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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불의 딸들
야 지야시 지음, 민승남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3월
평점 :
이 책에 대한 소개를 읽으면서 가볍게 읽을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하지 않았다. 250년의 세월 속에 열네 명의 이야기를 담아 내었다는 정보는 어떤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내었을까 하고, 호기심을 자극했다. 표지를 넘기고 마주한 두 면을 채운 가계도는 이 소설의 구성과도 이어진다. 마메에서 갈라져 에피아와 에시로 나누어진 두 자매와 그 후손들의 삶은 긴 세월만큼 그 시대와 함께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고, 그 이상으로 많은 이야기들이 생략되어 있다. 같은 공간에 있어도 한 명은 백인의 현지처가 되어 안락한 삶을 살고, 한 명은 지하에서 노예로 팔려갈 상황이다. 이렇게 갈라진 후예들의 삶을 작가는 간결하지만 한 순간의 핵심을 뽑아내어 각각 다른 공간, 다른 문화, 다른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흑인들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에피아가 미녀로 알려져 30파운드에 총독의 현지처가 된다. 아들 퀘이를 낳는다. 퀘이는 영국 유학까지 다녀왔다. 아버지의 후광과 삼촌의 영향력이 함께 어우러져 왕의 딸과 정략 결혼한다. 서아프리카 판틀랜드는 노예무역의 중심지 중 한 곳이다. 케이프코스트 성은 두 자매의 엇갈린 운명의 역사를 담고 있는 곳이자 참혹한 역사의 공간이다. 물론 두 자매는 서로의 존재를 정확하게 모른다. 에시가 다른 노에의 입을 통해 언니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뿐이다. 백인들이 성을 짓고, 흑인들을 충동질해 노예를 수집한다. 노예무역이 순수하게 백인들만의 죄가 아님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어쩌면 흑인들은 자신들이 전쟁으로 획득한 노예 정도로 생각했을지 모른다. 이들이 먼 아메리카 대륙에 가서 어떤 일을 하게 될지는 제대로 몰랐을 것이다.
에피아의 후손들이 나중에 가나가 되는 곳에 머물면서 비교적 평온한 삶을 산 반면 에시의 후손들은 미국의 노예제도와 인종 차별 속에서 힘들게 살아간다. 노예의 삶과 자유민이지만 언제든지 노예로 잡아갈 수 있다는 법 개정은 사람들을 더 북쪽으로 넘어가게 한다. 도망 노예나 자유인이 된 흑인의 납치 등에 대한 이야기는 다른 소설에서 이미 많이 다루었다. 하지만 조금 낯선 이야기 하나가 나온다. 사소한 범죄로 흑인들을 탄광촌으로 보낸 것이다. 흑백 차별은 형량의 차이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런 암울한 삶 속에서도 사랑은 꽃피고, 아이들은 태어난다. 이 아이들이 행복하게 자랐는가 하면 그것은 아니다. 가난과 차별 속에서 힘들고 어렵게 살아간다. 곳곳에 묘사되고 그려진 흑인의 삶은, 그 피부색의 정도에 따라 또 나누어진다. 작가는 냉혹하게 이 현실을 그대로 요약해 보여준다.
에피아의 후손들이 모두 평온하게 산 것은 아니다. 제임스가 자신의 권리를 포기한 순간 후손들의 삶은 곤두박질친다. 귀족처럼 자란 그가 낯선 곳에서 제대로 농사를 지을 능력이 없다. 그의 딸과 그 후손들의 삶은 하층민으로 전락한다. 딸 아비나는 제대로 결혼조차 하지 못한다. 아비나의 딸 아쿠아는 불의 여인에 대한 꿈과 환상 때문에 끔찍한 일을 저지른다. 이런 가족사 속에 역사의 흐름이 조용히 녹아든다. 아쿠아의 남편이 백인들과의 전쟁에서 다리를 하나 잃고, 그 아들 야우는 마을 사람들의 도움과 자신의 노력으로 선생이 되어 노예무역과 가나의 독립을 말한다. 아프리카 현대사의 배경 지식이 어느 정도 있다면 이 상황들이 조금은 더 쉽게 다가올 것이다.
아프리카계 미국인 대신 가나계 미국인이란 단어가 눈에 들어온다. 마메의 두 딸들에서 갈라진 후손들은 어느 순간 자신들조차 구분하는 시대를 마주한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우리들 눈에는 모두 아프리카계 미국인인데 그들은 또 나눈다. 아마 아시아계 미국인들이 한국계, 중국계 등으로 나누는 것과 비슷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 나눔이 하나로 만나는 순간이 바로 마지막 마커스의 이야기에 도달해서다. 둘이 가나의 케이프코스트 성에 와서 자신들이 가진 공포와 마주하는 마지막 장면은 아주 인상적이다. 바뀐 시대를 보여주는 것 같지만 현실은 아직도 그 옛날의 차별 속에 머물고 있다. 인종간의 갈등을 부추기는 세력들이 아직도 들썩거린다.
수없이 생략된 이야기들은 역사를 공부해야만 알 수 있다. 이 긴 연대기적 이야기는 마커스가 자신의 가족사를 거슬러 올라가면서 분노한 것과 맞닿아 있다. 바로 인종차별과 노예다. 노예 무역 이전에도 노예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전쟁으로 노예를 획득하고, 서로 죽이고 죽었다. 부족 간의 갈등은 유구하게 이어지고, 이 갈등을 이용해 이익을 취하는 국가들이나 기업 등도 있다. 노예에게 가해지는 폭력이 가혹하지만 이 가혹함이 미국의 노예제도 속으로 넘어오면 ‘악마’로 변한다. 노예제도가 사라졌지만 인종차별은 그 힘을 오랫동안 유지하고, 현재도 존재한다. 진보의 발걸음은 더디지만 이 긴 세월 속에서 작지만 큰 변화들이 보인다. 머릿속에서 온갖 생각들이 소용돌이 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