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집에 사는 네 여자
미우라 시온 지음, 이소담 옮김 / 살림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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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1년만에 미우라 시온의 새로운 소설을 읽었다. 전작 <사랑 없는 세계>도 흥미로웠지만 이번 작품도 재밌다. 너무 낯익은 작가 이름이라 많은 소설을 읽은 것 같은데 집에 사놓은 책들이 많은 것이지 읽은 책은 몇 권 되지 않는다. 사실 이런 작가들의 작품들이 책들이 상당히 많다. 한두 권 읽고 마음에 든 작가들의 작품을 한때 열심히 사 모은 덕분이다. 뭐 지금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작가가 나오면 이런 책더미는 더 쌓이는데 요즘 조금 절제하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실제는 잘 되지 않고 있다. 몇 번이나 글로 쓴 듯한데 어느 순간에는 읽었는지 불명확한 경우도 있다. 다행이라면 한때 열심히 서평을 쓴 덕분에 대부분 확인이 가능하다는 정도랄까.


신간의 경우 독서 여부를 확실히 알 수 있다. 재간이 아닌 경우에 한해서다. 이 소설이 2019년 일본 드라마 원작이었다고 하는데 소설을 읽으면서 드라마는 어떤 느낌일까 궁금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열심히 일본 드라마를 봤기에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이 글을 쓰면서 드라마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니 반가운 배우 이름이 보인다. 한때 그녀의 출연작을 열심히 찾아본 적이 있었다. 그리고 원작과 다른 설정들이 눈에 들어온다. 개인적으로 원작의 이미지가 많이 바뀔 것 같다. 정확한 평가는 드라마를 본 후에 바뀔 수도 있다. 특히 유키노의 경우에 말이다.


소설의 분위기는 크게 두 번 바뀐다. 첫 번째는 열리지 않는 방이 열리면서 갓파 미라가 발견되고, 이 순간 화자가 까마귀로 바뀌면서부터다. 그 다음은 위기에 처한 사치의 상황에서 나온다. 화자가 영혼이란 사실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처음 읽을 때만 해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전개와 구성이다. 그런데 이런 전개에도 불구하고 크게 위화감을 느끼지 않는다. 이야기의 전개 과정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어떤 장면에서는 초자연적 현상이라고 불릴만한 사건도 있다. 그 상황이 누군가에게는 공포스럽게 다가왔을지 모르지만 작가는 보는 시각에 따라 코믹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개인적으로 이 장면과 이후 벌어지는 몇 가지 에피소드가 아주 재밌었다.


한 집에 네 명의 여자가 사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 네 명의 여성들이 어떻게 모였는지, 그들의 일상이 어떻는지 들여다보는 것은 다른 문제다. 자수를 놓는 사치를 중심으로 놓고, 그녀의 엄마인 쓰루요, 이상하고 우연한 만남을 통해 알게 된 유키노, 유키노를 통해 다시 연결된 다에미 등이 한 집에 같이 산다. 그런데 이 집이 우리가 알고 있는 일본의 작은 주택이 아니다. 도쿄에 위치해 있지만 넓은 부지를 가지고 있다. 소위 말하는 땅부자인데 이 부동산 개발을 통해 자산을 늘릴 생각을 이 모녀는 하지 않는다. 현상 유지하고 노년에 자금이 부족하지 않으면 된다는 생각이다. 물론 불안감은 있다. 사치의 불안감이 몇 번이나 나올 정도니까.


네 명의 여자가 함께 살지만 연애 비슷한 것을 그려내는 인물은 세 명이다. 당연히 엄마인 쓰루요가 있고, 전 남친의 스토킹 때문이 이 집에 들어와 살게 된 다에미와 집에서 자수만 놓으면서 사람들과 만날 기회가 거의 없는 사치 등이다. 미녀이지만 존재감이 거의 없는 유키노의 연애 이야기는 소설 속에서는 등장하지 않는다. 드라마에서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설정이 나오지만. 작가는 이 네 명의 연애 이야기는 작은 에피소드 정도로 다룬다. 진짜 이야기는 이 네 명의 여성들이 함께 머물면서 보고 느끼고 경험하는 일들을 그려내는 것이다. 느슨한 연대라는 표현이 딱 맞다. 하지만 이 연대는 아주 강력하게 힘을 발휘한다. 언젠가 서로 헤어질 수 있지만 지금 현재 그들의 빈 공간을 채워주는 역할을 한다.


