롱 웨이 다운
제이슨 레이놀즈 지음, 황석희 옮김 / 밝은세상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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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식의 소설이다. 아니 소설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300쪽이 넘지만 단숨에 읽을 수 있다. 왜냐고? 운문으로만 구성된 책이고, 이 운문이 하나의 이야기를 구성하기 때문이다. 이 소설이 매력적인 것은 운문으로 구성되었기 때문이 아니다. 간결하면서도 명확한 문체가 가독성을 높이고, 엘리베이트를 이용한 설정은 다음 층에서는 누가 등장할지 호기심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호기심에 멈추지 않고 예상하지 못한 반전이 일어난다. 미국 흑인들의 삶이 어떤 것인지 잠시 엿볼 수 있다.

 

어느 날 윌리엄의 형 숀이 총을 맞고 죽었다. 세상이 무너지는 느낌이다. 너무 슬퍼다. 엄마의 통곡은 또 어떤가. 경찰에 밀고할 수도 있지만 이 동네에 룰이 있다. 첫째 울지 마라, 둘째 밀고 하지 마라, 셋째 복수해야 한다. 윌은 울지 않으려고 하고, 밀고 하지 않는다. 그리고 복수를 하려고 한다. 숀과 함께 쓰는 방에서 숀의 총을 발견한다. 윌은 누가 범인인지 짐작할 뿐이다. 마지막 룰을 지키기 위해 그는 허리춤에 총을 차고, 엘리베이트를 탄다. 본격적인 이야기는 바로 이 엘리베이트 안에서 일어난다. 자신이 생각한 살인자를 죽이기 위해 탄 엘리베이트가 로비 층에 도달하는 과정에서 일어난다. 그것도 각층마다 새로운 인물이 타면서 과거와 현재가 이어진다.

 

각층마다 멈추는 엘리베이터에서 윌이 아는 사람들이 탄다. 이 인물들은 모두 숀이나 윌과 관계있다. 이 인물들은 이 룰이 만들어낸 비극을 차분하면서도 분명하게 보여준다. 복수란 이름 아래 행해진 살인의 이면과 숨겨진 사실을 낱낱이 드러낸다. 룰에 지배받던 윌은 억눌렀던 감정을 표출한다. 단 한 번도 총을 잡은 적이 없던 열다섯 살 소년의 삶이 뒤흔들린다. 총에 몇 발이 장전되는지도, 사람을 겨냥하는 방법도, 제대로 총을 휴대하는 법도 그는 모른다. 하지만 이 동네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 룰을 지켜야 한다.

 

룰 때문에 비극은 끊임없이 이어진다. 이 엘리베이터의 시간은 그것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로비까지 가는 과정이나 대화를 생각하면 물리적 시간은 비현실적이다. 물론 등장인물들도 마찬가지다. 엘리베이트란 공간 속에서 만남이 이어지지만 이야기의 공간은 밖으로 확대된다. 이 확대된 공간과 이야기가 전체적으로 이야기의 깊이를 더한다. 이 이야기 속에서 드러나는 비극은 단순히 한 개인의 비극이 아니다, 가족의 비극이자 동네의 비극이고, 미국 흑인들의 비극이다. 이런 글을 읽을 때면 언제나 가슴이 먹먹하다. 자신의 의지가 아닌 타인의 의지가 그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

 

