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상과 매혹의 고고학 - C.W.쎄람의 사진으로 보는 고고학 역사 이야기
C. W. 세람 지음, 강미경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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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보는 고고학 역사 이야기다. 하나의 주제나 소재를 깊이 있게 파고드는 내용은 아니다. 세계 4대 유적을 사진과 그림 중심으로 풀어낸 고고학 서적이다. 약간 백과사전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쉽게 빠르게 즐겁게 단숨에 읽기는 약간 버겁다. 하지만 그 놀라운 사진과 그림과 정보는 이때까지 읽은 고고학에 대한 이야기들을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기회를 준다.

 

책은 네 지역을 다룬다. 첫 번째는 폼페이와 트로이 지역이고, 두 번째는 이집트다. 세 번째는 성서에서 출발한 바빌론이고, 마지막은 멕시코 지역의 아스텍 문명이다. 각 지역에 대한 체계 없는 지식을 가지고 있던 나에게 하나의 흐름을 잡아주길 기대했지만 이 글에선 그런 느낌을 받지 못했다. 너무 많은 정보가 담겨있고 간략한 설명으로 이어져 지식이 축적에는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좀더 깊이 있고 체계적인 지식을 얻기엔 힘들다. 물론 이것도 아는 것이 많은 사람에겐 하나의 흐름이 보일지 모르지만 아직 나에게는 힘겹다.

 

네 문명 지역에 대한 글들 중 대부분을 한 번씩 읽은 내용이다. 가끔은 고고학자들의 의견이 갈리는 부분에선 나의 얇은 지식도 갈라지고, 고고학 개척기의 수많은 학자들 이야기는 역시 어려움과 모험과 낭만이 가득하여 재미있다. 하지만 역시 그 시대의 한계를 느끼게 만들고,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유물 파괴를 연관시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고고학자들이 엄청나게 많은 돈과 노력과 정열을 쏟아 붓지만 높은 현실의 벽은 종교나 세월이나 금전적 이유 등으로 넘기가 쉽지 않다.

 

엄청나게 많은 사진이 나온다. 원제가 고고학의 사진 역사이니 어쩌면 당연하다. 한 장의 사진이 완전히 독립적인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데 어떤 순간은 무척 짧게, 어떤 순간은 많은 의미와 이야기를 품고 있다. 단순히 대단하다거나 이색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사진 속에 이렇게 많은 이야기가 숨겨져 있을 것이라고 누가 생각했겠는가? 이런 점에서 이 책은 두고 보면서 다른 고고학 관련 서적의 참고 자료로도 빛을 발하지 않을까 한다. 대신 사진이 컬러가 아니라는 점은 아쉽다.

 

고고학 역사를 들여다보면 가끔 만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도굴꾼과 보물 사냥꾼이다. 이들은 유물의 파괴자인 동시에 발굴자인데 순수한 학문적 입장에서 발굴단이 만들어지기 전에 대부분의 유물의 발굴한 사람들이다. 지금도 가끔 보물선을 찾는 사람들 이야기가 언론을 통해 흘러나오는 것을 보면 어쩔 수 없는 듯하다. 일정 부분 고고학에 기여를 한 점은 인정한다. 하지만 그 기본 목적이 돈이다 보니 돈이 될 듯한 유물만 다루지 그 시대를 복원하는 일에는 관심이 없다. 덕분에 가끔 뒤이어 온 고고학자들이 그 시대상을 상상하는데 예상하지 못한 도움이나 고민을 안겨준다. 역사의 재미있는 대목이다.

 

사진이 없는 시대에선 그림만이 유물을 정확히 묘사할 수 있었다. 그런데 사진이 나온 후에도 많은 화가들이 유적을 그렸다고 한다. 사진의 경우 빛과 공기가 뒤섞이며 구조물의 조화를 왜곡하고, 색채를 바꿔버리며, 비율을 흐릿하게 만든 것이다. 그림 또한 하나의 대상을 보는 이에 따라 왜곡이 일어나는 현상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요즘 유물 사진을 찍는 기술이 많이 발전한 결과 기술적, 미학적 측면에서 대단히 세련된 그림이 나온다니 다행이다.

