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 관용과 카리스마의 지도자
아드리안 골즈워디 지음, 백석윤 옮김 / 루비박스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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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전을 자주 읽지는 않는다. 어린 시절 전집으로 나온 위인전을 열심히 읽은 기억은 있지만 그 후 특별히 찾아 읽은 기억은 없다. 물론 몇 권의 평전이나 자서전을 읽고 크게 감명을 받은 기억이 있지만 그래도 아직은 나에게 비교적 비주류의 세계다. 하지만 잘 읽지 않는 평전이나 자서전을 한두 권씩 사는 것은 막을 수 없다. 언젠가 읽겠지 하면서 스스로 위안을 한다.

 

사실 카이사르에 대해 아는 것은 극히 일부다. ‘브루투스 너 마저! ’나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와 같은 너무나도 유명한 대사와 함께 세기의 미인으로 인식되어 있는 클레오파트라 정도가 먼저 생각난다. 하지만 로마 공화정 시대 마지막을 장식한 독재관으로 여러 사람으로부터 추앙을 받거나 독재자로 미움을 받는 그를 보면서 그의 실체가 늘 궁금하였다. 물론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이니 다른 소설 등으로 그에 대한 인상을 가지고 있었지만 좀처럼 시대와 연결하여 생각할 수 없었다. 근데 이 책은 개인에 대한 이야기만이 아닌 그 당시 로마를 중심으로 한 유럽과 아프리카 세계를 보여주면서 왜? 카이사르라는 인물이 등장하게 되었는지 보여준다.

 

한 인물을 그려내기 위해서는 그 시대를 보여주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의 장점으로 꼽은 시대 묘사를 보면 단순히 카이사르만이 아니라 그 이전의 마리우스, 술라 등의 전대 인물과 동시대의 폼페이우스나 키케로나 카토 등의 다양한 위인들을 같이 다루면서 현장감을 살려낸 것이다. 저자가 목표로 한 이 카이사르의 일생을 고찰하고 그것을 기원전 1세기 로마 사회를 배경으로 투영시키는 것이라 한 것이라는 점만 보아도 명백하다. 하지만 저자는 단순히 현재의 관점에서 그 시대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관점도 같이 말하면서 평가를 입체화시켰다. 현대 평가 기준으로 본다면 결코 좋은 점수를 얻지 못할 점들도 많지만 그 당시 최고의 대중주의 정치가였던 그가 로마 시민들의 기대에 부응한 정치와 승리를 구가했다는 점을 머릿속에 계속 두고 읽어야 한다.

 

한 명의 특출한 독재자에 의해 나라가 운영되는 것보다 논쟁과 당쟁이 있다 하여도 의회에 의해 다스려지는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역사의 긴 시간에서 보면 그 당시 로마 공화정은 이미 그 힘을 다한 듯 보인다. 이 부분을 강조하기 위해 저자는 기원전 1세기 로마 사회를 그려낸 것이다. 그 이전에 엄청난 권력을 가졌지만 결코 왕으로 발전하지 않은 인물들과 카이사르를 계속 비교한다. 그리고 부패하고 타락한 공화정 내부의 모습도 동시에 보여주면서 그의 뛰어난 업적과 사람들에게 자리한 공포와 기대를 동시에 그려낸다. 이 부분에서 비슷한 이름과 낯선 사람들로 약간 진도가 더디지만 역사의 전면에 카이사르가 나온 ‘갈리아 전쟁기’부터 신나고 흥미로운 이야기가 이어진다.

 

정치에 대한 저자의 글 중에 “정치는 본질적으로 개인간의 투쟁이었으며 다른 사람들은 모두 경쟁자였다. 중요한 것은 대중의 갈채를 ‘받는’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보다 ‘더 받는’것이었다.”는 대목은 카이사르의 기본 정치관을 가장 잘 나타낸 표현이 아닌가 한다. 물론 이것은 현대 정치에서도 중요한 점이다. 강력한 카리스마와 카이사르의 관용으로 불리는 행동과 금전에 대한 큰 씀씀이는 로마인들이 전쟁에서 중요하게 생각했던 행운을 불러오는 요인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온몸으로 품어내는 카리스마와 멋진 연설과 미래에 대한 보장은 그의 연승을 이어주고, 위기에서 탈출하게 하는 강력한 요인이기도 하다. 가끔 그가 지불한 금액에 대한 글에서 보통 사람들의 상식을 뛰어넘는 장면들이 나오는데 이 부분이 로마 시민들이 그에게 더 열광하게 만든 것이 아닌가 한다.

