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자의 일기
엘리 그리피스 지음, 박현주 옮김 / 나무옆의자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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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에드거 상 최우수 장편소설상 수상작이다. 작가의 이력을 간단히 보면 화려한 수상 경력이 나온다. 이런 화려한 수상 작가도 가끔 나와 맞지 않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이 작가는 아니다. 에드거 상을 받아 기대를 하면서도 고딕 문학의 전통이란 대목이 약간 걱정거리를 던져 주었다. 이런 걱정은 진도가 나가면서 점차 사라졌다. 대단히 빠르게 읽히는 소설은 아니지만 천천히 이야기를 쌓아가는 과정이 결코 지루하지 않았다. 여기에 가상의 작가와 가상의 소설을 만들어 둘의 연관성을 만들었다. 그리고 책 마지막에 R.M 홀랜드의 <낯선 사람>이 실려 있다.


이야기는 세 명의 여성 화자를 내세워 진행한다. 홀랜드를 연구하며 교사로 살아가는 클레어, 클레어의 딸 조지아, 살인 사건을 담당하는 형사 하빈더 등이다. 클레어, 하빈더, 조지아 순으로 진행되다 클레어의 순번이 한 번 빠진다. 왜일까? 고딕 문학의 전통이 3의 반복이라고 했는데 여기에 대한 간략한 설명은 옮긴의 말에 나온다. 이런 전통보다 나의 시선을 더 끈 것은 엄마가 잘 모르는 딸의 모습이다. 클레어도 딸 조지아 하얀 마녀라고 부르는 여성에게 글쓰기를 배운다는 사실을 모르고, 하빈더의 엄마도 딸이 동성애자란 사실을 모른다. 딸들이 사실을 숨겼다고 하지만 우리가 흔히 하는 착각 중 하나인 내 새끼는 내가 잘 안다는 믿음을 그대로 깨뜨린다.


<낯선 사람>의 도입부로 이야기의 문을 연다. 그리고 한 여교사의 죽음을 알린다. 클레어의 절친 교사인 엘라가 살해당했다. 엘라는 학교의 학부장 릭과 잠을 잔 적이 있다. 속된 말로 공공연한 비밀이다. 처음 이 사건을 맡은 하빈더는 모든 가능성을 검토해야 한다. 절친 클레어도 마찬가지다. 처음 클레어를 봤을 때 하빈더는 약간 삐딱하게 쳐다본다. 클레어의 마르고 큰 키와 풍기는 표정이 선입견을 심어주었다. 이 약간의 반감은 사건이 더 일어나고, 서로의 감정을 교류하면서 어느 순간 사라진다. 이렇게 되기까지 많은 일이 생기고, 의심의 씨앗을 사라지게 만들 사건도 생긴다. 가장 큰 역할은 하는 것은 역시 허버트다. <낯선 사람>에도 같은 이름의 개가 등장한다.


친구의 죽음으로 고통을 받는 역할이 클레어라면 하빈더는 드러난 증거를 가지고 범인을 잡아야 한다. 증거가 많고 분명하다면 쉽게 범인을 잡을 수 있겠지만 이 살인자는 증거 물품을 남기지 않았다. 두 번째 살인이 일어났을 때 그 시체를 가장 먼저 발견한 사람이 클레어인데 그 과정도 재밌다. 약간의 낭만적인 분위기가 있지만 시체가 이 작은 낭만을 산산조각낸다. 두 번째 살인은 <낯선 사람>의 죽음과 동일한 방식임을 알려준다. 그리고 클레어의 일기에 기록된 낯선 사람의 말들. 지옥은 비었다. 서늘한 표현이지만 이 문장은 <맥베스>에 나오는 문장이다. 두려움에 떨며 다른 기록을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한다. 동일범의 소행이다.


