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어드는 남자 밀리언셀러 클럽 76
리처드 매드슨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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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전설이다’를 영화로 보고 나오면서 아쉬움을 느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다시 영화로 만들어지는 것 아냐? 하고 의문을 가졌는데 만들고 있다고 한다. 원작을 읽고 영화를 본 경우 대부분 불만스러운데 ‘줄어드는 남자’도 그런 흐름을 타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리처드 매드슨의 소설을 많이 읽지는 않았다. 기억하기론 딱 두 편이다. 이번 소설과 ‘나는 전설이다’. 단편은 잘 기억 못하니 넘어가고 비교적 장편에 가까운 이 두 편에서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혼자라는 점이다. 홀로 남은 사람의 감정과 상황을 그려내고 있는데 가장 먼저 생각난 것은 왜 그는 자살을 하지 않는가? 라는 의문이었다. 희망이라는 자그마한 실에 자신의 미래를 거는 것일까? 아니면 죽음이라는 원초적 공포에 굴복당한 것일까?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홀로 있다는 것과 완전히 다른 존재들 속에 혼자 있다는 것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이런 의문을 계속 생각하게 하면서 그들의 기구하고 괴상한 삶에 조금씩 빠져든다.

 

하루에 0.36센티미터씩 줄어드는 남자. 첫 만남은 안개와 괴물거미에게 쫓기는 장면부터다. 사전에 정보가 없었다면 기이한 판타지 세계에서 괴물들을 만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헌데 그 공간이란 곳이 지하실이다. 그가 자주 들락날락 한 그 장소다. 하지만 그의 크기는 2센티미터가 되지 않는다. 하루가 지나면 또 0.36센티미터 줄어들 것이다. 이런 특수한 상황에 처한 그를 다루는데 일상의 공간이 모험의 장소가 되고, 우리가 평범하게 생각한 것이 너무나도 거대해지는 장면에선 순간 정확한 거리와 공간에 대한 감각을 상실한다. 또 스콧이 줄어들면서 발생하는 수많은 문제를 날카롭게 나열해 보여준다. 읽으면서 상상한 장면이나 상황들도 재현하여준다.

 

어느 순간부터 아내보다, 딸아이보다 작아지는 그의 모습은 다른 은유로도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권위가 줄어드는 남자나 힘의 상실 등으로. 하지만 그것은 너무 나간 듯하고 그녀들보다 작아지면서 생기는 짜증과 불안과 공포를 표출하면서 개인의 문제가 어떻게 가족의 문제로 확대되는지 보여준다. 자신이 하지 못하는 것들로 인해 짜증을 내고, 일하지 못함으로 인해 생존은 위협을 받고, 사람들의 시선에 의해 구경거리가 되는 현실에 대해 잘 그려내었다. 하지만 이런 재미보다 더 자극적인 것은 그와 거미와의 대결과 지하실에서 펼치는 모험이다. 평소라면 가볍게 손으로 발로 눌러 죽일 존재가 그보다 커지면서 거대한 위협이 되는 장면은 상황의 논리로 해석이 가능하고, 그의 공포를 가장 절실하게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떨어지는 물방울이 천으로 감싼 망치에 맞는 듯한 느낌이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 일상에서 아무것도 아닌 것이 완전히 다른 것으로 변하는 현실은 상상의 날개를 펼치게 한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선 그가 예상한 것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임을 알게 하면서 다시 한 번 더 ‘나는 전설이다’의 마지막 장면을 생각하게 된다.

 

