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메르 VS. 베르메르
우광훈 지음 / 민음사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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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처음 베르메르를 알게 된 것은 ‘진주 귀걸이 소녀’를 영화로 보면서부터다. 그 당시는 나에게 너무나도 낯선 화가였다. 이후 영화의 원작을 읽으면서 이 작가에 대해 관심이 생겼고, 몇 편의 소설이나 그에 대한 글들로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가끔 여기저기에서 만나는 그의 그림들은 나에게 즐거움을 주었고, 다시 영화나 소설 등에서 만난 그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우광훈을 처음 만난 것은 ‘플리머스에서의 즐거운 건맨 생활’이란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이었다. 서부영화의 기초 위에서 만들어진 이 소설이 재미와 기발한 상상력으로 미묘한 울림을 주었다. 그래서 다른 작품집인 ‘유쾌한 바나나 씨의 하루’를 읽었고 그 속에 담긴 기발한 상상력을 다시 즐겼다. 하지만 왠지 아쉬움이 남았다. 그 당시 읽은 다른 작가들의 소설이 강한 인상을 주고 다음 작품을 찾아 읽게 만드는 반면에 그는 약간 그 자리에 멈추게 만들었다. 물론 이것은 그의 새로운 소설들이 많이 나오지 않은 것도 이유지만 취향에 꼭 맞지 않은 것도 원인이다.

 

최근 알게 된 거장 화가와 기발한 상상력을 보여준 작가의 조합은 이 소설을 선택하는데 결정적인 요소로 작용했다. 하지만 이런 나의 생각과 달리 소설은 거장의 위작을 만든 가브리엘 이벤스라는 인물의 이야기였다. 대단한 위작을 만들어낸 이 화가의 생애를 따라 그 당시 유럽을 재현해 내고 있다. 가브리엘은 천부적인 데생 실력을 가졌지만 창조성이 조금 결여되어 있다. 아니 정확히는 시대를 잘못 태어난 것이다. 새로운 사조들이 끊임없이 태어나던 그 시기에 그의 사실적인 화풍은 유행과 맞지 않았다. 이런 시대적 현실과 갑자기 커지기 시작한 미술 시장을 배경으로 이야기는 나아간다.

 

사실 첫 부분은 조금 밋밋한 느낌을 주었다. 현실의 모습과 가브리엘이 네덜란드에서 국보급 그림을 나치에게 판매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어린 시절의 그를 묘사한 이야기로 시작하기 때문이다. 별다른 긴장감을 주지도 못하고 이 소년의 이야기가 그냥 무난한 정도였다. 하지만 중반에 가면서 자신이 위작을 했다고 말하는 장면부터 긴장감을 심어주었다. 이후 그가 어떻게 위작을 그려내게 되었는지 보여주는 그 과정에서 만나게 되는 파리의 모습과 그의 삶은 빠르게 빨려 들어가게 만들고 다음 이야기를 기대하게 만드는 재미가 있다.

 

소설을 읽다 만나는 가브리엘은 불쌍한 인물이다. 대단한 능력을 가졌지만 시대와 화상들을 잘못 만난 것이다. 그 뛰어난 재능은 다른 방식으로 더 발전할 수 있었지만 시대의 유행과 화상들의 꼬드김과 생활의 어려움 때문에 자신의 길을 잃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재능은 다른 곳에서 피어났다. 당시 새롭게 발견된 화가 베르메르의 작품을 통해서다. 전문가들도 모두 속아 넘어갈 정도로 그의 위작은 새로운 베르메르의 모습을 보여준다. 재미있는 것은 그가 그린 위작을 나치가 구입하고, 이 사실 때문에 그가 검사에게 기소당하는 현실이다. 위작을 만들어 나치에게 판매하게 된 이유를 보면 애국자로도 불러도 문제가 없을 정도지만 너무나도 뛰어나기에 위작이란 사실을 감정단이 인정하지 못하는 것이다.

 

베르메르의 작품 수는 너무 적다. 명성과 고가에 거래되는 현실을 생각하면 뛰어난 위작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시장은 많은데 공급이 부족한 현실에 전문가라는 사람들의 감정서까지 곁들여진다면 더욱 유혹적이다. 수집가들은 이럴 모아 자신의 욕망을 충족하고, 화상은 이 거래를 통해 부를 쌓게 된다. 자본주의 생리에 의해 엄청난 금액으로 거래되고 부풀려지는 현실에선 더욱 이런 위작들이 생길 수밖에 없지 않을까.