클레어가 화자로 나올 때 일기는 또 하나의 도구다. 그녀의 내밀한 기록을 읽은 하빈더가 학교의 상황을 더 잘 이해하게 된다. 두 번의 장례식과 새롭게 드러나는 과거의 사실들이 상황을 한 번 꼰다. 조지아의 분량은 상대적으로 적지만 딸의 시선으로 엄마를 보게 하고, 용의자 중 한 명을 조용히 지우는 역할을 한다. 어른과 다른 위치와 시각에서 상황을 본다. 인도 시크교 신자인 부모와 함께 사는 하빈더는 소설을 읽으면서 그 매력이 하나씩 드러난다. 자신의 성 정체성을 커밍아웃했고, 사건을 해결하려는 열정이 가득하다. 관찰력이 뛰어나고 영국에서 인도계들이 흔히 겪게 되는 일들을 알려준다. 하빈더를 주인공으로 한 다른 소설이 출간되었다고 하니 기대해본다.


고딕 문학의 분위기를 풍기다 보니 빠른 전개나 무시무시한 긴장감을 불러오는 부분은 약하다. 개성 강한 등장인물들이 흡입력을 발휘하고, 각 장마다 나오는 <낯선 사람>에 대한 좀 긴 인용은 분위기를 더욱 어둡게 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 범인의 모습이 떠올랐다. 찾은 방식은 소설 속 등장인물들 중 범인이 있고, 아닌 사람을 하나씩 지우다 보니 그때 딱 그가 떠올랐다. 작가는 마지막에도 약간의 트릭을 사용한다. 재밌는 것은 이 사건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어딘가에서 본 듯한 상황이다. 현대 스릴러의 긴장감이나 속도감을 내지는 못하지만 고딕과 견실한 스릴러가 만들어내는 재미는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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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카타의 세 사람
메가 마줌다르 지음, 이수영 옮김 / 북하우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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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인도를 배경으로 한 소설을 읽었다. 개인적으로 인도를 배경으로 한 소설들을 재밌게 읽었다. 좋은 작품들을 선별해 번역한 덕분일 것이다. 작가는 인도에서 태어나 대학을 미국에서 다녔고, 현재 뉴욕에서 살고 있다. ‘차세대 줌파 라히리’라는 찬사를 받는다고 하는데 아쉽게도 줌파 라히리의 소설은 아직 읽지 않았다. 사 놓고 묵혀 두고 있는 책들 중 한 권이다. 이런 이야기를 먼저 하는 이유는 작가의 시선에 미국의 시선이 혹시 더 많이 들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한 번 하기 위해서다. 내가 잘 모르는 인도를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 볼 때 생길 수 있는 선입견을 주의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결국 내가 본 것은 나의 시선으로 해석한 이야기들이다.


이야기는 크게 세 사람의 시선으로 진행된다. 지반, 러블리, 체육교사 등이다. 지반은 가난한 환경 탓에 중등학교 중퇴한 후 쇼핑몰 직원으로 일한다. 어느 날 밤 그녀 집 근처 기차역에서 테러가 발행해 100명 이상이 죽는다. 그녀는 이 내용을 공유하고, 허세에 차서 정부를 규탄하는 글 하나를 올린다. 그리고 다음 날 경찰이 찾아와 그녀를 테리범의 동료로 간주한다. 그녀가 페이스북으로 대화를 주고받은 사람이 테러범 모집자였다는 것이다. 그녀가 범인으로 지목되자 각종 증언이 쏟아진다. 진실보다는 자신의 욕망을 토해낸 것들이다. 그녀가 범인이라는 물리적 증거가 하나도 없다. 격해진 여론과 그것을 두려워한 경찰이 그녀를 범인으로 단정한다. 여기에 더욱 황당한 것은 그녀의 고백을 왜곡한 언론이다. 이 언론 보도를 보고 그렇게 낯설게 느껴지지 않은 것은 우리의 현실 일부가 담겨 있기 때문일 것이다.


