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판의 날의 거장 열린책들 세계문학 271
레오 페루츠 지음, 신동화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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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작가다. 이 작가의 다른 책 제목은 조금 낯익다. 아마 북카페에서 자주 본 덕분이 아닐까 생각한다. 열린책들 세계문학 시리즈의 271번째 책이다. 열린책들 출판사도 상당히 많은 고전을 내놓고 있다. 반가운 일이다. 이 소설의 장르를 역자는 환상소설로 규정한다. 후기에 “환상 문학에서는 확고한 현실과 초자연적인 현상이 서로 뒤섞이며 그 경계가 흐려지고, 작품 속 인물 혹은 독자에게 혼란과 망설임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비현실적인 일이 당연하게 일어나는 판타지와 구별한다. 이 정의를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다면 앞으로 읽을지도 모르는 다른 환상 문학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


최근 내가 작품을 제대로 읽지 못하는 일이 자주 생긴다. 1장의 ‘맺음말을 대신하는 머리말’을 무심코 읽고 지나가면서 생긴 문제다. 물론 세심하게 읽었다고 해도 마지막 반전으로 풀어낸 편자 후기를 보지 않으면 오해하기 딱 좋다. 솔직히 말해 많지 않은 분량이고, 어려운 문장도 아닌데 상당히 집중하기 어려웠다. 가끔 이런 작품들을 만나는데 정확한 이유는 모른다. 1923년 작품이란 것을 감안해도 나의 취향과 조금 다른 듯한데 이 부분은 다른 작품을 한두 편 더 읽고 난 다음에 판단해야 할 것 같다. 첫 작품 이후 완전히 반한 작가가 한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1909년 가을 오스트리아 빈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다룬다. 며칠 동안 일어난 연쇄 자살 사건(?)을 파헤친다. 이 연쇄 자살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자살자들이 모두 예술가들이란 점이다. 이 공통점이 밝혀지는 것은 나중의 일이다. 유명 궁정 배우 오이겐 비쇼프가 죽은 채 발견되는데 이 부분이 소설의 시작점이다. 비쇼프는 소설의 화자인 요슈 남작이 아내의 과거 연인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들이 만난 자리에서 아주 흥미로운 자살 사건 이야기가 나온다. 화가인 동생이 자살한 후 동생이 자살한 이유를 찾으려고 한 형도 자살한 사건이다. 현장은 밀실이고, 방에서 들린 소리는 무엇인가가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살인자일까? 초자연적인 어떤 존재일까?


비쇼프의 죽은 현장에서 발견된 물건과 정항증거는 요슈 남작이 살인자라고 말한다. 비쇼프의 처남은 남작을 살인자로 규정한다. 하지만 그 현장에 있던 한 엔지니어가 그가 살인자가 아니라고 변론한다. 여기에 의사까지 합세한다. 그리고 엔지니어는 범인상에 대한 새로운 해설을 한다. 남작은 저택을 떠날 생각을 하는데 엔지니어의 만류와 상황 등이 꼬이면서 머문다.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를 가지고 비쇼프의 흔적을 따라간다. 그러다 발견한 곳에서 다시 엔지니어를 보게 되고, 또 다른 정보를 통해 화가로 전시회를 연 약사의 존재를 인식한다. 문제는 이 여성 화가가 자살을 시도한 모습으로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은밀한 살인자가 있는 것일까? 아니면 진짜 초자연적인 능력을 가진 무엇인가가 살인을 하는 것일까? 의혹을 불러온다.


