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의 역사 - 책과 독서, 인류의 끝없는 갈망과 독서 편력의 서사시
알베르토 망구엘 지음, 정명진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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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브레토 망구엘의 책을 몇 권 읽지 않았지만 상대적으로 가장 편안하게 읽었다. 이전 책보다 좀더 여유롭게 읽은 것도 하나의 이유지만 다루고 있는 내용들이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에게 책을 읽어주게 된 사연도, 그를 통해 배우게 된 내용도 이전까지 피상적으로 알고 있던 정보를 새롭게 만들어주었다. 자신의 경험들이 곳곳에 스며들어 있지만 가장 중심에 놓여 읽는 것은 제목처럼 ‘독서의 역사’다. 구술과 기록에 대한 부분은 얼마 전 읽었던 테드 창의 소설이 떠오르기도 했다. 책과 독서에 대한 나의 지식을 다시 돌아보고, 많은 것을 배우는 시간이었다. 뭐 많은 것을 그냥 놓치기도 했지만.

 

책이란 것이 지금의 형태로 나오게 된 과정도 나온다. 이 책이 나올 당시만 해도 지금 같은 전자책은 없었다. 시디롬에 담은 책이나 인터넷으로 텍스트를 읽을 수 있었지만 말이다. 읽기 위해서는 쓰는 행위가 선행되어야 하고, 그 앞에는 문자가 있어야 한다. 가볍게 쐐기문자와 그림 등에 대해 말한다. 문자의 탄생으로 이야기를 넘기지 않은 것은 조금 아쉬운 대목이다. 쓴다는 것은 그 대상이 있어야 한다. 파피루스, 양피지, 목판, 석판, 진흙 조각 등의 이야기는 새롭지 않지만 나의 지식에서 조금 더 들어갔다. 양피지가 파피루스보다 저렴했다니 예상외다.

 

이 책 이전에는 서양에서도 책을 소리 내어 읽었다는 사실을 몰랐다. 사실 소리 내어 읽다 보면 책 내용에 더 집중하는 경우가 많다. 지금도 눈으로 읽다가 쉽게 그 내용이 눈에 들어오지 않으면 입으로 혹은 속으로 문자들을 읽는다. 과거에 눈으로 읽는 행위가 특별했다는 것과 이런 독서 행위가 상대적으로 오래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소리 내어 책을 읽던 시절이나 책 읽기가 힘든 사람에게 누군가가 대신 책을 읽어주는 것은 당연하다. 망구엘이 보르헤스에게 해준 책 읽어주기가 떠오른다. 과거 이런 시절의 책 형태는 현재와 많이 달랐다. 자료 그림 등을 보면 몇 명이 들어야 하는 경우도 있다. 금속활자가 만들어낸 출판 혁명은 다양한 형태로 발전했지만 필사자들의 아름다운 서체를 흉내 내려고 했다는 부분에서 서체를 다시 떠올린다.

 

독서가로서의 작가와 번역가가 이야기에서 나의 시선을 끄는 대목들이 나온다. 릴케의 번역 이야기는 번역이 왜 제2의 창작이라고 하는지 잘 보여준다. 직역과 의역에 대한 수많은 논쟁이 있지 않은가. 또 예전에 여성에게 글자를 가르쳐주지 않았다는 사실과 독서가인 여성들이 쓴 글에 대한 부분은 최근으로 넘어오면 노예들에게 글자를 가르쳐주지 않은 역사와 이어진다. 성경을 통해 글자를 배우는 노예들의 노력과 열정은 나태해진 나를 질타하는 듯하다. 책 읽기 금지는 금서 이야기로 넘어갈 수밖에 없는데 그 유명한 진시황의 분서갱유나 나치의 분서 외에도 많이 있어왔다. 놀라운 사실 중 하나는 19세기 말 미국에서 일어난 금서 이야기다. 예전에 금서에 대해 읽었던 부분이 살짝 생각난다.