 

지금도 곳곳에서 위작으로 의심받고 위작을 진품처럼 걸어놓고 사람들에게 걸작이란 이름으로 강요한다. 1억 달러가 넘는 그림이 존재하는 현실에서 본래의 취지를 넘어 상업화로 진흙탕이 되어가는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안타까움을 느끼게 한다. 그림을 그린 화가보다 그 유통되는 과정에서 엄청나게 많은 부가가치가 창출되는 현실은 뒤틀린 사회의 한 모습이 아닌가 한다. 이런 고가 미술품을 구입하는 것을 나같이 돈 없고 그림에 대해 문외한은 생각도 할 수 없다. 아마 다른 이들처럼 나도 재테크로 그림을 소장한다면 다른 이야기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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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 그림자의 책 뫼비우스 서재
마이클 그루버 지음, 박미영 옮김 / 노블마인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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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인도와도 바꾸지 않겠다고 영국이 자랑하는 작가 셰익스피어, 그에 대해 알려진 것은 너무나도 적다. 실존인물이 아니라는 설이 있어 다른 인물들이 말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의 존재는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전 세계에 그 위대한 이름을 알리고 있다. 지금도 세계 어느 곳에서는 그의 희곡이 연극이나 영화나 텔레비전 드라마 등으로 만들어지고 상영되고 있다. 그런 그의 미발표 희곡이 발견된다면 어떨까? 바로 여기서 이 소설은 시작한다.

 

이미 희곡이 발견된 상황에서 이야기가 진행된다면 아마 사실을 증명하고 이를 가지려고 하는 수순을 밟을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교묘하게 희곡의 존재를 암시하는 편지와 암호를 등장시켜 보물찾기와 그 보물지도를 둘러싼 쟁탈전을 동시에 진행한다. 그러면서 그 희곡의 사실 여부에 초점을 맞추면서 영화 학도를 등장시켜 영화에서 다루어지는 일상적인 장면을 가끔은 노골적으로 말하고 그대로 옮기기도 한다. 영화 장면에 대한 패러디이자 이미지로 가득한 현실에 대한 풍자이기도 하다.

 

이야기는 두 남자와 편지 하나로 이어진다. 지적재산권 전문 변호사인 제이크와 고서점에서 일하는 크로세티가 두 주인공이다. 제이크는 완벽하고 멋진 아내를 두고 있지만 어린 시절 굴절된 가족 환경 때문인지 끊임없이 다른 여자와 부정을 저지르며 살아간다. 그의 과거는 이 소설의 한 축이다. 2차 대전 이후 미국의 어두운 사회에 대한 축소사이기도 하다. 유대인과 나치 SS장교 딸과의 묘한 결합과 폭력조직의 회계사였던 아버지의 도망으로 깨어진 평화와 형제들의 빗나간 모습은 그의 삶을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이에 반해 크로세티는 과거의 인물이 아닌 현재를 살아가는 인물이다. 과거의 기억이나 아픔보다 현재 부딪히는 상황 때문에 고민하고 아파한다. 모든 문제의 시작은 그를 둘러싸고 일어나는데 그 이유는 셰익스피어의 미발표 원고를 암시하는 듯한 17세기 브레이스거들의 편지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의 어머니는 도서관 사서로 풍부한 지식과 인맥을 가지고 있어 암호문으로 작성된 편지에 대한 많은 의문을 해결하는데 도움을 준다. 그리고 사건의 한 축을 형성하는 정체를 정확히 드러내지 않는 여자 캐롤린은 사건을 해결하는 단서가 된다. 

 

세기의 대발견이 사건으로 커지게 된 것은 벌스트로드 교수가 죽었기 때문이다. 그는 크로세티로부터 사실을 속여 그 편지를 싼 가격에 구입한다. 과거 셰익스피어 전문가에서 위조범에게 위조문서로 속는 치욕을 당한 그 순간 명예도 경력도 삶도 모두 무너졌기 때문에 욕심을 부린다. 그런 순간 자신 앞에 나타난 이 편지는 희망이자 미래였을 것이다. 단숨에 무너진 모든 명성과 명예와 삶을 되살리려고 했을 것이고, 그 과정에서 엄청난 가치를 지닌 편지에 욕심을 부린 인물에게 살해당했다. 물론 모든 것이 그의 잘못은 아니다. 그 또한 음모와 배신에 농락당했다. 여기서 다양한 인물들이 엮이고 알 수 없는 의문이 생기고 거물들이 개입하게 된다.   