 

고고학은 상상력에 의해 발전하고 발견되는 학문이다. 신화나 전설에 매혹된 사람들이 그 현장을 찾고자 하거나 예상하지 못한 발견에 의해 압도되고 매혹당하거나 파괴된 과거의 현장에서 새로운 발견이 이루어지고 새로운 과학과 시도가 그 발전을 더욱 가속화시킨다. 발견된 유적과 유물은 잊혀진 과거를 되살리고 현재의 우리를 돌아보게 만든다. 그 속엔 상상력이 만들어낸 꿈이 있고, 낭만이 있고, 모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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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기의 해석 - 프로이트 최후의 2년
마크 에드문슨 지음, 송정은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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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프로이트 최후의 2년이란 부제가 달려있다. 원제를 보니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죽음이다. 근데 제목은 광기의 해석이다. 왜 일까? 그 이유는 프로이트 죽기 2년 동안 유럽에 몰아친 나치를 비롯한 파시스트들의 광기가 극에 달했기 때문이다. 흔히 우리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현상이라고 말하는 그 광기의 시대가.

 

책은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빈과 런던 두 곳으로 대변되는 시간이다. 빈의 시간이 오스트리아가 나치의 손에 넘어가는 과정과 결말에서 부딪히는 프로이트와 가족들과 주변인들의 삶을 다룬다면 런던은 그가 어쩔 수 없이 도망 온 장소이자 마지막을 맞이한 곳이다. 이 두 장소를 배경과 시간 속에서 저자는 프로이트의 이론과 급격하게 변하는 유럽의 정세를 풀어내고 있다.

 

시작은 1909년 빈이다. 이 시기에 빈은 역사에 남을 두 사람이 함께 거주한다. 프로이트와 히틀러다. 이 둘이 어딘가에서 만났느냐 하면 아니다. 다만 그 시기에 같은 테두리에 있었을 뿐이다. 근데 왜 저자는 이 우연의 시기로 시작할까? 한참 최고를 향해 가고 있던 프로이트와 저자의 표현을 빌리면 ‘쥐 떼 중 한 마리’(14쪽)였을 히틀러를 말이다. 그것은 바로 프로이트 최후의 2년에 벌어질 다양하고 무시무시한 현실에 담겨있다.

 

1938년 오스트리아 빈은 혼란의 소용돌이에 휩싸인다. 히틀러의 협박과 나치의 대두는 광기의 정점을 향해 달려간다. 협박으로 국민투표를 연기시키고, 두 나라를 하나로 합병한다. 오스트리아와 독일 나치의 구호가 “단일 국민, 단일 국가, 단일 지도자!”이다. 그리고 “유대인에게 죽음을!”

 

가부장제를 해체하고자 한 가부장적 권위자인 프로이트의 말년을 보는 것이 즐겁지는 않다. 암으로 고생하고, 날뛰는 나치 때문에 고생하는 그를 보면 안타깝다. 자신이 최후를 마치길 원하는 고국에서 도망 와 비록 자신이 얻고자 했던 명성을 확인하는 기쁨을 누리지만 마지막까지 평화를 원했던 마음은 무너진다. 그 말년에 저술한 ‘모세와 일신교’가 자신이 원하는 반향을 일으키기는 하였지만 세계를 휩쓸고 있던 광기를 잠재우지는 못한다.

 

이 책을 읽다 눈에 들어온 두 비교가 있다. 하나는 나치의 독재주의와 미국의 물신주의이고, 다른 하나는 파시즘과 근본주의에 대한 경고다. 독일이 광적인 독재국가인 반면, 미국은 모든 것이 철저하게 욕망의 지배를 받는다는 위협적인 주장을 하는 나라다는 점이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이는 마지막에 가서 파시스트와 근본주의자가 철저하게 다르다는 생각을 경고하는 장면과 연결된다. 파시즘이 “내면의 투쟁을 사라지게 하고, 사람들에게 강력하고 힘센 느낌을 갖게 한다.”(277쪽)고 말하며 그 위험과 중독성을 경고한다. 현재 세계 유일한 최강국이자 자본주의의 마지막 모습을 보여주면서 종교적 근본주의가 점점 자라는 미국의 현주소를 대변하는 듯하기에 더욱 시선이 간다.

