퀸 오브 더 시 에프 그래픽 컬렉션
딜런 메코니스 지음, 전하림 옮김 / F(에프) / 2021년 6월
평점 :
절판


에프 그래픽 컬렉션 최근작이다. 16세기 영국의 엘리자베스 1세가 언니 메리에게 체포되어 런던탑에 유폐된 것에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이 영감에 상상력을 덧붙여 작은 섬을 무대로 이야기를 펼친다. 제목에서 느낀, 뭔가 좀 더 장대한 장면은 없지만 섬세한 감정과 권력 투쟁과 출생의 비밀 등이 엮이고 꼬이면서 시선을 계속 붙잡아둔다. 흔히 보는 그래픽노블과 달리 소설처럼 긴 문장을 간단한 그림과 함께 넣은 장면도 많다. 어떤 대목은 읽다가 그림 동화책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상당한 두께를 자랑하는데 읽다 보니 어느새 끝까지 도달했다. 그리고 다음 이야기기 궁금해졌는데 과연 나올지 모르겠다.


역사 소설을 읽는 느낌이다. 첫 장에서 여왕인 듯한 여성이 도망치려고 한다. 자신의 충신에게 궁에 남아 첩자가 되어 달라고 요청한다. 그리고 이야기는 작은 섬으로 넘어온다. 너무 작아 이름조차 없지만 엘리시아 수녀회가 존재한다. 이 수녀회에는 작은 소녀 한 명이 자라고 있다. 마거릿이다. 이때부터 마거릿은 화자가 된다. 작은 섬을 돌아다니면서 섬에 무엇이 있는지 발견하고, 섬에 머무는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듣는다. 작은 변화가 생기는 것은 섬에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올 때다. 그 첫 번째는 같은 또래의 소년 윌리엄과 그 엄마다. 한때 귀족 가문이었던 그들은 재난을 피해 이 섬에 왔다고 한다. 순수한 아이들은 섬을 탐험하듯 돌아다니면서 재미있게 논다.


섬에 있는 자원만으로 사람들이 살 수 없다. 일년에 두 번 배가 들어와 물건을 놓고 간다. 수녀회에서도 자수 등의 물건을 내놓는다. 평온한 듯한 섬 생활에 작은 변화가 다시 생긴 것은 선장의 아들이 병에 들면서부터다. 위험한 전염병이고, 윌리엄의 엄마는 이 병을 간호한 경험이 있다. 하지만 병은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이 일이 있은 후 윌리엄의 진실이 드러난다. 그리고 이 섬이 하나의 감옥이란 사실도 알게 된다. 그는 섬을 떠난다. 수녀회의 수녀들도 각자의 사연을 가지고 이 섬에 갇혔다.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그럼 어린 마거릿은 왜 이 섬에 갇힌 것일까? 하나의 의문이 든다. 원장 수녀는 아직 이 사실을 알려주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러다 유폐된 엘리노어 여왕이 이 섬으로 오게 되면서 분위기는 완전히 바뀐다.


권좌에서 쫓겨난 여왕 옆에는 그녀를 감시하는 수녀가 한 번 붙어 있다. 남자 감시원도 두 명 같이 왔다. 이런 상황이 그녀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 과거 권력은 현재 힘이 없다. 수녀는 엄격하게 그녀를 관리한다 엘리노어는 단식 등을 하면서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려고 한다. 이때 마거릿이 그녀의 말동무가 되고, 함께 섬을 돌아다닐 수 있게 된다. 물론 남자가 뒤에서 감시하는 조건이다. 마거릿은 엘리노어에게 체스를 배우고, 삶의 또 다른 모습을 깨닫는다. 마거릿이 체스를 배운 이유는 섬을 떠난 윌리엄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다. 같은 감옥에 갇혀 있었다는 사실과 작은 거짓말이 겹쳐지면서 마거릿은 엘리노어에게 다가간다.