지난 번 소설에서 분량을 착각하여 약간 황당했지만 이번에 목차를 잘 읽었다. 또 이번 단편은 지난 번보다 개인적으로 흥미로운 것도 많다. ‘시험’과 ‘몽타주’와 ‘버튼, 버튼’이다. ‘시험’이 흥미로웠던 것은 인구문제와 식량문제에서 노인문제로 이어졌다면 현재의 우리 또한 인구감소와 노년층 증가로 문제가 계속되고 있다는 점과 그 극단적 제도가 안타까움과 아픔을 주었다. ‘몽타주’는 영화의 장면들의 연속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삶과 연결되면서 이런 편집으로 짧게 나타낼 수 있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버튼, 버튼’이 인상적인 것은 마지막 문장 때문이다. 잘 안다고 생각한 것에 대한 물음에 어떻게 답해야 할지 모르는 경우나 새로운 사실이 드러나는 것을 생각하면 굉장히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2만 피트 상공의 악몽’은 예상하지 못한 결말이 주는 재미가 있고, ‘홀리데이 맨’은 그 정체가 궁금하고, ‘배달’은 그 남자의 직업이 정확히 무엇인지와 나의 인생이 다른 사람의 조작에 의해 어떤 파국으로 갈 수 있는지가 재미있었다. ‘예약손님’에선 숨겨진 의도와 동업이, ‘결투’는 이전에 본 영화에 대한 기억으로 이어지며 한 편의 단편소설이 어떻게 영화로 바뀌는가에 대한 것으로 발전했다. 마지막 ‘파리지옥’에서 벌어지는 행동을 보며 한여름 무더위에 겨우 잠든 시간, 한 마리의 모기에 의해 벌어지는 혈투를 생각나게 만들었다. 경험자는 알 것이다. 그 순간 모기를 잡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들이고 흥분하고 눈을 붉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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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인 오늘의 일본문학 6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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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인(惡人). 단어만 놓고 보면 악한 인간에 대한 이야기로 보인다. 책을 읽으면서 느낀 첫 감정은 도대체 악인은 누군가? 하는 의문이다. 결과로만 본다면 살인자가 악인이겠지만 그 자세한 내막을 들여다보면 쉽게 동의하기 어렵다. 그래서 작가는 악인이란 제목으로 결과만이 아닌 그와 그를 둘러싼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읽기 전에 먼저 하나의 사건을 둘러싼 다양한 시선과 사회적 분석까지 덧붙여 멋지게 그려낸 미야베 미유키의 ‘이유’가 연상되었다. 책 소개 글에서 이런 분위기를 풍겼고, 어쩌면 엄청나게 압도적인 느낌을 받은 소설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유’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감으로써 그 흔적들을 지워나갔다. 그러면서 마주한 것은 각 장의 제목들이었다. 희망과 과거와 현재의 느낌을 담은 그 제목들을 보면서 조금씩 빠져들었다.

 

처음엔 사실 이전에 본 작가의 다른 책처럼 건조한 느낌이었다. 자신의 감정을 속이고, 남을 속이고, 무서워하고 두려워하는 사람들의 삶을 보면서 약간 황량한 기분이 들었다. 피해자 요시노와 그녀를 둘러싼 이야기는 진솔함보다 가짜로 가득한 느낌을 주었다. 이어지는 유이치의 이야기에선 불안함이 느껴지고 긴장감이 전해졌다. 그리고 새롭게 나온 미쓰요의 일상에선 지지부진한 삶의 한 단면이 극대화된다. 이런 사람들의 만남이 거짓과 위선에서 진실한 감정으로 이어지면서 소설은 완전히 다른 분위기로 바뀌게 된다. 미스터리소설에서 연애소설로. 그 감정의 전환이 비록 절실하게 가슴에 와 닿지는 않지만 속도감과 몰입도를 높여주는 것은 사실이다.

 

뉴스로 통해 우리에게 전해지는 소식들은 대부분 결과뿐이다. 왜? 라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왜? 가 궁금하고 풀어지는 것도 진실한 왜? 가 아닌 보여주기 위한 왜? 인 것이다. 여기서도 매스컴의 속성은 잘 다루어진다. 왜? 에 대한 호기심은 그냥 단순히 흥미꺼리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리고 또 다른 흥미꺼리를 찾아서 그 주변 사람들로 눈길을 돌리고 상관없는 것들도 파헤치고 까발리면서 규모를 확장시킨다. 이런 시선들에서 좀더 깊이 들어가 사건 당사자들을 만나게 되면 덧칠되어진 허상이 지워지고 본래의 참모습이 보이게 된다.