 

이 책을 읽으면서 광기에 대한 섬뜩했던 내용은 놀라운 득표율이다. 오스트리아의 독일 합병에 대한 선거인 찬성이 99.73%이고, 독일이 90.2%라는 점이다. 이 이면에 다른 어떤 사실이 숨겨져 있는지는 모르지만 놀라운 찬성률은 뒤에 다가올 광기와 폭력의 서막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이 찬성률은 우리의 두 지역에 시선을 돌리지 않을 수 없다. 이성을 상실하고, 감정에 휘둘리고, 자신들이 강력하고 힘센 느낌을 가지는 듯한 환상에 빠지는 것은 아닌지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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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릴린, 그녀의 마지막 정신상담
미셸 슈나이더 지음, 이주영 옮김 / 아고라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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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릴린 먼로는 죽음으로 불멸을 얻었다. 당대 최고 섹시미를 자랑하던 그녀가 자살(?)로 삶을 마무리 하면서 그 아름다움을 시간 속에 고정시켰다. 그와 비견되는 반항아 이미지의 제임스 딘을 생각하면 젊은 시절 세계적인 배우들의 죽음은 사람들을 매혹시키는 무엇인가가 있는 모양이다.  

 

소설은 쉽지 않다. 장면 장면만 놓고 본다면 쉽고 재미있게 읽힌다. 하지만 전체적인 흐름을 좇다보면 마릴린의 삶에 힘겨움을 느끼게 된다. 그녀는 대중의 시선과 관심 속에서 힘겹게 살아간다. 힘겹게란 표현이 약간 사치스럽게 느껴지지만 끊임없이 정신 상담을 받고 약물을 복용하는 그녀를 보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화려한 은막 뒤에 숨겨진 삶은 호사가들의 입방아나 추종자의 숭배로 만들어진 이미지를 넘어선 곳에 있다. 그 깊고 어둡고 힘겹고 외로운 삶은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다.

 

작가는 사실과 사실을 연결하면서 그 과정에 허구를 끼워 넣는다.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만들어진 이야기인지 알지 못하지만 화려했던 삶 이면을 돌아보기에는 충분하다. 마릴린 먼로와 그녀의 마지막 정신상담의 랠프 그린슨의 사랑을 그렸다고 한다. 그 사랑이 섹시하지만 쉬운 여자라는 이미지가 있던 것과는 달리 정신적이란 점에 주목을 하고, 그 관계가 가족을 연상한다는 점에서 놀랍다.  

 

마릴린 먼로를 연기할 때마다 다른 모습을 보이기 원했지만 자신을 모방하는 자신을 발견하는 모순에 빠진 그녀가 정신 상담을 받는 것이 정상일지도 모른다. 그 당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이 세계를 휩쓸고, 자신의 불안한 감정을 정신 상담으로 풀려고 하는 사람들이 줄을 선 시대였다. 하나의 전설이 만들어지고, 그 전설은 영화와 결합하여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가차 없이 자신을 파헤치고 뒤집는 현실에서 연약했던 그녀가 신경질환으로 고생한 것도 어쩌면 당연하다. 불안하고 고민하고 무서워하는 그녀에게 정신 상담과 수많은 약들은 그녀를 치료하기보단 일시적인 안정이나 의존적 관계로 이끌고 가면서 불안을 더 심화시킨다. 정신분석의 한계라는 표현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소설은 방대한 자료와 하나의 시간 흐름과 다양하게 오고가는 공간과 시간으로 복잡하고 단숨에 읽기 힘들다. 곳곳에 드러나는 5-60년대 영화계 이야기가 재미와 웃음을 주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불안과 싸우고, 질투하고, 시기하고, 타락했는지 보여준다. 그 매혹적인 시간과 공간 속에서 만난 인물들은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한두 번은 들었을 것이고 존경해마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인물들이 이렇게 파헤쳐지니 신비감과 존경심은 많이 사라진다. 

