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 라이즈 아르테 미스터리 16
T. M. 로건 지음, 이수영 옮김 / arte(아르테)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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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길 아내의 차를 아들이 보고 말한다. 아이와 함께 엄마를 놀래 줄 목적으로 따라 호텔에 들어간다. 벤과 아내와 말다툼을 하는 것을 본다. 주차장에서 벤이 조셉을 공격한다. 그를 밀친다. 넘어졌는데 피를 흘린다. 이때 아들 윌리엄이 천식발작을 일으킨다. 차에 이 발작을 안정시킬 도구가 없다. 아들을 태우고 집으로 미친 듯이 달려간다. 아들은 무사하다. 그리고 벤이 걱정되어 호텔에 전화를 한다. 불친절하게 답하고 조사할 생각도 없다. 다시 호텔 주차장에 간다. 벤도, 벤의 차도, 피의 흔적도, 그의 휴대폰도 모두 사라졌다. 이제 진짜 거짓말들이 시작된다.


아내가 다른 남자와 호텔에서 만난다면 첫 번째 의심할 것은 불륜이다. 만약 두 사람이 방을 잡았다면 쉬울 텐데 로비에서 대화를 나눈다. 이 상황에 대한 아내의 답변은 벤의 회사 직원에 대한 인사 상담이다. 그리고 그의 페이스북에 자신의 결혼선물과 피를 둘러싼 포스팅이 하나 올라온다. 자신은 올린 적이 없다. 분실한 휴대폰에서 올린 것이다. 이후 벤의 아내 베스가 한 말에 따르면 벤은 집에 왔다가 사라졌다. 벤이 화가 나 이 포스팅을 올렸을 가능성이 있다. 베스는 남편이 나간 후 경찰에 실종신고를 한 상태다. 이 신고가 상황을 이상하게 몰고 간다. 그 시작은 벤과 그의 아내 멀이 한 작은 거짓말이다.


소설은 조셉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가독성이 좋아 잘 읽힌다. 아내의 불륜을 의심했지만 그 거짓말에 안도한다. 벤이 쓰러진 것을 보고 걱정했지만 베스의 말에 그가 살아 있음에 안도한다. 이 안도는 다음에 일어날 일들을 위한 작은 포석이다. 아내는 자신의 작은 실수를 이야기하는데 그녀의 절친 베스에 의해 다른 사실이 드러난다. 벤의 휴대폰으로 보낸 사진들이 하나의 증거다. 벤이 아내 멀에게 집착하는 상황이 이어지고, 조셉은 벤의 그림자를 쫓는다. 집에 그의 흔적이 보이고, 전화도 받는다. 실제 그와 만나기로 한다. 하지만 잠시 보여준 후 사라진다. 그리고 경찰의 의심이 시작된다.


그는 벤의 전화 목소리를 듣고, 문자로 봤지만 그의 실체는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는다. 벤은 앱으로 큰 돈을 벌었고, 이 부분에 능수능란하다. 경찰의 의심은 수사가 진행되면서 실종에서 살인으로 옮겨간다. 시체가 없는데 어떻게 라는 의문이 생기지만 조셉 담당 변호사는 요즘은 이것도 기소가 가능하다고 말한다. 수사가 진행되면 될수록 그가 벤을 죽인 듯한 흔적이 곳곳에서 보인다. 경찰은 그를 압박한다. 자백으로 이 사건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읽으면서 경찰의 이런 행동에 분노하는 나 자신을 본다. 조셉은 개인적으로 조사를 더 해나간다. 그가 혐의를 벗어날 방법은 딱 하나다. 벤이 살아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마지막 순간까지 빠져서 읽었다. SNS에 빠진 현대인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친구 사이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어떻게 변하는지 잘 보여준다. 불편한 현실들을 그대로 보여준다. 아내의 불륜을 알고 난 후 조셉이 느끼는 심리적 갈등 등은 사실적이다. 거짓말은 다른 거짓말을 낳을 수밖에 없고, 작가는 독자에게 진짜 거짓말은 뒤로 미룬다. 읽으면서 몇 가지 가능성을 추론하고, 지우고, 다시 세운다. 마지막에 도달해 세운 가설 하나가 맞았다. 하지만 마무리는 왠지 아쉽다. 감상적이고, 반전을 위한 반전인 듯하다. 다음 작품도 나왔으니 다음에 천천히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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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밤마다 수다를 떨었고, 나는 매일 일기를 썼다 - 어느 페미니스트의 우한 생존기
궈징 지음, 우디 옮김, 정희진 해제 / 원더박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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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을 보고 밤마다 수다를 떨었다는 부분에서 나는 아날로그적 생각을 했다. 그것은 한 장소에 직접 모여 수다를 떤 것으로 상상한 것이다. 하지만 요즘처럼 디지털 시대에는 이런 수다를 온라인에서도 가능하다. 노땅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오프라인에서는 만날 수 없지만 온라인에서는 저자와 친구들은 연결되었고, 이 고립된 생활 속에서 자신들의 삶과 고민과 생각들을 서로 나누었다. 단순히 이 수다만 적었다면 이 일기의 가치는 많이 떨어질 것이다. 저자는 봉쇄된 우한의 일상을 직접 보고 들은 것을 기록하면서 그 가치를 더 높였다.