 

사실 미스터리의 몇몇은 초반에 단서가 제공된다. 작가가 비슷하게 묘사한 글에서 그 정체를 드러내고 있다. 그 문서가 진품인가 하는 점은 끝까지 의문스럽게 여겨지는데 예상을 뒤엎는 결말로 마무리된다. 하지만 엮이고 얽힌 관계와 비밀들은 스릴러답게 단숨에 모두를 모아놓고 풀어낸다. 적지 않은 분량임을 생각하면 대단하다. 간결한 문장과 개성이 강한 등장인물들은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제이크의 과거와 크로세티의 현실이 만나는 순간을 향해 달려갈 때조차도 놀라운 이야기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재미있는 설정과 구성이다. 이것을 더 재미있게 만드는 것이 바로 등장인물들의 특징이다. 놀라운 과거를 가졌지만 지금은 예수회 신부가 된 폴 형이나 도서관 사서이지만 뉴욕 경찰의 아내였던 크로세티의 어머니 등은 개인이 지닌 능력도 대단하지만 인맥 등으로 사건이 확대되거나 잘못되는 것을 막아내기도 한다. 또 다양한 직업을 생생하게 다루면서 부수적인 즐거움도 전해주며 미발표 셰익스피어의 원고가 있다면 그 가치가 어느 정도일지 상상하는 재미도 있다. 셰익스피어 시대에 대한 정보를 더 많이 알고 있었다면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겠지만 드러난 이야기만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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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식동물의 딜레마
마이클 폴란 지음, 조윤정 옮김 / 다른세상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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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저녁으로 무엇을 먹을까? 이 문장으로 시작하여 한 끼 식사로 긴 여정은 마무리된다. 그 긴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놀라운 사실과 풍부한 인문학 지식을 마주하게 된다. 단순히 음식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다양한 삶의 모습과 깊은 사고를 요구하는 장면을 만나게 된다. 때때로 그 이야기는 무겁고 단숨에 이해하기 힘들기도 하지만 조금 멈추고 생각에 잠기면 그 속에 열린 열매들로 예상하지 못한 지식과 즐거움을 누린다.

 

책은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산업적 음식사슬인 옥수수와 전원적 음식사슬인 풀과 수렵․채집음식사슬인 숲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 시간적 흐름이 현재에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는 점이다. 그리고 각각의 과정은 그 시대의 가장 일반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이 과정들을 단순히 인문학 지식으로 이 책을 집필했다면 풍부한 지식이 들어있었겠지만 생생한 현장감은 없었을 것이다. 저자는 각 음식사슬의 현장을 누비면서 그 과정을 관찰하고 연구하면서 우리 앞에 펼쳐 보여준다. 바로 이 점이 가장 재미난 부분이자 대단하게 느껴지는 부분이다.

 

사실 이 책의 목차를 보면서 산업적 음식사슬을 옥수수로 시작한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나에게 옥수수는 가끔 먹는 간식 그 이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가 경험한 곳에선 옥수수가 단순한 옥수수가 아니라 사료로 고기로 음료수로 끝없이 변신하여 우리 앞에 나타난다. 그 과정에서 만나는 사실들은 산업화된 옥수수 농장과 사육농장과 맥도날드가 있다. 왜 옥수수가 중요한가를 추적하는 그 길은 단순히 옥수수만의 문제가 아닌 현대 미국 음식 문화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기에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풀로 대변되는 두 번째 음식사슬에서 만난 폴리페이스 농장은 상당히 인상적이다. 관리 강화 방목이란 방식으로 소와 닭 등을 키우는 그 과정을 보면 상당히 과학적이면서 위생적이면서 효율적이다. 여기서 만나는 유기농은 시대의 흐름을 이미 추월한 모습인데 산업화된 유기농과 차별화된 모습을 보여준다. 이 차별화된 지점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데 도시화와 인구집중과 올바른 음식에 대한 문제 등이다. 각각의 환경과 상황에서 다른 점이 보이지만 한 가지 점에서 일치하는데 그것은 좋은 재료에 대한 합의다. 비록 그 가격이 좀 더 산업화된 음식에 비해 비싸다고 하지만 밖으로 드러난 그 과정의 투명성과 신선함과 맛 등으로 그 이상의 가치를 가진다. 그리고 산업화된 음식들에게 지원되는 보이지 않는 비용들이 사라진다면 이 음식의 가격이 떨어질 수 있다니 기대해도 될지 모르겠다.

