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멈추면 나는 요가를 한다 바통 4
김이설 외 지음 / 은행나무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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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작가가 요가를 소재로 쓴 글을 모은 단편집이다. 바통 시리즈 4권인데 이번 앤솔로지를 읽고 이전 시리즈에도 관심이 생겼다. 아마 기회가 닿으면 이 시리즈를 한두 권 더 읽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 단편집을 읽기 전에 김혜나의 <차문디 언덕에서 우리는>을 읽고 요가에 관심이 갔는데 바로 이 단편집이 눈에 들어왔다. 개인적으로 좋아하거나 관심이 있는 작가들의 이름이 보여 약간 주저하다 선택했다. 그러다 잊고 있던 작가의 작품을 보면서 잠시 이전 기억을 되살렸다. 집에 책만 있고 저질 기억력에 따르면 한 번도 읽지 않은 작가의 단편도 실려 있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해 재밌게 읽었다.


이 단편집의 작가들이 모두 요가를 전문적으로 하지는 않는다. 김혜나와 정지향의 글을 보면 전문적으로 배웠고 가르치는 일을 하는 것 같다. 다른 네 명의 작가는 이 단편집에 참여하기 위해 요가에 다시 발을 딛은 사람도 있다. 각자의 경험이나 단편집 참여 등으로 이들의 글은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된다. 최정화의 단편에서는 요가란 단어가 나오지 않지만 그림과 동작과 요가를 소재로 한 단편임 감안하면 요가 동작이란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현대 요가 구루들이 저지른 성추행과 성폭행의 기록들은 내가 알고 있는 것보다 더 광범위해서 놀랐다. 동작과 호흡을 강조하는 부분을 읽으면서 무협을 떠올린 것은 내 취향 탓일 것이다.


요가를 우아한 행위 정도로 생각한 아줌마의 시선을 현실적으로 그려낸 단편이 김이설의 <요가 하는 여자>다. 태권도 학원에서 태보와 요가를 가르치는데 이 단련법은 그녀가 생각한 것과 너무 다르다. 새로운 회원을 데리고 오면 할인해주는 방식 등 낯익은 상황들이 많이 나온다. 김혜나의 <가만히 바라보면>은 어떤 대목에서는 <차문디 언덕에서 우리는>의 연장선이란 느낌이 들었다. 트랜스젠더와의 교류와 자신이 경험한 수련법을 뜨거운 파타야의 열기와 뒤섞었다. 이 단편을 읽으면서 오래 전 땡볕 속 파타야를 배낭 하나 매고 걸었던 그날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수련자의 시선에서 느껴지는 깊이가 매혹적이다.


박생강의 <요가고양이>는 이제 기억도 희미해진 <수상한 식모들>을 잠시 떠올려주었다. 팬더믹 이후의 삶과 엮어 한 편의 판타지처럼 이야기를 풀어낸다. 요가의 기원을 이집트로 보고, 고양이의 목숨이 아홉 개란 설정을 묶어 풀어내는데 재밌다. 장편으로 발전시켜도 좋을 것 같다. 박주영의 <빌어먹을 세상의 요가>도 팬더믹과 요가를 엮었다. 안식년에 해외 여행을 가려고 했는데 팬더믹이 발생해 집에 머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층간 소음이 발생한다. 오해와 이해 사이를 오가고, 바뀐 일상이 삶을 조금씩 무너트린다. 갇힌 일상 속에서 쉽게 겪을 수 있는 일을 요가와 자연스럽게 엮었다.


