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은 어디에나 있어
잰디 넬슨 지음, 이민희 옮김 / 밝은세상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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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어느 날, 언니 베일리가 무대 위에서 죽었다. 사인은 치사성 부정맥이다. 언니의 죽음은 열일곱 살 레니에게 엄청난 충격을 준다. 한달 동안 집에 머물다 학교에 간다. 언니의 죽음에 대한 위로의 말들이 넘쳐난다. 레니는 이 상실감을 간결하게 시로 적어서 곳곳에 흘리고 남긴다. 이 책 사이사이에 나오는 쪽지, 메모 등은 그녀의 감정을 반영한다. 재밌는 점은 이 쪽지 등이 발견된 곳을 같이 표기했다는 점이다. 누가 썼는지는 금방 알 수 있지만 누가 이 기록을 남겼는지는 책 마지막에 가야만 나온다. 가장 친했던 언니의 죽음으로 인한 상실감과 그 이후 느꼈던 감정의 소용돌이와 작은 일탈과 첫 사랑이 어두움보다 밝음 속에서 하나씩 풀어져 나온다.


현재까지 이 작가의 작품은 두 편 출간되었다. 한국에는 현재는 이 책이 유일하다. 가독성이 아주 좋고, 너무 솔직한 감정과 표현에 조금 낯설게 다가왔다. 하지만 이 낯섦은 적나라한 표현 때문이지 그녀가 느낀 감정이나 생각 때문이 아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하루 종일 섹스만 생각한다는 것이다. 아직 남자와 잔 적도 없고, 누구와 사랑에 빠진 적이 없는데 이런 상상을 한다. 상실의 여파일까? 언니 베일리의 연인이었던 토비 또한 갑작스러운 죽음에 긴 상실감을 느낀다. 그런데 약간은 당혹스러운 장면이 나온다, 토비가 레니를 안았을 때 그의 발기를 느낀 것이다. 나중에 둘은 키스를 하고, 누군가의 방해가 없었다면 그 이상으로 나아갈 수 있는 상황에 빠진다. 도덕적으로 본다면 놀랍고 크게 질책할 부분이지만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


레니는 학교 밴드부에서 클라리넷 연주자다. 뛰어난 실력을 가졌지만 자신은 자각하지 못하고 있다. 잠시 그녀가 자리를 빈 사이 전학생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조 폰테인이다. ‘미대륙을 밝힐 듯 환하게 웃는’ 아이고, 탁월한 연주 실력도 가지고 있다. 음악 천재란 표현이 맞을 정도다. 학교 여자들이 그를 노린다. 레니는 특별한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 그녀에게는 지금 토비와의 관계 때문에 정신이 없다. 심리적 갈등과 육체의 반응은 다르게 작용한다. 여기에 언니와 토비 사이에 있었던 약속과 비밀은 둘 사이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든다. 언니의 공간을 정리하지 못한 그녀와 그 방을 찾아온 토비는 작은 유혹에 흔들린다. 만약 빤한 로맨스였다면 다른 방향으로 이야기가 흘러갔을 것이다.


레니에게 먼저 다가온 것은 조다. 할머니가 싸준 도시락을 들고 나무에 앉아 있는데 그가 다가왔다. 나중에는 집까지 찾아오는데 할머니의 반응이 재밌다. 얼마나 조를 팔면 돈을 많이 벌 것이라고 했겠는가. 이런 표현이 문제가 될 수 있지만 그 매력을 전달하는 데는 즉각적이다. 음악이란 공통점과 조의 한 발 다가옴이 둘을 더욱 가깝게 만든다. 레니에게 첫사랑이 날아왔다. 이들의 사랑을 지켜보면 입가에 미소를 짓지 않을 수 없다. 하나의 불안감이 살짝 자리잡고 있지만 말이다. 언제나 소설은 가장 행복한 순간에 파국을 만들고, 이 파국을 해결하면서 그 사랑을 더 부각시키는데 이 소설도 그 공식을 따라간다. 책을 읽으면서 궁금해했던 것 중 하나가 밝혀지면서, 그 감정을 절실하게 느끼고 표현한 장면 등을 통해서 말이다.


