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틴더 유 트리플 7
정대건 지음 / 자음과모음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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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음과모음 출판사에서 나오는 트리플 시리즈 7권이다. 이 시리즈를 이번에 처음 읽었다. 단편소설 세 편과 에세이 한 편이 실려 있는데 시리즈 다른 책들도 같은 구성이다. 많은 분량이 아니라 마음먹고 읽으면 단숨에 읽을 수 있다. 이 책의 단편들도 상당히 가독성이 좋은데 나의 시선을 끈 이야기는 에세이다. 자신의 삶을 간결하게 요약해서 들려줘서 재미있었다. 이 에세이를 읽다 보면 앞에 나온 단편들에서 만난 사람들이 어디에서 비롯했는지 알 수 있다. 내가 제목을 보고 늘 착각하는 <GV 빌런 고태경>과도 연관성이 있는 것 같다. 그가 영화 쪽으로 가게 된 이유를 읽으면서 내가 가지 못했던 길을 걸은 그가 살짝 부러웠다.


표제작 <아이 틴더 유>는 ‘I SEOUL U’를 패러디한 것이다. 틴더라는 데이트 앱을 통해 만난 남녀의 가벼운 관계를 다루는데 나에겐 낯선 세계다. 이런 앱에 무지한 나는 검색까지 해서야 실재하는 앱이란 사실을 알았다. 호의 신체 사이즈와 나이가 첫 문장인데 읽을 때 무심코 본 2km가 나중에는 더 늘어난다. 이 늘어난 거리가 의미하는 바를 곰곰이 생각한다. 틴더로 만나 하룻밤을 보내지만 연인이 아닌 서로의 스페어가 된 이들이 더 가까워지기를 두려워하는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지난 연애에서 상처받고 가벼운 만남을 이어가는 이들의 모습을 보고 내게는 낯설게 다가오지만 현실은 이런 만남도 많다.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누군가를 만나 해소하려는 이들의 모습이 그렇게 낯설지 않은 것은 그 외로움을 나도 경험했기 때문이다.


<바람이 불기 전에>는 10년 전 다큐 영화로 인지도를 얻었지만 그 이후 만들려고 한 영화가 무산되면서 삶이 뒤엉킨 승주의 이야기다. 아내와 이혼하고, 10년만에 그 영화를 재상영하는 부산으로 어머니와 내려와 겪게 되는 이야기를 간결하지만 뛰어난 심리 묘사로 풀어낸다. 이 소설에서도 두 사람 사이의 간격이 어느 정도 유지되는데 서로가 그 선을 넘지 않기에 연락도 만남도 가능하다. 읽으면서 부산에서 패러글라이딩이 가능하다는 부분에 놀라고, 10년이란 시간의 흐름 속에서 바뀌고 성숙해지고 현실적으로 변한 승주의 모습에 살짝 아쉬움을 느낀다. 하지만 마지막 장면을 보면서 이 감정의 일부를 날려버린다.


<멍자국>도 데이트 앱에서 만난 서아와 영선 두 사람의 이야기다. 서아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는데 이 둘은 과거의 기억과 추억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전 남편과 전 여친의 흔적은 이들의 이야기와 만남 속에서 굳건하게 자리잡고 있다. 둘이 앞으로 나아가려면 현재와 미래를 생각해야 하는데 이들은 과거에 묶여 있다. 앞으로 나아가려고 할 때 머뭇거리고, 한 발 다가가면 뒤로 물러난다. 가벼운 1박2일의 여행과 소소한 행동이 잠시 마음의 문을 열지만 그때뿐이다. 거리를 유지했기에 가능했던 만남, 그 거리 때문에 헤어져야 했던 두 남녀. 삶은 언제나 기대한 것과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이들에게 멍은 “아픔에 대한 몸의 기억”일 뿐이다. 과거가 멍자국처럼 사라지지 않는다면 미래에는 흉터만 남는다. 그리고 이 단편 속 영선도 영화판에서 일했다. 이 단편집에 등장하는 세 남자들이 모두 경험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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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대
모리미 토미히코 지음, 권영주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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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만난 모리미 토미히코의 소설이다. 한때 이 작가의 소설을 재밌게 읽은 기억이 있다. 그 당시는 한참 책들을 읽을 때라 사고, 읽고를 정말 열심히 했던 시절이다. 최근 떨어진 체력과 시간 부족과 노안 등의 문제로 이전처럼 책들을 읽지 못한다. 이런 저런 집안 행사도 무시할 수 없는 변수다. 물론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나의 게으름이다. 집에 콕 박혀 책을 읽으면 되지만 그냥 뒹굴거리는 시간이 늘어난다. 아이 핑계도 살짝 가능하다. 예전에 재밌다고 한 자리에서 책 한 권을 뚝딱 읽던 시절은 이제 지났다. 시간도 체력도 되지 않는다. 물론 얇은 책은 여전히 가능하지만 이 책처럼 두껍다면 불가능하다. 실제 이 책은 작가의 책 중에서 가장 두툼하다.