조그만 섬에서 자란 순수한 소녀가 약간은 지루하지만 평온한 삶을 살다가 외부의 인사들 때문에 자신의 삶이 바뀌는 것을 경험한다. 그리고 자신의 출생 비밀도 같이. 이 비밀이 알려지는 순간은 우연과 작은 의도가 섞여 있었다.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비밀을 알고, 그녀의 상상력은 또 다른 미래를 꿈꾼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그러다 엘리노어 여왕의 신하 한 명이 난파되어 섬에 도착한다. 마거릿의 모험심이 그를 구한다. 하지만 그녀의 힘만으로 그를 구할 수는 없다. 수녀들의 도움을 받는다. 이제 이야기는 이전 여왕과 신하의 관계와 권력에 대한 것으로 넘어간다. 이 작품에서 마거릿은 단순한 관찰자가 아니라 상황에 대한 적극적인 행동가다. 작가는 이 장면을 그녀의 계획인 것처럼 설명하는데 그대로 실현된다. 재미있는 연출이다.


16세기 영국의 역사를 잘 몰라도 이 그래픽노블을 읽는데 전혀 지장이 없다. 알면 더 재미 있을지 모르지만 확신할 수는 없다. 이 작품에서 눈길에 끄는 장면들이 여러 곳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엘리노어가 여왕이 되기 위해 알아야 하는 것을 말하는 장면이다. 교육을 통해 수많은 지식을 얻지 못하면 여왕의 자리에 앉아도 허수아비와 같다. 이런 지식을 얻는 데는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 좋은 선생도 필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국민의 생활을 안정시키고 발전시키겠다는 의지와 노력이 필요하다. 한가한 자리가 아니다. 제대로 된 권력자라면 말이다. 제목에서 풍기는 모험과 판타지에 대한 기대는 어느 순간 사라졌고, 작가가 유머와 비판을 집어넣은 시대상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너의 집이 대가를 치를 것이다
스테프 차 지음, 이나경 옮김 / 황금가지 / 2021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992년 LA폭동과 그로부터 1년 전에 일어난 ‘두순자 사건’을 모티브로 한 소설이다. 소설 속에서 두순자는 한정자로 바뀌고, 피해 여자 아이는 에이바란 이름과 작은 디테일이 바뀐다. 이야기는 그 사건으로 고통을 겪은 흑인 가족들과 한정자의 딸 시선으로 이어진다. 화자는 에이바의 동생 숀과 한정자의 딸 그레이스로 교차하고, 이 교차는 다른 두 피부색의 입장과 생각을 보여준다. 작가는 이들의 행동과 생각과 감정을 그대로 보여주면서 순간 순간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사건의 이면을 살짝 들춘다. 잉어가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처럼 위로 올라가면 백인의 지배 이데올로기와 비백인들 사이의 갈등을 조장하는 술책들이 하나씩 나오겠지만 작가는 거기까지 올라가지는 않는다. 결국 피해자가 된 흑인과 한국인의 삶을 보여줄 뿐이다.


에이바의 동생이었던 숀은 누나의 죽음 이후 갱에 가입하고, 감옥에 다녀온 후 정신을 차린다. 이삿짐 회사에서 오랫동안 잘 일하고 있다. 강도 사건으로 수감된 사촌 레이가 출소한다. 숀은 실라 이모집에서 같이 살았고, 누나가 죽은 고통을 함께 나누었다. 그리고 숀은 누나가 한정자의 슈퍼에서 한 행동들을 옆에서 본 아이다. 그때 그의 나이는 열네 살이었다. 두순자 사건에 나온 것처럼 에이바의 죽음은 정당방위가 아니었다. 그녀가 자신보다 큰 흑인 아이에게 폭행을 당했지만 총을 쏠 당시는 그 위협이 끝난 시점이다. 에이바의 정면도 아닌 뒤에서 쐈다. 작가는 한정자가 이때 어떤 생각을 했고, 왜 쏘게 되었는지 말하지 않고 넘어간다. 추측으로 이 장면을 해석할 경우 생길 문제점들을 피하려고 한 것이다.


