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이 그리워졌다 - 인생이 허기질 때 나를 지켜주는 음식
김용희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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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서 음식과 관련된 기억들을 많이 불러왔다. 첫 이야기 칼국수는 만드는 법에서 나와 다른 기억을 보여주지만 그 옛날 한 장면을 영화처럼 떠올려주었다. 이 기억이 정말 맞는지 자신할 수 없지만 학창시절 먹었던 음식들은 나이가 들면서 새롭게 다가온다. 음식은 문화이자 기억이라고 말했듯이 각각의 집들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요리를 하고, 식구들을 먹였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의 1부는 가장 따스한 기억과 감동을 전해준다. 물론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작가와 다른 시대를 산 사람들의 기억들과 차이가 많이 날 수 있다는 부분이다. 그래서 이 책 속의 많은 이야기들이 소설이나 영화의 상황을 빌려 왔다.

 

수많은 음식들이 나온다. 이 중에서 나의 추억과 맞지 않은 이야기들도 있다. 기억이 나지 않는 음식도 있다. 현재 시점에서 이 음식 이야기를 읽을 수밖에 없다. 개인적으로 정말 아쉬운 대목이다. 다른 시대, 다른 성별, 다른 환경에서 자란 탓에 더욱 그렇다. 작가는 양푼비빔밥을 실연의 상처를 달래는 이야기로 풀어내지만 나에게 제사 후 남은 음식을 한꺼번에 넣고 비빈 음식으로 더 강하게 남아 있다. 헛제삿밥과 겹치는 이미지이지만 지금도 제사 후 남은 나물들과 밥을 이렇게 해결한다. 고추장과 참기름의 조화는 정말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다.

 

고등어구이의 기억은 해안가에 산 나와 내륙에 산 작가와 갈라질 수밖에 없다. 염장으로 등푸른생선을 먹을 수밖에 없는 그와 신선한 고등어를 먹었던 나. 달걀말이의 기억은 도시락 세대라면 누구나 공감할 부분이다. 여기에 소시지를 넣으면 더 많은 기억을 불러오고, 입맛을 다시게 한다. 상추쌈. 이 음식을 고기와 함께 한 것은 그렇게 오래 되지 않았다. 기억난다. 쌈밥집이 생기면서 구운 고기를 쌈 채소와 함께 먹던 그 시간들이. 달콤하고 씁쓸한 연애의 기억을 담은 커피가 나에겐 돈 없던 학창 시절 가장 쌌기에 마신 음료수다. 그 시절 함께 커피숍에서 시간을 보낸 친구들은 어디에 있을까?

 

어릴 때 어른들이 마시길래 호기심에 먹은 막걸리. 대학생이 되어 마신 막걸리는 술 약한 나에게 최악의 주류 중 하나였다. 그때는 쌀막걸리가 없던 시절이었다. 길거리 음식이나 분식 중 떡볶이는 나의 입맛과 동떨어져 있다. 오히려 핫도그나 오뎅이 더 맞다. 술 취한 늦은 밤 지인들과 함께 오뎅 하나와 국물을 먹던 그 시간들은 지금도 아련하게 다가온다. 라면의 기억은 언제부터인가 조금씩 왜곡되었고, 햄버거는 이젠 입맛에 잘 맞지 않는 나이가 된 것 같다. 맛있는 햄버거를 먹지 못해서인가. 콜라 리필이 되지 않아서 인가. 라면에 김밥 이미지는 또 언제 생긴 것일까? 분식점에서 이렇게 끼니를 때우던 그때가 갑자기 생각난다.

 

갓 지은 쌀밥의 엄청난 맛을 아직도 기억한다. 너무 강렬해 잊혀지지가 않는다. 만화 <식객>도 밥으로 이야기를 시작하지 않는가. 한때 기름 냄새 때문에 짜장면을 먹지 않았던 시절이 있었다. 돼지기름 때문일 것이다. 왠지 모르게 역했던 기억은 이젠 곱빼기로 먹는 음식이 되었다. 중국집의 기억 중 하나인 군만두는 많이 퇴색했지만 지금도 마트 시식대를 그냥 지나가지 못한다. 팥빙수는 지금도 즐겨먹는다. 가격이 너무 사악해 자주 사먹지 못하지만 어릴 때 시장통에서 두툼한 얼음을 갈고 색소와 팥을 넣었던 그 맛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눈꽃빙수의 부드러움보다 아직은 이쪽이 더 좋다. 기억만 놓고 본다면 말이다.