그렇게 길지 않은 소설이지만 상당히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쓰루요의 과거, 태어날 때부터 아버지가 없었던 사치, 늘 경비실 같은 곳에 살면서 이 모녀 주변에 머문 야마다 등이 미묘한 관계 속에서 상상력을 북돋는다. 그리고 순간 순간 일어나는 작은 에피소드는, 특히 유키노의 물재난 이야기는 하나의 관계를 만들어내는 역할을 한다. 유키노에겐 사치가, 사치에겐 가지가 등장한다. 도배를 위해 온 가지에 대한 연심을 품고 있는 사치의 순수하고 엉뚱한 행동은 또 다른 재미다. 이런 그녀를 행동으로 옮기게 하는 인물은 유키노다. 다에미가 전 남친에게 스토킹 당하면서 흔들리자 이것을 바로 잡아준 인물도 역시 유키노다. 드라마에서는 불륜녀로 만들어 놓았으니 내가 불만일 수밖에.


느슨한 연대 속 네 여자의 관계는 어떤 특별한 감정에 휘둘리는 장면이 나오지 않는다. 모녀지간인 사치와 쓰루요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각자 역할과 순서를 정하고 집안에서 행동한다. 다만 남자가 없다 보니 다에미의 스토킹이 신경 쓰인다. 자신들이 사는 곳을 숨기기 위해 택시를 타면서 경제에 큰 타격을 입자 역공을 멋지게 펼치지 않았던가. 그리고 각자 자신들의 삶에 충실하다. 일정 거리를 유지한 채 같이 살아간다. 이것이 이들의 관계를 더욱 견고하게 만든다. 새로운 가족의 모습이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최근 가족을 다양한 형태로 다루는 작품들이 나오고 있지 않은가. 개인적으로 이 다음 이야기가 궁금한데 더 나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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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시민들
백민석 지음 / 열린책들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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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백민석이 러시아 도시들을 돌아다니며 보고 느낀 것을 적은 여행 산문집이다. 백민석의 소설을 읽은 지 상당히 오래되었다. 이미지만 희미하게 남은 <목화밭 엽기전>이 다른 소설의 이미지를 모두 삼켜버렸다. 그 후 몇 권의 소설을 더 사고, 한두 권 정도 소설을 읽었지만 그 첫 이미지가 너무 강렬했다. 그 이미지를 이번 여행 산문집을 통해 조금이나마 희석시켜보려고 했는데 이 책을 모두 읽은 지금 그가 찍은 사진과 감상들이 조금씩 그 자리를 대체하고 있다. 반가운 일이다. 그의 글에서 본 몇 개의 여행 감상은 여행 팟캐스트들에서 들었던 러시아 여행의 이미지를 새롭게 고쳐주는 역할까지 했다.


그가 지닌 러시아의 이미지는 독재와 냉전 시절 구축된 것들이다. 나 자신도 이 이미지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그 시절 영화나 드라마나 소설 등에서 소련은 악의 축이었다. 너무나도 분명했기에 의심할 필요조차 없었다. 소련이 무너진 후 자본주의가 그 자리를 비집고 들어가면서 일어난 수많은 사회문제를 다룬 영화나 소설 등을 읽었지만 쉽게 그 이미지는 무너지지 않았다. 어쩌면 인터넷에 떠도는 러시아 불곰 이미지가 그 자리를 대체했는지 모르겠다. 푸틴마저도 이 불곰 이미지와 같이 묶여 있다. 그런데 작가가 찍고, 만나고, 언어가 통하지 않는 대화를 한 러시아인들은 그 이미지를 쉽게 날려버린다.