러블리. 여자가 되고 싶은 여장남자다. 히즈라라고 불리는데 구걸을 하면서 생활한다. 러블리가 바라는 것은 유명한 영화배우가 되는 것이다. 수업료를 내고 연기수업을 받는다. 지반은 러블리에게 영어를 가르쳐주기 위해서 왔다. 그녀가 가지고 간 보따리의 정체는 교과서였다. 유명 배우가 되기 위해 러블리는 열심히 노력한다. 돈을 들여 프로필 CD를 만들고, 에이전시에 등록도 한다. 완전한 여성이 되기 위해서는 수술을 해야 하는데 이전 동료 한 명이 마취도 되지 않은 불법 수술을 받은 후 죽었다. 그녀는 이 수술을 받을 마음이 없다. 이 소설에서 러블리는 이전에 몰랐던 인도의 풍습 하나와 삶의 모습을 보여준다. 순수하고 열정적인 그녀는 지반을 위해 사실을 증언하기도 한다.


체육교사. 우연히 한 유명 정치인의 연설을 듣기 위해 갔다가 마이크를 고쳐주는 작은 도움을 준 후 정치에 발을 내딛는 인물이다. 그는 지반이 학생일 때 약간의 도움을 주었다. 하지만 고맙다는 말도 없이 떠난 것에 불만을 품고 있다. 이 불만을 더 부각해 경찰에 증언한다. 이것보다 더 흥미롭게 진행되는 것은 평범했던 체육교사가 한 정치인으로 자라는 과정이다. 권력의 맛을 조금씩 알아가는 과정은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진행된다. 그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가 충성해야 하는 대상의 말을 잘 듣는 것이다. 그가 현실 문제를 말한다고 해도 현실에서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많은 관문을 거쳐야 한다. 그 중 하나가 가짜 증언이다. 자신의 충성심을 보여주는 좋은 방법이다. 그 대가 중 하나가 비 올 때 매번 넘치는 학교 앞 하수구를 바로 수리한 것이다.


서로 다른 위치의 세 남녀를 화자로 내세우고, 그 사이사이에 그들과 관계된 사람들의 짧은 이야기를 밀어 넣었다. 사회를 움직이는 수많은 바퀴 중 하나가 살짝 드러난다. 사실보다는 가짜 뉴스가 더 힘을 발휘하고, 물증보다는 심증이 더 앞선다. 인도 사회에 내재한 오랜 문제 중 하나인 종교적 갈등도 드러난다. 이성보다는 군중심리로 대변되는 감정이 더 무시무시한 힘을 발휘한다. 읽다 보면 이런 일이 가능할까? 하는 의문이 든다. 현실은 언제나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계급과 부는 감옥마저 차별한다. 순수한 감정은 성공에 대한 욕망에 잠시 자리를 비켜준다. 서로의 이해가 맞을 때 잠깐 눈을 감는 것은 너무나도 흔한 일이다. 비극의 수레가 너무 빨리 굴러간다. 놀라운 가독성과 낯선 삶의 모습은 나를 이야기 속으로 강하게 끌어당겼다. 21세기 찰스 디킨스라는 표현을 보면서 디킨스 소설이 읽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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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문디 언덕에서 우리는
김혜나 지음 / 은행나무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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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를 보고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로맨스 소설인가 하는 의문이었다. 띠지를 본 다음에야 오래 전 재밌게 읽었던 작가의 이름을 떠올릴 수 있었다. 이때도 김혜나가 로맨스 소설을 썼나? 하는 의문을 품었다. 하지만 정유정의 추천과 이전에 읽었던 기억들이 책으로 손을 내밀게 했다. 그리고 더 성숙해진 작가의 이야기를 만났다. 처음에는 약간의 혼란을 겪기도 했지만 밀도 있는 문장과 낯선 이국의 삶 속에서 발견한 일상이 눈에 들어오면서 빠져들었다. 요가 수련에 대한 글을 읽으면서 작가도 요가를 수련하는 사람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지만 작가의 말에서 요가와 글쓰기에 대한 이약기를 들을 수 있었다.


