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킬 - 이재량 장편소설
이재량 지음 / 나무옆의자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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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잠수함>을 재밌게 읽은 기억 때문에 선택했다. 바퀴벌레를 모두 죽이려는 한 남자의 의지가 눈길을 끌었다. 실제 예상한 것과 전개된 이야기는 많은 차이가 있다. 내가 관심을 둔 부분은 블랙코미디였는데 읽다보니 엽기와 공포가 먼저 다가온다. 주인공 고광남의 일생은 보고 있으면 답답하다. 그의 강박증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바로 이 부분에서 이야기는 나아가고, 다양한 변주가 일어난다. 제목인 올 킬은 고광남이 바퀴벌레를 모두 죽이겠다는 의지인 동시에 벌레를 제거하는 회사의 이름이다.

 

3부로 나누어져 이야기가 펼쳐진다. 1부는 고광남이 왜 이렇게 청결에 집착하게 되었는지 보여주는 동시에 바퀴벌레의 등장과 그 싸움과 예상하지 못한 상황으로 이어진다. 어릴 때 아버지로부터 학대 받으면서 자란 광남이 결혼까지 하게 된 사연과 시골로 내려와 평화로운 삶을 살게 되었다는 이야기는 바퀴벌레 한 마리가 등장하면서 바뀐다. 읍내에서 해충 구제 전문회사 ㈜올 킬의 광고를 발견하고 연락한다. 이때 나타난 인물이 거구의 여성인 안희수 대리다. 그녀는 아주 멋지게 진공청소기 같은 흡입기와 강한 소독약으로 집안의 바퀴벌레를 청소한다. 며칠 동안은 평온한 잠을 잔다. 하지만 이 일상은 얼마 가지 않아 깨어진다.

 

광남의 옆집은 유명 건축가와 살림 연구가 부부가 집을 지어 살고 있다. 이 부부가 이사 온 후 집의 고요함을 깨어졌다. 환경 잡지에 이 집이 실리고, 친환경 마을 조성을 위해 이 부부는 열심히 노력한다. 하지만 자신들이 먹은 쓰레기는 제대로 처리하지 않는다. 산짐승들이 내려와 쓰레기 봉투를 파헤칠 정도다. 이 집에 초대를 받아 집 내부를 보고, 맛있는 음식을 먹지만 그는 불편하다. 그가 바라는 삶은 청결하고 고요한 삶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치우지 않은 쓰레기들은 광남의 집에 다시 바퀴벌레가 등장하게 만든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게 된다.

 