목차에 나온 ‘혼자 하는 여행은 결국 마음과 함께 하게 된다.’란 문장이 먼저 마음을 끌어당겼다. 공감하는 문장이고, 나 자신도 경험한 것이다. 뒷모습을 관찰하기 좋은 곳이란 목차와 사진만 보면 ‘뭐지?’하는 생각이 들지만 글 속으로 들어가면 사진 속 사람들의 시선이 향한 곳으로 나의 눈도 같이 간다. 그리고 그가 사람들의 동의를 구한 후 사진을 찍고, 일정 거리를 두고 촬영했다는 글을 읽고 다시 사진을 쳐다본다. 망원렌즈로 당겨 찍었다는 사실에 놀란다. 어떤 사진은 돈을 주고 찍기도 했다는데 그 평범한 모습이 왠지 더 시선을 끈다.


영어가 제대로 통하지 않는 러시아 여행은 분명 불편하다. 하지만 친절해도 너무 친절한 러시아 시민들의 참견은 이 불편함을 상당히 많이 지운 것 같다. 러시아어로 말을 내뱉고, 그를 새로운 곳으로 끌고 가는 모습은 어떻게 보면 상당히 위험하지만 그가 겪은 시민들은 아주 친절했다. 표정 뒤에 숨겨진 친절함을 그는 여행 기간 중 아주 많이 경험했다. 물론 언어가 통하지 않아. 그 나라의 문화를 잘 몰라 실수한 부분의 이야기는 혹시 그 나라를 여행할 독자에게 좋은 안내서가 되기도 한다. 대표적인 것이 미술관에서 겉옷을 벗는 것이다. 그리고 몇 가지 여행 팁은 참고할 만하다.


푸시킨. 이 이름이 러시아에 얼마나 큰 의미가 있는지 다른 사람의 글에서 읽었지만 그렇게 와 닿지 않았다. 그런데 이 책에서 다시 이 이름을 만나면서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다. 구 소련이 무너지면서 사라진 수많은 동상들을 떠올리면서 압도적인 1위의 동상이 푸시킨이라는 것과 레닌을 제외하면 대부분 문화 예술계 인물들 동상으로 가득하다는 글은 아주 인상적이다. 도스토옙스키의 동상이 늘 구부정하다고 했는데 다른 거대하고 영웅적은 모습의 동상과 크게 비교된다. 또 그가 둘러본 미술관이나 박물관이나 공연장의 풍경은 기존에 가지고 있던 소련의 이미지를 단숨에 날려버린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 대한 환상을 다루는데 나 자신도 조금은 가지고 있다. 이 열차를 타고 유럽 여행을 시작한 사람들의 이야기도 가끔 듣고 읽었다. 개인적으로 기차 여행을 좋아하지 않지만 하나의 환상처럼 자리 잡고 있다. 아마 예전에 읽은 책의 이미지가 좋은 쪽으로 변했을 것이다. 러시아 정교에 대해 작가가 보고 느낀 감상은 피상적인 이미지를 새롭게 만들어주었다. 공산주의 본진에서 살아남았다는 사실을 뛰어넘는 현실을 보여준다. 그리고 다시 도끼옹으로 돌아오는 것은 그의 소설이 전 세계 독자에게 끼친 영향 때문일 것이다. 도스토옙스키 게임이란 것이 있다니 놀랍지 않은가. 언제나처럼 이런 여행 산문집을 읽으면 그 곳을 돌아다녀보고 싶다. 이렇게 쌓인 가보고 싶은 나라와 도시가 얼마나 많은가.