한정자의 딸 그레이스는 한인타운의 우리약국 약사다. 언니 미리엄은 2년 전 가족을 떠났다. 이본 박으로 개명한 엄마와 퇴근하는데 누군가가 나타나 엄마에게 총을 쐈다. 강도라면 돈을 강탈해야 하는데 그냥 사라졌다. 그리고 그녀는 엄마가 한정자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언니는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다. 엄마가 다행스럽게 죽지 않게 되면서 그녀 속에는 증오와 분노의 감정보다 오래 전 사건을 돌아보고, 생각하고, 용서를 빌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물론 이 이전에 한정자가 총에 맞았다는 사실을 안 인터넷 언론의 공격을 받는다. 그녀의 엄마에 대한 변명과 옹호는 가족이기에 가능한 것이었지만 사람들에게 이것이 중요하지 않다. 엄마를 옹호하는 발언을 타고 들어가서 만나게 되는 사실은 인종차별주의자의 말일 뿐이다.


한정자 총격으로 가장 먼저 용의자로 지목되는 것은 당연히 숀이다. 이 사실을 숀은 이전 친구들의 메시지메 알게 되었다. 한때 그도 한정자를 찾아다녔지만 결국 찾지 못했다. 그런데 그렇게 멀지 않는 곳에 그녀가 살고 있었다. 누나에 대해 책 낸 저자가 가족을 찾아와 대화를 나눌 때 그가 품은 감정은 미화되고 왜곡된 누나에 대한 이야기에 대한 반감이다. 가장 아프고 힘든 것은 자신인데 말이다. 그 감정을 폭발시킬 때 마주한 한인가게의 장면은 여러 모로 가슴 아프고,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진다. 가까운 가게에 가지 않고 한정자의 가게로 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와 이 사건의 판결 때문에 부채감을 가진 한인들의 감정이 진하게 가슴 속으로 파고든다.


그레이스가 엄마의 숨겨진 과거를 알게 되고, 혼란스러운 감정을 겪는다. 아버지는 경찰에 비협조적이다. CCTV 자료 제출을 거부한 것이다. 하지만 CCTV 영상은 중요한 사실을 알려준다. 경찰들이 레이를 용의자로 잡아갔을 때 그녀는 그가 범인이 아니라고 진술하겠다고 마음을 먹기도 한다. 적극적인 행동도 한다. 에이바의 이모를 찾아가 용서를 빌려고도 한다. 그녀의 행동을 보고 숀은 복잡한 감정을 느끼지만 용서할 마음은 없다. 이런 그녀의 행동에 큰 변화가 오는 것은 엄마가 갑자기 패혈증으로 죽었기 때문이다. 상실감, 증오, 분노 등의 감정이 그녀를 사로잡는다. 범인이 누군지 알기에 이 감정들은 더욱 불타오른다. 이성은 언제나 감정 앞에 너무나도 무력하다.


정말 많은 정치적 함의를 담고 있다. 레이가 보호관찰 중인데도 총을 차에 둔 이유로 내뱉은 말이 미국총기협회의 논리를 그대로 보여준다. 적들로부터 자신의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한정자 사건이 로드니 킹 판결 1년 전이었는데 언론사에서 부각된 것은 흑인들의 불만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한 것이란 사실도 지적한다. 한정자의 사건의 문제점을 그대로 덮자는 말이 아니다. 언론의 선택이 LA 폭동 당시 한국 가게들의 피해로 이어졌고, 경찰은 부자 백인들을 지키는데 집중한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도입부에 자기 집 마당에서 경찰에 의해 죽은 10대 흑인 소년을 내세운 것은 3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지만 이전의 문제들이 아직도 진행 중이란 의미다. 작가가 “Black Lives Matter” 운동을 글 속에 녹여낸 것도 이것과 관계 있다.