단순히 운문으로 쓴 것과 비극을 보여준 것만으로 이 소설을 평가하기는 부족하다. 군더더기 없는 문장과 담배 연기 가득한 엘리베이트 안의 풍경과 그 속에서 만난 사람들의 과거가 나열되면서 풀려나오는 사실이 유기적으로 잘 엮여 있다. 한 편의 서사시를 읽는 느낌이지만 현학적이거나 어려운 표현이 없어 가독성을 더 높여준다. 진실에 다가가는 과정은 또 어떤가. 그렇게 해서 밝혀지는 불편한 진실들은 또 어떤가. 인터넷 서점에 나온 수많은 수상 이력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예상한 것을 훨씬 뛰어넘은 작품이다.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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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오늘은 꽃이에요 - 나태주 시인의 시를 읽으며 청춘의 일기를 쓰다
나태주 시와그림, 김예원 글 / 시공사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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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조금 특이한 책이다. 부제대로 나태주 시인의 시를 읽으며 청춘의 일기를 쓴 것을 책으로 내었다. 나태주 시인의 시를 읽고 그 당시 자신의 삶과 생각과 연결해서 쓴 글을 모았다. 시인의 시가 그의 손을 떠난 순간 이 시가 어떻게 독자에게 읽히고 해석되고 삶과 연결되는지 잘 보여주는 글이다. 이전까지 개인적으로 나태주 시인의 에세이를 한 권 읽은 것이 전부인데 이번에 한 독자의 시 선집을 읽게 되었다. 최근 이 시인의 시에 조금씩 관심이 생긴다. 시집 한 권 정도는 올해 안에 읽고 싶다. 이 바람이 꼭 이루어지길 바란다.

 

시인의 시에 자신의 삶을 주석처럼 달았다. 겨우 두 줄도 되지 않는 시에도 긴 글이 달렸다. 일곱 꼭지로 나누어진 구성은 편집의 결과이겠지만 좀더 쉽게 이해하게 만든다. 나의 나이가 글쓴이보다 훨씬 많다 보니 그 감상이 가슴 깊은 곳까지 오지 않는 순간도 있지만 가장 간단한 관계와 감정들을 마주할 때는 공감하는 부분이 크게 늘어난다. 특히 첫 파트에서 부모가 된 이후 더 절실하게 느낀 감정들이, 내가 해주지 못하는 있는 일들이 가슴 한 곳을 쿡 찔렀다. “엄마는 언제 죽나? / 내가 죽을 때 죽지.”(<동행> 전문) 이처럼 짧은 시도 나의 감성과 이성을 깨웠다. 물리적 죽음보다 마음의 죽음을 더 생각하게 만들고, 철학적인 사고로 잠시 빠지게 한다.

 

김예원은 여행을 좋아한다고 한다. 그가 떠난 곳에서 마주한 수많은 사람들과 문화는 그가 돌아와서 우리 사회의 문제를 돌아보게 한다. 하늘 올려다볼 시간을 샀다고 말하는 여행에 대한 글은 어느 저녁 해질녘 도로에서 본 하늘 풍경을 떠올려주었다. 괜히 감상적이었던 시간이었다.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다보니 하늘 볼 시간은 더 없다. 회사 창밖 저 멀리 보이는 건물이나 산의 풍경이나 미세먼지로 가득한 하늘 정도 전부다. 아마 내가 운전을 하지 않는다면 하늘 볼 일은 더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여행에서 사람에게 상처받은 것을 사람에게 치유받는다는 평범한 이야기는 평범해서 좋다.

 

나태주 시인을 풀꽃 시인으로 만들어준 풀꽃을 정말 하기 싫지만 해야 하는 일을 할 때 떠올린다 말할 때 약간은 의외였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고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는 시어를 이렇게 삶에 적용하다니 말이다. 개인적으로 이런 해석을 좋아한다. 삶은 제각각 다르고, 문자는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상황에 따라 다르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어떤 일을, 누군가는, 어떤 사물을 자세히, 오래 보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노력과 인내가 필요하다. 좋아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지금 이 순간의 소중함은 깨닫는 것은 삶에서 아주 중요한 일이다. 저자는 이것을 참 빨리 깨달은 것 같아 조금 부럽다.

 

이십 대 청춘의 사랑은 다양한 과정과 결과를 가지고 있다. 사랑, 이별, 사랑, 그리움, 또 다른 사랑 등으로 이어진다. 그 과정 속에서 서로 사랑하고, 이해하려고 하고, 싸우고, 고마워하고, 자신을 발견한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란 이 말도 이 과정을 거친 후 마음속에 다가온다. 3년 사귄 남자의 이야기에서 사랑이란 양방향이란 글에 공감하면서도 왠지 태클을 걸고 싶은 것은 그 양방향의 무게가 다르다는 것 때문일 것이다. 이 글들을 보면서 시인의 시가 또 어떤 식으로, 그 상황에 따라 이해되는지 살짝 들여다보게 되었다. 시인이 좋아할 글들이 아닐까 생각한다.