 

와인은 겉멋으로 마셨다. 솔직히 취향을 찾아냈다고 하지만 거의 마시지 않으니 상표를 잊은 지 오래다. 지금처럼 고급 초콜릿이 없었던 그때 가나초콜릿 하나면 충분했다. 점점 고급화로 나아가는 것들이 와인과 초콜릿이다. 아! 생일 케이크가 있다. 이제는 생일이 아니어도 조각 케이크를 먹지만 왜 이런 문화가 생겼는지는 모르겠다. 간장게장 맛집의 가격은 쉽게 다가가지 못하게 한다. 알을 품은 게의 몸부림보다 가격이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왜일까? 돈가스의 기억은 가끔 옛날 돈가스와 일본식 돈가스를 둘 다 맛보게 만들고, 오래전 도쿄 여행에서 맛본 돈가스는 인생 돈가스였다. 물론 지금도 그럴까 하는 의문은 있지만.

 

김치, 한국인의 소울 푸드다. 작가는 김치와 관련된 글을 세 개 올렸다. 김치찌개와 김치볶음밥과 김치로. 설렁탕에 깍두기가 없으면 무슨 맛이겠는가. 라면엔 또 어떤가. 식당이 중국산 김치로 가득하다고 해도 아직 맛있는 김치를 담그는 식당은 많다. 김장이 고된 노동이 되면서 가족 간의 갈등을 불러오지만 많은 집에서 가장 중요한 반찬이다. 여름철 수박과 콩국수는 최고의 음식이다. 음식물쓰레기 때문에, 너무 큰 크기 때문에 살 때 주저하지만 마트에 가면 늘 눈길을 주고 한 통 산다. 맛있는 콩국수 한 그릇은 더위에 사라진 입맛을 되살린다. 이렇게 이 책의 수많은 음식들은 나의 기억과 추억을 교차시키고, 입맛을 다시게 하고, 잊고 있던 친구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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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미트리오스의 가면 열린책들 세계문학 248
에릭 앰블러 지음, 최용준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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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가에서 한 번 들어본 듯한 이름이지만 낯설다. 동서문화사 판 <디미트리오스의 관>은 조금 더 낯익다. 제목과 작가 이름이 쉽게 연결되지 않는 것은 수많은 작품들에서 흔하지만 이렇게 많은 수상을 한 작가를 몰랐다니 놀랍다. 인터넷서점 검색을 하니 딱 두 권만 보인다. 이런 작가이니 내가 모를 수밖에. 한국의 장르문학 번역이 얼마나 부족한지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현대 스파이 소설의 아버지라 일컬어지는 작가의 작품이 딱 한 권 번역되었다니 말이다. 이번 기회에 더 많은 작품들이 번역되었으면 좋겠다.

 

개인적 바람은 뒤로 하고 이 소설 속으로 들어가 보자. 먼저 스파이소설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 의문이 든다. 화자는 래티머란 추리소설가다. 원래 그는 정치경제학 교수였는데 추리소설이 성공하면서 전업작가가 되었다. 이스탄불에 와서 하키 대령이란 인물을 만난다. 그는 추리소설을 쓸 시간이 없어 자신의 아이디어를 래티머에게 제공하려고 한다. 그런데 래티머의 시선을 끈 것은 그의 초보적인 트릭 등이 아니라 디미트리오스란 인물이다. 하키 대령에게서 이 인물에 대한 단편적인 정보를 얻는다. 그리고 이 정보를 가지고 디미트리오스가 살았고, 문제가 있었던 장소를 방문해 그와 그가 관련된 사건 정보를 수집한다. 소설은 그 과정을 보여준다.

 

스파이의 과거를 뒤쫓는 소설이다. 결코 스파이가 주인공으로 활약하는 소설이 아니다. 작가가 정보를 확인하고 추적하는 과정은 그 시대의 역사를 돌아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터키와 그리스의 갈등, 발칸 반도의 공산화, 각 국가의 이익을 위해 활약하는 스파이들의 정보전 등이 중심에 놓여 있다. 만약 이 시대에 대한 지식이 풍부하다면 횡간에 숨겨진 더 많은 이야기를 발견하고, 작가가 이 시대를 어떻게 보고 해석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내가 아는 것은 터키와 그리스의 전쟁 밖에 없다. 이 두 나라가 얼마나 잔혹한 행동을 했는지만 알고 있다. 바로 이 시대에 디미트리오스가 살인자로 이름을 올린다. 그의 수많은 인생 역정 중 첫 발자국이 바로 이때다.