레니의 엄마는 두 딸로 놓아둔 채 떠났다. 이후 소식조차 전하지 않았다. 언니는 엄마의 흔적을 찾아보려고 수없이 노력했다. 언니의 유품 정리 중 그 사실을 발견한다. 엄마가 떠난 것은 알겠는데 아버지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아버지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다. 왜일까? 이 자매를 키운 것은 할머니와 삼촌이다. 삼촌은 다섯 번이나 이혼을 했고, 할머니가 키우는 정원은 너무나도 아름답다. 할머니가 키우는 장미는 마력이 있다는 소문이 돌 정도다. 감히 그 꽃을 꺽지는 못한다. 할머니가 아주 크게 분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랑에 눈 먼 사람들은 이 위험을 기꺼이 감수하려고 한다. 이 소설의 재미 있는 이야기 중 하나가 여기서 나온다.


매력적인 인물과 캐릭터들이 등장해 이야기를 재미있게 끌고 나간다. 레니가 큰 상실감에 좌절할 때 할머니와 삼촌은 묵묵히 자신들의 삶을 산다. 그렇다고 이들이 상실감을 느끼지 않는 것은 아니다. 표현하지 않고 있을 뿐이다. 과거의 시간에 멈추고, 슬픔에 빠진 레니에게 자신의 상실감을 드러낸 할머니의 모습은 그래서 더욱 슬프다. 이 슬픔과 아픔을 유머 등으로 정면으로 마주하고, 그 상실감을 지나가려고 한다. 이때 발생하는 감정의 혼란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 도구 중 하나가 시로 표현된 쪽지와 메모 등이다. 멋진 설정이다. 그나저나 표지의 난해함은 다시 봐도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나만 그런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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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국가 대한민국 - 부족주의의 노예가 된 정치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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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의 글을 좋아한다. 오랫동안 읽어왔다. 그가 보여준 새로운 시각은 나를 일깨워주는 경우가 많아 특히 더 좋아한다. 작년에 읽었던 책도 내 속에 가득한 편협함을 많이 깨트려주었고, 이번 책도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읽다 보면 그가 말하는 주장들에 반감을 가지는 부분이 점점 더 늘어난다. 내가 알고 있는 부분과 달라서 그런 것도 있지만 그의 주장들이 너무 비현실적으로 다가 온 부분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의 이상적인 주장이 잘못되었다고 태클을 걸고 싶지는 않다. 이런 주장도 있어야 앞만 보고 달려가는 사람들의 주의를 환기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첫 문장으로 “나는 ‘진보’니 ‘보수’니 하는 구분에 대해 냉소적이다.”라고 적었다. 자신도 진보 진영에 기울어져 있다고 생각할 테지만 이 진영 논리에 휘둘리지 않고 비판적 입장을 유지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처럼 다가온다. 하지만 그의 글을 읽다 보면 이 진영 없음이 가져다주는 한계가 점점 눈에 들어온다. 정론과 긴 세월을 본다면 그의 말이 맞겠지만 현실 정치에서 우선 순위를 정하고 협상해야 하는 부분과 또 그런 인물들만 국회로 진출시키는 민중이란 허상에 너무 많은 기대를 담고 있어 씁쓸함을 품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 다른 방송이나 책에서 얻은 정보의 한계란 점이 있지만 이 글 또한 그 답답함을 날려줄 정도의 대안이나 힘이 있지는 못하다. 강준만의 글을 보면서 늘 느끼는 아쉬움 중 하나다.


<나꼼수>의 열렬한 애청자였다. 이후 딴지에서 나온 팟캐스트들을 재밌게 들었다. 정치 관련 팟캐스트보다는 문화, 예술 쪽이 대부분이었지만 <나꼼수>의 강렬함을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정봉주 사건이 터졌을 때 그의 말을 더 신뢰했다. 이런 신뢰는 박원순 사건이 터졌을 때도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 의심들은 하나씩 사라졌다. 어쩌면 아직 마음속으로 판결까지 기다려보자는 마음이 있을지 모른다. 정의당 대표의 성추행 문제가 생겼을 때는 진보 진영의 멍청함을 탓하면서 새로운 가능성을 막아버린 그들이 원망스러웠다. 더 나은 미래를 향한 길을 그들이 눈앞에서 하나씩 닫는 느낌이었다. 이 책에서 김어준과 박원순에 대해 그가 쓴 글 모두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모두가 반성해야 할 부분이다.