 

이제는 그런 말을 하지 않겠지만 예전에는 책을 읽기 위해 책을 훔치는 것은 잘못이 아니라는 말이 있었다. 읽고 돌려준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단순히 소유욕이나 판매를 위해 훔친다면 어떨까? 자신이 가진 권력을 이용해 도서관에서 고가의 책을 훔친 인물 이야기는 또 다른 변주가 가능하다. 미술관의 작품처럼 말이다. 책벌레 이미지는 언제부터인가 하나로 굳어져 왔다. 나 자신도 적지 않게 읽지만 책벌레 이미지는 아니다 라고 생각한다. 이 이미지가 한 독서가의 행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주는데 살짝 가슴 아프다. 왜 얼간이 이미지가 되었는지 그 연원을 찾아가는 것도 재밌을 갔기는 하다.

 

마지막 장에서 독서의 역사는 끝나지 않았다고 말한다. 사실이다.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수십 년 전에도 나왔다. 하지만 출판되는 책 숫자는 더 늘어났다고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읽는 다는 행위에서 문맹률을 다루지 않은 부분은 아쉽다. 문자를 안다는 것이 특권이었던 시절이 있었고, 근대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글자를 몰랐다는 사실을 말이다. 물론 독서 행위가 한정된 일이었다는 대목은 있다. 이 독서가 체제에 위협이 된다고 말하는 대목도. 읽지 못하기에 책 읽어주는 사람이 있었고, 그림으로 좀더 알기 쉽게 만들었던 역사도 있었다. 어쩌면 나의 이런 지적이 그의 풍부한 지식과 섬세하고 매혹적인 글에 대한 질투인지도 모르겠다. 천천히 망구엘의 책들을 한 권씩 읽어나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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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 소녀를 구하는 자 - Goodbye to Fate
니시노 료 지음, 후지 초코 그림, 정은빈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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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제9회 GA문고대상 우수상 수상작이다. GA문고대상은 일본 라이트노벨 신인 작가 등용문이라고 한다. 라이트노벨을 잘 읽지 않는 나에게 낯선 문학상이지만 이 분야에서 9회까지 왔다는 것은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 책의 제목을 잘못 읽어 오해한 순간도 있다. 마인 다음에 쉼표를 붙인 제목이 등록된 곳이 있기에 더욱 그렇다. 이때 제목의 의미는 마인이 소녀를 구하는 자가 된다. 하지만 실제 내용은 마인이 되어가는 소녀를 구하는 자인 이류 용병 위즈의 이야기다.

 

위즈는 영웅 알루클의 고향 친구이자 성 룬의 성검을 받을 당시를 직접 본 인물이다. 실제 둘의 검술 대결에서 더 많이 이긴 것은 위즈다. 알루클의 공격이 너무 직선적이라 쉽게 이길 수 있었다. 자신의 마을이 마물의 공격을 받을 때 냉정한 판단을 보여준 것은 위즈다. 성 룬의 성검으로 마물들을 물리친 후 둘은 함께 검을 수련하고, 함께 모험을 떠난다. 영웅 알루클이 대단한 위명을 떨치고, 훌륭한 실력을 가진 동료들과 함께 성공적인 임무를 달성할 때 위즈는 평범한 검사 역할 밖에 하지 못한다. 이 때문에 다른 동료에서 배척을 받는다. 하지만 알루클에게 위즈는 어린 시절부터 현실을 제대로 직시하면서 위안이 되는 인물이었다.

 

영웅의 동료들이 대단한 능력으로 납치된 공주를 구하고 사람들의 환대를 받을 때 위즈는 조용히 떠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어린 소녀의 비명 소리를 듣는다. 겨우 세 명의 도적들을 물리친다. 이 소녀가 바로 마인이 될 소녀 아론이다. 북쪽 마을 스노웰까지 자신을 데려가 달라고 요청한다. 위즈는 자신의 능력을 알기에 거절한다. 하지만 아론은 능력이 부족하지만 자신을 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 위즈가 좋다. 의뢰금으로 자신이 가진 마검을 말한다. 둘은 함께 떠난다. 그러다 위즈의 동료 용병이 하나의 조사를 부탁한다. 마을사람이 사라진 곳을 찾아가 이유를 알아봐 달라는 것이다. 여기서부터 본격적인 액션과 모험이 펼쳐진다.