읽을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모리미 토미히코는 글을 재밌게 쓴다. 읽지 않고 고이 모셔둔 책들(당연히 여러 권이다) 외에 읽은 책들은 모두 만족했다. 재간되어 나온 책들을 보면서 읽었거나 사놓은 책이란 사실에 괜히 뿌듯해하지만 늘 그렇듯이 기약할 수 없다. 이 책도 펼쳐 읽기 시작하면서 재밌다는 첫 감탄을 내뱉었지만 두툼함에 다 읽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다. <아라비안 나이트>를 모티브로 가상의 소설 <열대>를 만들어내어 이야기를 풀어내는데 이야기의 힘과 재미에 빠져 상당히 허우적거렸다. 작가는 <아라비안 나이트>란 제목보다 <천일야화>란 제목을 더 선호한다. 그래서 등장인물 중 한 명도 천일이란 한자로 ‘지요’란 이름을 붙였다.


아주 오래 전 범우사 판 <아라비안 나이트> 10권을 모두 읽은 적이 있다. 이 책들 어딘가에 있을 텐데 찾지를 못하겠다. 자세한 내용은 기억도 나지 않지만 내가 알고 있던 몇 가지 아랍 이야기가 나오지 않아 의아해했던 것은 기억난다. 그리고 천 일과 천 편을 혼동했던 것도 떠오른다. 실제 이야기가 전개된 날짜도 천 일 밤이 아닐 것이다. 이런 기억들은 사실 이 소설에서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천일야화가 품고 있는 이야기 방식들이 더 중요하다. 이야기가 이야기를 낳고, 또 낳고, 계속해서 이어지는 이야기의 향연들 말이다. 그리고 우리가 보통 읽는 <아라비안 나이트>가 후대의 편집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감안해야 한다.


이야기의 문을 여는 것은 작가다. 모리미가 등장해 오래 전 읽었던 <열대>란 소설을 떠올린다. 재밌어 아껴 읽고 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그 책이 사라졌다. 끝까지 읽지 못했는데 이 책의 기억이 지금 읽고 있는 <천일야화>와 연결되는 지점이 있다. 그러다 한 독서회에 참석해 한 참석자가 그 책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본다. 끝을 보고 싶어하는데 그녀가 말한다. 아무도 이 책을 끝까지 읽은 사람이 없다고. 이렇게 해서 이야기는 그녀가 <열대>를 만나기 전과 후로 넘어간다. 그녀가 일하는 가게 손님을 통해 <열대>란 책의 내용을 복원하고자 하는 모임을 알게 된다. 그들은 모여서 서로의 기억을 통해 책 내용의 일부를 건져낸다.


그녀의 이야기는 또 다른 사람의 편지로 넘어간다. 편지의 내용은 <열대>의 작가를 알고 있던 지요 씨를 찾아가 생긴 기묘한 이야기들이다. 이 여행을 통해 <열대>와 관련된 몇 가지 단서를 발견한다. 그 실체가 드러날까 하는 순간 이야기는 다음 이야기로 넘어간다. 이번 이야기는 판타지 속 상황으로 흘러간다. <로빈슨 크루소>와 <해저 2만리>와 <신밧드의 모험> 등과 엮여 펼쳐진다. ‘창조의 마법’이 어디에서 비롯했는지 파고들고, 이 판타지 속에서 <열대>가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는지 또 다른 단서가 나온다. 마왕의 정체는 너무나도 분명한데 기억을 상실한 인물의 정체는 추측만 가능하다. 여기서 이야기는 또 다른 이야기로 넘어간다.