‘우주 최강 미남 문재인’이란 글을 보고 쉽게 문빠를 떠올렸다. 그런데 이 글을 적고 팻말을 든 인물이 공무원이라고 한다. 아산 반찬가게 주인을 괴롭힌 이유는 더 황당하다. 문재인 정권의 컨트롤 타워가 되었다는 주장에는 반대하지만 이 문빠들이 벌인 문제들이 지금은 오히려 독이 되고 있다. 고 노무현 대통령이 한 말 때문에 그들이 더 강하게 밀집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성을 찾아야 한다. 집단의 소속감은 쉽게 넘어갈 수 없다. 나의 정치관이나 윤리관이 집단 속에서 힘을 발휘하는 것은 아주 어렵다. 아무리 간 큰 직원이라고 사장이나 상사의 정치관에 정면으로 부딪혀 싸우기는 힘들다. 사소한 비리는 또 얼마나 많은가. 한때 이런 비리들을 견딜 수 없었는데 나 자신이 흙탕물 속에 잠기다 보니, 현실을 더 알다 보니 무기력해진 부분이 있다. 변화와 진보가 나로부터 시작한다는 것을 알지만 실천으로 옮기기는 너무 힘들다. 중늙은이의 구차한 변명이다.


부족주의. 학연과 지연을 통한 인맥 쌓기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 인맥이 형성되는 이유는 서로의 이익이 맞기 때문이다. 동창회, 동문회 등의 모임은 이런 이익의 교환장이다. 순수한 마음으로 나가면 쉽게 낭패를 본다. 저자가 “부족의, 부족의 의한, 부족을 위한 진보”란 소제목을 낸 것도 이해가 된다. 새롭게 법이 만들어지고, 통과하는 과정 속에 얼마나 많은 로비가 들어가고,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리는지 셀 수 없이 많이 봐왔다. 인간들의 욕망은 진보니 보수니 상관없이 자기 이익이 우선이다. 집값 문제만 해도 너무 높다고 말하지만 자신의 집이 더 올라가길 바라고, 한 채 더 사는 경우도 봤다. 문재인 정권의 부동산 정책이 실패인 이유 중 하나가 금리인데 이번에도 기준 금리가 동결되었다. 민주당 의원이 종부세 기준 금액을 올리겠다는 법안을 발의한다고 하는데 황당하다. 신도시 문제에 대한 저자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검찰 개역에 대해 김웅의 <검사 내전>을 인용해 말하는데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 기소 독점권을 가진 검찰이 어떤 행동을 해왔는지 수없이 봐왔기 때문이다. 검찰 조직이 점점 비대해지고, 점점 정치권에 줄을 대고 있는 현실을 볼 때 개혁은 이루어져야 한다. ‘검찰 공중분해’란 표현을 쓰면서 ‘그간 잘 해온 기존 수사 역량을 해체’한다고 했는데 과연 그랬는지 묻고 싶다. 김웅이 자신의 책에서 검사들이 어떤 일을 하는지 잘 보여주었는데 현장에도 나가지 않는 검사들이 무슨 수사를 한다는 말인가. 일이 너무 많아 그렇게 할 수 없다고 하지만 이 일의 일부를 경찰에 넘기고 서로 견제하게 만든다면 더 좋은 수사로 이어질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러면 ‘기소하지 않을 권리’를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일이 많이 줄어 들 것이다.