안희수 대리는 무료로 옆집 바퀴벌레를 치워주겠다고 했지만 이 부부는 거절한다. 안 대리는 이것을 해결하기 위한 방편으로 브이아이피 고객 가입과 프리미엄 서비스 신청을 권유한다. 바퀴벌레가 없어지길 바란 광남은 약관을 제대로 읽지 않고 나름 거액으로 가입한다. 그 다음 날 바퀴벌레뿐만 아니라 옆집의 음식물 쓰레기와 옆집 사람들과 짐까지 모두 사라진다. 남겨진 것은 전축과 말러 교향곡 앨범뿐이다. 그리고 돼지를 키우는 양 씨 집에 엄청난 양의 간 고기가 택배로 배달된다. 무언가 서늘한 기분이 든다. 이 기분은 책을 덮을 때까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2부에서는 3개월 후 한일 국제결혼 부부가 이사온다. 이전 주인들이 사회적으로 어떤 인물인지 알려주는 간단한 이야기가 나오고, 심장이 좋지 않은 아내를 위해 시골로 내려온 남편의 희생 등이 먼저 펼쳐진다.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이 남편의 숨겨진 감정들이 밖으로 표출된다. 안팎이 다른 인물이란 사실이 나중에야 알려진다. 그의 아내도 마찬가지다. 이 부부의 결혼생활 이면에는 욕망이 충돌하고 억압과 남들 시선이 뒤섞여 있다. 그리고 다시 바퀴벌레가 등장한다. 문제는 남편이 올 킬에 브이아이피 고객 가입과 프리미엄 서비스 신청을 했다는 것이다. 이 서비스의 의미를 아는 광남은 공포에 짓눌린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상황은 극단으로 치닫고 예상하지 못한 장면들을 보여준다. 처음 결벽증 환자의 고군분투 정도로 생각했던 이야기는 감춰진 공포와 환각으로 이어지면서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펼쳐진다. 3부에서 광남의 아들 배식이 나타날 때는 더욱 그렇다. 이렇게 작가는 반복되는 상황의 변주를 통해 바퀴벌레와의 대결을 그려낸다. 안 대리가 바퀴벌레를 두고 하는 말도 상황에 따라 바뀐다. 처음에는 한 마리만 생겨도 금방 번식하고 쉽게 죽지 않으니 철저하게 죽여야 한다는 논리였다면 나중에는 그냥 참고 살라고 한다. 하지만 바퀴벌레에 잠식된 정신은 이것을 거부한다. 작가는 이 과정을 자세히 보여주는데 어느 부분에서는 역겨울 정도다. 이 소설을 모두 읽은 지금 왠지 모르게 귓속에서 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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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이즌 아티스트
조너선 무어 지음, 박영인 옮김 / 네버모어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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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면서 처음에는 최근에 읽었던 한 작품이 머릿속을 지나갔고, 마지막에 도달할 즈음에는 오래전에 읽었던 한 작품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그 제목들을 말하면 그 자체가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어 여기서는 생략할 수밖에 없다. 물론 그 작품들과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나 마무리는 다르다. 주인공의 직업이나 공간적 배경도 다른데 이것이 이 작품만의 매력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왠지 모르게 몇몇 부분에서 강한 집중력을 발휘하기 힘들었다. 내 몸 상태 때문인지, 아니면 이야기만 만들어내는 분위기 탓인지는 잘 모르겠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내가 가장 강하게 느낀 것은 안개 속을 헤매는 것 같은 느낌이다. 케일럽이 여자친구 브리짓과 싸운 후 술은 마시며 돌아다니는 장면과 그를 매혹시킨 한 여성의 등장은 모호하게 다가왔다. 화가인 브리짓과 케일럽이 만나 행복한 시간을 가진 듯한 이 둘이 싸우고, 상처 입힌 후 밤을 돌아다니게 된 이유가 나중에 나오지만 이 때문에 이 상황에 쉽게 빠져들지 못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매혹적인 여성의 흔적을 뒤쫓고, 그녀가 권한 술 압생트가 등장할 때 미로 속 상황은 더 모호하게 다가왔다. 한때 예술가들이 사랑했지만 문제가 많았던 술이 아닌가.

 

케일럽의 방황 속에 친구 헨리가 찾아온다. 그는 법의학자다. 의문의 시체가 발견되었고, 이 시체가 의문의 독에 중독된 후 오랫동안 고문을 당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케일럽은 샌프란스시코의 UCSF 메디컬 센터에서 독성학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그가 지원금을 받으려는 연구는 고통의 정도를 측정하는 것이다. 그의 연구소는 독 등에 대한 최고의 분석 기계와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다. 헨리가 그의 도움을 요청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법의학센터에서 제대로 된 결과를 얻지 못했기에 찾아왔다. 그리고 이와 비슷한 시체가 계속 발견된다.

 

브리짓과 싸운 뒤 그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여자 에멀린에게 매혹된다. 그녀가 공중전화에서 전화를 하고, 짧은 만남을 가진다. 이렇게 된 이유는 그가 에멀린을 손으로 그려서 그녀가 나타날 것 같은 바에 연락처와 함께 남겼기 때문이다. 에멀린에게 빠진 그는 일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 출근이 불안정하고 그에게 온 메일도 제대로 읽지 않는다. 그녀가 연락해서 요리를 해달라고 하고, 요리 재료를 손보고, 그녀에게 이끌려 집밖 어딘가로 간다. 오래된 건물 속에서 그녀에게 요리를 해준다. 행복하지만 왠지 불안하다. 이후 만남도 비현실적으로 흘러간다.

 