차문디 언덕. 인도 마이소르에 있는 곳이다. 한참 여행 서적을 읽고, 여행 팟캐스터를 들었을 때 스치듯 이 이름을 들었을지 모르지만 낯선 지명이다. 다른 소설인가에서 요가 수련을 위해 인도 어딘가로 와서 생활하는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이 도시에 오는 이유도 대부분이 요가를 수련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요가를 하지 않는 나에게 용어나 자세 등은 너무 낯설다. 방송이나 인터넷 짤로 돌아다니는 요가 자세 외에는 아는 것이 없으니 당연하다. 경치로 유명한 차문디 언덕이라고 하지만 좋은 풍경을 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인도는 여자 혼자 다니기 쉽지 않은 곳이다. 소설 곳곳에 두려움과 성추행에 대해 나온다. 그때 느낀 감정들은 억울하고 분하고 격렬하다.


이야기는 두 개로 진행된다. 하나는 메이의 마이소르 일상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의 과거사다. 폰트와 굵기를 달리 해서 구분했다. 어린 시절 이야기는 충격이다. 세상에 그런 아버지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나를 돌아봤다. 가난한 일상, 아버지의 사랑이 없는 유년기 등은 그녀 삶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리고 고모에 대한 기억은 지울 수 없는 낙인이 된다. 이유를 알 수 없는 고모의 자살, 그 후 고모부와 두 딸이 행복한 표정으로 함께 찍은 사진 등이 자신의 가족과 이어지면서 큰 충격을 준다. 그녀는 자신을 드러내지 못하고, 쉽게 거절하지 못하는 삶을 산다. 사랑의 결핍은 폭식으로 이어진다. 채워지지 않는 허기는 육체에 큰 상처를 남긴 채 숨었다. 그러다 다시 그 허기가 깨어나 그녀의 삶을 뒤흔든다.


그녀가 사랑했던 남자 요한은 선천적으로 체력이 약하다. 약해도 너무 약하다. 죽음의 위기를 몇 번이나 넘겼다. 상당히 부유했던 집안이 요한의 수술과 병원비로 상당히 사라졌다고 한다. 교회에 열심히 다니는 신자이고, 그곳에서 둘은 만났다. 얼마나 허약한 체력인가 하면 혼자 욕실에서 샤워할 때 수증기가 가득 차면 헉헉거린다. 그래도 사랑은 나눌 힘은 있는 모양이다. 둘이 처음 영화관에 갔을 때 계단에서 주저하는 그를 엎고 올라가는 장면은 너무나도 인상적이다. 처음 밖에서 만날 때 그가 내뱉은 평범한 말 ‘거기 있어요. 내가 갈게요.’ 란 말이 왜 그녀에게 그렇게 강한 울림을 주었는지는 어릴 때 마을버스 사연을 읽고 알게 되었다. 우리의 삶은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곳에서 예상하지 못한 모습을 보여준다.


요한과 헤어진 후 마이소르에 요가 수련을 하러 왔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도피다. 그녀가 자신의 과거사를 내뱉는 대상은 처음 도착한 호텔의 숙박을 도와준 케이다. 읽다 보면 케이와 진한 사랑을 나눈 것처럼 보이지만 그들이 만난 시간은 15일 정도다. 육체적 관계를 맺은 것도 아니다. 단지 필요한 순간 그가 있었을 뿐이다. 하지만 그는 그녀의 삶을 뒤흔들었다. 유부남에, 1년의 반을 여행으로 보내는 그다. 사랑의 밀어를 나눌 정도도 아닌 것 같다. 그럼에도 그녀는 그를 잊지 못한다. 채워지지 않는 허기, 나가지 못하는 요가의 진도 등이 밖으로 드러난다. 그런 그녀를 보면서 안타까움과 아픔을 느낀다.


