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부서지기 전에 에버모어 연대기 1
에밀리 킹 지음, 윤동준 옮김 / 에이치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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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버모어 연대기 1편이다. <백 번째 여왕> 시리즈 작가의 새로운 시리즈다. 전작의 평이 나쁘지 않아 선택했는데 예상과 조금 다른 부분이 있다. 시간여행을 소재로 했다고 하는데 아직 이 부분이 크게 보이지 않는다. 읽으면서 머릿속은 중세 이후 영국이 떠올랐다. 여왕과 죄수들을 보내 새로운 섬을 개척하려는 의지 등이 오스트레일리아의 초기 이민 모습과 겹쳤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해 이런 부분들과 초반의 진행이 엮이면서 약간 지루한 감이 있었다. 진행 속도가 더딘가 하고 돌아보면 결코 더디지 않다. 애벌 리가 자신의 집안을 몰락시킨 총독 마크햄을 뒤쫓아 가는 과정은 빠르게 이어진다. 아마도 그녀의 성격과 그녀를 둘러싼 환경에 쉽게 빠져들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애벌리의 가문은 남작 가문이었다. 하지만 어머니의 생일날 갑자기 침입한 마크햄 무리에 의해 모두 죽었다. 애벌리도 칼에 찔렸지만 외삼촌이 시계태엽심장을 이식해 살았다. 이 시계태엽심장은 시계처럼 작동한다. 격렬한 감정의 변화나 운동을 하게 되면 센서가 작동해 종소리가 난다. 이 소리를 궁금해 하는 주변인들이 생기는데 그녀의 시계태엽심장은 삼촌만 알고 있는 비밀이다. 그녀가 거리의 여성들과 함께 체포되어 여왕이 개발하고자 하는 비수섬으로 끌려갈 때 시계 수리 장비를 전달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녀는 죄수들의 섬에 끌려가지 않을 수 있었지만 마크햄이 그곳으로 간다는 사실을 알고 그 일행에 참여하기로 했다. 그녀의 목표는 그를 죽여 가족의 복수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첫 도입부에 삼촌의 시계점에 온 해군 대위 재미슨은 순수하다. 그는 가슴 속에 가족의 비극과 아픔을 품고 살아간다. 그리고 무엇보다 왕국의 해군 장교란 위치를 잊지 않는다. 하지만 그가 애벌리와 함께 배를 타고 가면서 만들어 가는 관계는 이후 펼쳐지는 이야기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자연스럽게 함께 하면서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살아가는 둘에게 작은 로맨스가 피어난다. 죄수의 섬으로 가는 과정에 선원들과 여죄수들이 결혼을 하게 되는데 선택은 더 높은 지위의 남성에게 있다. 재미슨이 애벌리를 선택할 때만 해도 둘은 예상하지 못한 관계일 것이다.


애벌리가 배속에서 친구들에게 엄마에게 들었던 아마다라 공주의 전설을 이야기한다. 시간의 지배자와 공주와 그 공주를 사랑한 왕자에 대한 전설이다. 아름답지만 비극적이고 전형적인 이야기다. 이 전설은 앞으로 펼쳐질 모험의 시작이다. 책 소개에 나오는 ‘모두가 사랑하는 왕자를 죽여라’는 이야기와도 이어진다. 그런데 이 왕자가 마크햄이란 사실이 나중에 밝혀진다. 책 속에 몇 번이나 나온 10년의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외모란 표현이 왜 나왔는지 알려준다. 그리고 죽었던 것으로 알았던 오빠를 만난다. 그는 마크햄의 부관으로 일하고 있다. 그를 통해 그녀의 기억과 다른 이야기를 듣는다. 진실은 무엇일까?