가장 낯선 작가가 정지향이다. 처음 읽는다. <핸즈오프>는 요가 수련자에게 스승이 도움의 손길을 주는 것에 반대되는 행위다. 현대 요가의 탄생과 부작용에 대해 짧게 보여주고, 올바른 동작을 도와주는 핸즈온의 좋은 점을 알려준다. 하지만 이 도움의 손길이 다른 쪽으로 흘러갈 때 생길 수 있는 부작용도 적지 않다. 미숙한 선생의 핸즈온이 불러온 이후가 씁쓸하다. 최정화의 <시간을 멈추는 소녀>는 제목을 보고 츠츠이 야스타카의 <시간을 달리는 소녀>가 바로 떠올랐다. 지구온난화와 인간의 무차별 자원개발을 북극의 가상부족 소녀를 등장시켜 강렬하게 표현했다. 만년설이 녹은 후 얼음 밑에 있던 온갖 세균들이 문제를 일으킨다는 뉴스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시간이 멈추는 것이 국지적인 현상이란 점도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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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타프 도쿄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97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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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파타프를 검색하면 묘비명이란 해석이 먼저 나온다. 실제 이 소설 속에서 묘비명을 여러 번 말한다. 도쿄의 과거와 현재를 돌아다니면서 상당히 담백하게 이야기를 풀어낸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내가 현재 살고 있는 서울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일 년에 겨우 몇 번 내려 가는 어린 시절을 보낸 도시도 스쳐 지나간다. 지금의 도시 모습과 비교하면 그때의 모습은 너무나도 다르다. 자주 가지 않는 도시는 그냥 지나가고, 현재 살고 있는 서울에만 한정해도 그 빠른 변화와 다른 모습에 놀란다. 고속 성장하는 도시의 변화는 한 해 한 해 다르다. 여기에 올림픽 개최는 그 속도를 높인다. 작가의 2020 도쿄 올림픽에 대한 글은 그 아쉬움을 담고 있다.


기존의 온다 리쿠 소설과 많이 다르다. 담담하게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이 소설보다 에세이 같이 느껴진다. 도쿄를 기점으로 교토와 오사카, 고베 등을 다루는 작가 K의 시점을 다룬 piece와 자칭 흡혈귀라고 말하는 요시야의 시점을 다룬 drawing과 K의 희곡인 [에피타프 도쿄]로 구성되어 있다. 분량은 절대적으로 piece가 많다. 낯선 지명과 낯익은 지명을 돌아다니면서 도시의 역사를 탐방하는 K의 이야기는 아주 다양한 모습을 담고 있다. 내가 알고 있는 역사도 나와 반갑지만 그 역사란 것이 결코 좋은 사건만을 다룬 것은 아니다. 몇 가지 사실들은 기억을 새롭게 하고, 지식을 덧붙이기에 충분하다.


오래 전 도쿄를 한 번 여행한 적이 있다. 짧은 기간 머문 것이라 대표적인 지역만 둘러보았지만 영화, 드라마, 만화, 소설 등에서 늘 마주한 곳을 눈으로 보는 것은 확실히 달랐다. 어쩌면 내가 영상 등으로 기억하는 도쿄가 그 사이 변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런 변화를 가장 크게 느낀 것은 사람들이 도쿄타워가 아닌 스카이트리에 몰린 사람들을 마주했을 때였을 것이다. 도쿄 전망대의 대명사였던 도쿄타워가 그 자리를 빼앗긴 것이다. 이 소설에서도 스카이트리가 나오는데 전망대가 아닌 미술전시실이다. 내가 간 당시의 복잡함을 생각하면 조금 낯선 모습이다.


읽다 보면 반가운 이름을 자주 보게 된다. 대부분 작가나 작품명이다. 이 작품들에 나온 도쿄의 풍경이 어쩌면 내 머릿속 도쿄의 풍경일지도 모른다. 지명보다 작가 이름이나 작품이 더 낯익다. 기억을 환기시키는 작품도 나온다. 내가 놓친 곳들이 나올 때면 다시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소설을 읽으면서 순간 순간 다른 소설이나 영화 등의 장면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내가 걸었던 곳은 더 분명하게 떠오르는데 이것이 나의 경험인지, 단순한 이미지의 연상인지 궁금하다. 작가가 한국과 중국과 도쿄의 공기와 냄새가 다르다고 한 부분을 보면서 이 미묘한 차이를 느끼지 못한 내가 둔감한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삶 속에 묻혀 있다 보면 느끼지 못하는 것들이 많다.


