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눈고개 비화
박해로 지음 / 북오션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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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경잡록> 시리즈 최근작이다. 이 시리즈를 열심히 읽고 있다. 가장 먼저 나온 <전율의 환각>을 빼고 모두 읽었다. 올해가 가기 전 읽으려고 하는데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가끔 자주 읽거나 낯선 작가의 경우 인터넷 서점에서 작품 목록을 확인한다. 이 작가의 경우 대부분 읽었다. 단편 중 몇 편을 읽지 않았는데 있는 책은 찾아서 읽어봐야겠다. 얼마 전에도 이 비슷한 글을 쓴 듯한데 자꾸 뒤로 밀린다. <신 전래특급> 때문에 이번 출간작에 수록된 이야기가 적다고 생각했는데 이전 <화승총을 가진 사나이>도 두 편이 실려 있다. <전율의 환각>도 마찬가지다. 이전 작품에 등장한 원린자들이 이번 소설에 또 등장한다, 작가의 고향 섭주는 말할 것도 없다.


<외눈고개 비화>를 읽고 난 후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시간의 흐름에 대한 것이다. 서로 다른 공간에서 다른 시간의 흐름을 경험한 후 원래 세계로 돌아와 갑자기 늙는 사람 때문이다. SF소설 등에서는 시간의 상대적 흐름 때문에 두 사람의 외모가 확 달라지는데 말이다. 나의 저질 기억력을 탓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이번에도 일어난다. 소설 속 탁정암의 <귀경잡록> 한 꼭지를 그대로 실은 것이 이번이 처음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귀차니즘 때문에 다른 책의 내용을 확인하지 못했다. 나중에 이 시리즈가 완성되면 <귀경잡록>이란 단편집으로 나와도 재밌겠다고 생각한다. 이 시리즈가 파생적인 이야기이지만 원전은 첫 조우를 다루고 있고, 훨씬 고문의 느낌이 강하다.


추락한 비행선에서 나온 이상한 생명체와 그들과 싸운 한 사또 박고헌의 이야기는 예상한 것보다 훨씬 재밌다. 살아남기 위한 전쟁은 치열하고, 예상하지 못한 변수로 박고헌 측이 이긴다. 하지만 작은 실수로 이 승리는 지속되지 못한다. 하지만 이 이야기 속에 나오는 무기는 아주 매력적이다. 정겸을 구해 외눈고개로 들어간 장군의 숨겨진 욕망이 드러나는 대목과 비행선 내부에서 벌어진 반란 등의 이야기는 단순한 공포 소설 너머의 상황을 알려준다. 정렴에게는 하룻밤의 무섭고 놀란 체험이 외부의 오랜 친구에게는 40년의 세월이었다. 역사의 반복이 주는 오해와 몰이해는 여운을 남긴다. 비천자라고 불리는 외계생명체가 보여주는 섬찟한 모습과 그들이 만들어 놓은 공간 등은 참혹하다. 영상으로 만들어지면 얼마나 잔혹할지 미간이 찌뿌려진다.


<우상숭배>는 권윤헌이란 선비가 길을 잃고 금지에 들어가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펼쳐진다. 열두 개의 기이한 집과 한 집에서 발견된 조선의 금서들. 그 중에서 당연히 눈길을 끄는 것은 다양한 판본의 <귀경잡록>이다. 권윤헌과 노비 바우는 여섯 개의 눈을 가진 얼굴에 탈을 쓴 남자 천승도를 우연히 만난다. 바우의 기지로 그를 잡는다. 그리고 지하에 갇힌 일곱 여자를 구한다. 그런데 이 중에서 청아라는 절색의 여인이 혼자 달려나간다. 이후 청아의 아버지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천승도는 자신을 풀어달라고 말한다. 아침이 되자 그는 산산조각난다. 빛에 약하다. 이것은 전편에 나온 비천자들도 마찬가지다. 이런 장면을 볼 때면 두 가지가 머릿속을 스쳐지나간다. 하나는 <우주전쟁>이고, 다른 하나는 <드라큘라>다.


