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별장, 그 후
유디트 헤르만 지음, 박양규 옮김 / 민음사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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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9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단문과 일상생활을 그려낸다. 화려한 수상 경력이 돋보인다. 하지만 나의 취향엔 아니다. 집중하여 읽지 못한 잘못도 있을 것이고, 그녀의 이야기가 마음에 와 닿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미시적인 묘사와 서술은 그 속에서 내가 찾고 있는 것이 무언지 잊어버리게 한다. 찾는 것을 포기하고 문장에 집중하면 짧은 문장에 호흡이 빨라진다.

 

대학 시절 단편에 재미를 들였지만 외국소설의 경우는 아직도 예외다. 남들이 다 좋아하는 알퐁스 도데의 소설조차 나에겐 재미없다. 차라리 콩트라면 그 구분이 잘 되지 않는 이름에 상관없이 집중하기 쉬울듯하지만 인물과 지명 등에 공을 들이면 들일수록 쉽지 않다. 등장인물이 많고 이름으로 남녀를 구분해야 할 경우는 더욱 그렇다. 장편에서 잠시 흐름을 놓친다고 해도 곧 다른 이야기에서 흐름을 찾을 수 있기에 편하게 읽는다.

 

9편의 단편 중 가장 마음에 든 것은 역시 표제작이다. 첫 작품인 '붉은 산호'와 ‘헌터 톰슨 음악’도 마음에 든다. ‘붉은 산호’는 증조할머니 이야기와 자신의 사랑 이야기를 교묘하게 엮어 비극을 보여주는데 왠지 비극처럼 느껴지지 않기에 모호한 문장과 확실한 사실로 재미가 있었다. ‘헌터 톰슨 음악’의 노인과 소녀의 관계는 본문에 나오는 수많은 음악과 더불어 조그마한 설레임이 만들어내는 풍경이 좋다. 역시 가장 마음에 든 작품은 ‘여름 별장. 그 후’다. 매력적이고 잘생긴 택시 운전사 슈타인과 나의 관계부터 그를 둘러싼 성관계들과 다 허물어져가는 집에 대한 묘사와 애정은 빙판에 빠진 친구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해프닝과 묘하게 어울린다. 마약을 하고 빙판에 빠진 친구를 보고 웃고 다 허물어져가는 집을 거액을 들여 산 후 좋아하는 그들이 이해되지 않지만 마지막에 나타나는 미스터리한 마무리와 문장 ‘나중에’에 빠져든다.

 

편하게 읽히는 일본 현대 소설을 요즘 자주 본다. 가끔 한국소설도 보지만 무겁고 복잡한 심리를 표현한 소설은 좀 멀리한다. 가끔 읽기는 하지만 역시 그런 소설들은 읽을 당시에도 읽은 후에도 여파가 남아있다. 이 소설집도 모두 읽은 지금 그 속에서 기억나는 것은 거의 없다. 왜? 라는 질문도 하고 싶지만 짧은 단문과 나에겐 비일상적인 삶들이 거리감을 둔다. 나중에 다시 이 단편들에 공을 들여 읽어봐야지 하는 마음이 생기지만 기약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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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조정육 동양미술 에세이 1
조정육 지음 / 아트북스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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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김춘수의 ‘꽃’을 연상시키는 여는 글로 나의 관심을 끌었다. 에세이를 잘 읽지 않는 내가 이 책을 선택한 것은 내가 작가에 대해 잘 알아서도 아니고 동양화를 즐기기 때문도 아니다. 단지 조금 더 동양화에 대한 몇 가지 지식을 얻고자 하는 마음에 이 책 제목이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간결하고 마음을 조용히 움직이는 표지가 있었다.

 

동양화에 대한 나의 지식은 서양화에 대한 것만큼이나 없다. 아니 어쩌면 더 없을지도 모르겠다. 단지 몇몇 작가나 작품에 대한 일반적인 지식이 있을 뿐이다. 그것 또한 자주 화가나 그림에 대한 정보를 헛갈려한다. 이 책에 나온 그림들 대부분이 워낙 유명한 작가의 작품이다 보니 한두 번 이상 본 기억은 있다. 하지만 저자는 단순히 그림에 대한 해석보다 자신의 삶을 연결시키면서 쉽게 우리에게 그림에게 대한 정보를 알려준다.