 

디미트리오스의 삶을 들여다보면 악의로 가득하다. 유대인의 돈을 훔치기 위해 살인을 하고, 정치암살범이 되고, 스파이로 활약하면서 자신의 이익을 우선시하고, 마약을 팔면서 자신의 동료를 고발하고, 인신매매업도 했다. 이 과정에 자신의 이름을 바꾸고, 협박하고, 구걸하는 등 필요한 모든 행동을 다 한다. 마지막에는 신분세탁을 한 후 국제금융기관의 이사까지 된다. 이런 과정을 뒤쫓는데 단순히 인물만 그려내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의 모습도 같이 보여준다. 그래서인지 이야기에 속도감은 조금 떨어진다. 스파이소설이 가지는 긴박감이나 스릴감은 감소되었다. 하지만 앞에서 말했듯이 아는 만큼 재미를 더 누릴 수 있게 만들었다.

 

솔직히 터키에서 발견된 디미트리오스의 정체는 쉽게 추측이 가능하다. 그럼 다른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래티머가 각 도시를 돌면서 정보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디미트리오스를 두려워하고, 그의 죽음에 안도한다. 한 사람을 제외하고 말이다. 그 인물이 바로 래티머가 파리에 오면 50만 프랑을 주겠다고 제안한 피터스 씨다. 그와의 만남은 디미트리오스의 실체에 한 발 더 다가가게 만든다. 그리고 이 인물이 보여주는 이중성과 악의 기록은 결코 그도 신뢰할 수 없게 만든다. 이런 인물들 사이에 놓인 래티머가 보여주는 행동과 실수와 우연은 후반부에 긴장감을 불어넣어준다. 마지막 장면에 대한 역자의 해석은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시간 나면 서로 다른 판본의 두 작품을 비교해서 읽는 재미도 누려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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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피안
하오징팡 지음, 강영희 옮김 / 은행나무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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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나의 시선을 끈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중국 SF 작품이란 것이고, 다른 하나는 SF 문학상 휴고상을 수상한 것이다. 류츠신이 <삼체>로 휴고상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얼마나 놀랐던가. 동양 작가에게도 SF문학상의 문이 열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지만 또 다른 중국 작가가 받을 줄은 몰랐다. 이런 중국 SF 작품이니 관심이 생길 수밖에 없다. 한때는 중국 SF하면 그냥 무시했던 부끄러운 시절도 있었다. 물론 좋은 번역가를 만났다는 것도 무시할 수 없다. 문학에서 번역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기에 더욱 그렇다. 하지만 결국 관심은 작가와 작품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이 단편집의 목록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아 휴고상을 받은 <접는 도시>가 실려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이 책에 실린 여섯 편 중에 그 제목은 없다. 조금 아쉽다. 그리고 이 단편집에서 다루고 있는 공통적인 주제가 하나 있다. 바로 인공지능이다. 마지막에 실린 <인간의 섬>에 가면 인간의 탐욕과 결합한 인공지능의 미래가 펼쳐진다. 이 디스토피아적 미래의 삶에서 인간은 자유의지를 포기한다. 뇌에 칩을 심어 제우스라는 슈퍼 인공지능에게 항상 최선의 판단을 맡겨버린다. 이것을 인식하는 사람들은 120년 전 우주로 나간 탐사대원들이다. 당연히 과거와 현재가 충돌하고, 최선 혹은 최고 효율이 가진 문제가 드러난다. 마지막 마무리가 낭만적인 부분이 있지만 자신의 선택이라고 착각하면서 인터넷 검색에 모든 것을 의지하는 우리의 삶이 잘 표현되어 있다.

 

첫 작품 <당신은 어디에 있지>는 인공지능을 가진 분신으로 펀딩을 받으려는 런이의 하루를 보여준다. 그의 분신은 사용자의 가장 좋은 점만 취합해 상대방에게 답한다. 인간 감정이 지닌 복잡성과 이중성을 제대로 구현하지 못해 지속적인 성공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이 문제점을 마지막에 표출했을 때 해결책이 나오지만 이것을 구현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이 학습을 잘 보여주는 단편이 바로 <건곤과 알렉>이다. 아이와의 대화를 통해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을 다른 영역으로 바꾼다. 인간의 목표 의식과 자유의지를 배우게 하는데 이것이 쉽지 않다. 그 끝에 이르면 <인간의 섬> 같은 결론에 도달한다.

