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우먼 인 윈도 ㅣ 모중석 스릴러 클럽 47
A. J. 핀 지음, 부선희 옮김 / 비채 / 2019년 9월
평점 :
읽는 내내 히치콕의 <이창>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광장공포증이 있는 주인공 애나가 창밖으로 이웃을 엿보는 설정과 살인사건 때문이다. 장애를 가지고 있고, 엿본다는 것이 <이창>의 설정과 동일하다. 실제 이 소설 속에는 고전 영화들이 많이 등장한다. 당연히 히치콕의 영화들이 나오고, 그 속에는 <이창>도 있다. 소설 속 몇몇 장면들을 보면서 예전에 본 영화들의 이미지나 설정이 머릿속을 지나갔다. 이 기억들이 머릿속에 뒤섞여 가능한 반전들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결과는 나의 예상과 다른 반전으로 이어졌고, 그 강렬한 흡입력에 끝까지 빨려들어갔다.
누군가가 창밖을 본다는 것은 일상적인 행위다. 하지만 꾸준히 본다면 어떨까? 물론 이것은 범죄가 될 수 있지만 밖으로 나갈 수 없어 창밖 풍경에 눈길을 더 줄 수밖에 없다면? 그러다 누군가가 죽는 모습은 본다면? 솔직히 말해 흔한 설정이다. 앞에서 말한 영화 <이창>을 비롯한 많은 작품에서 이 설정을 이용해 이야기를 풀어내었다. 하지만 이 설정이 강한 흡입력을 발휘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표면적 설정 속에 사연을 집어넣고, 스릴을 느끼게 만들고, 반전으로 이끄는 것은 노력과 재능이 필요한 일이다. 이 작가는 이것을 아주 훌륭하게 해냈다.
애나가 광장공포증에 걸린 이유가 나중에 나온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조금은 예상했다. 애나는 청소년 정신과 전문의였다. 하지만 병에 걸리면서 집밖으로 나가지 못한다. 창문도 열지 못한다. 그녀의 일상은 이웃을 엿보거나 인터넷으로 체스를 두거나 심리학적 문제가 있는 사람들을 인터넷으로 조언하는 일이 전부다. 병을 고치기 위해 약을 먹지만 술과 함께 먹는 잘못을 범한다. 이 행위가 병을 고치기보다는 악화시킨다. 이런 일상 속에서 러셀 가족이 이사 온다. 엿보기는 그녀의 일상이 된지 오래다. 그 집을 엿본다. 그러다 그 집 아들 이선이 초를 들고 방문한다. 연약해 보이는 십대 소년이다. 세상과 단절되어 있던 그녀에게 새로운 연결이 생긴다.
광장공포로 극도로 폐쇄적인 그녀는 늘 정해진 사람들과 만난다. 직접 대면하지 않는 인터넷 연결은 상관없다. 이런 그녀에게 이선과 그의 엄마가 연속으로 방문한 것이다. 이선의 엄마 제인은 그녀의 집으로 들어와 이야기를 나누고, 그녀의 초상화까지 그려준다. 그녀는 엿보기로 그녀가 러셀 집안에 있는 것을 봤다. 그런 어느 날 아주 큰 비명소리를 듣고, 제인이 피를 흘리고 반짝이는 뭔가가 몸에 꽂혀 있는 것을 본다. 경찰에 신고한다. 하지만 어디에도 시체는 없고, 제인이라고 말하는 여성이 등장한다. 그녀가 알던 제인이 아니다. 신분증까지 확인한다. 제인 러셀이다.
그날 밤 그녀가 본 것은 뭐지? 그녀가 지켜본다는 것을 안 러셀 부모는 그녀에게 그만 엿보라고 말한다. 그녀는 이 사건에 더 집착한다. 과연 그녀가 환상을 본 것일까? 포도주와 향정신성 약을 같이 먹는 그녀라면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그녀는 별거 중인 남편과 계속 이야기를 나눈다. 왜 별거를 했는지, 왜 그녀가 광장공포증에 걸리게 되었는지는 중반이 넘어가면서 조금씩 흘러나온다. 이것이 또 하나의 반전으로 작용하면서 그녀를 극한상황까지 몰고 간다. 이것 또한 다른 반전을 위한 장치이자 다른 작품들에서 흔히 사용한 설정이다. 이렇게 작가는 충실하게 반전을 풀어내고, 다른 반전을 위한 장치를 깔아놓았다.
한정된 공간을 배경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과거를 제외하면 현재는 대부분 애나가 거주하는 건물과 그녀가 엿보는 집들이 배경이다. 제인 살인 사건에 집착하는 그녀가 딱 한 번 집밖으로 나간다. 제인이라고 말한 여자를 쫓아가기 위해서다. 이것이 상황을 개선시키지는 못한다. 그녀가 받은 메일이나 찾아낸 사진을 경찰에게 제시했을 때 장면은 연극의 무대를 보는 느낌이었다. 이선, 경찰, 이선의 아버지, 세입자 데이비드 등이 차례로 등장하는 장면은 특히 그랬다. 그리고 이 장면에서 사실 하나와 반전이 펼쳐진다. 다른 반전을 위한 또 다른 준비다.
한정된 공간과 등장인물을 가지고 600쪽이 넘는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면서 긴장감을 놓치지 않게 만들기는 쉽지 않다. 작가는 이 한정적인 자원들을 고전 영화와 뒤섞어 독자가 상상하고, 범인을 추리하게 만든다. 독자가 예상하고 추리한 것이 맞을 때는 기쁘고, 예상하지 못한 반전이 나올 때는 더 즐겁다. 이 작품은 실제 그렇게 나에게 다가왔다. 영화로 만들어진다고 하는데 과연 결말을 알고 있는 내가 그 영화를 어떻게 즐길지도 궁금하다. 출연 배우들의 프로필도 한 번 찾아봐야겠다. 내가 상상한 이미지와 맞는지 확인해보고 싶다. 히치콕과 고전 영화를 좋아하는 독자에게 딱 맞는 소설이다. 스릴러를 좋아하는 독자에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