 

마지막 수렵․채집음식사슬에서 만나는 사냥과 버섯 채집은 고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생활 방식이다. 현재로부터 점점 과거로 걸어가면서 만나는 우리들은 먹는다와 죽인다를 넘어 다양한 사유로 뻗어간다. 특히 채식주의자에 대한 생각들은 인간 본연의 모습과 도덕적 윤리적 모습을 동시에 고민하게 만든다. 또 자연 법칙 속에 인간의 개입을 기피하는 동물보호 단체들이 인간에 의해 생태계가 파괴된 곳을 복원하기 위해 수천 마리의 돼지를 몰살시키려는 일에 제동을 걸면서 종으로서의 돼지에서 개별적인 돼지로 논점이 옮겨갔다고 지적한 대목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리고 앞부터 넘어온 사유들과 관찰들이 하나의 저녁식사로 연결되는 장면은 모든 것을 총괄하는 분위기로 잘 집약되어 있다.

 

이 책은 우리나라와는 맞지 않는 부문이 많다. 하지만 음식사슬을 들여다보면 무시할 수만은 없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인해 그 여파가 우리에게까지 다가왔기 때문이다. 또 미국이란 나라가 건국 초기부터 다양한 문화로 이루어져 자신들만의 전통음식문화가 없었다고 지적하고 이로 인해 쉽게 갖가지 음식 열풍에 휩싸인다고 말한다. 이 부분에선 우리도 전통문화가 일제를 거치면서 대부분 사라진 여파로 새로운 문화 열풍에 쉽게 빠져드는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마지막으로 저자가 산업화된 음식사슬에서 가장 이득을 보는 업체가 군산업체라고 지적한 것과 정부가 이들에 의해 농장을 효율이란 명목으로 파괴하는 모습을 보게 되는데 놀라운 현실이다. 재미난 일화 중 하나는 유기농업 회의에서 유기농 기업체가 산업 유기농이란 경쟁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애쓰는 어떤 소농에게 시장에서 차별화하려면 특화상품을 개발하려고 노력하라고 말하는 대목이다. 이때 소농이 한 말이 20년 전 유기농이라는 특화 상품을 개발했는데 그 기업체들이 이 상품을 차지했다고 말하는 장면이다. 거대한 괴물 기업체가 어떤 식으로 개인을 잡아먹는지 알 수 있게 한다. 그리고 1950년대 미국 농무부가 정기적으로 농산물의 영양소를 지역끼리 비교하다 그 차이 때문에 다른 지역 재배업자가 곤란에 처하자 그 이후 중단했다는 대목이다. 국민들의 기본적인 정보에 대한 접근을 차단한 것이다. 이것은 옥수수로 대표되는 산업화된 음식사슬의 과정을 제대로 알 수 없게 만드는 것과도 어쩌면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음식은 문화다. 패스트푸드가 그 나라의 문화를 상징할 수는 없다. 슬로푸드라는 단어를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수많은 업체가 생겨나고 있지만 그 속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대부분 패스트푸드 점포와 별다른 차이를 보이지 못하는 곳이 많다. 또 저자가 중요하게 말한 화석연료에 대한 부분은 제철음식과 지역 농산물 시장과의 관계를 돌아보게 만드는 중요한 열쇠이다. 물론 이 화석연료 덕분에 옥수수로 시작하는 산업화된 음식사슬이 시작하지만. 저자의 말처럼 패스트푸드도 슬로푸드도 아닌 그냥 음식으로 한 끼 저녁을 해결한다면 그 시간은 우리를 더 풍족하고 건강하게 만들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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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조선이다 - 조선의 태평성대를 이룩한 대왕 세종
이한 지음 / 청아출판사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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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은 한국 사람이 가장 존경하는 위인이다. 그의 위대한 업적은 엄청나게 많지만 ‘한글’ 하나만으로도 우리에겐 존경의 대상이 될 수 있다. 헌데 그 시대를 들여다보면 다른 엄청난 업적들이 널려 있다. 그 하나하나를 나열하는 것은 무의미하고 후대에 끼친 영향을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한다. 그만큼 그 업적은 다른 군주들과 차별화된다.