 

<영생 병원>은 <사랑의 문제>와 더불어 미스터리 형식으로 진행된다. <영생 병원>의 미스터리는 어렵지 않다. 중간에 단서를 뚝 던져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병원에 입원했던 어머니가 건강하게 돌아온 후 일어나는 사태와 숨겨진 현실이 다양한 상상을 하게 만든다. 인간 복제를 반대하는 무리들이 그를 내세워 병원을 무너트리려고 한다. 그가 정치적 도구로 바뀌는 순간이다. 어머니의 기억을 그대로 가진 건강한 어머니의 존재는 진짜 어머니인지 그 의미를 묻는데 인간 존재의 근원을 돌아보게 한다. <공각기동대> 속 전뇌를 생각하면 답이 쉬울 듯한데 아직 현실이 그 미래를 따라오지 못하는 괴리는 어쩔 수 없다.

 

<사랑의 문제>는 한 가족과 그 가족을 돌보는 인공지능 가사도우미 천다의 이야기다. 아내가 죽은 후 집을 돌보기 위해 천다를 데려온 아버지가 창에 꿰인 후 이야기다. 하나의 사건을 두고 천다와 두 남매의 이야기가 교차하면서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어떻게 보면 <라쇼몽>의 SF 작품 같다. 가족의 불화와 알력 속에 천다가 보여주는 최첨단 치료와 대응은 지극히 이성적이지만 상황을 개선시키지는 못한다. 여기에 인공지능의 이권을 둘러싼 문제가 엮이면서 상황은 복잡해진다. 재밌는 것은 배심원의 구성이다. 이 재판의 경우 인간과 인공지능의 배분이 1대1이지만 다른 경우라면 1대 11인 경우가 많다. 인공지능이 더 발전하면 사라질 직업 중 하나가 변호사라고 하는데 이것을 잘 보여준다. 마지막에 진실이 드러나고 사후처리가 나타날 때 씁쓸함을 느끼는 것은 왜일까?

 

<전차 안 인간>은 <건곤과 알렉>과 더불어 아주 짧은 단편이다. 보통의 소설이 안드로이드인지 확인하는 문제를 다루는데 이 작품은 인간인지를 확인한다. 로봇3원칙과 역튜링 테스트를 이용한 단편인데 먼 훗날 이 문제가 한 번 이상은 전쟁에서 문제가 될 것 같다. 인간 공격이 가능해진 인공지능들이 과연 상대방만 공격할까? 다시 <인간의 섬>의 한 장면으로 돌아가게 된다. 인간을 죽이는 결정을 내리게 되는 슈퍼인공지능 제우스의 선택으로. 전체적으로 예상한 것보다 가독성이 좋다. 인공지능에 대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고, 한국 SF작가들의 작품들이 더 많이 더 좋은 번역으로 좋은 결과를 맺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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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의 귓속말
이승우 지음 / 은행나무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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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이승우의 소설을 많이 읽지 않았다. 나의 독서법과 거리가 조금 있는 작가고, 취향도 달랐기 때문이다. 이런 이승우를 강하게 인식하는 순간이 두 번 있었다. 하나는 한 영화평론가의 추천작으로 <생의 이면>이 올라왔을 때고, 나머지 한 번은 최근 로쟈의 현대 한국문학에 대한 글 속에서였다. 그때부터 책장에 몇 년째 꽂혀 있는 <생의 이면>이 눈에 들어왔다. 읽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 작품이었다. 언제 시간 나면 읽어야지 생각하는 수많은 책 중 한 권이다. 그런데 문학에세이가 나왔다. 분량도 많지 않아 금방 읽을 수 있을 것이란 섣부른 추측을 했다. 선택은 이렇게 되었다. 이 선택은 정말 착각이었다.

 

에세이와 적은 분량은 보통 때라면 하루면 충분하다. 하지만 이승우의 글은 그렇게 읽을 수 있는 문장이 아니다. 다듬고 다듬은 문장들이, 꼬인 듯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미세한 차이를 보여주는 글들이다. 그러니 대충 읽으면 그 내용을 완전히 오독하거나 ‘뭐 이런 비슷한 말장난 같은 글을 썼는가’ 하고 말할지도 모른다. 여기서 솔직히 고백 하나하면 나 자신도 이 에세이를 완전히 집중해서 읽지 못했다는 것이다. 어느 순간 집중력이 깨어져 단어만 따라간 곳도 적지 않다. 그래도 읽으면서 그 의미를 곱씹고, 그 차이를 생각하면서 색다른 재미를 누린 부분도 많다.