삶에서 깨달음은 잠깐 왔다 간다. 그 깨달음을 붙잡고, 파고들고, 자신의 것으로 소화하는 것은 상당히 어렵고 힘들다. 마지막에 메이가 차문디 언덕을 걷고 기어서 올라가 발견한 것은 자신이 믿지 못했고 받지 못했던 아버지의 사랑이다. 자신의 곁에서 울고 있는 신이다. 고모의 자살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도 얻는다. 그 결과 중 일부가 그녀의 과거사다. 자신의 삶을 순서에 상관없이 적고 적는다. 이것으로 그녀의 허기와 폭식과 아픔이 해소되었을까? 모른다. 어쩌면 일부는 해소되었을 것이다. 삶은 그 순간을 넘어가면 또 다른 언덕이 나타나 우리를 나아가게 한다. 사족처럼 하나 덧붙이자면 케이에 대한 글을 읽으면서 한 여행작가가 떠올랐는데 작가의 말에 그 이름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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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펙트 와이프
JP 덜레이니 지음, 강경이 옮김 / ㈜소미미디어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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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JP 딜레이니의 소설은 처음 읽는다. 먼저 출간된 다른 책들의 표지를 보면 상당히 낯익다. 이 소설에 끌린 이유는 피그말리온 이야기를 모티브로 사랑하는 아내를 기계 몸으로 되살린 이야기를 다룬다는 점이었다. SF 장르에서 가끔 본 설정이다. 인공지능과 딥러닝을 이용해 아내를 되살린다는 설정은 아주 현대적이다. 미래적으로 푼다면 공각기동대의 ‘전뇌’ 같은 방식이 되겠지만 이 소설은 그런 장르 소설이 아니다. 작가의 말에 의하면 SF소설이 아니라 심리 스릴러라고 분명히 말한다. 실제 소설을 읽으면 기술적인 문제나 SF적 요소가 의도적으로 많이 생략되어 있다. 그 자리를 채우는 것은 사라진 애비게일을 둘러싼 미스터리다.


팀. 애비의 남편이다. 실리콘밸리의 대단한 기술자이자 사업가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려주는 대목은 애비가 깨어난 순간부터 그녀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현재가 아닌 과거 이야기를 풀어낸 부분이다. 소설은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이야기가 진행된다. 애비를 당신으로 부르면서 로봇의 몸으로 깨어난 그녀를 따라가는 시선이고, 다른 하나는 팀과 애비가 만난 후 그들을 옆에서 본 사람들의 시선이다. 주로 이야기를 진행하는 것은 로봇인 애비의 시점이지만 팀에 대해 가장 잘 알려주는 부분은 팀 회사 내부 사람들의 시선이다. 그가 얼마나 뛰어난 개발자인지, 얼마나 엄청난 폭군인지, 그가 휘두른 권력이 어떤 식으로 문제를 일으키는지 말이다. 그리고 팀이 얼마나 애비에게 빠졌는지도 알려준다.


로봇의 몸으로 깨어난 애비가 마주한 몇 가지 사실들은 놀랍다. 가장 큰 것은 애비가 실종되었다는 것이다. 경찰은 남편 팀의 살인으로 간주하고 재판을 진행했지만 패소한다. 이 정보를 우연히 알게 되는데 그 과정이 우습다. 애비의 외모를 가지고 밖으로 나간 그녀를 보고 사람들이 경찰에 신고했기 때문이다. 자신이 로봇이란 것을 증명한 후 풀려나지만 이것이 또 다른 문제를 일으킨다. 애비의 기억 등을 이용해 애비를 닮은 로봇을 만든 것이 법적 문제가 된다. 다른 하나는 그녀가 실종된 해변가 저택에서 남편과 자폐 아들의 교사가 섹스를 나누는 장면을 보는 것이다. 남편의 의도가 담겨 있는데 그의 설명과 대응 방식이 너무 당당하고 당연한 듯하다. 아내를 너무나도 그리워해서 로봇으로 되살렸다는 것과 너무 다른 행동이다.