 

비우는 것이 아니라 넘치도록 채우라고 말한 <마음을 비우라고?>는 시가 강한 인상을 주었다. 좋아하는 마음, 사랑하는 마음, 안쓰러워하는 마음으로 차고 넘치도록 채우라고 말한다. 그러면 나쁜 것들이 채워질 수 없다고. 솔직히 마음을 비우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이런 마음으로 가득 채우면, 이 순간들만은 행복한 시간일 것이다. 뒤로 오면서 자신이 공부하는 것을 시와 연결해 적은 글들이 보이는데 개인적으로는 크게 와 닿지 않는다. 저자의 삶이 주는 생생함과 조금 떨어져 있는 느낌이다. 하지만 이런 글을 쓰는 순간 그녀는 많은 것을 생각하고, 정리하고, 요약했을 것이다. 김예원이 말했듯이 그렇게 어려운 시들이 아니다. 하지만 그 쉬운 듯한 시어들 속에서 나의 삶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간다. 그리고 시인의 그림은 그 간결함과 섬세함이 익숙한 듯 편안한 느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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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지도 - <페러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 네 번째 이야기 페러그린 시리즈 4
랜섬 릭스 지음, 변용란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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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러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 네 번째 이야기이다. 앞의 세 권은 읽은 적이 없다. 영화로 나왔다는 것도, 그래픽노블로도 나온 것을 알고 있다. 오래 전 한 번 읽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아주 두툼한 세 권짜리 시리즈는 솔직히 요즘은 도전하기 쉽지 않다. 그러다 새로운 이야기란 말에 혹했다. 이 책으로 시리즈를 시작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결과부터 말하면 전편에 대한 궁금점이 강해지고, 이 책부터 읽어도 작품을 따라가는데 큰 지장이 없다는 것이다. 더불어 다음 이야기가 어떤 식으로 펼쳐질지 기대하게 된다.

 

영화를 보지 않았지만 영화 속 캐릭터들은 예고편 등에서 봤다. 이번 책을 읽으면서 몇몇 캐릭터는 영화 속 이미지가 살짝 따라왔다. 하나의 사건이 끝나면서 완결된 시리즈로 생각한 것이 새로운 시리즈로 이어지는 것은 흔한 일이다. 성공한 작품이고,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있다면 이것은 더 쉽다. 전작을 모르니 소설 속 이야기만으로 앞의 이야기를 짐작해야 한다. 하지만 작가는 연속성을 가지지만 전작에 속박되지 않는 이야기를 풀어내야 한다. 개인적으로 이 소설은 이 부분에서 성공했다. 전작을 몰라도 재밌고 빠르게 이 책을 완독했기 때문이다.

 

제이콥은 정신 나간 아이 취급을 받으며 정신병원에 끌려갈 위기에 처했다. 이때 페러그린 원장과 이상한 아이들이 나타나 구해준다. 개인적으로 이 앞부분이 조금 다가가기 힘들었다. 그들의 능력도 모르고, 왜 제이콥이 정신 나간 아이 취급 받는지 몰랐기 때문이다. 루프를 벗어나 현실 세계로 오면 보통 이상한 아이들은 급속하게 나이를 먹는데 이들은 십 대의 모습으로 하루씩 나이를 먹는다. 과거의 시간 속에 박제된 채 살던 아이들이 현재에 와서 마주하는 풍족함과 발전 등은 그들에게 이상한 세계다. 과거와 현재가 충동하는 장면을 곳곳에서 보여준다. 이것은 루프 속에 살아가는 이상한 사람들과도 관계있다.