 

읽으면서 해외문학과 한국문학에 대한 감상문이란 느낌을 받은 부분이 많다. 외국 작가야 모두 유명한 작가들이지만 한국 작가 중 조금 낯선 이름도 있었다. 최근 나의 독서가 한쪽으로 기울면서 생긴 문제이긴 하다. 상대적으로 많이 다루어진 작가가 카프카인 것은 그의 글과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 궁금해지고, 글이 잘 써지지 않을 때 이청준의 소설을 읽고 앞으로 나아갔다는 부분은 나의 기억 속 이청준과 이승우의 문장과 내용을 생각하면 쉽게 연결되지 않는다. 이 부분은 평론가들이 연구할 부분이 아닐까. 에밀 아자르와 로맹 가리가 같은 작가였다는 사실을 몰랐다는 것을 비판하는 글을 보고 살짝 반감이 생겼다. 물론 그 당시에도 이 둘은 같은 인물이라고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런 경지는 어떤 것인지.

 

이 에세이를 읽으면서 오에 겐자부로의 소설에서 재미를 발견했던 순간이 떠올랐다. 그가 처음 노벨문학상을 받았을 때 산 책을 읽고 재미없다고 외쳤던 순간과 지금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 오에 겐바부로의 책 중 한 권이 SF로 분류되어 있어 기대하고 읽었는데 크게 실망했던 순간도 있었다. 아마 이런 경험들이 이 에세이를 읽는데 도움을 준 것 같다. 천천히 그 문장을 들여다보고 말장난 같은 글 속에서 미세한 차이를 발견하고 그 차이가 지닌 의미를 깨닫는 재미를 알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런 책을 더 읽을 테냐고 묻는다면 일단은 ‘다음에’라고 답하고 싶다. 아직은 좀더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 좋기 때문이다.

 

“독자의 처지나 환경에 따라 다르게 읽힌다는 것, 그것이 문자 텍스트의 숙명이다.” 이 문장을 읽고 내가 상당수의 작품들 힘들게 읽은 이유를 발견한 느낌이었다. 시간, 장소, 기분, 분위기, 나이, 의자의 경도 등이 미세하게 영향을 미친다고 하지 않는가. 늦은 밤 책을 많이 읽는 나에게 이런 체력적 환경적 요인들은 그 작품을 이해하는데 미세하거나 거대한 차이를 만든다. 여기에 나의 경험도 무시할 수 없다. 앞에서 말한 오에 겐자부로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특정 장르에 익숙해진 독법도 이런 차이를 크게 만든다. 이렇게 이 책은 나의 사유를 확장시킨다.

 

한국보다 프랑스에서 더 높은 평가를 받는다는 작가. 그의 에세이는 철학적이고 깊은 사유를 담고 있다. 종교의 인용은 기독교의 글들이지만 내용은 인간과 인간의 관계, 소설쓰기, 실존, 소설의 고유성 등이다. 에세이 후반으로 가면 독자, 세계화, 소설가 등을 이야기한다. 노벨문학상도 하나의 문학상이란 그의 평가에 공감하면서 하나의 작품에 대한 감상을 이런 식으로 쓸 수도 있다는 사실에 새로운 시선 하나를 배운다. 나의 의지와 조직의 지시를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는 우리의 삶을 돌아본다. 언젠가 그의 소설들을 읽고 젊은 시절 내가 놓친 재미를 누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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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
대프니 듀 모리에 지음, 변용란 옮김 / 현대문학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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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베카>의 작가 대프니 듀 모리에의 초기 단편들을 연대순으로 실은 작품집이다. 이때 말하는 연대순은 발표가 아니라 창작한 순서다. 마지막 작품 일러두기에 이 부분에 대한 설명이 간단하게 요약되어 있다. 처음 이 단편집을 선택할 때 집에 고이 모셔두고 있는 단편집 <새>의 작품들과 겹치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목차를 보니 다행이 아니다. 솔직히 말해 이 작가의 작품을 두 번째 읽는다. 첫 번째는 당연히 <레베카>다. 오래전 영화로 보고 소설을 다시 읽었는데 취향을 조금 타는 작품이었다. 히치콕의 영화를 다시 보고 싶다는 느낌이 더 강했다고 할까. 단편은 어떤 느낌일까? 이 호기심에, 작가의 명성에 선택했다.