이 소설에서 인공지능과 바둑기사 이세돌의 대결을 몇 번 말한다. 로봇 애비의 딥러닝을 설명하기 위한 예시다. 작가는 이 애비 봇에게 감정도 부여하는데 이것은 현재 과학으로 구현하기 상당히 어려운 부분이다. 이런 기술적인 부분은 넘어가도 큰 문제가 없다. 앞에서 말했듯이 작가는 이 기술들을 하나의 도구와 설정으로 이용하고 있지 과학적 사실에 중심을 두지 않는다. 그렇지만 애비 봇이 안고 있는 수많은 가능성과 법적 문제들까지 완전히 무시한 것은 아니다. 애비 봇이 태어나 애비의 모습을 하고 돌아다니고, 인터뷰하는 것을 본 애비의 부모와 형제들은 데이터 삭제를 요청한다. 하지만 이 부분에 깊이 들어가지 않고 애비의 실종을 둘러싼 미스터리에 더 집중한다.


애비 봇이 집안을 뒤지면서 발견한 아이패드와 이전 핸드폰은 이 실종에 대한 단서를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 그녀의 정체가 외부에 알려지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인간과 닮은 모습이기에 작은 위장만 해도 사람들은 그녀가 로봇이란 사실을 모른다. 이것보다 더 놀라운 것은 그녀가 느끼는 감정과 기억들이 딥러닝을 통해 자발적인 판단과 행동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통찰력을 가진 애비 봇에게 팀이 털어놓는 사실 하나는 애비의 실종에 또 다른 단서가 된다. 사람의 기억을 가진 로봇이 과연 그 사람인가 하는 철학적 질문은 많은 SF 장르에서 다루었다. 작가는 이 부분은 직접 다루지 않지만 마지막에 살짝 하나 풀어놓는다. 두 시점이 하나로 모이는 그 순간에.


실리콘밸리에 대한 환상을 상당히 많이 깨트린다. 폭압적인 오너의 행위, 성차별, 비인간적 폭언 등이 난무한다. 이것을 덮는 비밀유지 합의는 미국 소설 등에서 자주 본 장면이다. 물론 모든 기업들이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는 이 상황을 극단적으로 이용해 상황을 악화시킨다. 여기에 자폐가 있는 아들 대니를 등장시켜 다른 문제를 만든다. 이 부분은 실제 작가의 경험이 반영되어 있다. 어떤 학교의 모습은 아주 잔혹하다. 애비 봇이 단서를 하나씩 얻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누군가가 문자를 보내면서 머릿속에 새로운 의심의 씨앗이 자란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반전을 맞이한다. 피그말리온 이야기의 현대판 후일담은 서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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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데바 - 삶 죽음 그리고 꿈에 관한 열 가지 기담
이스안 지음 / 토이필북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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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작가다. 이 작가의 다른 단편집 <기요틴>의 표지를 본 적이 있다. 그때 살짝 궁금했는데 그냥 넘어갔다. 이후 잊고 있었는데 ‘삶과 죽음 그리고 꿈에 관한 열 가지 기담’이란 부제가 눈에 들어왔다. 선택했다. 기담의 경우 즐겨 읽는 장르는 아니지만 상당히 꾸준히 읽는 장르다. 그리고 이 단편집은 기담을 넘어 공포를 강하게 품어내는 단편도 있다. 전체적으로 가독성이 상당히 좋다. 술술 넘어간다. 하지만 완성도란 측면에서 보면 조금 부족하다. 작가가 의도한 바대로 흘러간 것도 있지만 읽다 보면 반전이 눈에 쉽게 들어온다. 형식적으로 다양한 실험을 담고 있는 것도 흥미롭다.