표지 사진 속 아이들 옷차림을 ‘이례적일 만큼 후줄근’하다고 했는데 쉽게 납득이 되지 않는다. 내가 우리 주변에서 너무 이런 옷차림의 아이들을 많이 본 탓일까? 어쩌면 작가가 모스크바나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학생들과 비교한 탓인지도 모른다. 사진 속 아이들은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내린 옴스크의 변두리에서 만났다. 이 동네는 변두리 빈민가였다고 한다. 이런 시선은 지역의 문제일 수도, 그가 작은 범위에서 경험한 편향된 결과일지도 모른다. 작가가 찍은 수백 장의 인물 사진 중 미소를 담지 않은 유일한 사진이란 표현은 또 다른 방식으로 이해하려고 하지만 계속 마음에 걸린다. 작은 딴지를 하나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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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순간에
수잰 레드펀 지음, 김마림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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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면서 자신에게 수없이 많이 묻게 되는 책이다. 나라면 과연 어떻게 했을까? 하는 물음이다. 선택과 도덕적 결정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이 소설을 잘 보여준다. 제목대로 한순간에 일어난 사고와 그 이후 각자의 선택이 가져온 후폭풍을 죽은 사람의 전지적 시점에서 자세히 다룬다. 그리고 아주 무거울 수 있는 이야기인데도 작가는 흥미진진하고, 잘 읽히는 전개로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처음 예상한 것보다 훨씬 잘 읽혔고, 그 이야기의 무게에 가슴이 무거웠고, 어느 순간에는 작은 이야기에 눈시울을 붉혔다. 나의 사고실험과 이전까지 삶을 돌아보면 과연 내가 밥처럼 행동하지 않을 수 있을까 하는 물음을 던질 수밖에 없다.


열여섯 고등학생 핀이 화자다. 그리고 그녀는 두 가족이 함께 스키 여행에서 사고로 죽었다. 두 가족은 핀과 엄마의 절친 캐런 이모 가족이다. 여기에 핀의 절친 모린과 클로이 언니의 남자 친구 벤스가 동행한다. 목적지에 잘 도착해 식사하러 가는 도중 차가 고장난 카일을 태운다. 하지만 가는 도중 동물을 피하려다 차가 가드레일을 박는다. 이 가드레일이 튼튼하게 차를 받쳐주었다면 작은 해프닝을 끝났을 테지만 캠핑카는 추락한다. 이때 핀이 바로 죽었다.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알고 가족들 주변에 머물면서 이들이 겪게 되는 상황을 위에서 내려다본다.


핀은 사고 이후 상황을 단순히 지켜보기만 할 뿐이다. 죽은 딸의 옷과 신발을 벗겨 모에게 주는 것을 보고, 클로이 언니 커플이 함께 구조대를 찾아 떠나는 곳을 따라가면서 그들에게 일어난 상황을 보고, 가장 상대적으로 멀쩡한 엄마와 카일이 구조를 요청하기 위해 떠나면서 겪게 되는 일들을 본다. 그리고 캠핑카 안에 남은 사람들이 각자의 생존을 위해 어떤 선택을 하는지도. 떠나거나 머문 사람들 모두 자산의 바람과 달리 선택을 강요받는 순간이 생기고, 이 선택이 이후 삶에 큰 영향을 미친다. 작가는 이 과정을 차분히 보여주면서 그들의 두려움이 허상이 아님을 알려준다.


선택은 언제나 일순위가 있다. 딸의 옷과 신발을 모에게 줄 때 절친 캐런 이모는 감정이 상했다. 클로이 커플이 눈 속을 헤매면서 거리가 멀어질 때 잠시 밴스가 주저했지만 앞으로 나아간 것도 두려움 때문이다. 카일이 헛눈을 밟아 빠졌을 때 살기 위해 그의 손을 놓으려고 한 엄마의 심리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밥이 오즈가 자신의 개에게 먼저 물을 먹이겠다고 욕심을 낸 것과 죽을지도 모르는 외부로 내몬 것은 어떤 것일까? 덩치는 아주 크지만 겨우 열세 살 정신지체가 있는 아이를 말이다. 위험을 느꼈다고 거짓말을 하고, 수색할 때 방향도 반대로 알려줬다면.


“두려움은 변명이 될 수 없다.” 이 문장은 이 소설 속에서 벌어진 상황과 선택에 대한 가장 간결한 답변이다. 이해는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 상황을 계속 용인해줄 수는 없다. 열여섯 모가 엄마가 구조를 요청하러 갈 때 자신이 받은 신발을 다시 준 것이나 책과 눈과 불을 이용해 물을 만든 것은 두려움에 먹히지 않고 최선의 상황을 만들고 유지하려고 노력한 결과다. 하지만 밥과 그 가족은 어땠는가? 그들 가족은 뭉쳐있었지만 한 것이 아무 것도 없다. 엄마가 눈으로 캠핑카를 막을 때 도와준 것을 제외하면 말이다. 기절한 아빠를 제대로 돌본 것도 아니다.