윤석열에 사람들이 분노한 것은 그의 수사가 너무 저열하고 뚜렷한 목적을 가진 채 비인권적이었기 때문이다. 과연 다른 정치인들에 대해, 아니 삼성이나 이재용에 대해 그 반만큼이나 했는지 묻고 싶다. 교수 기득권층이 저지르고 있던 불합리한 관행에 대한 질타가 개선으로 이어지지 않은 부분은 놀랍고 지금은 조용히 묻혔다. 금태섭에 대한 옹호는 다른 정치인의 형태와 어떻게 다른지 묻고 싶다. 내 눈에는 그 놈이 그 놈인데. 너무 편협된 시각일까? 기레기 부분도 단순히 진영 논리로 말할 부분이 아니다. 물론 이런 점이 전혀 없지 않다. 아니 많을 것이다. 하지만 기자들이, 데스크가 자신들의 진영 논리나 이익을 위해 글을 쓰는 부분을 뭐라고 할 것인가? 사실을 적었다면 반박이라고 할 텐데. 그리고 현실에서 많은 언론사들이 어뷰징 하고 있고, 사실 확인조차 하지 않는데 이들을 무엇이라 불러야 할까? 훌륭한 기자가 많다고 할 수 있지만 그들이 이런 기사들에 가려진 현실을 생각하면 이 단어를 쉽게 내려놓을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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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페션 - 두 개의 고백 하나의 진실
제시 버튼 지음, 이나경 옮김 / 비채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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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기 전 이전에 읽었던 제시 버튼의 책들에 대한 서평을 다시 한번 훑어봤다. 그녀의 작품들에 대한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서다. 그런데 왠지 모르게 나의 저질 기억력이 내용에 대한 많은 부분을 빼앗아갔다. 아니 거의 대부분이다. 읽다 보면 몇 가지 키워드가 눈에 들어온다. 성차별, 피부색 등 시대의 한계들이다. 이 소설의 두 시점 중 하나는 현재와 같은 인식이 제대로 확산되지 않았던 시절이다. 불과 40년 전인데. 읽으면서 동성애와 모성애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고, 잠시 잊고 있던 그 시절의 인식을 떠올린다. 그리고 단숨에 읽지는 못했지만 읽을 때마다 순식간에 이야기에 빠져들어 그녀들의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전작 <뮤즈>처럼 두 개의 시간대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1980년의 엘리스와 2017년의 로즈다. 로즈는 엘리스의 딸이고, 이제 그녀의 나이는 35살이다. 35살은 엘리스가 콘스턴스 홀든과 사귀던 시절 콘스턴스의 나이다. 이 나이에 눈에 들어온 것은 23살의 어린 나이였던 엘리스의 선택과 35살의 로즈의 각각 다른 선택 때문이다. 이런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은 책을 다 읽고 그들의 선택을 돌아보면서다. 21살에 콘스턴스를 만나 사랑에 빠진 엘리스는 그녀와 동거한다. 이 동거는 행복했다. 그러다 콘스턴스의 소설 <밀랍 심장>이 할리우드 영화로 만들어지면서 잠시 삶의 무대를 옮긴다. 평탄한 삶에 큰 파도가 치기 시작한다.


로즈는 엄마 없이 자랐다. 그녀의 상상력은 엄마의 부재를 다른 환상과 모험으로 채워 놓았다. 크게 엄마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고 하지만 사실은 아니다. 남자 친구 조와 동거하고 커피숍에서 일하며 하루하루 살아가는데 이 일상에 작지만 큰 변화를 가져오는 일이 생긴다. 바로 아버지 맷이 전해준 두 권의 책과 그 작가와 관련된 엄마 이야기다. 콘스턴스가 엄마를 마지막으로 만난 사람이란 사실이다. 현재 시점의 로즈가 이 사실을 알고, 그 책을 읽고, 엄마의 흔적을 찾으려고 한다면 1980년의 앨리스 이야기는 그녀가 어떻게 로즈를 낳고, 사라졌는지를 다룬다. 이 두 가지 시점은 각각 진행되는데 흥미로운 지점은 마지막 장의 인물이 누구인지 명확하게 밝히지 않았다는 것이다.


