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만찬 - 제9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서철원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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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회 혼불문학상 수상작이다. 이 문학상 수상작들을 많이 읽지 않았다. 사실 <혼불>이란 장편도 읽지 않았고, 그 작품도 잘 모른다. 언제부터인가 문학상들이 너무 많이 생겼다.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문학상이 있고, 예전에는 무조건 읽었던 문학상도 있지만 이제는 점점 문학상에 지쳐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학상 수상작은 언제나 관심을 두게 된다. 사실 이 소설도 읽을까 말까 고민을 많이 했다. 기존 역사소설의 문법과 다르고, 호락호학 독자로 하여금 따라오기를 완강하게 거부하고 있다는 말에 더 고민되었다. 하지만 문학상 수상작이란 것과 고민하게 만드는 소개글 덕분에 오히려 읽게 되었다.

 

읽으면서 이 소설을 역사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레오나르드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조선 정조 시대에 끌고 들어오고, 그 그림 속 인물 중 한 명을 300년 전 장영실일 수 있다고 했을 때 머릿속은 복잡해졌다. 솔직히 말해 장영실이 나왔을 때는 왠 국뽕 소설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것을 확인하기 위해 김홍도를 이탈리아까지 보냈다는 말에는 할 말을 잃었다. 작가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가설이 나를 충분히 납득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때는 이탈리아라는 나라 자체가 없을 때다. 이 상상력의 원천이 어디인지 궁금하다. 거기에 프리메이슨이란 존재도 같이 말하지만 그들의 존재가 어떤 실체를 가지고 등장하지는 않는다. 뭐지?

 

정조 15년 1791년 천주교 신자 윤지충과 권상연이 처형당한다. 천주교 최초의 순교자들이다. 이들을 심문하는 최무영은 많은 갈등을 보여준다. 이 부분은 묘사한 장면을 보면서 처음 서학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고민하는 유학자의 고뇌가 잘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윤지충의 집에서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 모사본을 가지고 궁으로 돌아오면서 이야기가 복잡해진다. 조선의 화풍과 다른 그림이고, 그림이 의미하는 바를 모르기에 추측이 난무한다. 개인적으로 이 그림에 정조가 집착하고, 그림 속 인물과 구도 등을 풀어낼 때 조금 허황되게 들렸다. 조선의 한 마을까지 흘러들어온 모사도가 제대로 된 그림일 가능성과 유화에 대한 설명은 빠져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이 소설을 이 부분에서 나와 삐걱거렸다.

 

다른 이야기의 한 축은 정약용과 장악원의 도향이란 소녀의 이야기다. 어떻게 보면 둘의 로맨스로 포장할 수 있지만 도향이란 소녀의 존재를 부각시키기 위한 인물로 약용이 나온다. 약용이 카메라 옵스큐라를 이용해 궁중 연향에서 비존재의 존재를 기록하는 모습은 과연 이 소설이 역사소설의 범주에 넣을 수 있을지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도향만 연주 가능하다는 변음이란 것도, 그녀가 심역사 속 불을 다스리는 소녀란 설정도 마찬가지다. 장면에 대한 훌륭한 묘사도 이런 설정들이 앞으로 나오는 순간 왠지 거부감이 생긴다. 장르소설을 좋아하는 나인데도 말이다.

 

초라니패 이야기에서 정여립을 다시 부활시켰다. 하지만 그의 이상과 사상을 충분히 설명하지 않고 넘어간다. <최후의 만찬> 속 이야기에 비해 설명이 많이 부족하다. 이 패거리에 모인 사람들의 사연과 그들의 무기에 담긴 힘은 또 하나의 재미다. 그들이 외치는 세상과 복수는 작은 울림을 준다. 그리고 실제 그들이 무대에 등장했을 때 모습은 예상을 초월했다. 이들이 세상의 향기를 훔쳤다고 하는 부분에서 또 한 번 판타지의 향기를 느꼈다. 기존 역사 소설의 문법과 달라도 너무 다르다. 만약 진중한 역사 소설을 좋아한다면 비추다.