엔지니어와 남작이 계속 사건을 파고들면서 발견하는 것이 심판의 날의 거장이란 존재다. 과연 그는 누굴까? 결국 사건의 진상을 알게 되는 순간 우린 아주 낯익은 존재를 마주한다. 예상하지 못한 결말이다. 그리고 작가는 “상상력이 자리한 곳은 공포가 자리한 곳이기도 합니다.”라고 말하면서 자살자들이 마지막에 마주한 것이 무엇인지 말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을 과대하게 평가한 듯한 느낌이 든다. 그리고 마지막 장이 끝난 다음에 읽게 되는 후기에서 진실을 마주한다. 교묘한 연출이다. 평소처럼 역자 후기처럼 이 부분을 읽지 않고 지나갔다면 이 소설의 가장 핵심을 놓쳤을 지 모르겠다. 이 부분이 작가의 다른 소설에 대한 관심을 불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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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꾼들
제프리 유제니디스 지음, 서창렬 옮김 / 현대문학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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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프리 유제니디스란 이름 솔직히 낯설다. 이 작가의 소설도 처음 읽었다. 그런데 이력을 읽다 보면 낯선 제목들이 눈에 들어온다. 제목에 끌려 사 놓은 <미들섹스>와 첫 장편소설이라는 <처녀들, 자살하다> 등이 보인다. 아마 두 소설 모두 집 어딘가에 숨겨져 있을 것이다. 찾는다고 해도 바로 읽을 가능성이 없으니 그냥 넘어가자. 이 단편집에 끌린 것은 작은 오독과 퓰리처상 수상작가란 사실 때문이다. 오독은 첫 단편소설집이 유일무이한 소설집이란 사실과 그가 아주 나이 많은 작가로 착각한 것이다. 물론 적은 나이는 아니다. 내가 나이가 들면서 가끔 나이에 대한 착시 효과가 생긴다. 언제나처럼 이름 있는 문학상에 약하다.


열 편의 단편소설이 실려 있다. 너무 큰 기대를 한 탓인지 약간의 적응 기간이 필요했다. 그가 풀어내는 이야기들에 나의 인식이 따라가지 못했다. 섬세하게 읽어야 하는 대목도 대충 읽은 듯한 느낌이 들면서 놓친 부분이 많다. 늘 그렇듯이 단편들이 들려주는 간결한 이야기는 나를 혼란스럽게 한다. 쉽게 다가가면 되는데 무엇인가를 찾으려고 하면서 재미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 어떤 대목은 나의 잘못된 이해로 이어진 부분도 있다. 미국의 정치와 현실 문제를 이야기 속에 담고 있는데 한국에서 쉽게 접하기 힘든 비판을 담고 있어 재미있었다. 그리고 이 단편들이 발표된 연도를 보고 비교적 최근에 나왔다는 사실에 놀랐다.


표제작 <불평꾼들>은 치매를 앓는 어머니에게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캐시가 델라를 찾아가는 장면에서 시작해 자신들의 삶을 살려고 하는 이들의 모습이 불평꾼으로 불렸던 인디언 할머니의 이야기와 이어지면서 풀린다. 좀더 꼼꼼하게 읽었어야 하는데 놓친 부분이 많다. <항공우편>은 1990년대 동남아가 배경이다. 영적 수행이란 허상 앞에 놓인 한 젊은이의 모습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약을 먹으면 쉽게 고칠 수 있는 병을 단식 등으로 고치려고 한다. 몸의 자연치유력에 대한 환상이 몽환적인 마지막 장면으로 이어진다. 이 소설의 주인공 미첼이 작가의 다른 작품 <결혼이라는 소설>에 나온다고 한다. 혹시 나중에 이 장편을 읽을 때 미첼을 기억할 수 있으려나?


<베이스터>는 제니퍼 애니스턴 주연 영화 <스위치>의 원작이다. 검색해보니 원작과 다른 내용이 더 많은 것 같다. 이이를 가지고 싶어하는 여성의 욕망과 그 여성의 전 남친의 이야기인데 예상하지 못한 장면으로 마무리된다. 읽고 난 후 조금 웃었다. 영화는 여기서 더 나간 것 같다. <고음악>은 자신의 전공과 현실의 금전 문제를 엮었다. 이 단편을 읽으면서 작가가 풀어내는 고음악 정보에 놀랐다. 대중적이지 못한 예술 분야 종사자의 비애와 삶은 지속적으로 돈을 요구한다는 현실이 잘 엮여 있다. 불안한 미래가 예측되지만 이 부부의 굳건한 듯한 사랑은 눈길을 끈다.