인간관계는 위기 상황에서 드러난다는 말이 있다. 작가는 이 상황을 극단으로 몰아넣고, 두려움과 마주한 사람들의 선택과 결정을 보여준다. 단순히 이 선택에만 집중하지 않고 그 이후 이 일이 일으킨 여파를 다루면서 용서와 회복을 이야기한다. 여친을 버린 밴스가 어떻게 되었는지, 카일의 손을 놓으려고 한 엄마가 어떻게 그를 피하는지, 병실에 남겨진 물품을 통해 핀의 엄마가 자신의 딸 모를 어떻게 돌보게 되었는지 등을 간결하지만 섬세하게 그려낸다. 그 고마움을 알고 감사함을 전달할 때, 딸의 상실을 다시 알게 되는 그 순간 울컥했다. 그리고 이들은 조금씩 회복한다. 하지만 두려움이란 변명을 내세운 캐런 이모 가족은 다른 길로 간다. 올해를 마무리하는 순간 아주 멋진 소설 한 권을 읽었다.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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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의 책 - 100개의 주제로 엮은 그림책 북큐레이션 북
제님 지음 / 헤르츠나인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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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대로 그림책에 대한 책이다. ‘100개의 주제로 엮은 그림책 북큐레이션 북’이란 부제가 붙어 있는데 이것은 2부부터다. 그림책에 한정해서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읽다보면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의 책들로 큐레이션하는 것도 가능하다. 얼마 전 읽었던 일본 추리소설에서도 추리 소설 장르만 가지고 전시회를 여는 장면이 나왔다. 나눈다면 정말 다양한 방식으로 나눌 수 있다. 이 책에서는 100개의 주제로 나누었지 않은가. 물론 이렇게 나누기 위해서는 그 분야에 대한 넓고 깊은 지식이 있어야 가능하다. 소개글에 나온 15년간 기록한 1만여 권의 목록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리고 단순히 그림책뿐만 아니라 동화, 청소년책, 소설, 에세이 등 다양한 분야의 책을 사랑하는 마음을 담고 있어 인식의 폭을 넓힐 수 있다.


100개의 주제로 나누기 전 그림책 북큐레이션 현장을 다룬 도서관 이야기를 보면서 오랫동안 도서관에 가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집에 있는 책 읽기도 벅차기에, 신간 읽기에 바빠, 사 놓고 묵혀두고 있는 책이 많아, 잊고 있던 공간이다. 예전에 한창 책을 빌려 읽을 때 그곳은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는 공간이었다. 인터넷 게시판에서 본 책 정보를 들고 달려가 열심히 검색하고 찾아 대출해 읽던 그 시절 말이다. 그때 얼마나 긴 목록을 만들면서 한 권씩 대출해 읽었던가. 그리고 오래 전 도서관에서 아이와 함께 부모들이 앉아 책을 읽는 것을 보고 얼마나 훈훈하고 부러웠던가. 물론 늦은 밤 잠자리 들기 전 가끔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지만 그 장면과는 다른 풍경이다. 한 번 데리고 가고 싶지만 이젠 코로나 19로 더 힘들다.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간단하다. 그림책을 다루었기 때문이다. 아직 나에게 그림책은 그렇게 흥미로운 분야가 아니다. 아이에게 그림책을 읽어주고, 관심을 가진 작가가 몇 명 있지만 딱 거기에 멈춰 있다. 내가 좋아하는 장르들의 경우 꼬리에 꼬리를 물고, 책을 다룬 책에서 새로운 책 목록을 만들면서 책탑을 쌓아가지만 이 분야는 새로운 도전이다. 집에 있는 그림책들 대부분도 주변 사람들이 준 것이다 보니 전집류가 많다.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출판사의 그림책을 몇 권 사기도 했지만 내 책만큼은 아직 아니다. 나이에 맞지 않아, 아이가 흥미를 보이지 않아 그냥 꽂아두거나 읽을 생각이 없는 책들이 상당히 많다. 아이가 좋아하는 책은 같은 책이라도 몇 번이나 읽어달라고 하지만 내가 관심을 둔 책은 한 번도 겨우 읽는다. 대표적인 책이 모리스 샌닥의 <괴물들이 사는 나라>다. 다시 읽자고 했을 때 ‘읽었잖아’란 대답으로 그냥 책장 어딘가로 들어갔다.