 

기본적으로 동양미술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의 삶이 아닌가 한다. 어머니, 아버지, 남편, 두 아들, 형제들에 작가의 감정이 동양화와 만나며 그림에 대한 저자의 이해를 보여준다. 나 자신도 가끔 그림을 보면서 새로운 것을 찾고, 알 수 없는 감정을 느끼기도 하는데 이 에세이를 읽다보니 작가가 그림을 읽는 것과 내가 보는 것이 다른 경우를 많이 접한다. 그림에 대한 정보를 많이 가지고 있지 않은 내가 정확한 평을 하기 어렵지만 저자가 느낀 감정에 쉽게 빨려 들어가지 못하는 것은 아마 경험의 차이가 아닌가 한다. 간접경험만으로 부족한 삶의 현장에서 직접 겪은 생생한 체험이 그것을 더욱 강하게 만드는 듯하다.

 

누구나 살아가고 언젠가는 죽는다. 하지만 살아가는 방식이나 죽는 방법은 모두가 다르다. 그림에 대해 화가가 그 의도를 직접 해명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누구나 자신의 경험이나 인식의 한계 안에서 해석을 새롭게 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모나리자’에 대한 대단함도 아름다움도 아직 절실히 와 닿지 않고, 저자와는  다른 경험을 가지고 있는 내가 그녀의 이야기에 빠져드는 것은 쉽게 쓴 문장과 자신의 경험을 뛰어난 작품 해설과 함께 보여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얼마나 열심히 공을 들여야 나에게 그림이 말을 걸어올까? 부럽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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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를 돌봐줘
J.M. 에르 지음, 이상해 옮김 / 작가정신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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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이한 구성과 진행과 등장인물들이다. 완전히 낯선 것은 아니지만 흔하게 접하는 구성이나 진행이 아니다. 일기와 편지로 이루어진 이 소설이 독특한 등장인물들과 상황으로 재미를 이어간다. 그 상황들 대부분이 치밀하게 연출되어 있고, 돌발 상황은 가볍게 제압된다. 예상한 죽음과 예상하지 못한 결말이 책을 모두 본 후 지금의 느낌이다.

 

추리소설로 처음 시작하였지만 풍자소설처럼 느껴지는 초반 때문인지 범인이나 범죄에 집중하기보다 등장인물들에 관심과 흥미를 느꼈다. 서로 마주 보는 아파트에 살면서 서로가 훔쳐보기 변태로 착각하는 대목이나 온갖 동물을 괴롭히는 꼬맹이나 괴팍한 짜깁기 영화감독 등이 시선을 끌었다. 화자가 특별히 있다기보다 마주보는 두 집에 사는 라디오 작가 코른느루와 계란 예술가 플뤼슈의 일기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이 둘의 일기가 번갈아가면서 이야기를 풀어가는 중에 가끔 관리인 라두 아줌마의 편지나 다른 이들이 아주 잠깐 끼어든다. 물론 가장 무서운 보이진 않는 어둠 속의 관찰자도.

 

사람들은 흔히 자신들의 시각으로 사물이나 사람을 본다. 여기엔 선입관이나 왜곡된 시선이 들어가기 마련이고 한두 번의 착각도 몇 번의 우연을 거치다보면 명확한 정답처럼 굳어지게 된다. 만약 그 사이에 다른 누군가가 있어 몰래 그 틈을 조장한다면 그 효과는 더 대단하고 빠를 것이다. 이 특이한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그런 조짐들이 곳곳에 드러난다. 실수로 인해서든 고의에 의해서든 다른 사람의 삶에 간섭하는 것이다. 뭐 대부분은 사소한 것으로 웃음을 주거나 그냥 황당한 상황으로 처리되지만 섬뜩한 악의가 끼어드는 순간 코미디 같은 이 소설은 추리소설의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열심히 범인이 누군지 찾게 된다.

 

누가 범인인지 몇 명을 의심하고, 용의자 선상에 올려놓았지만 범인 맞추기에 신경을 쓰지 않은 것인지 못쓴 것인지 맞추지 못했다. 범인을 찾으려고 하는 순간 나타난 새로운 입주자의 이메일이 주는 웃음에 긴장감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앞에 느낀 웃음들이 새로운 등장인물로 다시 살아난 것이다. 읽는 동안 그 괴상한 사람들이 지극히 정상(?)적으로 느껴졌는데 그녀의 등장으로 다른 시각에서 보게 된 것이다. 재미있는 구성이자 연출이다.