 

다른 소설에서도 그렇지만 살인자의 내면과 삶을 파고들면 드러난 것보다 더 많은 숨겨진 삶이 나타난다. 왜? 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을 정도로 풍부한 이유들은 분명 악당인 인물도 독자가 이해하게 만든다. 소설의 매력이다. 이 소설도 그렇다. 살인자 유이치의 삶을 들여다보고 그 상황을 보여주면서 과연 그가 악인인가 하는 의문이 생기는 것이다. 사건을 따라가면 첫 번째 용의자 마스오의 행동이 없었다면이란 가정과 피해자 요시노의 삐뚤어진 삶의 방식과 자기 기만적 행동이 그런 결론으로 이어졌음을 알게 된다. 그렇다고 살인자가 옳다는 것은 아니다. 그 결과까지 오는 과정에서 벌어진 다양한 문제점이 있었다는 것을 말할 뿐이다.

 

재미있고 잘 읽힌다. 이 소설 속에서 가장 악인이 누군가 묻는다면 쉽게 대답하지 못한다. 먼저 살인자를, 다음으로 마스오를 생각하게 되는데 특히 마스오의 행동들은 철부지 모습과 사람에 대한 존중이 전혀 없음을 느끼게 하면서 나와 우리를 돌아보게 만든다. 하나의 살인을 둘러싼 다양한 사람들의 시선과 삶이 주는 재미는 쉽게 다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 부분에서 작가는 인위적인 결말로 이어가면서 살짝 아쉬움을 준다. 하지만 유이치가 한 말 중 어머니와 자신이 모두 피해자가 되길 원했다고 한 대목은 전체적인 이야기를 풀어내는 열쇠가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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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트의 역사 - 마음과 심장의 문화사
올레 회스타 지음, 안기순 옮김 / 도솔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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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다. 생각한 것보다 쉽게 읽히지 않았다. 하트라는 말이 심장과 마음이란 두 의미로 풀어지면서 만들어내는 수많은 철학적 문화적 사유들이 담겨있다. 한 시대나 한 지역에 제한되었다면 더 쉬웠을지 모르지만 유럽과 중동과 아즈텍 문화까지 포괄하고, 각 종교 속에서 하트에 대한 의미를 탐구한다. 어쩌면 너무 쉽게 생각한 내가 가장 큰 잘못인지도 모르겠다.

 

하트(heart). 그냥 보통 심장이나 마음으로 번역 가능하다. 사랑의 징표로 현재 사용하기도 하는데 그냥 사랑에 대한 이야기라면 신나고 즐겁고 유쾌하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또는 심장이라고 하면서 각 지역과 시대마다 심장에 대한 자연과학적 연구 결과에 대한 것이었다면 약간 힘들지 모르지만 어렵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을 것이다. 물론 이렇게 어렵게 느껴진 것의 가장 큰 이유는 내가 철학 서적을 너무 오랫동안 멀리 했다는 것도 이유고, 마음속으로 심장에 대해 해부학적 지식을 담고 책을 읽었기 때문이다. 기계론적으로 보면 단순히 엔진과 같은 것인데 이렇게 복잡하고 다양하게 설명해야 하는 반감이 작용한 것이다.

 

바로 이 지점이 내가 이전까지 생각하지 못했던 철학적 문화적으로 풀어낸 하트에 대한 것이다. 얼마 전 읽은 과학 교양서적에서 심장에 대한 해부학 지식과 뇌에 대한 약간의 이해를 얻었기에 과거에 심장에 대해 생각한 것들이 약간은 무의미하게 느껴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을 문화사나 철학사와 엮어 생각하면 심오한 내용이 된다. 이집트인이 미이라를 만들면서 뇌를 없애면서 심장은 남겨 놓은 것이나 아즈텍 문화에서 인신공양을 하며 심장을 바치는 것이나 그리스 시대를 지나 유럽 그리스도교에서 심장과 관련된 신학이 어떤 것인지, 그리고 이슬람 종교와 어떻게 다른지 이런 내용을 읽다보면 미로 속을 헤매는 듯하면서 많은 점을 생각하게 한다.