 

평범한 일상을 살고자 한 제이콥이 할아버지의 집에서 발견한 지하 비밀 창고와 그가 남긴 업무 일지와 지도들은 새로운 모험으로 이끈다. 이번 책은 할아버지가 미국 대륙에서 어떤 일을 했는지와 관련 있다. 업무 일지는 그것을 알려주고, 할아버지가 남긴 조그마한 단서는 할아버지 동료와 연락하게 만든다. 그는 바로 H이다. H와 만나는 과정도 쉽지 않고, 이 만남은 새로운 모험 속으로 주인공과 그 친구들을 이끈다. H의 시험은 제이콥의 새로운 삶과 이어져 있다. 친구들과 함께 이 모험에 뛰어 들어간다. 그 첫 번째 지역이 플로리다다. 제이콥과 친구들은 이 여행을 페러그린 원장 몰래 하려고 한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왠지 모르게 청춘 소설의 한 대목을 보는 것 같았다.

 

이전 3부작을 읽지 않아 낯선 부분은 이들이 현대 무기에 취약하다는 점이다. 흔한 판타지라면 총을 맞아도 이상이 없어야 하는데 이들은 이상한 능력을 가진 아이일 뿐이다. 이 특수한 능력이 상황에 따라 그 힘을 아주 크게 발휘하지만 바로 앞에서 총을 든 사람을 만나면, 그 총에 맞으면 무력하다. 그리고 제이콥의 능력은 물리적 힘을 가진 사람들에게 아주 취약하다. 육체적으로 아직 청소년이고, 그의 능력이 일반 사람들이나 이상한 사람들에게 물리적 타격을 줄 정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몇몇 위기 상황에서 그의 친구들이 큰 힘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

 

이번 모험 중에 제이콥과 엠마의 사랑 전선에 살짝 문제가 생긴다. 엠마는 제이콥의 할아버지 에이브와 한때 사랑했던 사이다. 과거의 기억은 현재의 시간 흐름 속에 산 사람과 박제된 시간 속에 산 사람이 다를 수밖에 없다. 아직 정신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제이콥은 이것을 받아들이기 힘들다. 그리고 설정에 따르면 이전 3부작은 유럽 대륙이 배경이었고, 새 시리즈는 미국 대륙이 배경이다. 왠지 모르게 제대로 된 통치권이 없는 무법 시대의 과거를 끌어들인 것이 서부 시대를 연상시킨다. 어쩌면 갱들의 시대일지도 모르겠다. 제이콥이 임무 수행 중 마주하는 현실은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물론 깊이 파고들지는 않는다. 이 시리즈를 더 깊이, 더 잘 이해하려면 이전 3부작을 읽어야 할 것 같다. 언제 읽을지는 모르겠다. 다만 시리즈 다섯 번째 이야기는 기다려진다. 마지막에 던진 떡밥이 아주 강렬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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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감시 구역
김동식 외 지음 / 책담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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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명의 작가가 쓴 청소년 SF 단편집이다. 이 네 명 중 두 작가, 김이환과 정명섭은 이전에 몇 권 읽은 적이 있고, 다른 두 명, 김동식과 박애진은 처음 읽는다. 김동식의 경우 기존에 낸 작품 때문에 이름은 알고 있었다. 가장 낯선 작가를 꼽으라고 한다면 박애진이다. 가끔 낯선 작가의 단편을 읽으면서 새롭게 작가를 알아가는데 박애진이 그런 경우다. 먼저 솔직히 고백하면 아쉽게도 박애진의 <목격자>는 나의 취향과 조금 동떨어져 있다. 인간이 살 수 있는 행성을 찾기 위해 고속 성장 클론을 만들었다는 설정은 어릴 때 본 SF이 변주처럼 다가온다. 그 SF에서는 소년, 소녀들을 태웠지만. 사건의 목격자인 현경의 조사와 결론이 추리소설로 단련된 나에겐 왠지 긴장감이 부족하다. 소재가 좋으니 좀더 중편으로 만들고, 강한 인상을 주는 반전을 만든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김동식의 <살인 게임>은 실제 인간의 뇌 데이터를 이용해 살인 게임을 만든다는 설정이다. 인간이 가진 수많은 욕망을 자극해 게임 속에서 살인을 하게 만드는 것이다. 의도적인지는 모르겠지만 상세한 장면을 보여주고, 상황 이미지를 분명하게 만들지 않고 간단한 명령어로 사람을 살인으로 몰고간다. 솔직히 이 명령어들이 너무 투박해 살짝 아쉽지만 단편 속에서 인간의 욕망을 극대화, 단순화 시키는 데는 부족함이 없다. 두 중학생을 내세워 성선설과 성악설을 대결하고 만든 것은 약간 도식적이지만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반전은 재미있었다. 실제 인간 데이터라는 점에서 나의 경우를 상상하면서 왠지 모를 섬뜩함을 느꼈다.