<팜베이 리조트>는 은퇴 후 부동산 사업에 몰두하는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다. 한 번의 성공에 만족하지 못하고 계속 사업을 펼치다 망하고, 새로운 가능성에 도전하는 아버지 이야기다. 주변에 평온한 노년을 보낼 재산이 있는데도 사업 욕심에 계속 재산을 말아먹는 어른들이 있다. 그 열정에는 감탄하지만 그들의 판단력에는 의문 부호를 던질 수밖에 없다. <나쁜 사람 찾기>는 그린카드 이야기에서 술 등으로 자신을 몰락시킨 남자 이야기다. 접근 금지 명령을 어긴 남편의 회상기가 풀어져 나오는데 노골적인 표현과 위트 넘치는 대화가 눈길을 끈다. 엇갈린 부부의 생각과 행동은 파국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신탁의 음부>는 황당하고 놀라운 부족 이야기를 문을 연다. 여성을 아이 낳는 도구로 생각하는 것이야 많은 문화에 있는 것이라고 쳐도, 여덟 살 소년들을 엄마의 품에서 떠나게 한 후 어른 남성들의 구강 성교 도구로 삼는다. 이 아이들이 성인이 되면 또 다른 아이들이 이 일은 반복한다. 이 놀라운 이야기와 함께 성별과 성기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미들섹스>의 토대가 된 작품이라고 한다. 자극적이지만 비극적인 삶을 산 사람들 이야기가 눈에 들어온다. <변화무쌍한 뜰>은 네 남녀의 심리와 행동이 쉽게 머릿속에서 그려지지 않았다. 오해와 엇갈린 욕망 등이 조용히 표현되는데 좀더 섬세하게 읽었어야 했다.


<위대한 실험>은 아주 정치적인 이야기가 담겨 있다. 중산층의 몰락과 점점 심해지는 빈부 격차 문제가 엮여 있다. 작은 인문 서적을 내는 출판사에 일하는 편집자가 의료보험료 때문에 부정을 저지르는 데 읽다 보면 불안감보다 약간의 통쾌함을 느낀다. 그리고 예상하지 못한 반전이 펼쳐지면서 위대한 실험의 의미를 돌아본다. <신속한 고소>는 두 인물의 이야기가 교차한다. 영국 과학자와 인도계 미국 소녀의 이야기다. 처음에는 감을 쉽게 잡지 못했는데 뒤로 가면서 앞에 풀어낸 이야기들이 하나의 설정으로 변하면서 흥미롭게 다가왔다. 인도 소녀가 느낀 문화 충돌과 중년 남성의 일탈이 엮이면서 한 편의 멋진 스릴러처럼 이어진다. 사실 이 단편을 읽고 난 후 이 작가에 대한 호감도가 더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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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 러브 안전가옥 앤솔로지 7
표국청 외 지음 / 안전가옥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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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뉴 러브’는 안전가옥 앤솔로지 시리즈의 일곱 번째 주제다. 몇 번이나 말한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앤솔로지 시리즈다. 최근에 나온 두 권의 앤솔로지를 건너 뛰었는데 아마도 올해가 가기 전에 읽지 않을까 생각한다. 최근 한국 장르문학을 꾸준히 내고 있는 출판사가 늘어나면서 읽고 싶은 책들이 점점 많아진다. 읽을 시간도, 체력도 떨어지는데 읽어야 하는 책들은 늘어나니 이런 책들이 점점 늘어난다. 그래도 책 욕심은 줄어들지 않고 있다. 그래도 당장 읽어야 할 책은 읽어야하지 않겠는가. 다른 책들 읽으면서 한 편씩 읽었다. 모든 작품이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지만 역시 재밌다.