이 소설의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는 흡혈귀라고 말하는 요시야다. 햇볕 속을 걸어다니고 특별히 피를 빠는 것 같지는 않다. 그는 자신이 죽으면 다시 태어나는데 이전 기억을 유지한다고 말한다. 티벳의 달라이라마가 연상되는 설정이다. 요시야의 불사는 환생이다. 그가 K의 미행을 알아 챈 대목에서 도시에 많은 것으로 거울을 말하는데 공감한다. 고전 스파이 영화처럼 누군가를 미행한다면 너무 쉽게 그 정체가 드러난다. 그리고 그가 아베 고보의 소설 한 권을 이야기했는데 갑자기 관심이 생긴다. K가 쓰는 희곡 [에피타프 도쿄]의 장면이 두 번 나오는데 기리노 나쓰오의 <아웃>이 떠오른다. 뭐 잠시 이 작품에 대한 언급도 있었지만 말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다가갔다가 신선한 전개와 구성에 잠시 혼란을 느꼈다. 동일본대지진을 다룬 이야기가 나와 기록을 확인하니 2011년 3월이다. 소설 속 3월 모일의 기록은 이때 있었던 일을 다룬다. 수많은 이야기 중 한 편에서 괴수가 도쿄를 침범한다. 고질라를 떠올리게 하는데 왜 핵 실험을 한 미국이 아니라 일본으로 오는가 하는 의문에 대한 답은 일본이 태평양 전쟁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의문이 조금 풀린다. 그리고 희곡 [에피타프 도쿄]를 읽으면서 상당히 매력적인 설정이라 한 편의 소설로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 생겼다. 왠지 존 콜트레인의 <My Favorite Things>를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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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 제철입니다
박길영 지음 / 온유서가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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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작고 아담하고 단숨에 읽을 수 있는 책이다. 귀농한 농부의 에세이란 사실이 선택의 이유였다. 귀농 후 그가 겪게 될 농사의 어려움과 일상을 사실적으로 들려줄 것이란 예상을 했다. 이런 예상은 일부만 맞았다. 작가가 7년 동안 하던 공부를 그만두고 귀농했다고 말했다. 이 글을 읽고 내 머릿속에는 고시 등을 준비하는 장면이 떠올랐다. 그에 대한 정보를 알기 위해 검색하니 작년도에 전북도민일보와 인터뷰한 내용이 있었다. 목회활동을 하다가 귀농했다는 내용이 눈에 들어온다. 나의 예상과 다른 공부였다. 책 속에 있는 그대로 적었다면 더 좋았을 텐데 정확한 표현이 생략되어 있다. 약간 아쉽다. 그리고 책을 읽으면서 내가 느낀 자기계발서 분위기가 조금은 이해되었다.


책 속에도 나오지만 상대적으로 젊은 농부 박길영은 단순히 농사만 짓지 않는다. 활발하게 SNS를 하고, 방송 출연과 강연도 열심히 한다. 방송 중에는 <너의 목소리가 보여>에 출연한 것이 눈에 들어온다. 가끔 재방송으로 본 프로그램이다. 다시 인터뷰 내용으로 돌아오면 웨딩싱어로 활동을 한 적이 있다. 노래 실력이 대단한 모양이다. 이런 부수적인 활동에 눈길이 많이 가는 것은 이런 경험들이 그의 현재 활동과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농사를 지으면서도 자격증 시험에 열심히 도전한다. 합격할 때도 있지만 불합격할 때도 상당히 많은 모양이다. 그는 이 불합격을 숨기거나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도전 열정이 대단하다.