 

현재의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과거의 두 이야기가 같이 펼쳐진다. 하나는 위즈가 과거에 경험했던 일들이고, 다른 하나는 아론이 마왕에게 납치되어 갇힌 곳 이야기다. 이 과거의 두 이야기는 간결하게 진행되고, 위즈와 아론 둘이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간단히 보여준다. 현재 이야기에서 알루클의 동료들 이야기도 같이 나온다. 이들은 일곱 대륙에 각각 출연하는 마인들을 물리칠 영웅들이다. 마인이 출연한 대륙의 삼분의 일이 황폐화되었기에 반드시 물리쳐야 한다. 미래의 불안을 제거해야 하는 영웅과 현실 속에서 마주한 마인 소녀를 지키려는 이류 용병의 싸움은 예정된 결말이다. 하지만 이 소설의 결말은 다음을 예고하는 듯한 장면으로 끝난다. 아마 다른 독자들이 예상하듯이 후속편들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분명히 잘 짠 소설은 아니다. 가볍게 읽기에 부담없는 소설이다. 전형적인 전개 방식과 작은 반전을 보여준다. 놀라운 것은 중간에 너무 쉽게 등장인물을 죽인다는 것이다. 아론이 왜 자신의 과거 집으로 돌아가려고 하는지 보여주는 장면은 예상을 벗어났다. 그리고 일곱 소녀들이 갇힌 곳의 정체도 궁금하다. 성 룬과 마왕 전설이 어떤 식으로 풀려나갈지도. 읽으면서 한국 판타지와 다른 전개와 설정을 다시 한 번 더 느낀다. 예전에 사놓고 고이 묵혀둔 수많은 라이트노벨들이 갑자기 머릿속을 스쳐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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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코를 위해
노리즈키 린타로 지음, 이기웅 옮김 / 모모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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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노리즈키 린타로 시리즈 3부작 중 첫 번째 작품이다. 뒤의 두 작품은 오래 전에 읽었다. 재밌게 읽은 기억이 뚜렷하다. 첫 작품을 읽어야지 생각만 하다가 이번에 읽게 되었다. 출판사는 바뀌었다. 번역자는 그대로다. 구판의 표지가 요리코의 자전거를 의미한다면 이번에는 좀 더 추상적이다. 스물다섯 살에 이 작품을 썼다고 하는데 대단하다. 3부작 다른 이야기를 읽으면서 요리코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했는데 이번에 완전히 풀렸다. 읽으면서 히가시노 게이고의 <악의>가 떠올랐다. 아마도 앞부분에 수기가 나온 것과 수기를 둘러싼 트릭 때문일 것이다.

 

사랑했던 딸의 죽음에 절규한 아버지 니시무라 유지의 복수를 담은 수기로 시작한다. 열일곱 살 딸이 목이 졸린 채 죽었다. 경찰은 성범죄자의 소행이라고 생각한다. 이미 이 동네에서 미수 포함 두 번의 사건이 있었다. 그런데 해부 결과 요리코가 임신 4개월이란 충격적인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된다. 누가 아버지일까? 그가 범인일까? 니시무라는 복수를 꿈꾼다. 이미 14년 전 불행했던 교통사고로 아내가 반신불구가 되었고, 임신하고 있던 뱃속 아들은 죽었다. 아내에겐 요리코의 임신 사실을 숨긴 채 은밀히 조사한다. 경찰이 숨긴 몇 가지 사실 때문에 경찰도 믿지 못한다. 반 친구들의 말을 통해 학교 선생 중 한 명이 용의자로 떠오른다. 단순 혈액형으로 비교하면 그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만약 그가 아니라면 무고한 사람을 죽이는 게 된다. 이것을 피하기 위해 열심히 조사한다. 확신이 든 순간 살인하고, 자살을 기도한다.