나 자신이 체계적으로 책을 읽지 않다 보니 그림책도 중구난방으로 읽어준다. 주로 아내가 출판사별로 내놓은 책들이나 소파 위에 놓인 책을 읽는데 호기심의 정도에 따라 한 번 읽거나 연속해서 두 번 읽어주는 경우가 있다. 특별히 글자가 많지 않으면 두 번 읽는 것이 어렵지 않지만 어떤 책은 생각보다 글이 많아 힘든 경우도 있다. 공룡사전을 들고 와 전부 읽어달라고 할 때는 정말 난감하다. 뭐 대충 몇 개 읽고 지나가지만. 어른과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기에 쉽게 예측하기 어렵다. 장난감 가지고 놀기를 더 좋아하기에 책을 내가 먼저 읽어주면 살짝 관심을 보여주는데 이것도 잠시일 뿐이다. 이때 도서관의 분위기라면 어떨까?


100개의 주제로 나누어진 책들을 천천히 읽다 보면 속도가 느려진다. 간단한 책 소개글들이 주제별로 묶여 있는데 표지와 작가들과 출판사 이름을 하나씩 확인하다 보면 예상한 시간보다 더딘 책읽기가 된다. 그냥 휙하고 읽고 지나갈 수 있지만 왠지 저자가 분류하고 소개하고 있는 책들이 나의 시선을 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단숨에 끝까지 읽을 수는 없지만 차분하게 눈으로 읽고, 책장을 괜히 한 번 뒤져본다. 혹시 집에 그 책들이 있는지 확인하고 싶어서. 이전에 읽었던 책도 있는지 눈을 크게 뜬다. 생각보다 이 책에 소개된 책 중에 읽은 책은 그렇게 많지 않다. 그런데 읽으려고 묵혀둔 책들이 눈에 들어오면서 마음을 새롭게 다잡는다. 자신할 수 없는 마음이지만 작은 씨앗 하나를 가슴 속에 심어 놓았다. 그것은 그림책도 이제 더 많은 눈길을 줘야 한다는 것이다.


100개의 주제들을 읽으면서 내가 놓친 수많은 재미와 감동을 떠올렸다. 최근 더욱 한쪽으로 치우치는 독서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시간 부족은 선택과 집중이란 문제에 부딪치고 그 선택은 언제나 한쪽으로 치우친다. 그렇다고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될 정도로 파고들지도 않는다. 욕심만 더 늘어나는 것일까? 저자가 풀어낸 매력적인 소개들이 이 욕심만 부채질하는 것일까? 물론 아니다. 편협했던 시선을 바로 잡아준다. 특정 출판사나 그림에 혹했던 나를 더 넓게 보게 만들었다. 대충 눈길만 준 주제나 그림책에 좀더 시선을 오래 두게 한다. 그림책에서 이런 이야기도 다루나 하고 놀랐던 주제들도 많아 읽으면서 얼마나 놀랐던가. 나보다 더 자주 열심히 아이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는 아내에게 주고 참고하라고 하고 싶은 책이다. 내가 준 책은 거의 읽지 않지만 그림책을 아주 열심히 읽어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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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한 갱은 셋 세라 명랑한 갱 시리즈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선영 옮김 / 현대문학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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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한 갱 시리즈 세 번째 작품이다. 1권과 2권을 사 놓고 오랫동안 묵혀 두고 있는 사이에 3권이 나왔다. 일본 출간 기준으로 보면 3권이 2015년도에 나왔으니 한국 번역도 늦은 편이다. 아내가 읽을 책을 추천하라고 했을 때 1권을 권했더니 재밌다고 한 기억이 난다. <골든 슬럼버>를 재밌게 읽었다고 하면서 아는 척도 하는데 2권은 읽지 않았다. 워낙 책 읽기를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보니 방송에 나오는 작가의 작품을 전달해도 그냥 덮어둔다. 이 책을 들고 읽을 때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 단상이다. 당연히 역주행의 기다림은 가슴 한 켠에서 꿈틀거린다. 기약할 수 없는 계획이지만.