 

소설 속에 재미있는 글이 있다. 마릴린이 녹음한 것인데 “가끔 전 정신과 의사가 환자를 치료할 때 이용하는 것이 지식도 아니고, 자가치료법도 아니고, 바로 제대로 치유되지 못한 자신의 상처라는 생각을 해요.”(410쪽)라는 대목이다. 프로이트의 글을 성서처럼 숭배하고, 랠프 박사에게 지나치게 의존하던 그녀가 삶 속에서 본 것이 이 말처럼 자신의 상처가 아닐까 추측해본다. 15시간을 자는 사람을 질투하고 욕하는 그녀가 불면에 시달리고, 전화기를 끼고 밤새 누군가에게 전화를 하고 약을 먹어야 잠들었던 그녀를 생각하면 연기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마릴린 먼로에 자신이 자꾸 복제하는 모순에 빠졌다는 말처럼 자신을 상실하거나 자신을 마주하길 거부한 듯하다.

 

사랑이야기라고 하지만 전혀 에로틱하지 않다. 그 둘의 관계는 환자와 의사의 수준을 넘었지만 연인으로 발전하지는 않았다. 랠프 박사가 마릴린에게 육체적 매력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고 하는 대목에선 세계 최고의 섹스 심벌이란 말이 무색하고, 만약 프로이트가 마릴린을 정신 상담했다면 침대에 눕혔을 것이라는 대목에선 웃음이 나왔다. 화려하게 물들인 금발을 숨기고 다니면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도로에서 그녀에게 “마릴린 먼로라도 되나”라고 한 운전수가 말하는 장면에선 화려한 명성과 이미지에 의한 상징성과 대비되는 삶의 한 측면을 보게 된다.

 

과연 그녀는 자살했을까? 아니면 타살일까? 소설은 이 의문에 대해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는 않는다. 책을 읽다 만나는 마릴린의 삶은 자살이라고 해도 충분히 이해가 될 정도로 힘겹다. 엄청나게 먹은 약물과 술은 삶을 바닥으로 내몰고 있고, 자신을 잃고 있다는 느낌은 불안을 더욱 가중시킨다. 하지만 그녀를 둘러싼 환경과 남녀관계는 충분히 타살일 가능성이 엿보인다. 세계 최고 권력자나 마피아와의 관계는 원하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알게 된 사실 때문에 감당할 수 없는 두려움을 주었고, 어두운 삶에 확실한 죽음을 내렸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살이든 타살이든 그녀가 죽었고, 많은 의문이 남는 것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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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고라출판사 2008-04-02 1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마릴린, 그녀의 마지막 정신상담>을 출간한 도서출판 아고라입니다. 저희 책을 읽고, 좋은 서평을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행인01님께서 써주신 이 서평이 저희 아고라 독자위원회가 뽑은 '3월의 베스트 리뷰'로 선정되었습니다. 그래서 감사의 뜻으로 도서상품권 1매와 저희 출판사에서 출간된 책 1권을 선물해드리려 합니다. editor@agorabook.co.kr로 성함과 주소, 전화번호를 알려주시면 선물을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대륙의 영혼 최재형
이수광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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쓴 소리로 시작하자. 소설은 1919년 1월 8일 일본군이 블라디보스토크에 상륙하기 전이다. 이때 한 통의 전문이 온다. 최재형을 검거 또는 사살하라는 내용이다. 이때 정보장교가 최재형에 대해 설명한다. 상해 임시정부 초대 재무총장이고, 블라디보스토크 일대 조선인들의 정신적 지주라고. 상륙한 일본군을 공격하기 전에 친한 동향 동생인 최봉준을 만난다. 그 후 파르티잔과 함께 일본군을 공격하여 2천 명의 사살하는 쾌거를 이룬다. 대단하다. 하지만 이 업적에 관계없이 치밀하지 못한 전개와 구성이 흥미를 반감시킨다.