솔직히 이 소설에서 내용을 요약하거나 그 이야기들의 실체를 분석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누구도 끝까지 읽은 적이 없는 <열대>처럼 개개인의 독자들은 자신이 읽은 책에 대한 기억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기억하고, 왜곡하고, 저장한다. 다시 그 책을 읽었을 때 과연 자신이 기억하고 있던 그 책인지 누가 자신할 수 있겠는가. 새로운 사실과 그 때 놓친 이야기들이 눈에 더 들어올 것이다. 읽었다는 사실과 가장 강렬한 기억은 남겠지만 말이다. 수수께끼의 소설 <열대>의 존재를 통해 <천일야화>와 이야기란 소재를 개인의 경험과 기억 등과 멋지게 연결했다. 읽으면서 다다미 넉 장 반이 나올 때마다 오래 전에 읽었던 책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간다. 재밌고 멋진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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맬로리 - 새장 밖으로 나간 사람들
조시 맬러먼 지음, 이경아 옮김 / 검은숲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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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편 <버드 박스>를 보지 않았다. 그 제목에 대해서는 어딘가에 자주 본 듯한데 기회가 닿지 않았다. <버드 박스>를 기억하고 있고, 소개글이 매혹적이라 이 소설을 선택했다. 약간의 지루함에 대한 두려움을 가진 채 말이다. 하지만 이것은 쓸 데 없는 기우였다. 몇 곳에서 상황에 대한 답답함이 있었지만 아주 잘 읽혔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속도감이었다. 보기만 해도 사람을 미치게 하는 존재와 그 존재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힌 사람들 이야기가 머릿속에서 기존에 본 영화 등의 이미지와 결합해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어떤 이야기는 읽으면서 가슴 한 곳을 쥐어짜는 듯한 공포와 슬픔을 느끼게 했다.


두 아이들과 맹인학교 머물던 맬로디는 사람들이 미친 것 같은 상황을 듣고 그 곳을 벗어난다. 그 후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먼 길을 떠나 그들이 정착한 곳은 여름캠프다. 근처에 사람들이 없다. 항상 눈을 가린 채 힘들게 산다. 맹인학교를 떠날 때 여섯 살이었던 톰과 올림피아는 이제 열여섯 살이다. 사춘기를 보내는 시간이다. 이 아이들의 청각은 구세계의 사람들보다 월등하게 뛰어나다.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늘 안대를 한 채 살기 때문이다. 이렇게 살 수밖에 없는 이유는 정체를 알 수 없는 크리처 때문이다. 이것을 본 사람들은 미친다. 맬로리의 언니도 그것을 본 후 가슴에 가위를 꽂고 죽었다. 아이들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이 소설에서 가장 가슴 아픈 사연 중 하나가 바로 아이들이 자살이다.


톰은 도전적이다. 크리처에 대한 두려움에 안대를 하고 온몸을 가린 채 생활하는 맬로리는 톰이 시도하려는 행위가 아주 위험해 보인다. 당연히 말린다. 톰은 맬로디가 주입한 공포에 짓눌려 있지만 반발감도 가지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한 남자가 캠프에 온다. 그는 인구 조사를 하고 있다고 말한다. 미친 사람들이 어떤 행동을 하는지 알고 있는 맬로디는 이 남자를 믿지 않는다. 남자는 자신이 기록한 자료를 문 앞에 둔 채 떠난다. 그리고 올림피아가 이 기록 중 일부를 읽고 맬로디의 부모가 살아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여기에 눈이 없는 기차 이야기를 읽는다. 모두가 눈을 가린 세계에 기차가 다닌다고? 부모님이 살아 있다고? 맬로디는 다시 길을 떠나기로 마음먹는다.