부제가 ‘어느 페미니스트의 우한 생존기’이다. 저자가 살면서 어떤 길을 걸었는지 알려주는 부분도 나오지만 눈길을 끄는 부분은 그런 내용들이 아니다. 2020년 1월 23일부터 3월 1일까지 SNS에 올린 일기들은 외출할 수 있을 때는 산책 등을 하면서 보고, 대화하고, 물건을 산 내용을 사실적으로 기록했고, 외출이 힘들어졌을 때는 단지 내에서 어떻게 식량을 조달했는지, 자신이 사는 단지의 소소한 일상 등을 알려준다. 1년도 되지 않은 일인데 왠지 모르게 아주 오래전처럼 다가오고, 몇몇 기억은 이 책 속 사실과 다른 기억으로 나에게 남아 있음을 깨닫고 놀랐다.


우한과 코로나 19를 연상하면 폐쇄된 철도역과 텅 빈 도로, 막힌 외부로의 출구 등이 먼저 떠오른다. 방송에서 보여주는 자극적인 영상 이미지가 개개인의 삶을 삭제하고, 먼 거리에서 본 이미지만 내보낸다. 각자의 집에서 고립된 채 불안에 떨면서 살아가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런 현실 속에서도 나와 일을 하거나 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있음을 이 책은 잘 보여준다. 그중에서 환경미화원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정보를 수집하려는 초반부는 사회주의를 지향하지만 제대로 된 사회안전망이 없는 중국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하루 일당보다 하루 나오지 않으면 내는 비용이 더 큰 현실과 노인들이 일해야만 하는 현실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봉쇄된 도시를 산책하면서 본 것들과 나눈 대화들은 쉽게 떠올리는 이미지와 다르다. 하지만 봉쇄가 길어지고, 집안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생기는 문제들에 대한 지적은 생각할 거리들이 많다. 특히 가정폭력 피해자 부분은 정말 막다른 골목에 몰린 기분을 느끼게 만든다. 그리고 읽다 보면 중국 남자들이 집에서 가사 일을 한다고 흔히 알고 있는 정보가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느끼게 만드는 이야기가 계속 나온다. 가부장적인 문화가 아직도 많이 남아 있음을 그대로 보여준다. 어쩌면 우린 일부의 현상을 전체로 이해하는 잘못을 여기서도 저지른 것인지도 모른다.


중국이 얼마나 통제가 심한지 알려주는 대목들이 가끔 나온다. 리원량 추모나 코로나 19 관련 정보 등에 특정 단어를 검색해서 삭제, 차단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알려준다. 저자 자신도 자신의 일기를 이미지 파일로 만들어 올렸다고 한다. 금지어를 피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다. 그리고 이 일기의 기록에는 봉쇄된 도시의 코로나 확진자 기록이 거의 나오지 않는다. 숫자가 나온다면 그 현실이 좀더 현실적으로 다가올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물론 그 기록이 제대로 되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있다. 하지만 한 사람의 관찰기, 생존기로써의 가치는 충분하다.