중세 분위기에 동화 같은 전설이 엮이면서 모험 판타지가 펼쳐진다. 시리즈의 도입부라 다음 이야기를 위해 깔아둔 설정들이 많이 있다. 시계태엽심장을 가진 애벌리를 시간 운반자라고 부르면서 시간의 지배자와 연결시킨다. 작가는 시계태엽심장의 작동 원리를 설명하지 않고, 시계처럼 고장날 수 있음을 알려준다. 실제 몇 번 고장나기도 한다. 목숨이 위험해지지만 다른 사람의 도움으로 살아난다.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에서 이 심장이 어떤 역할을 할지 궁금하다. 그리고 마크햄과 함께 시간이 멈춘 곳을 찾아가는 과정 등은 전통 판타지와 닮아 있다. 이때부터 재빠르게 읽힌다. 아마도 다음 이야기에서는 새로운 세계와 모험을 보여줄 것 같은데 어떤 모습일지, 마크햄과는 어떤 대결이 펼쳐질지 호기심을 자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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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를 걷는 여자들 - 도시에서 거닐고 전복하고 창조한 여성 예술가들을 만나다
로런 엘킨 지음, 홍한별 옮김 / 반비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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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도시를 많이 걸어다녔다. 특히 종로와 광화문 거리의 서점들을 오고 가면서 어느 정도 거리는 걸었다. 이런 나의 걷기는 언제부터인가 사라졌다. 자동차 때문이다. 이 책에서 저자가 뉴욕에서 남친과 헤어진 이유 중 하나도 바로 자동차다. 편리한 자동차 이용은 나에게 많은 문제를 불러왔다. 체력 저하, 비만 같은 육체적 문제와 함께 시야가 좁아지고 조급해지는 정신적 문제까지. 물론 이 책은 그런 내용이 아니다. 여성이 거리를 걷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몇몇 도시를 통해 보여준다. 대부분 파리이고, 뉴욕과 런던과 도쿄가 같이 나온다.


플라뇌르. 도시를 걸으면 관찰하고 느끼고 사유하는 사람의 프랑스어 남성 명사다. 이 단어를 여성형으로 스스로 바꾼 단어가 플라뇌즈다. 우리는 흔히 남성의 언어로만 표현된 수많은 단어들을 만난다. 실제 그것을 무비판적으로 사용하고, 그 차이를 느끼지 못할 때가 많다. 나도 마찬가지다. 이 단어가 남성 명사인 것은 그 시절에 여성들은 도시를 쉽게 걸어다닐 수가 없었다는 의미다. 이 책의 부제로 “도시에서 거닐고 전복하고 창조한 여성 예술가들을 만나다”란 문장이 들어간 것도 이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서다. 이 문장이 나로 하여금 이 책을 선택하게 만들었다.


파리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옛 도시이고, 저자가 성인이 된 후 오랜 기간 산 곳이기 때문이다. 혁명의 도시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진 리스와 조르주 상드와 아녜스 바르다 등이 살았고, 그들의 삶을 기록한 곳이다. 저자는 이들의 글을 통해 남성과 여성의 차별을 곳곳에서 찾아낸다. 지금처럼 평범하게 안전하게 걸을 수 있던 시절이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지금처럼’이란 단어를 앞에서 사용했지만 지금도 그렇게 안전하다고 할 수는 없다고 많은 여성들이 말한다. 그러니 혁명의 시대에는 어떻겠는가. 세계적인 거장들도 페미니즘 초기에 반감을 보였다는 부분은 그 시절의 한계를 잘 보여준다.


런던 블룸스버리 이야기에서 버지니아 울프가 나온다. 무심코 지나간 문장들에서 저자는 자신이 표현하고자 한 문장을 걸러내어 이 시대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단순히 다른 작가들의 이야기만 늘어놓지 않고 자신이 직접 걷고 보고 느낀 점을 풀어놓았다. 이 감상은 파리에서 더 잘 표현되고, 도쿄에서는 강한 이질감을 느끼게 한다. 한 곳에 오래 머물면서 동네 카페 숫자와 상점 사람들과 이웃이 된 파리와 달리 도쿄는 그렇게 좋은 이미지가 아니다. 그녀가 그려내는 도쿄의 풍경은 내가 알고 있던 곳과 상당히 다르다. 출발부터 좋아하지 않은 도시와 입맛에 맞지 않은 음식까지 겹치니 더 그런 것 같다. 그녀가 뉴욕에서 온 것을 생각하면 의외다. 이 솔직한 감상이 조금 불편하지만 서울을 경험한다면 어떤 감상이 나올지 궁금해졌다.


