의 삶을 잠시 돌아본다. 정적 속에서 심연을 들여다보는 수련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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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이라는 책
알렉산다르 헤몬 지음, 이동교 옮김 / 은행나무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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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니아 출신의 미국 작가다. 그의 이력 중 눈에 끄는 대목은 역시 보스니아 내전으로 발이 묶여 난민생활을 한 부분이다. 이 에세이에 나오는 내용에 의하면 그는 돌아갈 수 있었지만 돌아가지 않고 망명을 신청하고 미국에 남았다. 내전 당시 일어난 참혹한 일들을 생각하면 그는 현명한 선택을 했다. 나중에 그의 가족들이 캐나다로 이민을 왔다. 하지만 이 선택이 그의 삶을 곤궁하게 만들었다. 그린피스 운동원, 서점 판매원, 강사 등 돈을 벌기 위해 많은 일을 해야 했다. 영어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집들을 방문해야 하는 일들도 있었다. 이런 삶의 경험 속에서 그는 영어로 글을 쓸 수 있게 되고, 새로운 삶에 적응하게 되었다.

 

이 글을 쓰기 전 인터넷 서점에서 이 작가의 번역된 다른 작품이 있는지 검색했다. 여러 작가와 함께 묶은 단편집이 달랑 한 권 있다. 다른 유명 작가의 찬사에 비하면 너무 적다. 뭐 이런 작가들이 한두 명이 아니니 그냥 넘어가자. 이 에세이를 읽으면서 가장 놀랐던 부분들은 솔직함이다. 처음 여동생이 태어났을 때 그가 한 행동은 자신의 사랑을 동생에게 빼앗겼다고 생각한 아이가 할 수 있는 가장 잔혹한 행동이다. 다행히 불행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 후 이런 일은 다시 일어나지 않았고, 그는 여동생을 사랑하고 있다고 한다. 이 에세이에서 아주 가끔 그 여동생이 나온다.

 

내가 가장 인상적으로 읽었던 부분들을 역자도 똑같이 경험한 것 같다. 하나는 친구들과 놀라가 터키인이라고 말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딸의 종양 이야기를 다룬 <수족관>의 한 부분이다. 그가 그냥 장난으로 부른 ‘터키인’이란 단어가 사람을 해할 수 있다는 것을 친구 알마르의 생일 파티에서 배웠다. 현실에서 보스니아 이슬람교도들에게 이 단어가 어떤 학살을 불러왔는지 아주 잘 보여준다. 이 단어의 사용이 집단에서 그 대상을 타자화하고 배척하는 역할을 한다. 우리 나라에서도 이런 단어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것이 극단으로 치달을 때를 보여주는 역사적 사건이 바로 보스니아 내전이다.

 

<수족관>은 딸의 종양으로 그가 경험한 최악의 상황을 진솔하게 풀어낸다. 차를 타고 달리다가 자신이 수족관 안으로 들어간 것 같은 기분을 느끼고, 수족관 안팎의 완전히 다른 환경을 인식한다. 딸의 치료에서 느낀 절망적인 지식들은 바깥에서 아무 쓸모가 없다. 딸을 치료하기 위해 이 부부가 어떤 행동을 했는지 볼 때 많은 부분에서 감정이입되었다. 동시에 현실적인 문제로 미국의 의료비가 떠올랐다. 나중에는 이런 것들도 사라지고 깊은 슬픔만이 가슴속으로 파고들었다. 그들의 절규와 고통과 울음이 내 가슴속에서도 울렸다. 나에게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이와 별 차이가 없을 것이다.

 

이런 무거운 이야기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가족 만찬에 먹었던 그리운 음식 이야기도 나오고, 한때 열심히 읽었던 책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마의 산>은 나도 학창시절 이해를 잘 못한 채 읽었던 적이 있다. 자신은 그냥 해프닝 정도로 생각했던 일이 파시즘의 전조였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되는 사건도 있다. 한동안 이 사건으로 경찰이 찾아오는 악몽 등에 시달리기도 한다. 그에게 영향을 끼친 교수가 나중에 그 실체를 드러냈을 때 파시즘과 인종차별주의자의 모습이 보인다. 삶은 예상하지 못한 일들의 연속이고, 한 순간의 선택이 삶의 방향을 바꾼다. 미국의 초대가 대표적이다.

 

그가 사라예보에서 즐겼던 것이 하나 있다. 축구다. 그런데 미국은 축구 모임이 흔하지 않다. 우연히 발견한 축구 모임에 가서 그가 경험한 일은 한 사람의 강한 의지가 만들어낸 부산물이다. 폭우가 쏟아지는 날 풍경과 작은 이야기들은 강한 인상을 남긴다. 체스는 솔직히 소년들에게 쉬운 놀이가 아니다. 몇 수 앞을 생각하고, 정석을 공부하는 일은 지루하다. 하지만 낯선 타국에서 이 체스는 그를 과거의 기억으로 끌어당기고, 그 기억을 떨쳐내게 한다. 이 놀이에 중독된 사람들 이야기는 한때 바둑에 빠졌던 나의 삶을 떠올리게 만든다. 이렇게 이 책 속 이야기들은 낯선 곳으로 나를 데리고 가고, 새로운 정보를 주고, 옛 기억을 회상하게 만들고, 죽음이 주는 깊은 아픔에 공감하게 한다. 소설도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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