“희망이 있어서 행동하는 게 아니다. 행동하니까 희망이 생기는 거다.” 이 문장은 희망의 필요충분조건을 잘 보여준다. 행동하지 않으면 희망은 없다. 기도만으로 희망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밤마다 수다를 떠는 이들이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작은 실천이나마 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갈 수 있을 때는 남을 도우려고 하고, 집에서는 운동을 하면서 봉쇄가 풀린 후 할 일들을 토론한다. 좀비 아포칼립스 같은 판타지 세계가 아니라 현실을 그려내었다는 부분은 앞으로 이런 현상이 또 일어날 수 있다는 점에서 많은 부분을 생각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 책은 2020년 3월 1일까지 기록만 출간되었다. 봉쇄가 풀린 날까지 일기도 있다고 한다. 중국어를 모르는 내가 이후 기록을 찾아 읽기는 불가능하다. 언젠가 이후 일기도 포함된 완전판이 나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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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을 빕니다
김이환 지음 / 들녘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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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에 나온 <오픈>이 제목을 바꿔 나왔다. 이 사실이 작가의 이야기에 나온다. 보통 인터넷 서점에 이런 정보가 잘 올라오는 편인데 이번에는 보이지 않는다. 김이환 팬이라면 참고할 부분이다. 개인적으로 이 작가에 대한 환상이 있다. 아마 작가가 장편들을 낼 당시 이런 장르가 그렇게 활성화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장편은 제대로 읽은 적이 없는 것 같은데 계속 관심을 두고, 가끔 사 놓는다. 집에도 몇 권이나 있다. 읽어야지 하면서 늘 미루어 두는 작가 중 한 명이다. 단편들은 여기저기에서 읽었지만 장편은 솔직히 기억나지 않는다.


솔직히 이 작품을 선택하게 된 데는 작가 이름 때문이다. 최근에도 그의 단편들이 여러 앤솔로지에 실렸고, 그 중에서 몇 편을 읽었다. 기대한 만큼의 완성도는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마 그 단편집들의 성격도 한 몫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이번 단편집도 연작이지만 묵직한 느낌보다 가볍고 익숙한 내용들의 변주가 눈에 먼저 들어왔다. 이야기 속에 전래동화 제목이 나온다. 작가 이야기에도 전래동화에서 아이디어를 빌려왔다고 말한다. 개인적으로 이런 작업들을 좋아한다. 낯익은 이야기를 낯설게 느끼게 만들면서 또 다른 의미를 생각하는 작업들 말이다. 


열 편의 연작 단편들에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하얀 상자다. 이전 작품에서 <오픈>이란 제목을 붙였는데 이 상자 위에 open이란 단어가 있다. 빈 상자이지만 자신의 소원을 빌면 그것이 현실에서 이루어진다. 물론 대가는 있다. 그런데 작가는 이 대가 부분을 각각의 단편에서 다르게 풀어낸다. 첫 단편 <그의 상자>에서는 부모가 가장 바라지 않는 부분으로, <다른 사람의 상자>는 더욱 끔찍한 결말로 이어진다. 하지만 어떤 단편들은 유쾌하고, 기발하고, 진한 여운을 남긴다. 읽으면서 나라면 그런 선택을 하지 않을 텐데 생각하는 부분이 나오는데 이 때문에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 잠시 되기도 했다.


하얀 상자와 ‘행운을 빕니다’라는 말이 엮일 때, 나의 일상에서 불만이 폭증하고, 삶의 마지막 순간에 아쉬움이 강하게 남고, 결정 장애 속에서 살아가는 삶을 생각하면 이런 이야기도 가능하다는 부분이 재밌다. 물론 선택이 너무나도 힘들고 고통스러운 순간도 있다. <아들의 상자>는 한 심리학 문제를 노골적으로 이야기 속에 풀어놓았다. 개인과 대의란 전통적인 문제다. 나라면 어떻게 할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이런 사고 실험이 현실에서 그대로 적용되지는 않겠지만 나의 삶을 조금 더 즐길 수 있게는 만들 것이다.