LA폭동 이후 한인과 흑인 사이에 많은 교류가 있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하지만 소설을 읽다 보면 그 교류가 상당히 지엽적이거나 효과가 미미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것과 별개로 두 인종과 두 가족의 이야기는 사실적이고, 강렬하고, 어둡다. 격렬한 증오와 분노의 감정이 솟구치는 순간 마주잡은 손으로 느끼는 열기는 위에서 말한 희망의 씨앗인지도 모른다. 용서를 빌고, 용서를 한다는 행위가 얼마나 힘든 지, 복수란 행위가 얼마나 위험하고 의미 없는 것인지 소설은 잘 보여준다. LA란 대도시를 또 다른 시각에서 보게 되고, 서로 다른 두 문화의 조각을 살짝 엿보았다. 멋지고,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신의 카르테 4 - 의사의 길 아르테 오리지널 9
나쓰카와 소스케 지음, 김수지 옮김 / arte(아르테) / 2021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신의 카르테> 시리즈 최근작이다. 이 시리즈를 자주 보았고, 집 어딘가에 시리즈 다른 권이 한두 권 정도 있을 테지만 아직 읽은 기억은 없다. 아마 시간이 된다면 역주행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요즘 이렇게 역주행하고 싶은 시리즈가 조금씩 생기고 있다. 언제 읽으려나! 내가 정확하게 기억하는 이 작가의 소설은 <책을 지키려는 고양이> 한 편이다. 이 소설을 재미있게 읽었기에 이번 소설을 선택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가슴이 따스해지는 소설이 최근에 다시 눈길을 끄는데 이 작품도 그렇다. 그 따스함은 현실에 바탕을 두고 펼쳐지기에 더 긴 여운과 감동을 준다. 뛰어난 가독성은 말할 필요도 없다.


시리즈 전작을 읽지 않아 구리 짱이 어떤 활약을 했는지 모른다. 전작에서는 24시간 365일 불이 꺼지지 않는 혼조병원에서 근무했다고 한다. 대학병원에 들어와 그는 대학원생이 된다. 거의 월급은 19만 엔이다. 의사라는 직업을 생각하면 박봉이다. 이 소설을 읽다 보면 대학원생 의사에게는 이런 월급도 주지 않았던 적이 있다고 한다. 참으로 놀라운 시절이었다. 결혼해서 아이까지 낳은 구리하라 이치토는 이 월급으로 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다. 그래서 비번이면 아르바이트를 한다. 학위를 따야 하니 실험도 해야 한다. 이 소설의 상당히 많은 부분이 실험실에서 일어나는데 개인적으로 병리의 후타바가 시간나면 읽는 sf 작품들이 눈에 들어온다. 개인적으로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로 보였기 때문이다.


구리 짱의 취미는 나쓰메 소세키의 <풀베개>를 계속해서 읽는 것이다. 이 소설의 재미난 대목 중 하나는 이런 소설 속 문장을 인용해서 들려주는 것이다. 한 작가의 작품만 나오지 않고 상당히 다양한 작가의 문장이 인용되는데 재밌다. 책과 더불어 자주 나오는 것이 술을 마시고, 일본 사케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는 장면이다. 이 애정은 읽다 보면 술을 잘 못 마시는 내가 한 잔 맛을 보고 싶을 정도다. 좋은 쌀로 빚은 맛 있는 술 이야기는 언제나 나의 입맛을 다시게 한다. 물론 어떤 대목에서는 의국에서 술 마시는 장면이 나와 음주 의사의 진찰 같은 상황이 떠오르기도 했지만 걱정할 정도의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하얀거탑이라고 불리는 대학병원 의사들과 환자에 대한 이야기다. 드라마 <하얀거탑>과 같은 자극적이고 권력을 둘러싼 대립과 갈등보다 뜨겁거나 냉정한 열정을 가슴에 품은 의사들 이야기다. 그들이 매일 진찰하고 치료하는 환자들 이야기다. 판타지 소설처럼 이 의사들은 모든 환자를 치료하지 못한다. 조직 간의 갈등도 존재하고, 쌓이고 쌓인 관료적 행동들도 곳곳에서 드러난다. 차를 잘 우려내어 마셔 리큐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의사는 너무 열정적이고 바른 의사라 좌충우돌하는데 왠지 모르게 이전 작품에서 구리 짱이 그런 의사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환자를 끌어당기는 구리하라라는 별명은 어떻게 해석하는가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지는데 이 소설 속의 상황을 보면 좋은 쪽이 아닐까 생각한다.