<귀경잡록> 속 이야기는 권윤헌이 지금 경험하는 일에 대한 작은 답이다. 천승도는 영생을 얻었지만 반쪽짜리다. 자신의 의지가 제거된 영생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세상사가 자신의 뜻대로 흘러가지는 않는다. 이 중편에서 재밌는 대목은 권윤헌이 아니라 청아의 아버지 이야기다. 청아가 아버지의 부름을 받아 나아가 만나는 불상의 존재는 아주 수상하다. 원린자의 흔적을 쫓아 추살하는 부대의 존재도 놀랍다. 서로 다른 별에서 온 원린자들이 싸우는 장면에 나오는 주문과 이야기는 조금 색다른 느낌이다. 그리고 자신의 목숨 앞에 너무나도 쉽게 변하는 마음과 자신의 지식 안에서 상황을 판단하는 장면은 아주 현실적이다. 이전 이야기에 나온 원린자들이 등장하는데 언제 인물도를 한 번 그려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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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이 모조리 사라진다면
리처드 파워스 지음, 이수현 옮김, 해도연 감수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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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난 작가다. 하지만 이 작가의 다른 소설은 늘 나의 위시리스트에 올라 있다. 2019년 퓰리처상 수상작인 <오버스토리>다. 워낙 두툼한 분량이라 쉽게 다가가지 못하고 있다. 혹시 다른 책이라도 읽은 적이 있는지 확인해 봤지만 본 책이 없다. <갈라테아 2.2>란 책만 보인다. 낯설다. 2021년 부커상과 전미도서상 동시 노미네이트되었다는 소식이 있지만 수상은 못했다. 한국 작가들이 부커상 인터내셔널 후보에 이름을 올리면서 인기를 끌고 있지만 아직 크게 관심을 두지 않고 있다. 뭐 이미 가지고 있는 책이라고 그런 것도 있지만 말이다. 이런 문학상 수상 소식은 예전처럼 나의 관심을 그렇게 강하게 끌지 않는다. 다른 문학상에 더 눈길이 가기 때문이다.