 

먼저 상해 임시정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것은 3.1운동 이후다. 일본군이 미래를 예측하는 능력이 있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 책 후반에 가면 최봉준은 1918년 9월 25일에 죽는다. 뭔가 이상하다. 한국 독립군 사상 최대 쾌거라고 하는 청산리 대첩에서 죽인 일본군은 1,200명이라고 한다. 헌데 파르티잔과 협조했다지만 2천 명이나 되는데 누락되었다면 정말 독립운동사에 큰 오점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이 소설은 연도나 나이 등의 숫자에서 많은 오류를 보여준다. 역사소설이라면 사실과 사실의 고리 속에 허구를 살려내어 감동이나 현실감을 심어줘야 하는데 이런 부분이 많이 부족하다.

 

최재형. 사실 이 소설을 읽기 전까지 나는 이 분을 몰랐다. 아니 어딘가에서 들었는지 모르지만 외우고 있던 분은 아니다. 유명한 독립 운동가들의 이름을 많이 외우고 있지는 않지만 이렇게 큰일을 한 분이 역사 속에서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은 민족사의 아픔이자 비극이다. 또 얼마나 많은 분들이 누락되었을지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그분이 이룩한 업적에 비해 너무나도 미미한 기록들은 아쉽다. 대중적 반향을 불러와도 부족함이 없는 분이기에 더욱 그렇다.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은 큰일을 했다.

 

한 인물을 발굴하고 소설로서 대중화를 이루고자 했다는 점에서 점수를 높이 주지만 소설적 완성도에선 낮은 점수를 주겠다. 한국 드라마의 고질적 병폐라는 출생의 비밀이 사랑에 덧붙여진 것도 그렇지만 한 위대한 인물의 내면으로 파고들어가기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고민하고 아파하고 실천하고 생각하고 살아가는 그의 모습이 강하게 마음속으로 다가오지 못하고 있다. 업적이 너무 많아서인지 아니면 작가의 욕심 때문인지 모르지만 강한 인상을 주는 장면이 거의 없다.

 

또 곳곳에 드러나는 오타와 가벼운 실수들은 몰입을 방해한다. 인물의 내면에 대한 묘사가 약하고, 감정적이거나 너무 쉽게 성장하는 모습들은 현실성을 떨어트린다. 최재형을 시기하고 대립할 듯한 최봉준이 너무 쉽게 독립운동의 후원자로 변하는 모습은 그 계기가 충분하지 못하다. 갈등이나 대립이 약하다보니 긴장감을 고조시키지 못한다. 약간 밋밋한 느낌이다. 그래서 최재형의 생애가 더 현실적으로 다가오지 못한다. 조선에서 태어나 러시아에 귀화하여 재러시아 동포들을 교육하고 복지와 삶을 위해 노력한 업적들이나 파르티잔을 이끌고 일본군과 힘겹게 싸운 그 열정과 분노 등이 가슴 깊숙이 전해지지 않는다. 역시 한 위대한 독립 운동가를 발견했다는 것에 만족해야 할 듯하다.

 

마지막으로 이 소설에서 회령전투에서 수많은 의병을 잃은 안중근과 최재형의 대화에서 최재형이 한 대사로 맺고자 한다. “괜찮네. 전사한 의병들은 가슴 아픈 일이지만, 나 또한 언젠가는 일본군과 싸우다가 죽을 것 아닌가? 그들은 우리보다 앞서 간 선구자들일세.”(48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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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의 죽음 1 - 법의관 케이 스카페타 시리즈 15
퍼트리샤 콘웰 지음, 홍성영 옮김 / 노블하우스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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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 스카페타 시리즈를 순서대로 읽지는 않았다. 이전에 시공사에서 나온 것을 먼저 보았고 얼마 전에 ‘검시관’을 보았었다. 그 후 다른 작품도 읽었지만 초기작들을 능가하는 작품을 쉽게 발견하지 못했다. 읽은 것도 상당히 시간이 흘렀으니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지만 개인적으로 ‘검시관’과 ‘사형수의 지문’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순위로 매기려면 그녀의 모든 책을 읽은 후에나 가능할 것 같다. 현재 취향이나 부정확한 기억 때문에 들쑥날쑥한 상태다. 하지만 계속 읽을 예정이다.