현직 의사가 쓴 소설이라 전문적인 단어들이 많이 나온다. 의학 소설이나 드라마 등에서 자주 나오는 장면인데 몰라도 읽는데 문제없다. 이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환자는 29살의 4기 췌장암 환자인 후타쓰기 씨다. 그녀의 질환은 쉽게 고칠 수 없는데 그녀가 구리 짱을 지명하면서 인연을 맺는다. 하지만 그 인연은 생각보다 오래 전에 있었고, 그때의 감정이, 경험이 구리 짱으로 이어졌다. 작가는 이런 환자들의 사정을 자극적으로 그려내지 않고, 상당히 담담하게 보여준다. 물론 서로의 감정과 이해가 충돌하는 상황도 생긴다. 그렇지만 냉정한 열정과 환자에 대한 애정이 많은 구리하라는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그 문제를 돌파한다. 순간 통쾌한 장면이지만 뒤에 드러나는 현실은 또 다른 문제를 담고 있다.


“본디 의료라는 것은 인간이 인간의 생명을 좌우한다는 터무니없는 사명을 짊어지고 있다.”는 문장은 대학병원의 일그러진 구조물 이야기로 넘어간다. 빵집 교수가 병상 확보를 위해 환자들의 퇴원을 독촉하는가 하면, 어떤 환자는 집에서 임종을 맞이하겠다고 하는데 다른 조직들이 자신들의 가이드라인을 이유로 막는다. 병원과 의사 존재 이유가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서라는 기본을 어느 순간 잊는데 우리는 현실에서 자주 만난다. 지방 대학병원이 더 많은 의사들의 자신들의 의국으로 끌어당기기 위해 노력하는 장면은 인원이 곧 힘이라는 논리와 함께 변하는 전공과 선호도와 연결되면서 생각이 복잡해진다. 인턴들이 전공을 자신들의 과로 오길 바라는 그 욕심이 그렇게 나쁘게만 다가오지 않는 것도 이 소설의 매력이다. 그리고 열악한 지방 병원 환경 부분은 작년도 공공의대 논쟁과 엮이면서 생각할 거리를 많이 제공한다.


의사는 죽음을 늘 가까이하고 있다. “죽음은, 스쳐가는 경치에 지나지 않는다.”란 문장은 그 죽음에 빠져 허우적거릴 수 없다는 사명감이자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환자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이 문장이 가슴에 와 닿았다. 그리고 박봉의 의사 아내가 보여주는 너무나도 현명하고 따뜻한 모습은 왠지 모르게 비현실적으로 다가온다. 더불어 재미난 캐릭터들이 보여주는 여러 장면들은 조금은 무거울 수도 있는 장면들을 작은 웃음으로 넘어가게 한다. 오니키리 호조 선생이나 다른 의사들이 구리 짱이 친 사고를 무마하고 막아주는 장면을 보면서 좋은 의사란 한 사람만의 힘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란 사실을 깨닫는다. 구리 짱이 복마전 같은 대학병원의 뛰어난 점과 문제점들을 조금씩 보여주는 장면은 내가 대학병원에 가지고 있던 몇 가지 시선을 살짝 바꿔주었다. 구리 짱의 냉정한 열정을 다른 소설에서 다시 보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카르마 폴리스 - 홍준성 장편소설
홍준성 지음 / 은행나무 / 2021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처음 만난 작가다. 2015년 한경 청년신춘문예란 문학상에 당선되었다는 것 정도가 사전 정보의 전부였다. 제목만 보고 SF 판타지 작품인가 생각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장르지만 낯선, 정보가 부족한 작가를 조금 꺼리는 편이다. 그러다 2021 런던북페어 화재의 한국소설이란 소개 포스팅을 봤다. 내가 이런 광고에 약한 편이다. ‘역사와 철학을 종횡무진하며 직조해낸 현대의 우화’란 소개는 괜히 지적 허영을 부채질한다. 어떤 식의 이야기가 나올까 호기심을 가졌다. 역사와 철학이란 단어는 더딘 책읽기가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불러왔다. 그렇게 읽기 시작한 이야기는 모두 나의 예상을 뒤엎었다.