동성애자인 엘리스는 코니와 그 주변 사람들이 자신을 젊다고 말하는 것에 불만이다. 개인적으로 공감한다. 내가 이십 대였을 때 이 말이 불쾌했지만 지금 내가 바라보는 이십 내는 젊기에 맞는 말이다. 영화 때문에 코니를 따라 할리우드에 왔지만 그녀가 할 일은 없다. 무료함은 젊은 시절에 견디기 힘든 일이다. 사랑하는 코니가 자신을 더 많이 보아줘야 하고, 자신의 사랑을 깨닫기를 바란다. 하지만 자신의 성공과 새로운 인물과 관계를 맺는 일을 즐기고 있던 코니에게 엘리스의 이런 행위들은 투정처럼 다가온다. 어쩌면 잠깐 사랑이 식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매력적인 여배우 바버라와 점점 가까워지는 관계도 한몫했다.


현재 시점의 엘리스는 자신의 현재가 불만이다. 남자 친구 조는 뜬구름 잡는 사업 이야기만 하고, 그의 엄마는 그녀에게 호의적이지 않다. 나이도 이제 적지 않다. 경제력이 담보되지 않은 결혼은 고난일 수 있기에 결혼은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그녀에게 엄마와 콘스턴스의 관계는 묻어두었던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밖으로 드러내게 한다. 우연과 노력이 겹쳐 코니의 집 도우미가 된다. 그녀가 처음 바란 것은 엄마의 마지막 행방에 대한 정보였는데. 가명을 사용했고, 이력을 위조해서 잠입했지만 점점 그녀는 코니에게 빠진다. 엘리스와 같은 사랑은 아니다. 이때 코니는 새로운 소설을 쓰고 있다. 30년만의 신작이다. 로즈는 소설 속 인물 속에서 엘리스의 흔적을 찾는다.


시대를 달리한 두 모녀의 삶을 다룬다. 다른 나이와 다른 선택을 보여주고, 그 과정을 섬세한 심리 묘사와 유려한 문장으로 풀어낸다. 두 모녀에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자신만의 삶을 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엘리스는 코니를 만난 후 자신의 일을 포기했고, 로즈는 조와 사귀면서 그와 침몰하는 중이었다. 이런 삶과 비교되는 인물이 콘스턴스다. 60년대 자신의 성 정체성을 깨닫고, 자신의 삶을 힘들게 산다. 소설의 성공은 그 과정 중 하나다. 성공은 그녀를 잠시 흔들어 놓는다. 인간의 감정이 얼마나 오만하고 상처주기 쉬운지 잘 보여주는 것이 코니와 엘리스의 마지막 만남을 다룬 장면이다. 나이와 상관없다. 진심을 그대로 드러내기보다 진실한 감정을 감추고 두려워하면서 생긴 돌발적인 상황이다. 그 결과가 로즈의 현재 삶으로 이어진다.


60년대에 레즈비언이 보통 사람들에게 낯선 것이었다면 80년대 산모의 산후우울증이 낯선 병명이었다. 이 두 가지 낯섦을 해결하는 방식에서 두 여인의 삶이 갈라진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 엘리스와 그녀의 딸 로즈는 또 다른 선택을 한다. 작가는 콘스턴스의 작품들 속에 페미니즘이 담겨 있다고 말한다. 시대의 한계 속에서 싸우고 노력한 여성들의 삶을 다루고 있다. 아마 로즈가 그 속에서 코니와 엘리스의 이야기라고 생각한 것은 자신이 보고자 한 것을 최대한 본 결과일 것이다. 물론 그 내용도 어느 정도 담겨 있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다른 삶을 살 수밖에 없는 모녀의 삶을 엮어 재밌고 단순하게 풀어낸 것 같지만 세밀하게 파고들면 또 다른 이야기들을 마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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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환자
재스퍼 드윗 지음, 서은원 옮김 / 시월이일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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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공포 게시판에 처음 공개된 이야기가 소설로 출간되었다. 소설의 도입부만 놓고 보면 소위 말하는 진짜 경험담 형식을 담고 있다. 파커라는 이름의 정신과 의사가 한 정신병원에서 경험한 일을 풀어놓는 방식이다. 아주 흔한 형식이다. 가독성이 좋아 잘 읽히는데 분량도 많지 않다. 두 시간 정도면 충분히 읽을 수 있는 분량이다.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이야기지만 예상하지 못한 결말로 이어진다. 아마 이 부분이 이 소설의 흥행에 큰 이유가 아닐까 생각한다. 개인적 취향과 동떨어져 있는 소설이라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도입부나 초반 진행은 상당히 시선을 끈다. 뻔한 이야기지만 정신병원의 괴담 같은 환자에게 끌리고, 그 환자를 둘러싼 수많은 소문과 가장 오랫동안 담당했던 직원 네시의 자살이 호기심을 강하게 자극한다. 그 환자에 대한 자료를 찾아본다. 어린 나이에 병원에 입원한 후 바로 퇴원했다가 다시 입원했다. 그 이후 오랜 시간 동안 단 한 번도 퇴원하지 않았고, 그 환자를 담당했던 수많은 의사와 간호사들에게 나쁜 일들이 생겼다. 자신만만한 파커는 더 많은 기록을 보게 되면 자신이 이 환자를 치료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환자의 이름은 조셉 E.M이다. 그의 상사인 브루스는 파커의 시도를 보고 화를 낸다. 이때 병원장 로즈가 나타나 그에게 그 환자를 치료하게 해준다. 로즈는 누군가가 조셉의 파일을 요청하면 자신에게 통지하게 만들어 놓았다. 몇 개 숨겨둔 파일도 그에게 전달한다. 파커는 의욕적으로 그 환자를 치료하려고 한다. 하지만 그 환자와의 첫 만남 이후 그는 환자가 부당하게 오랫동안 병원에 감금되었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그를 감시하는 듯한 간호사들이 주변을 맴돈다. 조셉을 병원에서 탈출시키려는 시도를 하는데 간호사에게 잡힌다.