 

소설을 읽다보면 재미있는 인물과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지는 인물이 항상 있다. 재미있는 인물은 개구쟁이를 넘어 엽기적인 브뉘노다. 그의 엽기행각은 그 아버지 과거를 이야기한 부분에서 이미 보았지만 그를 둘러싼 학교에서 벌어진 일들은 폭소를 자아내었다. 공부를 잘해서 월반을 한 것도 아니고 월반 때문에 보낸 선생과 받은 선생 사이가 벌어지거나 다시 되돌려 보낸 일들이 그 꼬마의 황당한 놀이와 기발한 상상력과 더불어 재미를 준다. 그리고 어떤 외모일까 궁금한 인물은 비중은 많지 않지만 작가가 그려낸 모습에 환상을 품게 되는 폴랑타 부인이다. 환자도 그녀를 보기 위해 계단을 오르내리게 할 것이란 표현은 비록 플뤼슈만의 생각일지 모르지만 머릿속에서 그녀를 생각하게 만든다. 또 가끔 등장하는 에로소설가의 소설 장면은 한때 공중화장실 벽을 채웠던 음담패설을 떠올린다.

 

열에서부터 영으로 이어지는 카운트다운 구성인데 마지막에 가서 추리소설 한 편을 자연스럽게 연상한다. 작가가 그 작품을 염두에 두고 쓴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영향은 받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약간은 급격한 마무리와 예상하지 못한 결말이지만 다양하고 독특하면서 기이한 사람들이 보여주는 삶은 웃음과 즐거움을 주기에 충분하다. 첫 작품이라니 다음 작품에선 어떤 인물들을 데리고 나올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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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의 수프
마쓰다 미치코 지음, 박승애 옮김 / 노블마인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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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을 다룬 소설이나 만화를 볼 때면 늘 입안에 감도는 그리움을 느낀다. 먹고 싶다는 욕구와 함께 지나간 추억들이 살포시 고개를 내밀고 기억 속으로 나를 데려가거나 그곳에 가고 싶다는 마음을 강하게 부채질한다. 요즘 음식 프로그램이 방송가를 뒤덮고 있는 것을 보면 나만 그런 것이 아닌 모양이다. 얼마 전에 본 ‘식객’이라는 영화에서 절실히 느낀 것이지만 최고의 음식은 추억이었다. 상황과 기분 등의 요소에 따라 맛본 음식의 맛이 모두 다르겠지만 기억 속에 남아있는 최고의 음식은 항상 추억과 함께 하기 때문이다.

 

소설 속 두 남녀가 찾아가는 것도 역시 추억이다. 이 두 남녀 모두 상처받고 상실감에 휩싸여 있다. 유이코는 죽은 언니가 먹었다는 그 수프를 찾기 위해 도쿄 시내 유명한 음식점을 찾아다니고, 요리사 료스케는 사랑하는 아들을 잃은 후 요리 속에서 잊었던 감정과 사랑을 찾는다. 어쩌면 결말이 뻔한 듯한 소설이지만 그 가는 과정과 요리에 대한 설명들을 보다 보면 이 두 사람의 과거에 대해 궁금해지고, 호기심이 조금씩 풀리면서 이 둘의 자연스러운 만남을 기대하게 된다. 과연 어떤 식으로 만나고 이야기는 마무리될까? 간단하게 읽으면서 추리를 해보지만 나의 생각은 너무 공식에 굳어져 있었다. 예상하지 못한 결말이라고 해야 하나?

 

사연을 보고 각각의 입장을 생각하다보면 누구도 미워할 수 없다. 유이코의 언니를 버린 남자의 사연을 알게 되는 순간 사회의 높은 벽을 알게 되고, 아들을 잃은 미키의 타오르는 듯하고 가슴 깊은 곳에 자리 잡은 분노를 보면 그래! 라고 하면서 동조하게 된다. 자신의 실수로 딸아이가 언어장애로 고생하였고 남자에게 버림받았다는 자책에 음식도 제대로 먹지 못하는 엄마를 보면 이 세상 부모의 마음이란 것을 조금은 이해하게 된다. 이 진행 속에서 나의 눈물샘을 자극한 것은 역시 유이코의 언니가 남자에게 버림받은 후 몸을 떨며 찾아간 음식점에서 먹은 수프와 좋은 남자를 엉성한 발음으로 말하는 장면이었다.