고아원 일련번호 42로 불리는 소년을 둘러싼 세계가 어떻게 무너지고 재편되는 그린다고 했지만 소설 속에서 특정한 주인공을 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제목에서 폴리스가 나오기에 주인공이 경찰로 성장하거나 경찰일 것이란 나의 예상은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졌다. 한 고서점의 책벌레와 그 책벌레를 먹는 박쥐와 서점에 쫓겨 달아난 박자를 잡아먹는 송골매와 그 송골매를 노리는 고양이로 이어지는 도입부는 ‘뭐지?’란 의문부호를 달기 딱 좋은 전개였다. 그리고 고양이와 송골매가 양패구사한다. 이것을 본 노숙자가 고양이는 버려지고, 송골매는 박제품으로, 아직 먹지 못한 박쥐는 약재상에게 판다. 박제상과 약제상은 모두 난장이고, 이 두 동물을 산 사람들로 이야기는 넘어간다.


소설의 무대는 비뫼시라는 가상의 공간이다. 약간 스팀펑크를 가미한 세계다. 왕이 권력을 쥐고 있는데 귀족과 부르주아지들이 그 힘을 키운다. 차도 텔레비전도 총도 있지만 빈민가의 분위기는 빅토리아 시기의 느낌이 난다. 이야기의 문을 연 두 동물 중 박쥐는 관절염으로 고생하는 유리부인에게 팔린다. 박쥐를 먹으면 낫는다는 민간 요법 때문이다. 고약한 맛이지만 고통보다는 낫다. 그리고 그 남편은 댐 공사현장으로 출근한다. 아내는 병 때문에 저축한 돈을 모두 소진했고, 남편은 정부의 댐 공사 덕분에 생계를 이어간다. 공사가 예정대로 진행된다면 집안 형편이 조금은 좋아질 것이다. 하지만 예산 부족과 이 부족한 예산으로 몇 가지 안전 기준을 살짝 넘어가고, 예상하지 못한 큰비가 내리면서 댐이 무너진다. 모르고 보면 천재이지만 독자들은 이것이 인재란 사실을 안다. 그 비리의 정점에 비뫼시의 가시여왕이 있기 때문이다.


유리부인은 임신이 되지 않는다고 판정 받았었다. 그런데 신의 변덕인지 그동안 고아먹은 박쥐가 몸 속에서 변화를 불러왔는지 임신한다. 그 아이가 바로 고아 42다. 얼굴 생김새는 박쥐를 닮았다. 여기서 또 한 명의 임신부가 등장한다. 바로 가시여왕이다. 그녀도 아들을 낳는데 박쥐와 닮았다. 지능이 떨어지고, 인격형성에 문제가 있어 철가면을 씌운 채 지하에 가둔다. 이 이전에 가시여왕이 왕권을 잡기 위해 어떤 행동을 했는지 알려주는 간략한 왕궁 암투사가 흘러나온다. 잔혹하고 참혹한 이야기지만 재미있다. 이 정도 필력으로 왕권 쟁취를 둘러싼 이야기로 장편 소설을 쓴다면 아주 멋진 소설이 나올 것 같다. 살짝 기대해본다.