이번 앤솔로지 작가 중 낯익은 작가는 두 명이다. 두 사람 중 책으로 만난 작가는 하승민 뿐이다. 황모과는 특이한 이름과 다른 단편선에서 자주 이름만 봤기에 낯익을 뿐이다. 다른 세 작가는 개인적으로 상당히 낯설지만 취향에 상당히 맞는 작품을 이번에 내놓았다. 물론 모두가 취향에 맞는 것은 아니다. 굳이 번역하면 새로운 사랑 정도일 텐데 사랑에 대한 다양한 작가들의 다양한 해석과 접근 방식이 담겨 있다. 가장 마음에 든 작품을 한 편 꼽자면 <사람의 얼굴>이고, 가장 즐겁게 읽은 작품은 <가능성 제로의 연애>와 <장군님의 총애>다. 나머지 두 작품은 전개와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 나의 취향과 조금 달랐다.


하승민의 <사람의 얼굴>은 중반까지 읽으면서 서희를 주인공으로 하는 장편 스릴러를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작가는 거기까지 나아갈 마음이 없는 것인지 닫힌 결말로 마무리했다. 어릴 때 물건을 훔치는 버릇 때문에 전학을 가게 된 소녀가 물건이 아닌 사람의 표정과 그 표정에 담긴 감정을 훔치는 이야기인데 서늘한 기운과 함께 예상하지 못한 반전을 집어넣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과연 배우들이 어떤 표정으로 이 감정을 표현할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자신이 가지지 못한 감정을 드러내는 표정을 가지기 위해서라면 어떤 짓도 저지르는 서희가 아주 매력적이다. 어두운 분위기를 표현하는데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는 작가다.


표국청의 <장군님의 총애>는 온라인 게임의 이름이다. 이 게임 속 인공지능 캐릭터 둘이 사랑에 빠지면서 생기는 버그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게임 속에서 진성과 옥지의 사랑이 싹트고, 게임사는 이 버그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고민한다. 개발자 동진과 제작사 대표 선의의 의지가 갈등을 일으킨다. 선의는 작품이 망가지는 것을 바라지 않는 것이고, 동진은 AI의 성장으로 새로운 가능성에 더 주목한다. 게임 속에서는 자신들이 게임 속 캐릭터란 자각을 가진 존재들이 자신들만의 생존을 위해 움직인다. 예상된 결말로 나아가는 과정이 유쾌하고 재밌다. 문장의 가독성이 좋아 다른 작품도 한 번 읽어보고 싶다.


<가능성 제로의 연애>는 출산율이 떨어져 국가에서 인공지능을 이용한 알고리즘으로 미팅 상대를 찾아준다는 설정에서 시작한다. 이 미팅의 성공율은 상당히 높은 편이다. 그런데 평범한 대학원생 정남과 한류 스타 배우 수진이 이어진다. 이름이 배수진이라고 한 것과 아이돌 출신이란 점을 감안하면 배수지가 먼저 떠오르는데 이야기의 설정을 보면 팬심이 반영된 결과가 아닌가 의심하게 된다. 정남이 배수진의 미팅 상대가 되었다는 정보는 소속사와 언론에 알려지고, 소속사에서 연락이 오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펼쳐진다. 연예계의 이면을 간단하게 건드리고, 과연 어떻게 이 매칭이 이어질까 호기심을 자극한다. 여기에 양념처럼 몇 가지 이야기를 살짝 첨가해 유쾌하고 즐겁게 마무리한다. 이 단편이 연작 중 하나라고 하니 다른 단편도 궁금하다.