 

내가 알고 있는 정조와 정약용의 이미지가 이 작품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아마 이 이미지는 내가 임의로 만든 것이라 실제 모습과 많은 차이가 있을 것이다. 단순히 천주교 탄압이나 순교에 집중하지 않은 것은 박수칠 부분이지만 왕의 반대편에 선 인물들 목소리는 간결한 문장과 세력으로만 나와 그 힘이 그렇게 강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어쩌면 기존 역사 소설에 익숙해 이 소설의 작법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정제된 생각과 관찰이 좋은 문장으로 풀려나와 음미하면서 읽으면 깊은 맛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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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공포소설가 놀놀놀
전건우 지음 / 북오션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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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소설가의 에세이는 어떤 공포를 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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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정 전일도 사건집
한켠 지음 / 황금가지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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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대로 탐정 집안에서 태어난 탐정 전일도, 그녀는 생계형 탐정이다. 불륜탐정이었던 할아버지가 탐정은 일도 가정도 놓치면 안 된다는 의미에서 쌍둥이로 태어난 이 남매를 오빠는 가정, 동생은 일도란 이름을 붙였다. 처음 제목을 보고 주인공이 당연히 남자라고 생각했는데 여성이 이 이름으로 주인공 활약을 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 하지만 진짜 놀라게 되는 것은 일도가 활약하는 아홉 편의 단편들이다. 마지막 열 번째 작품 <용꿈이면 면천이라>는 전 씨 집안의 선조 이야기다. 솔직히 마지막 작품은 예상하지 못한 전개라 처음에 살짝 적응이 필요했다. 약간의 번외편이라고 해야 할까.

 

첫 작품부터 마지막 작품까지 작가는 등장인물을 재활용한다. 시간의 연속성을 가지고 있다 보니 다음 작품에서 전편에 등장한 인물들이 다시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최고의 방점을 찍은 것은 <우리들의 미래>란 단편이다. 이 작품은 정말 그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현재와 미래를 담고 있다. 미래란 여성이 취업에 실패하고, 자살하려는 것을 막는 내용인데 블랙코미디의 진수를 보여준다. 전편에 등장한 사람들이 모두 등장해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는데 조용히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개인적으로 첫 작품 <스파게티의 이름으로, 라멘>과 더불어 가장 재밌게 읽은 단편이다.

 

<스파게티의 이름으로, 라멘>은 계약 결혼한 아내를 찾아달라는 이야기다. 황당함과 코믹함이 엮인 파스타파리안은 어딘가에서 비슷한 이름을 들은 것 같다. 안정적 직장인 공무원이 된 의뢰인이 말하는 내용은 황당하지만 충분히 이해가 되는 이야기다. 이것은 다른 이야기 속 비혼이나 잠시 언급된 주거문제와도 연결된다. 이 소설은 우리 사회의 문제들을 하나씩 다루고 있지만 이 문제들이 완전히 독립된 것들이 아니다. <헬로 욜로>에서는 이 부동산 투자 문제를 직접 다루는데 한국의 투기 광풍이 개인들의 삶을 어떻게 뒤흔드는지 잘 보여준다. 할아버지가 욜로를 외치며 집을 팔고 전세로 사는 모습은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설정이지만 이 때문에 일도는 사건을 의뢰받는다.

 

<아이들은 잘하지 않아도 괜찮아>는 씁쓸한 현실의 교육과 부동산 이야기다. 자신이 하지 못한 것을 강요하는 부모와 주거공간에 따른 친구 관계 등은 현재 우리의 현실이다. 교육에 많은 돈을 쏟아붓는 부모의 선택에 찬성하지 않지만 이해는 된다. 아이의 가출에서 열 번 의뢰하면 한 번 공짜라는 영업방침이 나온다. 교육 현장의 문제를 다룬 작품은 <아무 일도 아니야>가 있다. 아무 문제 다니던 여중생이 자살했는데 부모는 그 이유를 모른다. 자신들이 알고 있는 테두리 안에서 문제를 보고, 가장 친했다고 말하는 아이를 닦달한다. 일도에게 온 의뢰는 이 아이의 보디가드 역할이다. 보디가드보다 싸다는 이유로. 교육계의 문제가 그대로 드러나고, 학교가 얼마나 권위적인 공간인지, 부패하고, 비리가 많은 곳인지, 성추행에 얼마나 관대한 곳인지 보여준다.