이 연쇄살인 사건을 수사하는 경찰들이 그를 찾아온다. 특히 캐넌 형사는 왠지 모르게 그를 의심하고 계속 뒤좇는다. 그의 알리바이를 묻고, 그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 그의 연구소의 프로그램은 누가 만든 것인지 등도 묻는다. 그가 연구하는 주제만 놓고 보면 그의 연구소 누군가가 이런 사건을 저질러도 이상할 것이 없을 정도다. 광기의 과학자들은 언제나 있지 않은가. 그리고 그는 독성학 연구소의 소장이다. 그가 가진 약들이라면 이런 상황을 쉽게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신비롭고 매혹적인 여성 에멀린이 있지 않은가. 그녀라면 가능하다. 작가는 이 상황을 일반적인 스릴러로 풀어내지 않는다. 내가 처음 말한 두 작품이 떠오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 소설에서 실종자를 찾는 전단지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작가는 앞부분에 한 남자를 찾는 전단지를 등장시키고, 마지막에 또 이와 비슷한 전단지를 등장시켜 두 사건을 엮는다. 처음 실종된 남자가 나중에 중독된 상태에서 고문당한 시체로 발견되는 것을 떠올리면 이 살인자가 어떻게 시체를 처리하는지 잘 보여준다. 여기에 케일럽의 과거가 끼어들면서 이야기는 복잡해진다. 그녀의 정체를 밝히면 될 텐데 남자들은 자신만의 비밀을 지키려고 한다. 당연히 사건은 더 꼬인다. 물론 이것도 뒤로 가면 밝혀지지만 사실들이 충돌하면서 경계가 모호해진다. 예상한 반전이다. 만약 비슷한 반전을 경험하지 않았다면 다른 재미를 누렸을 것 같은 작은 아쉬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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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일드 시드
옥타비아 버틀러 지음, 조호근 옮김 / 비채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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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된 책이 새롭게 번역되어 나왔다. 최근에 SF의 불모지인 한국에서 좋은 SF작품들이 다시 번역 출간되고 있다. 반가운 일이다. 이전에 열심히 SF 소설들을 모은 적이 있다. 헌책방을 돌아다니고, 인터넷을 뒤져 겨우 모은 책들이 이제 새롭게 나오고 있다. 그 당시의 노력들이 약간 허무한 감도 있지만 먼저 읽었던 책들은 새로운 번역본에 잠시 추억에 빠지게 만들기도 한다. 이 책의 이전 번역본인 <야생종>도 집 어딘가에 있다. 다만 살 때 옥타비아 버틀러의 가치를 잘 몰랐을 뿐이다. 뭐 이런 작가가 한두 명이 아니지만. 그녀의 전작들을 흥미롭게 읽었고, 이 소설의 소개글들이 다시 나의 관심을 끌었다.

 

불사의 존재. 많은 권력자들이 바란 것이다. 일반 사람들도 바라는 바일지 모른다. 이 소설 속 두 주인공 도로와 아냥우는 불사의 존재다. 하지만 둘의 불사는 존재 방식이 다르다. 4천 년을 살아온 도로는 타인의 육체를 빼앗아 생존하는 존재고, 아냥우는 자신의 육체를 자유자재로 바꾸면서 죽지 않는다. 도로의 생존 방식은 판타지에서 이혼대법으로 표현되는 것인데 이것을 아주 쉽게 해낸다. 문제는 그의 혼이 들어간 육체가 아주 오랫동안 버티지 못한다는 점이다. 아냥우의 변신은 보고 먹는 것으로 일어난다. 동물로 변신이 가능하다. 바다에서 돌고래를 본 후에는 돌고래로 변신한다.

 

도로는 자신의 불사를 이용해 인종 실험을 한다. 교배를 통해 초능력을 가진 존재들을 만들어내려고 한다. 아냥우를 만나게 된 것도 길을 가다 그녀의 존재를 깨닫고 그녀를 통해 얻게 될 새로운 후손 때문이다. 아냥우처럼 자신의 관리 아래에 있지 않은 초능력자들을 야생종이라고 부른다. 4천 년을 산 그의 후예들은 세계 어디에나 있고, 인종에 특별히 집착하지도 않는다. 그가 처음 아냥우를 만났을 때는 1690년으로 한창 노예사냥이 일어나던 시기다. 아프리카 대륙에서 신대륙인 아메리카 대륙으로 아냥우를 데리고 가는 것은 그곳에서 더 안전하게 교배하기 위해서다.

 

불사의 존재는 미신으로 가득한 세계에서 배척과 공포의 대상이다. 아냥우의 생존은 공포와 변신으로 이어져왔다. 도로와의 만남은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게 만들고, 새로운 능력자와의 만남을 의미한다. 하지만 아메리카로의 항해는 노예무역 방식을 따를 수밖에 없다. 도로의 자식이 운행하는 배는 그 당시 노예선에 비해 쾌적한 편이었다. 그리고 대단한 염력을 가진 아이작이 있다. 그의 놀라운 능력은 폭풍이 몰아쳤을 때 아주 잘 드러난다. 안전한 이동이 가능한 것도 이 때문이다. 아이작은 아냥우에게 반한다. 도로는 아냥우를 아이작의 아내로 준다. 아냥우의 생각과 너무 다르다.