 

딸의 죽음과 아버지의 수기는 두 살인 사건을 하나로 묶고, 자살은 수기에 사실이란 확신을 불어넣어준다. 이 수기 때문에 피해를 본 요리코의 학교에서 노리즈키 린타로의 명성을 이용해 이 소문을 잠재우려고 한다. 가해자였다가 피해자로 바뀐 선생 히이라기가 요리코와 성교를 나누지 않았다고 주장하려는 것이다. 만약 교사가 학생을 범했다면 학원에 문제가 생기고, 오빠의 선거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은연중에 경찰에 압력을 행사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노리즈키는 이 재조사를 의뢰인의 바람대로 할 마음이 없다. 그는 진실을 밝히려고 한다.

 

재조사의 시작은 수기의 허점을 파악하는 것부터다. 그가 읽으면서 느낀 이상함은 관계자들을 만나면서 조금씩 커진다. 자살자가 남긴 기록이 거짓일리 없다는 맹신을 그는 거부한다. 그의 조사가 진행됨에 따라 불편함을 느낀 사람들이 늘어나고, 조사를 방해하려는 시도도 생긴다. 수기 속에 나온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 속에서 수기의 진실 여부를 다시 묻는다. 수기 속 문장 하나에 의혹을 품고, 수기에 기록되지 않은 이야기를 찾아낸다. 진실은 보여주는 수기 너머의 어둠 속에 자리잡고 있다. 읽으면서 ‘혹시’했던 가정은 ‘역시’로 바뀌었고, 이것은 또 다른 반전으로 이어진다.

 

모든 비극은 과거 속에서 일어났다. 요리코의 죽음은 현실이다. 요리코를 위해서란 이름으로 살인을 저지른 아버지의 수기와 그 이면의 진실은 ‘사랑’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수기의 진실을 알기 위해서는 수기를 기록한 니시무라가 정신을 차려야 한다. 자살 소동의 가능성도 검토하지만 의사들은 부정한다. 사건을 조사하다보니 점점 더 과거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진실의 단서는 과거 속에 있다. 노리즈키 린타로의 가설은 대담하고 위험하고 불편하다. 그래서 ‘혹시’라고 생각한 나의 추측에 반감이 있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섬뜩한 것은 이 살인 사건의 이면을 조용히 들여다보고 있다고 생각하는 마지막 장면이다. 3부작의 다른 작품에 비해 조금 거친 맛이 있지만 가독성은 여전히 좋고,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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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의 봉우리
유메마쿠라 바쿠 지음, 이기웅 옮김, 김동수 감수 / 리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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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번역본이 절판된 후 높은 중고가를 자랑했던 소설이다. 다니구치 지로의 만화로도 나왔다. 사실 이 만화 <신들의 봉우리>를 2권까지 읽었다. 그 당시 쓴 글을 보면 상당히 재밌게 읽었고, 원작을 읽으면 만화의 이미지가 살아 있을 것 같다고 했는데 너무 오랜 시간이 흘러서인지 기억이 희미해졌다. 만화도 5권까지 사놓았지만 왠지 손이 나가지 않았다. 후기를 보면 원작자와 만화가가 함께 네팔로 가서 조사를 했다는 글이 나온다. 아마 내가 기억하고 있는 만화의 이미지는 이 부분일 것이다. 언젠가 만화를 다시 읽게 되면 또 다른 느낌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압도적인 힘이 있는 소설이다. 참 오랜만에 이런 감정을 느낀다. 마지막으로 넘어가면 한계상황에 도달한 사람의 모습이 진한 감동을 준다. 산소가 부족해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없고, 체력은 바닥으로 떨어지고, 식량도 충분하지 않다. 여기에 강한 바람과 엄청난 추위는 죽음과 바로 연결될 수 있다. 이런 극한 상황에서 보통의 사람이라면 생각조차 할 수 없는 도전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 소설은 바로 그들에 대한 이야기다. 시작은 1924년 에베레스트를 등반한 조지 맬러리의 미스터리부터다. 그가 가지고 등반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코닥 카메라를 얻게 되면서 산에 자신의 영혼을 빼앗긴 사람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야기를 끌고 가는 인물은 후카마치 마코토란 사진작가다. 일본 에베레스트 원정대에 참가했다가 하강하던 대원 둘이 추락하는 사진을 찍었고, 그 후 카트만두에 머문다. 이때 한 등산용품점에서 오래된 카메라를 발견한다. 깨져 있지만 맬러리가 살던 시절 카메라다. 그의 머릿속에서 만약 이것이 맬러리의 카메라라면 에베레스트 등반역사를 바꿀 자료가 될 수 있다. 맬러리의 자료를 조사하던 중 이 카메라는 도난당한다. 이 도난 사고가 다사 한 사람과 이어준다. 바로 현지에서 비카르산, 독사로 불리는 하부 조지다. 한때 일본 산악계의 전설이라 불렸고,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인물이다.