 

책을 선택할 당시는 몰랐는데 모두 읽은 지금 확인하니 ‘검시관(법의관)’ 다음에 출간된 소설이다. 노블하우스에서 계속해서 이 시리즈를 내줘 기뻐하는 지금 이전에 읽은 것과 새롭게 출간되는 것의 연관성을 조금씩 찾아내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긴 몇 편만 정확히 집어낼 뿐 몇 편은 원제를 확인한 후에야 읽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행히 이번 것은 이전에 읽지 않았고 상당히 재미있게 읽었다. 얼마 전에 읽은 ‘카인의 딸’에 비하면 훨씬 뛰어난 작품이다.

 

작가에 대한 정보를 정확히 모르고 지금처럼 추리소설을 열심히 읽지 않을 당시에 패트리샤 콘웰의 작품을 열심히 모으고 읽었던 기억이 있다. 다른 많은 작가의 작품들이 중간에 끊겨 다음 편을 기다리지만 읽지 못하고 있는 시점에 이렇게 꾸준히 나온다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일이다. 어쩌면 그녀의 작품이 지닌 재미나 완성도가 현재에도 유지되고 있다는 반증이 아닐까 하고 생각도 해 본다. 아니면 그 때와 지금의 독서 시장이 많이 변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제대로 된 작가와 작품에 대한 정보가 이런 경사를 만들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사설이 길었는데 이번 소설은 역시 재미있다. 시리즈 소설의 묘미가 출연하는 인물들이 같이 아파하고 괴로워하며 성장한다는 점인데 이 소설의 뒤편을 이미 읽은 지금 과거로 돌아가 풋풋한 그들을 만나는 재미가 있다. 뒤로 가면 엄청난 살인마가 나와 긴장감을 높이고 잔혹함을 느끼게 하지만 이번엔 약간은 약한 상대다. 그렇다고 그에 대한 공포가 감소하는 것은 아니다. 시리즈 초기라 인간관계에 대한 설정이 이루어지는 단계고 상황에 대한 설명도 많이 필요한 상태다. 법의국장으로 승진한 그녀가 한 소설가의 죽음에서 시작한 연쇄살인을 쫓아가는 모습은 역시 매력적이다. 그녀가 느끼는 공포감이 살아있기에 더욱 현실적으로 느껴진다. 수많은 단서가 나오지만 정확한 범인을 잡아내기가 쉽지 않은 현실과 그녀를 둘러싼 음모가 동시에 진행되는 상황에서 힘겹게 그녀는 싸워나간다. 몇 편의 시리즈를 읽은 지금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의 관계가 머릿속에 입력되면서 혼란을 불러오기도 하지만 즐거움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아직 전면적으로 부각되지 않은 등장인물들을 맛보는 것은 왠지 유명배우들의 무명시절 단역을 보는 기분이라고 해야 하나!

 

사라진 원고를 둘러싼 비밀과 현실에서 여자들이 느끼는 공포와 사후처리에 집중된 경찰에 대한 비판이 잘 조화된 모습이다. 우리의 현실에서도 법이라는 경계에서 얼마나 많은 일들이 사후처리 되면서 피해자를 양산하였는지 알지 않는가. 실제 경찰들이 모든 범죄를 예방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도 알지만 이런 사건을 접하게 되면 역시 범인들은 항상 우리가 놓치는 조그마한 틈을 파고들어 이용한다는 것이다. 알 수 없는 범인으로부터 도망간 그녀가 돌아온 당일 살해당하는 현실에서 어떻게 그렇게 쉽게 문을 열어주었는가 하는 의문은 이 소설의 재미 중 하나다. 또 다른 것은 사라진 원고를 둘러싼 추악한 비밀이다. 연쇄살인과 사라진 원고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스카페타는 어떻게 이번 사건을 해결할까? 그녀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음모는 어떻게 될까? 그 끝은 그녀의 책을 모두 읽는다면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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