작가는 수많은 자기계발서를 읽은 모양이다. “성공한 사람들이 해주는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저마다 달랐다”고 한 부분은 처음 농사 지을 때 수많은 선배 농사꾼들의 조언과 맞물린다. 농사 짓은 땅이라고 모두 같은 땅이 아니다. 지력이나 토질 등에서 차이가 난다. 땅에 맞게 농사를 심고, 가꾸어야 하는데 그는 무지했다. 다행이라면 이 실패를 교훈 삼아 다음 농사에 다시 실패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누군가 틀린 게 아니라 모두가 다른 것’이라고 한 문장에 눈길이 간다. 다른 것에 눈길이 간다는 것은 작은 변화와 성장의 시작점에 섰다는 의미다. ‘고마워’란 단어에 영혼을 담았다는 에피소드를 읽으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매일 날씨가 좋으면 좋겠다고 우린 쉽게 말한다. 그런데 농사 짓는 입장에서 매일 날씨가 좋으면 문제가 많다. 비가 올 때는 와야 하고, 추울 때는 아주 춥고 눈도 와야 다음 해 농사가 잘 된다. ‘매일 날씨가 좋으면 사막이 된다.’는 도시인들의 뭐 모르는 소리다. 논둑에 키운 옥수수가 잘 자라면서 밭에 옥수수를 심겠다는 그를 말린 선배 농부의 이야기는 여러 곳에서 인용 가능한 좋은 에피소드다. 음식 솜씨가 좋아 식당을 열겠다는 사림에게도, 하나의 우량주에 몽땅 투자하겠다는 사람에게도 그대로 적용 가능하다. 지금 보이는 달콤함이 항상 그대로 유지되는 것은 현실에는 없다. 그가 농부 생활 3년에 이제 조금 안다고 하는 순간 다시 어려움에 봉착하는데 왜 수많은 경험을 가진 농사꾼들이 농사가 어렵다고 하는지 잘 알려준다.


사실 농촌에 대해 잘 모른다. 농사는 더욱 모른다. 얼마 전에 한국 농어촌이 외국인 노동자들이 없으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가끔 보는 방송에서 외국인 노동자가 보여도 방송은 그들을 배경처럼 처리한다. 중년의 한국 사람을 인터뷰해도 젊은 외국인 노동자는 말 한 마디 나오지 않는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가 짓는 농사에 외국인 노동자들이 얼마나 참여하고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작은 농사라 가족과 기계의 힘으로만 가능한 것일까? 아니면 의도적으로 이들을 말하지 않은 것일까? 귀농 농부의 농사 이야기라고 하지만 나에게는 왠지 교훈을 심어주려고 노력하는 글처럼 다가온다. 이런 종류의 글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밑줄을 그을 글들이 많다. 어떤 글은 한 편의 시처럼 다가온다. 하우스와 스마트 팜으로 제철 과일이 사라진 현실을 말할 때 다시 책 제목으로 돌아온다. 우리의 삶은 언제나 지금이 제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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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을 만드는 사람 - 개정보급판
마윤제 지음 / 특별한서재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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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판을 읽었다. 인터넷 서점 상 정보만으로는 목차 외에 따로 보이는 것이 없다. 2017 문학나눔,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이달의 읽을 만한 책’에 선정되었다는 정보가 덧붙여 있는데 개인적으로 이 책의 선정에 고개를 끄덕인다. 처음 이 소설이 나왔을 때 왠지 모르게 다른 제목과 헷갈리면서 청소년 소설로 착각했던 것이 기억난다. 점점 쇠락하는 저질 기억력은 책 정보에 혼란을 가져온다. 노안과 체력 저하에 따른 집중력 저하는 요즘 나의 또 다른 문제점 중 하나다. 이 소설이 예상 외로 묵직한 재미를 주었지만 단숨에 읽지 못한 작은 변명을 해본다.


바람을 만드는 존재 ‘웨나’를 평생 쫓은 네레오 코르소의 일생을 그렸다. 파타고니아 고원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결국 고원에서 마무리하지만 그 속에는 한 가우초의 장대한 모험이 담겨 있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그를 판 후 공포와 두려움에 몸부림 칠 때 한 늙은 가우초가 들려준 웨나의 이야기는 평생 그를 삼킨다. 그리고 어느 날 그가 본 웨나의 이미지는 평생 새겨져 지우지지 않는다. 그가 고원을 내려와 세상을 떠돌 때 그 이미지는 그와 함께 세상을 여행한다. 그가 말한 그 이미지와 의미를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하거나 자신의 언어로 바꿔 그에게 설명한다. 최근 많이 읽고 있는 장르소설이나 판타지 등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힘 있고 묵직한 소설이다.