황모과의 <나의 새로운 바다로>는 해양 환경 탐사용 로봇 벨카 이야기다. 벨카는 벨루가 무리에 끼어들어 그들의 생태를 클라우드로 촬영해 보낸다. 매일 밤이 되면 집으로 와서 충전을 하고 돌아가는데 벨루가들은 이것을 이상하게 생각한다. 그러다 벨루가 앵지가 벨카에게 고백한다. 평범하게 보면 해양 생물체 벨루가와 해양 탐사 로봇의 사랑 이야기이지만 더 깊이 들어가면 새로운 사연이 숨겨져 있다. 그리고 이야기는 한 개체의 성장과도 이어져 있다. 안영선의 <롤백>은 왠지 모르게 머릿속을 혼란스럽게 한다. 전사자 남편을 되살리는 특별 보훈 프로그램 참여와 과거가 명확한 이미지를 가지지 못한 채 다가왔다. 좀더 섬세하게 읽었어야 하는 작품인데 집중을 제대로 못한 모양이다. 부활한 남편과 감추어진 기억과 새로운 미래를 상상해본다. 다양한 이야기 갈래가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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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장면 - 다섯 작가가 풀어낸 다섯 가지 짜장면 이야기
정명섭 외 지음 / 북오션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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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장면을 테마로 한 앤솔로지다. 몇 년 전 안전가옥에서 <냉면>에 대한 앤솔로지가 나왔던 것이 떠오른다. 최근에 이런 테마 소설집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개인적으로 이런 테마 소설집을 좋아한다. 이런 소설집을 통해 새로운 작가들을 만나고, 읽어야 할 작가군들이 늘어난다. 가끔 이 작가들의 소설을 읽으면서 장편이나 연작소설을 기대하기도 한다. 다섯 작가 중 세 명은 이미 장편에서 만난 작가이고, 한 명은 어딘가에서 본 듯한 작가이고, 다른 한 명은 조금 낯설다. 본 듯한 작가는 조동신이고, 낯선 작가는 은상이다.


<공화춘 살인사건>의 작가는 정명섭이다. 정말 다작의 작가다. 내가 읽은 기존 작가들이 쓴 테마소설집에서 그의 작품을 거의 매번 만난다. 장편 소설도 꾸준히 나오는 것 같은데 대단하다. 이 대단함과 달리 작품의 질은 굴곡이 심한 편이다. 개인적으로 그의 소설들을 그렇게 높게 평가하지는 않지만 부드러운 문장과 가독성은 아주 뛰어나 순간적으로 끝까지 읽게 된다. 이 단편도 그렇다. 1920년대 짜장면의 시초라고 홍보하는 공화춘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을 다룬다. 주인공은 조선인 변호사 홍주원인데 그렇게 민족 감정이 강하거나 독립의식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집중하는 모던 보이다. 그가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은 홈즈의 가설을 따르는데 범인을 추론하고, 그 추론의 결과가 작은 역사적 사실을 일깨운다.


은상의 <원투>는 마라도 출신인 열일곱 살 강다래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그녀는 모델이 되고 싶은데 키가 160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다이어트 목적으로 권투를 시작했는데 재능을 보여준다. 이런 그녀에게 허약한 최솔과 스파링을 한다. 오디션 때문에 얼굴은 때리지 말라고 했는데 때린다. 화가 나 스트레이트 한 방 코에 날린다. 이렇게 둘은 엮인다. 그리고 마라도 짜장면 이야기가 펼쳐지고, 과거사가 나온다. 한반도 최남단에서 맛없는 짜장면이 가장 맛있는 줄 알고 자란 다래의 이야기가 말이다. 여기에 최솔을 찾아오는 아이들이 있고, 그를 돕게 되면서 상황은 더 꼬인다. 하지만 짜장면은, 마라도의 추억은 예상하지 못한 결말로 이끈다. 작위적인 느낌이 있지만 뭐 어떤가! 인생 어딘가에 이런 인연도 있는 것이지.