리베카 솔릿의 <걷기의 인문학>을 아직 읽지 않았다. 걷기의 역사와 의미를 총망라한 책이라고 하는데 갑자기 관심이 더 생긴다. 공공장소와 여성의 걷기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지 않은 나에게 이번 책은 다른 시각을 갖게 만들었다. 나의 도시 걷기와 다른 걷기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고 해야 하나. 자신이 머문 도시의 삶과 걷기를 여성 예술가와 엮어 표현한 이 책은 솔직히 재빠르게 읽히지는 않는다. 더디지만 꼼꼼하게 들여다보고 읽다보면 우리가 놓친 것들이 많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이 여성 예술가들의 작품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자 분석이다. 어떻게 보면 여행기이기도 하다. 낯익은 유명 인사들의 낯선 이야기는 이 책의 부가적인 즐거움이다.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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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악한 자매
카렌 디온느 지음, 심연희 옮김 / 북폴리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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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의 평이 좋아 선택했다. ‘후속작’을 속편으로 읽은 나의 오독으로 전작과 이어지는 소설로 착각했다. 읽으면서 전작의 주인공은 언제 나오지 하는 생각을 계속 했다. 그러다 전작과 관계없는 소설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아직 사 놓고 읽지 않은 전작으로 이 소설에서 놓치고 있는 것이 있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순간 사라졌다. 하지만 두 작품은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사이코패스가 등장하고, 가족이란 점이다. 물론 공간적 배경도 같은 미시간 주 어퍼 반도다. 미국 지리에 문외한인 내가 이곳을 제대로 알기는 어렵다. 그래도 읽는 데는 무리가 없다.


소설은 두 명의 시점을 번갈아 표현한다. 이 둘은 딸 레이첼과 엄마 제니다. 레이첼은 스스로 엄마를 총 쏴 죽였다고 생각하고 정신병원에 들어갔다. 그녀가 엄마를 죽인 것을 보고 아빠가 자살했다는 이미지를 계속 품고 있다. 그런데 경찰의 보고서는 이것과 다른 사실을 알려준다. 열한 살 여자 아이가 매그넘을 쐈다면 그 반동으로 큰 상처를 입었을 것이고, 그녀가 쐈다고 생각한 총상과 다른 흔적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그럼 왜 그녀는 이런 생각에 빠져 그 동안 정신병원에 있었던 것일까? 그녀의 언니와 이모는 왜 이 사실을 알려주지 않은 것일까? 공식 자료를 통해 기억의 왜곡을 깨들은 그녀는 집으로 돌아간다.


옆집 아이가 수영장에 빠져 죽었다. 어떻게 들어왔지? 다이애나가 거짓말을 하나 했다. 아이는 TV를 보고 있었다고 말하지만 물에 젖은 것을 엄마는 알고 있다. 혹시 하는 두려움에 빠진다. 그리고 남편에게 말해 시아버지의 산속 저택에서 살자고 한다. 자연림 속에서 두 사람이 생물학 연구를 할 수 있다고 하면서. 그리고 다이애나가 어떤 아이인지 알려주는 상황을 보여준다. 결코 평범하지 않다. 거짓말을 표정 변화 없이 한다. 물론 아직 아이라 엄마는 금방 그것을 알아챈다. 하지만 엄마라는 사실이 이 아이의 결함을 계속 눈감게 한다.


정신병원을 나와 집으로 돌아온 레이첼은 자신에게 반이 상속된 땅의 개발 소식을 본다. 언니가 몰래 땅을 팔 모양이다. 자신이 정신병원에 있으니 이 일을 쉽게 진행할 수 있다. 그녀는 자신이 왔다는 사실을 숨긴 채 집에 몰래 숨는다. 왜 그렇지? 이 의문은 이후 이어지는 이야기를 통해 하나씩 밝혀진다. 어릴 때 유일한 놀이 친구였던 언니와 그녀는 이제 적이 되어 대립한다. 이 이유는 그녀의 기억을 통해 하나씩 밝혀지고, 엄마 제니의 기억 속에서 보완된다. 이 둘의 대결은 격렬하게 싸우기 보다는 숨고, 찾고, 도망가는 상황의 연속으로 이어진다. 이 상황을 주도하는 것은 언니 다이애나다.