 

책을 읽다보면 저자의 카이사르 애정이 눈에 많이 들어온다. 단순한 숭배자라면 그의 실수나 실패에 대한 변명을 늘어놓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에 대한 평가에 냉정한 시선을 유지하려고 하였다. 물론 그 냉정한 시선이 과연 중립적인가 하는 부분은 또 다른 논쟁이 되겠지만 최소한 과도하게 포장하지는 않았다. 전설처럼 내려오는 수많은 이야기에 대해 일침을 가하고, 논쟁이 되는 부분에선 중도적인 자리를 차지하려고 했다.

 

카이사르를 암살한 음모자들이나 키케로 등이 주장한 카이사르가 평생토록 절대 권력을 꿈꾸었다는 대목에선 저자가 회의적인 시선을 보인다. 특히 음모자들이 신봉한 공화국이 원로원 엘리트들의 특권을 충실히 옹호하기 위한 것이란 지적은 책 전반에 걸쳐 나오는 부패와 타락과 폭력 등을 생각하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그 시대의 윤리나 도덕 등이 비록 현재와 다르다 하지만 역사 속에 드러난 민중들의 마음이 그들과 다른 것을 보면 분명히 민심과 다른 모습이다. 어쩌면 그가 암살됨으로써 왕정으로 가는 시간이 좀더 빨라졌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의 장점 중 하나는 기원전 1세기를 다루면서 긴 시간 동안 나에게 인물과 시대가 뒤섞여 있던 기억들이 하나씩 자리를 잡았다는 것이다. 브루투스를 카이사르의 친구처럼 기억하고 있던 것도 바로잡았고, 마리우스와 술라나 폼페이우스나 카토나 키케로 등의 인물에 대한 시대와 인물상을 어느 정도 재정립하게 되었다. 그밖에도 수많은 즐거움이 있는데 너무 많은 분량의 책이라 한꺼번에 기억하기에 벅차다. 하지만 이 한 권으로 카이사르 시대와 그 이전 세대에 대한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는 점은 엄청난 이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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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기생뎐
이현수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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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한국소설보다 외국소설을 더 많이 읽는다. 읽다보면 번역체의 어색함이나 낯선 느낌을 받는 경우가 많다. 단순히 풀어내는 재미라는 측면에서 낯선 곳의 풍경과 내면은 우리소설에서 쉽게 느끼지 못하는 재미를 주었다. 그래서 한때 즐겨있었고 지금도 가끔 즐겨있는 우리소설보다 외국소설에 더 손이 간다. 그러다 가끔 읽는 우리소설에서 예상하지 못한 보물을 발견하는 경우가 생기는데 이 소설이 그렇다. 좋아하는 출판사지만 잘 알지 못하는 작가기에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인지 모르지만 재미있다.

 

이 소설을 보면서 우리말에 대한 애정이 소록소록 살아났다. 이준익 감독의 ‘황산벌’이란 영화에서 사투리가 얼마나 엄청난 문화유산인가와 소위 표준어 정책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깨달은 적이 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느낀 첫 감상은 우리글과 말을 맛깔스럽게 살려내었다는 점이다. 단순히 문장만 아름다웠다면 거기에 그쳤겠지만 이젠 거의 사라진 듯한 기생이란 존재를 현재에 살려내면서 흥미를 돋우었다.

 

군산의 부용각이란 기생집을 배경으로 이야기는 풀어진다. 부엌어멈에서 시작하여 소리기생 오마담을 지나 춤기생 미스 민을 거쳐 기둥서방 김사장과 박기사까지 도착하면 부용각이란 공간이 단순한 기생집을 넘어 사람들의 삶이 깃든 곳임을 알게 된다. 타박네로 불리면서 맛난 음식을 만드는 그녀가 중심을 잡고, 기둥서방에게 계속해서 재산을 빼앗기는 명창 소리기생 오마담의 과거와 현재를 듣다보면 근대 기생들의 변천사가 절로 눈에 들어온다. 새롭게 기생이 된 미스 민의 사연과 혹시 그녀가 이 시대 마지막 기생일지도 모른다는 타박네의 생각은 아쉬움을 생기게 하고, 타박네가 죽은 후 부용각을 들어먹을 생각을 하는 기둥서방 김사장을 보면 세상살이의 무서움을 느낀다. 처음에 그냥 지나가는 인물 중 하나로 생각한 집사 박기사의 사랑을 읽다보면 그가 행복한 것인지 그녀가 행복한 것인지 경계가 어려워지지만 안타깝고 부러운 마음도 있다.