사실 이 소설에서 줄거리를 요약하고, 누군가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일이 거의 불가능하다. 42를 둘러싼 이야기가 또 다른 아동 학대로 이어지고, 댐이 무너진 순간 그 물길이 지나간 곳은 빈민가였다는 사실은 나의 머릿속 어딘가에서 읽은 듯한 기시감을 불러왔다. 권력은 민심을 잠재우기 위해 희생양을 만들고, 책임을 전가한다. 당연히 그들은 죽고, 죽은 자는 말이 없다. 무너진 빈민가를 재건하고, 상하수도 공사를 제대로 이행해야 하지만 그런 비용이 시에는 없다. 있다고 해도 그런 곳에 쓸 마음이 없다. 이런 사실을 말해도 언론은 입을 다물고 전달하지 않는다. 너무나도 낯익은 장면들이라 어디에서 봤다고 특정하는 것이 힘들다. 작가는 이런 상황들을 이야기 곳곳에 풀어놓았다. 그것을 평가하고 비판하기보다 적나라하게 보여줄 뿐이다.


이야기가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이 이어지는 과정이 상당히 가독성이 좋고 잘 읽힌다. 특정한 주인공이 없다고 해도 순간순간 등장하는 인물들의 사연과 단편적인 이야기들이 시선을 잡아당긴다. 읽다 보면 상당히 많은 주석들이 달린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원전을 그대로 인용하거나 변용한다. 원래 의미를 다르게 이용하는 경우도 있다. 시간이 되는 사람들은 원전을 찾아 비교하는 재미를 누릴 수도 있다. 물론 적지 않은 책들과 시간을 들여야 한다. 중간에 죽은 자들이 등장해서 들려주는 이야기는 <파우스트>의 한 장면을 연상시킨다.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가고일 조각상의 존재와 마지막 장면 등은 카르마란 제목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한다. 예상하지 못한 재미를 가져다주었다. 작가의 다른 작품인 <열등의 계보>에 관심이 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실카의 여행
헤더 모리스 지음, 김은영 옮김 / 북로드 / 2021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우슈비츠의 문신가>의 후속작이란 소개글을 봤다. 그 소설의 주인공이 소련의 굴라크로 가서 겪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역사 상 가장 참혹했던 수용소 두 곳을 연속적으로 경험한 전작의 주인공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궁금했다. 이 생각의 반은 맞았지만 나머지 반은 전작을 읽지 않은 탓에 잘못되었다. 잘못된 것은 전작의 주인공이 굴라크로 가는 것이 아니다. 그 소설 속 한 인물이, 독자들이 궁금했던 실카가 간다. 실카는 나치와 잤다는 단순한 사실 때문에 고향 대신 굴라크로 보내진다. 가까운 곳에서 자세히 보지 않으면 그녀가 누린 삶이 나치에 대한 협조로 보였을 것이다. 이 소설에서 그녀의 삶이 단편적으로 흘러나오는데 전작에서 어떤 역할을 했기에 독자들이 그 이후의 삶에 관심을 가졌을지 궁금하다. 전작을 한 번 읽어봐야겠다.


소설은 실카가 나치와 잠을 잤다는 것으로 유배형으로 받는 것으로 시작한다. 열여섯 소녀가 나치의 폭압적이고 참혹한 힘 앞에 저항하다가 죽지 않았다는 사실에 주목한 결과다. 그녀가 수용소에서 특별한 대우를 받은 것은 예뻤기 때문이다. 이 특별 대우를 거부하고 다른 유대인처럼 가스실에서 죽어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 정도 용기를 내라고 말한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왜 당신들은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지 않고 살아남았는가 하고. 물론 이것은 잔혹한 반문이다. 생존 욕구는 누구에게나 존재하고, 그녀는 어렸다. 보기에 따라 변명처럼 보일 수도 있는 행동들은 누군가에게는 절실한 도움이었다. 최소한 아우슈비츠의 문신가 부부에게는 그랬다.