읽으면서 심리적으로 가장 잔혹하게 다가온 이야기는 <다른 사람의 상자>였다. 도입부와 마무리가 완전히 달라지는데 하나의 사건과 그 사건의 내용이 나를 섬뜩하게 만들었다. 몰라도 되는 부분을 알게 되면서 겪게 될 그 상황을 생각하면 그 처참하고 잔혹한 상황은 상상도 할 수 없다. 아마 이런 작품들이 더 나왔다면 이 단편집 전체 분위기가 바뀌었을 것이다. 반면에 <노인의 상자>와 <아내의 상자>는 현재의 삶을 더 생각하게 만든다. 그때 하지 않아 느낀 아쉬움과 그리움이 진한 여운을 남긴다. 그리고 <아내의 상자>는 앞에 나온 아홉 편을 소설 속에서 간단하게 정리까지 해준다. 


전체적으로 밀도가 높은 단편들은 아니다. 작가의 이야기처럼 가볍게 읽을 수 있게 쓴 글들이다. 그 목적에는 맞다. 가득 채운 이야기가 아니고, 전래동화 등과 이어지는 부분이 있어 나의 상상력이 충분히 덧씌워질 수 있었다. 실화도 있다고 하니 한 번 검색해보면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복잡한 구성이 아니라 더 쉽게 다가갈 수 있지만 이 부분에서 개인적인 호불호가 생길 것 같다. 다양한 직업과 연령대와 성별 등은 이 단편집의 또 다른 재미다. 시간 내어 장편도 빨리 읽어봐야겠다. 올해 안에 가능할지는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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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트 세습 - 중산층 해체와 엘리트 파멸을 가속하는 능력 위주 사회의 함정
대니얼 마코비츠 지음, 서정아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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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서 내 머릿속은 복잡하게 엮이기 시작했다. 나 자신도 어느 정도는 능력주의를 신봉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책 속에서 보여주는 미국식 능력주의를 신봉하지는 않는다. 상위 1% 이상이 얻는 연봉을 보면 일단 반감부터 생긴다. 그들이 보여준 능력이 과연 그 정도일까 하는 의문도 같이 따라온다. 이런 반감을 뒤로 하고 이 엘리트들이 어떻게 성장하고, 이 권력을 자신의 자식들에게 이어주려고 하는지 차분히 들여다볼 때 내 삶도 같이 돌아본다. 내가 늘 주장하는 자식의 교육법이 과연 올바른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이제는 586 세대로 불린 사람들이 그들의 자식을 어떻게 키웠는지 떠올리면서 미국만의 문제가 아님을 깨닫는다.


저자는 미국의 능력주의가 강화된 것이 불과 수 십 년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점점 낮아진 세율과 중간층 노동자들이 필요 없어진 환경 등이 엮이면서 부의 지도가 재편되었다고 한다. 이전에는 일반 직원으로 들어가서 회장까지 직위가 올라갔지만 이제는 그런 일이 불가능하다. 이전에는 다양한 직업군의 사람들이 같은 동네에 살았지만 이제는 직업과 소득 수준에 따라 거주지가 나누어진다. 거주지가 나누어진다는 것은 학교가 바뀐다는 의미다. 학교가 바뀌면 교육의 질이 달라진다. 오래전 한국도 좋은 고등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얼마나 많은 부모들이 과외수업을 받게 하고, 이사를 다녔던가. 실제 저자는 한국의 교육에 대해서 책 속에서 한두 번 인용하기도 한다.


능력주의와 대비해서 설명하는 것은 예전의 귀족주의다. 이제는 귀족주의가 누구에게나 배척받고 있지만 이전에는 당연한 일이었다. 이런 시대의 변화가 능력주의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말한다. 계속해서 이 부분이 논의되어야 바뀔 수 있다. 능력주의에 대한 믿음과 2008년 금융위기 사건과 연결해서 월가의 누구도 처벌받지 않았다고 지적한 부분은 엘리트들이 정치적으로는 진보를 말하지만 경제적으로는 보수적이란 부분과 이어진다. 실제 주변에도 이런 사람들이 많다. 말로는 진보를 외치지만 부동산에 가면 누구보다 보수적인 사람들이 있지 않은가. 그리고 능력주의는 귀족주의처럼 엘리트 계층과 나머지 계층을 전반적으로 분리한다. 탁월한 교육의 특권이 이것을 가능하게 한다.