그가 그 환자에게 농락된 것이다. 병원장 로즈뿐만 아니라 그 이전 병원장까지 나타나 조셉이 어떤 환지인지 말한다. 그 환자를 담당했던 의사 등이 어떻게 되었는지 다시 한 번 환기시킨다. 아이였던 그 환자가 묘사한 설명과 인터뷰 테이프를 다시 듣고 병원장들의 가설을 다시 검토한다. 이 과정까지는 지극히 정상적인 심리학 관련 소설의 전개와 유사하다. 그런데 이야기 사이 사이에 뭔가 감추어져 있다는 느낌을 준다. 아이의 나이와 행동 등이 이상하다. 병원장의 가설을 확인하기 위해 조셥의 집을 방문한다. 거기서 예상하지 못한 것을 마주한다. 소설의 분위기가 확 바뀐다. 파국의 수레는 바쁘게 굴러간다. 이 마지막 부분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것이다. 소설이 아닌 영화라면 느낌이 많이 다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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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죄 : 검은 강 심리죄 시리즈
레이미 지음, 이연희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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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죄 시리즈 3번째 작품이다. 이전 작품들은 아직 읽지 않았다. 최근에 읽은 중국 추리소설에 상당히 만족했고, 이 시리즈의 평이 좋아 역주행하려는 마음으로 선택했다. 결과부터 말하면 역주행하고 싶은 시리즈다. 팡무란 인물이 너무 매력적으로 다가와 그 이전에 있었던 사건들이 궁금하기 때문이다. 이 소설 속 몇몇 인물들은 이전 작품에 등장해서 같이 사건을 수사했다고 하는데 나중에 읽을 때 이번 소설 때문에 감정이 격해주는 순간이 생기지 않을까 한다. 물론 이것은 먼 훗날의 일이다. 그리고 대단한 가독성을 보여준다. 다루고 있는 내용의 잔혹함을 생각하면 가볍게 읽지는 못할 것 같다.


한 남자가 호텔에 들어가서 한 여성이 살해당하는 것을 보고, 그 살인자를 좇아간다. 칼을 들었다고 생각하고 총을 쐈는데 숟가락이다. 그리고 공안들이 바로 온다. 이 남자가 바로 C시 공안국 부국장 싱즈썬이다. 소설은 이렇게 문을 열고, S시로 출장을 간 팡무의 대활약을 보여준다. 여배우 페이란 납치 사건이다. 납치범은 거액의 돈을 요구하고, 페이란의 알몸을 자극적으로 찍은 영상을 보낸다. 이 사건을 해결하는 팡무를 보고 있으면 냉철하고 담대한 진행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 이미지가 이후에 이어지는 사건에서 완전히 다른 느낌을 주면서 팡무란 인물의 이미지가 많이 흐트러졌다. 어쩌면 가장 인간적인 모습일지 모르는데 말이다.