 

김이환의 <친구와 싸우지 맙시다>는 가장 기대한 작품이다. 작가 초창기부터 관심을 두고 있었고, 재밌게 읽은 장편이 있었기 때문이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SF 단편이란 설정 때문인지 비교적 쉽게 이야기에 접근할 수 있다. 2000년대 할리우드 영화를 좋아하는 리나가 인공지능 나나와 함께 다른 도시인 친구의 도시에 가서 마주하는 사건들은 약간 극단적인 모습이 있지만 다음 장면을 기대하게 만든다. 인류가 생존을 위해 우주로 나갔고, ‘싸우지 않는 도시’나 ‘친구의 도시’나 ‘모험의 도시’ 등을 만들어 살고 있다는 설정도 흥미롭다. 이 도시들이 고립되어 있지 않고 서로 교류를 한다는 것은 약간 청소년들을 신경 쓴 것 같은 느낌이다. 그리고 마지막에 엄마에게 작은 복수를 하는 것도 그렇다.

 

가장 최근에 다른 소설을 읽은 정명섭의 <코드제로 알파>는 예상하지 못한 전개로 깜짝 놀랐다. 하반신을 쓰지 못하는 동우에게 갑자기 엄청난 능력을 가진 가정용 로봇이 나타난다. 이 가정용 로봇의 활동과 대화를 듣다 보면 미래에 이런 로봇이 나올 것 같다. 이 둘의 대화 속에서 환경을 파괴하는 외계 곤충 괴물이 등장하는데 지구의 미래도 이들이 바꿀 수 있다. 약간 음모론을 품고 있는데 중간에 액션을 가미해 신나게 만든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지구 환경을 지키는 영웅으로 바뀌는 동우의 모습은 전형적인 히어로의 탄생이다. 이 단편집에서 가장 유쾌하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다.

 

청소년을 위한 SF 단편집이란 설정 때문인지 전체적으로 쉬운 전개와 구성이다. SF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에게 가볍게 다가갈 수 있게 만들려고 한 모양이다. 쉬운 전개와 구성이라고 했지만 이야기의 소재나 주제는 결코 가볍지 않다. 인간의 본성이나 클론 계획이나 환경 파괴 등의 조금은 무거울 수도 있는 것들이다. 가끔 이렇게 조금은 눈 높이를 낮춘 작품들을 읽고 처음 내가 SF를 만나 즐거워했던 순간을 떠올릴 수 있다면 예상하지 못한 추억에 빠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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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내전 - 생활형 검사의 사람 공부, 세상 공부
김웅 지음 / 부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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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서점에서 이 책에 대한 호평을 읽고 관심이 생겼다. 구해놓고 바로 읽지 않는 것은 나의 나쁜 습관인데 이 책도 그랬다. 작년 조국 법무장관 사태 시절 검사가 쓴 책이란 부분 때문에 솔직히 조금 마음이 멀어졌다. 여기에 한 가지 더 나쁜 작용을 한 것이 있는데 이전에 검사 출신의 에세이를 읽은 것이다. 이때 깜짝 놀란 적이 있다. 그가 당연한 듯이, 자랑스럽게 적은 내용이 나는 전혀 납득되지 않았다. 이런 마음을 씻어낸 데는 다른 저자의 글을 읽고 나서다. 바로 이 책의 추천사를 쓴 김민섭이다. 그리고 텔레비전에서 <검사내전>이란 드라마가 하고 있었다. 왠지 읽어야지 하는 마음이 부쩍 생겼고, 그 덕분에 매일 조금씩 읽게 되었다.