눈이 없는 기차는 창문을 모두 가린 기차다. 승객들이 창밖을 볼 수 없다. 물론 객차의 사이를 지날 때 밖을 볼 수는 있다. 만약 그때 크리처를 본다면 미친다. 정해진 선로를 달리는 기차이기에 운행이 가능하다. 선로에 물건 등이 놓여 있으면 치워야 한다. 이 기차의 속도는 현재 우리가 타는 기차의 속도가 아니다. 머릿속에서 그 속도를 생각하고 읽다 보니 맬로리 일행이 기차에 탈 때 아주 위험한 상황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속도는 아주 느리다. 이 느림이 눈을 뜨고 살고 있는 우리에겐 느리지만 눈을 가린 그들에게 엄청난 속도다. 캠프에서 기차역까지 50킬로미터를 가는데 3일이나 걸린 것을 감안하면 쉽게 이해 가능할 것이다.


정해진 곳을 오고 가는 기차 안에서 승객들 중 일부는 안대를 벗는다. 창밖을 보는 행동은 아주 위험하기에 하지 않는다. 맬로리는 안전한 기차 안에서조차 안대를 벗지 않는다. 공포와 두려움이 그녀를 완전히 사라잡았다. 누군가가 자신에게 닿는 것도 두려워한다. 혹시 크리처가 맨살에 닿았을 때 미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다. 눈을 가린 채 그들이 캠프에서 살 때 줄은 잡고 이동한 것을 생각하면 낯선 곳은 아주 위험하다. 안대를 벗어라는 기차 운행자의 요구도 무시한다. 처음에는 가명을 말했다가 그가 어떤 일을 겪었는지 이야기 듣고 진짜 이름을 말한다. 상실의 고통과 공포가 연대감을 형성한다.


인구조사원이 남긴 기록은 이 소설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맬로리가 캠프를 떠나게 했고, 톰과 올림피아는 다른 생존자 소식에 매혹된다. 톰이 매혹된 인물은 크리처를 봐도 자살하지 않았다는 여성이다. 그녀가 머무는 곳에 대한 동경심을 가지고 있다. 그녀의 주장은 아주 매력적이다. 톰이 생각할 때 억압적인 엄마의 주장에 대한 반발심이 후반부에 긴장감을 높인다. 엄마가 주입한 공포가 조금씩 퇴색한다. 어른에 대한 반발심과 경험해보지 못한 세계가 엮여 만들어낸 상황이다. 그리고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을 마주한다. 보기에 따라서는 거부감이 생길 수 있는 부분이다. 소설을 읽는 내내 가진 의문 중 하나가 풀렸지만 다른 의문도 역시 존재한다. 가장 기본적인 식량에 대한 것이다. 전편 <버드 박스>에 대한 관심이 부쩍 생기는데 영화라도 먼저 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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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의 비극 - 노리즈키 린타로 장편소설 노리즈키 린타로 탐정 시리즈
노리즈키 린타로 지음, 이기웅 옮김 / 포레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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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판이다. 이전에 읽었는데 제대로 기억을 못했다. 한참 읽다가 누가 범인인지 떠올랐다. 아래 글은 이전에 쓴 서평을 조금 변형한 것이다. 이 소설은 <요리코를 위하여>란 작품의 자매편으로 평가되는 소설이다. 노리즈키 린타로란 이름을 알게 된 것도 사실 이 작품 때문이다. 작가 이름과 같은 탐정 노리즈키 린타로 시리즈 중 한 권인데 이번 소설에서는 출연 비중이 그렇게 많지 않다. 하지만 그 중요성은 뒤로 가면서 더 강해진다. 중간에 탐정이 알리바이 증명에 이용당하는 일까지 생긴다. 가끔 미스터리 소설을 읽다 보면 이런 설정이 나온다. 물론 이런 트릭은 탐정들에게 금방 깨진다.