 

도로에게 아냥우는 교배용 가축과 별 차이가 없다. 대단한 능력을 가진 아이작에게 애정을 가지지만 자신의 뜻에 반대하면 언제나 죽일 수 있다. 아냥우도 마찬가지다. 다만 그녀의 능력이 원초적 충동을 억제하게 할 뿐이다. 아이작이 아냥우를 설득하는 장면은 자신과 그 후손의 안전을 위해서란 명분을 잘 보여준다. 지켜야 할 것이 있는 사람의 선택이다. 이후 수많은 아이들을 낳은 아냥우는 치유사로서 활약한다. 도로의 교배 실험으로 태어난 아이들은 능력을 각성하는 순간이 생긴다. 이 순간을 잘 넘기지 못하면 미치거나 죽게 된다. 이 불안정성은 결코 개선되지 않는다.

 

혼자 4천 년을 살았다는 것은 엄청난 고통이다. 그 고독은 아냥우의 존재를 더욱 돋보이게 만든다. 도로가 아냥우의 몸을 빼앗을 경우 그 몸은 죽는다. 도로가 쉽게 죽이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다. 도로가 세운 마을에서 모성애를 발휘하던 그녀가 아이작과 자신의 아이가 죽는 것을 본 후 이 생활을 벗어나려고 한다. 그녀의 선택은 돌고래다. 이후에도 정신적 상처를 받으면 돌고래로 변신해 자신을 치유한다. 재밌는 점은 그녀가 남자로 변해 아이를 낳은 적도 있다는 것이다. 도로가 백인과 여성의 몸에 들어간 것과 별 차이가 없다. 다만 도로는 후손들을 교배용으로 이용하고, 아냥우는 그들을 보호하려고 한다는 차이가 있다.

 

도로의 불사와 교배 실험은 도로를 신으로 만든다. 도로가 건설한 마을의 여자들은 모두 도로와 교배하길 바란다. 이곳에서 일반적인 윤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도로의 필요에 의해 선택된 사람들끼리 교배를 한다. 태어난 아이의 능력은 늘 불안정하다. 하지만 도로는 자신의 불사를 위협할 수 있는 인물은 죽인다. 어떤 초능력자가 자신의 영혼을 파괴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나중에 나올 이야기에서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모르겠다. 패터니스트 시리즈 중 한 권인데 다른 작품들도 번역되었으면 좋겠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도로와 아냥우의 존재가 어떤 관계를 보여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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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파고스 에프 모던 클래식
커트 보니것 지음, 황윤영 옮김 / F(에프)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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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새롭게 번역되어 나왔다. 이전 번역본과는 번역자가 다르다. 집 어딘가에 구판이 있을 텐데 언젠가 시간이 나면 몇몇 부분은 번역을 비교해 보고 싶다. 가끔 다른 번역자들의 첫 장을 비교해서 볼 때가 있는데 원문이 어떻길래 이런 번역 차이가 나는지 궁금할 때가 많다. 단순히 단어의 선택 문제가 아니라 문장의 마침표가 다른 경우도 많이 봤기에 이런 생각을 한다. 번역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고, 황당하고 놀랍고 어느 순간까지 의문을 품고 있었던 이 소설 이야기를 해보자.

 

보니것의 소설을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고, 지루했다. 그러다 그의 블랙유머를 알게 되면서 감탄했다. 이 소설도 어떤 대목에서는 지루함을 느꼈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과 비슷한 반복 때문이다. 특히 백만 년 뒤의 인류 조상들이 어떻게 갈라파고스에 머물게 되었고, 어떤 진화를 거쳤는지 알려줄 때 더욱 그랬다. 또 누가 이 백만 년 전 1986년의 사건을 이렇게 자세하게 아는지도 처음에는 알 수 없었다. 중간 중간 나오는 이야기를 보면 현대인이 분명한데 그가 이런 세부적인 이야기를 한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 알 수 없는 화자의 정체와 그들의 표류기는 뒤로 가면서 자연스럽게 해소된다.

 

다윈이 <종의 기원>을 쓰게 만들었던 그 섬이 바로 갈라파고스다. 진화론의 모태가 된 이곳을 작가는 미래 인류의 진화지로 만든다. 하지만 소설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이 섬에 도착하기까지 과정과 그 인물들 이야기다. 이들은 갈파파고스로 가기 위한 유람선 바이아데다윈호를 타기 위해 호텔에 도착했다. 세기의 유명 인사들이 타기로 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탑승을 취소했다. 동시에 에콰도르는 극심한 식량난에 시달린다. 금융도 붕괴되었다. 호텔 바깥의 풍경은 굶주림에 시달린 사람들로 가득하고, 군대가 호텔을 지키는 모습이다. 승객 중 한 명은 이 나라의 자산을 미국 달러로 헐값에 사려고 한다. 아주 낯익은 상황이다.