물론 이런 능력주의도 문제가 있다. 엘리트들을 과도한 노동에 빠트린다. 어릴 때부터 치열한 경쟁에 노출면서 많은 문제들이 생긴다.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강남 어린이 이야기가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정신적 문제를 겪은 아이들이 가장 많은 지역이 강남이라고 하지 않는가. 미국의 아이비리그 대학들이 예전과 달리 엘리트 학생들만 뽑는다는 부분은 한국 대학들이 특정 지역 학생들을 선호한다는 것과 이어진다. 부모들이 자식들에게 엄청난 부를 물려주지는 않지만 탁월한 교육을 받게 하면서 권력을 대물림한다. 이 결과 부유층과 중산층의 격차가 점점 더 벌어지고, 중산층과 저소득층 간의 격차는 줄어든다. 양극화가 더 심화된다. 능력주의는 능력에 따른 불평등을 정당한 것으로 선언함으로써 ‘중산층에게 경제적 피해에 도덕적인 모욕까지 가했다’고 주장한다.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수많은 이야기 중에서 눈길을 끄는 부분이 있다. 실제로 남녀 임금 격차가 축소되는 추세는 대학을 나오지 않은 남성의 임금 하락이 빚어낸 결과물이란 부분이다. 실제 최상위 소득자들 중 여성의 비중이 현저히 낮다는 것도 지적하고 있다. 여성들이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난자를 냉동 보관해야 하는 상황까지 왔다. 이 비용을 회사가 내주지만 임신 결정권마저 회사로 넘어간 것이다. 그리고 월가의 고소득자들이 어떻게 일하고 있는지 알려주는 대목은 놀랍지만 그렇게 충격적일 정도는 아니다. 한국의 수많은 노동자들이 지금까지 하고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차이라면 하는 일과 엄청난 연봉 격차 정도랄까. 뭐 능력주의에서는 이것이 전부일 수도 있지만.


“능력주의에 따른 불평등은 능력주의 그 자체의 폐해”고, “무엇보다 능력에 대한 사고방식이 그 폐해의 근원”이며, “능력주의는 귀족의 정치와 경제 형태가 현대적으로 재현된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 능력주의가 과대평가되었다는 부분도 나온다. 조금 더 평등한 사회를 위한 방법으로 제시한 것 중 사립대학 기부금 부분이 있다. 엘리트들이 학교에 기부금을 내면서 세액 공제를 받고, 학교는 세금도 내지 않으면서 이 돈으로 차별화된 교육 기회를 제공한다. 엘리트가 대물림하기 더 좋은 환경을 만든 것이다.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하고, 내 삶을 돌아보고, 미래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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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현관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최고은 옮김 / 검은숲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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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랜만에 요코야마 히데오의 소설을 읽었다. 작가 이름을 인터넷 서점에서 검색하니 낯익은 작품들이 나온다. 대부분 가지고 있는 책들이다. 그리고 이번 소설을 읽고 <64>에 관심이 생겨 집안을 뒤져보았지만 찾지 못했다. <종신 검시관>이 책장에 꽂혀 있는 것이 눈에 들어올 뿐이다. 읽은 것 같은데 하고 검색하니 서평이 보인다. 한때 이 작가의 책이 한꺼번에 나와 열심히 모은 기억이 난다. 그 다음은 늘 그렇듯이 책의 무더기 속으로 쏙 들어갔다. 한없이 읽기가 뒤로 밀린 책들 중 이 작가도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신간이 나오면 눈길이 간다. 이 놈의 책 욕심은 언제 사라지려나.


오랜만에 읽은 작가의 신작은 잡지 연재한 것을 거의 대부분 개작한 후 내놓았다고 한다. 처음 쓴 문장의 10퍼센트만 남았다고 하니 실제 다시 쓴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런 이야기를 읽다 보면 괜히 잡지 연재한 원본(?)을 읽고 싶어진다. 어떤 차이가 있는지 알고 싶다. 이런 관심을 뒤로 하고, 소설 속으로 들어가면 묵직한 문장과 강한 흡입력을 발휘하는 이야기 속에 빨려 들어간다. 미스터리라고 하지만 살인은 없고, 자신이 지은 집 주인 일가가 사라진 흔적을 쫓으면서 자신을 삶을 돌아보고, 건축이란 것을 생각하게 된다. 작가가 이야기 속에 풀어놓은 근대 건축의 거장 브루노 타우트 부분은 읽으면서 엄청나게 공부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참고자료를 보니 고개가 끄덕여진다.