새들이 모조리 사라진다면 어떻게 될까? 이 소설의 번역 제목을 보고 처음 든 생각이다. 벌들이 사라진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 하는 소설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읽지 않았다. 원래 제목은 다른 것<bewilderment>인데 바뀌었다. 더 강한 인상을 남긴다. 사전을 보면 어리둥절, 혼란, 당혹 등의 뜻이 보인다. 이 감정을 소설을 읽으면서 자주 느꼈다. 우주생물학자 시오의 아들 로빈이 앓고 있는 병이 정확하게 무엇인지, 시오가 아들의 치료를 거부하는 그 감정의 기저에 깔린 것은 무엇인지 등이다. 로빈과 함께 자신의 전공 분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도 낯설다. 외계 행성을 자신들이 들여다보는 듯하게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돌아보면 그 상상력의 대화가 내 우주와 관련해서 이해해도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화자는 시오다. 그의 아들 로빈은 분명하게 장애가 있다. 의사에 따라 병명이 달라진다. 과학자인 아버지는 아이가 약을 먹고 멍해지길 바라지 않는다. 학교의 생각은 다르다. 약을 먹기를 바란다. 쉽게 충돌을 예상할 수 있다. 실제 학교에서 사건이 하나 일어난다. 가장 친한 친구에게 폭력을 휘둘렀다. 서로 입을 다물어 정확한 답을 말하지 않지만 맞은 아이의 부모가 말해줘 사실의 일부를 알게 된다. 로빈의 엄마 얼리사는 지구상의 모든 존재를 사랑한 동물권 활동가였다. 차 사고로 죽었다. 그 장면을 본 사람이 없다. 추측만 가능하다. 얼리사의 죽음은 아빠와 아들에게 큰 슬픔이자 부담이다. 이 소설 속에 얼리사의 기억과 활동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아들과 자연으로 나아가 보고, 만지고, 느낀다. 이 여행에도 얼리사의 기억은 따라온다. 아홉 살이지만 로빈은 채식주의자다. 추수감사절에 일어난 사건 하나는 이 아이가 겪는 혼란과 슬픔을 그대로 보여준다. 짧게 묘사된 조손 사이의 화해 장면은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이 아이의 장애가 개선되는 상황이 생긴다. 실험 단계에 있는 ‘디코디드 뉴로피드백’ 치료를 받은 다음이다. 이 치료는 얼리사와 시오가 이전에 다른 방식으로 실험에 참여한 적이 있다. 로빈은 얼리사의 감정 지문을 자신의 뇌 속에 조금씩 받아들인다. 아이의 사고나 행동이 많이 좋아진다. 하지만 얼리사의 기억들이 아이의 말과 행동에 조금씩 묻어나온다. 이 부분은 대니얼 키스의 <앨저넌에게 꽃을>이란 SF소설을 떠올린다. 실제 작가는 초반에 이 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앨저넌에게 꽃을> 읽은 것이 너무 오래되어 자세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 재미있게 읽은 것만 기억난다. 이후 이 소설은 새롭게 번역되어 많이 나왔고, 영화나 드라마로도 제작되었다. 이렇게 다른 소설 속에서 이 책을 만나면 다시 읽고 싶다. 디코디드 뉴로피드백 치료로 증상이 개선되는 장면과 이 소설이 겹쳐진다. 역자 후기에도 이 부분이 나온다. 증상이 개선된 아이를 논문에 올리고, 더 많은 연구비와 특허를 받고 싶어 한다. 시오는 아이의 의사를 묻어 익명으로 영상을 올린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익명은 곧바로 실명으로 이어진다. 아빠에게는 이 문제는 혼란스럽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다. 아이는 자신의 유명세가 자신이 주장하는 생명체의 생존 유지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소설 속에서 펼쳐지는 정치적 사회적 모습은 가장 먼저 트럼프 시대를 떠올리게 한다. 기후 위기가 불러온 재앙이 나오고, 광우병 바이러스가 소들을 쓰러트린다. 밀을 재배하는 지역을 초토화시키는 바이러스가 나온다. 집권 세력은 이런 사실들은 뒤로 숨긴다. 시오 등의 우주과학자들이 바라는 우주망원경 개발과 건설에 대한 논의도 쉽지 않다. 인종 혐오와 음모론이 판 친다. 개인의 삶과 별로 상관없는 듯한 정치권의 변화가 어떻게 이 가족에게 스며드는지 작가는 잘 보여준다. 아이가 광우병에 걸린 소가 쓰러지는 장면에 발버둥칠 때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앞을 보면 분명해진다. 가상의 미래를 다룬 듯해서 어떤 대목은 SF소설 같다. 예상한 것보다 가독성은 조금 부족하지만 묵직하고, 다층적이고, 현실적이며 사실적인 이야기가 머릿속을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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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의가 모이는 밤
니시자와 야스히코 지음, 주자덕 옮김 / 아프로스미디어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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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인격전이의 살인>을 읽은 힘들게 읽은 적이 있다. 내 회색 뇌세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작품이었다. 대표작인 <일곱 번 죽은 남자>는 책장에 몇 년째 고이 모셔 두고 있다. 작가의 다른 책을 검색하니 낯익은 책들이 보인다. 절판된 책들이 많은데 사 놓은 책들이 보인다. 다행이다. 물론 없는 책도 있다. 작가 후기를 보면 히가시노 게이고의 <조인계획>의 설정에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얼마 전 이 소설을 재밌게 읽은 기억이 있는데 설정이 비슷한 부분은 있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는 아주 다르다. 이 소설이 훨씬 어둡고 엽기적이고 황당하다.


1996년 작품이다. 아직 휴대전화가 일상화되기 전이다. 출판사가 친절하게 이 부분을 앞에 적어 놓았다. 시작부터 6명을 죽였다는 마리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런데 같이 온 소노코는 자신이 죽이지 않았다. 마리는 소노코를 죽인 범인을 찾아 그에게 나머지 6명 살인 혐의를 씌우려고 한다. 자신이 죽인 여섯 명의 이름이 나온다. 모두 숫자가 들어가 있다. 이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모르겠다. 자신의 정당방위를 내세우기 위해서는 소노코를 죽인 범인을 찾아야 한다. 살인자의 추리가 시작되다. 이야기는 이 저택에 오기 전 상황부터 하나씩 흘러나온다.


마리가 어떻게 카즈노리 교수의 별장에 오게 되었는지 먼저 설명한다. 소노코가 카즈노리 교수에게 매혹되어 있다. 신문의 운세난을 보고 그 별장으로 가야 한다고 우겨, 편도 3시간 길은 나섰다. 태풍이 몰려오고 있다. 이 별장 바로 위에 유명한 호텔이 새롭게 개장했다. 처음엔 이 호텔에서 살인이 일어났다고 생각했는데 아니다. 마리의 이야기를 따라가면 카즈노리 교수의 별장에 어떻게 여덟 명의 사람들이 모이게 되었는지 나온다. 이들이 모이게 된 사연도 어떻게 보면 황당하다. 수상하다. 누구 하나 정상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뭐 여섯 명을 죽인 마리도 그렇지만.