 

백만 년 뒤의 인류는 손도 발도 없다. 당연히 뇌도 작다. 화자인 레온은 이 3킬로그램의 뇌가 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음을 지속적으로 되풀이해서 보여준다. 뭔가 사건이 일어나면 이 뇌를 말하면서 핑계를 댄다. 그리고 앞부분에 죽을 사람들의 이름 앞에 별표를 해놓았다. 이들은 새로운 인류의 조상이 될 수 없는 인물들이다. 그렇다고 이들의 과거의 현재를 생략하지는 않는다. 이 소설을 풍성하게 만드는 인물들이 바로 이들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 소설에서 명언을 끊임없이 알려주는 역할을 하는 기계인 만드락스는 일본의 천재 과학자가 만들었다.

 

바이아데다윈호에 탑승하려는 인물들에 대해 작가는 아주 신랄하고 풍자적으로 풀어낸다. 사기꾼이라는 간단한 정보를 준 뒤 이 인물의 삶을 깊이 들어가거나 새로운 인류의 진화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여교사의 삶을 두 부분으로 나누어 보여준다. 무능한 선장 탓에 원래 목적했던 곳으로 가지 못하고 갈라파고스 제도 중 한 곳인 산타로살리아섬에 정박한다. 이 선장과 호텔 지배인은 형제인데 이들의 문제를 뒤틀어서 보여준다. 처음에는 이 유람선에 다른 선원들도 있지 않나 하는 의문이 들었지만 후반부에 왜 이런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는지 설명해준다.

 

솔직히 과학적으로 이 소설은 말이 되지 않는 이야기가 가득하다. 이들이 섬에 좌초해서 머문 시기에 구출되지 않는 것도 그렇고, 작은 섬에 머물면서 인류가 진화를 했다는 시간과 이 시간을 알고 있는 레온의 존재 등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런 것은 솔직히 중요하지 않다. 작가가 보여주려고 하는 것은 인류가 가진 부조리한 모습과 불평등과 폭력성과 탐욕 등이기 때문이다. 읽을 때는 어떤 부분에서 미로 속을 해매는 기분이지만 끝에 도달하게 되면 작가가 풀어놓은 이야기들이 진한 여운으로 다가온다. 아니 여운보다 생각할 거리들이다. 바다에서 육지로 올라왔을지 모른다는 인류가 백만 년의 시간 뒤에 다시 바다로 퇴행한다는 설정은 진화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한다. 다시 읽어봐야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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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이 필리핀 : 보라카이.마닐라.세부.보홀.팔라완 - 여행을 즐기는 가장 빠른 방법 인조이 세계여행 13
백주희 지음 / 넥서스BOOKS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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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 가장 많이 가는 해외 여행지 중 한 곳인 필리핀을 한 번도 다녀온 적이 없다. 휴가를 내어 가는 곳 일 순위는 언제나 태국이었다. 처음 해외여행을 간 곳이고, 배낭여행을 처음 간 곳도 태국이었기에 어쩌면 익숙했는지 모르겠다. 다른 나라에 눈길이 갔을 때도 라오스 등에 먼저 눈길이 갔다. 물론 내가 가고 싶은 곳의 항공료가 생각보다 비싸 다른 곳으로 갔지만 말이다. 몇몇 동남아 지역을 다니면서 일주일 정도 시간을 내어 세부와 보홀을 여행하는 일정을 잠시 생각한 적이 있다. 세부보다 보홀의 사진 몇 장이 나를 유혹했던 시기다.

 

작년에 급하게 휴가를 내어 세부에 가려고 하다 괌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낯선 곳이고, 치안 불안 때문에 아내가 주저했기 때문이다. 한국 관광객들이 그렇게 많이 가는 곳인데 그냥 가서 부딪히면 될 텐데 하는 나와 어린 아이와 함께 가는데 모르고 가면 어떻해 하는 의견의 충동은 너무 쉽게 아내의 승리로 끝났다. 그 후 세부를 다녀온 아내 친구가 극찬을 하는데 이야기를 들어보면 대부분 리조트에서 시간을 보냈다. 솔직히 리조트 안에서만 시간을 보내는 것을 나는 좋아하지 않는다. 괌에서도 비싸게 렌트해서 가까운 쇼핑몰과 식당 등을 찾아다니지 않았던가. 이런 기억들이 이번 겨울에는 세부가 어떨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 책이 눈에 들어왔다.