 

분량으로 따지면 240쪽도 되지 않지만 읽는 재미를 주기에 평소보다 시간이 더 걸렸다. 화려한 묘사도 있고, 자세하게 풀어내는 이야기도 있지만 역시 우리글과 말이 주는 묘미가 가장 크다. 짧게 끊어지는 문장이 있는가 하면 길게 풀어놓고 그려내는 문장이 어우러져 읽는 재미를 주는 것이다. 시대의 유물이 되어가는 기생들의 삶의 한 모습을 들여다보며 삶의 지혜 한쪽을 얻어가고, 시대의 변화 속에 변해가는 그들의 삶에 안타까움과 그리움이 살짝 배여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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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만원 세대 - 절망의 시대에 쓰는 희망의 경제학 우석훈 한국경제대안 1
우석훈.박권일 지음 / 레디앙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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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롭고 많은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 88만원 세대라는 신조어가 우리 사회에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것을 공감하게 되었다. 내가 이미 지나온 시간들이지만 현재의 20대에 대해 단순히 피상적으로 가지고 있던 생각들을 더 심각하게 풀어내고 그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세대와의 비교를 통해 나뿐만 아니라 우리를 돌아보게 한다.

 

세대 내 경쟁을 넘어 세대 간 경쟁의 시대로 접어든 것이 불과 10년이다. 연공서열이 무너지고 능력이라는 이름으로 무한 경쟁을 펼치고 있는 현실에 이렇게 아프게 다가온 책도 드물다. 이전에 박노자의 책에서 한국에서 태어난 나보다 더 한국의 현실을 잘 알고 애정을 가진 그를 보며 놀랐듯이 이 책에서도 새로운 시각과 논쟁거리를 알게 되었다. 읽다보면 상당히 암울한 현실과 미래가 펼쳐지는데 그 속에서 저자가 풀어내는 몇 가지를 생각하며 가능성을 타진하는 나를 본다. 그리곤 높은 현실의 벽에 가로 막혀 근본으로부터의 변화가 있지 않는 한 쉽지 않음을 다시 한 번 더 깨닫는다.

 

이 글 이전에도 비정규직이 문제 있음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이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있은 것은 아니다. 우리와 비교되는 일본의 현실을 드라마나 책으로 접하면서 많은 유사성을 보게 되는데 90년대 이후 정치 경제 분야와 행정 분야에서 특히 많은 점을 생각하게 된다. 공무원들의 뛰어난 업적처럼 말해지는 많은 것들이 일본에서 이미 시행되었던 것이나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학원에 시달리는 현실을 몇 년 전에 미리 본 것을 생각하면 무섭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행정적 문화적 비슷함과 달리 경제적 형태에서는 미국식을 극단적으로 따르면서 엄청나게 문화와 충돌을 일으키고 괴리감을 경험하게 된다. 이것이 일본식 성장모델을 가지고 오다 IMF를 통과하면서 벌어진 틈이 아닌가 짐작한다.

 

또 우리의 386세대에 대한 글에서 세대 간 문제를 들여오면서 현 사회의 문제점을 지적한 대목은 섬뜩했다. 지금의 엄청난 과외열기와 더욱 단단해진 진입장벽을 보면서 그 주체가 386이란 점에 무서움을 느꼈다. 그들의 정치성향이 이 나라에 민주화를 가져왔지만 유럽의 68세대와 비교하여 어떤 차이점이 있는가 하는 부분에선 90년대 후일담 이야기들과 맞물리며 자기만족에 빠져 있던 것은 아닌가 한다. 386세대 이전 4.19세대가 유신을 지나며 하나의 보수로 돌아간 것처럼 이들도 하나의 세력으로 학벌사회를 더욱 강화시키며 교육 엘리트주의를 강화하면서 자신들만의 성곽을 쌓고 있는 것이다.