 

이야기는 맬러리 미스터리에서 하부 조지란 인물로 넘어간다. 후카마치는 하부에 대한 모든 것을 조사한다. 그가 어떻게 산악회에 들어갔고, 그가 어떤 기록을 세웠는지, 그 과정에서 산악회 동료들과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그리고 또 한 명의 천재 등반가 하세 츠네오가 등장한다. 하부가 동료와 함께 처음 등반한 암벽을 그는 혼자 올라간다. 처음이란 타이틀을 하세가 바꿔 가져간다. 하부는 산에 모든 것을 바치고, 산에 머문 사나이다. 그에게 에베레스트는 꼭 가야할 장소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군들 그렇지 않겠는가. 그가 ‘처음’이란 타이틀에 집착한 것도 에베레스트에 갈 돈을 지원받기 위해서다. 하지만 하세의 등장은 그를 어둠 속으로 밀어넣는다.

 

두 천재 산악인의 대결이 한 동안 이어지면서 에베레스트 등반이 지닌 의미와 어려움을 작가는 계속해서 풀어놓는다. 그냥 평범하게 생각했던 고산병, 산호가 희박해지는 곳에서의 움직임, 수시로 바뀌는 날씨 등 어느 하나 쉬운 것이 없다. 높이에 적응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왜 이 에베레스트 등반을 힘들게 하는지, 이 등반을 위해 필요한 금전적인 문제 등의 현실적 부분들을 알려준다. 고산병, 그냥 약을 먹으면, 어느 정도 시간이 되면 적응하는 병이 아니다. 한 발을 내딛기 위해 몇 번의 호흡을 내뱉어야 하는가. 희박한 산소는 또 어떤 환각 증상을 보여주는가. 환각은 자신의 가장 약한 부분을 건드린다. 읽다보면 이 등반 자체가 인간 의지와 체력의 한계에 대한 끝없는 도전이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맬러리의 미스터리는 하부 조지에 대한 이야기로 바뀐다. 그를 둘러싼 이야기는 강한 집착처럼 다가온다.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되면 이 집착은 욕망 너머의 세상을 펼쳐 보여준다.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한 혼신의 도전이다. 이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장면을 작가는 짧고 간결하면서 힘찬 문장으로 빠르게 묘사한다. 압도적인 힘이 느껴지는 순간이다. 그리고 보통 끝났다고 생각할 수 있는 장면이 나온 후 이야기는 다시 앞으로 돌아간다. 후카마치의 상황을 되돌아보게 한다. 머릿속으로만 생각하게 되는 장면들이 얼마나 피상적이고 비현실적인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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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드 창 지음, 김상훈 옮김 / 엘리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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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드 창의 SF 관련 문학상 수상 이력은 경이적이다. 전작 <당신 인생의 이야기>가 나왔을 때 화려한 수상 이력이 나의 시선을 먼저 끌었다. 그 후 책을 사놓고 고이 모셔두다가 오랜 시간이 흐른 후 읽었을 때 나의 취향과 다른 부분이 많았다. 물론 그 여덟 편의 중단편 속에서 취향에 맞는 소설도 있었다. 하지만 그의 작품을 이해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았다. 과학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거나 좀더 정밀하게 천천히 읽어야 하는데 빨리 읽으면서 많은 것을 놓쳐 그런 작품도 있다. 이것은 이번 작품집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모두 아홉 편의 중단편이 실려 있다. 가장 재밌게 읽은 작품은 <상인과 연금술사의 문>이다. 읽으면서 <아라비안 나이트>를 떠올렸다. 이것은 이야기를 진행하는 방식과 분위기 때문이다. 무대도 당연히 바그다드 등의 아랍이다. 20년 뒤의 과거나 미래로 통하는 세월의 문을 통과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운명과 인간의 욕망을 잘 엮어 풀어내었다. 어려운 과학 이야기가 아닌 사람들의 삶 이야기라 쉽게 읽을 수 있었고 예상하지 못한 결말이라 더 재밌었다. 시간 여행을 이렇게 풀어내는 것도 색다른 경험이다.