사랑하는 딸의 이상을 깨달은 엄마는 현실을 쉽게 인정하지 못한다. 숲 속에서 그들만의 공간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의사를 만나 딸이 사이코패스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정상적인 아이와는 완전히 다른 아이다. 정서적 공감은 없고 자신의 이익이 우선이다. 호기심 때문에 동생 레이첼을 베개로 질식시키는 일을 하기도 한다. 이 둘만 놓아두면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른다. 둘째 딸을 지키면서 첫째 딸을 관찰해야 한다. 이런 상황을 다른 시각에서 기억하는 사람이 바로 레이첼이다. 그녀에게는 언니가 유일한 친구다. 당사자가 아닌 관찰자이자 보호자인 엄마 제니가 보기엔 무시무시한 상황이 여러 번 일어난다. 제니의 글을 읽다 보면 언제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고 계속 긴장하게 된다.


소설을 읽으면 누가 진짜 살인자인지 쉽게 알 수 있다. 누가 진짜 살인자인지 알아채는 것이 이 소설의 핵심이 아니다. 현재와 과거의 상황이 교차하면서 이런 사건이 벌어지기까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 이 사실을 하나씩 깨닫게 되는 지금의 레이첼이 생존을 위해 분투하는 것이 핵심이다. 가족 내부의 문제를 다루고 있지만 이것이 살인이란 사회적 범죄로 이어지면 다르다. 만약 알려지지 않은 다른 살인이 있다면 어떨까? 방대한 자연림은 이런 살인을 숨기기엔 최적의 장소다. 이런 생각들이 레이첼의 기억과 현실을 읽으면서 멈추지 않았다. 얼핏 보면 평화로워 보이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약육강식의 세계가 펼쳐진다. 긴장감은 바로 그곳에서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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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스타 탐정 마환 - 평생도의 비밀
양시명 지음 / 몽실북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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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 <커피유령과 바리스타 탐정>을 재밌게 읽었다. 계간지 <미스터리>에 연재된 것을 모은 책이었다. 이 소설을 읽은 후 장편은 어떨까 하는 기대를 했는데 이번에 장편이 나왔다. 먼저 반가웠다. 전작을 읽으면서 내가 품고 있던 의문 두 가지가 이번에 풀린다. 하나는 커피유령 할의 과거고, 다른 하나는 바리스타 탐정 환의 가정사다. 이번 이야기 속에 이 둘의 이야기는 엮이고 꼬인다, 부성과 아들의 감정이 충돌하고 뒤틀린다. 그리고 이런 부성을 담은 민화 평생도가 중심에서 과거와 현재를 연결해준다. 가독성이 좋아 잘 읽히는데 작은 의문도 있다.


이 평생도는 보통의 평생도와 다르다. 아무리 민화라고 해도 그림은 돈 있는 사람의 소유물이다. 한 장짜리 간단한 민화라면 민초가 가질 수 있겠지만 병풍으로 만들 정도라면 ‘감히’라는 단어를 사용해야 할 정도다. 그런데 노비의 평생도라니. 백정 아비 말복이 자신의 신분 굴레를 벗어던지기 위해 떠난 아들의 죽음 소식을 듣고 화원에게 노비까지 되면서 부탁했다. 화원은 아비를 노비로 굴릴 뿐 그림을 그려줄 마음이 없다. 하지만 아비의 간절한 염원은 어깨 너머로 보고 배운 기술에 지극한 정성을 담아 화폭으로 옮겼다. 걸작이다. 이 평생도를 탐낸 화원에 의해 노비는 쫓겨난다. 그리고 이 평생도는 하나의 전설로 만들어져 국내외를 떠돈다.


이런 평생도를 탐내는 사람들은 많다. 마환에게 이 노비의 평생도를 찾아달라고 온 신창성도 마찬가지다. 거액의 의뢰금과 평생도에 대하 호기심에 마환은 이 일을 시작한다. 그에게 그림을 판 사람을 찾아가고, 그를 통해 또 다른 사람을 소개 받는다. 소개와 조사를 통해 이 그림이 그려진 영월에까지 가게 된다. 영월은 할의 고향이다. 할은 자신이 어떻게 죽었는지 모른다. 커피 맛도 못 느끼지만 전생의 기억이 환으로 하여금 커피숍을 열게 했다. 이때 생긴 몇 가지 사건들이 전작의 단편들이고, 마환이 바리스타 탐정으로 불리게 된 원인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할과 환이 함께 하는 시간이 적다. 할이 차를 두려워하면서 같이 외출할 경우 생길 환이 사고가 걱정되기 때문이다.