 

작가가 10대 후반부터 20대 중반에 걸쳐 쓴 열세 편의 초기 걸작 단편을 모아 낸 선집이라고 한다. 이미 현대문학 출판사에서 <대프니 듀 모리에> 세계문학단편선을 내놓았는데 뭐지? 하는 느낌도 있었다. 오늘 목차를 찾아보니 이 작품집에 <새>가 실려 있다. 당연히 내 머릿속은 히치콕의 영화가 먼저 떠오른다. 영화 이미지와 단편의 이미지를 비교하고 싶은 작은 욕망이 꿈틀거린다고 할까. 개인적으로 현대문학의 세계문학단편선을 재밌고 읽었고 좋아하기에 언젠가 다른 출판사 <새>와 비교하고 싶은 마음도 있다. 물론 자신할 수는 없지만.

 

초기작이라 섬세하지 못한 부분이 분명히 있다. 하지만 뭐지? 하는 느낌과 함께 강한 인상을 남기고, 어떤 작품에서는 가볍게 웃게 만든다. 형식도 장르도 하나로 고정되어 있지 않다. <점점 차가워지는 그의 편지>는 제목대로 편지들로 구성되어 있다. 욕망에 불타는 남자가 그 욕망을 채운 후 일어나는 일을 간결한 편지 등으로 잘 표현하고 있다. 형식도 심리적 표현도 멋지다. <주말>의 이야기는 또 어떤가. 행복한 연인이 난파되면서 마주하는 현실은 지독하게 이기적이다. <성격 차이>의 부부가 보여주는 심리 묘사에 대한 결혼 전 버전이라고 해야 할까. 차갑고 냉혹한 현실을 극단적으로 잘 보여준다.

 

표제작 <인형>은 섬뜩하다. 우연히 바닷가에서 발견한 수첩의 기록이란 설정으로 여운을 남긴다. 하지만 내용은 해설의 섹스돌과 관련 있다. 화자를 매혹시킨 그녀 리베카의 키스가 어디에서 유래했는지 보여주는 장면은 기괴하다. 첫 발표작인 <그러므로 이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는 위선적인 신부 이야기다. 계급과 신분상승의 욕망을 뒤섞었는데 예상하지 못한 결말과 신부의 심리 묘사가 인상적이다. 이것은 첫 작품 <동풍>에서도 그랬다. 거칠고 황당하고 매력적인 이야기를 보여준다. 읽으면서 에스키모인들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피카딜리>는 하층민 여성의 추락한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사기꾼 남자에게 빠진 그녀가 잘못된 선택과 그 후의 삶이 여운을 남긴다. 이 단편은 <메이지>의 일상과 이어진다. 자신의 현실과 동떨어진 결혼식을 응원하는 매춘부의 모습이 씁쓸하다. 욕망에 불탄 24살 신랑의 황당한 첫날밤 도전기가 황당하고 놀랍도록 웃음을 짓게 하는 <절망>은 마지막 문장에서 빵 터진다. <해피밸리>의 사랑스러운 연인들의 모습과 대조적이다. <오래가는 아픔은 없다>는 자신의 감정을 어떻게 스스로 속이고 왜곡하는지 잘 보여준다. 이 탁월한 심리 묘사는 읽으면서 감탄하게 만든다.

 

<집고양이>는 한 남자를 둘러싼 두 여성의 긴장과 엇갈린 갈등을 잘 보여준다. 자신이 생각과 다른 두 어른의 반응은 은밀하거나 노골적이다. 은밀한 것은 남자의 유혹이고, 노골적인 것은 엄마의 감정이다. 마지막 작품인 <인생의 훼방꾼>은 지나온 자신의 삶을 들려주는 방식이다. 제목과 화자의 이미지가 겹치지 않는데 내가 잘못 읽은 것일까? 전체적으로 열세 편의 단편들은 놀라운 심리 묘사와 인간관계를 보여준다. 이렇게 어린 나이에 이런 통찰력을 보여줬다는 사실에 놀란다. 다른 단편들에도 다시 한 번 더 관심이 강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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