 

특히 그리스와 그리스도교에서 나타나는 심장과 영혼에 대한 이야기는 이전엔 그냥 쉽게 지나간 것들인데 이 책에선 가장 많은 분량과 심도 있는 연구가 이어진다. 호메로스의 두 저작에 대한 분석을 심장과 연관하여 풀어낸 해석은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책들을 보게 만들었다. 인간이 영혼을 만든 목적을 스스로 지배하고 자신 안에서 사납게 날뛰는 힘을 통제하고 절제하여 생각을 한데 모아 마음의 평정을 찾지 위해서(53쪽)란 대목에선 깜짝 놀랐다. 그 후 성 아우구스티누스로 대표되는 그리스도교가 어떻게 그리스 철학을 받아 논리를 강화하고 발전시켰는지 보았다. 서구의 개인주의가 그리스도교를 전제로 하지 않는다면 존재하기 어렵다는 대목에서 예로 나온 천안문 사태의 한 장면은 많은 점을 생각하게 만들었다.

 

서구 문화의 핵심 관념으로 개인적이고 사적인 죄의 개념을 지적하고 자책의 문화라고 한 대목에선 천주교를 자연스럽게 연상하게 된다. 시대가 지나고 여러 철학자들의 글들에서 심장과 마음, 이성과 영혼 등에 대한 이해를 좀더 깊게 하게 되고 사랑과 낭만주의 글에서 하트가 종교적 그늘을 벗어나 인간의 육체로 돌아온 장면에서 약간 더 편하게 읽게 되었다. 성 담론 글에서 억압보다 교육이 더 효과적이라고 말한다. 교회의 불안 조장 선전 등의 성도덕을 아는 것보다 에이즈 감염에 대해 아는 것이 교육효과가 더 크다는 지적한 대목에선 질병을 판매하는 요즘의 상업주의가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이어 현재의 밸렌타인데이에서 심장 상징이 소비주의 시대의 상품들과 똑같이 소비된다고 지적한 대목에선 괜히 씁쓸한 마음이 생긴다.

 

어렵게 느껴지고 힘들게 느껴지던 글들이 약간 그 실체를 드러낸 것은 역시 마지막에 가서다. 현대의학에서 심장을 대체 가능한 하나의 근육처럼 생각하고, 생각이 이루어지는 곳을 두뇌에 두고 있지만 우리가 아직도 마음을 머리가 아닌 가슴에 두고 있는 것은 심장 때문이다. 비록 해부학 지식에 의해 밝혀진 사실일지라도 심장은 증후이고 상징이며 그 이상이고, 이것은 단순히 심장만의 것이 아닌 ‘심장과 머리, 이성과 감성 사이의 숭고한 상호작용’(418쪽)이란 문장에 고개를 끄덕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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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의 기쁨 1 - '신의 물방울' 저자 아기 다다시
아기 다다시 지음, 오키모토 슈 그림 / 중앙books(중앙북스)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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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술맛을 잘 모른다. 체질적으로 술을 한 잔만 먹어도 얼굴이 붉어지기 때문이다. 술자리는 자주 간다.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노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다만 그들이 나에게 끝없이 술을 권하지만 않는다면이란 전제 조건이 붙는다. 이런 내가 와인에 대해 알 턱이 없다. 선물로 들어오는 것이나 선물로 주면서 같이 마신 것을 제외하면 특별히 마시고 싶어 산 적도 없다. 이렇게 된 이유 중 하나는 그 수많은 와인들 중에 과연 어떤 와인이 내 입맛에 맞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가격이라도 소주처럼 싸다면 사놓고 마시면서 선택하겠지만 그 가격이 만만하지 않음을 생각하면 더욱 어렵다.

 

기억 속에 참 맛있게 먹은 와인이 두 병 있다. 하나는 동생이 프랑스 출장 다녀오면서 사온 것이고, 하나는 와인판매점에서 추천 받아 마신 칠레산 와인이다. 불행하게도 와인 병들이 귀찮아 치우면서 상표명을 모른다. 개인적으로 가장 맛있게 먹은 프랑스 와인의 경우 이 책의 저자가 말한 천지인이 결합하는 정도는 아니지만 감탄을 자아낼 정도로 나의 입맛에 맞았다. 이때부터 선물로 들어오면 한잔한잔 마시다보니 집에 병들이 제법 모이기도 했다.

 

이때 먹은 여파와 친구 아내가 생일 등의 이유로 모이면 와인 한 잔씩 하자고 하여 사들고 간 칠레 와인으로 내가 좋아하는 취향을 조금은 알게 되었다. 보졸레 누보에 대한 광고 때문에 한 번 사들고 갔는데 샴페인처럼 가벼운 맛에 다음부터 쳐다보지 않았던 기억이나 칠레와 자유무역협정을 맺은 후 오히려 그 와인의 가격이 더 올라간 것을 보면서 와인에 대한 관심이나 애정이 조금은 식어갔다.