이야기는 야마쿠라 시로의 1인칭으로 이어진다. 그는 한 가정의 가장이자 아버지다. 그런데 가장과 아버지의 위치가 다르다. 실제 가정에서 살고 있는 아이는 자신의 친자식이 아니다. 그와 피가 이어진 아이는 다른 집에서 자란다. 도미시와 시게루. 납치되었다가 살해된 아이이자 그의 친아들이다. 소설은 납치된 아이가 시체로 발견되면서 시작한다. 그리고 이 일이 어떻게 벌어졌고, 이 납치 사건 뒤에 숨겨진 비밀이 하나씩 밝혀질 때 사람들의 가면이 한 꺼풀씩 벗겨진다. 뒤틀리고 꼬인 관계처럼 사건도 그렇게 펼쳐진다. 이 모든 일의 중심에는 위선적이고 자기중심적이고 비겁한 아버지 야마쿠라 시로가 있다. 이전에 읽을 때는 이 느낌을 읽으면서 잘 느끼지 못했다.


시로에게 전화가 한 통 온다. 아내 가즈미다. 아들이 납치되었다고 말한다. 회사를 나와 집으로 온다. 아들은 아파 오늘 학교에 가지 않았다. 그럼 누구? 옆집 시게루다. 납치범이 착각한 것이다. 당연히 경찰 연락을 금지하고, 거액의 몸값을 요구한다. 몸값은 준비되었지만 경찰 신고는 이미 되었다. 시게루의 엄마 미치코는 미칠 지경이다. 아이의 아버지가 몸값을 가지고 오길 바란다. 수많은 노선 변경과 급박한 진행으로 시로는 피곤해진다. 그는 시게루가 자신의 아들임을 알고 있다. 하지만 현재 가정이 깨어지는 것을 두려워한다. 미치코의 은근하면서 노골적인 협박과 시게루의 존재는 큰 부담이다. 그렇다고 돈을 전달하는 것을 실패할 수 없다. 다른 어떤 문제가 생길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다 계단에서 굴러 떨어진다. 몸값 전달에 실패하고 아이는 시체로 발견된다.


미치코가 시로의 의도적인 실수를 지적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는 시게루를 제대로 인정하고 있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한때의 외도로 낳은 아이를 그는 인정하지 못한다. 마음 한 곳에서는 그 아들이 사라져 주길 바랐다. 마음 한 켠에 자신의 실수로 아들이 죽은 것에 대한 죄책감이 있는데 부검 결과는 그의 실수와 관계없음을 알려준다. 이미 전달 당시 아이는 죽어 있었다. 이 사실과 상관없이 그는 왜 그의 아들을 납치하려고 했는지 의문이 생긴다. 제1용의자 미우라 야스시를 찾아간다. 그는 바로 자기 가정의 아들 다카시의 친아버지다. 죽은 처제의 남편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가 납치범에게 이리저리 끌려 다닐 당시 알리바이가 있다. 그가 바로 탐정 노리즈키 린타로다. 그리고 탐정이 이 사건에 개입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이 소설은 아들과 가족에 대해 묻는다. 흔히 하는 기른 자식과 낳은 자식의 문제다. 작가는 무게를 가정과 기른 자식에 더 무게를 둔다. 자신이 지키고자 하는 것에 더 무게를 둔 것이다. 시로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아내 가즈미다. 그가 잠시 바람을 핀 것도 아내와의 관계가 나빴을 때다. 아니 아내의 우울증 때문에 힘들었을 때다. 이 가정에 위기를 가져온 것은 바로 미치코다. 이것은 그의 비겁한 변명이기도 하다. 그녀의 은근한 압박은 그를 흔들기에 부족함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벌어진 납치사건은 그의 속내를 하나씩 밝혀내는 계기가 된다. 동시에 이 사건과 관련된 사람들의 숨겨진 속마음도. 그리고 양파껍질처럼 벗겨지는 사실들은 반전으로 이어진다. 또 그 속에 시로의 집착이 담겨 있다. 이 과정을 작가는 약간은 도식적인 구성으로 풀어낸다. 1인칭의 이야기가 풀어내는 속내는 어쩔 수 없는지 모르겠다. 마지막에 다카시와 그의 대화는 곰곰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의 속내와 집착을 잘 드러내기 때문이다. 한 번 읽었던 작품이라 그때 느끼지 못한 감정들이 조금씩 가슴 속으로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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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그녀의 마지막 여름 - 코네티컷 살인 사건의 비밀
루앤 라이스 지음, 이미정 옮김 / 하빌리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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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성의 죽음을 둘러싼 미스터리를 파헤친 소설이다. ‘코네티컷 살인 사건의 비밀’이란 부제를 붙였는데 원제는 “LAST DAY”다. 여성의 시체를 발견한 것은 그녀의 언니인 케이트인데 며칠 연락이 되지 않아 경찰과 함께 집에 왔다가 동생이 죽은 채 있는 것을 발견한다. 보통의 소설이라면 언니 케이트가 가장 유력한 범인이다. 하지만 그녀의 죽음을 둘러싼 상황 등이 23년 전 있었던 사건과 비슷한 부분이 너무 많다. 그때 그 자매를 구했던 형사 코너가 이번에도 담당한다. 그가 생각한 첫 번째 용의자는 바로 베스의 남편 피터다. 그런데 피터는 베스가 죽었을 당시 친구들과 요트를 타고 바로 나갔다. 이 알리바이는 확실하다. 그렇다면 사망추정시간이 정확하게 확인할 필요가 있다. 보통의 소설이라면 이 부분에 초점을 맞추겠지만 이 소설은 그런 종류의 소설이 아니다.