별장의 살인과 다른 살인 무대가 하나 더 있다. 호스티스 연쇄 살인사건을 수사 중인 미모로라는 형사의 시점으로 진행된다. 그는 수사하는 중 토모에라는 호스티에게 반해 그녀 집을 찾아갔다가 그녀가 살해당하는 장면을 본다. 당연히 들어가서 말려야 하지만 막지 않는다. 왜 막지 않았느냐 하는 변명이 구구절절 흘러나오지만 사실 여부와 관계없는 일이다. 집에 돌아와 쉬고 있는데 이 살인사건으로 연락이 온다. 피살자가 이전에 그의 조사를 받은 적이 잇고, 그의 집이 근처라는 이유 때문이다. 그리고 현장에서 다른 사체 한 명을 더 발견한다. 이 의문의 여인이 토모에를 죽이고 청산가리를 먹고 자살했다고 수사를 종결하려고 한다. 실제 범인이 누군지 알고 있는 미모로는 진범을 쫓고 싶다.


소설은 두 살인무대를 배경으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간다. 두 시간이 미묘하게 다르게 흘러가는데 어느 순간 이 사실이 드러난다. 별장으로 가는 길과 호텔로 가는 길이 막혔다는 주장이 수상하다. 이 길 막힘이 수상한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카즈노리 교수의 별장을 지키는 이오스미도 마찬가지다. 소노코가 분명히 아침에 오늘의 운세를 보고 카즈노리 교수와 통화를 했다고 했는데 말이다. 그리고 마리는 스스로 자신이 카즈노리 교수와 밀월관계라고 말한다. 교수의 부인과 만난 적도 있다. 소노코의 요청 때문에 별장에 전화했을 때 교수 부인의 목소리를 들었다. 이 시간들이 미모로 형사의 수사와 연결되면서 기억이 새롭게 재정립된다.


수상한 사람들의 모임, 우발적으로 이어지는 연쇄살인, 예상하지 못한 친구의 사체와 다른 살인무대 등이 엮이고 꼬였다. 기이한 살인 사건과 상해사건이 벌어지고 있다는 정보가 미모로를 통해 알려진다. 마리가 여섯 명의 사람을 죽이는 과정은 한 편의 코미디 같다. 잔혹 코미디다. 이 살인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하겠다는 의도도 정상이 아니다. 뒤틀린 상황과 심리가 강하게 바닥에 깔려 있다. 제목 그대로 살의가 모인 밤이다. 그리고 이 밤에 모인 사람들의 정체도 의심스럽다. 뒤에 가면서 밝혀지는 진상과 예상하지 못한 장면들은 선입견을 강하게 부각시키는 작가의 트릭에 완전히 당할 수밖에 없다. 모두 읽고 앞으로 돌아가 확인할 것이 많은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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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멋진 날
정명섭 외 지음 / 북오션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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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익은 작가들이 참여한 고3을 주인공으로 한 앤솔로지다. 이 앤솔로지 속 고3은 나의 고3과 많이 다르다. 시대도 다르고, 상황도 다르니 당연한 일이다. 세 명의 작가는 낯익지만 홍선주 작가는 나의 기억이 맞다면 처음 읽는다. 매년 주변에 고3 수험생이나 재수생들이 있다. 그들의 하루 일과를 들으면 더 심해진 일정에 놀란다. 그리고 살짝 의문을 품는다. 그 일정 내내 그들은 얼마나 집중해서 공부할까? 하고. 나이가 들면서 학벌에 대한 기대치가 점점 낮아진다. 바뀌고 있는 세상을 생각하면 기존의 학벌이 아이의 성장을 막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한다. 이 앤솔로지 속 네 명의 고3은 솔직히 말해 기성세대의 고3과 다르다. 그래서 그들의 행위와 생각에 더 빨려 들어간다.


범유진의 <겨울이 죽었다>는 첫 문장도 ‘겨울이 죽었다’이다. 쌍둥이 동생의 이름이 겨울이다. 겨울이 죽은 이유는 한때 언론에 잠시 나왔던 현장실습생 자살과 연결된다. 통신사 콜센터에 배정되어 부당한 지시와 감정 노동으로 겨울이 자살했다. 같이 나간 친구들은 미안하다 말만 하고 이유를 말하지 않는다. 이 부당한 현실에 부모들의 대응도 원인 파악보다 합의로 넘어갔다. 고3인 가을은 수능시험장 옥상에서 뛰어내려 이 사건을 다시 되살리려고 한다. 읽다 보면 너무 현실적인 상황들에 먹먹하다. 성적과 학교의 취업률 때문에 극단적 상황으로 내몰린 청소년들을 보면서 나의 마음을 다잡는다. 붕어빵을 파는 서점 아저씨 이야기에 눈시울이 붉혀진다.