 

우리사회에서 20대가 독립해서 한 사람으로 살아가기는 무척 힘들다. 높은 집값에서 낮은 임금까지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다. 이것을 직접적으로 경험하기 시작한 것이 30대라면 20대는 더 높은 장애로 작용하고 있다. 자주 비교되는 일본의 상황에서 프리터들이 알바만으로 생계가 유지되는 반면 한국에선 힘든 것을 보여주는 장면에선 단순 비교의 위험을 다시 알게 되었고, 압축성장의 부작용이 지금도 터져 나오는 현실에서 분배가 아닌 성장을 외치는 언론이나 권력집단들을 보면서 더욱 암울한 20대의 모습을 본다. 그래서 저자는 바리케이드와 짱돌이라는 80년대 용어를 들고 나왔는지 모른다. 바리케이드는 20대만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를, 짱돌은 마케팅과 브랜드의 노예로 전락한 그들이 하나의 협동체로 발전하는 것을 말한다. 자기만 좋으면 편하면 된다는 생각에서 세대 내 경쟁이 치열해지고 그들의 삶은 더욱 힘들어진다.

 

친일청산과 관련하여 현재까지 우리나라의 큰 오점이 되고 있는 것에 대한 해석은 이전까지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프랑스가 독일부역자가 비시정권의 인물을 끊임없이 청산한 것과 비교하는 대목에서 서구적인 의미의 민족주의자가 없었다는 지적한 부분이다. 60대 이상 세대가 민족보다 ‘능력’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고, 민족주의자가 아닌 반공주의자로 살았다는 대목에선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독립군과 그 후손들은 멸종되었고, 소위 일제와의 대척점에서 활동한 순혈 민족주의자 혹은 행동하는 민족주의자를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멸종시킨 사람들이 지금의 60대 이상이란 대목과 지독하게 단결이 강했고 시장경쟁의 가치를 받아들이지 않았던 이 세대가 ‘공정한 경쟁’이나 ‘민족주의’대신 ‘고향사람’이란 말을 다음 세대에 넘겨주었단 대목에선 현대 한국사 비극의 시발점을 알게 되었다.

 

나 자신이 경제학을 전공하였지만 이젠 많은 부분 이론이나 경제사 분야에 대한 지식을 잊어버렸고 현재 새롭게 대두되는 부분에 대해 무지하다. 분석의 틀로 사용되는 수많은 경제학 용어들이 생소하기도 하지만 이 책을 읽는데 지장은 없었다. 그만큼 쉽고 평이하게 쓰인 책이다. 물론 사람 따라 상당히 어려울 수도 있지만 한국 경제의 현실과 미래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에겐 많은 도움을 줄 것이다.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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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부지, 저희 집으로 가입시더
윤문원 지음 / 밝은세상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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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읽다 눈시울을 붉히는 경우가 요즘 많다. 이전보다 그런 책들을 많이 읽는 것도 하나의 이유지만 감성의 폭이 좀더 넓어진 것도 무시할 수 없다. 한때 가족이란 그냥 존재하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나이가 들수록 내가 받은 수많은 혜택과 주지 못한 몇 가지로 인해 참 미안함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이런 때 가족에 대한 글에서 감정을 짜내는 문장이나 상황을 만나면 눈시울 붉히지 않을 수 없다.

 

저자가 풀어내는 수많은 사연들을 읽다 느낀 첫 번째 인상은 어딘가에서 본 듯한 이야기라는 것이다. 낯익은 상황들이 많은데 처음 생각한 것은 저자의 가족에 대한 여러 생각이 담겨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약간은 잔잔하고, 현실적이고, 아쉬움이 담긴 시선들을 기대한 것이다. 헌데 이 속엔 그런 다양하고 일상적인 시선이 아닌 일종의 사례집처럼 느껴진다. 한 사람의 성공이나 아픔을 가족을 중심으로 풀어낸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당연히 눈에 물기가 찰 수밖에 없다.

 

가족에 대한 이야기니 가족 간의 반목과 사랑과 믿음이 들어있다. 한 집안이나 저자의 주변 인물에 대한 것이 아니라 인간시대나 성공담을 담은 이야기 등의 종류에서 만나는 사람들로 이루어져있다. 당연히 하나의 이야기로 완결되고, 이야기 사이에 직접적 간접적 연관성은 없다. 다만 가족이란 소재를 둘러싼 다양한 사례와 경험들이 있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눈시울을 붉히는 많은 장면을 만나지만 가슴 깊은 곳에 파고드는 감동은 없다. 성공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한 부모님이나 몸이 불편한 딸을 위해 늘 주변에서 도와주시는 부모님이나 실직으로 가장의 능력을 상실한 남편이나 아버지를 구하려고 불구덩이에 뛰어든 아들이나 자신이 죽으면 남게 될 동생 때문에 자살을 포기한 형 등이 이 속엔 있다. 놀랍고 대단하고 부럽고 존경스럽고 부끄러움을 느끼게 한다. 아마 이 책이 주는 가장 큰 재미일 것이다. 그런데 이 글들이 역시 어딘가에서 본 듯한 실화를 옮겨놓은 듯한 느낌이라 감동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 차라리 저자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엮어내었다면 감동의 깊이는 더 깊어졌을 것이다.