 

그렇게 식어가는 중에 서점에 가니 ‘신의 물방울’이란 만화가 히트를 치고 있단다. 뭐지? 하고 관심을 두고 있었지만 비싼 와인에 대한 이야기란 것을 알고 관심을 끊었다. 그렇다고 와인에 대한 관심과 마시는 것을 완전히 그만 둔 것은 아니다. 그러다 우연히 ‘신의 물방울’ 9권을 사게 되었다. 이유는 책 뒤에 나오는 와인에 대한 이야기 때문이다. 저렴한 가격대의 맛있는 와인에 대한 설명은 다시 불을 붙였다. 해외에 나가면 한 병 사야지 하는 마음이 있었지만 역시 그 복잡하고 어려운 이름은 외울 수 없어 그냥 들어왔다.

 

책에 대한 이야기보다 이렇게 나의 경험을 많이 늘어놓는 것은 이 책이 저자의 경험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와인에 대한 풍부한 정보도 있지만 와인에 대한 애정이 묻어나고 경험이 가슴에 와 닿았기 때문이다. 책을 모두 읽은 지금도 최고로 치는 와인을 제외하면 머릿속에서 싼 가격의 좋은 와인에 대한 기억은 사라지고, 와인에 대한 갈증과 기억만 살아있다. 그래서 다시 목차를 한 번 보니 와인에 대한 기초 정보도 충실하다. 디캔팅에 대한 것이나 라벨 읽는 법이라거나 와인산지에 대한 정보 등이 담겨있다. 하지만 내가 와인에 대해 암기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니 이런 정보는 책을 들고 다니거나 필요한 것만 메모하여 가지고 있으면 된다. 중요한 것은 이 책이 와인에 대한 열정과 관심을 불러온다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 와인 한 잔을 앞에 두고 이 글을 쓴다면 어떨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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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기억의 박물관 1 비룡소 걸작선 49
랄프 이자우 지음, 유혜자 옮김 / 비룡소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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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을 읽고 난 후 역자 후기에 이전에 다른 제목으로 출간된 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한 번 찾아보았다. ‘이쉬타르의 문’이란 제목으로 출간되었는데 표지가 비슷했다. 개인적으론 이전 표지가 마음에 든다. 이번 표지에선 왠지 모르게 영화 ‘박물관이 살아있다’와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표지를 찾아 비교하면 닮은 점이 별로 없는데 말이다. 아마 그림자처럼 처리된 인물과 박물관이란 이름이 섞이면서 이런 상상으로 이어진 모양이다.

 

이런 재미난 상상을 하게 하면서 소설은 환상의 세계로 인도한다. 줄거리만 따라 간다면 충분히 매력적이고 재미있다. 하지만 소설 속에 담겨 있는 세계관을 생각하면 나와 맞지 않다. 친유대적이고 성경에 너무 비중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친유대적이란 의미는 내가 유대인에 반대한다는 뜻이 아니라 이 소설 속에 나오는 기본 바탕이 유대의 경전에서 말하는 것을 사실로 인정하면서 다른 나라의 전설이나 신화를 여기에 맞추어 표현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성경에 비중을 많이 두고 있다는 뜻이다.

 

세계를 집어삼키려는 악당 크세사노와 그를 물리치려는 쌍둥이 남매가 있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경찰이 아버지가 도둑이라고 하면서 집을 조사하려고 한다. 하지만 그 사람이 누구지? 이렇게 그들은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잊고 있었다. 집에 있는 사진들이나 일기에서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일부 찾지만 전체적인 것들을 완전히 떠올리지는 못한다. 아버지 일기에서 힌트를 얻은 그들은 아버지 찾기에 나서고 그 도중에 남동생 올리버는 크바시나라는 잊어버린 기억의 세계로 넘어가고, 현세에 남은 제시카는 미리엄이라는 학자의 도움으로 잊어버린 아버지와 동생과 세계를 구하려고 한다.