일곱 살 여아를 죽인 퓨마를 죽이기 위해 예순여덟 살 가우초가 길을 떠난다. 그는 뛰어난 사냥꾼이다. 이 퓨마는 보통의 퓨마와 다르다. 영리하다. 늙은 몸은 이전처럼 퓨마 사냥을 쉽게 마무리하기 힘들다. 말에서 떨어져 다리가 부러진다. 고원에서 도움을 요청하려면 불을 피워야 한다. 정신이 없다. 이런 그를 고원을 지나 다른 곳으로 가려는 한 사람이 발견한다. 그는 네레오가 바라는 바를 들어주지 않는다. 왜냐면 그는 사형수이기 때문이다. 죽음이 임박한 그 순간 그의 일생이 시간 순으로 하나씩 독자 앞에 펼쳐진다. 아들을 판 아버지, 가우초로 자라 자신이 웨나라고 생각했던 존재의 갑작스러운 몰락, 웨나를 찾기 위한 도시행 등. 섬세하고 묵직한 문장으로 작가는 이 과정을 천천히 보여준다.


고원에서 홀로 지내야 하는 외로운 가우초가 쉽게 기대는 것은 술과 도박이다. 하지만 네레오는 술도 도박도 하지 않는다. 평생 그가 추구한 것은 바람을 만드는 사람 웨나다. 그가 간절하게 바란 것을 웨나를 찾는 것이다. 그의 이 바람을 사람들은 결코 이해하지 못한다. 아니 대부분 부정한다. 존재하지 않는다거나 환상이라거나 착각이라고 하면서. 그의 여행은 계속 이어지고 변화하는 사회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난다. 네레오는 이 혼돈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단순한 가우초의 삶에 비해 도시의 삶은 너무 복잡하고 어렵다. 그의 순수함이 묻어나는 장면 중 하나는 아나와 함께 한 밤의 여행이다. 아나의 순진한 열망과 사기극은 읽는 내내 가슴 아프게 한다.


전설은 바람을 타고 사람들의 입으로 입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어떤 전설은 그 도중에 사라지거나 왜곡된다. 한 가우초가 간절하게 바란 웨나는 어떨까? 우연히 발견한 목상의 흔적을 좇아 간 곳에서 들은 또 다른 웨나 전설은 그에게 자신의 길을 선택하라고 말한다. 그가 안락할 수도 있는 삶을 포기하고 웨나를 찾아 떠난 것도 자신의 길을 찾기 위해서다. 다시 어린 시절 그 고원으로 돌아온 이유도 그 때문이다. 다른 사람과 다른 길을 선택하면서 자신의 길을 걷는다. 이것은 우리가 두려움에, 좀더 편안함에 젖어 남들처럼 그 길을 걷는 것과 다른 선택이다. 쉽지 않은 길이지만 그는 행복하다.


작가는 이 소설을 쓰는데 두 가지 자료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말한다. 인터넷 정보들도 무시할 수 없다. 소설을 읽으면서 그가 그곳들을 한 번씩 다녀온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아마 작가의 뛰어난 필력 덕분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 소설을 다 읽은 후 나에게 강한 인상과 여운은 남기는데 일조한 것은 신형철 평론가의 한 마디다. “누구도 답을 알지 못하는 질문은 그것을 간절하게 묻는 것만으로도 인생을 조금은 달라지게 한다는 것을.” 선을 수행하는 스님을 떠올리게 하지만 우리 삶에 절실하게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멋진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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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러북클럽이 뱀파이어를 처단하는 방식
그래디 헨드릭스 지음, 강아름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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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툼한 책이다. 공식적으로 668쪽이다. 최근 이런 두툼한 분량을 조금 힘들어 하는 편이다. 재미와 상관없이 책 읽을 물리적 시간이 줄어들면서 이런 두툼한 책들을 의식적으로 멀리한다. 그래도 좋아하는 작가나 관심 있는 소설의 경우는 어쩔 수 없다. 이 책도 두 가지가 나의 시선을 끌었다. 하나는 호러북클럽이고, 다른 하나는 뱀파이어다. 북클럽 활동을 해 본 적이 없지만 책 읽기를 좋아하고, 이런 장르도 좋아하니 제목이 나를 유혹한다. 내가 얼마나 이런 유혹에 약한가. 그리고 목차에 나오는 낯익은 책 제목들은 얼마나 반가운지 모른다. 물론 읽은 책은 몇 권 없다. 모르는 책도 있다.