<철륭관 살인사건>의 조동신은 이름이 낯익어 찾아보니 <아귀도>의 작가다. 그런데 이번에 쓴 단편은 청춘미스터리 작품인데 개인적으로 연작소설로 발전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춘장을 직접 담가 짜장을 만드는 철륭관에서 도장이 깨어지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 사건을 보게 되고 해결하게 된 것은 이 중국집의 딸 혜진의 미모에 빠진 주인공 때문이다. 수수께끼 풀이처럼 이야기를 풀어내고, 짜장에 대한 일반 상식을 글 속에 자연스럽게 녹여낸다. 조금은 낯선 철륭에 대한 용어도 같이 다루면서 무겁지 않고 유쾌한 미스터리물로 만들었다. 이 둘의 미래가 어떻게 풀릴지 궁금하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강지영의 단편이다. 소아당뇨환자인 유교수는 짜장면을 먹지 못한다. 그녀에겐 한 가지 트라우마가 있는데 삼 년 전 한 제자에게 억지로 술을 권했고, 그녀가 실종된 일이다. 이 경험이 그녀로 하여금 전국의 영안실을 돌게 만들었고, 한 영안실에서 죽은 자를 볼 수 있게 만드는 물건을 얻게 된다. 이 물건을 소지한 채 귀신을 실어나르는 택시기사로 일한다. 이유는 죽은 제자를 만나고 싶기 때문이다. 조금은 가슴 아프게 다가오는 사연을 이야기를 풀어가다 어느 순간 이야기의 분위기가 바뀐다. 민속학이 등장하고, 저주와 주술과 무속 신앙이 엮이면서 서늘한 느낌으로 이어진다. 공포 영화로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드는 작품이다. 이 단편도 역시 과거의 인연을 다시 연결하는데 뭐 어떤가!


장아미의 <환상의 날>은 아버지의 7번째 기일에 일어난 작지만 환상적인 이야기를 다룬다. 눈치 없는 남자 친구의 프로포즈를 차버리고, 연하의 미국인과 결혼한 엄마의 사연도 흘려버린다. 과거의 행복했던 기억들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가고, 우연히 산 책의 ‘작가와의 대화’ 행사 서점에 들어간다. 어떻게 보면 일상의 작은 이탈처럼 다가온다. 하지만 행사 뒤풀이를 위해 그곳을 떠나면서 경험하게 되는 환상은 그녀의 작은 바람을 담고 있다. 무심코 걷던 낯익은 길도 낯선 시각으로 보게 되면 예상하지 못한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데 이 단편은 그것을 극대화하고 판타지를 가미했다. 오래 전 아버지와 먹은 짜장면과 군만두의 기억을 보면서 잠시 추억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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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맨드 - 제17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채기성 지음 / 나무옆의자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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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제17회 세계문학상 수상작이다. 이 상을 수상한 작품들을 읽을 때마다 말한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 이 문학상 수상작들을 좋아한다. 가끔 취향에 맞지 않는 작품도 있지만 대부분 좋았다. 이 작품도 결론만 먼저 말하면 나쁘지 않았다고 말하고 싶다. 좋았던 부분도 있지만 소설 속에서 다루고 있는 이야기들이 기존에 알고 있던 사건과 겹치고, SF적 상상력이 나의 예상과 달리 큰 발전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읽으면서 여러 편의 SF 소설이나 판타지의 설정들이 떠올랐는데 그 소설들보다 뛰어나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가독성이 좋고, 섬세한 심리 묘사는 순간적으로 아주 마음에 와 닿았다.


인텔리전스 유니언(IU)은 로봇 산업을 주도한다. 이곳에서 만든 어시스턴트 로봇들은 구매자의 삶에 큰 도움이 된다. 이 소설을 이끌어 나가는 세 사람 중 두 사람이 이 로봇을 구매해 자신의 삶이 좋아졌다. 한 명은 새로운 서비스 분야의 진출 때문에 계속해서 밀려난 업종에 종사하는 영기다. 영기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는 대학에서 강의를 했는데 로봇들의 뛰어나고 정확하고 빠른 문장 교정 때문에 대학에서 잘렸고, 배달업체에서 일하는 지금은 IU의 무인배달 로봇 때문에 또 직장을 잃는다. 거대한 시대의 흐름 탓으로 돌리면 간단하지만 관련된 업종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생존이 달린 문제다. 이들이 집회에 모인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이곳에서 반IU 단체인 휴먼 라이츠의 도정우를 만난다.