 

오랜만에 이런 가이드북을 읽었다. 해외여행을 가면서 가이드북 없이 많이 다녔다. 대부분 인터넷 검색 등을 통해 현지에서 즉석으로 일정을 짜곤 했다. 물론 가기 전 대충 코스 등은 정하지만 세부적인 것은 짜지 않는다. 괌이나 태국이 편한 것은 바로 이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이 가이드 제목에서 가장 눈길을 끈 것은 내가 필리핀하면 떠올릴 수 있는 지역들을 모두 담고 있다는 점이다. 다섯 지역 중 솔직히 마닐라는 위험지역으로 분류하고 있었는데 지인이 쇼핑하고 다녀온 적이 있고 싼 비행기표가 나오면 가자고 한 곳이다. 가이드북에 의하면 내가 생각한 것과 다른 이미지라 이번에 기억을 새롭게 했다.

 

얼마 전 보라카이가 닫혔다가 다시 열렸다. 회사 직원은 아이와 함께 며칠 전 떠났는데 다녀오면 한 번 감상을 듣고 싶다. 패키지로 갔다 온 직원이 두 번 다시 가고 싶지 않다고 한 기억이 너무 강하게 남아 있는데 보라카이 섬으로 가는 교통편이 신공항으로 더 쉬워진다는 말에 관심이 부쩍 생겼다. 해변과 풍경이 너무 좋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던 것이고, 이번에 갔다올 직원을 통해 관심도는 더 높아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호핑투어를 좋아하지 않는데 이이와 함께하는 하루 코스에 포함되어 있다. 솔직히 나의 관심사는 화이트 비치 쪽이다. 아마 숙소를 정하고 그쪽 비치와 쇼핑몰과 현지 식당들을 주로 다니지 않을까 생각한다.

 

왠지 언제부터인가 세부와 보홀은 하나의 세트처럼 묶였다. 보홀을 다녀온 사람들은 모두 그곳을 좋아했다. 세부를 갔다 온 지인들은 리조트에서 논 사람과 외부 활동을 많이 한 사람으로 나누어지는데 숙소에서 갈리는 경우가 많다. 유명한 리조트의 가격이 내가 태국에서 경험한 것보다 훨씬 비싸 이 가격이면 태국 가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한때 TV 먹방에서 세부의 음식들이 많이 나와 나의 시선을 강하게 끌었지만 아이와 함께라면 고려해야 할 점이 많다. 가이드북을 넘겨보면서 한국 식당들이 생각보다 많은 것을 보고 외국 음식에 약한 어른들을 모시고 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홀의 초콜릿 힐과 안경 원숭이는 나의 시선을 강하게 끈 두 가지 관광 포인트이지만 아직 사람들이 덜 다녀간 해변도 이제는 관심의 대상이다. 관광지로 개발이 조금 덜 된 듯한 부분도 개인적으로 마음에 든다. 섬의 크기나 개발도 등을 보면 빨리 가봐야 할 곳 중 한 곳이다. 그리고 팔라완의 경우는 아이가 물에 대한 두려움을 많이 떨쳐내었을 때 가보고 싶다. 주변 지인들 말에 의하면 바다보다 수영장을 더 좋아한다고 말하니 가족 여행으로 가는 것은 조금 더 뒤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른들과 아이들의 감상이 다른 곳이라 아쉬움이 있다. 정보도 다른 지역에 비해 적은 편이다.

 

전형적인 가이드북이다 보니 많은 정보가 담겨 있다. 여행을 가기 전에도 정보를 얻기 좋겠지만 현지에서도 정보를 상호 확인하는데 많은 도움을 줄 것 같다. 개인적으로 가이드북을 들고 여행하는 것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지만 낯선 곳에서 정보가 부족할 때 좋은 가이드북은 좋은 안내자가 되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아쉬운 점이 몇 개 있는데 필리핀 기초 정보를 뒤쪽으로 배치한 것과 그랩에 대한 정보가 없다는 것이다. 특히 처음 가는 외국의 경우 그 나라의 간단한 정보는 생각보다 많은 도움이 된다. 점점 택시보다 그랩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것은 내가 놓친 것인지, 아니면 아직은 택시가 편한 것인지 의문이 든다. 이제 이 책으로 필리핀에 대한 걱정은 많이 덜어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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