굴라크에서 15년을 살아야 하는 그녀는 다시 지옥을 마주한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굴라크에서 죽었는지 제대로 된 통계조차 없다. 홀로코스트보다 더 많이 죽었다고 말한다. 그녀가 수용소에 왔을 때 온 몸의 털을 깎는 행동은 아우슈비츠와 비슷했다. 한 번 경험한 일이나 힘들지 않지만 그녀와 기차를 같이 타고 온 소년 조시에게는 부끄럽고 어려운 일이다. 이 수용소는 또 다른 의미에서 참혹한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남자 수용자들이 밤이 되면 여자들의 숙소에 침입해 강간한다. 힘이 쎈 남자가 먼저 찍으면 그녀는 건드릴 수 없다. 실카에게는 너무 낯익은 현실이다. 처녀인 조시에게는 너무 낯설다. 하지만 이 강간이 반복될 때 두 여자가 보여준 반응은 다르다. 실카는 강간에 무감각해지고 무반응으로 일관하지만 조시는 그 강간범에게 감정을 이입한다.


굴라크의 생존 환경은 최악이다. 추위와 배고픔은 언제나 있고, 남자들의 강간은 수시로 일어난다. 간수들이 이것을 묵인하기에 가능하다. 수용소에 갇힌 사람들은 중노동 현장으로 보내진다. 중요한 원료인 석탄을 깨기 위해 땅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나중에 실카가 간호사가 되고, 구급차를 타게 될 때 그 사고 현장을 마주한다. 최악의 경험을 겪었다고 해서 이런 현장들이 쉬울 리 없다. 다른 생명을 구하기 위해 내려갔다가 그녀 자신이 죽을 뻔한 적도 있다. 살고자 하는 욕망으로 가득한 그녀이지만 다른 사람의 죽음에 눈을 돌릴 정도는 아니다. 이 소설의 상당 부분은 실카가 다른 사람들에게 크고 작은 도움을 어떻게 전해주었는지 보여주는 것으로 채워져 있다. 굴라크를 벗어날 기회가 왔을 때조차 그녀는 이 기회를 친구에게 넘긴다.


그녀가 유대인이고, 아우슈비츠에서 어떤 일을 했는지 아는 사람이 같은 막사에 있다. 이 사실을 밝히면 실카는 힘들게 연대를 쌓은 막사 동료들에게 배척받을 수 있다. 이 정보를 쥔 한나는 병원의 약을 요구한다. 약을 주지 않으면 비밀을 폭로하겠다고 협박한다. 몰래 약을 전달한다. 어쩌면 이 행위가 병원에서 그녀를 도와준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행위일지도 모른다. 막사의 동료들은 그녀의 삶이 무너지지 않게 지탱해주는 버팀목이다. 그녀가 병동에서 먹을 것을 들고 와 나눠 주는 것도,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이 감정을 잃지 않기 위해서다. 살고 싶어 저항하지 않았고, 자신만 살아남았다는 고통을 매일 느꼈던 경험이 이런 행동으로 이끌었다.


잔혹하고 참혹한 현장을 자극적으로 묘사하기 보다 간결하게 풀어내면서 실카가 처한 현실과 그 순간을 감정을 표현하는데 집중하고 있다. 어렵고 힘든 환경이지만 뛰어난 학습능력과 공감능력은 예상하지 못한 상황을 만나게 한다. 그녀의 선의가 항상 바르게 작용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방향을 바르게 간다. 그리고 그녀의 눈에 들어온 한 남자는 강간으로 메말랐던 감정에 작은 싹을 틔운다. 이 소설은 거대한 참혹함과 비극 속에 작은 희망을 보여준다. 혼자 살아남기보다 같이 살아가기를 선택한 그녀의 삶은 통속적으로 다가올 정도다. 쉽지 않은 선택들이다. 용기와 굳센 의지와 행동력이 없다면 불가능하다. 아우슈비츠와 다른 지옥 속에서 그녀는 선의를 만나고, 그 선의를 바탕으로 희망을 씨앗을 뿌리고, 작은 꽃을 피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