표제작 <어느 멋진 날>은 정명섭의 소설이다. 고3이 된 고동철은 160센티미터를 겨우 넘는 키에 몸무게 80킬로그램의 외모를 가지고 있다. 학교에서는 앗싸다. 집은 어머니가 겨우 집안을 유지하고 있다. 불안불안한 상태다. 이런 고동철의 유일한 친구 범진이 전학을 간다. 그런데 범진이가 학교 일진 연성이에게 삥을 뜯기는 영상을 가지고 있다. 연성은 자신이 읽지도 않은 책들을 다른 사람들이 대신 읽고 써 준 독후감으로 상을 받을 예정이다. 범진과 동철은 교육 도서관으로 가서 연성에게 한 방 먹이려고 한다. 성공할까? 성공한다고 해도 앞으로의 학교 생활은 또 어떻게 될까? 제목대로 멋진 하루가 펼쳐진다.


홍선주의 <비릿하고 찬란한>은 한국이 무대가 아니다. 프랑스 학교로 전학 온 정윤의 이야기다. 정윤이 전학 온 이유는 친구를 옥상에 밀어버린 기억 때문이다. 작가는 화자를 정윤이나 전지적 시점이 아닌 정윤의 마음으로 설정했다. 전학 온 프랑스 학교도 인싸와 앗싸로 나누어져 있다. 정윤도 앗싸다. 은근히 따돌림을 당하는 영국 전학생 마르셀이 있다. 그는 도난 사건의 범인으로 몰린다. 사실은 아니다. 정윤은 이 사실을 알지만 귀찮아질 상황을 피하기 위해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사건이 정윤이 한국에서 어떤 일을 겪었는지 알려준다. 성적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수많은 한국 학생들의 내면을 솔직하게 그렸다. 홍선주의 소설은 처음 읽는데 아직 장편은 보이지 않는다. 아쉽다.


김이환의 <오늘의 이불킥>은 가끔 아이와 채널 돌리다 보는 <마계학교 이루마군>이 떠오르는 소설이다. 특이하게 마계의 포털이 열린 후 마법 대학에 진학하기 위한 서연의 편지로 가득 채웠다. 인간이 마계 고등학교에 가서 경험하게 되는 부끄러운 일들을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형식으로 보여준다. 대마왕이 용사에게 죽은 마왕성이 학교로 바뀌었다는 것이나 다양한 판타지의 종족들이 학교에서 공부한다는 설정은 낯익지만 재밌다. 가벼운 전개로 부담없이 읽을 수 있고, 마계 고3의 현실과 고민은 입가에 미소를 짓게 한다. 소소한 곳에서 작은 웃음을 터지게 하는데 캐릭터의 특징을 잘 부각시켰다. 시리즈로 내놓아도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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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의 여름
츠지무라 미즈키 지음, 구수영 옮김 / 내친구의서재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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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츠지무라 미즈키의 소설을 읽었다. 상당히 두툼해 읽는데 시간이 꽤 걸렸다. 일본 작가의 소설을 많이 읽는 편인데 가끔 이름을 헷갈려 하는 경우가 있다. 이 작가가 그런 사람 중 한 명이다. 작품들을 검색하니 읽은 책들이 보인다. 생각보다 많다. 읽으려고 사 놓고 묵혀 둔 책들도 보인다. 이 소설에 대한 재밌는 소개가 하나 있다. 무려 열한 개 신문사에서 동시 연재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일이 가능한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대단하다. 그리고 이 소설에서 던지는 문제들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이야기의 구성 또한 단선적이지 않고 복합적이다. 처음에는 몰입하는데 시간이 걸렸지만 어느 순간 빠르게 빠져들었다.