S시의 사건 해결 후 싱 부국장의 살인 사건 이야기를 듣는다. 현직 공안 간부가 호텔에서 무기도 없는 민간인을 총으로 쏘아 죽였다. 그가 주장하는 여성의 시체 흔적은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는다. 호텔의 CCTV는 그날 점검으로 꺼져 있었다. 어디로 보나 수상한 상황이다. 이 사건을 안 언론이 공안을 질타한다. 그를 법정에 세워 법 앞에 심판받게 만들어야 한다. 이런 현실에서 팡무는 싱 부국장을 면회 간다. 구치소 안에서 폭행을 당해 얼굴이 엉망이다. 현직 공안이 들어왔으니 범죄자들이 그냥 둘 리가 없다. 구치소 소장도 살인으로 들어온 그를 특별 대우할 마음이 없다. 싱은 팡무에게 한 사람을 찾으라고 말한다. 잠입수사를 지시한 딩수청이다.


딩수청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자신의 인맥을 통해 그 흔적을 좇는다. 이 과정에서 팡무가 보여주는 말과 행동은 폭압적이기보다 온정적이다. 물론 돈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팡무가 사건의 피해자나 연락책 등에게 주는 돈은 그 당시 돈으로 생각하면 적지 않은 금액이다. 중국에서 출간된 연도가 2012년이다. 그의 월급을 생각하면 과도한 지출이다. 그가 S시 사건 해결 후 샤오왕이 전달하는 돈을 거절한 것을 생각하면 그가 지출한 돈은 그의 월급을 초과한다. 그의 정확한 월급을 모르니 그냥 지나가자. 돈과 인정으로 작은 단서 하나를 얻는다. 그곳에서 딩수청과 한 소녀를 찾아낸다. 그곳에서 그는 죽을 위험 속에 놓인다. 나중에 이 소녀의 이름이 루루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녀를 피신시킨 후 그녀가 음식을 먹는 것을 보고 단서를 얻는다. 이 단서가 거대한 음모의 한 자락을 발견하게 한다.


싱 부국장이 왜 그런 행동을 하게 되었는지 보여주는 장면 하나는 너무나도 끔찍하다. 이 소설 속에 나오는 인간들의 탐욕은 보고 있으면 그 잔인함과 참혹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이 인간에게 저지른 수많은 범죄들 중 최악 중 하나를 이 속에서 본다. 돈과 욕망을 위해서라면 인간의 윤리나 도덕은 중요하지 않다. 한 마을 전체가 범죄를 암묵적으로 용인하거나 돕고, 권력은 자신의 욕망을 채워주는 범죄자들의 방어막이 된다. 평범한 공안 팡무가 앞으로 나아가려고 할 때마다 방해가 되는 것이 바로 관료들이다. 팡무가 느끼는 죽음의 공포와 인간의 잔혹함에 대한 공포는 읽을 때보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 더 강하게 느낀다.


어린이 성매매를 둘러싼 글은 언제 읽어도 끔찍하다. 처음에는 ‘중국이니까’ 라고 생각했다가 N번방 사건이 떠오르면서 우리도 마찬가지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N번방 사건이나 성폭행 사건을 둘러싼 판결 등을 보면 우리가 중국보다 낫다고 할 수 있을까? 범죄의 검은 강이 우리의 삶 이면에서 흘러가는 것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다고 해도 최소한 밝혀낸 사건에 대한 처벌은 엄정해야 하지 않는가. 자신의 힘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좌절감에 빠진 팡무를 일깨운 것은 피해 아동의 고맙다는 말 한 마디다. 어떻게 보면 통속적인 설정이지만 작은 희망의 불씨가 멋진 반전을 만들어내었다. 한국이라면 솜방망이 처벌로 용두사미처럼 되었을 가능성이 많지만 말이다. 책에서 경찰이 충성해야 할 대상이 법인지 양심인지 묻는데 이 질문을 한국의 검찰과 사법부에 그대로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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