평생도가 가졌다고 하는 영험한 기운은 많은 소유자를 매혹시켰다. 이 그림의 기운을 행복하게 누리면 그만이지만 욕심은 멈추지를 못한다. 의뢰자도, 이 그림을 몰래 훔쳐간 사람도, 살인자도 마찬가지다. 유일하게 이 그림에 대한 욕심을 내려놓은 인물은 그 당시 영월을 찾아온 일본 여인의 후손이다. 도쿄는 환에게 나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아버지 마선명 때문이다. 중간중간 흘러나온 환의 과거를 읽다 보면 평생도를 다른 시각에서 보게 된다.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고 교수님이라고 부르는 그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하게 되는 이야기들이다. 그리고 왠지 모르게 다음 권이 나온다면 일본과 연결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아니면 나의 바람일까?


전체적으로 이야기는 세 남자의 이야기와 평생도를 둘러싼 탐욕이 뒤섞여 잘 흘러간다. 그 세 남자는 노비 말복과 할과 환이다. 환이 노비의 평생도를 추적하는 과정은 그렇게 극적이거나 긴장감이 흘러넘칠 정도는 아니다. 살인이 일어나지만 이 살인을 적극적으로 추적하지도 않는다. 그의 관심은 평생도에 있다. 결국에는 그 범인을 잡지만 바리스타 탐정의 추리가 빛나면서 생긴 결과가 아니다. 아쉬운 부분이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에 더 공을 들였으면 하는 마음이다. 개인의 취향이라고 할까. 그리고 마선명의 속내가 이번 소설에서 나오는데 이해가 되면서도 안타깝다. 이 둘의 화해가 앞으로 펼쳐질지도 모르는 이야기의 소재 중 하나가 아닐까 하는 기대를 해본다. 할의 활약이 이번에는 적었는데 더 많아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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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섬 - 영웅들의 섬
신도 준조 지음, 이규원 옮김 / 양철북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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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섬하면 가장 먼저 어릴 때 읽었던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소설이 떠오른다. 너무 오래전에 읽어 기억도 희미한 작품이다. 이 작품의 영향 때문인지 이 소설도 읽으면서 보물에 대한 생각을 끝까지 놓지 못했다. 개인적으로 아쉬운 부분이다. 이 소설을 선택한 이유는 나오키상 수상작과 오키나와를 배경으로 한다는 것이었다. 재미란 측면에서 나오키상 수상작은 늘 믿을 수 있는 상이지 않은가. 오키나와는 몇 년 전부터 계속 여행을 가려고 했지만 상황 등이 여의치 않아 미루어둔 곳이다. 그러다 알게 된 몇 가지 사실들은 이 섬들을 일본의 대표적 관광지로만 볼 수 없게 만들었다.


1952년부터 1972년까지 20년의 긴 세월 동안 오키나와를 배경으로 세 남녀의 이야기를 다룬다. 이 세 남녀를 묶어주는 인물은 코자에서 영웅으로 불렸던 온짱이다. 온짱은 미군기지에서 물자를 훔쳐내는 일을 한다. 이들을 센카아기야라고 부른다. 이 패거리는 극동 최대의 가데나 미 공군기지를 털러 간다. 늘 최상의 ‘전과’를 올렸던 그가 이번에는 잠입에 실패한다. 어디서 실패한 것일까? 무리들은 흩어져 달아난다. 총을 맞아 죽는 센카아기야도 있다. 이 혼란 속에 구스쿠는 탈출한다. 밖에서 온짱을 기다리던 야마코를 만나 달아난다. 온짱의 동생 레이는 기절한 채 체포되고, 온짱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다. 구스쿠, 레이, 야마코 등은 온짱의 흔적은 쫓는다.