최근에 서평은 쓰지 않았지만(언제 쓸지 모르지만) 몇 권의 이사카 고타로 소설을 읽었다. 이전에 읽을 때는 깨닫지 못한 그만의 독특한 문체가 최근에는 읽으면서 눈에 들어왔다. 약간의 거부감, 독특함, 기발함 등이 전해졌는데 이런 부분들은 이전에는 전혀 느끼지 못했다. 이번 소설을 읽으면서는 약간 덜했는데 익숙해져 그런 것인지, 아니면 작품의 성격 탓인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여전히 가독성과 재미 측면에서는 취향 저격이다. 전작들을 읽지 않아 놓치는 부분들도 많겠지만 3편만 읽어도 큰 무리가 없다. 역자 후기를 보면 세 권이 어떤 이야기를 다루는지 간단하게 알려줘 참고할 수 있다.


명랑한 갱들이 은행을 터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순조롭게 은행털이가 진행되는데 마지막에 경비원이 던진 경찰봉에 일행 중 한 명의 팔이 다친다, 구온이다. 유키코의 아들 신이치가 일하는 호텔로 장면이 바뀐다. 신이치가 근무를 잘 하는지 둘러보기 위해서다. 그런데 이 호텔 로비에서 상당히 기분 나쁜 손님이 나타난다. 신이치를 괴롭힌다. 구온이 소매치기한 정보에 의하면 프리랜서 기자다. 이 소설의 진짜 악당인 히지리다. 그의 지갑을 돌려주기 위해 방을 찾다가 공격당하는 그를 구해준다. 그때 은행털이범에게 경찰봉을 던진 경비원 인터뷰 장면이 방송에 나온다. 구온이 다친 부위가 히지리의 눈에 들어온다. 관계가 꼬이는 순간이다.


이 일이 생긴 후 나루세 일당들에게 이상한 일이 생긴다. 미행과 성추행이나 폭력 등을 둘러싼 협박이 일어난다. 다행이라면 이들이 보통 사람과 달라 이 상황을 잘 피한다는 점이다. 나루세는 이 상황이 왜 생긴 것인지 알게 된다. 바로 히지리가 자신의 도박 빚을 없애기 위해 꾸민 작전이다. 그리고 호텔에서 히지리에게 일어난 일을 조사한다. 누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이런 일을 했는지. 이 과정에서 히지리의 기사 때문에 최소 3명 이상이 죽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무책임하고 자극적이고 악의적인 기사가 한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잘 보여준다. 그가 얼마나 추악한 인물인지 알려주는 대목은 뒤로 가면서 하나씩 드러난다.


시리즈 앞권을 읽지 않아 이 갱들이 어떤 성격인지 정확히 알 수 없다. 히지리를 자신들이 처리하면 될 텐데 그들은 그에게 손도 데지 않는다. 히지리는 협박의 강도를 높인다. 자신의 도박 빚을 없애라고 날짜까지 통보한다. 은행에서 훔친 돈이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순진한 생각도 하지만 이 한 번으로 끝낸다면 그렇게 나쁜 놈이 아닐 것이다. 이 위기 상황을 탈출할 방법은 무엇일까? 이 소설의 재미는 바로 이 부분의 설계에 담겨 있다. 독특한 능력을 가진 네 사람이 힘을 합쳐 한 순간에 반전을 이루어내는 그 계획 말이다. 읽으면서 쉽게 감을 잡을 수 없었던 계획이 실현될 때 통쾌함과 약간의 씁쓸함을 느낀다. 씁쓸함은 아직 이런 기자들이 현실에 많다는 부분과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가 하는 의문 때문이다. 그리고 아내에게 2권 읽고, 3권도 읽어라고 말해야겠다. 당연히 나는 1권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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