 

표제작 <숨>은 정밀한 기계 장치를 하나씩 해체하는 느낌을 준다. 기계 생명체가 공기의 비밀을 파헤치기 위해 자신의 머리를 해체하고, 관찰하고, 기록하고, 탐구하는 과정이 인상적이다. 자신들의 세계가 멈출 때 자신의 기록이 이 문명의 발견자에게 큰 도움이 되길 바란다. 그 문명이 이 문자를 해독할 의지나 능력이 있을까 하는 뒤틀린 생각이 스쳐지나간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한 편의 소고인데 예측기란 기계를 가지고 인간의 자유의지를 실증하고자 한다. 인간의 선택이 결정되어 있다는 논리로 빠지는데 결정론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는 이전에 단행본으로 나온 적이 있고, 이 단행본이 집에도 있다. 가장 분량이 많은데 조금 심심하다. 디지언트란 디지털 유기체를 디지털 세계에서 키우는데 처음에는 동물 훈련과 비슷하다. 디지언트의 인공지능을 발전시키는 과정이 한 명의 인간의 성장하는 것과 비슷한, 혹은 느린 속도로 진행된다. 디지언트와 정서적으로 연결된 사람들과 단순히 애완동물처럼 생각한 사람들이 차이를 보여주고, 이들의 성장과 독립을 천천히 풀어낸다. 거대 담론보다 작은 현실에서 진행되는 철학적 물음은 흥미롭지만 재미는 조금 부족하다.

 

<데이시의 기계식 자동 보모>는 육아 문제를 다시 돌아보는 시간이었다. 인간 보모에게 학대당하는 아들을 돌보기 위해 기계식 자동 보모를 만들었는데 이것이 또 문제를 일으킨다. 인간의 감정과 기계의 논리과 충동하는데 완전히 한쪽의 손만 들어주기 힘들다. <사실적 진실, 감정적 진실>은 기록과 기억에 대한 이야기다. 모든 것을 저장할 수 있는 미래의 기자와 문자 기록을 배우는 티브족 소년의 두 이야기가 교차하면서 진행된다. 기억의 문제와 기록의 한계를 동시에 풀어나가는데 두 상황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리고 모든 것을 저장하려면 그 저장 공간은 얼마나 필요할까?

 

<거대한 침묵>은 멸종 직전의 푸에르토리코 앵무새가 들려주는 인간 지성에 대한 새로운 의문이다. 앵무새의 소리도 이해하지 못하는 인간이 외계 지성을 알아볼 수 있을까 하고 묻는다. <옴팔로스>는 창조론에서 시작해 천문학적 발견으로 의혹을 가지게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과학은 발견이 아니라 가설을 확인하는 과정과 그 부산물이란 생각이 들었다. <불안은 자유의 현기증>은 양자역학과 평행우주를 다룬다. 하나의 선택에서 갈라진 평행우주와 연락할 수 있는 프리즘이란 도구가 풀어내는 이야기들은 놀랍다. 이 작품집에 흐르고 있는 개인의 선택과 성격 문제는 결국 앞에서 다루었던 결정론과 맞닿아 있다. 마지막에 데이나에게 온 프리즘들은 이것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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