건축사 아오세 미노루는 거품 경제 붕괴 후 여러 일을 전전하다 동기 오키지마의 설계사무소에서 일을 시작한다. 그러다 요시노라는 의뢰인이 ‘당신이 살고 싶은 집을 지어달라’고 의뢰한다. Y주택으로 불리는 이 집은 북향 목조 가옥이다. 나 자신도 남향의 신화에 빠져 있는데 이 소설을 읽으면서 다시 한 번 더 집의 방향을 생각하게 되었다. 어쩌면 남향은 과거 빛이 귀한 시절의 최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이렇게 지은 집은 좋은 평가를 받았고, 건축 200선에도 뽑힌다. 이런 집을 지어달라는 요청이 또 온다. 그런데 Y주택에 사람이 살지 않는 것 같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여기서부터 미스터리는 시작한다.


오키지마와 함께 Y주택에 간다. 사람의 흔적은 없다. 2층에 의자 하나가 놓여 있다. 이 의자에 앉으니 평온하다. 오키지마가 이 의자가 타우트의 의자 같다고 말한다. 만약 진품이라면 희귀한 유물이다. 아오세는 요시노의 이전 집을 찾아간다. 조금이나마 흔적을 발견하기 위해서다. 그러다 한 남자가 그를 찾아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혹시 사채를 빌린 것일까? 하지만 건축 비용은 완납했다, 타우트의 의자는 또 뭐지? 완공 후 메밀집에 함께 왔다는 아내는 자신의 기억과 다르다. 작가는 의자부터 시작하여 타우트의 건축과 가구에 대한 이야기를 연결시키고, 이 미스터리를 그 속에 녹여낸다.


설계사무소가 하나의 공간이다 보니 사라진 의뢰인 찾기만 할 수 없다. 오키지마는 공공건물 입찰을 따내기 위해 열심히 영업한다. 또 다른 이야기의 한 축이다. 사라진 의뢰인과 새로운 건축설계가 연결되고, 은연중에 타우트가 점점 지분을 넓혀간다. 그가 지은 휴가장이란 곳에 가고, 새로운 단서를 얻고, 이전엔 몰랐던 타우트를 알게 된다. 의자는 아주 중요한 단서다. 읽다 보면 약간 의뢰인이 이렇게 한 이유가 짐작되지만 그것은 거의 끝에 도달했을 때다. 그리고 이 일은 아오세의 과거와 연결된다. 화려했던 시절에 취해 자만했고, 아내와도 헤어졌던 그 시간들. 묵직하지만 부드럽게 이어지는 이야기 속에 정신없이 빠져든다.


이 소설을 읽으면 두 죽음이 나온다. 하나는 아오세의 아버지고, 다른 하나는 설계사무소 소장 오키지마다. 아오세의 아버지는 사라진 구관조를 찾으러 갔다가 떨어져 죽었고, 오키지마는 뇌물수수 문제로 스트레스를 받은 후 병원에 입원했다 추락해 죽었다. 실제 오키지마가 제공한 뇌물은 택시비 정도 밖에 없다. 하지만 정치와 언론이 결탁해 그를 극단으로 몰고 갔다. 그의 죽음을 둘러싸고 자살과 실수로 나누어진다. 경찰은 자살로, 아오세는 실수로 추락했다고 본다. 이 두 아버지는 모두 아들을 아주 사랑했다. 실수는 있을 수 있지만 둘 다 자실은 아니다. 오키지마 이야기는 더 복잡한 사연이 엮여 있는데 읽으면서 아버지란 존재를 돌아보게 한다. 기념관 설계를 위해 전력을 다하는 마지막 몇 십 쪽은 숨 막힐 정도로 멋지고 열정적이다. 빨리 <64>를 찾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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