 

<나의 비혼식>과 <퇴사 혹은 무단결근>은 이루리란 직장 여성의 이야기다. 친구 등에게 비혼을 말하고 축의금 등을 받는 일을 도와달라고 하거나 갑자기 사라진 그녀를 찾는 내용이다. 비혼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이유와 가짜 결혼까지 하고 외국 여행을 가는 대담함은 쉽게 연결되지 않지만 재밌다. 하지만 현실에서 실직은 생존에 관련된 문제다. 여성이기에 퇴직을 강요받는 현실과 결혼이 하나의 도피처일 수도 있다는 현실적 판단도 같이 보여준다. 명절 전 결혼했다가 명절에 이혼한 친구의 사연은 한국의 결혼문화의 문제를 축약적으로 잘 다루었다. 부동산 가격 상승은 집 없는 나에게는 씁쓸한 이야기다.

 

<누구든 실종시켜 드립니다>는 생계형 아이돌 데뷔를 꿈꾸었던 여성 이야기다. 데뷔가 실패하면서 공시생이 되었고, 유튜브를 하지만 크게 성공적이지 않다. 한국 아이돌 시장이 과포화 상태에서 이들을 이용해 자신의 부를 일구려는 업자들 모습도 나오고, 그 과정에 희생된 아이돌의 현재 모습을 다룬다. <사람이 자랑하면 귀신이 질투한다>는 표절과 미투를 다루는데 등장인물들의 대화가 더 재밌다. 잠적한 인기 웹툰 작가는 배제된 채 펼쳐지는 이야기는 현재가 아닌 3년 전 과거와 그 성공이 연결되어 있다. 성공탑이 무너질 수 있다는 공포가 합의 이후 바뀌는데 이 또한 현실이다.

 

다루고 있는 사건들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탐정의 활약과 상당히 동떨어져 있다. 살인사건 같은 끔찍한 일은 없고, 불륜을 파헤치는 일도 없다. 실종전문 탐정이란 말처럼 실종된 사람을 전문적으로 찾는 것도 아니다. 누군가의 보디가드가 되고, 자살하는 사람을 구하려는 노력도 한다. 혼밥이 편하고, 계약서와 입금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안다. 이렇게 전일도가 마주한 사건은 보는 동안은 유쾌하고 재밌지만 그 뒤에는 씁쓸함과 현실의 무게가 뒤따라온다. 트렌디한 문제를 다루면서 우리의 삶을 표현하는데 웃픈 상황이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일도 탐정은 열심히 사건을 받고 해결해나간다. 작가의 말처럼 2권, 3권 계속 나오는 것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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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책
니나 게오르게 지음, 김인순 옮김 / 쌤앤파커스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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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 때문인지 헨리가 강에 뛰어 들어가는 장면이 처음에는 비현실적으로 다가왔다. 물에 빠진 아이를 구해 물 밖으로 나온 그를 지나가던 차가 치었다. 운전자는 역광 때문이라고 말한다. 아들을 만나러 가다가 아이를 구한 영웅이 우연한 사고를 당한 것이다. 이 사고로 헨리는 코마에 빠지고, 그가 만나고 싶었던 아들 샘은 그를 보러오기 위해 엄마의 사인을 위조하고, 수업을 빼먹는다. 이런 그보다 늘 먼저 오는 사람이 있는데 에디다. 에디는 헨리가 사고를 당했을 때 최종 결정을 할 수 있는 대리인으로 지정된 옛 연인이다. 이렇게 소설은 세 인물이 교차하면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코마 상태의 헨리는 과거와 꿈속에서만 살아 있다. 현실은 병원에서 온갖 검사 기계를 몸에 부착하고 머문다. 프랑스 태생이지만 어릴 때 아버지와 바다에 나갔다가 혼자 살아온 적이 있다. 성인된 후 그는 종군기자로 활약했다. 아들 샘도 종군 사진가였던 마리프랑스와 참혹한 일을 겪은 후 불안의 욕망으로 생겼다. 마리프랑스가 안정을 바라면서 그에게 위험한 종군기자를 그만두게 한다. 마리프랑스의 불륜과 그의 떠남이 겹쳐지고 아들과 멀어진다. 그가 그날 그 현장을 지나갔던 이유도 샘이 그에게 보낸 메일에 답하기 위해서다. 아들이 보고 싶었다.