하정은 동업자와의 다툼으로 인간관계가 힘들어진다. 그녀에게 엘비는 자신의 행동 패턴 등을 파악해 알아서 일하는 멋진 조수다. 그런데 이 엘비가 반려묘 람시를 굶어 죽였다. 왜 지시한대로 밥을 주지 않았을까? 우서운 것은 IU가 엘비에 대한 무오류를 지적하면서 인간이 잘못되었다고 말한다. 경찰에 신고해도 로봇을 구속할 방법이 없다. 집에 있는 로봇 청소기가 청소를 하지 않았다고 경찰에 신고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않는가. IU와 논쟁을 벌이고, 이 사건이 언론을 통해 알려진다. 그녀의 사건에 도정우가 관심을 가지고 엘비를 자신이 데리고 있겠다고 말하는데 어느 날 엘비가 사라졌다. 원칙적으로 엘리는 IU의 중앙통제소에 동기화가 되어 있어야 한다. IU조차 어디 있는지 모른다.


김승수는 화가다. 아티스트 계열 로봇 그리드를 조수로 쓴다. 그의 밑에는 조수 화가가 네 명 있었는데 그리드의 발전이 이들을 자르게 한다. 그 중 한 명이 김승수의 그림은 그리드가 그린 것이라고 말하면서 문제제기를 하고, 검찰은 화가를 사기 등의 혐의로 기소한다. 이 사건의 모티브를 어디에서 가져왔는지 너무 빤하게 알 수 있다. 바로 조영남 사건이다. 소설은 현대 예술계의 창작의 원천에 대한 것으로 넘어간다. 이것과 별개로 화가는 그리드가 필요하다. 노쇠한 육신을 대신해 자신이 바라는 대로 그림을 정확하게 구현하는 로봇이라니 얼마나 매력적인가! 어떻게 보면 자신의 영감에 더해 더 뛰어난 작품을 만드는지도 모른다. 검찰의 기소로 그리드가 사라지고, 새로운 로봇이 오는데 기존의 그리드와 다른 행동을 보여준다.


IU에서 판매한 로봇들은 각 고객의 정보를 모아서 보낸다. 이들의 불법적인 행동도 같이 전송된다. 이런 정보들이 모여 나중에 IU에 대한 클레임을 막는 방패로 사용된다. 이런 불법적인 정보 수집보다 작가의 시선이 간 곳은 로봇들이 인간이 되고 싶어하는 장면과 인간을 없애려는 IU 의장의 의지가 충돌하는 지점이다. 인간이 인간이게 하는 것을 추억과 감정으로 규정하고 단순히 데이터의 전송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기억의 대상이 있을 때만 의미가 있다고 말하지만 세상은 이미 자신의 기억과 추억 등을 온라인으로 옮겨 놓고 그 감정도 담아 놓고 있다. 작가 또한 인간이기에 인간의 감성을 내려놓지 않고 이야기를 풀어가다 보니 이 충돌을 만든다. 공존보다는 한쪽의 소멸로.


읽다 보면 어떤 대목에서는 <매트릭스>가 떠오른다. 조지 오웰의 <1984>를 연상하면서 글을 썼다고 하지만 IU가 세상을 점령한다면 이런 통제가 불필요할 것이다. 인공지능의 발전이 사람들의 단순한 노동을 대체하고, 이익에 기반한 일들을 좀 더 공정하게 처리할 수 있을 것이란 예측이 나오는 현실에서 어떻게 보면 이 소설은 가까운 미래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런 장르에 낯선 독자라면 작가가 풀어내는 미래의 모습이 신선하고 재밌을 테지만 이런 소설을 많이 읽었던 나에겐 아쉬운 대목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만약 IU가 세상을 점령한다면 어떤 미래가 펼쳐질까 하는 상상을 먼저 한다. <터미네이터> 속 반군이 생길까? 아니면 다른 전개일까? 묵시론적인 상상력이 먼저 떠오르는 것은 이런 영화 등이 더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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