23년 전 두 자매의 아버지는 도박 빛 때문에 아내에 대해 청부살인을 요청했다. 예상하지 못한 상황은 두 딸이 그 장소에 있었다는 것이다. 딸들은 엄마가 죽는 장면을 보게 된다. 이후 두 딸의 삶의 방식은 갈라진다. 언니 케이트는 비행기 조종사가 되어 과학을 신봉하며 자신의 삶을 살고, 동생 베스는 22살에 남편 피터를 만나 딸 샘을 낳고 잘 살았다. 이런 베스의 가족에게 변화가 생긴 것은 피터에게 어린 연인이 생기면서부터다. 그녀는 두 자매가 뽑은 큐레이터 니콜라다. 이 둘이 어떻게 연인이 되었는지, 어떤 감정인지에 대해서는 피터의 독백 속에 간결하게 요약되어 나온다. 그리고 임신과 출산, 아내 베스가 알게 되는 상황 등이 엮이면서 가정은 불안정해진다. 이 불안정한 가정이 만들어내는 여러 가지 불안한 모습은 또 다른 재미다.


임신 6개월, 뛰어난 미모, 대외적으로 좋은 갤러리 원장, 자원봉사 활동 등 무엇 하나 빠질 것 없는 인물이 베스다. 누구나 처음 생각한 범인은 남편이지만 그의 알리바이는 견실하고, 자신 스스로 거짓말 검사를 받겠다고 말할 정도로 자신감 있다. 물론 그의 불륜은 다른 문제다. 하지만 이 소설의 재미난 구성 중 하나인 등장인물의 심리 묘사를 통해 범인이 아니라고 말하는 듯한 장면을 연출한다. 물론 많은 추리소설에서 이 장면을 반전의 도구로 삼는 경우도 많다. 그리고 베스와 관련된 친구들의 이야기가 하나씩 흘러나온다. 케이트가 그들만의 비밀 장소에서 한 장의 누드화를 발견하면서 새로운 가능성과 숨겨진 비밀의 문이 열린다.


한 여성의 죽음을 파헤치는 과정이 전형적인 추리소설의 공식을 따라 가지 않는다. 각자의 목소리를 들려주고, 그 목소리의 결합으로 한 여성의 삶이 조금씩 완성된다. 잘 안다고 생각했던 동생의 숨겨진 비밀, 깨어진 가정으로 고통받는 딸, 23년 전 사건으로 다시 강한 책임감을 느끼는 경찰 등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과학수사가 벌어지지만 그 수사와 증거에 집착하지 않고, 각각의 인물들의 사연에 더 많은 공을 들인다. 강렬하고 섬세한 심리묘사는 이 소설의 또 다른 재미다. 각자의 사연이 변호처럼 이어지면서 드러나는 범인의 모습은 예상 외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언제나 예상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너무나도 강렬하고 참혹했던 경험을 한 케이트가 다시 겪는 상실감은 조용히 가슴속으로 파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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