 

샘은 조금 특별한 아이다. 숫자 등을 색으로 인식한다. 가끔 이런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의 능력은 조금 더 많은 것을 본다. 엄마가 아빠를 보러 가는 것을 막았기에 친구의 도움을 받아 매일 병문안 온다. 엄마가 아빠에 대해 말했던 거짓말을 알게 되고, 아빠가 어떤 사건을 겪었는지 유튜브를 통해 알게 된다. 친구와 함께 멘사 출신으로 지력은 뛰어나지만 몇 가지 일반적인 상황 파악은 더딘 편이다. 그리고 병원에서 그 또래의 여자아이 매디를 만난다. 그녀 또한 사고를 당해 가족은 모두 죽었고, 그녀 자신은 코마 상태에 있다. 샘은 매디에게 반한다.

 

에디는 헨리를 사랑했다. 그에게 사랑한다고 말했지만 그는 떠났다. 사변소설을 전문적으로 내는 출판사를 운영 중이다. 사변소설(Speculative fiction)은 비현실적인 것을 주요 소재로 사용하는 소설을 일컫는데 이 소설도 여기에 해당된다. 현재 다른 남자를 사랑하고 있지만 이 사건을 통해 그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깨닫는다. 그녀는 헨리의 생명 유지 장치를 뗄 수 있는 권리가 있다. 왜 자신에게 이런 문서를 남겼는지 잘 이해하지 못하지만 헨리의 사고 속에 그 답이 들어있다. 샘을 만난 후 헨리에게 아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샘과 함께 그의 회복을 바란다.

 

이 세 명은 현실 속에서 만나고 헤어지고, 꿈속에서 다시 비현실적 경험을 한다. 헨리의 기억은 샘이 태어나고 그 아이가 특별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으로 시작하여 다른 가능성의 세계로 넘어간다. 선택에 따라 미래가 갈라져 나간다. 평행우주의 모습이다. 그가 코마 상태에서 만나는 중간계는 무한하게 열린 세계다. 이 세계 속에서 그는 과거를 다시 만나고, 미래에 대한 꿈을 꾼다. 이 꿈이 에디와 이어지는 부분은 비현실적이지만 그 느낌과 감정은 진짜다. 이 소설의 재미는 바로 이 부분에서 생긴다.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넘나들고, 자신의 진짜 감정을 깨닫고, 과거의 아픈 기억을 제대로 들여다보게 하는 것이다.

 

의학적으로 의식불명 상태의 헨리가 꿈속에서 펼치는 이야기는 기억과 선택과 의지의 문제다. 에디에 대한 사랑을 깨닫고 그녀와의 미래를 꿈꿀 때 그 경험은 에디에게도 전이된다. 그가 샘이 좋아하는 매디의 존재를 깨닫고 그녀를 도와주려고 하는 것도 꿈 속 이야기다. 하지만 이 꿈은 현실 의학에서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샘이 아빠 영혼의 존재를 알게 되고, 그의 귀환을 바란 것도 그가 본 비현실적 존재 때문이다. 이런 비현실적 세계에서 가장 의학적 분석을 하는 인물은 닥터 사울이다. 그의 경험과 지식에서 나오는 이야기는 너무 가슴 아픈 현실이다. 이런 충돌과 현실 인식과 꿈이 교차하면서 진행되는 이야기는 아주 매력적이고 재밌다. 이 작가의 다른 작품에도 관심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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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손을 보다
구보 미스미 지음, 김현희 옮김 / 은행나무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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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키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는 소개에 끌렸다. 정유정 작가의 추천평도 한몫했다. ‘평범한 이들의 관계에 대한 비범한 해부도’란 말에 눈길이 갔다. 책을 다 읽은 후 오래오래 가슴이 아리다고 했는데 나 역시 다 읽은 후 그 감정의 조각들에 흔들리고 있다. 네 남녀의 만남과 헤어짐과 그 일상이 어떤 특별함도 없는데 그 흐린 분위기에 조용히 휩쓸린다. 결코 밝고 경쾌한 분위기가 아니다. 사랑의 감정이 나오지만 전체 분위기는 가볍지 않다. 냉정한 시선과 가독성 좋은 문장은 그들의 심리 묘사에 어느 정도 거리를 둔다.