 

기본적으로 쌍둥이라는 인물과 현세와 환상의 세계를 동시에 그리면서 상황을 어떻게 끌고 나갈지 짐작하게 한다. 두 세계를 보여주기 위한 가장 편한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크바시나는 동생 올리버가, 베를린은 누나 제시카가 있으면서 비밀을 풀고 세계와 자신들을 구하려고 하는 것이다. 당연히 전개는 양 세계를 번갈아 가면서 진행된다. 이런 평범한 구성이지만 담겨있는 이야기들은 결코 평범하지 않다. 특히 크바시나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들은 환상소설이 주는 재미를 만끽하게 한다. ‘오즈의 마법사’처럼 동료들을 만나고 함께 어려움을 헤쳐 나가는데 그 친구들이 특이하다. 페가수스나 유리로 만든 벌새 니피나 나폴레옹의 망토였던 코퍼나 소크라테스의 제자였던 엘레우키데스에 붓까지 다양하다. 우리가 말하는 생명체가 아닌 존재도 이곳에선 살아 움직이고 존재 자체로 의미를 지닌다.

 

특이한 동료들과 함께 어려운 일들을 겪은 후 문제를 해결한다는 구성은 약간 흔하지만 역시 매력적인 등장인물들과 새롭게 만들어낸 다른 존재들로 재미를 준다. 대상이 어른이 아닌 아이들이라면 진부하다는 표현을 하긴 어렵지 않나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올리버가 친구들과 함께 하는 모험은 충분히 매력적이고 환상적이다. 반면에 베를린에서 벌어지는 조사 과정은 아이들에겐 좀 지루하지 않을까 한다. 크세사노의 정확한 이름을 찾기 위해 여기저기에서 역사를 끌어오고, 유대 성전에 나온 기록과 연결시키는 일들이 굉장히 정밀하고 많은 자료들이 나오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이 소설이 과연 아이들을 위한 책인가 의문을 가질 정도였다. 너무 아이들을 낮추어 본 건가?

 

미하엘 엔데가 ‘모모’에서 시간을 다루었다면 이 소설은 ‘기억’을 다룬다. 기억을 다른 표현으로 바꾸어 놓으면 역사가 될 것이다. 가까이는 르완다로 대표되는 아프리카의 대학살이나 나치의 인종말살 정책 등의 무시무시한 것들이고, 더 멀리 가면 구약에 기록된 것들일 것이다. 특히 “지난 수천 년간 사람들은 나름대로 독자적인 우주관을 만들어 냈지. 특별히 견고하지는 않았지만 그것을 통해 인간들은 성경이 요구하는 의무를 회피할 수 있었지. 불행히도 인간들은 그것 때문에 자기 자신의 과거를 죽여 버렸지.” (2권 60쪽)라는 문장은 앞에서 말한 유대적인 종교 색채가 너무 많이 나온다는 느낌을 준다. 2차 대전 당시 유대인 학살뿐만 아니라 다른 민족들이나 독일의 수많은 반체제 인사나 장애인들을 학살했다고 하면서 잊지 말라고 하는 부분에선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였지만 팔레스타인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이스라엘 군에 의해 학살되는 현실을 말하지 않은 점에선 아쉬움을 느꼈다.

 

또 하나 방사선 탄소 연대 측정법에 대한 의문을 제시하면서 인류가 전설이 자기들이 갖고 있는 세계관에 부합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만들어 낸 이야기라고 하면서 다시 성경을 말한다. 이 부분도 역시 개인적 생각과 너무 갈리는 부분이다. 원리주의자 같은 느낌을 받기도 하고, 저자가 유대인이 아닌가 의문이 생기기도 하였다.

 

이런 종교적 상징과 강조가 남발하면서 개인적인 사상과 충돌하였다면 두 남매가 펼치는 모험은 빠져들게 만든다. 구약에 대한 지식이 풍부한 사람들은 책 속에 등장하는 인물과 역사로 더 재미있을 것이고, 그런 것에 신경을 쓰지 않는 사람이라면 그 남매가 두 세계에서 벌이는 모험과 조사로 충분한 재미를 누릴 것이다. 재미있는 장면이 많았던 만큼 아쉬운 점이 있었기에 글이 길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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