 

이런 아쉬움 속에서도 저자의 경험이 묻어나는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는 나의 경험 일부와 만나면서 진한 울림을 주었다. 가볍게 아버지와 한 잔을 하고 좋아하시는 모습이나 함께 간 목욕탕이나 사소한 것들이 주는 조그마한 행복들을 저자가 얼마나 그리워하는가 보면서 현재 누리고 있는 것들의 행복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비록 내가 아쉬움을 느꼈다하여도 각각의 이야기에 담긴 사연들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부모님이나 형제자매들의 모습이란 점에서 많은 점을 되돌아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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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가게
장 퇼레 지음, 성귀수 옮김 / 열림원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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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장면부터 심상치 않다. 자신의 아이가 웃는다는 손님들의 말에 화를 내다니 이상한 사람들 아닌가! 자기 가문 사람들은 결코 웃지 않는다고 하면서 다른 이유를 대지만 분명 웃고 있다. 그런 자신의 아이에 대한 부모들의 반응은 맙소사! 다. 보통의 가정이라면 좋아서 같이 웃고 즐거워할 텐데 이 집안은 괴상하다. 이 이상한 가족들이 운영하는 자살가게와 부모를 놀라게 한 아이 알랑의 기발한 생각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이 집에서 판매하는 것은 기발한 자살 도구들이다. 목매고 죽기위한 밧줄이나 독이 든 사과나 할복용 칼이나 잘 떨어지기 위한 콘크리트 덩어리 등이다. 손님에게 하는 인사는 “명복을 빕니다”이다.  “다음에 또 찾아주세요” 같은 말은 해서는 안된다. 당연하다. 자살가게 아닌가! 이런 가족에게 돌연변이 같은 아들이 태어났는데 그 이유도 기발하다. 병으로 죽기 원하는 사람들을 위한 구멍 난 콘돔을 사용하다 태어난 것이다. 이런 우발적 탄생과 더불어 더 희한한 것은 그가 지닌 낙천성과 미래에 대한 희망과 즐거움이다. 그의 이런 행동은 가게의 영업 방침과도 맞지 않고 그 시대의 암울한 현실과도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보는 사람은 즐겁다.

 

소설 속 시대를 예측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아마 미래라고 추측할 수 있지만 현실이라고 생각해도 무관하지 않을까 한다. 그만큼 현대 사회는 자살에 대한 충동에 휩싸여 살아간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 번쯤은 자살을 생각해보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자살을 뒤집으면 살자라는 말이 된다는 단순한 역설이 존재하지만 그것도 또한 사실이다. 살고 싶은 마음이 있기에 죽고자 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이다. 이 소설 속 시대의 상황을 풀어내는 장면을 보면 그들이 자살 충동에 휩싸이는 것이 조금은 이해가 된다. 하지만 과장되게 표현되었고, 그런 장면들이 자살 도구를 판매하는 사람과 구매하고자 하는 사람과의 대화를 재미있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영화에 대해 말하며 팀 버튼 감독을 많이 말하는데 잘 어울린다 생각한다. 역자가 프랑스 영화 ‘델리카트슨’이 생각난다고 했는데 그 영화의 이미지가 소설 속 장면 몇 개와 겹치며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기발하고 황량하면서 유쾌한 웃음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재미있게 넘어가면서 호기심을 자극하고 삶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기발한 상상력이 발휘되며 블랙유머는 콕! 가슴을 찌른다. 하지만 마지막 장면의 의미는 무엇인지 모르겠다. 책을 덮고 난 후 가장 의문스러운 장면이다. 가장 역설적이며 앞에 일어난 모든 것을 뒤집는 듯한데 어떻게 해석해야할지 모르겠다. 가슴에 묻어두고 살아가다보면 언젠가 그 해답이 보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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