온짱은 어디에 갔을까? 시체라도 있다면 포기하겠지만 시체조차 없다. 그러다 탈옥한 레이에게서 밀무역단에 협박당한 이야기를 듣는다. 코자의 영웅으로 불리지만 밀무역단을 상대할 정도는 아닌 모양이다. 이 밀무역단의 한 명이 감옥에 갇혀 있다. 이 시절 감옥은 수용인원을 훨씬 초과한 상태로 운영 중이다. 정치범, 사상범, 잡범, 살인범 등이 함께 갇혀 있다. 이것이 나중에 폭동을 불러오고, 이 폭동을 둘러싸고 파벌이 나누어진다. 이 폭동을 시점으로 두 사람의 삶의 방향이 바뀐다. 구스쿠는 경찰로, 레이는 폭력배로. 어떻게 보면 전형적인 설정이지만 이 극단의 조직은 현실의 다른 부분을 엿보게 한다.


작가는 오키나와의 역사적 사실들을 곳곳에 배치해두고, 그 속에서 세 남녀가 마주한 비참한 현실을 풀어낸다. 신탁통치 중인 오키나와는 미국 달러를 통화로 사용하고, 수많은 토지를 미국 부대에 빼앗겼다. 점령지 군인들처럼 외박 나온 군인들이 저지르는 수많은 만행과 참사는 우리에게도 그렇게 낯설지 않다. 폭행, 강간, 살인, 음주운전으로 인한 살해 등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읽다 보면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만행도 문제지만 처벌은 더 문제다. 사고 친 미군 병사를 헌병이 데리고 가면 가벼운 처벌로 끝난다. 그것이 살인이라고 해도 말이다. 먹고 살아야 하는 현실과 분노가 엮이고 꼬인다. 여기서 조폭들도 패가 갈린다.


형사가 된 구스쿠에게 미군 정보원 어빈이 접근하다. 구스쿠는 그들의 정보원이 된다. 그 날 밤 온짱의 정보를 얻고 싶었기 때문이다. 경찰 업무도 바쁜데 어빈의 일도 처리해야 한다. 물론 어빈이 그를 주시한 것은 그의 능력이 좋았기 때문이다. 조폭이 된 레이는 또 다른 단서를 조사 중이다. 그런데 이것이 두목의 귀에 들어간다. 경고를 받는다. 이때 그를 찾아온 감옥 동료가 있다. 그처럼 강건파였던 다이라다. 그는 나하파 두목의 요청으로 미군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일을 한다. 구스쿠가 어빈을 만났을 때 이런 무리가 그들을 습격하려고 한 적이 있다. 미군에 대한 분노는 이런 식으로도 표출된다.


야마코는 열심히 공부해 학교 선생이 된다. 자신이 생각한 것처럼 유창하게 학생을 이끌지 못한다. 길거리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읽어주면서 하나의 강박에서 벗어난다. 이때 한 소년을 만난다. 바로 혼혈인 우타다. 우타는 말을 하지 않고, 레이를 좇아다닌다. 구스쿠가 해결한 살인 사건의 첫 발견자이기도 하고, 이 세 명의 남녀와 이어진 소년이다. 야마코가 학교 생활에 어느 정도 적응한 어느 날 미군 비행기가 학교에 추락하면서 아주 끔찍한 일이 생긴다. 미군은 작은 배상을 하지만 사죄하지는 않는다. 이 일이 야마코로 하여금 시민운동에 참여하게 만든다. 이렇게 세 남녀는 각자의 길을 걸어간다.


한 영웅의 흔적을 찾고, 좇는 이들의 삶은 현실에 기반을 둘 수밖에 없다. 경찰, 조폭, 선생 등으로 삶이 나누어져 있지만 그들 마음속에 온짱은 아직도 살아 있다. 불행한 오키나와의 현실은 숨겨진 정보와 은밀한 정치적 거래와 일상적인 사건 사고로 뒤덮여 있다. 전쟁 당시 본토의 특고 경찰이 미군의 하수인이 되어 오키나와인들을 몰래 고문한다. 이런 모습들을 보면서 기시감처럼 우리 역사의 한 장면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야마코가 속한 단체가 주장하는 본토 합병론은 얼핏 보면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오키나와가 본토에 의해 어떻게 대우받았는지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소설 앞부분에 미군을 욕하면서 본토를 빼놓아 의아했는데 역사를 배우지 못한 아이들의 사고는 그 원인까지 알기는 무리다. 수많은 역사적 사실들은 나의 지식을 새롭게 만들었고, 이 세 남녀의 삶과 온짱의 미스터리는 읽는 재미를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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