<버릇>은 작가의 말에 따르면 실제 경험을 담고 있다고 한다. 작가의 의도대로 소설을 읽었는데 그렇게 강렬한 인상은 받지 못했다. 화자가 먹기 싫은 우유를 책상 속에 숨기는 버릇을 보면서 나의 버릇을 생각해봤다. <죄악>은 매정하게 이별을 고한 남친이 느끼는 죄책감과 공포를 점진적으로 잘 표현한다. 뻔한 상황이나 장면도 눈에 자주 들어오지만 그가 느낀 죄책감 묘사가 눈길을 끈다. 비겁한 변명과 정면에서 마주보고 그 상대를 대우하지 않은 그는 반작용을 제대로 받는다. 역시 뻔한 결말이지만 그의 심리 묘사가 재밌다.


<악몽 그리고 악몽>은 정신과 의사가 내 준 약을 먹고 매일 악몽을 꾸는 남자 이야기다. 그가 꾸는 수많은 악몽이 그렇게 강렬하게 느껴지지 않지만 잠드는 것을 두려워하는 마음은 이해한다. 그 원인에 대해서 알려주는데 진짜 예상하지 못한 장면으로 마무리한다. 상상력이 만들어낸 멋진 설정이다. <고향>은 잔잔하고 결코 낯설지 않은 이야기다. 이게 왜 기담이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마지막 장면이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잊고 있던 과거가 현실을 만나 펼치는 서늘함이 생각보다 많다. 잠시 어린 시절을 뛰어놀던 그곳이 떠오른다.


표제작 <카데바>는 읽기 전까지 그 단어가 의미하는 바를 몰랐다. 해부용 시체를 뜻하는 의학 용어인데 시체에 매혹된 남성의 광기가 강하게 머릿속에 파고든다. 서늘한 감정보다 엽기적인 감정이 먼저 다가온다. <별장괴담회>의 마지막 문장과 사진은 소설보다 가공된 에세이 느낌이 더 강하다. 사실의 변형이 작가의 상상력과 만나 한 편의 단편으로 변하는 모습을 보면서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작가의 오싹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 실화라고 하는데 이 표현을 순진하게 그대로 믿기엔 나의 의심이 너무 많다.


<포식>은 트라우마가 빚어낸 상황이 강렬하다. 현실에 대한 반발이 생각의 흐름을 왜곡한다. 고양이가 가지고 있다는 아홉 개의 목숨과 잔혹한 사실이 머릿속에서 참혹한 이미지를 만든다. 역시 예정된 결말고 이어지는데 알고 있다고 그 서늘함이 사그라들지는 않는다. <네 명의 여자가 살고 있다>는 지독한 삶의 반복과 재생을 네 명의 여자 사연으로 담담하게 풀어낸다. 공포보다 이 불행한 그들의 과거가 어딘가에서 본 듯한 이야기와 엮인다. 그들의 고백을 하나씩 풀어낸 마지막 장면은 가슴 아프다. 그들이 그들의 삶에서 반복을 끊어낸 방식은 정말 최악의 방법이다.


<연애상담>은 인터넷 게시판에 올린 글과 신문기사를 이용해 구성한 단편이다. 한 여성의 연애 사연을 올리면서 마지막에 한 방 크게 펀치를 휘두른다. 보통 단편에서 사용하는 마무리에서 한 발 더 내딛는다. <유서. m4a>는 자살한 딸이 남긴 mp3 파일을 듣는 엄마의 감정을 비현실과 엮어 예상하지 못한 장면을 만든다. 홀로 남은 엄마가 느낀 깊은 절망과 슬픔이 가슴에 와 닿는다. 왠지 <네 명의 여자가 살고 있다>와 다른 평행 우주 속 한 장면인 것 같다. 전체적으로 뛰어난 가독성을 보여주지만 낯익은 이야기들이 많다. 아쉬움과 다른 작품에 대한 기대를 동시에 가지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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