 

최근에 읽은 몇 권의 역사서에서 한결같이 주장하는 이야기가 있다. 그것은 엄청난 독서가이자 일 중독자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책을 손에서 놓기를 거부할 정도라고 하는데 인용되는 이야기들은 거의 비슷하다. 충녕대군시절 병이 났지만 계속 책을 읽자 태종이 걱정한 나머지 책들을 모두 빼앗아버렸지만 유일하게 남은 <구소수간(歐蘇手簡)>을 읽고 또 읽었다는 이야기다. 읽은 횟수에 대해서는 30번이다 1000번이다 등 다른 주장이 있지만 책에 대한 그의 사랑을 잘 알게 해준다.

 

이런 책에 대한 사랑과 함께 위대한 업적으로 손꼽히는 훈민정음 창제와 자격루나 혼천의 등의 과학기구와 예악의 정비 등은 단순히 그 시대에 나온 치적이 아닌 세종 자신이 많은 부분 함께 했다는 주장이 있다. 그 방대한 일들을 단순히 지시하고 전문가가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함께 연구하고 토론하고 지시하면서 이루었다고 한다. 그 엄청난 일을 혼자 이루지는 못한다. 그러나 방외자로서 머물지 않았다는 점은 그의 업무 양이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 짐작할 수 있고, 그 바탕에 엄청난 독서가 있었음을 알게 한다.

 

책은 네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첫 번째는 왕이 되기까지 과정에서 만나는 이도 세종과 태종과 그의 형들이다. 이전에 읽은 다른 역사서와 별다른 차이점을 보여주지 못하는 그냥 평범한 기술이다. 세종이 전혀 왕권에 관심이 없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분위기를 풍기면서 전설이나 설화에서 나오는 이야기를 반박하는 정도에 머물고 있다. 차라리 태종의 역할을 좀더 부각하고 심도 있게 표현했다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두 번째는 전문가의 시대로 평하며 삼정승과 세종하면 떠오르는 인물인 장영실, 이천, 박연 등에 대한 평가를 적고 있다. 그리고 집현전과 훈민정음 창제에 대해 간략하게 말한다. 인물들에 대한 평은 개인적으로 여기저기에서 본 것이지만 이렇게 정리된 것을 보지 못해 약간 신선하였지만 훈민정음이나 북방정책 등에 대해서는 깊이가 부족하다. 훈민정음에 창제에 관한 일본 측 주장인 문창살 이야기를 가볍게 언급하며 부인하지만 창제 원리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가 부족하고, 최근에 많이 말해지는 세종대왕 훈민정음 독창설에 대한 논박이 너무 두루뭉술하다. 북방정책에 대해서는 고구려, 백제의 역사를 정립하여 신라 단독 역사관을 배제했다고 한다. 재미있는 대목이다.

 

이후 두 부분은 찬란했던 세종의 빛 속에 숨겨져 있던 어두운 그림자들에 대한 것들이다. 여기서도 역시 인물들에 대한 평가들로 이어지는데 제목에 비추어보면 안타까운 대목이다. 그가 조선시대 어떤 역할을 하였는지와 이후 그 영향력이 어떤 방식으로 이어졌는지에 대한 세밀한 연구가 거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전체적으로 이야기를 듣는 듯한 서술이라 그 시대를 전문적으로 파고들었다는 느낌이 부족하다.

 

세종대왕을 다룬 몇 권의 역사서에서 불만을 느끼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 시대를 해석하는 것이야 각각 다르겠지만 일본어나 영어의 사용이 너무 많다는 점이다. 영어가 우리 생활에 많은 부분을 점유하면서 일상적으로 사용되지만 최소한 세종과 관련된 이야기에선 조금 더 조심스러워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특히 사내대장부로서의 일대 목표가 한껏 ‘가오’를 잡는 것(200쪽)이라고 표현 글에선 심한 반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또 세종에 대한 평가로 저자는 선량한 독재자라고 했는데 이는 그 시대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부족한 것이 아닌가 한다. 선왕인 태종이 비록 많은 반대세력을 숙청하고 정리했다지만 아직 왕조 초기로써 많은 불안 요인을 안고 있던 시기를 생각하면 그가 일방적으로 권력을 휘두른 것이 많지 않음을 알게 된다. 여기선 다른 역사서와 조금 엇갈리는 듯하다. 그리고 세종이 조선임을 보여주는 명확하고 논리적인 서술과 증거가 부족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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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이 되는 독, 독이 되는 독 의학, 과학을 초대하다 1
다나카 마치 지음, 이동희 옮김, 정해관 감수 / 전나무숲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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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생활에서 독을 만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아니 있다고 하여도 뉴스를 통해서 만난다. 정확히는 만난다고 생각한다. 왜 이런 복잡한 문장을 쓰냐 하면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독들이 우리주변에 널려 있기 때문이다. 최소한 이 책에 나온 정보들을 보면 우린 독을 섭취하고, 독극물에 휩싸여 생활하고 있다.