호러북클럽이 뱀파이어를 처단한다고 했을 때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 이미지는 뱀파이어를 처치하는 북클럽 회원들의 액션 활극이었다. 그런데 소설은 나의 기대와 다른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뱀파이어로 추정되는 인물이 등장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고, 이 뱀파이어와 이웃한 시간도 적지 않다. 목차에 나온 시간은 소설 속 시간의 흐름과 이어져 있다. 개인적으로 상당히 흥미롭게 읽었던 논의 장면은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속 남자 주인공을 둘러싼 논쟁이다. 그가 연쇄살인범이라고 주장하는 억지 대목을 보면서 이전에 고상한 책으로 자신들의 기호를 속였던 장면이 떠올랐다. <울어라, 사랑하는 조국이여>를 읽지 않고 참석한 북클럽과 달리 새롭게 결성된 북클럽은 피가 난무하는 책들이 많다. <사이코> 등은 어울리지만 달콤한 로맨스는 어울리지 않는데 왜 선택했지 하는 의문은 그들의 작은 논쟁 속에 나온다.


전직 간호사였던 퍼트리샤는 남편과 두 아이와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와 산다. 호러북클럽은 그녀의 작은 즐거움이다. 그녀의 평온한 일상이 이어지는 와중에 옆집 노부인이 그녀를 공격해 귀를 물어뜯는다. 겨우 노부인을 물리쳤는데 죽었다. 그리고 노부인의 조카라고 말하는 제임스가 등장한다. 퍼트리샤와 제임스의 첫 만남은 아주 인상적이다. 퍼트리샤는 집안에 누워 있는 제임스가 죽은 것으로 생각하고 인공호흡을 한다. 그가 놀라 깨어난다. 읽다 보면 이 소설 속 뱀파이어가 제임스란 사실을 금방 알 수 있다. 햇볕을 싫어하는 그의 성향과 증명서가 없다는 사실 등이 의심을 가중시킨다. 반면에 교묘하게 퍼트리샤의 동정을 사면서 자신이 원하는 바를 하나씩 이룬다. 미국 남부도시 찰스턴의 올드 빌리지에 뿌리를 내린다.


제임스의 등장에 가장 격렬하게 반대한 인물이 있다. 치매에 걸린 미스 메리다. 그녀는 제임스를 다른 이름으로 부르면서 그가 자신의 아버지를 죽였다고 말한다. 나중에 미스 메리는 금주법 시대 자기 아버지를 죽게 만든 사연을 퍼트리샤에게 말해준다. 그의 이름은 호이트이고, 미스 메리는 그의 사진을 가지고 있다고 외친다. 하지만 치매 걸린 노인의 말에 신경을 쓸 사람은 많지 않다. 늙지 않는 뱀파이어는 소설이나 영화 속 존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퍼트리샤를 둘러싸고 스산하고 이상한 일들이 일어난다. 작은 공포들이 조금씩 조금씩 그들 곁에 다가와 안으로 파고든다. 직접적이고 화려하지 않지만 조금씩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우리 곁에 있는 뱀파이어는 결코 조급하게 움직이지 않는다. 하루의 절반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그의 정체가 밝혀지면 금방 퇴치될 수밖에 없다. 그가 저지르는 행위는 호러북클럽 회원들이 즐겨 읽는 연쇄살인범의 행위와 닮아 있다. 자신의 정체를 숨긴 채 욕망을 이어가야 한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야만 그 정체를 알 수 있다. 확실한 증거가 없다면 잡을 수도 없고, 잘못하면 달아나 버린다. 작가는 이 둘을 묘하게 엮어서 한 이야기 속에 녹여내었다. 북클럽의 아줌마들이 뱀파이어를 처단하기 위해서는 힘을 합쳐야 한다. 현대 문명은 이런 협업 속에서 이루어졌다. 마지막에 제임스가 마을에 정착하게 도와주면서 교환한 2350달러 이야기가 나오는데 왠지 짠하다. 작가의 다른 책도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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