 

이 네 남녀의 관계는 두 사람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히나와 가이토다. 히나는 가이토와 미야자와와 사귄다. 가이토는 히나와 하타나카와 사귄다. 이야기의 문을 여는 사람은 히나다. 그녀가 가이토와 사귄 이유는 사랑이 아니다. 그녀가 사랑의 감정을 느낀 것은 미야자와가 처음이다. 그를 안고 싶고, 그와 처음 섹스를 한 후 자신 속에 감추어져 있던 욕망을 깨닫는다. 이 소설은 성교 장면을 묘사하는데 조금도 주저함이 없다. 그렇다고 야하게만 표현하지 않는다. 성인들을 위한 문학상 수상자다운이라면 너무 뻔한 평가일까?

 

미야자와가 히나의 집에 와서 처음 한 일은 높게 자란 잡초를 제거한 것이다. 2주에 한 번 와서 풀을 벤다. 그러다 둘은 몸을 섞는다. 히나는 그가 결혼은 했는지, 여자 친구는 있는지 알고 싶지만 다른 한 편으로 두렵다. 그를 처음 만난 날 함께 온 여자가 그의 아내란 사실도 가이토가 알려줘서 알게 된다. 미야자와의 사업이 제대로 되지 않아 그녀를 떠난 후에도 페이스북으로 그의 위치를 알고, 그를 찾아간다. 이때 풀어낸 감정들과 생활은 자신의 사랑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다. 그렇다고 작가가 이 감정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모습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가이토는 히나에게 비전을 제시하고 결혼하고 싶어한다. 미야자와의 손길에 바뀐 그녀를 품고 있지만 둘의 감정은 하나가 되지 않는다. 어떤 장면은 강간을 하는 것 같다. 이런 관계가 그대로 유지될 수 없다. 히나가 미야자와를 만나러 가면서 그는 혼자가 된다. 이런 그에게 다가오는 여자가 하타나카다. 그녀는 아이가 있는 이혼녀다. 히나와 가이토처럼 요양보호사다. 연상이지만 신입이다 보니 가이토를 선배라고 부른다. 그녀는 속된 말로 헤픈 여자다. 자신에게 모성이 없다고 말한다. 그녀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보여줄 때 작가는 그 어떤 판단도 섣부르게 내리지 않는다. 이 책의 매력 중 하나가 바로 이런 부분이다.

 

미야자와와 하타나카를 화자로 내세운 이야기는 어떤 열정도 감정의 깊이도 잘 느껴지지 않는다. 그들이 선택한 직업과 삶은 우리의 삶과 닮아 있지만 다른 방식으로 흘러간다. 다른 환경과 조건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일까? 미야자와가 수해를 보고 생각한 것과 하타나카가 사바랭을 말하는 장면은 아주 강한 인상을 남긴다. 그들의 감정이, 추억이 그 속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둘은 히나와 가이토의 감정을 진하게 태우는 역할을 한다. 미야자와가 떠나면서 그 감정을 털어낸 히나의 현재 모습과 하타나카가 결혼하기로 하고 떠나면서 가슴 한 켠에서 안도를 느끼는 장면은 나중에 둘이 만났을 때 조용히 손을 잡는 장면과 이어진다.

 

아름다운 배경으로 후지산이 나오지만 일상 속에서 그 풍경은 그냥 늘 보는 풍경일 뿐이다. 자살 명소 수해 이야기는 가이토 아버지와 미야자와 이야기로 이어지면서 그 존재를 한 번 떠올린다. 하지만 이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 것은 요양보호사란 직업이다. 30대의 남성조차 몸에 병이 생길 정도의 고강도 노동에 저임금이 겹쳐져 있다. 한국도 마찬가지란 사실에 알기에 더 공감한다. 이 직업을 벗어나기 위해 가이토가 기울인 노력은 보통의 요양보호사에게 해당되지 않는다. 더 낮은 임금을 받을 인력이 해외에서 들어올 수 있다는 걱정은 아주 현실적이다. 노인 인구가 늘어나서 이 직업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란 교수의 말은 저임금과 몸의 상태를 떠올리면 공허한 주장이다. 등장인물들의 감정의 흐름을 뒤따라가다 만나게 되는 현실들은 또 다른 이야기와 무게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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