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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 새 ㅣ 스토리콜렉터 78
수재나 존스 지음, 전행선 옮김 / 북로드 / 2019년 11월
평점 :
첫 장을 읽자마자 이 작가의 독특한 문장에 빠졌다. 마지막 마침표를 읽기 전에는 그 문장이 의미하는 바를 바로 알기 어렵다. 단순한 문장 같은데 두 번 꼬였다고 해야 하나. 집중력을 발휘하지 않으면 오독의 가능성이 아주 높아지는 문장 구조다. 그래서인지 생각보다 더딘 속도로 읽었다. 빠르게 진행되는 이야기도 아니고, 강한 액션이 있는 소설도 아니다. 일본하면 같이 떠오르는 야쿠자가 나오지도 않는다. 읽으면서 이것이 스릴러인가 하는 의문이 들 정도였다. 루스 렌들을 말하는 이유가 조금은 이해된다.
제목 <지진 새>를 보고 내가 모르는 일본의 전설 같은 새가 있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지진을 알려주는 새라니 놀랍지 않은가. 외국인들이 일본을 배경으로 쓴 소설을 읽는 것은 일본 소설을 자주 읽는 나에게 조금 낯선 시각으로 일본을 보게 만든다. 비록 작가가 오랜 기간 일본에 머물렀다고 해도 이국적인 시선을 유지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 소설도 그런 부분들이 많이 나온다. 일본어로 출간된 책이 아니고 모국어로 출간되었기에 이 낯선 문화에 대한 설명이 많이 들어있다. 릴리가 집을 구할 때나 음식의 어려움을 말하는 부분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그리고 루시의 남친 데이지가 일하는 곳이 국수 가게인 것도 의도적인 것 같다.
신원미상의 여성 시체의 토막이 발견된다. 경찰은 이 시체의 주인을 릴리라고 추정한다. 당연히 경찰은 주변인들을 수사하고, 루시도 이미 만났다. 그런데 다시 경찰이 나타나 그녀를 경찰서로 데리고 간다. 경찰이 오기 전 그녀가 지진 새라고 부르는 새가 울었다. 취조실에서 벌어지는 작은 해프닝은 낯익다. 영어로 질문을 해야 하나 하는 고민과 어려움이 나오고, 일본어를 유창하게 말하는 그녀를 나중에 인식한다. 경찰들이 추궁하는 질문은 릴리가 마지막으로 만난 사람이 루시고, 루시가 릴리와 다투었고, 조금 있다가 그녀를 뒤따라갔다는 사실이다. 이 정도면 가장 유력한 용의자가 아닌가.
작가는 이 취조실에서 루시의 내면으로 파고든다. 형사와 대화하는 와중에 그녀가 처음 릴리를 만났던 상황이나 일본인 연인 데이지를 만났던 상황을 되돌아본다. 어느 순간은 그녀가 태어나고 자란 이야기도 흘러나온다. 오빠만 일곱 명 있었던 일이나 당연히 남자라고 생각했던 부모의 기대나 예상하지 못한 사고 등이 간결한 이야기 속에 풀려나온다. 자신이 나고 자란 나라를 떠나 가장 먼 곳으로 가고 싶어 떠난 그녀의 선택지에서 중국은 배워야 할 문자가 너무 많았다고 한다. 그럼 한국은 하는 질문이 생기는 대목이다. 이렇게 도착한 일본에서 그녀는 기술서 번역으로 생계를 유지한다. 일본 친구들의 도움이 적지 않았다.
적지 않은 체류 기간 동안 많은 경험을 한다. 현악사중주의 일원이 되어 연습하고, 다도 모임에 가기도 한다. 사고와 분위기 때문에 그만 두게 된다. 이런 일상에서 우연히 마주한 인물이 빗속에서 사진을 찍던 데이지다. 그와 만나 금방 연인이 된다. 처음에는 그녀의 외모 설명이 없었지만 릴리가 등장하면서 어느 정도 묘사가 나온다. 이 소설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릴리와 만나고, 데이지와 사랑을 나누고, 데이지의 사진 속에서 옛 연인 사치의 존재에 빠져 집착하는 것이다. 이런 과정 속에서 그녀의 심리 묘사는 계속 바뀐다. 특히 릴리에 대한 회상은 더욱 그렇다.
일상, 만남, 사랑, 여행 등이 이어지는 이야기 속에 이 소설이 스릴러인가 하는 의문이 들고, 살인자는 루시라는 의도된 길을 따라간다. 작가는 자신과 대비되는 릴리의 존재를 설명하면서 연인 사이가 틀어질 가능성을 암시한다. 이 소설의 재미 중 하나는 바로 이 가능성이다. 외국 독자라면 낯선 일본 문화가 더 흥미로울 수 있지만 나에게는 이 뻔한 관계가 어디서 엇나갈까 하는 부분이 더 흥미로웠다. 실제 그 장면이 일어났을 때보다 루시가 받은 충격에 더 놀랐다. 이때의 감정을 풀어내는 문장은 앞부분과 닮은 부분이 많다. 그리고 밝혀지는 진실은 예상을 완전히 벗어났다. 일상에서, 사건 속으로, 심리 묘사 등으로 부드럽게 넘어가면서 풀어내는 이야기는 아주 훌륭한 구성이며 연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