대안학교 미래 학교의 옛 터에서 어린 소녀의 것으로 추정되는 백골 시체가 발견된다. 노리코는 이 시체가 미카가 아닐까 하는 의문을 품는다. 그리고 미카의 이야기로 넘어간다. 미래 학교 유치부의 미카가 어떤 생활을 하는지, 어떤 생각을 품고 있는지 보여준다. 미래 학교에 대한 두루뭉술한 윤곽은 독자로 하여금 오해하고 상상하게 만든다. 엄마, 아빠와 함께 살고 싶어하는 미카의 모습은 이 학교를 나의 경험으로 판단하게 한다. 노리코의 이야기로 넘어가면서 이 미래 학교의 실체가 조금씩 드러난다. 하지만 진짜 모습이 드러나는 것은 어린 소녀의 시체가 발견된 후 그 소녀의 정체를 알고 싶어하는 노부부가 등장한 후다. 미래 학교가 판매한 샘물이 문제를 일으키고 노리코가 방문한 학교는 문을 닫았다.


노리코가 미래 학교 여름방학 캠프에 간 것은 반 친구 유이의 엄마가 이 학교를 믿었기 때문이다. 이 학교의 특징 중 하나가 ‘문답’인데 이것이 아이의 공부에 도움을 준다고 말한다. 미래 학교에서는 문답으로 자신들의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한다. 자유로운 사고와 발표가 특징이다. 홍보 영상의 샘과 학교 생활은 아이를 매혹하기 충분하다. 반의 최고 인기인 유이와 함께 간다는 것도. 학교로 가는 길은 험하고 힘들다. 현장에 도착해서 마주한 것은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 친해지고 싶은 유이와 다른 반이 되고, 집에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이때 그녀 곁에 미카가 나타난다. 유치부의 소녀는 이제 초등학교 4학년이 되었다. 미카와의 만남은 노리코가 이 캠프를 재밌게 즐기게 만든다.


노리코가 이 캠프에 참여한 것은 모두 세 번이다. 두 번은 미카를 만났지만 마지막에는 만나지 못했다. 사고가 생긴 것은 두 번째 참여 후에 일어났다. 어린 시절의 기억은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사라진다. 이후 노리코는 변호사가 되어 아이를 낳고 살고 있다. 그녀의 일상은 평범한 워킹 맘과 다를 바 없다. 남편은 같은 변호사이지만 다른 사무소 소속이다. 나이 마흔에 딸을 어린이집에 보내고 있다. 이제 그 어린이집을 나와 다른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가야 한다. 국공립에 지원하지만 쉽지 않다. 아이를 키우면서 경험하게 되는 일들이 하나씩 흘러나온다. 이 경험과 미래 학교의 교육과 조금씩 대비되고 맞물려 진행된다. 현실과 이상의 육아와 교육이 이야기 속에 녹아 든다.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에는 두께가 부담된다. 담고 있는 이야기도 결코 가볍지 않다. 30년 전 있었던 한 어린 소녀의 죽음을 둘러싼 비밀은 읽는 내내 호기심을 자극한다. 죽은 아이의 정체가 궁금하고, 미래 학교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사건과 소송도 흥미롭다. 샘물 사건 이후 원래 있던 학교와 생수 공장은 폐쇄되었지만 다른 곳의 학교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은 현 교육체계에 대한 불신이 한몫 했다. 나쁘게 해석하면 한 사이비 종교 단체의 행위로 볼 수 있지만 노리코가 경험해서 들려준 캠프의 모습을 보면 아닌 것 같다. 하지만 샘의 물이 그렇게 비싼 가격에 팔리는 것을 보면 종교적 기능이 전혀 없다고 할 수도 없다. 옴 진리교의 지하철 사린 가스 사건을 떠올렸다고 한 부분은 묘한 설정이다.


하나의 사건과 여러 개의 소송을 두고 서로 다른 입장을 내세우는 모습이 눈길을 끈다. 작가는 이 각각의 입장을 말하게 놓아둔다. 특별하게 가치 판단을 내리지 않는다. 자신이 미래 학교 여름 캠프에 참여했다는 사실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여향을 미칠지 돌아보는 장면들은 아주 인상적이다. 그리고 남편과 이 소송 대리인으로 참여하는 부분을 이야기할 때 남편이 말한 대목은 일에 대한 애정과 깊은 신뢰가 없다면 불가능하다. 미래 학교가 어린 아이들을 부모와 떨어트린 후 생활하게 하고, 자신들의 삶의 형태를 유지하는 모습은 나에게 낯선 설정은 아니다. SF나 판타지 소설에서 가끔 나오는 설정이다. 나에게 인상적인 것은 이런 설정보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과 기억과 선택의 문제다. 담담하고 서늘한 문장과 표현들은 이것을 잘 드러낸다. 곳곳에 놓아둔 묵직한 문제는 깊이 생각할 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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