 

김민섭의 글에서 글을 잘 쓴다는 내용이 있는데 사실이다. 김웅 검사는 글을 잘 쓴다. 그것도 상당히 재밌게 쓰는 능력이 있다. 앞의 세 꼭지는 자신이 18년 동안 검사 생활을 하면서 경험한 수많은 사람들을 하나의 주제 아래 묶어 놓은 것이다. 사기 공화국이라고 말한 부분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역시 “사기꾼은 목숨 걸고 뛴다.”는 대목이다. 법을 알게 되면서 그 법의 허점을 파고들어 자신의 안위를 챙기는 그들을 보면 정말 대단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알고 보면 뻔한 이야기로 어떻게 사람들의 욕심을 부채질하고 그들의 무엇보다 소중한 돈을 갈취하는지 보여준다. 프랜차이즈 시장의 폭탄 돌리기 이야기도 쉽게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란 기대로 인한 사기다. 한순간의 실수로 지옥 속에 살게 된 수민 씨 이야기는 단순히 가해자와 피해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도 돌아봐야 한다.

 

사람들과 그 사람들의 이야기들은 경찰들에게 알려진 이야기의 이면을 말한다. 우발적으로 아이를 살해한 남편 대신 살인죄를 뒤집어쓴 아내나 고소 왕이 되어 지역 경찰과 검사들을 두렵게 만든 이야기는 우리의 현실을 잘 보여준다. 가해자가 피해자인 것처럼 꾸며 피해자를 협박하고 위협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소년 범죄에 대해 아이에게 화해를 강요하지 말라고 한 부분은 동의할 수밖에 없다. 학교 폭력의 피해자가 학교를 떠나야 하고, 가해자는 남는다. 한 판사의 아름다운 연설을 삐딱하게 본 글은 검사의 시선이 깊이 개입해 있지만 현실적 판단이다. 언제부터인가 피해자가 보호받지 못하는 사회가 되고 있다는 글들이 늘어나고 있다.

 

검사의 사생활에서 그는 자신을 당청꼴지 또라이 검사라고 말한다. 검사란 조직 속에서 상명하복을 절대적으로 따르지 않기 때문이다. 검사와 판사의 황당한 내기에 그가 대처한 방법은 구식 권위주의에 대한 작은 반항이다. 그가 등산 일정을 짤 때 은밀한 반항심을 담은 것이나 검사장의 고향에서 체육회 등을 열 때 말한 내용은 결코 조직순응적인 인물이 아님을 잘 보여준다. 검사 생활이 추리 소설 속 탐정들과 다르다고 한 대목은 현실 수사의 한 모습을 드러낸다. 실제 사건 현장에 나가는 검사도 드물다고 하지 않는가. 속독법이란 마공을 읽혀 주화입마에 빠졌다는 이야기는 속독법으로 집에 쌓여 있는 책들을 읽겠다는 나의 욕망을 단숨에 꺽어 놓았다.

 

법의 본질을 다룬 꼭지는 검사의 시선을 많이 담고 있다. 현행 법제도나 절차의 문제점을 하나씩 표현하고 있는데 동의하는 부분이 많다. 법이 공정하고 객관적인 분쟁 해결 방법이 아니라는 것은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는 것이다. 그가 한 장을 할애한 판사에 대한 질타는 읽으면서 동의하는 마음보다 검사의 문제에 대한 지적은 왜 없는가 하는 반발을 불러왔다. 아마 자신의 직장 비리를 까발리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새로운 목민관이 아니라 본질적 개혁이 필요하다고 했지만 그 개혁의 일각을 가장 처참하게 짓밟은 것도 역시 검찰이다. 물론 그의 글대로라면 형사부검사들이 모두 책임질 문제는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수많은 형사 사건에서 전관예우란 이름으로, 불기소처분으로 검사들이 한 행동에 대한 비판과 반성과 제도 개혁을 말하지 않는다면 남탓만 하는 것일 뿐이다. 검사의 시선들이 잠시 눈에 거슬리기도 하지만 전반적으로 잘 썼고, 재밌고, 웃기고,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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