 

언제부터인가 비교적 자주 뷔페식 레스토랑에 자주 간다. 요즘 워낙 시푸드니 샐러드바니 하는 것이 많이 생기다보니 친구와 친구 아내와 함께 가끔 가게 된다. 또 가끔 오는 쿠폰 등으로 싼 가격에 먹을 수 있어 찾아가면 먼저 수프부터 먹게 된다. 비록 늘 먹는 수프지만 아주 맛있게 먹는다. 어릴 때 포장된 수프를 집에서 혼자 먹었던 기억을 생각하면 먹고 싶은 마음이 별로 없지만 큰 통에 담겨있는 수프를 보면 국자가 절로 간다. 어떤 때는 두세 번도 먹기도 하는 것을 보면 역시 부담 없는 음식이다. 그냥 맛있게 아무 생각 없이 먹는 이 음식에 사연과 인연을 담아내 그려낸 이 소설이 기분 좋게 읽히는 이유도 아마 수프처럼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문장과 진행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읽다보니 연속으로 사랑하는 자식을 잃은 사람들의 마음을 담은 소설을 읽게 되었다. 그 상실감을 도저히 짐작할 수 없지만 그들의 삶이 무참히 깨어지는 것을 보면 안타까움을 느낀다. 동시에 그들이 그 불행과 아픔을 조금씩 극복하게 되면 격려의 말과 응원을 보내고 싶다. 부담 없이 가볍게 먹을 수 있는 수프에도 많은 정성과 노력이 깃들어 있음을 보면 가족 사이의 애정은 더하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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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애 가장 슬픈 오후
존 번햄 슈워츠 지음, 김원옥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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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아이는커녕 결혼조차 아직 하지 않은 내가 자식에 대한 부모의 마음을 이해하기는 너무 어렵다. 다만 나에게 내려진 부모님의 사랑으로 미루어 짐작할 뿐이다. 이 짐작만으로도 이 소설의 설정을 이해하는데 충분히 가슴 아프다. 가끔은 이해의 한계를 넘어 가슴 저 깊은 곳에서부터 타오르는 고통을 느끼게 된다.

 

세 사람의 시선으로 이야기는 진행된다. 피해자의 부모인 에단과 그레이스, 뺑소니 가해자인 드와이트. 이들의 시선에서 진행되면서 가끔 겹치고, 헤어지고, 느끼고, 갈등하고, 아파한다. 세상에 살아가는 사람의 수만큼 사연이 있다고 한다. 가해자인 드와이트가 그런 사고를 일으킨데는 사연이 있다. 비록 그것이 자신의 실수에서 비롯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 사고를 무시하고 평온하게 살기는 쉽지 않다. 특히 자신이 사랑하는 아들을 생각하면 양심과 현실에서 느낀 그의 갈등을 조금은 이해한다. 그래서 너무나도 당연하게 욕하고 비난해야할 그의 행동에 연민을 느낀다.

 

드와이트와 달리 에단과 그레이스는 자신들 삶의 한 축이 무너졌다. 단 한 번도 생각하지 못한 사고로 그들의 세계는 산산조각 난 것이다. 누구의 실수도 잘못도 아니지만 그 상황과 결과는 너무나도 끔찍하고 도저히 잊을 수 없다. 하나의 상실에 대처하는 이 부부의 각각 다른 삶을 보면 나는 어떤 유형인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범인에 대한 증오와 아들에 대한 그리움으로 고통 받는 에단일까? 아니면 그 상실을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과거의 기억 속 사건과 연결하며 자신의 삶을 파괴하는 그레이스일까? 둘 중 누가 될지 모르지만 그들처럼 미래는 사라지고, 잃어버린 아이와의 추억과 과거에 빠질 것이다.

 

책을 쥐고 단숨에 읽으려고 했다. 많은 분량도 아니고 생각보다 매끄럽게 읽혔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안정한 나의 마음과 소설에 담긴 아픔 때문인지 단숨에 나아가지 못했다. 그러다 새롭게 이어 읽다보니 그 상황을 넘어 그들 각각의 마음과 아픔과 괴로움이 조금씩 가슴에 다가왔다. 상황을 이해하기보다 받아들임으로 아픔을 풀어낸 것이다. 책의 결말은 사실 어느 정도 예상한 모습으로 끝났고 너무 급한 마무리는 여운이 많이 남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그 결말 이후 각각의 가족 모습을 작가가 보여주길 바랐던 것이다. 단순히 내가 상상한 것과 맞는지 확인하고 싶은 욕구 때문이기는 하지만.

 

상처받은 사람들의 상실에 대한 이야기 속에서 각 화자들의 아픔을 받아들이고 느낀다면 재미있는 소설이 될 것이다. 머릿속으로 이해하려고 하면 가슴과 부딪히는 충돌을 느낀다. 하나의 사고로 각각이 느끼는 죄의식과 갈등과 고통과 상실감에 빠져 허우적거리다보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족이란 무엇인지? 그 존재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소설이 끝난 이후 그들의 삶은 어떻게 되었을까? 역시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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