 

무서운 환경이 아닌가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저자가 풀어내는 이야기들을 듣다보면 이 의미를 알게 된다. 제목에서 말하듯이 독이 약으로도 독으로도 사용 가능하기 때문이다. 단지 어떻게 얼마만큼 사용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여기에 저자는 독을 구분하고 어떤 작용을 하는지 간결하게 설명한다. 실제 독이 사용되어 피해를 입힌 사례를 보여주면서 그 독의 무서움과 사람들의 잔인함도 같이 보여준다. 

 

이 부분은 이전에 다른 책에서 읽어 특별함이 없지만 이번처럼 정리된 책은 아니다. 여기저기에서 읽은 책들에서 얻은 단편적인 지식이다. 이 기회에 좀 더 일목요연하게 보게 되었다. 복잡한 화학식과 구조에 대한 설명은 지식 부족으로 충분히 소화를 시키지 못했지만 몇몇 익숙한 용어와 사례들은 전문적인 서적이 주는 딱딱함을 풀어주기 충분하다.

 

독을 크게 생물 독과 무생물 독으로 나눈다. 생물 독은 동물성과 식물성으로, 무생물은 광물과 화학 독으로 나누는데 재미있는 것은 동물 독이 더 강하다는 것이다. 헌데 이 동물 독의 경우 통제의 어려움이 있어 화학병기로 실전에 사용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가 주로 신문지상에서 만나는 것은 화학병기인 독가스다. 화학병기로 사용되는 독가스 외에도 우리 주변에선 지용성으로 작용하는 많은 화학물질이 있는데 이런 세부적인 사항까지는 저자가 넘어가지 않는다. 약간 아쉬운 대목이다.

 

생물 독에서 재미있는 것은 이미 알고 있던 복어나 독사나 버섯이나 보톡스에 사용되는 보툴리누스 등이 아닌 피망에 대한 것이다. 그 쓴맛 때문에 아이들이 싫어하는데 일반적으로 동물들은 본능적으로 “쓴맛=독”으로 본다고 한다. 이 부분은 좋은 약은 입에 쓰다는 말과 “약=독”이란 기본 이론과 맥을 같이 한다. 또 어른이 되면서 미각이 점점 둔해져 쓴맛을 잘 느끼지 못하게 되는데 뇌의 발달에 따라 미각의 필요성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주장하는 부분이다.  다행스럽게 피망에 들어있던 소량의 알칼로이드 성분은 요리하는 과정에  사라진다고 한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의학에선 독과 약은 그 경계가 사용량과 상황에 따라 다르다. 현대의학에서 독으로 생각한 물질에서 약으로 추출하여 사용하는 경우가 빈번한 것을 보면 그 경계는 더욱 약해진다. 대표적인 진통제인 모르핀의 경우 그 사용량이 많으면 중독되고 죽지만 적당하게 잘 사용하면 환자의 고통을 덜어준다. 담배의 니코틴은 소설 속에서도 등장하지만 강한 독성을 가지고 있다. 또 유아가 2개비만 먹어도 죽는다니 주변에서 쉽사리 발견할 수 있는 독극물이다. 이런 독에 대한 지식으로 살인을 저지른 사람들의 사례를 보다보면 독보다 무서운 것은 역시 사람의 마음임을 알게 된다.

 

전문서적에는 미치지 못하겠지만 추리소설이나 언론 등을 통해 독에 대해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에겐 좋은 교양서가 아닌가 한다. 세분화된 독의 작용에 대한 설명과 통설에 대한 잘못을 바로잡아주기도 하지만 독이 사람마다 작용하는 시간이 다르다 하여도 빨리나 조속히 같은 단어보다 몇 시간이나 몇 분 등의 비교적 정확한 시간을 표시해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리고 이 책 덕분에 앞으로 독극물을 다룬 소설이나 영화를 만나면 괜히 아는 척하지 않을까 미리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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